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6년 4월 17일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강한 바람...오후부터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7.5km +어프로치 2.3km / 9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금탑사 일주문-전망봉-선인대-천등산-암봉-장계지맥 갈림길-전망봉
전망봉-276봉-안부-무명묘지-별학산갈림길(왕복)-별학산-농로-851지방도(권가치)
백석삼거리-기독교인묘지-무명봉-251봉-무명봉-십자안부-문암재-임도-kt풍양기지국
팔봉산 갈림길-무명봉-시멘트도로-115.9봉-궁도장-공원유자공원-이동통신탑-성주이씨
영묘단-유자밭-폐농협창고-방사마을- 무명봉-당두삼거리-삼각마을-풍양농협 서부지점
고옥버스 정류장-민가-문관삼거리-문관마을-27.77번 지하차도-신양리고개-신양주씨 묘지
48.9봉-마을도로-도덕삼거리-65봉-학동삼거리
☞소 재 재: 전남, 고흥군 풍양면, 포두면, 도화면, 도덕면
지난주 개포동친목회에서 1년에 한번씩 가는 여행 스케줄에 따라서 2박3일간
여수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산행을 하지 않았던 탓에 몸이 상당히 무겁다
오랜만에 원정산행을 홀로 나선다.
요즘들어 내 주위의 모든것이 심란하기만 하여 무작정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 이른 아침에
지인의 도움으로 금탑사 입구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금탑사 이곳저곳을 두루 들린 다음에
가람을 빠져 나와서 천등산 등산로를 진입하여 장계지맥 첫구간의 발을 내디딘다
서고흥(장계)지맥 (帳契枝脈)이란?
고흥지맥 △천등산(553.5m) 북쪽 0.3km에 위치한 암봉에서 분기한 30.7km로
사스막재(임도),별학산(x342m),권가치(851번 도로),△팔봉산(x184m),도로(고흥유자공원),
적산(x200m),장계산(x227m),△비봉산(218.4m)을 거쳐 동봉 방파제 에서 맥을 다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서고흥 지맥이라 부른다
서고흥(장계)지맥 개념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금탑사 일주문(08:05)
일주문 앞에서 차에 내린다...새로 조성하는 일주문은 단청을 조성하지 않은
탓인지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금탑사 경내로 접어든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소재지에서 천등산(550m) 중턱에 위치한 금탑사까지는 약 7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금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7세기말)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처음에 절을 세울 때 금탑을 함께 세웠다고 해서 이름을 금탑사라 하며
약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가람으로 금탑사는 4단으로 나누어 가람배치가
되어있는데 1단에는 범종각, 2단에는 법당과 무주당, 요사채 그리고 3단에는 명부전과
나한전이 있고, 마지막으로 4단에는 삼성각과 선원이 있는 구조이다.
금탑사 범종각
금탑사 초입에 들어서면서 범종각을 만나는데 첫 느낌이 좀 어수선해 보인다
범종각을 지나면서 돌계단으로 올라서는 좌측으로 2층 누각이 보이는데 금화루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좌측으로는 금화루 바로 앞쪽엔 극락전이 있고 마당에는 5층 석탑이 보인다
금탑사(金塔寺)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금탑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혹은 인도 아육왕(阿育王)의 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하여 금탑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1597년(선조 30)에 궁현과 옥순이 중건하여 수백인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이 절 뒤에는 지상 약 5m의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약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기 위하여 찾아온다.
또한, 절 주변에는 비자나무숲과 독치성(禿峙城) 등 유서 깊은 곳이 있다.
대동지지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의 태(胎)를 이곳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탑사 괘불탱(金塔寺掛佛幀.보물 제1344호)
금탑사괘불탱은 옆으로 긴 폭에 삼세불과 주요 협시보살을 그린 독특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는 괘불이다.
크기는 길이 506㎝, 폭 648㎝로, 사천왕 등의 권속을 배제하고 주요 협시보살만으로 구성된 간략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삼세불은 화면을 가로로 3등분하여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상단과 하단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고 본존은 원만한 얼굴에 귀·눈·입·코 등이 작게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옆으로 퍼져 있으며,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어깨는 각이 지게 표현되어 있으며, 발목에는 치견(侈絹)이 장식되어 있다.
괘불탱을 보관하고 있는 괘불궤는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괘불보다는 약100여년 전에 만든 이른시기의 것이다.
조선 정조 2년(1778년)에 비현과 쾌윤이 함께 그린 이 그림은 작은 이목구비의 표현,
옆으로 퍼진 육계에 큼직한 정상계주, 각이 진 어깨, 발목의 치견장식 등에서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문화재청 자료인용)
금탑사 금화루
금탑사 극락전(金塔寺極樂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하나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중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사찰로
승려들은 천등산의 ‘천등’이란 가섭존자(迦葉尊者)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크게 천등불사(千燈佛事)한
것을 이르는 것이고, 금탑사의 ‘금탑’이란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보탑(寶塔)을 건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말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03년 궁현·옥순대사가 중건했다가 숙종18년(1692년) 불에 타버리고
극락전만 남았다고 하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지방 문화재102호)을 비롯해서 명부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보물1344호인 괘불탱이 있다.
절 주위의 울창한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239호이다. 4만여평의 면적에 약 3,3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금탑사와 암자주변에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주변에는 율곡 이이의 부친이 호환(虎患)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나무가 있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숲은 사찰 창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흥 10景중에 하나이다
금탑사 극락전은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아미타불들 모시는 법당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1층이며,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금탑사 극락전은 공포와 그 밖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말기적인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약한 굵은 원형기둥을 세웠다.
창방과 평방은 굵은 부재로 하여 길게 좌우를 빼냈고 그 위에 기둥 사이에 포를 배치하였다.
기둥과 평방이 결구된 부분의 내부에 용모양을 만들어 용머리를 밖으로 내놓았고, 외 3출목에 내 4출목이다,
살미첨차의 앙혀부분은 둥그렇게 굽어올라 가지 않고 직각으로 깍아 각을 이루고 있다.
첨차의 굽면 역시 둥그렇지 않고 경사지게 깍아 강직한 맛을 풍긴다.
약간 넓은 중앙칸에는 2조의 기둥 사이 포가 있고 협칸에는 1조의 기둥 사이 포가 있다
법당 내부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2개의 대량에 걸쳐 놓은 기둥을 세우고 닷집을
만들었으며, 연등천장이면서 중앙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보개천장을 설치하였다.
이 보개천장과 내부공포와의 사이에는 다시 빗천장을 설치하였으며
용의 몸뚱이를 한 부재로 공포와 대량을 연결하여 설치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2분합의 문은 빗살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처마밑이 모두 공포로 휩싸인 듯한 느낌을 주며 4모서리에 활주를 세웠다
금탑사 요사채
금탑사에 들어서니 말 그대로 절간이다... 적막강산같은 절간에 개 한마리만 요란하게 짖어댄다
명부전(冥府殿)
시왕전 또는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한다.
후불탱화로는 지장보살 뒤에 지장탱화를, 시왕의 뒤에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향해 우측편에 위치하며, 대표적인 예로는 강화도
전등사의 명부전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의 명부전을 들 수 있다
5층석탑과 금화루
무위당
가람의 규모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 능가사보ㄷ도 더 큰 느낌이지만 가람의 관리는
전라도의 여느 사찰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다... 더군더나 법당마다 문이 잠겨있어
참배도 못하고 씁쓸하게 극락전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절마당을 빠져 나온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 10년을 가지 못하고 꽃이 아무리 이쁘기로서니 열흘가기 힘들터인데
그걸 모르는 부류의 인간들이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아닐까... 與니 野니 하며 쌈박질하는
국회의원 나리들... 당신네들 쌈박질하는 이유는 民草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게 아니라
당신네들 밥그릇 싸움 아닌가요... 요즘 민초들이 당신네들 뭐라 부르는지 알기나 아요
國害議員이라 부릅디다...이번 4.13 총선에 민초들의 분노를 제대로 파악이나 하셨는지요?
저질 코미디보다 못한 꼴값을 떨다가 쫄딱 망한 여당... 그렇다고 야당... 당신네들이 이뻐서
표를 준거 아니니, 제발 꼴값 좀 떨지말고 민초들을 좀 섬기시길.. 모르면 이 꽃한테 배우던지...
금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
고흥 10景중 제5경인 비자나무는 일본 남쪽섬이 원산지이며 목재나 관상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섬들과 해안지역 산에서 자라며 특유의 향이 있고
열매는 약으로 씨의 기름은 요리로 사용되고 있다.나무는 가공하기 쉬워서 가구나 조각및 선반의 재료로 쓰인다.
금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비자나무 숲은 사찰 창건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3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민족의 역사를 굽어보고 있다.
천등산 중턱에 13ha에 걸친 넓은 면적을 자리하고 있고 비자나무숲 주변에는 율곡 이이의 부친이
호환(虎患)이 두려워 심었다는 너도밤나무도 보인다
금탑사 진신사리탑
본격적인 장계지맥 산행을 시작하다(08:20)
근데 실천이 잘 안됩니다요
철쭉도 요염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 천등산으로 향한다
남쪽지역이라 그런지 산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다
고흥군의 이율배반적인 산림행정
명산으로 불리는 곳에는 이렇게 100m 단위로 이정표를 세워놓고 민초들이
낸 세금을 펑펑 써면서 이름없는 산에는 아예 길도 없으니...
물푸레나무
지방에 따라 쉬청나무, 떡물푸레나무, 제주에서는 물푸레낭이라고도 불린다.
영명은 Korean ash이며, 한자명으로는 물에 담그면 푸른색이 나온다는 데에서 수청목(水靑木)
또는 수창목(水倉木), 한방에서 생약재로 쓰이는 물푸레나무 껍질의 생약 이름은 진피(秦皮)라서
진피수, 줄기와 가지에 흰 색의 얼룩무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백침목, 어린 가지가 초록색이라고
해서 청피목, 가지를 씹으면 쓴맛이 나와서 고수 또는 고력, 잎이 박달나무(檀박달나무 단)를 닮았다 하여
석단(石檀),습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수거류라고 하였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진백목, 백랍수, 동과수, 수동과라 불린다.
그밖에도 목서, 침목, 봉피수, 분계 등이 모두 물푸레나무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며 한자로는 물푸레나무 침
(또는 물푸레나무 진)이어서 침목(木)은 물푸레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물푸레나무 또한 이름에 나무의 특징을 담은 예이다. 잔가지나 껍질을 벗겨서 물속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곧 물푸레나무인데, 즉 물을 푸르게 한다는 뜻이다
고도를 조금씩 높이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는 길이 무쟈게 좋다
전망암(08:40)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누굴 기다리시나?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전망암에서 카메라로 당겨본 금탑사
아침에 지나온 금사제도 보이고...
맥산행의 大家이신 살아있는 전설 신경수 선생의 시그널
마북단맥이라... 나로서는 꿈도 꾸질 못하는 곳을... 늘 安山하시길...
선인대(仙人臺:09:00)
상당히 넓은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의 지명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하여 선인대란다
지난해 3월 22일 고흥지맥 걸을때 이곳을 왔으니 꼭 13개월만에 오는 셈이다
어젯밤 엄청나게 불어대는 태풍의 영향탓인지 능선에 오르니 몸을 가누기
힘들만큼 바람이 드세다... 바닷가라서 그런가... 천등산으로 향한다
천등산에서 바라본 거금도(巨金島)
거금도는 고흥군 금산면에 속해 잇는 섬으로 지명의 유래는 섬 안에 큰 금맥이
뻗어 있어 거금도라 불린다는 이 섬의 한가운데 솟아 있는 적대봉은 북쪽으로
천등산, 마복산, 서쪽으로 장흥 천관산과 마주보고 있는 섬인데 이곳에서 빤히 보인다
고산 윤 선도가 보길도에 운둔하면서 거금도에 놀러와 거금도의 비단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거금팔경(巨金八景)을 읊었다고 한다
거금도는 1970년대에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면서 희망을 주었던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고향이란다.
김일선수가 프로레슬링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귀국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임자 소원이 뭐야’라고 물으니 고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게 소원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이
그 소원을 들어줘서 그 당시에 고흥에서 제일 큰 녹동읍보다도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난해 4월에 걸었던 월각산과 철쭉공원의 모습
예전에 봉수대였던 천등산으로 올라선다
천등산(天登山:553.5m:09:03)
고흥반도 최남단인 고흥군 풍양면, 포두면, 도화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3면봉으로
다도해의 여러섬에 둘러쌓인 산으로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다고 하여 天登山이라 불렀으며 금탑사(金塔寺)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이 있엇던 옛날에 스님들이 정상에 올라 천개의 등불을 바쳤다는 설과
금탑사 스님들이 도를 닦으려고 산 정상에 올라와 밤이면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다고 하여 천등산이란 설이 있다.
천등산 정상 2등 삼각점(△고흥 26 / 1990 재설)
천등산과 별학산에 관한 전설
천등산(天登山:5553.5m)의 지명유래와 관련해 두 가지의 설이 전해진다.
‘하늘을 오르는 산’ 또는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듯한 산’이라는 뜻이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풍양면 송정리 송정마을과 천등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인데 천등산과 서쪽에 있는 별학산(別鶴山:342m)이 서로 하늘 높이 올라가겠다고
매일 밤이 지날때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별학산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서 바위 높이를 매일밤 키워서 천등산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별학산의 탐욕을 꾸짖어 벼락을 내리쳐 바위를 부수었고
승부는 천등산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별학산을 아래에서 바라보면 바위가 부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별학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호랑이상(虎像)에 해당되어 그 산자락에 묏자리를
쓰지 않았다고 하며,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한 별학산 암봉 아래 위치한
천등, 송정마을에서는 좀처럼 큰 인물이 나지않고 있으며 호랑이 등을 탄 산너머
사동마을 출신들은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천등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고흥반도 최남단 풍남항과 딸각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풍남항은 한때 수군만호가 지킨 조운(漕運)의 경유항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어항이다.
천등산은 풍양면과 도화면, 포두면 등 3개 면에 걸쳐있으며, 이 산은 올라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산세가 우람하고 품위가 있다.
딸각산의 명칭은 바위를 밟으면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 전한다.
해서 ‘딸각산’이라 불리던 것이 ‘달각산’으로 바뀐 것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달 월(月)’자와 ‘뿔 각(角)’자를 쓴 것이라 한다
천등산 동쪽으로는 해창만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팔영산과 조계산, 동남쪽으로는 비봉산과 마복산이 보인다
흔히 고흥을 이야기할 때 지붕없는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산에서보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천등산 봉수대
정상에는 조선조 때의 봉수대 축성이 흐트러져 있고 기우단으로서도 유명한 곳이며,
고흥 반도에서 팔영산, 적대봉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산이라 남해의 조망이 특히 뛰어나다.
이 봉수대는 동쪽의 마복산과 서쪽의 장기산과 봉수가 통했다고 한다
동북쪽엔 지난해 3월에 걸었던 악명높은(?) 고흥지맥 능선과 조계산이 보인다
잠깐사이에 땀이 마르면서 추위가 엄습을 해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지만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암봉(09:15)
서고흥(장계)지맥 분기점(09:22)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너덜길이 나오고...
암릉 사면길을 가다가 올라서니...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올라서니 득량만과 거금도가 아련히 보인다
밤새 엄청난 태풍이 불어댔지만 시야는 생각보다 그리 좋지는 않다
옛날에 집터의 흔적처럼 보이는 시누대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전망암(09:35)
뒤돌아 본 천등산
송정님... 잘 계시죠?
편안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청순한 붓꽃(꽃말:좋은 소식)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베낭에서 봉지를 꺼내서 고사리를 꺽어면서 산행을 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금도
사스막재(09:50)
고흥군 풍양면 율치리 사동마을에서 송정리 천등마을을 이어주는 임도에 있는 고개로
자세한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예전에 고흥지맥길에 철쭉공원에서 걸어 내려올 때 지나간
임도에 있는 재인데 이정표(파고라 쉼터.정상 1.1km. 철쭉공원 2.3km)가 서 있고 그늘막
위에는 보라색 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좌측으로는 송정리로 내려가는 등로에는
일반 산악회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지만 장계지맥 길은 그늘막 뒷쪽으로 이어진다
좌측 아래로는 풍양면 송정리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풍양면 송정리(松亭里)는 천등산 아래에 있는 농촌마을로 옛날에 마을 뒤 월각산(月角山) 능에
노송이 울창하여 때때로 학이 날아와 앉았다고 하며, 울창한 노송을 상징하여 송정(松亭)이란 지명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천등과 냉정마을이 있다. 천등(天燈)은 천등산 아래 서쪽에 있어 천등산의 정기를 받아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냉정(冷井)은 옛날에 마을에 우물이 없어 식수난에 처해
있을 무렵, 어느 풍수가가 우물장소를 정해주면서 “이 석간(石間)에서 솟는 물이 매우 차고 맑고 시원할 것이다”라고
하여 그 장소에 우물을 설치하니 찬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그 유래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을 이름을 냉정(冷井)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 선생님! 이곳은 무슨 분맥, 단맥인가요?
쉼터 뒷쪽으로 오르자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276봉(10:00)
서래야 박건석님께서 사스목봉이라고 코팅지를 붙혀놨는데 지도상은 276봉이다
전국의 산에서 자주 만나는 서래야님... 산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대단하신 분인데
지명을 적어놓은 것에는 웬지 믿음이 좀 가지않는 느낌이다
276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별학산의 모습
276봉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에 오르는데 음나무가 지천이다
에공 아까운거... 1주일만 일찍 왔드라면... 베낭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음나무 잎만 딴다
갈림길(10:30)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장계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무명묘지 한 기가 있다
묘지 주위에는 고사리가 꽤나 많이 보인다.
할미꽃도 이별을 준비하고...
별학산 갈림길(10:31)
장계 지맥길에서 조금 떨어진 별학산으로 향한다
별학산 오르는 길
오늘 내가 지나온 천등산과 고흥지맥길의 월각산... 그 앞의 딸각산도 보인다
별학산(別鶴山:10:40)
고흥군 풍양면 매곡리와 풍남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천등산과 높이 경쟁을 하다가
별학산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서 바위 높이를 매일밤 키워서 천등산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별학산의 탐욕을 꾸짖어 벼락을 내리쳐 바위를 부수었고 승부는 천등산의 승리로
끝났는데 그런 탓인지 별학산을 아래에서 바라보면 바위가 부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별학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호랑이상(虎像)에 해당되어 그 산자락에 묏자리를 쓰지 않았다고 하며,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한 별학산 암봉 아래 위치한 천등, 송정마을에서는 좀처럼 큰 인물이
나지않고 있으며 호랑이 등을 탄 산너머 사동마을 출신들은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별학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별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남항과 득량만... 그리고 거금도
득량만(得粮灣)의 입구는 남서쪽으로 열려져 보성만과 연결되며 고흥군·보성군·장흥군 등의
일부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양면 동쪽 연안에는 유인도인 우도와 무인도인 각도섬·구룡도 등이 있다.
주변해안에는 넓은 간석지가 펼쳐지며, 특히 득량면 해평리와 대서면 남정리 연안에 득량만방조제를 쌓아
그 일대에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어 있고 만의 연안에서는 낙지·장어 등이 많이 잡히며, 김·미역·굴·피조개
·키조개·바지락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또한 만의 남동쪽 용당해안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서 예로부터
낚시터로 유명하다... 주변에는 마늘밭이 많이 보인다
다시 별학산 갈림길(10:55)
별학산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약간의 너덜길로 내려서니...주변에 으름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갈참나무 군락지 옆사면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시멘트 농로
이곳도 온통 마늘밭이다... 이 지역은 마늘의 주산지인 모양이다
권가치(11:10)
풍양면소재지에서 매곡리, 풍남리로 이어지는 85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이다
좌측으로 도로를 따르니 백석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백석삼거리 이정표 직전에서 우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등로로 접어든다
풍양면 매곡리에 있는 백석마을은 옛날에 마을 앞에 염전이 많이 있어서,
흰소금을 100석 이상 생산하였으므로 흰소금이 많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간척지는 1979년에 앞바다가 매립되면서 농토화 되었다.
조금전에 올랐던 별학산을 한번 뒤돌아 보고...
기독교인 묘지(11:15~11:30)
등로로 올라서니 기독교인이었던 부부의 묘지가 있고 이 묘지 주변에도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고사리를 꺽어면서 베낭을 내린김에 초코파이 하나와 쥬스로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지금부터는 또다시 고흥지역의 악명높은 잡목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곳이다
간벌을 한 잡목이 마구 어지럽게 널려있어 아예 길은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빨간천이 장계지맥을 안내한다...영산기맥길의 초록색 천처럼...
무명묘지(11:35)
이 험한 곳에서 현오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이런곳을 개고생하면서 왜 다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251봉(11:50)
개념도상의 251봉에 서래야님께서는 권가봉이란다...권가치고개 윗쪽에 있는 봉우리라서 부르는 모양이다
안부(12:00)
무명봉을 지나 지독한 잡목지대를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종아리는 가시에 걸려 피가나고...미치겠다
열기구인지 에드벌룬인지 이곳에 떨어져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안부(12:15)
예전에 민초들이 다녔던 흔적이 있는 희미한 고개가 보이는데 아마 이곳이
지도상으로 보면 풍양면 율치리에서 안동리로 넘어 다녔던 고개인듯 싶다
율치리(栗峙里)는 밤나무를 많이 심어 울창해진 곳에 자리잡은 마을로 율치(栗峙)라는 지명 또한 여기서 유래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삼신, 사동, 내율이 있다. 삼신(三新)마을의 지명은 이 마을이 하천 두 개를 끼고 있어서 3개의 반으로
호수가 분산되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내율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밤송이와 비슷하여 율촌지국(栗村之局)
이라고 하였는데 마을은 마치 밤송이 안에 있어 알밤과 같으므로 내율이라 불렀다고 하며 율치리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내율(內栗)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등로 아랫쪽에는 유자밭과 문암제 저수지가 보인다
문암재(文岩峙:12:25)
풍양면 안동리 문암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로 고개 아래에는 유자밭이 보인다
풍양면 안동리 문암마을은 옛날에는 무명의 한적한 촌락이었으나,
풍수가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앞의 큰 바위 위에서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읊었다 하여 그 바위를 문암(文岩)이라 부른데서 마을 지명도 유래하였다.
문암재를 오르자마자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길로 접어든다
청룡봉(129.3m:12:30)
길은 보이질 않고 잡목은 자꾸만 갈길바쁜 산꾼을 괴롭히고...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곳 양지바른 곳에 가져온 온수로 국수를 끓여 소주한병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바로 아래에 야막리 청룡마을이 있어서 청룡봉이라 붙인 모양이다
단촐한 점심식사(12:40~13:00)
식사를 마치고 능선을 치고 오르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3:15)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이동통신탑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kt 풍양기지국(13:25)
기지국을 지나서 직진으로 내려가니...
팔봉산 갈림길(13:30)
팔봉산으로 가는걸 포기하고 우측 임도로 걸어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팔봉산을 눈팅이 짓거리만 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조금 더 진행하니 벌목지가 나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풍양면 야막리(野幕里)
고흥군 풍양면에 있는 마을로 농촌지역이며 마을 앞으로 고읍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야막, 청룡, 죽시가 있다. 야막마을은 야막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조선 세종 때 양정공 유습이 벼슬을 내놓고 낙향하여 이곳에 활쏘는 사장을 만들고
들판에 막을 쳐서 궁수들이 휴식을 취한 곳이라 하여 야막(野幕)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유자공원과 궁도장(흥무정)이 있으며 청룡(靑龍)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선인등학 명당의 청룡지형에 해당된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죽시마을은 옛날에 마을 주위에 대나무가 많았고, 부락의 중앙을 흐르는 고읍천 부근은
옛날 정기 시장이 열리는 곳이었으므로 죽시(竹市)란 지명이 생겼다.
야막리에는 지방문화재자료 제184호인 상림리 삼층석탑이 있다
전남문화재자료 제218호인 야막고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명봉(13:38)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유자밭이 나오고...
유자밭에서 직진으로 가질않고 좌측으로 꺽어지니...
최근에 조성된듯한 묘지 2기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내려선 다음에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시멘트 도로(13:45)
이정표(신선바위 0.3km, 궁도장 0.6km→)가 있는 도로를 따라서 오른다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어린 참취나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산꾼들에게 악명(?)높은 훼방꾼인 딸기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115.9봉(13:55)
편백나무가 있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궁도장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궁도장 (14:00)
궁도장에는 오늘 활을 쏘는 궁사들은 보이질 않는다
유자밭 갓길을 따라가다가...
좌측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유자밭 담장을 직진하여 치고 내려오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급경사로 내려오니 2갈래의 도로가 나오는데 유자밭으로 오르는 길과 궁도장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興武亭”이란 표시석이 있고 길 건너에는 고흥유자공원이란 입간판과 성주이씨 재실이 보인다
고흥유자공원(14:10)
국내의 대표적인 유자 생산지인 고흥과 녹동사이 국도변(풍양면 한동리)에 위치하였으며,
교통이 편리하고, 숲을 이루고 있는 유자공원에 오면 늦가을 매혹적인 유자향기를 만끽하면서
공원 산책로를 따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란다
전망대, 산책로, 탐방로, 약수터, 쉼터 등의 시설로 조성된 공원으로 공원 입구쪽에는 유자공원
특산품 전시판매장이 있으며, 고흥 유자 재배의 역사, 특성, 약리효과 등 고흥유자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수 있으며 유자제품으로 생과, 유자쥬스, 유자청 등 가공제품을 비롯한 고흥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유자공원 아랫쪽으로 내려가니 이 지역의 초대면장을 지내신 분들을 비롯한 다섯분의
공적비가 서 있고 유자공원 판매시설이 있기에 이곳에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한병을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바로옆에 있는 유명한 참샘의 약수를 한 통받아서 다시 길을 나선다
풍양유자공원에 위치한 영원한 참샘의 물 약수터는 신체에 꼭 필요한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미네랄 성분 다량 검출되었단다
참샘의 유래는 옛날 다리가 불편한 어린 소녀가 마을 앞에서 들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목이말라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걸 살펴보고, 남몰래 매일 매일 이곳 물을 마시게 되었다
그 후에 절름발이가 정상인이 되어 이 모습을 본 어머니가 깜짝놀라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물으니
소녀는 샘물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에 두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여인이 심하게 천식을 알았는데 이 물을 먹고 깨끗이 나았는데 선인들은 이곳을 참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시 유자공원 입간판 있는 곳으로 오니 성주이씨 효부비가 있다
조금전 유자밭에서 내려온 길 맞은편 도로로 올라간다
성주이씨 재각을 지나 빨간색 포장도로로 오른다
이동통신탑(14:25)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좌.우로는 전부 유자밭이다
성주이씨 영묘단(14:30)
이곳에는 엄청난 규모의 가족묘지가 여러개 보이는데 전부 성주이씨 묘지이다
마늘밭과 유자밭 사이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77번과 27번의 4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유자공원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좌측으로 따른다
유자밭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마치 제주도의 밀감밭을 걷는 기분이다
유자밭 도로에서 좌측으로 올라선 다음에... 계속 유자밭 가운데로 지나간다
계속되는 유자밭
유자의 유래
유자밭 끝에오니 철조망이 막혀있어 우측으로 내려서니 김운례여사의 묘지가 나온다
폐농협창고(14:40)
예전에 농협의 창고였는데 지금은 창고는 이사가고 사람이 사는지 개새끼 한마리가 잡아먹을듯이 짖어댄다
농협창고 건물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간다
다시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오르니 유자밭이 나오고...
유자밭 우측에는 묘지가 있는데 짐승들 때문인지 묘지 주위로 철조망이 처져있다
흐미! 이쁜넘들 이곳에서 두릅을 약간따서 전리품으로 챙기고...
다시 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방사마을(14:50)
풍양면 한동리에 있는 마을로 대표적인 과수작물인 유자의 보급과 생산이 활발하다.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 방사마을 입구의 구릉 위에 6기의 고인돌이 있다.
또 하나의 고인돌군은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밀양박씨 선산에 있다.
모두 6기로, 그중 1기는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밭에 있다. 동-서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덮개돌 일부가 땅에 묻혔거나 기울어져 있는데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다
방사마을 가운데로 가로질러 장계지맥길을 이어간다
방사마을 마지막 집을 지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뒤돌아 본 풍양면 한동리(寒東里)
한동리는 마을 앞으로 고읍천이 흐르는 농촌지역으로 대표적인 과수작물인 유자의 보급과 생산이 활발하다.
자연마을로는 한동, 한서, 대청마을이 있으며 한동마을 주변에는 옛날에 매우 찬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의 동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라 하여 한동(寒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한서마을은 옛날에 마을에 수양버들 나무가 많아 양류사(楊柳祠)라 불렀으며 찬 우물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한서(寒西)라 하였고 대청 마을의 남서쪽 태산에 위치한 고흥고읍성지는
태조 4년(1395) 조양현(현 보성군 조성면)으로 옮겨가기 이전까지 고흥현의 치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우측으로 마을 상수도 저수조가 보이고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농로를 따라가니 유자밭이 나오고...
유자밭의 좌측으로 걸어간다
유자밭에서 다시 산속으로 들어서니 유인김해김씨의 묘지가 나오고...
바로 위에는 묘지를 이장한듯한 넓은 공터가 보인다
무명봉(14:55)
무명봉에 올라서니 여영님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기고 바로 앞에는 넓은 황토밭이 펼쳐진다
황토밭을 가로질러 내려가니... 도로가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도로로 내려서니 당두리 마을 표시석이 보인다
당두(堂頭)삼거리(24.9m:15:05)
풍양면 당두리(堂頭里)는 앞바다가 매립되면서 농토화 된 마을로 간척 사업 이전에는
마을 옆 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면, 앞산 메닭골 산정상에서 볼 때 이 마을 뒷산이 수면에
떠있는 기와집 용두머리와 같은 형국이라 하여 마을명을 당두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당두와 공호가 있으며 공호는 옛날에 마을 선창터에서 정부조세를 집합하여
선편으로 운송하였다 하여 공세금이란 지명으로 불렸다고 하며, 그 후 조선말기에 마을이름을
공호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두 삼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
27번 구도로가 지나는 곳이며 녹동과 도양에서 고흥으로 가는 길인데 지금은
인근에 4차선 신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고흥군내 버스만 다니는 한적한 길이다
아침에 올랐던 천등산과 조금전에 지나온 유자공원도 보인다
당두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이젠 날씨가 꽤나 포근하다
도로옆에는 열부경주김씨 비석이 보인다... 울 할머니 존경스러워요
삼각마을 입구(15:15)
풍양면 고옥리에 있는 삼각(三角)마을은 세 개의 산줄기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풍양면 고옥리의 모습
고옥리(沽玉里)는 농촌지역이고, 조선조 흥양현 고읍면의 사창이 있던 곳으로 조세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선창가에 있었다고 하며 자연마을로는 대가, 삼각, 축두가 있다. 대가(待價)마을은
고옥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옥체산의 줄기가 마을 뒤로 뻗어 있어, 마치 옥(玉)을 사려고 기다리는
모습의 지형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고 삼각(三角)마을은 세 개의 산줄기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축두마을은 몽중산 아래 부락을 이루고 있는데, 몽중산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소의 모습과 같고 마을은
소의 머리에 해당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 좌측으로는 서부방앗간과 버스정류장 구멍가계가 있다
이곳에서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베낭 옆구리에 있는 수통이 안보인다
이걸 어째... 하는 수 없이 구멍가계에서 500원주고 조그만 생수 하나를 산다
풍양농협 서부지점(15:17)
농협창고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풀속에 묻힌 이정표를 지나니...
좌측으로 고옥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오고...5분정도를 도로를 따라 걸으니 새로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고옥버스정류장(15:25)
버스정류장에서 도로를 버리고 정류장 뒷쪽 농로로 접어든다
마늘밭 가운데 농로로 들어서니...
농로옆에 흥양이씨세장산비가 나오고...
마늘밭을 지나니 농가 한채가 보인다
농가옆을 지나는데 개새끼가 잡아먹을듯이 나에게 달라든다
농가를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마늘밭 가운데 황토밭을 가로 지른다
아카시아, 산딸기, 찔레꽃...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잡목의 저항을 물리치고 마늘밭 가운데로 내려선다
혹 이곳에도 50,000원짜리 돈다발이 묻혀있진 않겠지...ㅋㅋㅋ
문관삼거리(15:35)
고옥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오면 2분이면 내려올 거리를 개고생하면서 뭔지랄인지...
우측으로 고흥만 정미소가 있고 조금을 더가니 도덕면 표시석이 있다
풍양면과 이별을 하고 본격적인 도덕면으로 접어든다
문관마을(15:40)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에 있는 문관마을은 조선시대 세종 때 장흥부의 목장이었던
도양관이 서쪽에 있으므로 이곳은 목장에 들어가는 문이 되기 때문에 문관이라고 하였다
문관마을 유래비
도덕면 표시석 뒤에 있는 수준점... 수준점은 사라지고 표지판만 보인다
문관마을 버스정류장에서 77.27번 국도를 버리고 우측 농로로 올라선다
新 27.77번 국도 지하차도(15:45)
지하차도를 지나자마자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으로 올라선다
농로 좌측으로는 고흥에서 녹동으로 향하는 신 27.77번 4차선 국도가 시원스레 달린다
고흥군을 관통하는 27.77번 신국도의 모습
시멘트 농로에서 좌측 국도변 절개지로 올라선다
우측에는 시원스레 고흥만 간척지가 보이고...
우측의 농로를 버리고 절개지로 들어서니...
빽빽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눈 앞이 캄캄하다
잡목의 거센 저항을 뚫고 나오니 마늘밭이 나오는데 다리가 풀린다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2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신양리(新陽里) 고개(16:15)
좌측으로 도덕면 신양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고흥간척지로 연결되는데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주택이 하나 있는데 문은 굳게 잠겨있어 옆쪽으로 들어간다
도덕면 신양리는 남해바다를 향해 돌출된 반도 지역으로서 바닷가에 있는 해안 지역으로
27번 국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에는 문관, 신양, 장동, 장전, 회룡, 신성이 있다.
문관은 세종 때 장흥부의 목장이었던 도양관이 서쪽에 있으므로 이곳은 목장에 들어가는
문이 되기 때문에 문관이라고 하였고 신양은 양지바른 곳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장동은 마을이 긴 골짜기 안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장전은 도양목장의 앞이라는 뜻이고
회룡은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회룡고조형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신성은 장전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옆쪽 산으로 들어가니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다...하는 수 없이 철조망을 넘어 집으로 향하는 도로로 간다
예전에 잘 살았던 집 같은데 망해버렸는지 완전히 폐가로 변해있다
마당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청미래 덩쿨과 노송나무, 아카시아 등 별 잡것들이 길을 막는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나온다...ㅆㅂㅆㅂ
新安朱公 묘지(16:30)
무명묘지를 지나니 조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좌측으로는 신양마을이 보인다
신양마을로 통하는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저멀리 고물상쪽으로 향해서 간다
도로가에 서있는 전봇대
고물상을 끼고 능선으로 오르니...
봉분에 잔디가 하나없는 무명묘지를 만난다
48.9봉(16:50)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장난이 아니다... 이리저리 숲을 헤치니 유자밭이 나온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나오는 삼각점을 찾을길도 없고 풀이 너무 우거져 찾을수도 없다
유자밭을 지나고...
또다시 강력한 잡목의 저항에 시달린다... 내가 왜 이지랄하는지...
ㅋㅋㅋ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근데 이건 아니다... 미치겠다
악천고투끝에 잡목지대를 지나 내려서니 마을이 나온다
새로 조성된 도로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선다...또다시 잡목지대를 헤치고 나오니...
마늘밭이 펼쳐지는데 풍양은 유자가 유명한 곳이고 도덕은 마늘이 유명한 곳인가보다
마늘밭과 밀밭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간다
밀밭 아래로 내려가니...
오성건축자재가 있는 도덕삼거리로 내려선다
도덕삼거리(17:10)
도덕삼거리 우측에 있는 현충탑
현충탑 안내판
다시 도덕삼거리로 되돌아가서 우측의 산으로 올라선다
또다시 잡목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장계지맥길을 이어간다
이동통신탑이 있는 65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탱자나무 모종을 심어놓은 밭을 가로질러 가는데 좌측에 도덕육교가 있다
65봉(17:25)
65봉 정상에는 이동통신 3사 중계탑이 있고 바로 옆에는 天安全氏 가족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천안전씨 가족묘지가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학동 삼거리(17:35)
학동마을 입구
마을의 지세가 학(鶴)의 형국을 하고 있어서 붙혀진 마을이름이다
도덕면 버스정류장(17:40)
오늘 산행은 여기서 접어야 될듯싶다... 잡목과의 전쟁으로 옷과 몸이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더 이상 산행을 진행하기가 무리일듯 싶어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18시 10분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고흥읍으로 향한다
맥산행중에서 가장 힘든곳이 고흥지역이 아닐까... 이쪽을 쳐다보고 오줌도 안누고 싶다
오늘 산행중의 전리품 - 두릅
부수입 - 고사리와 음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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