☞ 산행일시: 2015년 11월 22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24km +어프로치 1.5km / 8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수헌님과 둘이서
☞ 산행코스: 고은리터널-하노버목장-방초리갈림길-큰바래기산-강아지바위-마국산-두미리갈림길-구조이정목
헬기장-259.5m봉-이정표-갈림길-권균묘지 갈림길-250m봉-산안고개-두미갈림길-마오산-
돈님이고개-264m봉-무명묘지-258.3m봉(헬기장)-안성이씨 영묘당-큰고개-383번 지방도
산내리삼거리-진가2리-양평리-진가성결교회입구-구은들 입구-마이다스G.C입구-상원목장
보성공업-흥일농장-KL목장-군부대 담장-소고1리버스 정류장-소고교-하늘공원 입구
부대앞 버스정류장-대포동석조여래입상-항공작전사령부 정문앞-대포동 삼거리-정오정-정오산
소도니고개-우아미가구-만석고개-172m봉-삼육요양원-소나무 쉼터-약수터갈림길-해룡산
3번군도-112.4m봉-무명삼각점-현대아이파크 아파트-영동고속도로 육교-하이닉스 반도체 후문
아미사거리
☞ 소 재 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 이천시 모가면, 대월면, 단월동, 고담동
지난주 풍기 십승지를 끝내고 이번주엔 서울에서 가까운 서봉지맥 한구간을 끝내려고 맘을먹고 있는데 어쩌다가
후배 산꾼인 수헌아우님과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해룡지맥 1구간을 나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베낭을 정리하면서 TV를 켜니까 김 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접하는데
참으로 사람사는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세월이 지나면 다 왔던길을
되돌아가는데 왜 이리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이른 아침 도곡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부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아우님과 조우를 한다
양화(해룡)지맥(海龍枝脈)개념도
양화(해룡)지맥(海龍支脈)은 한남정맥 문수봉( 文殊峰.403.2m)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한 경안(앵자)지맥 곱등이고개를
지나 5.5km 지점의 용실봉에서 다시 동쪽으로 독조지맥을 가지치고독조지맥은 독조봉(獨條峰.434m)을 지나
약 22.6km를 동남진하여 큰바래가산(414m)에서 다시 북쪽으로 한가지를 친다.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馬國山(馬玉山/△445.4m),摩五山(×272m),모산(△258.3m),鼎鳴山(△168.1m),
海龍山(×201.2m),정산(×131m),箕觀山(×111m)을 지나 복하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여주군 홍천면 상배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7.4km에 달하는 산줄기를 해룡지맥이라 부르며 양화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양화지맥이라고 부른다
필요한지도 : 1/25000. 단월, 이천, 가남. 능서. 영진 : 1/5만. P.170.146.147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부터미널(06:10)
남부터미널에서 06시 30분발 버스를 타고 용인시 백암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잠깐이지만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양지I.C를 빠져 나갈쯤에 잠에서 깬다
버스는 양지.좌선리를 거쳐 백암면 소재지에 도착한다
백암 버스터미널(07:15)
서울에서 출발한 지 45분만에 백암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골목안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는 택시를 타고 고은리 터널로 향한다
고은리 터널 입구(07:50)
용인시 백암면에서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에 있는 터널입구에서 택시에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 터널 우측으로 오르는 길에는 하노버 슴마장이란 표지판이 있다
이곳 고은리는 조선조 14대 임금인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 태어난 영창대군(1606∼1614)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선조의 14명의 아들 중 유일하게 왕비의 소생으로 선조의 특별한 총애와
소북파의 지지를 받으며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 대신 세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많았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광해군 즉위 후 소양강을 무대로 시와 술을 즐기던 서양갑·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하여 ‘7서의 옥’이 일어났다.
그러자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파(大北派) 이이첨 등은 이들로 하여금 영창대군
추대음모를 거짓 진술케 함으로써 영창대군을 평민으로 강등시켜 유배시켰다.
영창대군은 그 뒤 유배지에서 강화부사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직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남한산성 아래에 안장되었다가 성남시 개발계획에 의해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봉분 아랫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둘레석을 둘렀으며, 그 앞에는 상석·향로석·묘비·동자석 등이 있다.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택시에서 내리니 잔뜩 흐린 날씨기 마치 못된 시어미상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워밍업을 한 다음에 08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승마장은 망해 버렸는지 모든게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승마장 철제 난간을 넘어서 무작정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길은 아예없다
승마장에서 12분 정도를 치고 오르니 9개월전에(2015년 2월 20일) 걸었던
독조지맥 능선이 반갑게 산꾼 범여를 맞아주는데 바람이 불어 생각보다 춥다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시원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큰바래기산으로 향한다
멋진 모습도 9개월전과 똑같다
우체통도 예전 그대로다
방초리(芳草里) 갈림길(08:25)
안성시 일죽면에 위치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방리 · 초막리 ·
은석리 일부를 합쳐 오방과 초막의 글자를 따서 '방초리'라 한 것이다.
방초리 갈림길에는 우체통이 마구 딩구는데 미관상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큰바래기산(414m:08:30)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모가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양화(해룡)지맥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지금부터 본격적인 양화(해룡)지맥길로 접어든다
玄梧님의 시그널인가?
강아지바위(08:38)
강아지 바위를 지나 2분정도 걸어니 마국산이 나온다
마국산(馬國山:445m:08:40)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모가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이
안성시와 이천시가 각기 다르게 부르게 있는 관계로 정상석도 마국산과
마옥산이 따로 있고 또 다른 오운봉(五雲峰)이란 정상석이 있다
안성시에서는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마국산(馬國山)이라 부르며
이천시는 이곳을 마옥산(馬玉山)라고 부르는데 인근에 마오산(275m)이
소재하여 두 산을 혼동하기 쉽다. 또 하나는 이곳을 오운봉(五雲峰)이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가뭄이 들면 이천 관아에서 기우제를 지냈던 이천의
영산으로 오색구름이 주봉을 감싸고 있는 신령스런 산이라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인파도 붐비지 않는 호젓한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까지
산상에 검은색 말동상이 있었는데 산신제를 그 앞에서 지냈다고 하며, 광복 후에 산상에
헬기장을 닦을 때 흙으로 만든 망아지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정상은 넓은 광장으로 되어 있으며 삼각점과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다.
마국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이천시에서 세운 마옥산의 표시석
마국산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음산(五音山)은 부 남쪽 25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마국산(馬國山)은 조선 시대 지리지나 지도에 등장하는
오음산의 다른 이름인데,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마국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 항목에는 "안양사(安養寺)가 오음산에 있다."고 했는데,
폐사된 지 오래되어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다. 대신
『해동지도』에는 오음산 동쪽 가까이에 마옥사(磨玉寺)라는 사찰이 표현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서 산 아래에 마곡사(麻谷寺)라는 사찰이 확인되는데, 오음산의 다른 이름인
마옥산(磨玉山)이나 마곡산(磨谷山)이란 지명은 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전한다.
산자락에 굴바위 · 병풍바위 · 말바위 · 구모바위 등 유서 깊은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들이 산재해 있고,
남쪽에는 영창대군의 능묘가 있으며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방초천은 청미천으로 흘러 한강으로 이어진다
마국산 헬기장에는 비박산꾼 텐트 2동이 보인다
산이 자리잡은 산내리, 대죽리 일원이 이천에서 가장 오지 산간마을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문 산은 더욱 깊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널찍한 헬기장이 된 정상은 옛날엔 검은 말 동상을 세워 그 앞에서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라 하며 해방 후
헬기장을 닦을 때는 흙으로 만든 망아지가 많이 나왔다고 하니 산 이름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사적지로는 영창대군 묘와 권균 묘역이 있다
마국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山內里)의 모습
산내리는 이천시 모가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자연마을에는 산안, 웃말 등이 있다.
산안은 산내라고도 하며 마옥산(馬玉山) 안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웃말은 산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향토유적 제16호인 충성공묘가 있다
마을 그 너머로는 지난달에 걸었던 독조지맥 노승산이 보인다
복하(독조)지맥을 관통하는 백암비스타C.C와 뉴스프링빌C.C의 모습과 그 위 대덕산의 모습
헬기장을 지나 산내리 방향으로 향한다
두미리(豆美里) 갈림길(08:50)
이정표 7(두미리 1.9km↑ 정상 43m← 산내리 2.5km/서경 저수지 6.4km→)가 서 있다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두미리는 200여전에 두역동(豆亦洞)이라는 마을의 두(豆)자와
시미리(侍美洞)이라는 미(美)자를 합쳐 두미리라 부르며 미륵댕이 석불이 있으며
예전에는 미륵댕이 마을이라 불렀는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450여년전 사나운 산적이 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어느날 장사 한명이 이 마을에
들어와 산적을 내쫗고 큰 돌미륵을 세우고 지붕까지 만들어 놓고 갔는데 그 이후로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미륵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19 표지목 1.4 헬기장 중간(마옥산 0.2km→)이 있고 넓은 공터가 있어 정상에 올라
혹시라도 몰라 삼각점이나 있나싶어 이리저리 낙엽을 헤쳐보지만 헛탕을 친다
초반부터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소나무 쉼터(08:55)
헬기장(08:57)
헬기장 이정표 8(두미리 1.4km, 어농리/소고리/원두리 농업테마공원 3.1km ↖ 산내리 1.8km/서경저수지 5.9km↗)
헬기장에서 좌측 10시 방향으로 양화(해룡)지맥을 이어간다
이것도 玄梧님 시그널인가?
계속해서 非山非野 구간의 양화(해룡)지맥길을 이어간다
259.5m봉(09:05)
이정표 9(정상 1.1km, 두미리 1.2km, 산내리 0.8km/서경저수지 5.6km)
낙엽이 수북하여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등로 사이로 보이는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의 모습
조선 중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권균(權鈞)이 별세하여 산속에 묘지를 잡고 묘(墓)를 쓴 후
묘지기의 집이 생긴후 점차 호수(戶數)가 늘어감에 따라 산속에 마을을 이루었으니
한자를 따서 “산내리(山內里)”로 불리우고 있다
갈림길(09:08)
서로 마주보며 포옹하는듯한 바위도 지나가고...
바위 옆에는 휴게용 의자 2개도 있고...
권균묘역 갈림길(09:10)
이정표 10 (정상 1.1km←, 권균묘역 0.4km ↑, 서농리/소오리/원두리 농업테마공원 2.0km→)가 있다
충성공 권균(1464~1526)은 우의정을 지낸 조선시대 문신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1506년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으로 영창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523년 우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250m봉(09:20)
산안고개(09:22)
산내리(山內里) 웃말로 연결되는 고개로 산안은 산내라고도 하며 마옥산(馬玉山) 안쪽에 있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웃말은 산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향토유적 제16호인 충성공묘가 있다
두미(豆美)갈림길(09:25)
이정표 11(정상 2.1km← 두미리 1.0km ↑ 서농리/소오리/원두리 농업테마공원→)
갈림길 정상에는 휴게용 의자에는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뒤돌아보니 마국산이 아련히 보이고...
잠시 후 야트막한 봉우리에 오르니 휴게용 의자 2개가 있고 노인 한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곳이 마오산이란다... 이곳에서 노인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마오산(摩五山:275m:09:30)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와 두미리, 소고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산이라기보다는 조그만 능선으로 그야말로 비산비야 구간의 산이다
정상에는 휴게용 의자 2개와 이정표가 있고, 좌측으로는 소고리의 농업테마공원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마국산에서 뻗어내린 한 봉우리인데 독립봉으로 대우한다
조금전에 지나온 마국산은 마옥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은 마오산... 범여는 약간 헷갈린다
마오산의 유래는 이곳이 옛날에 마한의 땅이었다는 설에서 유래됐고...
또다른 설은 삼신할미가 옥으로 만든 퉁소를 불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마오산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양화(해룡)지맥길을 이어간다
아~~~ 無常한 세월이여!
돈님이 고개(09:40)
소고3 갈림 이정표 13(정상 3.3km, 원두리.진가리 2.4km)가 서 있다.
264m봉(09:50)
앙증맞은 돌탑 하나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흔적이 희미한 매봉재를 지나니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개념상에 모산이라고 한다
258.3m봉(09:58)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에 3등 삼각점이 있고 헬기장 끄트머리에는 (이정표상 매봉재)이정표(정상 4.3km,
원두리 1.4km/진가리 0.7km, 서경 저수지 2.2km)가 있는데 개념도상에는 모산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예전에 마국산을 모산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마국산은 처음 모산(母山)으로도 불리었으며 이산의 이름에서 유래돼 원두리 이북지역을 지칭한 것으로
조선 영조(1758년경)이전까지 사용했으며 효종(1650년경)시대 면(面)이 도입되면서 모산 밑에 면을 붙여
모산면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고, 마국산을 마옥산으로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은 일제시대 모가초등학교 교장이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해 사용한 산 이름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는 이천읍지 동국여지승람 안동 권씨 족보 등 옛 책에 모두 오음산(五音山)으로 적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모산을 모본산(母本山)으로 일본인 교장이 왜곡시킨 사실이 있었다고 하며 기암괴석과 계곡에 물이 많아 옛날부터
큰 가뭄이 들면 관가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이천의 영산이었다고 한다.
258.3m봉삼각점(△안성 306 / 1998 재설)
이곳의 이정표에는 매봉재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다시 편한길을 걸어서 조금을 더 걸어가니 명당자리에 무명묘지 한 기가 있다
무명묘지(10:05)
무명묘지에서 바라본 모가면의 모습
경기도 이천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진가리 · 어농리 · 원두리 · 서경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가마동면(加麻洞面)과 모산면(暮山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모면과 가면을 중심으로
대면과 음죽군 원북면 일부를 합쳐 모면과 가면의 첫 글자를 따서 모가면으로 하고 11개 동리로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는 가마동면 · 모산면에 속한 동리들과 관으로부터의
거리 및 편호, 남녀 인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마동면은 『조선지도』에 가마면(加麻面)으로도 표기되는데, 『호구총수』와 1871년에 편찬된 『이천부읍지』에는
갈마동면(乫麻洞面)으로, 『대동지지』에는 갈마동(葛麻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산면의 경우도 『조선지도』,
『팔도군현지도』, 『대동지지』 등에서는 모산면(母山面)이라 하여 한자 표기를 달리하고 있다.
현재의 면 소재지인 진가리(陳加里)는 예전에 갈매울(加洞里, 乫麻洞里)과 진내(陳內)를 합친 이름으로,
특히 진내는 마을 주변의 토성 흔적과 관련해 군사들이 진을 쳤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 면소재지였던 소고리(所古里)는 옛날 도인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소욕형이라 이름을
소고라고 하면 소원이 성취될 것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후배산꾼 수헌 아우님... 산에 대한 열정 참으로 대단하다
안성이씨 영묘단(10:13)
요즘 묘사철이라 그런지 이곳도 시제 준비가 한창이다
잠시 후 도로로 내려서니 왕복 2차선 383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큰고개(10:15)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에 있는 고개로 산내리고개라고도 부르며 맞은편에는 동성교회 동산이 있다
원래 양화(해룡)지맥길은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 다음 좌측으로 가야한다
올라선 다음에 금방 내려와야 와기에 그냥 도로로 걸어간다
동성교회 묘지쪽으로 오르질 않고 도로로 향한다
뒤돌아보니 묘지 윗쪽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도로로 걸어가면서 고난의 길이 시작된다... 산꾼들은 도로를 따라 걷는걸 가장 싫어한다
청풍 김씨네도 시제를 준비한다
산내리 삼거리(10:30)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계속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산내리(산안) 마을 표시석을 지나고...
도로를 따라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진가2리 마을 표시석(10:35)
한자로는 “진안(陳內)”이라 쓰고 마을 주변에 축년성대가 밝혀지지 않은 토성의 흔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이 토성의 존재로 미루어 한때 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지역이었음이 틀림없고 진안이란 지명은
병영안과 같은 의미로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본다.
수헌아우님은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가는 바람에 따라 가느라 죽을 지경이다
양평리(梁坪里) 갈림길(10:40)
이천시 모가면 양평리는 한자로는 “진안(陳內)”이라 쓰고 마을 주변에 축년성대가 밝혀지지 않은 토성의
흔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는데 이 토성의 존재로 미루어 한때 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지역이었음이
틀림없고 진안이란 지명은 병영안과 같은 의미로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본다.
갈림길에서 사동리 방향으로 향한다
자체방아마을 표지판(10:43)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에 있는 이천자채방아마을의 유래는 세종대왕의 큰형인 양녕대군이
이천 유배생활 당시 이천군에서 마을이 있는 개울(양화천)을 쉽게 건너도록 징검다리(梁)를
놓았는데 이것이 마을 이름이 되어 군량리(郡梁里)가 되었다고 한다
군량리와 양평리 일대를 양녕대군의 ‘군’자와 들판을 뜻하는 ‘들’을 합쳐 ‘군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일대가 조선 초기에 양녕대군의 식읍(食邑: 한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는 고을)
이었기 때문에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자채는 이천을 중심으로 인접해 있는 일부지역에서만 재배되는 양질의 올벼라고 한다
옛 농업관련 문헌에는 자채벼는 경기 남부의 일부지방에서 재배하는 재래종으로 품질은
좋고 수량은 적으며 성숙기는 매우 빨라 10%이상의 높은 값에 출하된다고 한다
계속해서 도로로 이어지는 힘든 여정
도로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국산과 마오산의 모습
평화철강과 세림강업 간판을 끼고 반원형 도로를 따른다
효자 요산리선생 표시석도 만나고...
진가성결교회 입구(10:48)
미리내 성지 이천수도원 입구를 지나고...
양평리(구은들) 입구(10:50)
모가면 양평리 구은들 구은들 마을 위 산등성이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은(龜隱)”이라
불렀던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하며 해마다 풍년을 비는 뜻에서 “구은들(求思野)”이라 부르기도 했다.
구은들 마을 입구를 지나면서부터는 도로 좌.우로 가설재 야적장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도 미련을 못버리셨군요
어~~~라 개망초까지도...
마이다스G.C 입구(11:00)
마이다스 골프장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는 꽤나 큰 규모의 인삼밭이 보이고...
상원농장(11:07)
보성공업(11:10)
큰고개에서부터 이곳까지 55분간을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왔다
우측의 보성공업 공장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마을 도로를 따른다
삼거리 길 좌측으로 들어서니...
도로위 나무가지속에 군량3리라는 마을 표시석이 서 있다
이천시 대월면 군량리는 지금은 形體가 없으나 군내에서 제일 큰 돌다리가 있었다 하여
『군량리』라 불리우고 있으며 군량1리는 아랫마을이라 『하군량리』 (아랫군들),
2리는『상군량리』, 또는 『안골』, 3리는 새로 생긴 뒷 마을이라 하여『새말』ㆍ『뒷말』이라 불린다.
마을 도로 너머로 지나온 마국산과 마오산이 보인다
점심시간(11:15~12:10)
마을 도로에 들어서니 아침을 일찍 먹은 탓인지 배가 살짝 고프다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좌측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亡者의 밥상을 빌려서 아주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한 수헌 아우님과
막걸리 한 통을 비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1시간여 동안
점심 만찬을 벌인 다음에 다시 행장을 꾸려서 길을 나선다
망자의 밥상
어르신 고맙습니다... 깨끗이 치우고 갑니다
도로 좌측의 넓은 들에는 인삼포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조금전 내가 걸었던 등로가 보인다
두리영농조합 간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흥일농장(12:25)
KL목장(12:30)
목장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목장을 지나 농로 한 가운데를 지난다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들판
이런 길을 걸으면서 맥산행 선답자들의 높은 식견과 안목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무우 수확이 한창이다
육군항공 작전사령부가 양화(해룡)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군부대 담장(12:45)
포장된 군부대를 따라서 걸어간다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군부대 철조망
철조망을 버리고 농로를 따른다
산꾼을 겁박한다
끊어진 지맥길을 이어가려니 山自分水嶺을 위배하며 걷는다
소고1리 버스 정류장(13:10)
원래 지맥 맥길은 육군 항공사령부 가운데를 지나 정오산으로 올라야 하는데
군부대가 지맥길을 완벽하게 점령(?)하는 바람에 또다시 383번 지방도를
따라서 정처없이 걸어가야 하는 처지이다
소고교(13:15)
다리 건너편에는 군부대 관사와 하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군부대 입구가 나오고 군대는 골프장을 체력단련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군부대앞 사거리를 지난다
군부대앞 버스정류장(13:18)
버스 정류장 뒤에는 수준점 표시판만 있고 수준점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고물로 팔아 먹었나?.. 국토지리원장은 책상머리에만 있지말고 현장 확인 하시길...
코리아 주유소도 지나고...
오리온프리토레이 공장입구(13:23)
대포동석조여래입상(大浦同石造如來立像:13:25)
경기도 이천시 대포동 38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한 대포동석조여래입상은이천시 향토유적 제11호인
이 佛像(불상)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한 如來(여래)의 像으로 밭가에 南向(남향)으로 直立(직립)해 있다.
엉치 부분이 흙속에 묻혀 있어 실재의 높이는 4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나,
돌출되어 있는 현재의 높이는 239㎝, 어깨 폭은 96㎝이다.
머리는 素髮(소발)로 육계는 큰 편이며 相好(상호)는 원만하나
양볼이 약간 비대하여 高麗佛像 (고려불상)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마에는 큼직한 白毫孔(백호공)이 있어 寶珠(보주)를 박았던 흔적이 歷然(역연)하다.
두 귀는 떨어져 나갔으며, 兩眉眼(양미간)·鼻梁(비량)·口唇(구진) 그리고 양볼과 턱 등에
걸쳐 심한 파손을 입고 있고 시멘트로 보강한 목에는 3道가 있고, 法衣(법의)는
通肩(통견)으로 양 팔에 걸쳐 衣文(의문)이 밑으로 흐르면서 약간씩 펴져 있다.
허리 부위에는 腰帶(요대)를 둘렀는데, 그 복판을 묶은 結帶(결대)의 彫刻(조각)이 주목된다.
手印(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손바닥을 外向(외향)하게 하여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었다.
손바닥에 뚜렷이 새겨 놓은 손금이 재미있고, 왼손은 直下(직하)하여 옆에 대었다.
불상의 造成年代(조성년대)는 대체로 高麗中期로 추정된다.
금강 주유소도 지나고... 우리 동네 비해서 기름값이 200원이상 싸다
항공작전 사령부 정문(13:28)
대포동 삼거리(13:30)
천주교 어농성지는 모가면 어농3리에 조성된 성지에는 중국인 신부인
주문모 묘와 여주에서 출생한 성직자 윤우일의 묘가 있다.
윤우일은 1760년 여주에서 파평윤씨 맏아들로 태어나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당시 성직자가 없던 조선 교회에서 북경에 밀사로 파견 되었으며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자 윤우일이 주신부를 맞이하는 일을 주로했다.
주신부가 부활절에 첫 미사를 올리면서 조선에서의 첫 미사 성제가 올려졌다.
그후 주신부가 밀고되고 윤우일은 체포되어 36세 나이로 순교했다.
이곳 삼거리에서 도로를 버리고 도로명 주소(진상미로 1800번길)가
보이는 전봇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마을길을 따라서 걷는다
수확이 끝난 논 건너편에는 삼우텍이라는 하얀 건물이 보인다
볼록 솟아오른 정오산을 향해서 걸어간다
정오정(鼎嗚亭:13:55)
정자의 이름이‘솥 정(鼎)에 탄식할 오(嗚)’라 가방끈 짧은 범여로선 感이 오질 않는다
대포동 마을 입구에 정오정이란 정자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면서 아우님이 건내준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정오산으로 향한다
정자 뒷쪽에 망가진 간이 화장실 뒷쪽으로 오른다
정오산 오르면서 바라본 대포동 홍촌마을
조선시대 중엽에 생긴 마을로, 남양홍씨가 많이 살아 홍촌이라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인 황그네는 내 건너 마을이라는 뜻의
한건내-한개내를 거쳐 황그네로 변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낙엽에 푹쌓인 묘지 2기를 지난다
산꾼들이 다닌 흔적은 전혀없고 발목까지 차오르는 낙엽길을 걷는다
급하게 치고 오르니 항공작전 사령부 철조망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는데 초소에서 초병 한명이 계속해서 나를 예의주시 하면서 째려보고 있다
정오산(鼎嗚山:167.3m:14:10)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포동과 도리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육군 항공작전사령부가 산 주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민간인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인데 간을 집에 두고 다니는 범여는 겁도없이 정상에 오른다
산 정상은 군부대 안에 있고 철조망을 따라서 빙빙 돌아간다
정오산(鼎嗚山)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한문을 직역하면 솥뚜껑이
탄식할 산이라는데 가방끈이 짧은 범여로선 이해할 길이 없다
개척자의 심정으로 길을 만들어 가면서 걷는다
군부대 경고판을 지나니...
소도니 고개(14:17)
쇠도니라고도 부르는 소도니 고개는 소도니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갑자기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소도니 마을에서 따온 지명이며 마을 뒤에
있는 소도니봉이 뾰족하게 생겨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의 넓은 임도가 시작된다
최근에 계속된 비의 탓인지 맛있는 가지버섯(청버섯)이 가끔씩 보인다
벌목지 너머로 오늘의 날머리인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굴뚝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오늘 산행구간의 평균 속도가 시속 3.5km이니 참으로 편한 길을 걷는다
북서쪽으로 작년에 걸었던 경안(앵자)지맥길의 정개산과 원적산이 아련히 보인다
조금전에 지나온 등로의 궤적
이런 길이라면 20시간이라도 걱정없이 걷겠다
갑자기 현장에 주택건설 현장이 나온다
지맥길 한가운데 주택... 언 넘이 허가를 내줬는지...ㅉㅉㅉ
절개지 우측으로 간다
조금을 가니 우측은 한국생산성 본부 좌측은 우아미 가구가 보인다
초록색 휀스가 있는 좌측으로 들어가는데 막힌데다가 아카사아 때문에
도저히 더 진행을 할 수가 없어서 다시 되돌아 온다
도로 좌측에는 대월배수펌프장이 있고...
도로 우측으로는 우아미가구 공장이 있는 도로 가운데로 내려간다
우아미 가구 공장과 철조망으로 인해 걷지못한 지맥 능선길
도로 사거리에 내려선다
원지맥길과 우회길의 궤적
만석고개(14:40)
이천시 대포동과 대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근처 우측으론 우아미가구와
한국생산성본부가 있고 좌측으로는 LG실트론이란 회사가 있고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만석고개 버스 정류장의 모습
오리지널 지맥길과 우회길의 궤적
등로에 오르니 길은 무지하게 좋다
LG 실트론 공장이 보이고...
출입할 일도 없소이다
172m봉(14:50)
만석고개에서 사진 몇커트 찍고 기록하는 사이에 수헌아우님은 사라져 버리고...
등로 우측으로 삼육 요양원이 보이고...
삼육요양원 갈림길(15:55)
이곳에서 약간의 알바를 한다... 워낙 좌측 원통산 방향으로 길이
잘 나있어서 지도를 보지도 않고 무심코 가다가 10여분의 알바를 한다
다시 되돌아와서 희미한 등로로 향한다
등로를 치고 내려선 다음에 편한길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삼육요양원이 보이고...
호젓한 메타스퀘이어 길을 지나고...
소나무 쉼터(15:10)
농장 철조망을 따라서 등로를 이어간다
운동기구가 있고 그 아래 족구장 네트 2개가 처져 있는데 족구에
목숨을 거는 촌넘들(초딩이 동창) 데리고 이곳을 함 와야겠다
약수터 갈림길(15:18)
해룡산 정상에 도착한다
해룡산 정상에 식탁이 있는 벤취
해룡산(海龍山:201m:15:25)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과 고담동의 경계에 있는 낮으막한 산이지만
해룡지맥의 주가 되는 산으로 이천 시가지에서 가까운 산이라 시민들이
자주 찿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비가 온 후 구름이 산중턱에 걸쳐 있을
때의 모습이 마치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혀다고 한다
정상 주변에는 노송이 많아 산림욕하기에 제격이며 정상에는 이정표와
2등삼각점, 헬기장,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운동시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해룡산 정상에서 인증샷
해룡산 정상 이정표
해룡산 정상 2등 삼각점(△ 안성22 / 2008 재설)
해룡산 정상에서10시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사당골 0.2km라고 써놓고는 실제로 가보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이정표를 세우질 말든가?
이곳은 간간히 등산객을 만나는데 부부인지 연인인지 알 수 없는 남.녀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커다란 베낭을 지고 내려오니 조그만 산에 오면서 힘들게 왜그리 커다란 베낭을
지고 다니냐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저 사람에게 지맥이 어떻고 기맥이 어떠니
저떠니 해봐야 입만 아플것 같아 그냥 지나쳐 버린다... 니들이 게맛을 알리는 없을테고...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벤취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산 능선까지 치고 올라온 아파트
간이 시설물이 보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해룡산 등산로 안내 표지판(15:45)
이정표의 소터골 방향으로 향한다
낙엽길을 따라서 내려 가는데...
등로 좌측에 기독교인이었던 전의이공 묘지가 보이고...
3번군도(15:50)
3번 군도로 내려서니 해룡지맥길에는 하이닉스 사원아파트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하는 수 없이 또다시 좌측의 우회길로 돌아서가야할 입장이다
하이닉스 아파트 건립 현장을 바라보며 좌측의 도로로 향한다
첫번째 전봇대를 끼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옹벽을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112.4m봉(15:55)
오늘 산행중에 마지막 봉우리이지만 아파트 건설공사로 인해 전반쯤 사라졌다
이곳이 후답자의 산행기에는 어떻게 기록될 지...
낙엽이 수북한 길을 지난다
무명 삼각점(15:58)
아무런 표식도 없고 지도상에도 나타나지 않는 삼각점이다
무명 삼각점이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이곳에도 청버섯이 보인다
낙엽속에 규암이라 불리는 하얀 차돌들이 많이 보인다...규암지대인 모양이다
현대 아파트를 바라보며 내려선다
아파트 옹벽을 따라가서 현대 아이파크아파트 1단지 안으로 들어선다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후문(16:05)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여 정문으로 빠져 나오니 영동고속도로 육교가 나온다
영동고속도로 육교(16:12)
육교 맞은편에는 거대한 하이닉스 반도체 이천공장이 나온다
영동고속도로의 모습
하이닉스반도체 후문(16:15)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원래 양화(해룡)지맥길은 초록색이 보이는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3단지 뒷쪽으로
가야 하지만 길이 막히고 특별한 의미도 없기에 그냥 도로를 따라 간다
아미 사거리(16:25)
영동고속도로와 인접한 이곳에서 1구간의 산행을 종료하고 스틱을 접는다
산행을 마치고 하이닉스 반도체 정문앞에 있는 감자탕집에 들려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기에 간단하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소맥에다가
감자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에 동서울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하이닉스 버스 정류장(18:30)
10분정도 기다린 다음에 동서울터미널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보니 동서울터미널... 비가 내린다... 아우님과 작별하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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