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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무한(봉수)지맥(終)

무한(봉수)지맥 제1구간 - 광성리주차장에서 서낭당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6. 3. 2.

☞산행일자: 2016년 3월 1일

☞산행날씨: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1km+어프로치 약5km / 8시간 소요

☞참석인원: 수헌, 산으로님과 함께

☞산행코스: 광성리 주차장-용문암-임도(왕복)-내원사-사방댐-갈림길-오서산갈림길-595m봉-무명봉-오서산 휴양림갈림길

                금자봉-광성주차장-쉼터-공덕고개-암봉-봉수지맥 갈림길-안부-수정리갈림길-343m봉-수정저수지 갈림길

               묘지-기러기재-묘지-269m봉-벌목지-임도-안부-NO66송전탑-261.6m봉-목장 임도-NO69송전탑-상송리 갈림길

               묘지-주류성갈림길-NO70송전탑-넓은 공터-안부-숫고개-190m봉-안부-200m봉-임도-시멘트도로-신평이씨 묘

               241m봉-250m봉-NO29 송전탑-260m봉-275m봉-묘지-지정리 임도-이동통신탑-임도갈림길-무명봉-부안임공 묘지

              묘지-도로-황토밭-안부-과수원-서낭당고개

소 재 지: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동면 / 청양군 비봉면, 화성면


이틀만에 또다시 지맥길을 나서는데 넘 무리한 탓일까... 몸뚱아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지난 금욜에 너무 마셨던 酒님 때문 탓인가... 그러나 후배 산꾼들과의 약속을 파기할 수는 없었다

원래는 민통선 안쪽에 있는 철원군 김화읍에 위치한 대득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 하려 했는데

요즘 남.북이 민감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민통선 안쪽을 걷다가 예상치 못하는 돌발 변수가

생길 것 같아 포기하고 금북정맥의 한 지맥인 무한(봉수)지맥을 가기로 한다

무한(봉수)지맥을 정한 건... 지맥이 다 그렇긴 하지만 등로가 뚜렸하지 않고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너무 많아서 여름철에는 산행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라 겨울에 한 구간을 마무리 하려고 나선다

 

무한(봉수지맥:鳳首枝脈)개념도

무한(봉수지맥:鳳首枝脈)안성 칠장산(492.4m) 남쪽 300m지점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이 남서진하며 서운산(547m),

성거산(579m),봉수산(525m)등을 일구며 150여 km를 달려와 백월산(560m)에서 한줄기는 남진하며 성태산(624m),

월명산(544m),오석산(127m)등을 일구며 70km를 달려가 용당정에 이르며 신산경표의 호서정맥을 만들고,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여 다시 130km를 가면서 오서산(791m),가야산(678m),지령산(220m)등을 일구고 안흥해안에 몸을 담그는

금북정맥을 낳는다.

 

봉수지맥(鳳首枝脈)은 이 분기점인 백월산(560m)에서 북쪽으로 10.9km 떨어진 오서산(烏棲山.791m)에서 동북으로

약 3.2km 떨어진 공덕고개 남쪽의 370m봉에서 금북정맥은 서북으로 가고 봉수지맥은 동북으로 갈라진다.동북으로

올라가며 초롱산(339m ),봉수산(483m),팔봉산(207.4m)등로 지나서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삽교천에 몸을

담그며 맥을 다한다.


길이는 도상거리로 약 47.5kkm되고 지맥 서쪽으로 떨어진물은 삽교천 본류에,동쪽으로 떨어진 물은 무한천에 몸을

담갔다가 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지나는 산들중 제일 높은산인 봉수산(鳳首山.483m)의 이름을 따서

무한(봉수지맥:鳳首枝脈)이라부르며 무한천의 오른쪽 물막이가 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무한(無限)지맥이라 부른다

 

지맥 서쪽의 삽교천은 길이63.9km에 유역면적 1649.87㎢ 에 아산시 인주면이 종점이고
지맥 우측의 무한천은 길이 53.9km에 유역면적 467.54㎢에 예산군 신암면이 종점이다.


발원지의 길이로 치자면 무한천이 더긴데 유역면적이 삽교천이 더 커서 무한천이 삽교천의

지류가 되고 오서산은 까마귀,까치가 많아서 오서산이라 부르며 까마귀 오(烏)자에 살서(棲)자를 쓰는데

일부지도는 오루산(烏樓山) 혹은 조루산(鳥樓山),조서산(鳥棲山)으로 표기한것도 있는데 이는까마귀(烏)자를

새(鳥)자로 살(棲)자를 다락(樓)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종주에 필요한 지도는 1/25000.나원.홍성.대흥.예산.합덕.5매. 1/50000.보령.예산.아산.3매. 영진 1/50000.P 268.269.243.2

17.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옥수역 국철 시간표

도곡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옥수역에서 국철로 환승하여 용산역으로

향하는데  옥수역에 도착 직전에 열차가 가버리는 바람에 플렛홈에서 20여분간을

개고생하면서 벌벌 떨다가 다음 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향한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15분정도의 여유가 있어 가져온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을 꺼내 커피 한잔을 타마시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용산역 플렛홈으로 향한다

07시 35분발 용산발→익산행 무궁화호 열차

열차에 오르니 후배 산꾼들이 연달아 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잠을 청한 뒤 잠깐 잠에 빠졌는데 수원에서 온양온천가는

아줌씨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수다를 떠는 바람에 잠자기를 포기한다

온양온천을 지나면서 차창밖의 山河는 온통 눈으로 뒤덮혀 은빛세상이다

천역에 도착하여 열차에서 내리니 날씨하나는 참으로 좋다

광천역에서 바라본 오서산(烏棲山)

4년전 금북정맥을 홀로하면서 몇번을 왔던 광천역... 모든게 4년전 그대로다

광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새우젖과 김이 아닐까

광천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옹암포구 등에 새우젖 장터가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조 말기에 서해안 10여개의 섬의 선박들이 새우를 팔기 시작하면서 활성화 되었다

광천에서는 직접 김이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서해안 김의 집결지로 광천이 예로부터 유명해

지금까지 광천 김이 유명하게 되어 김시장(김전)은 광천역(장항선)을 기준으로 주변에 형성 되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유명한 새우젓과 김으로 인해 홍성읍 보다는 훨씬 컷다고 하는데

지금은 게임이 안될 정도로 외소하다

광천하면 가장 기억나는 인물이 혼으로 노래하는 이 시대의 영원한 소리꾼 장 사익선생이 아닐까?

나역시 장 사익 선생의 소리에 반해 펜카페에도 활동했고 CD도 열심히 샀었는데...

그리고 이곳에서 가까운 신동리가 고향인 00이... 한동안 같이 맥 산행을 열심히 다녔는데

요즘은 우째 사는지... 알 길이 없고...인정머리 하고는...세상 그리 사는게 아냐

 

오서산(烏棲山:790.9m)은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사기 권32>에서 오서악(烏西岳)으로

적혀 있으며 국가적으로 하늘에 지낸 제사인 중사(中祀)를 지낸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북정맥의 주인처럼 최고봉을 만든 오서산은 서해바다를 만나면서 바다와 육지의 기운이

성기어 신령스런 기운을 품고 있는 오서산... 790m의 고도로 높은 산으로 분류되지 못하지만,

서해안의 지표면에서 바라보는 오서산은 일천미터의 높이를 능가하는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토정(土亭) 이지함 선생도 “호서(湖西)의 산 중에 이만한 산이 없다”고 평가한 바 있다

 

토정선생은 홍주(洪州:홍성의 옛지명)와 보령만큼 살기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토정 선생의 묘소가 이곳에서 가까운 보령시 주교면에 있다

광천역(09:45)

오늘 들머리를 잡는데 많은 고민이 거듭한다

광천의 진산인 오서산을 찍고 무한(봉수)지맥 갈림길까지 가기 위해서는 거리가 너무 멀고

그렇다고 광성리 주차장에서 공덕고개를 거쳐서 분기점까지 가면 접속구간은 가장

짧으나 오늘 산행중에 이름있는 봉우리가 하나도 없어서 산행기록 남기기가 애매하다

그 차선책을 광성리 주차장을 지나 용문암과 내원사를 지나 병풍능선 가운데로 오르기로 한다

광천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올라 용문암까지 가자고 하니 기사가 미터기를 안꺽고 간다

범여: 아저씨 왜 미터기를 안꺽고 가요

기사: 산에 가는데 미터기 꺽고가는 택시가 어딨어요?

범여: 산 입구에 가자고 했지... 산 꼭대기까지 가자고 했나요

        그럼 요금이 얼만되요?.

기사: 18,000원이요

범여: 엎어지면 코닫는데가 용문암인데 너무 비싸요...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기사: 그리 가자면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단다

범여: !!!!

산꾼들 사이에는 광천 택시의 횡포가 심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택시는 광성리 주차장을 지나 용문암으로 향하다가 많이 내린 눈으로 인해

용문암까지 가는 걸 포기하고 중간에서 되돌아 가는데 차비는 15,000원만 받는다

용문암 가는길(10:00)

이곳은 생각보다 눈이 많이 내렸다...아마 올 겨울에 눈을 가장 많이 보는 느낌이다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택시기사와 작별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용문암 입구(10:10)

용문암의 모습

용문암은 암자가 아니라 무당들이 푸닥거리하는 굿당이다

아마 꽤 유명한 곳인가 보다... 지도와 이정표에도 상세히 나와 있다

용문암을 지나 좌측의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커다란 주택이 나오고 주차장에는 외제차도 서있다

아마도 이 건물도 용문암의 소유로 보여진다

주택(10:20)

계곡에 서 있는 구조이정목

계곡을 오르는데 눈의 양은 조금씩 많아지고 눈덮인 바위위를 걷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임도 갈림길(10:40)

계곡을 힘들게 오르니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백제부흥군길

이정표(→용허리골0.2km ←쉰질바위 0.7km ↑광성리 주차장1.3km↓내원사0.3km)가

있고 좌측 계곡에는 사방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내원사로 향한다

내원사의 모습

백제 의자왕 16년에 법명(法明)대사에 의하여 창건된 절이라고 한다.

법명대사는 의자왕 15년(665년)에 일본 대마도로 건너가 불교를 전파한 고승이라고 한다.

수년 전, 내원사의 주불전인 원통보전은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중창불사 중이다.

옆면 2칸, 앞면 3칸, 백제양식의 주불전은 옆면이 사람인자(人) 모양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그리고 최근 중창불사 중 발굴된 백제양식의 석가모니 청동불상(훼손정도가 심하다.)과 기와가 현재 경내에 남아있다

내원사(10:47)

일주문도 없고 범종각도 없고 그냥 소박하고 단아한 절집이다

입구에 들어서며 극락보전을 향해 선 채로 저두삼배를 올리고

절 마당으로 들어선다

전각이라곤 극락보전과 산신각, 편액이 없어 알 수 없는 전각에다

요사채만 덩그러니...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개한마리만 산꾼을 향해 짖어댄다

내원사 극락보전

절집 살림이 궁핍해서인지 아님 화려함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청도 안되어 있고 기둥에 주련하나도 걸려있지 않고 소박하여 맘이 참 편하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딱 좋은 절집이다... 부담없이

경상도 절집이나 힘있는 스님들이 주지로 있는 큰 절집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거부감이 많은 딱 범여의 스타일같은 절집이다

내원사 극락보전 편액

극락보전이란 십겁(十劫) 이전에 성불(成佛)하고 서방 극락세계에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으로 이 부처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중생이 염불을 하고 일념이라도

지심회향(至心廻向)하면 곧 왕생할 수 있게 해주며, 그 때 서방에서 성중(聖衆)이 와서 그 사람을

맞이해 간다고 하며 그 세계에 살게 되면 다시는 전생(轉生)하지 않으므로 생사(生死)의 윤회(輪廻)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락보전에는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고 살기 좋은 극락의 정토세계로 이끌어 주는

미타불상과 그 뒷면 벽에 아미타불화가 배치된다.

내원사 극락보전 삼존불

보전의 주불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내원사 요사채... 요사채가 이채롭다

조그만 절집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피고 다시 베낭을 벗어놓은 임도로 향한다

다시 임도(11:00)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덮인 들판을 밟아 갈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모름지기 오랑캐처럼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간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짓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임도 우측으로 사방댐이 보이고...

임도에서 바라본 쉰질바위

쉰질바위의 「쉰질」은 「쉰 길」의 방언으로 해석하자면 「보통사람 키의 50배 되는 바위」라는 뜻이다.

그만큼 거대하다는 뜻으로 가까이 가면 그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후백제 때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가 어디냐?”는 의문은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홍성군도 그 후보지 중 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는데, 홍성에서는 홍주성과 오서산을 그 후보지로 꼽고 있다.

오서산이 그 후보지 중의 하나라는 근거로 이 바위 아래로 올라서면 주변이 훤히 조망되며, 군사의 움직임을

숨길만한 큰 언덕이나 산, 골짜기가 없기 때문에 적의 동태를 살피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인데,

사람이 기거할만한 큰 동굴이 있어서 천연의 요새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를 방증 할만한 문헌자료는 없고 추정 될 뿐이다.

갈림길(11:05)

넓은 임도에서 임도를 버리고  이정표(→내원사 0.4km, ←광성주차장 6.3km 등산로(정상 1.4km)

있는 곳에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정상(오서산 정상)방향으로 오른다

갈림길 이정표

발목까지 빠져드니 계곡을 따라 병풍능선으로 올라선다

병풍능선(11:30)

2012년 12월 25일 나홀로 금북정맥을 하면서 오서산을 오를 때 걸었던

길을 4년이 훨씬 지난 후에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오서산 정상 0.9km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금북정맥길은 적설량이 꽤나 많다

이곳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다시 길을 나선다

595m봉(11:35)

갈림길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봉우리 아무것도 없지만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봉우리다

595m봉에 올랐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데 많은 적설량으로 초반부터 오늘 산행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

앞서가는 산으로님... 스틱과 아이젠도 없이 러셀을 하는데 산에 대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눈길을 걸어가는데도 과연 신의 경지에 이른 느낌이다...역쉬 고수답다

갈수록 적설량은 많아지는데 올 겨울에 눈을 가장 많이 밟는 느낌이다

조그만 무명봉을 지나 다시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능선에는 바람의 영향으로 어떤곳은 눈이  무릅까지 차오른다

1m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오서산 갈림길(11:55)

우측으로 내려가면 금북정맥 가루고개 방향이고 직진하면 금자봉 방향이다

아직까지 무한(봉수)지맥 분기점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다

20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금북정맥길을 나홀로 하면서 이곳에서

오서산까지 왕복(1시간 20분 소요)으로 갔다온 기억이 아직도 새롭기만 한데...

2011년 12월 20일 금북정맥길에 오서산에서

오서산 휴양림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는데 아무도 가지않아 러셀하면서 걸어야 한다

고수가 러셀을 해주는 바람에 숏다리 범여는 편하게 갈 수 있다

금자봉(539m:12:00)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와 청양군 화성면 화암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지명의 유래는 알려진 게 없고 화암리에 금자마을이 있는걸로 보아 거기서

지명을 따온듯 하며 화암리는 오서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산물로

느타리버섯이 있으며 친환경 쌀 생산단지로 농가소득을 높이고 있다.

금자봉에 걸려있는 선답자의 시그널

ㅓ갈림길 안부(12:15)

이정표(←오서산 정상 2.3km / ↑광성주차장 1.3km)가 서있다

내원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눈 때문에 체력의 저하도 오고

이른 새벽에 집에서 밥 한숫갈 먹었더니만 허기가 지는데 아우님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수헌아우가 선배님 식사하고 가죠

듣던중에 반가운 소리다... 이곳에서 떡만두 끓여서 담금주에 깔끔한

점심식사... 거기다가 후식까지....1시간 5동안의 점심만찬

점심만찬 장소(12:15~13:20)

난 오늘 입만 가지고 왔다... 아우님들이 잔뜩 싸온 것에 숟가락 하나만 걸쳤다

공덕고개(孔德峙:240m:13:25)

청양군 화성면과 홍성군 장곡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장곡면 광재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 고개의 유래는 고개가 하도 가파르고

힘이들어 공을들여 넘어야 한다고 해서 공덕재라고 부른단다.

사실 봉수지맥 분기점으로 가장 빠르게 오르는 코스이기도 한 곳이다

공덕고개에는 2개의 이정목 서있는데 하나는 넘어져 있고 벤치와 오서산안내판도 보인다

공덕고개에 있는 오서산 등산로 안내도

뒤돌아 본 공덕고개

무한(봉수)지맥 분기점으로 향한다

오름길에 암릉이 보인다... 금북정맥길에 저 바위에 부딪혀 엄청나게 고통을 받은 곳이다

드디어 무한(봉수)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홍성군에서 설치한 지도와 넓은 평상, 준.희님이  걸어둔 산패가 보인다

봉수지맥 분기점(370m:13:40)

드디어 봉수지맥의 첫발을 내딛는다... 3구간에 걸쳐서 삽교천까지 갈 계획이다

분기점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정맥과 지맥길은 확연히 다르다... 들어서기도 전에 잡목과 가시가 기를 죽인다

왜 무한(봉수)지맥이 힘듬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래도 가야지

안부(13:45)

수정리(水汀里)갈림길(13:55)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는 오서산()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 낮은 산지와 구릉지이다.

남쪽에는 수정천이 흐르며, 수정저수지, 원정저수지 등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기러깃재, 독골(벌말),

물한이(수다리, 수내리) 등이 있고 기러깃재는 기러깃재 고개 밑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독골은

돌이 많고, 앞에 벌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한이는 물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343m봉(14:03)

정상에는 4등 삼각점(△보령 420 / 경도 126도 41분 43초 / 위도 36도 28분 24초)

343m봉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다 

등로 전혀 보이질 않고...

수정저수지 갈림길(14:10)

직진을 한 다음에 암릉길을 우회하며 내려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청양군 화성면(化城面)의 산그리메

충남 청양군의 서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홍성군과 남쪽으로는 보령시와 각각 경계를 형성하는 면이다.

면의 사방이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이고, 이들 산지의 여맥이 저산성 구릉지를 이룬다.

면내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반계천()의 유역에 소규모의 저지가 분포한다.

현재 산정리() · 장계리() · 화강리() 등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한다.

면은 홍주군에 속하였던 곳으로 홍주 남쪽 45리 지점의 용곡역()에 화성부곡()이

소재하고 있어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화성면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면은 원래 화성()의 부곡이며, 홍주목의 남쪽으로

처음은 50리이고 끝은 6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흥구향면()은 본래

흥구()의 옛 고을이었는데, 처음과 끝이 화성면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 『조선지도』,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흥구향면이 화성면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양 및 보령과 경계를 형성하며『1872년지방지도』에서는 이 일대에

용곡장()과 합천점()을 표기하였으며, 『조선지도』 등에서는 창()이 표기되어 있다.

1914년에 홍주군 화성면과 흥구향면이 통합되어 화성면이 되었으며, 군에 편입되었다

묘지(14:18)

묘지를 지나 내리막을 내려오니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기러기재이다

묘지에서 바라본 기러기재의 모습

기러기재(14:20)

청양군 화성면 수정리()와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일대에 위치하는 고개이다.

기러기재는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한자화하여 안치() 또는 안티라고도 불리며,

기럭재, 서낭댕이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역 주민들은 기러깃재라고 부르는데, 지명은

오서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의 생김새가 마치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과 같기 때문에 유래하였다.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의 이름도 고개 이름을 따라 기러깃재라 불린다.

『구한말지형도』와 『조선지형도』에는 안치()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서산() 줄기가 동으로 뻗어 홍성군 장곡면과 청양군 화성면의 경계를

형성하는데, 기러기재는 이 산줄기의 북사면에 자리한다.

기러기재 이정표

기러기재 유래 안내판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청미래를 비롯한 가시나무. 잡목들의 저항은 시작되고...

양지라 눈이 없어서 조금은 걷기가 편하다

능선에 오르니 화성면 수정리가 시원스레 보이고 우측 너머로 금북정맥 능선이 보인다

묘지가 나오고...

 269m봉(14:35)

269m봉에서 뒤돌아 본 오서산의 모습

오서산(791m)은 충남 보령시 청소면과 청라면, 홍성군 광천읍에 걸쳐 있는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오서산(烏棲山)이란 이름은 까마귀가 많다하여 유래된 이름으로 이 산은 800m 에도 못 미치는

높이이지만 주변 산봉우리에 비해 높고, 남북으로 뻗은 능선이 서해바닷가를 마주하면 장벽처럼

펼쳐져 높이에 비해 웅장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서해안에서 가장 높고 웅장하게 솟아 있는 산이어서

인근 바다를 지나가는 배들이 쉽게 알아보고 뱃길을 가늠한다고 해 ‘서해의 등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내 5대 억새산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며 사방으로 탁 트여있는 조망까지

만끽할 수 있어 만추산행으로 제격이다.

잡목에 갇혀버린 안내판

부산 방랑자님 대단혀요!

269m봉 정상에서 범여는 잡목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길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맥상 우측 사면으로 가야하는데 진입불가...

하는 수 없이  직진으로 치고 나가니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반가운  시그널이 보인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희미한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간다

맞은편의 송전탑을 포스트 삼아 걷는다

임도(14:55)

269m봉에서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안부(15:00)

이정표(내포문화숲길:백제부흥군길 18 ←대현리 3.84km ↘기러기재 2.1km)

NO66 송전탑(15:03)

등로 곳곳에 내포문화숲길 띠지가 많이 보인다

갈림길(15:05)

이정표(15:15)

261.6m봉(△보령304 / 15:20)

지리적 위치:경도 126도 42분 49초, 위도 36도 28분 52초

261.6m봉 정상의 모습

겨울산

 

        문 현미

 

절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을 정수리에 이고 가부좌를 틀면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영하의 묵언수행!

폭포는 성대를 절단하고

무욕의 은빛 기둥을 곧추 세운다

온 몸이 빈 몸의 만월이다

261.6m봉 북사면은 쌓인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목장임도(15:30)

우측으로는 목장이 보이는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소리개들재라 표기되어 있다

뒤돌아 본 261.6m봉의 모습

임도를 올라서니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서부터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Go Go~~~

등로에서 바라본 장곡면 옥계리(玉溪里)의 산그리메

홍성군 장곡면 옥계리는 본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옛날에는 피난처로 알려진 농촌마을이며 본래 홍주군 화성면의 지역으로써 옥계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정골, 냉정골, 등대실, 반계장터 등이 있고 가정골은 등대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냉정골은 냉정리 또는 상랭리라고도 부르며 찬샘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등대실은 등대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반계장터는 옥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시장이 서서 장곡면의 동부지방에서 주로 이곳에서 시장을 본다.

NO 69송전탑(15:38)

상송리(上松里) 갈림길(15:40)

상송리 갈림길 이정표(상송리0.3km.목장0.65km.주류성 1.95km). 임도를 따라

좀더가면 임도는 이제 끝이나고 오름길로 되며 바로앞에 좌측 상송리로가는

갈림길이있고 직진해 오르며 이정표의 목장은 아마 좀전에 지난 수레길안부의 목장을 말하는 듯하다.

장곡면 상송리는 본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마을 옆으로 오서산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상오, 반송, 두리 등이 있다. 상오는 도산리의 오미 위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반송은 반송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두리는 상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상오와 반송의 이름을 따서 상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묘지 위를 지나고...

NO70 송전탑(15:48)

주류성 갈림길(217m:15:50)

주류성 갈림길인 217m봉에 나무 벤치가 있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넓은 개활지(15:55~16:05)

이곳에서 후배 산꾼들과 빵 하나씩 나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숫고개로 향한다

개활지에서 바라본 산성리(山城里)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는 본면의 동남부에 위치한 크고 작은 산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산성이 있다하여 산성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뒷굴, 여양굴, 수문굴 등이 있다.

뒷굴은 반계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여양굴은 여양원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수문굴은 사방에 산이 둘러싸서 숨은 것처럼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개활지에서 바라본 주류성(留城)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에 위치한 주류성(留城)은 백제의 성으로 주류성(州柔城), 또는 지라성(支羅城)이라고도 한다.

660년 신라(新羅) ·당(唐)의 연합군에게 백제의 수도 사비성 이 함락되고, 임존성(任存城) 등에서는

간솔(杆率) 귀실복신(鬼室福信)과 승려 도침(道琛), 옛 풍달군장(風達郡將) 흑치상지(黑齒常之) 등이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켰는데  주류성은 이들 백제 부흥군 지휘부의 거점이자 「임시수도」와도 같은 곳이었다.

 

기록에 주류성은 「농사짓는 땅과는 거리가 멀고 돌이 많고 척박하여 농사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성이면서, 동시에 「방어하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로 기록되어 있다

왜(倭)에 있던 왕자 풍장(豊章)이 복신의 요청으로 662년 5월에 귀국해 새로운 백제왕으로

옹립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으며, 주류성이 백제 부흥군의 중심 지휘부가 되었다.

안정된 식량 확보가 어렵다는 단점 때문에 자칫 장기전으로 갈 경우 불리할 것을 염려한 부흥군

지휘부는 주류성에서 멀지 않은 피성(避城,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으로  천도를 시도하지만,

오히려 그 직후인 663년 초부터 신라군의 공세에 밀려 다시 주류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흥군 지휘부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앞서 도침을 죽이고 병권을 모두

장악했던 복신이 다시 풍장왕에게 살해되고,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에서 보낸 2만여 명의

수군도 백강(白江)에서 당의 수군에 궤멸되면서 (백강전투) 풍장은 고구려로 달아나 버렸다.

결국 9월, 나 · 당 연합군에 의해 주류성은 함락되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주류성이 함락되던 날, 국인(國人) 곧 백제의 유민들이

"주류성이 항복하였구나. 일을 어찌할 수가 없구나. 오늘로서 백제의 이름은 끊어졌구나.

조상의 무덤을 무슨 수로 오갈 수 있단 말이냐."라고 탄식하는 말을 남긴 채 퇴각하는

왜군을 따라 왜로 망명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위키백과 인용)

잡목을 헤치며 걸어가니...

안부(16:10)

 안부를 지나 숯고개로 가는 길은 절개지로 더이상 갈 수가 없다... 우측으로 우회한다

숯고개(16:15)

홍성군 장곡면 상송리()와 대현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숯고개는 과거에 고개 양쪽으로 참나무가 많아서 그 참나무로 숯을 구어

팔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숯고개 또는 한자화한 탄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홍성군 장곡에서 청양 화성으로 96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으며 지도상 숫고개는 숯고개의 誤記이다 

숯고개 우측으로 가서 절개지로 올라선다

우측으로 주택이 보이고...

능선으로 오르면서 뒤돌아 본 주류성... 역사는 늘 승자 위주로 쓰여지지

다시 거친 잡목을 헤치며 사면을 치고 올라 능선으로 접어든다

190m봉(16:30)

다시 잡목을 헤치며 내려서니...

 안부(16:37)

다시 오름길...

 좌측으로 여인의 젖가슴처럼 볼록나온 지기산과 바로 앞엔 홍동저수지

00이 고향이 저수지 바로옆 신동리랬지...암튼 잘 살고 있겠지

예전엔 불이났던 곳인가보다... 잡목과 가시넝쿨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왜 무한(봉수)지맥길이 맥 산꾼들에게 악명을 떨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200m봉(16:45)

가시덤불에 갇혀 모자는 벗겨지고 옷은 찢어지고 내가 먼 지랄인지...

 결국 정상 등로를 포기하고 좌측 사면으로 내려서니...공사중인 임도가 나오고...

시멘트 도로(16:48)

천신만고 끝에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 좌측 묘지 방향으로...

종중묘원 표시석 옆 컨테이너 박스 옆길을 치고 오른다

신평이씨 문정공파 종중묘원(16:50)

묘지 뒤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또 다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241m봉(17:03)

등로가 뚜렸이 보이기 시작한다  

250m봉(17:10)

NO29송전탑(17:15)

260m봉(17:20)

275m봉(17:25)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의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측인데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독도의 달인인 산으로님이 정확하게 길을 찾는다

눈 덮인 등로는 보이질 않고 조금을 내려가니...

묘지(17:27)

좌측으로 사찰이 보이고...

지정리(智井里) 임도(17:30)

활처럼 휜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좌측은 사찰로 가는 도로이고 우측은 지정리로 향하는

길인데 우측 산꼭대기는 천주교 묘지가 있고 맞은편에는 SK장곡 이동통신탑이 있다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지정리는 본면의 북부에 위치하며 보금산 자락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계산리, 동살미, 검은들, 마정, 지명 등이 있으며  계산리는 지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계수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검은들은 뒷산에 검은 바위가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정은 큰 우물이 있어 붙은 이름이고, 지명은 지명동 또는 김녕동이라고도 부르며 김씨들이

마을을 이뤘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지명과 마정의 이름을 따서 지정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SK 장곡 이동통신탑

천주교 공원묘지

임도 갈림길(17:35)

 무명봉에 올라서자마자 급경사의 내리막인데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지면서 내려선다

부안임공 묘지(17:43)

등로에서 바라본 내포(內浦) 신도시의 모습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고 했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으며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산줄기이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곳은

가야산 앞뒤에 위치한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洪州牧:지금의 홍성군)이 관할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고 있으며 따라서,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성과 예산의 경계에 위치한 내포신도시는 충남도청이 새로 들어섰다

묘지 도로(17:45)

검은들 안부

검은들은 홍성군 장곡면 지정리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검은 바위가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황토밭(17:52)

과수원(17:55)

묘지에서 바라본 오서산

황토밭을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오서산이 멋지게 보인다

해는 벌써 오서산 너머로 숨어드는데 아직도 오늘의 날머리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후배 산꾼들이 여기서 산행을 접자고 한다.

얼마나 반가운 지... 오늘은 컨티션도 안 좋았지만 많은 눈과 잡목의 저항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산행을 종료하기로 결정하고 도로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서낭당재라고 한다

서낭당재(18:00)

홍성군 장곡면 월계리와 홍동면 문당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접고 문당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좌측에는 문중 재실이 있고 축사가 즐비하다

내려오면서 후배들이 택시를 불렀던 모양이다

홍성택시를 타고 홍성역으로 향하는데 아침과는

달리 젊은 친구가 얼마나 싹싹한 지... 요금이 14,700원이

나왔는데 잔돈 300원까지 내준다...광천 택시와 비교되는 분이다(18:15)

홍성역(18:35)

홍성역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표를 예매한 다음에 역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홍성역으로 향한다

홍성발→영등포행 무궁화호 열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