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자: 2016년 4월 8일 ~ 10일(2박3일)
☞여행날씨: 맑은 날씨이지만 미세먼지가 많음
☞참석인원: 개포동 7인회 멤버들과 함께
☞산행코스: 1일차:여수 엑스포역 -만성리 뜰펜션-만성리 레일바이크-여수수산시장
☞소 재 재: 전남 여수시 일원
1년에 1번씩 해마다 2박3일간의 가는 개포동 친목회 여행을 다닌지가 어언 25년정도가 되었다
한참 열심히 일할 나이에 만든 이 친목회가 벌써 올해로 25년째가 되었으니 나도 많이 늙은나...ㅋㅋㅋ
이 모임에서 내가 막내이다... 동네에서 늘 내가하는 조그만 사업에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시던
형님, 누나뻘이었는데 벌써 70이 넘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이 60대 중.후반이지만 만나면
나에겐 늘 반갑고, 그립고, 고마웠던 사람이다... 그러기에 이 모임에는 내가 최선을 다한다
지난해 동해로 여행을 갔으니 올해는 남도지방으로 가기로 하고 여수가는 ktx 열차에 오른다
여수시내 지도
용산역(10:30)
용산역발 → 여수엑스포역행 티켓
예정시간보다 5분정도 늦은 시간에 열차를 타고 여수로 향하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열차는 만차이다.
오랫만에 비싼 열차를 타고 가는데 요즘 체감경기는 엄청나게 안 좋지만 다닐 사람은 다 다니는구나
2시간 45분정도 걸친 시간에 우리를 태운 ktx 열차는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한다
여수엑스포역(13:45)
역에 내려서 엑스포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으로 가 간장게장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예약한 펜션이 있는 만성리로 향한다
펜션앞 논밭이 보이는 만성리와 그 뒷쪽 천성산의 모습
천성산 기슭에 자리 잡은 만흥동은 상촌, 중촌, 평촌의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다.
옛 이름을 ‘만앵이’라고 하였는데 옛 기록에 이 곳 천성산 골짜기에 ‘만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기록이
있어 만흥사에서 유래된 기록인지 ‘만앵’이라던 마을 이름에서 만흥사로 표기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만흥리란 마을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하여 천성산의 성자를 따서 만성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1953년 만흥리란 본래의 이름으로 다시 고쳐서 6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만성리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편백숲이 좋은 천성산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옛 만흥사터가 전해 오고 만흥사터 아래에는 옛날 종이를 만들었다는
지소(紙所)터가 전해져 온다.
향, 소, 부곡(鄕, 所, 部曲)이 있던 시절에 종이를 만들었던 지소(紙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전설에는 만흥사 절에 있던 스님들이 품질이 좋은 한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만흥사지 부근에는 전남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김홍식의 아틀리에도 숲속 폐가가 되어 많은 일화와 함께 뒷사람에게 전해진다.
펜션 옆에 있는 유채꽃
유채꽃의 전설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전 이집트의 마할라 라는 마을에 양을
무지하게 많이 키우는 부자인 헤잠이라는 목동이 살았습니다.
어느 늦은 저녘 헤잠은 양때들을 불러 모았는데 네마리가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헤잠은 사탕수수 이파리 묶음에 기름을 뭍혀서 횃불을 만들어
양들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다행히 두달전에 강물이 범람하여 땅이 아직 젖어 있어서
늦은밤이었지만 양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고 헤잠은 양들의 발자욱을 따라 갔습니다.
발자욱이 없어지면 양들이 풀을 짤라 먹은 자국을 보며 양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갔습니다.
조그만 시냇물 옆에 있는 사용하지 않는 방아돌이 놓여져 있는
그 가운데에 어떤 녀가 앉아서 울고 있고 그곳에서
양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양들은 모두 털이 깎여 그 소녀의 앞에
수북히 놓여져 있고 네마리중 한마리의 양만이 반정도만 털이
깎힌체 소녀 앞에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헤잠은 잠시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소녀에게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소녀의 얼굴은 피골이 상접하여 해골과도 같은 볼품 없는 얼굴이었고
얼굴엔 양의 피를 가득 묻히고 가위에도 피를 잔뜩 묻혀 앞에 버려둔채
울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는 그 해골 처럼 말라 있는 이상한 소녀에게 헤잠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데 왜 남의 양의 털을 자르고 죽이고서는 울고
있는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울고 있다가 자초지종을 힘없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 했습니다.
"저는 저 이 냇물의 저 끝에 혼자 살고 있는 아딜러라고 합니다.
당신의 양을 죽게 해서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할 의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는 두달전에 있었던 홍수로 가족들을 모두 잃고 게다가 유일한
재산이었던 베틀도 잃어 버려서 베도 짜지 못하고 너무 가난하여
한달째 먹을것이 없어서 떨어진 곡식이라도 주워 가려고
여기 방아돌에 왔더니 네마리의 양들이 보리 이삭을 잘라 먹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양털만을 훔칠 생각으로 다시 집에가서
가위를 가져와서 양털을 깎다가 양털을 한번도 깎아 본적이 없어서
양의 목부분의 털을 자르다가 그만 실수로 날뛰는 양의 목을
칼로 찔러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무슨 벌이든 받겠습니다.
저는 아무런것도 보상해줄 만한것도 없고 양대신
저를 가지겠다면 드리겠습니다.
저를 하녀로 가져 가세요.무슨일이든지 하겠습니다."
헤잠은 아딜러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운 생각에 양한마리
정도는 없어도 되니까 죽은 양의 가죽과 고기를 줄테니
가져 가라고 하면서 아직 덜깎여진 양 털을
능숙한 솜씨로 깍아서 바구니에 담아 주고 양가죽을 벗긴 다음
냇물에서 양고기를 요리 하기 쉽게 차고 있던 손칼로 짤라서
양가죽에 싸서 아딜러에게 주었습니다.
아딜러는 너무 고마워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헤잠은 그때부터 엿세마다 한번씩 꼭 양을 한마리 잡아서
아딜러에게 몇개의 빵과 함께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딜러는 점점 건강해졌고 아주 예뻐졌습니다.
헤잠은 아름다운 아딜러의 모습에 매료되어 아딜러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아딜러를
계속 도왔습니다.
아딜러는 헤잠의 도움을 자꾸 받기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헤잠이 준
고기중 먹고 남은 양고기를 팔아서 베틀을 사서 그것으로 베를 짜서
이웃집에 내다 팔아서 더이상 헤잠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아딜러는 도움을 받기가 미안하여 더이상 헤잠에게
양과 빵을 가져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헤잠은 더이상 아딜러에게 갈 일이 없어졌지만 날이 갈수록
아딜러가 자꾸 보고 싶어졌습니다.
헤잠은 양들을 볼때도 언제나 아딜러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마할라의 시장에서 올리브 기름을 팔아 살아가는
무하마드라는 가난한 청년 상인이 아딜러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딜러는 마음속으로 헤잠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헤잠에게 용기를 내어 헤잠을 좋아하는데 헤잠은 어떠냐고 하니까
헤잠은 속으로는 아주 아주 좋아하면서 부끄러워서 그럴리가 없다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전혀 사랑하지 않는듯 말했습니다.
아딜러는 헤잠같은 부자가 자기를 아내로 맞이 할리는 없을거라
생각하며 실망하고 아딜러에게 헤잠만큼 자상하지도 않고
헤잠만큼 잘해주지는 못하지만 너무도 적극적인 가난한 무하마드와
결혼을 했습니다.
헤잠은 아딜러의 결혼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을 하며
매일 넓은 초원에서 매일 소리 내어 울다가 이성을 잃어 미친듯이
긴칼을 빼들고 수천마리나 되는양들을 모두 긴칼로 목을 쳐서
죽여 버렸습니다.
양들의 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나왔고 헤잠은 온통
빨간 양의 피를 뒤집어쓰고 마치 빨간 악마처럼 날뛰다가
그도 자신을 찔러 죽어 버렸습니다.양의 시체가
썪는 비린내가 몇개월동안 마할라 초원에 진동했고
몇해동안 아무도 그 초원엘 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해 양들과 헤잠의 피로 물들었던 붉은 초원은
빨간 꽃들이 빈틈없이 무수히 많이 피어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꽃이 동물의 피를 양분으로 했기 때문에
기름이 참 많을거라 생각 하여 그꽃의 씨앗을 짜보았더니
정말 기름이 콸콸 나오는것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장사수완이 좋은 무하마드는 이 사실을 알고
아딜러에게 주인이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 있던 헤잠이
살았던 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습니다.
아딜러는 그것이 헤잠의 집이라는것을 알고 그곳에 안가려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무하마드는 아딜러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헤잠이 살았던 집으로 함께 이사를 했습니다.
초원 가득히 피어있는 빨간꽃의 씨앗을 받아 이듬에 또 몇배나
더 많이 씨를 뿌려서 다시 얻은 씨앗으로 기름장사를 하여
무하마드와 아딜러는 큰 부자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그 초원의
한가운데 집에서 유체꽃 기름 장사를 하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무하마드는 물론 아딜러도 죽을때 까지 헤잠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무하마드와 아딜러가 죽은 수년후에 양피지에
쓴 헤잠의 일기가 입에서 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펜션에서 여장을 풀고 시간이 남아 펜션에서 5분거리인 만성리 레일바이크 가는길에
바다 건너인 경남 남해군 남면에 위치한 천황산과 봉전산이 보이고 바다에는 화물선이 많다
만성리 레일바이크 타는곳(15:00)
난생 처음 레일바이크라는 걸 타본다
개눈에는 똥만 보이고 산꾼의 눈에는 맥길만 보이는 모양이다
언젠가 한번 걸어야할 남해지맥길이 한 눈에 들어오니... 머릿속엔 온통 산에 대한 생각뿐이다
오늘만큼은 일상의 모든걸 잊어버리고 童心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벚꽃은 흐드르지게 피어있고...
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고, 사람은 백 일을 한결같이 좋을 수 없다.
레일바이크 타는 검은모래 해변이 있다는데 여름철이 아니라 갈일도 없다
이곳에서 택시를 저녁에 먹을 햇감을 사러 여수교동에 있는 어시장으로 향한다
여수수산시장(17:00)
개불
개불과에 속하는 의충동물. 학명은 Urechis unicinctus von Drasche 이다.
의충동물은 좌우대칭·비체절성·열체강성(裂體腔性)인 동물이며, 몸통 앞끝에 있는 주둥이는
신축성이 크지만 뒤집어지지 않으며, 소화관·신경계·폐쇄혈관계·신관을 가지며 모두 바다 바닥에 산다.
매우 이색적인 동물이며 세계적으로 약 135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서는 조사가 매우 미흡하며 개불과
줄개불 2종만이 알려져 있으며, 개불이 흔하다. 개불은 몸길이가 10∼30㎝이며 몸은 부드럽고 연하다.
살아있을 때에는 몸빛이 불그스레한 유백색이고 몸 표면에 젖꼭지 모양의 작은 돌기들이 많이 나 있다.
항문 근처를 둘러싸고 보통 9∼13개의 센털이 있고, 입 뒤쪽 배면에 1쌍의 센털이 있다.
주둥이는 원추형이고, 매우 짧다. 주둥이와 몸통 사이는 잘룩하지 않다.
소화관은 매우 꼬불꼬불하고 길며 많은 가느다란 근육으로써 몸벽에 연결되어 있다.
조간대(潮間帶 : 만조선과 간조선 사이를 차지하는 지대)에서부터 수심 100m 정도까지의 바다밑
모래진흙 속에 u자형의 구멍을 파고 사는바 구멍의 양끝은 융기하였다. 생식시기는 겨울이다.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의 해역에 분포하며 이웃 일본의 북해도·본주·구주 연해에도 분포한다.
생것 또는 말린 것은 요리의 재료로 쓰이며, 도미·가자미·감성돔 등의 낚시 미끼로도 쓰인다
각종 해산물
횟집아줌마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니다... 하긴 여수와서 돈자랑하지 말랬지
횟값을 계산하는 할매들
30년을 넘게 개포동에 살면서 음.양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할매들
세발(細足)낙지
“게 꼬라지 미워서 낙지 산다.”
미운 사람에게 이로운 일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게를 요리하면 실상 먹을 것이 별로 없지만, 낙지는 머리부터 발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먹는어물로 옛 어른들 말씀처럼 낙지는 버릴 것이 없다.
낙지는 한자어로는 석거(石距)라고 하며, 장어(章魚)·낙제(絡蹄)라고도 쓴다.
《자산어보 (玆山魚譜)》에 보면, 맛이 달콤하고 회·국·포를 만들기 좋다고 했으며,
《동의보감 (東醫寶鑑)》에 성(性)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다.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갯벌의 인삼' 새발낙지는 목포가 유명하다
목포세발낙지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진이 지은 <자산어보>에 보면 필수아미노산과
머리를 좋게 하는 dha, 철분이 풍부해 빈혈 예방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기록돼 있으며,
먹물에 들어있는 타우린 성분은 당뇨예방과 시력회복,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고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명시되어 있다.
목포세발낙지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72년 호남고속도로가 개통 되면서
싱싱한 세발낙지가 산채로 서울로 상륙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목포세발낙지는 故 박정희 대통령도 처음 목포를 방문했을 당시 세발낙지 탕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해삼류(海蔘類)는 극피동물문 해삼강(Holothuroidea)에 속하는 해양 무척추동물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이축방사대칭이고 오이모양이며 완과 가시는 없다. 옆으로 다니기 때문에 입과 항문은 서로 반대쪽에
있고 이치적으로 좌우대칭이 된 동물이며 입 주위에는 촉수가 있고 석회질의 작은 골편이 두터운 체벽근육에 흩어져 있다.
보대구는 닫혀 있으며, 관족은 흡반이 있으나 잘 발달해 있지 않고 천공판은 몸 속에 있으며, 식도는 석회환으로 싸여 있고
소화관은 길며 차극은 없고 호흡수가 있다. 암수딴몸 또는 암수한몸으로서 체외수정을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은 음식에도 적용된다.
내가 먹는 음식은 산해진미에 버금가는 맛있는 요리지만 남이 먹을 때는 엽기 식품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엽기까지는 아니지만 해삼도 나라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해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삼은 그다지 고급 식품은 아니었다.
지금은 값이 비싸진 만큼 우리 역시 귀하신 몸 대접을 하지만 예전에는 썩 환영받는 해산물이 아니었다.
포장마차에서 멍게와 함께 먹는 안줏거리였고 고급 횟집에서 광어나 도다리를 주문하면 밑반찬으로 내놓았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으로 건너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대부터 전해지는 팔진미에 해삼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와 비견되는 고급 요리로 대접받는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긴 해삼이 중국에서는 왜 그렇게 고급 식품이 됐을까?
짐작해보면 우리는 해삼이 흔했고, 중국은 해삼이 귀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반도에서는 동서남해에서 모두 해삼이 잡히지만 중국에서는 해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푸젠성, 광둥성 일부에서나 해삼이 잡히니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서는 해삼 맛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해삼은 문자 그대로 바다에서 나오는 인삼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의학서인 《본초강목습유》에서는 해삼의 약효가 인삼에 필적할 만하다고 해서 인삼이라고 했는데,
우리 문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인삼은 사람의 모습을 닮아
몸에 좋다고 해서 인삼이라고 하지만, 해삼은 남자의 ‘물건’을 닮아 신장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해삼이라고 한다고 풀이했다
횟감을 사가지고 다시 이틀밤을 자야할 펜션으로 향한다
어시장에서 바라본 거북선대교의 모습
상다리가 뿌러질 정도의 푸짐한 횟감과 음식
밤새도록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밤을 꼴딱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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