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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발안서(오두)지맥(終)

발안 서(오두)지맥 제2구간 - 서근리 사거리에서 고온항까지

by 범여(梵如) 2016. 5. 2.

☞산행일자: 2016년 5월 01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초여름같이 더운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8.2km  / 9시간 05분 소요

☞산행코스: 서근리 교차로-310도로-에덴농장 입구-화성목장-NO21송전탑-60.3봉

                장안1첨단산업단지-장안2첨단산업단지-에스로지스-대원목장-수촌육교 앞

                 감나무골-제2서해안고속도로-대현철강-밭-80.8봉-경주이공묘지-NO32송전탑

                 고속도로 수로- 장안 TG-무명봉-성지공조기술연구소 정문-임도(왕복)-기독교인묘지

                 71.5봉-나주임씨 문중묘지-동물이동통로-(주)선영엠아이피-2차선 도로-엠씨아이 건설

                 장안농장-대남산 갈림길(왕복)-대남산-소남산갈림길(왕복)-소남산-약수터-남산-장안면사무소

                 61번도로-서진산업-310번 지방도-63.6봉-밭-56.8봉-수로-삼거리-사랑1리 마을회관

                 79번 도로-희망주택-삼거리-무명봉-32번 도로-화산입구 삼거리-장자터버스정류장-봉화교회

                 82번 국도-삼각점봉-민둥봉-봉화산-두레자연고-홍천육교-소나무조림지-불로산-농장앞 포장도로

                 82번 국도-예다원 모텔-2차선 도로-이화1리 버스정류장-이화교회-64.2봉-59.7봉-보금산

                 2차선도로-53.1봉-기아스포츠 센터-석천삼거리-염광교회-석천3리-Y갈림길-매향리보건지소

                삼거리-30.9봉-기아자동차 후문-철문-22.4봉-내륙7통문-경주김공 묘지-밭-발리모텔-주택가

                 매향리횟집-21.7봉-당집-고온항

소 재 지: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장안면, 우정읍

 

이번주부터 보현지맥을 시작하기로 하고 대구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친구넘이 영천

노귀재까지 태워 주기로 하는 바람에 자료를 준비했는데 갑자기 친구넘이 부산에 볼일이 생긴 바람에

서둘러 도시화롤 인해 맥길이 없어지고 있는 한남오두지맥길을 마무리 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에다가 물과 간식만 챙긴 채 탑승지인 사당역으로 향한다

서근리 교차로에서 장안 첨단산업단지까지의 지도

사당역(07:30)

사당역에서 07시 40분에 출발하는 8155번 버스를 타고 조암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간이 조금 지났다.

조암버스 터미널(08:43)

지난주에 타고온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택시를 대기시킨 후 서근리 교차로 방향으로 향한다
택시 기사는 이 지역분인데 충청도 사투리를 쓰기에 고향이 충청도라고 물으니 부인이 충청도란다

비슷한 연배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서근교차로에 도착하고 요금이 7800원인데 7000원만 받는다

기사 양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헤어진 다음에 산행을 준비한다

서근리 교차로(08:58)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스트레칭을 마친 다음에 09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느락골 버스 정류장에서 직진하여 2차선 도로인 310번 도로로 올라선 다음에

에덴농장과 델리치푸드(좌측) 정문 사이의 좁은 小路로 올라선다

에덴농장 입구(09:05)

뒤돌아 본 서근리 교차로의 모습

델리치푸드 공장을 끼고 올라서니 전봇대에 매달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초반부터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마치 서봉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기분이다

좌.우로 목장과 축사, 草地들이 보이는데 지독한 가축분뇨 냄새 때문에 애를 먹는다

비포장 목장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가니...

목장입구(09:18)

꽤나 큰 규모의 목장이 보이건만 목장 간판은 보이질 않는다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화성목장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 곳이다

우측의 조그만 봉우리가 두건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원 지맥길은 우측 방향이나

목장에 막혀 있고 등로가 전혀없어 부득이 목장의 가운데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목장길을 따라가는데  지도상 60.3봉은 절반쯤 날아가버렸다

NO21 송전탑(09:25)

NO21 송전탑 너머로는 발리오스C.C가 보이고 공휴일이라 그런지 라운딩하는 골퍼들이 보인다

나도 예전에 한동안 저짓거리 참으로 많이 했는데... 요즘은 예전처럼 흥이 별로없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이 많이 잃었다... 지난주 오랫만에 필드를 나갔는데 어프로치가 안되서 애를 먹었다

절반쯤 날아가버린 60.3봉은 그나마도 골프장 철조망 안쪽에 있어 눈팅이만 하고 지나간다

초지로 사용될 밀밭 사이의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초지를 지나니 임도가 시작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공장건물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잡초가 무성한 넓은 공터를 지나 도로로 내려선다

장안1 첨단산업단지가 나온다

장안첨단산업단지 삼거리(09:35)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장안공단로 가운데 도로를 따라간다

좌측으로는 덴소코리아 오토모티브와 우측에는 대광이란 공장이 보인다

포레시아 공장도 보이고...

장안산업단지의 모습

덴소코리아 오토모티브(09:40)

맞은편에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3M공장도 보인다

이 산업단지는 외국인 투자촉진지구로 조성된 공단이란다

공단의 끝지점에서 직진하여 좁은 小路를 따라간다

장안 첨단산업단지에서 나주임씨 문중묘지까지 지도

에스로지스(09:50)

대원목장도 지나가고...

대원목장 너머로 넓은 초지가 보이고...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조그만

밭에서 고구마를 심는 젊은 부부를 만난다... 우측으로는 평택에서 시흥을 잇는

평택~시흥 고속도로(제2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보인다

수촌1육교(09:55)

수촌1육교에서 바라본 평택~시흥간 고속도로

수촌1육교에서 건너기 직전에서 좌측의 산 속으로 접어든다

산속에 들어서기 직전에 바라본 평택~시흥간 고속도로의 모습

조그만 산속에 접어드니 음나무들이 많이 보이지만 고속도로 옆이라 오염이 많이 됐을것 같아 눈길도 안주고 지나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도로가 나오고 감나무골이 보인다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평택~시흥간 고속도로 아랫쪽을 지난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져 고속도로 옆으로 올라선다

맞은편에 대현철강 굴뚝이 보이고 수로를 따라서 내려선다

대현철강 정문(10:10)

우측으로는 대현철강을 비롯한 철강회사들과 장안 프라스틱 공장이 보이는데 이곳은 한참 공사중이다

자꾸만 없어지는 발안 서(오두)지맥길... 후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넓은 밭 한가운데를 걸어서 지나간다

음나무 순도 보이고...

두릅밭도 보인다... 쥔장이 얼마전에 수확을 한모양이다

밭 끝자락에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80.8봉(10:20)

80.8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0:30)

임도 우측으로는 과수원이 보이고 묘지 2기가 있다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올라선다

경주이공 묘지(10:35)

오르막을 오르니 문패없는 무명묘지 서너기가 보이고 경주이공 묘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아예 등로가 보이질 않다가  잠시후 넓은 등로가 보인다

NO32 송전탑(10:40)

NO32 송전탑에서 바라본 장안TG

좌측의 수로로 내려선다

수로를 따라서 고속도로를 건넌다

다시 고속도로 옆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장안TG

 지도상의 80.6m봉은 사라지고 그 곳엔 장안톨게이트가 쥔장 노릇을 하고있다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보고...

NO32 송전탑에서 장안TG가 있는 80.6봉 ... 이 철계단이 원 지맥길인듯 싶다

절개지 능선에서 바라본 장안면 수촌리(水村里)

예부터 풍수지리적으로 청룡 백호(. )의 지형을 갖추어 지역이 아늑하고 숲이 무성하고

물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숲말 또는 수촌()이라 한데서 수촌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가장동, 꽃바테, 용당골 등이 있다. 가장동은 숲말 동남쪽 가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꽃바테는 꽃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용당골은 용신당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공장 너머 송전탑이 있는 곳이 71.5봉인에   공장이 지맥길을 짤라 먹고 있다

무명봉(10:55)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잡목의 저항으로 장난이 아니다

지맥길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주)성지공조기술연구소

(주)성지공조기술연구소 정문(11:00)

정문에서 좌측 임도로 가서 끊어져 오르지 못하는 71.5봉으로 향한다

71.5봉으로 가는 길에는 기독교인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71.5봉(11:02)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 직진으로 지맥길로 이어간다

나주임씨 문중묭에서 장자터 버스정류장까지 지도

나주임씨 문중묘(11:05)

나주임씨 문중묘 맨 위에는 어모장군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어모장군은 관계상(官階上)으로는 절충장군(折衝將軍)·어모장군(禦侮將軍)이라 별칭되었다.

고려 때의 상장군(上將軍)이 조선 초기에 도위사(都尉使)로 개칭되었다가 태종대에 상호군으로

변개되었으며, 1467년(세조 13) 정3품관으로 오위의 고급지휘관이 되었다.

『경국대전』 당시는 그 정원이 9인으로 무장(武將)이 임명되었으나, 오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화한 후기 사회로 내려오면서 1인이 감해지고 보직이 없는 문무관과 여러

다른 직 등에 무직을 띠게 하여 체아록(遞兒祿) 등을 수급(授給)하였다.

묘지위에 핀 제비꽃

묘지 맨 윗쪽으로 올라 숲속으로 접어든다

임도 갈림길(11:08)

이곳에서 독도에서 상당히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희미한 우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현오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평택~시흥간 고속도로 위로 지나는 동물이동통로가 나온다

동물이동통로(11:18)

동물이동통로 위에서 바라본 고속도로
오늘 날씨는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이지만 지맥길 산행을 하면서 반팔은 입을 수가 없다

그러다간 몸뚱아리 전체가 상처투성이가 되기에... 절개지 맨 윗쪽으로 향하는데 아래에 있는

주택가의 개쉬끼가 지랄발광을 하면서 짖어댄다... 내가 니 영역 침범도 안 했는데 왠 지랄이여!

맨 윗쪽으로 오르니 지맥길은 사라지고 공장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지맥길 끄트머리에는 공장이 가로막고 있다

공장사이를 비집고 지나간다

공장 마당으로 빠져 나오니...

선영엠아이피(주)라는 회사인데 일요일에도 작업중이다

선영엠아이피(주) 정문을 빠져나오니 맞은편에는 (주)엠티엠이라 공장이 보인다 

2차선 도로 (11:28)

도로를 가로질러 포장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엠씨아이 건설(11:35)

엠씨아이 건설 공장 너머로 가야할 남산이 보인다

장안농장(11:40)

이곳은 국유지를 빌려서 약초를 재배하는 농장인 모양이다

대남산 갈림길(11:42)

오두지맥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진 대남산을 같다 오기로 한다

대남산(大南山:90.1m:11:10)

화성시 장안면 어은리에 있는 산으로 대남산. 남산, 소남산 등 3개의 남산이 있는데

대남산 아래에는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고 조금 아래에는 휴게용 평상이 있다

준.희님께서 붙혀논 산패가 너무 높게 달려 있어서 처음에 찾지못해 평상까지 내려왔다.

마침 중년 남녀 3명이 맥주와 커피를 마시면서 캔맥주 하나를 권하는데 목이 말랐던 탓에

캔 맥주 하나를 게눈 감추듯이 감추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채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갈림길(11:20)

농장 길을 따라 올라서니 이런 이정표도 만나고...

넓은길에 휴게용 벤취도 보인다

소남산 갈림길(11:25)

곧이어 사랑리 갈림길 이정표도 만난다

 

사랑리(沙浪里)는 장안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고래, 구락굴 등의 골짜기가 있다.

옛날 이 마을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맨 끝 지역으로서 모래사장의 어구가 형성되어 사랑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징곗골, 삼괴장터, 쇠판이 등이 있고. 삼괴장터는 징곗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시장이 있어

붙은 이름이며 쇠판이는 쇠를 파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소남산(小南山:11:27)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다시 남산으로 향한다

약수터 갈림길(11:32)

드디어 남산에 오른다

남산(南山:107.3m:11:34)

화성시 장안면 어은리에 있는 산으로 마을의 안산이라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예전 쌍부현(雙阜縣) 시절에 부(府)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붙혀진 이름이라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남산 위에는 여성의 하체가 누워 있는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마귀할멈이

변해서 된 바위라 한다. 옛날에 마귀할멈이 마귀할아버지와 함께 한양으로 가다가 남산 꼭대기에서

쉬려고 했는데 남산의 산신령이 나타나  이곳은 내가 있는 신성한 곳이니 떠나라 했다

마귀할멈이 하룻밤을 자고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남산의 산신령이 노하여 마귀할멈을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해버렸다...그래서 할머니는 나체가 된 하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그 자리에서

바위로 굳어 버렸다...마귀할아버지는 산신령과 마귀할멈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조금을 더 갔지만

할머니가 바위로 변할때 함께 제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래서 남산은 마귀할멈 산이고 북쪽 맞은편에 

보이는 산이 마귀할아버지 산이다  

남산 정상에는 맨발님이 붙혀둔 산패와 의자, 이정표(←어은리. 면사무소 약수터.반환점→)가 있다

바위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바위 아래로 내려서니...

앙증맞은 돌무더기가 있고...

이정표를 따라 장안면사무소 방향으로 내려가면 어은리가 나온다

장안면 어은리(漁隱里)는 마을 대부분의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고 자연 마을로는 검누들, 독지골, 띠고개, 바람고지 마을 등이 있다.

거문들 마을은 검은 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독지골 마을은 독실한 과부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띠고개 마을은 뒷산에 띠가 많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바람고지 마을은 곶으로 되어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남산의 유래 표지판

내려가는 길은 무쟈게 좋다

이정표도 만나고...

수헌아우님 어젯밤에 준.희선생님 만나러 갔는데... 잘 계시죠?

장안면사무소가 보인다... 면사무소 뒷쪽이 지맥길인데 그냥 편한길로 내려선다

장안면(長安面)사무소(11:45)

경기도 화성시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면이다. 10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위쪽에는 화성호()가 있고,

아래에는 남양호와 아산만이 있다. 현재의 장안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장안면()과

초장면()을 통합한 것이다. 장안면에 대한 기록은 『화성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옛 마정면()을 장안면에 합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그 이전에 있던 화방면()의 일부도 장안면에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장안면 지역은 마정면 · 화방면 그리고 초장면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옛 마정면 지역은 지금의 장안면 북쪽 석포리 일대이었고, 옛 화방면 지역은 지금의 장안면

중간부분인 어은리() · 수촌리 일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구총수』에 화방면의 관할 동으로 어은동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의 장안면 남쪽 지역인 덕다리 · 사랑리 · 독정리 · 사곡리 · 노진리 · 장안리

일대는 모두 옛 초장면 관할 지역이었다.

 

『해동여지도』 이전의 고지도들은 현재의 장안면 위치에 마정면 · 화방면 · 초장면

이외에 마정면과 화방면 사이에 목장면()이 표시되어 있다.

이 목장면은 『호구총수』나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오류인지,

실제로 그런 지명이 존재 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장안면라는 이름은 장안리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화성지』에 장안면 관할 동으로 장내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이 장내리는 예전에 말을

사고파는 마장()이 서서, 마장리로 부르다가 장내리로 후에 다시 장안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안면 [長安面, Jangan-myeo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장안면 연혁 조형물

도로를 따라서 입구로 내려간다

면사무소 입구에서 버스 정류장을 지나 맞은편 건물로 향한다

장안면사무소 입구의 모습

이화정공 맞은편 건물 주차장 뒷쪽으로 가는데 원 지맥길은 앞에 보이는 서진산업 공장 안쪽이다

절개지를 따라서 오르니 서진산업 마당이 나온다

63.6봉(11:52)

등로에 올라 현오님과 竹泉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저 멀리 보이는 산호아파트를 포스트 삼아 걷는다

무우를 심어놓은 밭 가장자리로 걸어가는데 쥔장이 오기에 신경이 쓰인다

밭 끄트머리에서 절개지를 곡예하면 걸어 등로로 들어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절개지 좌측으로는 평택과 당진을 잇는 서해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밭에서 바라본 우정읍의 모습

경기도 화성시의 서남부 조암반도 끝에 위치한 읍으로 남쪽 끝이 아산만과 접하며, 이곳에서부터

남양방조제가 시작된다.

우정읍은 원안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또 국화도(옛 구화도 )와 입파도 두 섬도 우정읍 관할

지역에 속하며 고려 때는 육포()라 하였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쌍부속현()이 있었던 곳이다.

『호구총수』에 기록된 수원부 사정면() · 팔라곶면() · 압장면()이 오늘날의 우정읍 지역이다.

사정면에는 오늘날의 운평리 구름울(운정리()로 기록되어 있음)과 원안리(원안리에 속한 마을 지명,

거물리()가 기록되어 있음), 팔라곶면에는 현재의 운평리 평말(평전리()로 기록되어 있음),

압장면에는 현재의 매향리(옛 지명 고온포()로 기록되어 있음)와 화산리 사기말(사기촌()으로

기록되어 있음) 등이 각각 관할 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당시 화방면()의 일부도 현재의 우정읍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방면에 속한 마을로 기록된 '창촌()'과 '어은동리()'는 각각 오늘날의

우정읍 멱우리와 장안면 어은리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무렵에 제작된 『팔도군현지도』, 『팔도지도』,

『해동여지도』 등에는 위쪽부터 마정면(), 구이포면(), 압장면으로 표시되어 있다.

 

마정면과 구이포면은 각각 사정면과 팔라곶면의 별칭으로 보이고 또 『해동여지도』는 유일하게 화방면을

표시하고 있으나, 현재 추정하는 곳보다 훨씬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이후 『화성지』에는 옛 화방면과

팔라곶면을 합쳐 우정면으로 하고, 옛 마정면을 합쳐 장안면으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안면은 이때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전의 사정면(혹은 마정면), 팔라곶면(혹은 구이포면),

화방면이 이 무렵 우정면()과 장안면()으로 양분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압장면은 『화성지』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우정면과 압장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수원군 우정면()으로 통합되었다.

2003년에 우정읍으로 승격되었다. 우정이라는 지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정읍 [雨汀邑, Ujeong-eup]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56.9봉(11:58)

선배님도 이 험한 길을... 무리하지 마셔요

판독할 수 없는 삼각점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수로를 만난다... 인위적인 山自分水嶺을 위배하며 걷는다

산자분수령을 거스르면서 수로를 건너 찔레꽃 가시에 온몸이 할키면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우측 도로 아래는 세계로 교회 건물이 보인다

좌측으로 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경성자원이란 고물상 옆길을 지나가니...

사랑1리 마을회관(12:20)

최근에 준공한듯한 경노당을 겸한 사랑1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을 지나니 조금전 밭에서 포스트를 삼고 걸었던 산호아파트가 보이고 79번 도로와 접속된다

소반정(12:21~13:25)

여기까지 부지런히 오다가 보니 점심시간도 되고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휴식도 취하며 민생고를 해결하려고 식당안으로 들어선다

반찬이 무려 아홉가지... 갈치조림을 시켰는데 단백하고 맛은 있으나 조금 비싸다(12.000원)

주머니가 가벼운 산꾼의 입장에서 조금은 무리였으나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 베낭의 가벼움으로

이곳까지 편하게 온 것만으로 가격을 치른 셈치지 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거기다가 커피도 양촌리 커피(일반커피)가 아닌 원두로 갈은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내려준다

가계의 분위기가 불교적인 냄새가 나기에 쥔장 여인에게 절에 다니시냐 하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이 있냐고 나에게 묻는다... 잘은 모르고 조금은 안다고 하니까...계속 불교 이야기를 한다

그 바람에 예상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산호아파트가 보인다

산호아파트 105동 앞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산호아파트에서 봉화산까지의 지도

연립주택단지 진입로 방향으로 향한다

연립주택단지를 지난다

새로 조성된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니...삼거리가 보인다

삼거리(13:35)

삼거리에서 뒤돌아 본 모습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직진의 79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선다

통신탑에 걸려있는 현오님과 여영님의 시그널

아파트 단지의 녹색 휀스를 끼고 치고 오르니 길은 전혀없고 미친넘 마냥 무작정 잡목을 헤치며 걸어간다

잠시 후 넓은 임도가 나오고 조금전 산호아파트 앞에서 헤어졌던 도로를 다시 만난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를 만나고 좌측으로 꺽어져 장자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야 한다

도로로 내려서며 바라본 우측의 모습...다경감자탕집이 보인다

GS25편의점도 보이고...

주유소를 지나니...

E1이라는 가스 충전소도 나온다

더부철강산업이라는 건물도 지나는데 마치 안성 북(서봉)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걷는 기분이다

그때야 겨울이라 괜찮았지만 오늘은 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라 계속해서 물을 마신다

그러나 곳곳에 민가와 편의점들이 보이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화산입구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우측에 SK주유소, 좌측에 장자터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봉화교회 입구(14:05)

봉화교회 표지판과 원.투룸 임대간판을 좌측에 영업이 중단된 토담집 음식점이 보인다 

좁은 마을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봉화교회가 보인다

봉화교회(14:10)

봉회교회 안으로 들어서 교회 뒷쪽으로 빠져 나간다

교회 뒷쪽은 공장부지인지 택지조성인지는 몰라도 한창 공사중이라 지맥길이 없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칼날 능선의 절개지를 따라서 곡예하며 걸어가니 82번 4차선 국도가 시원스레 달리고 있다

82번 국도(14:15)

4차선의 넓은 도로이지만 생각보다 차량들이 많지않아 무단횡단한다

도로를 건너 절개지의 능선으로 오르니 먼지가 너무 심해 목이 매케하다

옹벽 옆을 곡예하며 걸어가다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옹벽위에서 조금전에 지나온 곳을 뒤돌아 보니 건너편에 사곡리가 보인다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군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사곡리(沙谷里)는 장안면의 남서부에 위치하며 종만염전이 있는 곳으로 모래가 많았으므로

모래골, 모새골 또는 사곡이라 한데서 사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계룡고지,

밤밭, 장자터 등이 있고 계룡고지는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계룡곶 또는 계룡동이라고도 부른다.

밤밭은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장자터는 장자가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삼각점봉(14:22)

군삼각점(△336FOB / H-7648)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이곳이 봉화산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민둥봉?(14:28)

예전의 묘지의 흔적같은 느낌이 드는곳 정상에 밑둥치만 남은 고사목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봉화산에서 보금산까지 지도

봉화산 정상의 모습

봉화산(烽火山:61.3m:14:30)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와 장안면 사곡리() 경계에 솟은 봉화산에 5개의 연대()를

축조했던 흔적이 남아있다는데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준.희선생께서 붙혀둔 산패

아래의 여인의 젖가슴처럼 오뚝 솟은 둔덕이 아마도 봉수대 터가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이다

옛 지명으로는 흥천산으로 기록되어 있는게 보인다

 

화성시의 자료에 의하면 봉수대가 있는데 남쪽의 제1연대는 높이 약 3m 정도의 흙만두형으로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고 제1연대에서 제5연대까지 차례로 북쪽으로 축조되었으며 길이는 약 50m이다.

제2, 제3, 제4연대는 마치 옛날 무덤과도 같이 낮은 흙만두형으로 평지에 나란히 축조되었던 흔적이

남아있고, 제5연대는 약간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정상에 잡석과 같이 남아 있다.

엣 봉수대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칡넝쿨을 비롯한 잡목이 무성하여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으로 정상에는 인식을 할 수 없는 납작삼각점이 박혀있다

판독이 불가능한 봉화산 정상 삼각점

봉화산에 내려서서 편안한 등로로 내려서니 두레자연중,고등학교가 나온다

두레자연고등학교를 가로질러 간다

두레자연고등학교(14:33)

두레자연 중,고등학교는 김진홍 목사가 설립한 대안학교란다

학교를 가로질러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苦盡甘來 ... 고생끝에 낙이 온다... 참 좋은 말이죠 

두레자연고등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홍천육교(14:40)

홍천육교에서 뒤돌아 본 두레자연고와 봉화산

홍천육교에서 바라본 82번 국도

홍천육교를 빠져나와 포장도로를 버리고 소나무 식재지 능선으로 오른다

벌목한 자리에 소나무를 심어논 능선 위로 오르니 불로산이 보이는데 이 산도

절반은 날아가버리고 없고 그 아래는 소나무를 조림해놔서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지나온 남산과 대남산이 아련히 보이건만 너무 멀다... 조그만 범여의 숏다리가 너무도 많이 걸어왔다

벌목지 절개지로 내려와 소나무 조림지를 지나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이리저리 나무를

헤치며 또다른 불로산 절개지로 오르는데 아카시아 잡목들이 엄청나게 태클을 건다

불로산(不老山:62.1m:14:55)

화성시 장안면 노진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산의 절반은 채석작업으로 인하여

산의 절반은 날아가 버렸고 그 아래는 원상복구를 한다면서 소나무를 식재해놨다

불로산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불로산에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간다 

불로산 정상의 모습

시멘트 도로(15:00)

불로산에서 내려오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우측엔 농장 철대문이 보이고

좌측 아래는 공장 뒷쪽엔 61.8봉이 보이는데 지맥길은 우측 도로로 향한다

포장도로를 따라 가다가 도로를 버리고 공장 뒷쪽 숲으로 들어간다

도로를 따를걸... 괜히 들어왔나... 이곳에서 가시에 팔뚝이 긁켜 피가 난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도로가 나온다...사서 개고생하는구먼... 지맥이 뭐길래

또다시 82번 4차선 국도를 무단횡단하여 우측 작은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을 헤치고 능선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예다원 모텔 마당으로 내려선다

베낭을 메고 모텔 마당으로 내려서니 일하는 아줌마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마침 식수가 떨어져 물을 좀 달라고하니 쌀쌀맞은 목소리로 없다고 한다...나쁜뇬

조개나물(학명 : Ajuga multiflora Bunge)

꽃말은 순결과 존엄이다

꽃의 개화 시기는 4~6월이며, 자주색의 꽃이 피며 꽃은 잎겨드랑이서 모여 달린다.
꽃부리는 긴 통처럼 생긴 입술 모양으로, 아래꽃잎이 가장 넓고 크다.

잎과 줄기는 키는 30cm정도이며, 백색의 긴 털이 빽빽히 나고 잎은 마주나기하며,

줄기 잎은 달걀모양이며 잎은 잎자루가 없고,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잎자루가 없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열매는 둥글납작한 모양이며, 4개로 나뉜다.

모텔 정문을 나오니 2차선 돌가 나오고 자 형태로 꺽어져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를 따라서 걸으니 좌측으로 새한산업과 GS25시 간판이 보인다

이화1리 버스정류장(15:15)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의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농로 너머로 가야할 이화교회와 좌측으로 보금산이 보인다

이화감리교회(15:25)

교회에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생수를 얻어 마시고 수통에 만땅으로 보충하여 다시 산으로 오른다

교회 뒷쪽 절개지로 올라서니...

교회 뒷쪽 절개지에서 바라본 이화리(梨花里)
우정읍 이화리(梨花里)보금산 밑에 곶으로 된 마을로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배곶,배골 또는

이화동, 이곡동이라 한데서 이화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즌고지, 당골, 덕묵골, 맹곶 등이 있다.

느즌고지는 배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당골은 불로산 밑에 있는 마을로

신당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덕묵골은 배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뱅곶은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교회 뒷소나무숲에는 교인들의 수목장 묘비들이 보인다

64.2봉(15:28)

등로는 무쟈게 좋다... 고도차가 거의 없어서 걷는게 아니라 달리다시피 걷는다

군부대 위장막사들이 보이고...

석천리 갈림길(15:33)

59.7봉(15:35)

정상에는 넓은 공터와 각종  체육시설이 있고 삼각점이 있는데 우측으로는

석천리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지만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흔히들 산꾼들은 이곳을 보금산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이곳을 지나간

준.희 선생님은 이곳에서 조금 더 간곳을 보금산이라고 한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곳을 보금산이라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인식할 수 없는 59.7봉 삼각점

이곳을 선답하신 현오님의 기록에는 (△남양 461)이라고 한다

보금산에서 고온항까지 지도

보금산(寶金山:63.9m:15:37)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와 석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돌탑하나가 서 있다

화성시의 자료 어디에도 보금산에 대한 유래는 보이질 않는다

다만 보금산 아래에 태고종 소속인 보덕사라는 절이 있다는 기록뿐이다

화성하면 역사의 도시로 자랑하며 화성시의 슬로건인 ‘길이 열리는 화성’이라는데

길에 자료는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산꾼으로서 상당히 실망스럽다 

2차선 도로(15:40)

도로에 내려서니 좌측으로 기아자동차 주차장이 보이고...

밭 가운데 도로를 따라서 간다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설치한듯한 임도를 따른다

등로 가운데 지적삼각점도 보이고...

기아자동차 뒷봉(16:05)

좌측 능선 아래쪽에는 엄청난 규모의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보인다

능선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조금을 더 진행하니...

최근에 준공된 듯한 기아자동차 스포츠센터 가운데로 가로질러서 간다 

기아자동차 스포츠 센터(16:05)

기아자동차 정문을 빠져나와 좌측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도로에서 바라본 우정읍 석천리(石川里)

우정읍 석천리는 돌팍산 서쪽에 골짜기가 많은 마을이며 자연마을로는 돌파기, 가래내, 새터, 낭개 등이 있다.

돌파기는 돌팍산 밑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가래내는 석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가래(골)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새터는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낭개는 압정개 남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돌파기와 가래내의 이름을 따서 석천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지나온 보금산의 모습... 임도파들은 도로로 오면 빠르겠다

송림정이란 식당도 지나고.. 농장축산이란 큰 목장을 지난다

석천광명교회와 어린이집도 나온다

석천삼거리(16:15)

석천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염광교회를 바라보면 걷는다

석천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서 2분정도 걷다가 좌측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다

지맥길은 난개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공장과 교회사이로 내려선다

염광교회(16:20)

교회앞을 지나 다시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석천3리 마을표시석 앞을 지나고...

도로갈림길(16:30)

염광교회 앞에서 10분정도 도로를 따라서 걸으니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小路를 따라간다

기아자동차 기숙사인듯한 춘추관이라는 건물을 끼고 좌측으로 꺽어지니 301번 지방도가 나온다

매향보건진료소(16:37)

매향수퍼와 매향2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도로를 따라서 30.9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30.9봉(16:40)

고개 능선 좌측에 오르니 지도상 30.9봉인데 묘지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바로 앞에는 엄청난 규모의 기아자동차 공장이 보이고 지나온 보금산도 보인다

다시 도로를 내려와 우측에 있는 매향리 평화마을(옛 쿠니 사격장)으로 간다

30.9봉에서 내려와 도로에서 바라본 매향리 평화마을의 모습 

매향리 평화마을(16:45)

화성시우정읍 매향리 평화마을은 예전 매향리 미공군 폭음피해 대책추진위원회 사무실로 썼던

건물에 만들어졌으며 주민 피해의 상징인 폭탄을 전시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화성시는 매향리 사격장에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시장 내부의 모습

이곳은 미군의 쿠니 사격장이 있었던 곳으로 농섬과 주변 갯벌은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4년간 주한 미 공군의 사격 및 폭격훈련장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매향리와 고온리 사이에 있는 이곳은 고온리라는 주변 마을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쿠니(KOO-NI)'

사격장 또는 매향리 사격장으로 불렸으며 미 공군기의 기총사격과 연습용 폭탄 투하가 매일 이뤄지면서

수십 ㎏에 달하는 폭탄이 농가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주민이 난청에 시달리는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2005년 8월 11일 사격훈련이 중단됐고 그로부터 9일 뒤인 8월 20일

사격장이 폐쇄되고 관리전환권한이 미군에서 국방부로 공식반환됐다.

수많은 포탄과 총탄이 전시되어 있고 무더기로 쌓여있는 포탄들이 방치되듯 전시되어 있다

설치미술가의 작품과 전시물도 볼 수 있고 무더기로 쌓여있는 포탄 더미를 보고 있으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매향리(梅香里) 표시판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매향리의 지명유래는 먼 훗날 미륵불이 출현할 때, 미륵불 앞에 사를

향(香)을 마련하기 위해 바다 뻘 속에 향나무토막을 묻음으로써 지어진 이름인데, 훗날 사람들이

그 뜻을 오해해 매화향기가 나는 마을이어서 매향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잘못 알게 되었다.

아무려나 이 마을은 오랜 세월을 매화향 대신 화약내음과 포탄의 굉음이 진동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매화꽃 향기가 이곳 마을의 또 다른 평화의 상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남기곤 상처는 결국 아물지 못하고 분단국가의 현실이 이 조그만 어촌마을에도

그대로 남아 그 흔적들은 후손들에게 또 하나의 교훈이 되어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범여의 맘은 착잡하기만 하다

우리나라가 태고적부터 5천년간 외세의 침략을 받은 횟수만 931번...외침의 75%

중국한테이고 25%는 일본인데 그렇게도 많이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다

이곳의 비극도 어찌보면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외세에 의존하다보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지금 주변 정세는 어떠한가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 같은 민족끼리 반목하며 살고 있는데

북쪽에 젊은 친구는 핵무기란 장남감으로 맨날 남쪽에 사는 동족들을 겁박하고 있고

중국이란 나라는 아직도 우리가 자기들 속국처럼 여기질 않나...

거기다가 쪽바리란 일본은 어떠한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우릴 괴롭히질 않나

그게 다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 얕보지 않지

우리나라 1/5도 안되는 이스라엘을 누가 얕보는 거 봤나.... 국가가 힘이 있기 때문 아닌가

매향리 평화공원 전시장을 둘러보는 맘은 그리 편치가 않다

착잡한 맘이 드는데 이곳까지 부지런히 왔더니만 힘이 부친다

이곳 전시장 한 켠에 베낭을 내리고 가져온 과일과 초코렛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17:05)

301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원 지맥은 철조망 안쪽이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기아자동차 후문(17:15)

기아자동차 후문 버스 정류장을 끼고 우측 도로를 따라서 간다

철문(17:18)

301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오석으로 된 고온리 마을표시석과 매향리 평화공원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301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 철문 안쪽으로 들어선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농민들이 한창 농사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마치 민통선 안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이곳도 예전에 쿠니 육상사격장이었는데 사격장으로 조성된 시기는 6.25전쟁 중으로 매향리

앞바다의 농섬을 해상 표적으로 해서 사격연습이 시작되었다가 1954년부터 미군이 사격장

주변으로 주둔을 시작하면서 SOFA 발효 후 1968년부터 대규모 미군 사격장이 형성되었다

매향리 평화박물관 건립 예정지를 지난다

도로 좌측에는 지맥길인 22.4봉이 보이나 철조망에 막혀 들어갈 수 없어 눈팅이만 하고 지난다

내륙7통문(17:35)

철문을 빠져 나오니 잘 조성된 경주김씨 묘지가 나오고 묘지 뒷쪽으로 오른다

묘지 뒷쪽으로 들어가니 주택가가 나오고 요리조리 피해 나오니 넓은 밭이 나온다

밭을 빠져나와 농로를 따라서 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군부대인지 지붕위에서 군인들이 작업중이다

저 곳이 농섬인가?

농섬은 나무가 많아 매향리 사람들이 땔감을 해서 밀물에 들어오는 물에 나무를 실어

날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원래는 더 큰섬 이었으나 미군 사격장 으로 사용 하면서

하도 총을 많이 쏘고 폭탄이 떨어뜨려 크기가 3분의1로 줄었다고 한다

넓은 공터에 들어섰다가 좌측의 군부대와 발리모텔 사이로 내려간다

발리모텔 입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쇠창살로 막은 텃밭 안으로 들어간다

주택을 들어서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매향리 횟집 앞에 있는 발안 서(오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21.7봉이 보인다

21.7봉으로 올라간다

21.7봉(17:55)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고온동이 있는 한남오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바로 앞에 있는 횟집 공사로 인한 것인지 봉우리 절반은 날아간 느낌이고

예전에 매향리 당고사를 지냈던 서낭당이라 당목인 홰나무 4그루가 서 있다

매향리당고사(華城梅香里堂告祀)

우정읍 매향1리 고온동(고온리) 마을 주민들이 음력 10월이나 동짓달 중에서 길일을 택하여

서낭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당집은 바다가 보이는 마을 동산 위에 있으며, 당집의 형태는 귀틀집

형식의 터주가리형이다. 고사를 주관하는 당주 1명을 뽑고 당주를 돕는 보조자 3~4명을 따로 뽑는다.

일단 고사일이 결정되면 외지인은 마을로 들어올 수 없고 마을의 임산부는 외지로 나가 출산해야 한다.

고사일이 되기 전에 미리 당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고사일이 되면 밤 10시쯤에 당주와 보조자 및

당고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주민들이 당집으로 간다. 당고사는 당주와 보조자들이 제물을 진설한 후 술

잔을 올리고 절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난다. 축문은 낭독하지 않고 당주의 축원으로 대신한다.

당고사 비용은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걷어서 충당한다.

제물로는 소머리, 삼색과실, 백설기, 북어 등을 사용하고 술은 농주를 올린다.

21.7봉 삼각점(대부428 / 1990 재설)

21.7봉 바로 앞에는 텃밭이 조성되어 있고 이렇게 막아났다... 그런다고 안가나

너무더미를 뛰어넘어 텃밭을 지나니...

나하고 종씨인 경주김공 묘지가 21.7봉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이 분은 기독교인다

그런데 이곳은 이 지역 주민들이 당제(사머니즘)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이외는 모든걸 부정하는데 우리 종씨는 맘이 편치 않을 것 같네

당집의 모습

당집과 군벙커를 지나니 발안 서(오두)지맥의 끝지점인 고온항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오니 바다횟집이 보이며 고온항 방파제로 내려선다

고온항 방파제로 향한다

고온항 방파제(18:05)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도시화로 인해 지맥길이 사라져 버린 가장

힘들었던 발안 서(오두)지맥의 마지막 大尾를 장식하는데 사라진 지맥길에 대한 아쉬움에

맘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자꾸 사라져가는 맥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이제는 좀 제대로 된 맥다운 지맥길을 가야하는데 어느 곳으로 가야할 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고온항 갯벌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고온항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1리 연안에 있는 어항으로

2006년 1월 2일 화성시에서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하였다

고온항은  ‘고온리(古溫里)’라고 불릴 정도로 따뜻한 물과 어장이 풍족했던

마을이었으며 밴댕이, 빙어, 준치, 농어, 삼치, 조기, 놀래미, 낙지, 바지락, 모시조개 ….

씨 뿌릴 비옥한 토지는 없었지만, 물이 차면 고기를 잡고 물이 빠지면 망대기를 들고

나가 조개만 채취해도 큰 어려움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바다 건너로는 충남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공장들이 보인다

매향1리 버스 정류장(18:20)

고온항에서  지맥길을 끝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비수기라 그런지

차량들이 별로 없다...가뭄에 콩나듯이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해보지만 별 소득이 없어서 우두커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

 

매향리는 ‘매화향기 그윽한 마을’을 뜻하고 ,마을 바닷가 모래톱에 매화꽂이 무성하여

매화꽃이 활짝 피어오를 때면 그 향기가 온 마을을 진동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앵벌이를 실패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잠시후에 조암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조암 버스터미널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에 한대씩 버스가 다닌단다

버스 승객이라곤 달랑 나혼자인데 고온항에서 조암터미널까지 오는데 13분 소요된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사당동으로 향하는 8155번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가는게 아닌가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어가 잠시 정차되어 있는 버스에 올라 사당동에 도착하니 19시 5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