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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서고흥(장계) (終)

서고흥(장계)지맥 제2구간 - 학동삼거리에서 동봉항 방파제까지

by 범여(梵如) 2017. 4. 10.

산행일자: 2017년 4월 8일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짙은 스모그...한여름과 같은 더운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9.2km / 8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학동삼거리-도덕면소재지-도덕중앙경로당-도덕삼거리-회룡마을 입구-학동상수도 배수지

                갈림길(1)-갈림길(2)-덕산사 갈림길-179.4봉-유황동굴 갈림길-적산-파고라 쉼터

                몽둥게재-157봉-폐농가-127봉-도로 삼거리-114.6봉-매실밭-176.1봉 갈림길-176.1봉

                다시 갈림길-묘지-임도-장계리 갈림길-93.3봉-강릉유공 묘지-장유고개-91.6봉-김해김공묘지

                장수고개-115.6봉-임도사거리-인동장공 묘지-141.9봉-관리마을 갈림길-소망정-이동통신 정문

                장계산-관해정-둘목재-팔각정-팽나무재-신안주씨 묘지-상유삼거리-유언수충훈비-S.K주유소

               차경마을-김녕김씨 묘지-무명봉-비봉사 안부-무명봉-인동장씨 숭조당-임도 삼거리-비봉산

              돌탑-신안주씨 묘-갈림길-압해정씨가족묘-대봉고개-안동김공 묘지-74.7봉 갈림길-밀양박씨 묘

              77번 도로-60봉-중촌리사무소-봉암중앙교회-경주김씨 문중묘-37.1봉-동봉항 방파제

소 재 재: 전남, 고흥군 도덕면, 도양읍

 

해 4월 17일에 1구간을 하고 나서 근 1년만에 장계지맥 2구간을 나선다

이른 아침에 차를 타고 도덕면소재지 입구 학동마을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박종율 선생 자료 인용)

학동(鶴洞)마을 입구(07:30)

고흥군 도덕면 도덕리 학동마을은 학의 모습이라 학동이 되었다고 한다

학동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07:25)

y자 형태의 삼거리인데 GPS상의 서고흥(장계)지맥은 (주) 안산건설이라는 적별돌 건물이 있는 곳이고

계속해서 주택들이 들어서 있기에 정상적인 맥길을 진행할 수가 없어서 좌측의 넓은 도로쪽으로 향한다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을 가니 우측으로 도덕면 지서가 나오고 좌측으론 도덕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맞은편 초원건강원 건물로 들어선다

중앙마트를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G.P.S상의 원지맥길은 수협 도덕지점 골목으로 되어 있어서 들어가보니...

학동식당 간판과 수협 건물이 보이고...

주택이 길을 막고 있어서 지맥길을 이어갈 수가 없다

다시 되돌아 나와서 좌측의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도덕중앙경로당(07:40)

고흥군 도덕면은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마을이란다

서기 538년 백제후기까지는 도량부곡이라는 촌락이었으며, 1983년도 고흥군 도양읍 도덕출장소가

도덕면으로 승격되었으며,넓은 간척지 조성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쌀과 마늘 위주 농사와

참다래·호박 등이 주 소득원이라고 한다  

학동씽크공장이 나오고...

회룡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도덕삼거리(07:45)

도덕 삼거리가 나오는데 아침에 산행을 시작할 때 학동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농협주유소와 회룡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초반부터 이 길을 따라왔으면 편히 올 걸 지맥길

원칙을 좋아하다가 괜스레 시간만 허비한다 

회룡마을 입구(07:47)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 회룡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와 마을 표시석이

있고 마을의 지명인 회룡은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회룡고조형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회룡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직사등이란 표지판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선다

녹색 휀스를 따라서 올라간 다음에...

본격적인 마루금에 들어선다

유채꽃과 마늘밭 사이의 황토길인 지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고흥읍 도덕면(道德面)의 모습

고흥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으로 북동쪽에는 고흥호, 서쪽에는 보성만, 북쪽에는 득량만, 남쪽에는 거금수도가 있다.

남쪽 해안에는 삼호방조제가 조성되어 있고, 그 안쪽에는 간척으로 이루어진 농경지가 널리 펼쳐져 있다.

북쪽 해안에는 용동해수욕장과 금호해수욕장이 있으며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는

도양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으며, 1973년 도양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그곳에 도덕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도덕출장소가 승격하여 도덕리에서 도덕면()이 되었다.

현재 면 소재지인 도덕리를 비롯하여 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도덕리는 1914년에 덕흥() · 도촌() · 봉동() · 북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도촌과 덕흥을 조합한 지명이며, 가야리()는 『호구총수』의 가야리()와 관련이 있다.

가야는 가장자리란 뜻으로 가야() · 가야()는 음을 취한 한자식 표기이다. 현재는 가상() ·

가동()으로 분리되어 있다. 신양리의 장전() 마을은 조선 시대의 장흥부 관할이었던 도양목장

앞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오마리()는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는 오마도리()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늘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김해김공과 부인 밀양손씨 묘지가 보인다

학동상수도 배수지(07:55)

배수지 우측엔 적산 안내도가 있다

맥 산행에 관한한 해박한 이론가이신 현오님...언제 지나가셨나?

적산을 향한 오름길은 아주 좋다

계절감각이 없다... 진달래도 이제 피는데 철쭉도 피어있다

인간이나 꽃이나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갈림길(1)(08:03)

등로 좌측으로는 두릅밭이다

산꾼들에겐 늘 귀찮은 존재인 산딸기꽃

갈림길(2)(08:05)

갈림길에서 서있는 이정표(→정상 1.40km)

적산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좋다

덕산사 갈림길(08:08)

179.4봉(08:18)

육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엔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확인하지 못했다

유황동굴 갈림길(08:19)

적산가는 길 좌우로는 야생녹차밭이 보인다

적산(198m:08:23)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산 중턱에  삼나무들이 많이 있고, 삼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삼나무는 측백나무과의 침엽수로서 원산지는 일본이지만  한국과 일본에 분포한다 

수피가 적갈색을 띠고 있어서 적산(赤山)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삼나무는 국내에서는 경남과 전남지역에 조림 수종으로 식재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

방풍림으로 많이 식재되어 있으며, 볕이 잘들고 강우량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만

내한성과 내공해성에 약하다.

준.희선생이 산패를 붙혀놨다

등로에서 바라본 도덕면 신양리(新陽里)의 모습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는 남해바다를 향해 돌출된 반도 지역으로서 바닷가에 있는 해안 지역이다.

27번 국도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마을에는 관, 신양, 장동, 장전, 회룡, 신성이 있다.

문관은 세종 때 장흥부의 목장이었던 도양관이 서쪽에 있으므로 이곳은 목장에 들어가는 문이 되기 때문에 문관이라고 하였다.

신양은 양지바른 곳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장동은 마을이 긴 골짜기 안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장전은 도양목장의 앞이라는 뜻이고 회룡은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회룡고조형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신성은 장전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간다

파고라 쉼터(08:26)

파고라는 휴게시설의 일종으로 사방이 트여있고 골조가 있는 지붕이

있어서 햇볕이나 비를 가릴 수 있으며 앉을 자리가 있는 시설물을 말한다

이곳은 운동기구 시설들이 많이 보이고  장동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임도가 보인다

우측으로는 신양리 장동마을로 내려가는  임도이다

장동은 마을이 긴 골짜기 안에 있어 붙은 이름이며 이곳에서 우측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벤취 뒷쪽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장계지맥의 고행길이 시작된다 

초반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늘 존경의 대상인 준.희 선생의 시그널

초반부터 등로는 아예 보이질 않고 그나마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을 위로 삼아 걷는

落花

둥게재(08:30)

고흥군 도덕면 신양리 장동마을에서 도양읍 관리(官里) 비선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숲이 너무 우거지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없는 고개인데 공식 지명이 뭉둥게재라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등로 주위에는 야생 녹차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길이 전혀없는 야트막한 능선을 치고 오른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157봉(08:38)

조금씩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완만한 능선을 내려서니...

능선 아랫쪽엔 농장이 보이고 농장에서 라디오 소리가 크게 들린다 

농장을 내려서기 직전에 흐드르지게 핀 벚나무와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길을 이어간다

동백

자목련도 핀 이곳에서 조금을 내려가니...

폐농가(08:50)

매주 지맥길에서 만나는 맨발님의 시그널...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철조망 안쪽으로 계속 걸어간다

벚꽃 터널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야생 녹차나무들이 보이고...

농장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심한 잡목을 저항을 받으며 오르막으로 오른다

127봉(09:05)

127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농장으로 이어지는 편한 길이 나온다

좌측으론 묘지들이 보인다

시멘트 도로 삼거리(09:09)

도로로 올라서니 가야할 176.1봉이 보인다

좌측으론 매실농장이 보이고...

114.6봉(09:15)

매실농장 가운데를 지나 가는데...

농장 가운데 있는 묘지에는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매실농장 끝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야생녹차 군락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176.1봉 갈림길(09:23)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알바하기 딱 좋은 코스이다

독도에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지맥길에서 2분정도 떨어진 176.1봉으로 향한다

176.1봉(09:25)

약간 펑퍼짐한 봉우리 정상에는 잡목만 무성하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이 분은 이 봉우리 아래의 마을 이름의 지명을 붙혀놨다

고흥군 도양읍 장계리에 있는 신흥마을은 고종 때 새로 생긴 마을로 번창할 것이라는 뜻에서 신흥(新興)이란 이름을 붙였다  

176.1봉 삼각점

숲속에 숨어있는 삼각점을 찾았건만 깨져있고 아무런 표시도 안되어 있어 판독이 불가하다

다시 돌아온 갈림길(09:30)

우측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잡목에다 야생녹차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가시나무들이 엄청나게 산꾼을 괴롭힌다

준.희선생의 시그널이 보이니 지맥길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묘지(09:35)

할미꽃도 벌써 저버렸다

등로에서 바라본 득량만과 실억도(實億島)의 모습

실억도는 고흥군 도양읍 장계리에 있는 조그만 무인도로서 득량만에 있다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니 엄청난 잡목들이 산쑨을 괴롭힌다

등로 우측으로는 숭조당(崇祖堂)인 듯한 새로운 건물이 보인다 

조그만 봉우리를 끼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임도(09:42)

시멘트 도로를 건너 매실밭으로 들어선다

매실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간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시인, 1945-)

매실밭을 넘어서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176.1봉이 보인다

매실밭을 넘어서니 삼나무 군락지가 나오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집에와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대다수 산꾼들이 이곳으로 오질않고 마을 도로로 향했다

야생 녹차와 동백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지나온 적산이 보이고, 이곳으로 오는 등로는 ⊂형태로 되어있다

잡목들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묘지 봉분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지금 막 피기 시작하는 두릅들이 많이 보이고 좌측의 도양읍

장계리에서 짖어대는 개새끼들의 짖음이 꽤나 시끄럽게 들리는데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랴

베낭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서 두릅을 따기 시작한다

장계리 갈림길(10:00)

좌측으로는 도양읍 장계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이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야트막한 등로로 올라서는 길엔 두릅나무들이 지천이다

이곳에서도 꽤나 많은 두릅을 수확했고, 엄나무와 땅두릅도 조금 수확했다

93.3봉(10:15)

93.3봉을 지나니 통정대부를 지낸 김해김공의 묘지가 나온다

강릉유공 묘지(10:22)

강릉유공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인다

장유고개(10:22)

고흥군 도양읍 관리에서 장계리로 이어지는 2차선 830번도로가 있고, 좌측으로는 장유저수지가 보인다

임도에서 바라본 장유저수지의 모습

830번 도로를 지나 시멘트 도로롤 올라섰다가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선다

가시나무를 헤치고 개고생을 하면서 올라선다

황토밭이 나오고 황토밭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밭 가운데를 지나는데 고사리가 꽤 많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득량도(得粮島)와 장흥 일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득량만에 있는 유인도인 득량도는 원래는 장흥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 완도군에 편입됐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행정 개편때  고흥군 도양읍 득량리다.

 

임진왜란 당시 지금의 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아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식량이 떨어졌다.

그래서 비봉리 선소(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가 배가 부서지면 고치던 곳)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그때 식량을 얻은 지역이라 하여 얻을 득(), 곡식 량()을 써서 득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편, 만을 막아 생긴 넓은 간척지에서 곡식을 구할 수 있게 되어 득량()이라는 지명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풀을 엮어서

성재봉 산마루에 쌓아 왜군들에게 그것을 군량미로 속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황토밭에서 내려와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가야할 장계산과 비봉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가 편안한 우측의 시멘트 도로로 유혹(?)하지만

그래도 자칭 정통 맥산꾼이 변칙적으로야 산행을 할 순 없제

시멘트 도로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통에다가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흥군 도양읍 장계리 장수항(壽港)의 모습

득량면을 끼고 있는 조그만 어촌마을로서 조그만 포구가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장수마을은 마을지세가 거북이 꼬리형국이라 하여 장귀미라고 부르며 또 옛날 이 마을에

자손이 귀하여 거북이처럼 오래 살면서 번영을 바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장수()라 한다.

억새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잡목을 헤치며 거친 능선이 나온다

억새가 무성한 넓은 공터가 있고...

91.6봉(10:57)

91.6봉에서 바라본 고흥군 도양읍 장계리 장유마을의 모습

마을의 지명은 마을 앞에 시냇물이 길게 흘러 장류(長流)라 하였다고 한다

농장의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농장 도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꺽어진다

관리가 안된 묘지가 보이고...

이곳 역시 산꾼 범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찔레꽃 가시가 엄청나게 괴롭힌다 

커다란 돌배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꼬깔 제비꽃(꽃말:즐거운 생각)

이 분은 제 멋대로 이십니다... 91.6봉이 조금전에 지나왔는데 지명도 맘대로 봉우리 위치도 맘대로...

김해김공 묘지(11:05)

넓은 공터가 나오고 통신탑이 있는 가야할 장계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줌인한 장수항과 득량도의 모습

풍곡농원 차단기쪽으로 내려선다

장수고개(11:10)

고흥군 도양읍 관리 관중마을에서 장계리 장수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2차선 포장도로에 고개 좌측으로는 풍곡농원이 있지만 망했는지 잡초만 무성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밭으로 오른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흥군 도양읍 관리(官里)의 모습

27번 국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해바다 연안지역으로서 서남해안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다.

서남해안권 개발시대에 부응하여 개발여건이 구비되고 있으며 농어촌과 도시 기능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상, 관중, 관하, 수동, 원동, 비선이 있으며,관상, 관중, 관하는 과거에 관청이 위치한 관리였으나

분리되면서 윗마을은 관상, 중간의 마을은 관중, 아랫마을은 관하가 되었고, 수동은 마을 주민의 평안과 장수()를

바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고 원동은 옛날에 관사의 행정관소인 원이 있어 마을 이름을 원공이라 하였다가 조

선 광해군 때에 원동이라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비선은 마을 앞에 비봉산이 보이고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비선이라 칭하게 되었다

밭에서 내려서 밀양박공 묘지 뒷쪽으로 올라선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좌측 임도로 오를 걸, 엄청나게 후회스럽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묘지들이 보인다

장계지맥 능선에서 계속 만나는 빨간리본 주인공

이 분도 엄청나게 원칙을 좋아하시는데 정말 개고생 하십니다

날씨는 덥고 미칠 지경이다

115.6봉(11:23)

가야할 장계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 사거리(11:25)

장수고개에서 좌측 시멘트 도로로 올라오면 20분 이상은 시간을 단축할 듯 싶다

임도 사거리에서 직진의 비포장 도로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 좌측의 직진으로 올라서 가시 능선으로 들어선다

인동장공 묘지(11:35)

등로에서 당겨본 득량도

가시밭길 오름길에서 만난 준.희님...존경합니다

날씨는 덥고 잡목은 태클을 걸어대고...내가 뭔 지랄한다고 이런 개고생을 하나

141.9봉(11:38)

이 분은 이곳을 왕녀봉이란다...왕의 여자면 妃냐 嬪인가...이해가 안되는 지명이다

거친 등로를 내려서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가 보인다

공포의 산딸기 나무 군락지를 지나는데 갑자기 뭔 소리가 난다

멧돼지 한마리가 산을 마구 파헤치다가 내 베낭의 라디오에서

나는 음악소리에 놀라 도망을 치는데 그 넘도 놀라고 나도 놀랬다

어지러운 잡목 능선을 내려서니 유자나무를 심어논  밭이 나온다 

관리마을회관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관리마을회관 갈림길(11:45)

이정표(←관리마을회관 0.9km, ↗ 편백쉼터 0.3km)가 있다

돌탑이 보이고...

장계지맥길은 극락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느낌이다 

등로가 좋은곳은 아주 좋고, 험한 곳은  산꾼을 완전히 녹초로 만드는 곳이 장계지맥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잘 관리된 가족묘지가 보인다

이정표가 보인다

소망정(11:55~12:10)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서 올라오니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소망정이라는 팔각정이 있다

이곳까지 오는데 오늘의 날씨는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더운 탓에 베낭에서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을까 생각을 했지만 당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아무도 없는 팔각정에서 혼자 점심 대용으로 가져온 약과와 과일, 막걸리 한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은 장계산을 장기산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소망정 뒷쪽으로 편백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편백나무에서는 항균성 물질인 피톤치드가 다량 배출되어 심폐기능 강화, 스트레스 해소, 탈취,

면역기능 향상,아토피 치료 등에 좋다고 하여 우리나라 남부지역의 지자체에서는 편백나무

휴양림을 많이 조성하는데 대표적인 곳이 영산기맥길에 있는 장성의 축령산이 아닌가 싶다

이곳 장기산 편백건강숲길은 2010년도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으로 조성되었으며

총 면적은 2만평 정도이고 산책로 길이는 약 1km정도이며 천천히 걸으면 30분정도 걸린다고 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직진으로 가면 장계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우주천문과학관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장계산으로 오르는 길도 편백나무 군락지로 조성되어 있다.

이동통신 중계탑 정문(12:12)

저 뒷쪽이 장계산 정상이다

우측 임도를 따라서 정상으로 향한다

임도를 따르는데 장계산 정상의 억새에 파묻힌 봉수대가 보인다

장계산 정상에도 kt통신탑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장계산(帳契山:227m:12:15)

고흥군 도양읍 장계리와 관리, 용정리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아마도 산 아래에 있는 장계리에서 따온듯 하며 이 지역 주민들은 장기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정상에는 kt 중계기지와 묘지 2기가 있고 바로 옆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장계지맥의 주봉치고는 정상석 하나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이다

방치된 장계산 봉수대

모든게 방치된 채로 억새풀이 무성한데... 이 지역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듯 하다

봉수대 안내판

돌양지꽃(꽃말:사랑스러움)

등로로 내려서니 100m 단위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관해정(觀海亭:214m:12:20)

장계산 정상에서 200m정도 지나니 아주 우람한 2층 팔각정이 나오고 팔각정 내부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건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한명도 안보인다

하기사 오늘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산에서는 사람 한명도 구경하지 못했다.

팔각정의 규묘는 아주 큰데 녹동청년회의소(JC)가 지인한테 대지를 기증받아 만들었단다

관해정 맞은편 산 정상에는 우주천문과학관이 보인다 

이곳 팔각정(관해정)은  녹동청년회의소 창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지역민의 휴식공간이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에 선 종후씨로부터 부지를 기증받고

고흥군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1999년 9월 22일에 녹동청년회의소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둘목재(12:30)

벤치 2개가 있고 우측으로 약간 꺽이는 지점이 둘목재라는데 고개같은 느낌이 안든다

이곳에서 우측의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171.4봉(12:32)

171.4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관리가 되지않는 묘지가 보이고...

다시 조금전에 헤어졌던 산책로를 만난다(12:35)

편안한 길을 걸어가니 졸음이 쏟아진다

이 넘은 뭔 제비꽃일까...종류가 하도 많아서...걍~~~그냥 보라색 제비꽃

팔각정(12:38)

예전에 공동묘지였나?... 관해정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산책로 옆엔 유난히 묘지가 많다

팽나무재(12:40)

아주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 산책로를 버리고 급히 좌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임도를 만나고 이곳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묘지를 바라보면서 급하게 내려선다

신안주씨 묘지(12:42)

임도를 따라서 내려서니...

임도에서 내려서니 77번국도 구도로가 나오고 우측엔 신명석재, 길 건너엔 오일뱅크 녹동주유소가 보인다

가야할 비봉산이 뾰족하게 서있는데 또 얼마나 힘을 써야 할 지...(12:45)

녹동주유소를 지나니 상유삼거리가 나온다

상유삼거리(12:48)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에 있는 상유마을은 77번 구도로와 신도로가 만나는 삼거리가 있고

고흥에서 녹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아 꾀꼬리 집터라하여 한때 柳田이라 불렀으며 그중 윗마을에 해당되므로

上流 또는 웃유전이라 이름하였다가 1943년 리.동통폐합 개편에 따라 上流라 한다

도로가에 체육인의 탑이란 표시석이 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머리를 다쳐 마스크를 쓰고

맹활약을 한 김태영 선수의 축구장이 보이는데 예전에 고흥지맥길에 고흥읍내는 박지성

축구장도 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당시 골기퍼였던 김영광 선수도 고흥 출신이다

 

흔히들 "여수에서 돈 자랑, 순천에서 인물 자랑,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의 바리에이션 중에

고흥에서 힘 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 박치기왕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링의 김일,

프로복싱에서 돌주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제두, 양궁 금메달 리스트 장용호, 배구선수 신진식

우리나라 배구선수 국가 대표 명세터로 활약했던 류중탁(고려증권)은 우리 집사람의 외사촌이다 

기계유언수충훈비(12:50)

뒤돌아 본 상유삼거리의 모습

S.K 주유소(12:52)

S.K 주유소를 지나자마자 영업을 하지않는 24시 셀프 세차장이 보인다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니 마늘과 양파를 심은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다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르니 가야할 비봉산과 차경마을이 보이고 도로로 내려선다 

차경(且耕)마을 입구(13:04)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시대에 녹도만호가 주둔한 인접마을이므로 且耕이라고

불렀으며 지형이 또아리처럼 생겨 또아리라고도 하는데 갈고 또 갈고 하여 비옥한 전답을 일

구었다하여 且耕이라 한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마을안으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니 양파밭이 나오고 밭두둑을 따라서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김녕김씨 묘지(13:10)

김녕김씨 묘지를 지나 잡목의 저항이 심한 능선으로 들어선다(13:12)

뒤돌아 본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龍井里)의 모습

도양읍 용정리는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남해바다 연안지역으로 자연마을에는 상류, 유전, 안평,

차경, 장길, 남암, 장예, 잠두가 있는데, 상류는 과거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전이라 불렀는데 그 중

윗마을이므로 상류가 되었고 유전은 상류가 분리되고 남은 마을이다.

안평은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고 차경은 고 또 갈고 하여 매우 비옥한 논밭을

일구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남암은 장계산 남쪽의 마을로서 남바위라는 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고

잠두는 북쪽 산의 모습이 풍수지리상 잠두지형국이라 하여 식량이 풍부하여 마을이 번창한다는 뜻이다

능선에 들어서자마자 가시나무들이 범여의 몸뚱이를 할키기 시작한다

왜 선답자들이 정상적인 등로가 아닌 마을의 우회길로 갔는지 이해가 된다

무명봉(13:16)

찔레꽃의 저항에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질 않는다

비봉사 안부(13:20)

좌측 능선 아랫쪽엔 비봉사가 보이고 우측엔 묘지가 나온다

무명봉

안부에서 능선으로 치고 무명봉으로 오르는데 이곳 역시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니 희미한 임도가 보인다

잡목의 괴롭힘을 참아내며 내려서니 커다란 묘지가 보인다

인동장씨 숭조당(13:34)

인동장씨 숭조당 뒷쪽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좋아진다

편안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 삼거리

이곳부터 비봉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개설중이다

고흥읍은 최근에 이 비봉산에 있는 흉물스런 철탑들을 철거하고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6,300만원이라는 예산을 들여서 산책로를 개설한다면서 산책로를 만든다는 핑계로

산 전체를 깔아 뭉개놓고 있는데 범여의 개인적인 생각은 자연은 그대로 두는것이 최고다

그래도 나같은 독립군은 다 찾아오는데 말이다

비봉산으로 오르는 도로를 새로 개설중이다

임도를 따라서 가면 직진 코스로 오르는 것보다 훨씬 먼 느낌이다

이제 수통에 물도 간당간당하다...이곳에서 베낭을 베고 누운채로 휴식을 취한다(13:40)

또다시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치고 올라간다

계속되는 등로와 임도와의 숨바꼭질

드디어 비봉산 정상에 올라선다

비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녹동(鹿洞)의 모습

행정구역은 고흥군 도양읍이지만 일반인들에겐 도양읍보다는 녹동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흥양)에 의하면 삼국 시대에는 신라 장흥부의 도량부곡()이었다.

지명은 이 도량부곡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도양읍은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싸우다 순국한 이대원,정운 장군의 충혼을 기리는

쌍충사가 있고,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소록도가 위치한 곳이다.

비봉산 정상은 한창 공사중이라 모든게 어수선하기만 하다

비봉산(飛鳳山:218.4m:14:00)

고흥군 도덕면과 도양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녹동의 진산으로 정상에는 이동통신탑과 2등 삼각점이 있고

맞은편 바다 건너는 거금도와 소록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장흥의 천관산이 보이며,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장계지맥의 분기봉인 천등산과 별학산이 보이는 전망이 아주 멋진 곳이지만 짙은 스모그가 발목을 잡는다

 

동국여지승람 지리지에 의하면 확실한 년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지관이 경향각지를

탐방하던 중에 장계산까지 와서 앞의 바다를 내려다 보고 인근 촌락의 부녀자들이 썰물이 되자
갯벌로 나와 갯거리 (게,굴,고막,파래 등)을 하려고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갯벌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로 모여 들어 작업 준비를 하고 흩어졌다가 밀물이 되니까 또 다시 그 바위로
모여들어서 갯거리를 씻고 잠시 쉬었다가 뭍으로 나오는 모습이 마치 꿀벌떼가 모여드는 것
같더라 그래서 그 바위를 벌바위 즉 봉암이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그 바위가 지금은 오마

수지 안에 있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해서 벌이 나는 산으로 또는 봉황이 나는 산으로 바뀌였는지는 추정할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지 이 산의 지명이 비봉산으로 바뀌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비구산이라도 한다

비봉산에서 바라본 봉암(鳳岩)마을의 모습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봉암리는 27번 국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해바다 연안지역으로서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신정, 북촌, 평화, 녹동, 봉서, 대봉, 동봉, 중촌, 봉산, 매동, 상화도, 하화도가 있다.

신정은 마을 지형이 정()자 모양으로 생겨 지어진 이름이고 평화는 벼농사가 주업이므로 벼 화()자를

사용해 지은 이름이며, 녹동은 녹도만호진성 내에 있었던 마을로서 녹동1구에서 녹동6구까지 있다.

봉서마을은 비봉산 아래 위치한 마을이며 대봉은 봉서 중에서 큰 마을이라서 개칭한 마을이며

매동은 매화 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또한 상화도와 하화도는 과거에 꽃이 만발한 섬이어서 꽃섬 즉 화도라 부르다가 둘로 나누어 부르는 것이다.

 

봉암리에는 조선시대 수군의 해안 방어기지였던 녹도진()의 성()으로, 1490년(성종 21) 10월 축조되었다.

종4품 무관직인 만호()가 배치된 만호성()이었던 녹도진성은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녹동(옛 지명은 녹도)마을에 있었는데 녹도진의 설치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조선 초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봉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비봉산 정상 2등 삼각점(△회천 26 / 1990복구)

녹동 너머로 보이는 소록도(小鹿島)

섬의 모양이 작은 사슴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한편으로 현재의 녹동항 부근은

과거 녹도라는 섬이었다고 하는데 그 녹도에 비교하여 작은 녹도라 해서 소록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예쁜 이름과는 달리 한센병 환자의 애환이 깃든 사연 많은 섬이다

 

소록도를 두고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전라도(全羅道)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떄까지

가도 가도 천 리(千里), 먼 전라도 길.

비봉산 정상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니 벤취 하나가 나온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저 멀리 장계지맥의 분기봉인 천등산이 어렴풋이 보인다

돌탑(14:15)

돌탑을 지나자마자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를 내려서니 최근에 개설한듯한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다

곧바로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 희미한 길을 조금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신안주씨 가족묘(14:22)

갈림길(14:23)

우측으론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좌측의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압해정씨 문중묘(14:25)

우측의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무작정 치고 들어가니 아예 등로는 없다

콘크리트 시설물이 보이고 아카시아, 찔레꽃, 각종 가시나무들의 백화점인듯 하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내려가지만 등로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에 좋다는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뼈 질환 다스리는 호랑가시나무
구골목(枸骨木)이라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나 크리스마스 철에 장식용으로 널리 쓰는

잎이 육각 꼴이고 가시가 많고 빨간 열매가 달리는 나무라면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구골목을 우리나라 말로는 호랑가시나무라고 하며 서양에서는 홀리(Holly)라고 부른다.

호랑가시나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육각 꼴의 잎결각 끝에 붙은 날카로운 가시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가 이 나뭇잎에 붙은 가시로 등을 긁는다 하여 ‘호랑이 등긁기 나무’라고

부르다가 ‘호랑가시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긴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가시관을 쓰고 이마에 피를 흘리며 고통을 받을 때

그 고통을 덜어 주려고 날카로운 가시에 몸을 던진 작은 새가 있었다고 한다.

로빈이라고 하는 이 작은 새는 예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부리로 뽑아내려고 애쓰다가

자신도 가시에 찔려 죽게 되었다는데 바로 이 로빈새가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잘 먹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고 성탄절에 장식용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에는 카페인, 사포닌, 탄닌, 쓴맛 물질 등이 들어있다.

성질은 평하며 맛이 달고 간, 신장, 폐에 작용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의 해안가에 자생한다.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수나 가로수 또는 울타리용으로 흔히 심는데 특히 제주도에 많다.

변산반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사람들에게 그 효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갖가지 뼈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귀한 약나무이다.

잡목과 가시나무와의 전쟁...지독하다...후답자들은 등로를 무시하고 우회하시길...

밀양박씨 가족묘지(14:40)

묘지에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를 따르다가 잡목이 무성한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좌측으로는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봉서마을 앞에 있는 봉서저수지가 보인다

봉서(鳳棲) 마을은 원 지명은 소봉(小鳳)마을이었으나 비봉산의 줄기에 해당하는 마을로서

봉황의 날개 밑에 해당되고, 봉황의 품안에서 서식할 곳이라하여 봉서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봉고개(14:45)

도양읍 봉암리 대봉마을에서 봉서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측에는 봉서지가 있고

좌.우에는 문중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우측에는 대봉마을이 보이는데 대봉(大鳳)

마을의 유래는 조선조 말기까지 마을뒤에 누정(樓亭)이 있어 마을 이름이 봉서로

불리워오다가 , 그 중에 큰 마을이라하여 대봉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묘지위로 오르니 묘비명이 없는 묘지가 보인다

묘지를 가로 질러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니 비봉산이 산꾼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안동김공 묘지(14:50)

묘지옆 임도를 따라서 오른다

74.7봉 갈림길(14:55)

이곳에서 장계지맥의 맥길이 문제가 된다

맥 산행의 개념으로 보면 앞에 보이는 74.7봉에 올랐다가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장계지맥의 실트랙은 이곳에서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꺽어져 있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잡풀이 무성한 감나무밭이 나오고...

늪지대인지 습지 식물이 보이고 가뭄 때문에 물이 마르긴 해도 물이 흐른 흔적들이 보인다 

이건 맥산행의 기본인 山自分水嶺에 위배되는게 분명한데 이렇게 맥길을 잡은 이유가 뭔지?

모든게 의문 투성이인 문제의 장계지맥길

이곳을 먼저 지나간 박종율 선생의 자료를 인용해 보기로 한다

신산경표 트랙은 여기서 우측으로  가고 있으나 지형이 우측 아래에 물길이 있다.

실선이 신산경표트랙. 점선이 물길인데 착시현상인가?

 1918년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도   

하우스단지를 우측 갓길로 지나 가시밭 절개지 위에서 뒤 돌아 본 마루금.

출처: http://yul6629a.tistory.com/1024 [산경표를 따라서]

습지(?)에서 밭으로 내려오니 농업용 인공수로가 보인다... 맥길의 모든게 의문스럽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가 논가운데를 가로질러 마늘밭을 지난다

마늘밭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를 내려오니 우측엔 민가가 있고 조경이 잘되어 있으나 최근에 불이 난 모양이다

비싼 정원수들이 몽땅 다 타버렸다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꺽어지자마자 우측으로 꺽어져 비닐하우스 옆으로 걸어간다

비닐하우스 우측에는 망해버린듯한 인도어 골프연습장이 보인다

지저분한 절개지를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를 올라서니 아카시아 군락지가 나오는데 산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잠시동안 또다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되고...

임도로 빠져 나오니...

김녕김씨 가족 묘지들이 보인다

밀양박씨 문중묘(15:20)

엄청나게 크게 조성된 밀양박씨 종중묘역을 만난다

매장(埋葬)이 아닌 국립묘지 형식의 묘역인데 이곳은 마치 몇년전 영산기맥길의

장성, 영광, 함평지역과 비슷한 묘역들이 많이 보이는데 납골묘 형태이긴 하지만

너무 커고 어마어마한 규모이기도 하지만 동네의 각 성씨별로 경쟁하다시피 큰 규모이다보니

약간의 위화감이 들기도 하지만 호화묘지를 금지하는 국가 시책에도 역행하는 건 아닌지?

암튼간에 남도지역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禮敬은 참으로 대단하다

박씨 문중에서는 옛 묘비들도 이곳으로 모셔온 듯 하다

묘비 뒷쪽의 밭으로 올라선 다음에 내려서 도로가 나온다

77번 2차선 도로(15:22)

도로를 가로질러 농협창고 건물앞 포장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농협 창고건물의 모습

등로에서 뒤돌아보니 조금에 지나온 곳이 다 보인다

포장도로를 따라서 올라서다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니 이동통신탑이 있다

이동통신탑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60봉(15:30)

60봉 정상엔 산꾼들의 흔적이라곤 여영님의 시그널만 하나 달랑 보인다

60봉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잡목을 헤치며 내려서다가 야생차나무들을 헤치며 우측으로 내려선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도양읍 봉암리 중촌마을이 보인다

중촌(中村)마을의 지명유래는 경주김씨 대촌(大村)을 형성한 봉암리는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봉(東鳳), 중촌(中村),  봉산(鳳山), 매동(梅洞)으로 분할되었는데 4개마을중 가장 중심지에 위치하여

중촌마을이라고 한다

감나무밭을 내려오니 마늘밭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붉은 함석집 뒷쪽으로 내려선다

골목으로 빠져 나오니...

중촌리사무소(15:45)

평생 처음 리사무소라는 명칭을 본다...식수가 떨어져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다

중촌리 사무소를 되돌아 나와서 중촌4H구락부 표석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양파밭과 비닐하우스 가운데 마을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봉암중앙교회(15:50)

교회안을 들어다보니 사람소리가 들린다...이곳에서 식수를 한통 얻은 다음에 길을 걷는다

다시 마을 가운데 도로를 따른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밭 가운데 사각정자가 보인다

사각정자를 지나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마늘밭 가운데로 지난 다음에...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지니...

바다 건너 장계지맥 분기봉인 천등산과 우측으로 뻗어가는 고흥지맥의 유주산이 보인다

경주김씨 백촌공파 종중묘(16:00)

이곳 봉암리가 경주김씨 집성촌이라 그런지  나와 종씨인 경주김씨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마늘밭을 지나니 우측으로 십자가가 있는 기독교인 묘지가 보이고...

가야할 등로의 궤적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조그만 고개를 넘어니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비실이부부님 대단하셔...

도로를 버리고 마늘밭을 가로 지른다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37.1봉(16:15)

장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 우측엔 묘지 4기가 있다

막아논 감나무밭을 무단 침입을 한다

잡풀이 무성한 감나무밭을 내려서니...

농가 한채가 보이고...

개새끼들이 난리부르스다... 재들은 자기 본분에 충실한거지...

마당 끄트머리로 내려서니...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고...

급경사로 내려서는 길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동봉항(東鳳港) 방파제(16:20)

급경사로 내려서니 장계지맥의 脈은 바다로 入水하고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고흥땅에 있는 고흥지맥과 장계지맥...참으로 힘이든다...견딜만하시면 안오시는게 좋을듯 하다

지도상에는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동봉으로 되어 있으나 이 지역 사람들은 오마라고 부른다

 

동봉(東鳳)마을의 유래는  비구산(현 비봉산) 줄기인 망산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오다가 김복봉 입향조가

입향한 후  갓바구(笠岩)라 불리어 졌음 그후 봉암이라 불리어지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마을이  대촌(大村)으로

형성되자 중촌(中村),매동(梅洞) 으로 분할되어 동봉이라고 한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거금도와 적대봉의 모습

힘들게 고흥땅의 지맥길 2곳을 접수하고 인증샷을 남긴다

지맥길을 종료하고 손에 물을 담그는 의식으로 산행을 종료한다

대한민국 지맥길중에 가장 악명높고 힘든 고흥땅의 지맥을 마무리하니 홀가분하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녹동의 진산인 비봉산의 모습

동봉항의 모습

산행을 종료하고 해안길을 따라서 녹동으로 향하는데 파래를 가공하는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10분을 넘게 걸어가는데 1톤 트럭 한대가 지나가기에 히치를 시도하는데 한방에 해결된다

이 분의 도움으로 편하게 녹동버스 정류장을 왔다... 트럭 아저씨...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녹동버스터미널(17:10)

녹동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고흥. 과역을 거쳐 벌교로 가는 버스가 출발을 하려고 한다

재빨리 표를 예매하여(요금 4,200원) 버스에 오른 다음에 잠깐 사이에 잠이 든다

벌교시외버스 터미널(18:10)

녹동에서 벌교까지 약 1시간 가까이 소요된 듯 하다... 잠에서 깨어나니 벌교 터미널이다

잠깐동안 꿀맛같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몸은 날아갈듯이 가볍다

버스 터미널에서 도로를 따라서 목욕탕으로 향하는데 배가 상당히 고프다

벌교읍내 가는길

도로가 팻말에는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이란 팻말이 있는데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벌교와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소설의 주무대가 벌교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대하소설은 역사소설의 형태가 많다. 박 경리의 <토지>, 홍 명희의 <임꺽정>과 조 정래의 <태백산맥>이 대표적이다.

<태백산맥>이 주목받는 이유는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을 시작으로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 남한 내

좌익 활동가들의 행적과 이념을 최초로 긍정적으로 복권시키고 이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태백산맥>은 이 시기를 재구성하여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작품이다.
당시 반공을 강조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대놓고 빨치산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었다.

1994년 우익단체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작가를 검찰에 고발한 후, 작가는 무혐의 결정이 내려질 때 까지

무려 11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적성 시비로 고초를 겪었다

 

 

주요 줄거리는 광복 이후 좌익 세력인 염상진과 그의 부하들이 해방구를 만들고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

리고 염상진의 동생이며 우익 단체에 가입한 염상구, 지주들과 염상진 세력의 갈등을 그린다.

 

좌익세력은 여순사건으로 벌교를 장악했으나 군경에 밀려 산 속으로 퇴각하게 된다.

정하섭은 좌익의 비밀당원으로 밀명을 갖고 벌교에 잠입하게 된다.

그는 외딴 곳에 살고 있는 무당의 딸 소화를 심부름꾼으로 이용하는 가운데 그녀와 사랑을 싹틔운다.

이즈음 염상구의 청년단은 좌익세력을 척살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한편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실패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날로 심해간다.

 

1950년 6.25가 발발한 후, 벌교는 다시 좌익의 수중에 들어가지만 곧 살벌한 살육의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이 과정에서 김범우와 같은 중도적 인물들도 빨치산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김범우는 곧 미군에게 붙들려가 통역관 노릇을 하게 되고, 그들의 추악한 행태를 목격한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전세는 좌익과 빨치산 세력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어간다.

그들은 무장투쟁을 계속하지만 결국 퇴로가 막히고, 염상진은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결국 염상진의 ‘인민해방’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살아남은 그의 부하들은 그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지와 결의를 다진다

벌교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 중심지로 내려가는 길에 벌교상고가 보인다

예전에 상고들이 인문계로 바뀌거나 특수학교로 바뀌었는데 벌교상고도

벌교 제일고로 바뀌었다가 2013년에 다시 벌교상고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벌교상고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부친이 교사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하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의 부친 조종현선생은 선암사 부주지지낸 철운(鐵雲)스님이었고

그래서 조정래 선생의 출생지는 선암사이다 태고종은 대처승제도를 택하고 있고, 대처승제도는

일제시대 당시일본에서 도입된 불교의 유산이라고 보면된다

벌교상고를 지나면 벌교천을 가로 지르는 벌교철교가 나온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주는 곳이 이곳 철다리이다

세상이 다 알게 친일을 했던 자들이 무슨 명목을 붙여서던지 애국의 탈을 만들어

쓰려고 급급한 판에 염상구 정도의 이력 변조는 아주 양심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태백산맥( 제1권 189쪽)... 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쳐내다 들켜 일본 선원을

죽이고 도망을 쳤다가 해방과 함께 벌교에 돌아와서는 용감하게 일본군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한 염상구 

 

그는 장터 주막거리 쟁탈전에서 땅벌이라는 깡패의 제의에 희한한 결투를 벌인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 내리는지

담력을 겨루어 여기서 지는 자는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하고,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의 거리는 교각 4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 (태백산맥 제1권 188쪽)

 

이 결투에서 염상구에게 담력싸움에 진 땅벌은 그날밤 옛 부하 몇명의 전송이 아닌

그들의 감시속에서 고리짝만한 크기의 가방 하나를 들고 광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태백산맥 제1권 187~189쪽에서

소설속의 ‘중도방죽’은 일본인 중도(中島:나카시마)의 이름을 붙인 간척지 방죽의 이름이다

중도라는 사람은 실존인물로 철다리 옆의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하며, 작가 조정래 선생은

방죽을 쌓는데 동원된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워따 말도 마씨요 고것이 워디 사람이 할 일이었간디라, 죽지 못해 사는 가난허고 가난헌

개돼지 겉은 목숨덜이  목구녕에 풀칠허자고 뫼들어 개돼지맹키로  천대받어 감서 헌 일이제라

옛적부텀 산몬뎅이 성 쌓는 것을 질로 심던 부역으로 쳤는디, 고것이 지아무리 힘든다 혀도

어찌 뻘밭에다 방죽 쌓는 일에 비허겄소(中略)...골 빠지게 일얼 혔음스롱도 고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 애롭고 피맺히는 일얼 가난허고 배곯은 조선사람들의 손으로 혔다는

것만 확실허제... 근데 기막히게도 방죽을 다 쌓고 본께 배불리는 놈덜인 일본놈덜이었다 그것이요

소설 태백산맥( 제4권 306쪽)

벌교역 근처에 있는 목욕탕으로 가는데 배가 상당히 고프다

시장 맞은편의 만두가게에 들려서 만두 한판에다가(3,000원)

산에서 먹다남은 막걸리로 허기를 면하고 역전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니

목욕탕이 있는데 문은 열려 있으나 아무리 불러도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

하는 수 없어 탕 안으로 들어가니 남탕 안에도 사람 한명이 없다

30분간 남탕을 전세(?)내어 느긋하게 목욕을 끝내고 나와도 쥔장이 보이질 않아

프런트 노트 안에다 목욕요금 5.000원 넣어두고 벌교역으로 향한다

뻘낙지에 새조개 저 넘으로 쐬주 한잔 생각은 굴뚝같다

그러나 혼자서는 엄두가 나질않아 입맛만 다시면서 역으로 향한다

벌교역(19:20)

이틀이 지난 벌교역 한마당에는 사람의 목 하나가 내걸렸다

폭은 60cm이고 길이가 2m 정도되는 나무판이 받침목으로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에는 머리

카락을 위로 모아 묶은 목이 메달려 있었고 그 아래로 붙은 종이에는  큼직큼직한 글씨들이 씌어져 있다

악질 빨갱이 염상진 사살 (태백산맥 제10권 341쪽)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벌교역 광장은 지역유지들이 모여 국회의원을 전송하고, 신임 계엄사령관을

환영하는 등 각종 행사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묘사되고, 염상진의 목이 내걸리며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염상진의 목이 벌교역 광장에 내걸리자 소문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호산댁과 아내 죽산댁의 오열과

경찰과의 몸싸움,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동생 염상구가 내뱉은 말

“요런 개좆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장에 못 띠내럿어!”

죽은 형은 인정하는 대목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2010년부터 11년까지 호남정맥을 타면서 남도지방의 사투리와 지명을 알기위해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을 2번이나 정독한 것이 호남정맥길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방이 된 지 70년도 넘은 이 시점에도 좌.우의 이념 대결이 진행중이 참으로 안타깝다

오늘 산행중의 전리품 - 고사리

엄나물 순

두릅과 땅두릅과 쬐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