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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무한(봉수)지맥(終)

무한(봉수)지맥 제3구간 - 비티고개에서 무한천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17. 1. 1.

☞산행일자: 2016년 12월 31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포근함...오후에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24.3km +어프로치 약1km / 8시간 소요

☞참석인원: 수헌, 산으로님과 함께

☞산행코스: 비티고개-천주교 묘지-178m봉-194.9m봉-티비고개-가야 둘레길-190.3m봉-갈림길-204.5m봉-전망봉

                200m봉-건지화리고개-무명봉-삽치고개-임도사거리-예산군추모공원-안부-619번 도로-전주이공묘지

               무명봉-산불감시초소-팔각정-207.4m봉-시멘트 임도-팔봉산-무명봉-사과밭 물탱크-갈림길-함종어씨 묘

               고속도로 암거-애플모텔-5번 군도-예산운전면허 시험장-면허시험장 사거리-장항선 철길-대동RPC-신대교

               임성교차로-좌방리 버스 정류장-예산자동차 전문학원-원천3리-충효각-분천4리-성림관광농장-양신초교

               원천1리-내량2리-오촌2리-내량리 3구-오촌사거리-오산사거리-오산3리 마을회관-컨테이너 하우스-갈림길

              밀양박공 묘-신천강씨 묘-오석산 갈림길-화암사 안부-오석산-화암사-안부-오석산 갈림길-소봉래-화암사 입구

              오산1리-백암식당-천일택배-용궁사거리-예산군 농산물 유통센터-용궁2리-신택교차로-신택2리-무한천 합수점

소 재 지: 충남 홍성군 금마면 / 예산군 응봉면, 오가면, 신암면


多事多難했던 丙申年... 다들 피로감을 느꼈던 한 해 새로운 丁酉年을 맞이하기 전에 무한(봉수)지맥을 끝내기 위해

병신년 마지막 날 용산역에서 아우님들을 만나 예산역으로 가는 07시 28분발 장항선 열차에 오른다

범여에게는 참으로 悔恨이 많은 한 해이기도 하고, 뜻깊은 한 해이기도 하다

내년 한 해의 바람이라면 내가 아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범여의 바람이면 무탈하게

내년에도 산행을 잘 할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오늘의 산행지도(수헌님 블로그에서 인용)

07시 28분발 용산 → 예산행 장항선 열차

예산역(09:17)

예산역에서 내려서 곧바로 오늘의 날머리인 비티고개로 향하는데 갑자기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약간의 걱정을 하였는데 예당 저수지를 지나 비티고개 올라가는 길에서 진눈깨비가 그치는 바람에 다행이다

비티고개(峙:09:40)

홍성군 금마면 봉서리()와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를 형성하는 봉수산()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데,

이 산줄기를 넘어 홍성지방과 예산지방으로 이동하던 사람들에 의해 비티고개가 형성되었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비티고개는 비치()라고도 불리웠는데 현재는 616번 지방도가

비티고개를 지나며, 이 도로를 따라 가면 예산의 예당저수지와 연결된다

산행을 시작하다 (09:40)

무작정 능선을 치고 오르니 천주교 묘지들이 보인다

천주교 묘지(09:47)

천주교 묘지에서 바라본 지난 구간 210m봉의 모습

천주교 묘지를 지나면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178m봉(09:54)

등로에서 바라본 봉수산의 모습

178m봉에서 바라본 금마면 인산리(仁山里)

홍성군 금마면 인산리는 테뫼산의 북쪽에 있는 농촌마을로자연마을로는 갯들, 인흥, 석산, 점촌 등이 있다.

갯들은 갯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붙은 이름이다. 인흥은 인산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이고  석산은 뒤에

돌산이 있어 붙은 이름이며 점촌은 점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인흥과 석산의 이름을 따서 인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기독교 집사님 부인을 둘씩이나 거느리셨던 해주최공 묘지를 지나고...女福이 많으시군요

해주최공 묘지를 지나면서 등로는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곧이어 또다시 좋은 길이 나오고...

묘지로 오르는 등로로 올라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등로가 없는 곳으로 붙어 있어 그리로 올라섰더니만 등로는 아예없고 아카시아 나무가

온 몸을 할키는데 미치겠더라... 잠시후 묘지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니 후답자들은 존길로 가시길...

지난주에 걸었던 초롱산과 봉수산이 뚜렸이 보이고...

194.9m봉(10:05)

194.9m봉을 내려서니 낙엽이 많은 뚜렸한 임도 갈림길 나온다 

티비고개(10:09)

뚜렸한 직진 임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거칠어지나 뚜렸한 편이고 간간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홍성 가야둘레길(10:13)

성황당 이정표도 만나고...

계속되는 완만한 등로

맨 위쪽 묘지는 달성서씨인데 그 아랫쪽은 대구서씨라는 묘비가 보인다

190.3m봉(10:22)

제주고씨 묘지도 지나고...

또다른 묘지 뒷쪽으로 지난다

다시 잡목을 헤치고 지나니...

갈림길(10:28)

무한(봉수)지맥은 우측으로 이어지나 좌측으로 1분정도 가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있다

204.5m봉(10:29)

어디를 옥녀봉을 말함인지?...

204.5m봉부터는 무한(봉수)지맥 분기점부터 이곳까지 같이 걸어온 홍성군과는

완전히 작별을 하고 좌.우 모두 예산군 응봉면 지역으로 접어든다

204.5m봉 삼각점 안내판

그러나 정작 삼각점 내용은 알 길이 없다

204.5m봉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전망봉(10:42)

전망봉에서 바라본 예산군 응봉면 노화리(蘆花里)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노화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갈울, 먹석굴, 벌터, 삼거리, 조개내마을 등이 있으며, 갈울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갈대가 많으므로 갈울이라 하였고, 먹석굴마을은 갈울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돌이 먹과 같이 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벌터마을은 평평한 벌판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거리마을은 세 갈래의

길이 나 있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고 조개내마을은 마을 앞 내에 조개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합천이라고도 한다

200m봉(10:44)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편백나무 숲에서 약간 우측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험해지고 다시 약간 우측으로 나가니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는데 2차선 도로가 보인다

건지화리 고개(10:50)

예산군 응봉면 건지화리에서 지석리 넘어가는 고개로 2차도 도로에 이동통신탑이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임도로 올라선다

임도로 올라서니 좌측에 무명묘지가 있고 뚜렸한 직진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무명봉(10:55)

꿀벌통이 쌓아놓은 밭을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삽치고개(11:00)

응봉면 지석리로 이어지는 조금전에 지나온 2차선 도로와 갈라져 건지화리 삽치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새로 조성한듯한 묘지를 지나니...

황토밭이 나오고...황토밭을 지나니...

좌측으로 편백나무 숲이 있는 임도가 나오고... 편백나무숲을 지나는 굽은

길에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지맥길은 이어진다(독도주의)

묘지를 가로 지르니...

낙엽이 수북한 임도가 나오고...

또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편백나무 숲을 지나고...

묘지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접어든다

148m봉(11:13)

좌측으로 과수원이 보이고 임도옆에 커다란 오동나무 2그루가 있다

임도 사거리(11:15)

임도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우측의 물탱크가 있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능선으로 들어서니 잡목이 무성하고 우측으로는 예산군 추모공원이 있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잡목이 엄청나게 산꾼을 괴롭힌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산군 추모공원

공원묘지옆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23)

안부를 지나 묘지 우측의 임도를 따르니...

병조참판을 지낸 풍산심공 묘지를 지나고...

묘지로 연결되는 편안한 임도를 따른다

묘지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공주(공산) 이씨 묘지가 있다

우측으로 약초재배 지역이 나오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하는 수 없이 좌측의 능선으로 포기하고 농장 가운데 도로 내려서니

새시로 만든 초소가 있고, 619번 도로가 나타난다

야할 팔봉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619번 지방도(11:33)

예산군 응봉면 소재지에서 예당저수지로 가는 619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전주이공 묘지(11:35)

거칠어지는 능선

양지바른 광산김공 묘지에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1:45~12:20)

오늘은 당일 산행구간의 거리로는 도로를 따라서 많이 걷기는 하지만 도상거리가

25km가 넘기에 평소와는 달리 점심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집에서 도시락을 싸왔다

무명봉(12:22)

여름 산행시엔 고생깨나 하겠다

예당저수지가 보이고...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또다시 시작되는 잡목의 횡포... 가시들이 자꾸만 얼굴을 할킨다

좌측으론 복숭아밭이 보이고...등로가 너무 거칠어 과수원 안쪽으로 걸어간다

복숭아밭에서 바라본 팔봉산의 모습

인삼수확이 끝난 밭 가운데를 지나고...

등로에서 바라본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 사당골 마을

팔봉산 기슭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사당이 있었다 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다시 등로로 올라서서 약간의 깔딱고개로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12:45)

팔봉산의 8개 봉우리중에서 첫번째에 해당되는 봉우리이다

묘목을 심은 밭이 나오고... 우측에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12:50)

이곳에서 보면 예당저수지가 잘 보이는 곳이련만 짙은 박무로 인해 모든게 흐리기만 하다

팔각정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우측으로는 약초재배지역 출입금지 프랑카드가 보이고...

팔봉산의 2번째 봉우리

207.4m봉(13:02)

팔봉산의 3번째 봉우리... 지도상에는 이곳을 팔봉산 정상이라고 해놨다

등로 우측으로는 예당저수지가 희미하게 보이고...

4번째 봉우리

좌측에 보이는 207.7m봉이 팔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5번째 봉우리

내리막길이 살짝 얼어있어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6번째 봉우리

시멘트 임도(13:10)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편안한 임도로 올라서니...

팔봉산(八峰山.207.7m:13:15)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와 후사리, 오가면  신장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백두사랑 이 대장이 아크릴 표지판을 붙혀놨는데 주의 전망은 잡목으로 인해 꽝이다

지명의 유래는 8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우측 후사리에는

태고종 사찰인 팔봉암이 있다...팔봉산 아래에 있는 후사리는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뒷절, 밭뒷절, 안뒷절, 사재마을 등이 있고, 뒷절마을은 마을 뒤에 절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후사(後寺)라고도 한다. 밭뒷절마을과 안뒷절마을은 각각 뒷절의 바깥쪽,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사재마을의 이름은 전에 뒷산골이 깊어서 홍수가 나면 전답을 버리게 되어 사제()를

쌓았다 하여 유래되었다

팔봉산 정상 삼각점(△ 예산 313 / 1991 재설)

팔봉산 정상에서 인증샷

8번째 봉우리에서 내려서니...

벌목지가 나오고...

벌목지에서 꺽어져 좌측으로 내려서니...

移葬한 듯한 묵묘의 흔적지에선 억새만 가득하고...

잠깐동안 거친 길을 걷다가...

편안한 리기다 소나무 숲을 만나고...

무명봉(13:27)

묘지를 지나다 우측으로 보니...예산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산읍

충청남도의 중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서쪽에는 덕산 도립공원이 있고, 동쪽에는 차령산지, 서쪽에는

가야산지가 남서쪽으로 달리고 있어 동부와 서부는 산지를 이루며, 중앙부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삽교천과 무한천(無限川)이 북류하면서 유역에 예당평야를 형성한다.

현재 예산읍 · 삽교읍 · 고덕면 · 덕산면 · 대흥면 등 2읍 10면을 관할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고산현(孤山縣)은 원래 백제의 오산현(烏山縣)이었던 것을 경덕왕 16년(757)에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예산현이다."라는 관련 기록이 처음 수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는 919년(고려 태조 2)에 지금 명칭, 즉 예산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해가는 과정에서 아산만 일대의 해상세력과 동맹관계를 맺었는데,

이 일대의 민심이 왕건을 지지하고 견훤을 배척하였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다음 해에 오산을 예산(禮山)으로 고치면서 '태조에게 예절을 지킨 지역'이란

의미의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사과밭 스텐레스 탱크(13:33)

본격적인 사과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창녕조씨 충정공파 묘지를 지나고...

창녕조씨 충정공파 예산 중시조 제단

갈림길(13:38)

들판 가운데로 장항선 철로가 지나가고...

또 잡목의 태클은 시작되고...

함종(咸從) 魚氏묘(13:43)

무명묘를 지나니...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고속도로 좌측 아래로 내려선다

지맥길은 건너편 저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고속도로가 맥길을 짤라 버렸다

고속도로 수로를 타고 내려서니 진농장 입구가 나오고...

고속도로 암거(13:55)

애플모텔(13:57)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포기하고 애플모텔 앞을 지나간다

맥길은 과수원 가운데로 이어지는데...

대흥농원 뒷쪽 저 능선은 생략한다

5번군도(14:00)

이곳부터는 8km 가까이를 도로를 따라서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아침부터 같이 걸었던 응봉면과 작별을 하고 예산사과로 유명한 오가면으로 접어든다

우측엔 예산운전면허 시험장이 보이고...

예산운전면허 시험장 입구(14:04)

면허시험장 사거리(14:06)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삽교방향으로 걸어간다

도로 좌측에는 NaSa 산업이 보이고...

도로 좌우측으로는  온통 사과밭이다... 명성높은 예산사과는 주로 오가면과 신암면이 주산지인 모양이다

승일농원도 지나고...

이 다리 아래로 장항선 철길이 지나간다

장항선 철도(14:12)

용산역에서 서천군 장항읍까지 이어졌던 장항선이 익산까지 연장되면서 직선화된 새로운 철길이다

이곳 근처에 삼각점이 있다고 하여 과수원 근처를 한참을 찾아 헤맸으나 허탕만 친다

최후농원을 지나니 좌측에는버스 정류장이 있고...

대동RPC(14:16)

신대교(14:20)

이 다리 아래로 옛 장항선 철도가 지났던 곳이다

없어져버린 장항선 철로의 모습

임성교차로(14:25)

임성교차로를 건너 직진하니 우측으로 임성중학교 입구가 보이고...

님다방 김마담은 배달을 갔는지... 다방안은 조용하기만 하다

은혜농원을 지나니 좌방리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좌방리(佐方里) 버스 정류장(14:32)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좌방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성리천이 흐른다.

방하리, 좌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좌방이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방하다리, 자구내, 좌하, 세집매마을 등이 있다.

방하다리마을은 좌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방아의 다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구내마을은 좌방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좌하마을은 자구내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세집매마을은 좌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세 집이 있었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딸부자 농원과 오가 정미소도 지나고...

포근한 날씨 탓이련가... 草地는 파랗게 보이고...

예산 자동차 운전전문학원(14:38)

원천3리 입구(14:40)

충효각(14:42)

효자 박신흥의 효자비가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정말 지루하다

분천4리(汾川4里) 입구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분천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마을 서쪽으로 성리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분천, 거룻들, 농소, 남부, 세집뜸마을 등이 있다. 분천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부나냇가가 되므로 부나내, 또는 부난내라 하다가 분천으로 개칭되었다.

거룻들마을은 분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이곳에 나루여서 거룻배가 다녔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농소마을은 조선 때 이곳에 농소()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남부마을은 거룻들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6.25 사변 때 이재민을 이곳에 정착시키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세집뜸마을은 분천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세 집이 살았다 하여 불리우게 된 이름이라 한다.

분천4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자동차 정비공장과 식당도 보이고...

성림관광농장(14:53)

양신초등학교 입구(14:55)

원천1리(元泉1里)입구(14:58)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원천리는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고  농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무한천이 흐른다...외천리, 내천리, 원형리, 전죽리를 병합하여 원형과 내천의

이름을 따서 원천리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샘골, 밭새암골, 원형, 윗원형, 아래원형, 전죽마을 등이 있다.

샘골마을은 마을에 좋은 샘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밭새암골마을은 샘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원형말은 원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마을 지형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윗원형말과 아래원형말은 각각 원형말의 위, 아래에 자리하였다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다.

전죽마을은 살을 만드는 대가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내량2리 입구(15:08)

예산군 오가면 내량리는 하포천이 흐르며 마을 전면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고, 자연마을로는 목장뜸,

굴량, 북부, 안골, 쌍가랫골마을 등이 있는데 목장뜸마을은 전에 목장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굴량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북부마을은 굴량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1953년 10월에 난민 정착지로 지정되었다. 안골마을은 군량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절골마을은 절이 있었다 하여 불리우는 이름이라 한다.

쌍가랫골마을은 쌍으로 갈라지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촌2리 입구(15:26)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는 마을 동쪽으로 무한천이 흐르며 화천리, 신탄리, 아지리, 녹야리, 상촌리의

다섯 마을을 병합하였다 하여 오촌리라 이름하였고 자연마을로는 골뜸, 신탄, 아지, 화천, 녹야마을 등이 있다.

골뜸마을은 골짜기에 자리하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신탄마을은 이곳에서 질그릇을 구워내는데 신탄(숯)을

많이 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혹은 땅이 질어서 신바닥에 흙이 달라 붙으므로 때때로 신을 털어야 했다

하여 신탄이라 칭하였다고 전해지며 아지마을은 오촌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못이 있었다 하여 못 지()자를

넣어 지은 이름이고 화천마을은 청결한 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녹야마을은 아무골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도로 우측으로는 예산읍내가 보이건만 짙은 스모그로 인해 모든게 흐리기만 하다

참으로 도로를 많이도 걸었건만 아직도 한없이 걸어야 하니...내가 자꾸 뒤처지니까

앞서가던 아우님들이 미안했던지 도로옆 묘지옆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빵과 쥬스로 원기를 보충한다 

내량리 3구 앞(15:30)

오촌사거리(15:33)

오천 사거리를 직진하니...

우측에는 김치공장이 보이고...

이제 사과농장이 조금씩 드물어진다

예산군 양묘장도 보인다

오산사거리(15:45)

사거리 좌측으로는 상숙이네 쭈꾸미집이 보이는데... 까~아 쭈꾸미에 쐬주 한잔 생각이 간절한데 갈길이 바빠서...

오산사거리를 지나자마자 S-oil주유소가 나오고...

오산3리 마을회관(15:47)

마을회관을 지나 해솔가든 마당으로 들어선다

해솔가든은 영란법 탓인지 장사가 안되는 모양이다

안내문에는 따뜻한 봄날에 뵙겠습니다라고 써놓고 휴업중이다

해솔가든을 지나 밭 가운데로 들어서니...

좌측으론 공장이 보이고...

공장옆 능선은 막혀 버렸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전주이공 부부 묘지가 보이고...

사과밭을 가로 지르고... 뭔 지랄인지...

밭 사이를 지나니...

또다른 사과밭... 밭 가운데 송전탑이 있고...

컨테이너 하우스(15:55)

생각보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갈림길(15:57)

군벙커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질 않고...

잡목을 해치고 나가니...

밀양박공 묘(16:00)

묘지 좌측으로는 공장지대이고 묘지 뒷쪽으로 뚜렸한 등로가 있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를 만나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신천강씨묘(16:04)

등로옆 녹슨 철조망 안쪽엔 암릉이 보이고...

멋진 암릉들이 많이 보인다

오석산, 화암사 갈림길(16:07)

이곳에서 무한(봉수)지맥은 우측으로 이어지나 좌측 전방 500m 지점에 있는 오석산으로 향한다

갈림길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 3개가 있고 이곳이 내포문화 숲길이라 그런지 길은 무쟈게 좋다

뚜꺼비 바위(범여의 생각中에서)

화암사 안부(16:10)

우측 능선 아래에는 화암사가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烏石山이라 암각해 논 바위도 지나고...

또 다른 암각을 해논 바위도 지난다

신천 강씨 묘지 가운데를 지나니...

또다른 창원황공 묘지가 나온다

學生이라면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않은 분인데... 벼슬을 하지않은 망자에겐

묘비위에 지붕을 씌우지 않는데... 묘지 바로위에 오석산이 나온다 

오석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오석산(烏石山:95.8m:16:18)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와 용궁리의 경계에 있는 지세의 대부분이 낮은 구릉인 신암지방에 유일하게

용산(龍山)이라는 낮은 산이 있는데, 양끝이 봉우리를 이루는데 북쪽이 앵무봉이고, 남쪽이 오석산(烏石山)이다.

앵무봉(60m)아래에는 추사의 생가와 그분의 묘소와, 증조모인 화순옹주 내외의 묘가 있고, 고조부의 묘 앞에는

백송이 있으며,  오석산(94m) 중턱에는 화암사가 있는데, 창건은 백제 때였지만, 현존하는 건물은 추사의 증조부가

재건하고 그후 중수한 것이니, 추사선생의 집안절 이었다.

 

지명의 유래에 까마귀 오(烏) 자를 집어넣은 이유는 돌을 깨보면 바위

속이 검기 때문이고, 그 바위가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이 병풍암이다.
오석산의 조산인 팔봉산에서 20리를 내려온 구절비룡의 산줄기 가운데서 유일하게 바위가

돌출되어 암기(岩氣)가 강하게 발산되는 곳은 이곳 오석산의 화암사 대웅전 뒤편의 병풍암인 것이다.

오석산 정상 2등 삼각점(△예산21 / 1989재설)

오석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맘 같아서는 이곳에서 1km정도 떨어져 있는 추사 고택을 들리고 싶지만 아무래도 무리일듯 싶다

그렇다고 화암사까지는 안 볼수가 없었다...주마간산격으로 보기로 하고 화암사로 내려선다

화암사(華岩寺:16:25)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용산의 동북향 사면 중단부에 위치하며, 원래의 절은 건립연대를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말로는 삼국시대 때 지었다고 한다. 절에는 요사채, 대웅전, 석탑, 범종 등이 있으며,

요사채는 김한신이 지은 것이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절은 이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 그 뜰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 위치로 옮겨졌다.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 이 절을 중건하였다.

화암사(華巖寺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다. 그 건물이 현재의 신암 화암사이다.

 

부처님 모시는 방을 무량수각 (无(無)量壽閣)이라 하고, 조망루(眺望樓)를 시경루(詩境樓)라 하였다.

이 두 편액(扁額)은 모두 김추사가 쓴 것이다. 절뒤 암벽에도 김추사의 서각인 시경 (詩境)과 천축고선생댁

(天竺古先生宅)이 있고, 오석산(烏石山)의 남단 기암에도 역시 김추사의 서각인 소봉래(小蓬萊)가 있다.

이 절에는 옛부터 5∼6세 소아 크기의 관음보살상을 봉안하고 있었는데, 60여년전 도난당하고 현재의

부처님은 예산읍 향천사의 천불 중에서 이안(移安)한 것이다.

화암사 주변에는 10여기의 지석묘가 있고, 청동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시경(詩境:충청남도 기념물 제151호))

사찰로 내려서는 화암사 대웅전 뒷쪽 병풍바위에는 추사선생이 썼다는 글씨들이 암각되어 있다

첫번째 만나는 암각이 “詩境”... 시경(詩境)은 시의 경계 또는 시흥(詩興)을 불러 일으키는

풍취(風趣)라는 뜻으로 좋은 경치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覃溪)옹강방(翁方糠)으로 부터

받은 탁본 글씨를 새겨 놓은 것으로 예서(隸書) 로 쓴 이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육우(陸游:호는 방옹(放翁)의 글씨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후대에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곳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다.

일각에서는 추사선생의 친필이라는 견해도 있어 연구가 필요한 필적이라고 한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화암사 병풍바위에 이 절집을 (천축나라의 옛선생댁)이라는 말로 풀어서 (天竺古先生宅)이라고 새겨 놓았다.

천축이란 부처님이 계시는 나라 천축국(인도)를 말하며 고선생이란 부처를 옛 선생이라 이른 말이다

이는 곧 부처님이 계시는 집, 예불의 장소라는 뜻으로, 추사 선생의 불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화암사 대웅전과 극락전의 모습

화암사 대웅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대웅전을 참배하려는데 문은 굳게 잠겨있어 저두삼배로 참배를 대신한다

화암사 약사전

미륵불과 오층석탑

화암사 요사채

화암사에 들릴때의 생각은 요사채 걸려있는 추사 선생이 쓴 현판의 편액을 볼 생각이었는데

벌써 해는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앞으로 남은 거리는 5km가 넘게 남았다.

거기다가 요사채로 내려 서려는데 돌아 오라고 하여 포기하고 다시 등로로 올라선다

 

화암사 요사채는 1846년 화암사를 중건할 때 대방 형식으로 지은 것으로 바같쪽에는

화암사(華岩寺), 원통보전(圓通寶殿), 무량수각(無量壽閣), 추수루(秋水樓), 좌와취월(坐花醉月)이

걸려있고, 안쪽으론무량수(無量壽), 죽노지실(竹爐之室), 백벽(百檗)드의 현판과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다시 화암사 안부(16:30)

이곳에서 벗어논 베낭을 다시 메고 무한(봉수)지맥의 마지막 길을 걷는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다시 오석산, 화암사 갈림길(16:33)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소봉래추사제(小蓬萊秋史題:16:34)

이 바위는 일명 쉰질바위로 추사 선생이 여기에 소봉래라고 새겨놨다

스승인 담계 용강방의 집안 석순에 봉래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자신은 작은 봉래라 이르며,

새겨 놓은 것인데, 소봉래추사제(小蓬萊秋史題:화암사가 위치한 오석산(烏石山)의 경치가

작은 금강산처럼 빼어남을 의미하는 뜻이란다

소봉래 안내판

넓은 임도를 만나 편하게 내려선다

화암사 입구(16:40)

조금전에 오산3리 마을회관에서 헤어졌던 5번 군도를 따라서 무한(봉수)지맥길을 이어간다

오산1리 앞(16:43)

지난해 걸었던 안성 북(서봉)지맥 마지막 구간처럼 도로를 질릴 정도로 걷는다

백암식당 앞(16:48)

해는 이미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상태라 맘이 급하다

메뉴판중에 갱개미라고 써놨는데 뭔 뜻인지 알 길이 없다

5번 군도에서 바라본 오석산의 모습

천일택배 앞(16:50)

용궁사거리(16:54)

도로를 직진하는데 좌측으로는 추사고택으로 가는 길이고,

도로옆 공원에는 6.25 참전 국가유공자 기념비가 보인다

예산군 농업기술센터를 지나자마자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도로를 따른다

예산군 농산물유통센터(16:58)

용궁2리 입구(17:00)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용궁리는 자연마을로 산직말, 소샛말, 가구샘이, 궁말, 상궁마을 등이 있다.

산직말은 전에 김씨의 산직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소샛말마을은 소사라고도 하며,

모래가 많다 하여 불리우게 된 이름이다... 가구샘이마을은 호정()이라고도 하며 집집마다

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궁말은 용궁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며 상궁마을은 궁말의

북쪽에 자리잡았다 하여 칭하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예산의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꽤나 큰 규모의 유진레이델이란 회사도 지나고...

이화타일 공장 앞도 지난다

신택 교차로가 보이는데 해는 이미 기울었고 걸음걸이는 경보수준으로 간다

그런데 배는 고프고 베낭에는 먹을것도 없고 한데...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길가에 사과를 파는 가계가 보이고 할머니가 사과를 팔고 있다.

배는 고프고 돈은 없는데 사과는 먹고 싶다고 하니, 할머니가 사과를 하나 주신다

기왕 주실거면 3명이니 3개를 달라고 하니... 흔쾌히 주시는게 아닌가...복 받을깁니다

인화농원을 지나니...

신택교차로(17:15)

ㅓ자 갈림길에서 예산 방향으로 간다

신택2리 입구(15:25)

이곳이 무한(봉수)지맥 마지막 구간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삽교천과 무한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향하질 않고, 좌측의 구양교 방향으로 향하는데 우린 합수점으로 향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밭 가운데를 지나니...

마을 가운데 도로가 나오고...

다시 묘목이 조림된 비포장 도로를 따른다

외딴집이 보이고...

좌측에 보이는 송전탑 너머가 합수점인데...

저기까지 가려면 아직도 700여m 정도는 족히 되는데 금방이라도 어두워질것 같은 느낌...불안하다

이곳이 무한(봉수)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라 보면 될것 같다

수로옆 농로를 따라서 제방을 향해 걷는다

맥산행에 관한한 自他가 인정하는 산으로님... 같이 다녀보면 정말 神의 경지에 다다른 분이다

제방에 올라서니 무한(봉수)지맥 합수점이 보이고...

무한(봉수)지맥 합수점(17:40)

오서산 아래 공덕고개 남쪽에서 출발하여 48여km를 거쳐 이곳 무한천(우측)과 삽교천(좌측)이

만나는 지점에서 맥이 입수하여 무한(봉수)지맥의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3번에 거쳐 같이 동행한 두 아우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정유년 새해에는 늘 존일만 있기를...

지맥 서쪽 삽교천은 길이63.9km에 유역면적 1649.87㎢ 에 아산시 인주면이 종점이고
지맥 우측 무한천은 길이 53.9km에 유역면적 467.54㎢에 예산군 신암면이 종점이다.
발원지의 길이로 치자면 무한천이 더긴데 유역면적이 삽교천이 더 커서 무한천이 삽교천의 지류가 되는 모양이다...

새로운 산경표를 준비하는 산으로 아우님은 봉수지맥이 아닌 무한지맥으로 명명하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동안에 합수점은 어둠속에 묻혀 버린다

여기서 신택교차로까지 가기는 시간이 무리일 것 같아서 합수점 제방에서신례원 택시를 부르는데

택시가 이곳을 찾아오지 못하다가 네이버 지도를 찾아서주소를 정확하게 불러주니 택시가 제방을 따라

오다가 남자 3명이 서 있으니오다가 멈춰 버리는게 아닌가... 그러다 다시 와서는 신례원에서 택시운전을

했는데 이곳은 처음이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신례원에 도착하여 식당에 들려 쫑파티를 하고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다음에 신례원 역으로 향한다

신례원역(19:38)

예산군 예산읍의 신례원(新禮院)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관원의 숙소인 신례원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며, 역(驛)과 원(院)은 그 당시 교통시스템의 일종으로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으로 전달할 때, 사신에게 말을 공급하는 곳을 역(驛)이라 불렀고,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을 원(院)이라 했는데, 이 둘은 사람들이 밀접한 곳에 설치되었기에 대부분 역원(驛院)이라 했다.

이곳은 당시 한양과 충청, 전라도를 오가는 사신들이 쉬는 숙소가 있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신례원발 용산행 19시 42분 무궁화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