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년 12월 11일
☞ 산행날씨: 아주 맑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23.5km+어프로치 1.1km / 11시간 10분소요
☞ 참석인원: 산으로, 진권아우와 셋이서
☞ 산행코스: 상릉마을-장흥위씨 묘-효자봉-영암지맥 분기점-의령여씨 묘-갈림길-머루고개
370.4봉-이동통신탑-운봉고개-죽산김씨 묘-철조망-묘지-561.3봉-472.2봉
갈림길-미륵암-신거리고개-중부내륙고속도로-월명 성모의 집-631봉-784.7봉
영암산-암릉구간-본손지 갈림길-이정표-세종대왕자 태실 갈림길-이정표-536봉
들목재-선석산-용바위-쇼파바위-태봉바위-불광교 갈림길-비룡산 갈림길-430.3봉
379.4봉-전주이씨 문중묘-지경재-삼광사 추모공원-무명봉-381.1봉-질매재-안부
봉화터-450봉-봉화재-각산(봉화산)-갈림길-무명봉-안부-363봉-느린골 고개-220.9봉
해주오공 묘지-월암재
☞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남면 / 성주군 초점면, 월항면 / 칠곡군 북삼읍, 약목면, 기산면
요즘 정세가 심상찮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2번째의 사태가 벌어져 모든게 혼란스럽다
어둠속에 迷路를 헤매는 이 정국이 언제쯤 끝날 것인가... 박 대통령! 참으로 불쌍한 여인이다.
독재자의 소리를 들으면서 이 나라 민초들에게 배고픔을 면해준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최00이라는 여편네 하나 옆에 잘못두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망가지게 한 죄... 뭘로도 용서가 안되지
허나 惻隱之心도 또한 든다...부양할 가족도 없이 홀로 오직 나라만 생각했는데...
저 골치아픈 대통령 뭐하려 하려는지... 아둔한 범여로선 이해가 안된다
그런대도 저마다 탄핵후에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소위 잠룡이라는 자들이 왜그리도 많은지...
과연 저 자들이 민초들의 힘든 삶을 알기나 할까... 그러고 보면 매주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
東家宿 西家食하며 이 산 저 산을 다니는 범여의 팔자가 제일이지 싶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구미행 버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김천 지역에 사드가 배치되기 전에 걸어야 할 감천 남(영암)지맥길을 나선다
김천 백마산 근처의 회천(금오)지맥 능선에서 갈라지는 감천남(영암)지맥... 현재의 정세가 불안하긴 하지만
정책이 결정되면 접근할 수 없는 맥길이기에, 결정되기 전에 그 지역을 빠져 나와야 하는 곳
그 구간을 미리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에 밤 10시 05분에 출발하는 산으로 아우님과 구미행 버스에 오른다
구미버스 터미널(00:30)
생각보다 버스는 구미에 일찍 도착한다... 저녁 일찍 용인에서 구미에 일찍 도착한 진권아우가
잡아논 여관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05시 30분에 여관을 나선다
아침 식사(05:40~06:05)
여관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해장국집에 들려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는
택시 승강장에 가서 김천시 남면 월명2리 상릉 마을로 향하는데 택시가 가는 길에 구미시
상모동에 있는 故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앞을 지나가는데 범여의 맘이 착잡하다
택시 기사의 말로는 최근에 어떤 자가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 바람에 생가가 타버려
지금은 관람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택시는 지난주 금오지맥길에서 만난 부상고개를
지나 월명2리로 접어 드는데 이 곳은 집집마다 사드 반대 문구가 걸려있다.
상릉마을(06:40)
어둠속에 골목길을 지나 최고 윗쪽에 자리잡은 별장 아래에 택시는 멈춘다 (요금 25,800원)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아직까진 주위 사물이 뚜렸하지 않다
상릉마을은 상릉·하릉은 통칭하여 동릉이라고 하며,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동쪽에
큰 무덤이 있어 東陵이라 하고 무덤 위쪽 마을을 상릉, 아래쪽 마을을 하릉이라 하였다.
의령 여씨 여종록(余宗綠)이 영조 때 선산에서 상릉으로 입향한 이래 집성을 이루어 왔고, 풍수지리상
상릉·하릉이 떠나가는 배의 형국인지라 마을을 세울 때 한 도사가 마을의 상중하에 돛대를 상징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장흥위공& 성주이씨 부부묘(06:50)
별장 아래에서 좌측의 도로를 따라서 10분정도 임도를 따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묘지가 3군데 있고, 맨 위쪽에 있는 장흥위공 묘지에서 임도는 사라진다
좌측으로 자세히 바라보니 희미한 임도가 보이나, 이곳으로 가면 능밭재 방향이라서 지맥길과는
많이 멀어지는 것 같아서 묘지 뒷쪽으로 무조건 치고 올라 회천(금오)지맥 능선으로 향한다
잡목을 헤치고 오르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산불감시초소(550m:07:10)
1주일만에 다시 찾아온 산불감시초소봉... 이 지역 사람들은 효자봉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지난주에 만났던 초소를 지키는 여인은 아직도 출근전인 모양이다
일출을 기다리는 아우님들
등로에서 바라본 김천시 농소면 노리실 마을
노리실은 옛날 연명이 개령현 연명면의 소재지일 때 하급 관리 중 나이 많은 사람은
관직을 그만두고 이 골짜기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노루실이라 불렀다.
금오산 너머로 해가 벌써 올라와 버렸다
감천남(영암)지맥 분기봉(55m:07:17)
본격적인 감천남(영암)지맥의 첫 발을 내딛는다...요즘 하도 벌려논 지맥이 많아서 정리를 하고
이곳을 시작하려 했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롯데 성주 스카힐스C.C에 사드가 배치되면
이 길은 영원히 걸을 수가 없기에 미리 걷는 셈이다
분기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오니 무명 묘지가 나오고...
의령여씨 묘(07:24)
갈림길(07:25)
우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나오나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철조망으로 막아논 묘지 2기가 나온다
갈림길(07:35)
우측으로 편안한 임도가 있으나 원칙을 고수하며 좌측의 험한 길을 택한다
좌측 아랫쪽은 축사가 보이는데 가축 분뇨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잠시 후 머루고개로 내려선다
머루고개(300m:07:40)
김천시 남면 월명2리에 있는 고개로 상릉,하릉으로 불리는 동릉으로 가는 길에 있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지나간 곳인데 곳곳에 사드 반대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370.4봉(07:50)
370.4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이동통신탑(07:53)
유인 성산이씨 묘(07:55)
관리가 안된 의령여씨 묘를 지나니...
우측으로 운봉마을이 보이고 여러기의 묘지가 나타난다
운봉고개(雲峰峴:320m:07:56)
남면 월명리 운봉마을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고개로 운봉마을은 백운산과 금오산 중간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높아 구름이 쉬어서 넘어가며, 마을이 구름에 덮여 햇볕을 잘 볼 수 없다고 하여 운봉이라고 했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 뒷쪽으로 보이는 효자봉에는 해가 벌써 한참이나 올라와 있다
묵밭을 가로질러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약초농장이 보이고...
移葬을 했는지 멧돼지의 횡포인지는 몰라도 묘지가 마구 파헤처져 있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급경사를 치고 오른다
선생님! 잘 계시죠?
죽산김씨 묘(08:03)
추운 날씨에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른다
약초농장 철조망(08:07)
무명묘지(08:15)
철조망 끄트머리에 베낭을 벗어 놓고 20여m 정도 떨어져 있는 561.3봉으로 오른다 (08:21)
561.3봉(08:23)
김천시 남면과 성주군 초전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맨발님의 아크릴 표지판과 삼각점이 보인다
561.3봉 삼각점(△307 재설 / 1978, 11 건설부)
다시 베낭을 벗어논 곳을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금오산을 바라보며 묘지 6기가 있는 곳을 지나간다
희미한 등로에 잡목의 저항은 있으나 다른 지맥길에 비하면 양반이다
등로가 조금씩 뚜렸해진다
무명묘지를 지나고...
472.7봉(08:50)
472.7봉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남김천I.C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서는데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뚜렸한 등로를 따르다가....
갈림길(08:53)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따르다가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질 않고 급경사라 갈등이 많이 되는 곳이다
길이없는 급경사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빨간 시그널 하나가 보이고...
바랑산님 고맙심더...
급경사에 낙엽길이 엄청나게 미끄럽다
왜 사서 개고생이여!... 멀쩡한 집 나두고...
급경사 등로 주위에는 규암(차돌바위)이 많이 보이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미륵암이 보인다
미륵암(彌勒庵:09:10)
미륵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직지사의 말사로서 김천시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성주군 및
칠곡군과 인접한교통의 갈림길에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관음전과 요사채가 있고, 관음전
우측의 계단을 올라가면 뜰 한 가운데 석조미륵불입상이 천년이 지난 오늘에 서 있다
처음 발견된자리는 현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하며 1980년대까지 속인이거주하던
이곳을 현 주지스님이 매입하여 미륵암을 짓고 훼손된 미륵불을 정비해 원래 있던 곳에서 암자 안으로
이전을 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온 설화가 깃들어 있는 석조미륵불입상이다
1999년에 7세기 후반 라당연합군의 백제 및 고구려 정벌에 참여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당(唐)의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정사초당을 지었다는 비문이 동국대학교 장춘식 박물관장에 의해
300여자가 새겨진 비문이 발견되었으며 비문의 주인공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칠 때
총관을 지낸 당태종의 외숙인 시장군의 비가 이곳에서 출토됨에 따라 이 암자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며 비편은 김천 직지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미륵암석조미륵불입상 (彌勒庵石造彌勒佛立像:경북 문화재 자료 제420호)
석조미륵불입상은 대좌를 포함하여 총 높이 280cm, 둥근 보관까지의 높이가 240cm (보관폭 97cm) 머리 높이가
53cm 어깨폭 84cm, 허리 폭 65cm, 허리두께 52cm이며 연화문 대좌의 크기는 직경 93cm, 높이 37.5cm 라고 한다
이 석불은 기둥과 같은 큰 몸체에 원형의 큰 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조금 통통하고 풍만한 모습을 취하고 있고,
이는 불상의 조성에 있어 의욕은 크지만 기술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진 조형감각을 보여 주고 있는 석불입상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원래 산적들이 많이 출몰하던 지역으로, 1975년 라디오 방송‘전설따라 삼천리’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100여년전 김천에서 소를 훔쳐 고개를 넘어가던 한 도둑이 밤새도록 걸었는데도 미륵불 주위만 맴돌게 되자,
화가 난 소도둑은 도끼로 미륵불 팔을 찍어 파괴하고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하는데 도둑의 시체는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 묻었는데 월명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도둑을 묻은 도둑묘라고
전해지는 봉분이 최근까지도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얼굴은 풍만하고 소발(素髮)의 머리 중앙부에 높이 솟은 육계로 보관을 받치고 있고 백호는 불상을
보수할 때 보충한 것으로 보이고 귀 부위에도 보수한 흔적이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양손도 보수한 것인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복부에 붙이고 있고,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앞
가슴에 완만한 'U' 자의 의문(衣紋)을 여러 겹으로 나타내었고, 두 팔에 드리워진 의문도 사실적 수법으로 표현하였다.
신라 양식을 반영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불신의 하반부와 팔 부위를 보수하였으나, 완전한 보관이나
연화 대좌는 당시의 석불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판
미륵암 대웅전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고 하니 정면, 좌우에 죄다 열쇠가 채워져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마당에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남기고 다시 길을 떠난다
신거리고개(09:15)
김천시 남면 월명리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905번 지방도가
지나고 바로 앞에는 김천에서 마산으로 연결되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고개 우측으로는 미륵암이 있고, 신라시대 고분인 월명리 고분이 있다.
월명리 고분은 삼국 시대 신라의 지역 단위 세력을 의미하는 김천 지역의 감문국(甘文國)과 성주지역의
성산가야(星山加耶)의 경계부 고갯길에 위치하는 판석조(板石造)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비록 1기만 알려져 있고 구조 원상을 알 수 없으나 경계부에 위치한 두 지역 간의 고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양호한 자료이다
소성리는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종 종사가 결혼한 후 살았던 마을이기도 한 곳이다
신거리 고개를 거쳐서 성주스카이힐스 C.C를 가는 모양이다
신거리 고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금오산을 바라 보면서 905번 지방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이정표를 지나고...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랫쪽을 통과해야 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09:25)
좌측으로는 월명리 버스 정류장이 있고...
뒤돌아서 바라본 중부내륙고속도로
월명 성모의 집(09:30)
월명 성모의 집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우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시멘트 도로 끝자락이 나오고 지맥길은 저 앞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대다수의 산꾼들은 끝까지 가지않고 좌측으로 꺽어서 올라갔다
조금 올라서니 묘지가 보이고...
또 다른 묘지
원 지맥길과 다시 만나고...(09:48)
고도를 높여야 하니 당연히 힘이 들고...
뒤돌아 보니 남김천I.C와 부상리... 그 너머로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황학산이 아련히 보인다
늘 감사합니다
631봉(10:20)
오늘 전망은 참으로 좋다... 저 멀리 덕유산은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걸어온 등로의 궤적
진권아우!..포토라인은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
잠시후에 오를 영암산
급경사를 오르니 넓은 안부에 구조 이정목이 보이니 제도권 안에 접어든 모양이다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저 멀리 보이는 스카이라인... 백두대간 능선이다
784.7봉(10:43)
김천시 남면, 칠곡군 북삼읍, 성주군 초전면이 만나는 삼군 경계봉이다
개념도상에는 이곳을 영암산이라 부르고, 트랭글 앱에서도 이곳을 영암산이라
하는데 이정표에는 영암산이 400m 정도 더 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좌측의 칠곡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는 일반 등산객들의 띠지 많이 보인다
784.7봉의 이정표(↖보손지 2km, ↓부상리 2.4km, →영암산 400m)
전망바위를 지나니...
로프가 있고...
영암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고향으로 향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와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도 보이고...
능선 아래는 엄청난 규모의 대흥채석장이 보이고 돌을 부수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가야할 선석산의 모습
늘 나에겐 든든한 동반자인 진권아우
등로에서 바라본 구미시(龜尾市)의 모습
구미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정신문화의 산실로 낙동강 주변으로 가야시대
고분군과 유적이 발굴되고 있어 역사적으로 고대문화가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이며
신라시대에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진 곳이고, 해동(海東)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桃李寺)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을 꽃 피운 지역으로서
야은 길재(冶隱 吉再), 강호 김숙자(江糊 金叔滋), 점필제 김종직(店畢濟 金宗直) 등 학
자와 사육신 하위지(河緯地),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한말 의병대장 허위(許蔿) 등 숱한
우국지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근래에 와서는 과감한 수출 정책을 추진하고 새마을운동을 창시하여 국가경제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대통령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과거 구미는 선산군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 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최근 국정파탄의 중심에 선 박 대통령의 고향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수가 없다
부디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무리했으면 좋았으련만...실망을 많이한 범여로선 착잡하기만 하다
사드 배치지역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골프장과 영암지맥 분기점이 뚜렸하게 보인다
오늘 날씨는 참으로 좋다... 서쪽으로는 눈을 이고 있는 덕유산과 그 북쪽으로 대덕산과
삼도봉, 황학산이 한 눈에 보이고, 조금 더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상의 난함산과 그 너머로
구병산, 속리산, 동쪽으로는 팔공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만 보인다
그뿐이라 남쪽으로는 가산과 팔공산, 비슬산과 가야산이 보이는 이곳... 이런걸 一望無際라겠지
하나 빼먹었다... 코 앞에 금오산... 그러는 사이에 오늘 지맥길의 주봉인 영암산에 오른다
로프를 잡고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올라서니...
영암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석이 2개나 있는데 서로가 보기 싫은지 돌아 앉아 있다
조그만 것은 칠곡군에서 설치한 것이고 새로 세운 커다란 정상석은 성주군 초전면에
있는 산악회 여러 군데서 돈을 모아 세운 것인데, 서로를 외면하고 돌아 앉은 모습이
마치 이 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남을 짓밟야만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 왜 이리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오늘도 광화문에서 벌어지고 있을 촛불집회... 온 국민이 합심해도 주변 강대국들의 힘에
부치는데 사사건건 상대방을 헐뜻고 짓밟아야만 직성이 풀릴까
촛불집회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침묵하는 다수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렸으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약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마틴 루터킹 목사의 어록 중에서
영암산(鈴岩山:784m10:57)
경북 김천시 남면,성주군 초전면, 칠곡군 북삼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3개의 암봉으로 되어있다.
1917년 조선지형도를 보면 鉢巖山(발암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예전의 성주의 읍지(邑誌)인
경산지(京山誌)나 성산지(星山誌)에는 매달린 방울을 뜻하는 현령산(懸鈴山)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말로는 방올암산(方兀音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방울암산이라 하는 것은 성주쪽에서 바라보면 정상에 있는 3개의 암봉이
흡사 방울처럼 보인다고해서 유래된 이름이며, 바위가 많아서 바위암산, 바위산인 금오산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바우남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영암산 정상에서 인증샷
영암산 남쪽으로 바라보니 가야산 아래쪽으로 지나가는 중부고속도로
저 길을 따라서 1시간정도 가면 범여의 고향인데, 고향을 떠나온 지 4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는 지울수가 없구나... 80 노인이 되어버린 長兄이 아직도
계시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구나... 부디 건강하소
도로 아랫쪽으로는 성주 참외로 유명한 곳인지 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보인다
정상석 아래로 내려오니 양지바른 곳에 벤취가 있고, 북삼읍에서 왔다는 山客 3명을 만난다.
우리도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빵 조각에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시면서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의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서 선석산으로 향한다
계단에서 바라본 칠곡군 북삼읍(北三邑)의 모습
칠곡군 북서부에 위치한 읍으로 남쪽으로 약목면, 북쪽으로 구미시와 인접해 있다.
서쪽은 금오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금오산 남사면에서 발원한 경호천이 읍을 동서로 관통해 흐르며 낮고 평평한 충적지를 형성하였다.
북삼읍은 주민의 대부분이 구미시로 통근하는 등 구미시의 배후지역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북삼읍은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 소속의 북삼면(北三面)이었으며, 1914년 칠곡군으로 편입되면서
인근의 읍내면(邑內面)·약목면(若木面), 그리고 선산군(善山郡)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북삼면은 2003년 북삼읍으로 승격하였으며, 읍소재지인 인평리를 비롯하여 6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북삼읍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여지도서』에 "북삼면(北三面)은 관아에서 30리 거리에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고『해동지도』에는 약목면과 하천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능선들
암릉지대 우회구간이 나오고...
소주 한잔 했으니 위험하게 갈일 있겠나... 편안한 우회길을 택한다
다시 지맥길에 합류하고...(11:40)
보손지(甫遜池)하산길(11:48)
보손지는 북삼읍 보손리에 있는 저수지로 칠곡쪽의 영암산 초입에 있다
보손마을에서 지명을 따왔으며, 보손 마을은 영암산을 뒤로 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며 작은 하천이 마을 오른편으로 흐른다. 옛날 이곳에 보손이라는 어진 사람이
살았다 하여 보손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보손, 골뜸, 상재원, 위상재원, 아랫상재원, 불당골마을 등이 있다.
보손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보손리의 그것과 같다. 골뜸마을은 보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보손지 갈림길 이정표(↓보손지 2.5km, ←서진산정상(선석산 2.2km) →영암산정산 0.6km)
고속도로같은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벤취 2개가 있는 등로에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점심식사(11:50~12:55)
아우들과 칼국수를 끓여서 소주 한병을 다 마시고 1시간동안 여유로운 점심상을 물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영암산 등산로 입구 (12:57)
세종대왕자 태실 가는길(12:57)
진권아우는 저녁에 일찍 올라가서 아들 생일잔치 해주려고하니 바쁜 모양이다
저만치 앞에가고 오랫만에 산으로 아우님과 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걷는다
이정표(13:10)
뭔 입구를 가리키는지?... 참으로 개념없는 이정표다
536봉(13:17)
여기서부터 우측은 성주군 초전면에서 월항면으로 면계가 바뀐다
그렇다고 보면 북삼, 초전, 월항면 만나는 삼계봉인 셈이다
멋진 암릉사이로 금오산이 보이고...
들목재(13:25)
펑퍼짐한 안부가 나오는데 지형도상의 들목재란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조선지형도에 石木峙로 표기된 곳이란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좌측의 등로에 띠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칠곡 방면에서 선석산으로 올라오는 등산로인 모양이다
선석산 정상에 오르니 안내도와 벤치, 이정표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시묘산 가는 길인갑다
칠곡군 약목면에 있는 시묘산은 조선시대 어느 효자가 부모 무덤에 시묘(侍墓)살이를 했다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선석산(禪石山:742.1m:13:30)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와 약목면 남계리,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영암산, 남동쪽으로 비룡산과 연결되며 선석산의 서남쪽에는 사적 제444호로 지정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星州 世宗大王子胎室)과 선석사(禪石寺)가 있다.
선석사는 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원래 지금 위치보다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고려시대 공민왕 때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하며, 그때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와서
터를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 '선(禪)' 자를 넣어 선석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선석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이 책의 성주목조에 "선석산은 주 북쪽 28리에 있다.
세조의 태를 봉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의 사찰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선석산은 서진산(棲鎭山), 그리고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린다. 서진산은 한자로 서진산(西鎭山)이라고도 표기하며,
이 이름은 서쪽을 진호하는 산이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서진산(棲鎭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판독이 힘들만큼 마모가 되어버린 삼각점
선석산 정상에서
갈 길이 바빠서 불광교 방향으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용바위(龍岩:710m:13:37)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하고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켰다하여 옛부터 용바위라
불렀으며,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듯 한 눈에 보이는 이 바위에 앉아
있노라면, 온 세상이 발아래 펼쳐져 모든 것이 내 품안에 안긴듯 하다
이 바위를 한바퀴 돌아서 계곡을 따라 하산길에 천년고찰 선석사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선석산의 돌탑쌓기에 동참하면, 한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는 설이있다
용바위에서 진권아우
용바위 안내판
등로에서 바라본 세종대왕자 태실과 인촌지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대왕의 16명의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胎)가 안치된
곳으로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으며, 화강암으로 만든
19기의 태실은 왕실의 태실 의궤에 따라서 지하에 석실을 만들어 그 속에
분청사기 또는 청자로 만든 태호를 넣고, 그 위의 지상에는 기단석,중동석,
개첨석으로 하였고, 또 각 왕자들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왕자들의 태실을 한 곳에 군집되어 조성된 유일한 형태로서
세종대왕의 예민정신을 읽을 수 있으며, 세조의 왕탈 찬위를 반대했던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등, 5명의 왕자들의 파괴된 태실 석물들에서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등 귀중한 문화유적으로 현재 국가사적
제444호로 보호 관리되고 있다.
또 태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태실의 수호사찰로 신라시대 고찰인 선석사가
있으며, 세종대왕 태실은 경남 사천시 곤명면 낙남정맥길 가까운데 있다
쇼파바위(13:39)
구조 이정목 선석~영암4를 지나니 벤취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태봉바위(胎峰岩:680m:13:43)
편편한 바위에 올라서니 나무에 좀 가리기는 해도 아랫쪽을 내려다보니 육관도사가
우리나라 30대 명당으로 꼽은 선석사와 세종대왕자 태실이 보이고, 태봉바위 안내판이 있다.
이곳 성주는 세종대왕자 태실을 비롯하여, 태종태실(용암면), 단종태실(가천면)이 조성되어 있고,
조선조 세분의 왕(태종, 단종, 세조)과 세종대왕 16명의 왕자의 태실이 있는 길지(吉地)라고 한다.
태봉바위 안내판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속도로처럼 편안한 지맥길
불광교 갈림길(13:47)
119 구급함이 있고 이정표가 있는데, 불광교라 표시한 곳으로 가면 선석사 방향인듯 싶다
뚜렸한 불광교 방향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 방향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편안한 내리막길에 걸려있는 시그널
무명묘지를 지나니...
비룡산 갈림길(557m:13:58)
이정표(비룡산 1.1km↖,선석산정상 1.4km↓ 각산리 (대흥사)1.4km→)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비룡산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 각산리(대흥사)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능선에서부터 칠곡군 약목면과 기산면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비룡산(飛龍山:576m)은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와 기산면 각산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의 지세가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산 아래는 경북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신유장군유적지가 있다고 하여 갔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귀경 차량 시간대가 애매하여 포기하고 지경재로 향한다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이곳부터는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공깃돌같은 암릉이 구간을 지나고...
낙엽이 수북하여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 가운데 무명묘지가 있고...
우측에 암릉을 끼고 또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낙엽이 미끄럽다... 아그야! 조심혀
또다른 묘지(14:15)
또다른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430.3봉(14:30)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오르니...
379.4봉(14:40)
379.4봉 삼각점(△442재설 / 건설부 73.9)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비룡산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사냥개 한마리가 보이고 엽사 1명이 총을 들고 나타나는데...깜짝 놀란다
전주이씨 익안대군파 문중묘(14:50)
봉분은 없고 묘비만 서 있는데 한결같이 學生(생전에 벼슬을 못한 분)이다
묘지를 내려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농장이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차량이 다니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멧돼지의 횡포가 심한 모양이다
묘지를 지나고... 차량소리가 들리면서 지경재로 내려선다
지경재(地境嶺:165m:15:00)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와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번 군도가 지나고
고개 우측으로는 삼광사란 사찰이 있는데 꽤나 큰 납골당이 있다
지경(地境)이란 지명은 경계를 가른다는 뜻인데, 유독 경상도 지역에는 자주 듣는다
낙동정맥 산행할 때, 양산 지경재, 부산 지경재를 만났듯이...
지경재 칠곡 방향의 모습
여기서 진권아우와 작별을 고한다
저녁에 아들 생일빵을 해줘야 한다고 먼저가고 산으로 아우님과 둘이서 달암재로 향한다
도로를 건너서 묘지로 올라 선 다음에...
삼광사 납골당 도로로 걸어간다
삼광사 극락원(15:08)
삼광사 추모공원(15:10)
추모공원 관리동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 분은 생전에 酒種不問(소주, 캔막걸리, 고량주, 양주, 맥주)에다 고스톱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후손들이 여러가지 술에다가 화투를 갖다 놓았다
추모공원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질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걸어간다
무명봉(15:25)
잡목을 헤치고 무명봉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의 성주 방향으로는 참외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보인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여태껏 편하게 온걸 보상하려나.. 여름엔 지나가기가 무척 힘들듯 하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예전에 채석장이었던 모양이다
381.2봉(15:33)
지나온 영암산과 선석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고....
가야할 각산(봉화산)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등로는 보이질 않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채석장 절개지라 다시 후퇴하여 좌측 능선 아래로 내려선다
뒤돌아 본 381.2봉 아랫쪽 모습
중장비의 잔해
선답자들 대단해요
잡목의 저항은 점점 심해지고...
여름에는 힘들겠다
계속해서 만나는 칠곡군계의 띠지
아카시아 나무를 비롯한 잡목의 저항이 예상보다 심하다
질매재(16:00)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질매재마을에서 성주군 월항면 수죽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인적이 드문 탓인지 좌.우의 길은 전혀 보이질 않고, 희미한 고개의 흔적만 보인다
고개의 지형이 질매처럼 생긴 고개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말굽쇠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 두개를 앞뒤로 나란히 놓고, 안쪽 양편에 두개의 막대를 대어 이들을 고정시킨다.
안쪽에는 짚으로 짠 언치를 대어 소 등에 얹는다. 한편, 틀 위쪽에 앞뒤에 끈이 달린 가는 막대 두개를 역시 좌우
양편에 꿰어놓으며, 앞끈은 소의 가슴에 두르고, 뒤끈은 소의 궁둥이에 대는 껑거리막대에 잡아맨다.
이 끈들은 소 등 위에서 길마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또한, 길마는 옹구나 발채 또는 거지게 따위를
올려놓기 위한 받침대의 구실을 하며, 이것 때문에 틀에 실린 물건이 소의 등이나 옆구리에 닿지 않는다.
길마는 주로 소나무로 만든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돌무더기 형태의 흔적이 보이고...
등로에서 뒤돌아 본 381.2봉
자연 굴(16:04)
폐광(?)의 흔적인지 뻥뚫린 구멍이 보이고...
안부(16:06)
다시 각산(봉화산)을 향한 오르막이 시작되고...
봉화터(16:17)
450봉(16:20)
성터 위를 올라서니 정상에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원주원씨 묘지가 있다.
그리고 앞쪽에는 왜관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450봉 정상에 자리잡은 원주원씨 묘
450봉에서 바라본 왜관읍(倭館邑)의 모습
칠곡군청 소재지가 있는 왜관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왜구(倭寇)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이를 막을 목적으로 태종(太宗) 때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인 사신이나 교역자들을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였다. 당시 관(官)에서 관리하던 왜관으로는 부산포[초량], 제물포[창원],
염포[울산] 및 서울 동성관[현 인사동] 등이 있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수로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위하여 두모포, 절영도, 가배량 및 초량 등과
낙동강을 이용하는 중간 숙소인 소규모 왜관으로 약목면 관호리, 왜관읍 금산리 강창, 김해, 창원,
화원창 등 5개소, 도합 10여 개 소를 설치하였다. 현재는 모두 기록만 남아 있을 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칠곡군에만 ‘왜관’이란 지명으로 남아 있다.
왜관(倭館)은 원래 금산과 달오에 있는 파산(巴山)의 이름을 따서 파며(巴
)라 하였다가 후에 파미(巴彌)로 고쳤다.
1904년(고종 41)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면서 처음에는 약목면 관호리[지금의 구(舊) 왜관]에 지으려고 했던 역
사(驛舍)를 강 연안 넓은 갯벌로 인해 이곳에 지으면서 왜관역이란 이름을 따라 마을 이름도 파미에서 왜관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봉화재(16:22)
각산(角山:468.3m:16:25)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와 성주군 월항면 용각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변에는 봉화터와
산성의 흔적이 보이고 정상에는 성주군 월항면 월명회에서 세운 정상에는 “각산”이 아닌 “봉화산”이라는
표시석이 서있어 외지인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영진지도와 다른 지도에는 각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각산(角山)은 이전에는 구무실[일명 공실(孔室)이며 각산(角山)은 뿔로 된 산을 의미하지만, 마을에서 전해 오는
각산(角山)의 유래는 매우 다양하다...도학을 크게 융성하여 자손들을 깊이 각성시키겠다는 의지로 마을 이름을
‘각산(覺山)’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선생이 좌우 산천쪽 산세가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산봉우리를
우수봉(牛首峯)이라 했는데, 소는 뿔이 있어야 힘을 쓰는데 우수봉에는 뿔[角]이 없으므로, 마을을 우수봉의
뿔로 비유하여 각리(角里)로 바꾸었으며, 또 외뿔형이어서 녹리(甪里)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각산 정상의 2등 삼각점(△왜관 21)
각산은 조선시대 봉화대가 있던 산이며, 지금은 북서쪽 기슭에 경북과학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각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관아의 북쪽 20리에 있다. 남쪽으로 성주 성산 봉수의 신호를 받고
또 남쪽으로 대구 마천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으로 인동 박집산 봉수에 신호를 보내는데,
25리 거리이다."라고 각산 봉수에 대해 서술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도에는 각산봉(角山峰)이라는 이름과 함께 봉수대가 묘사되어 있다.
각산 정상 삼각점 표지판
정상석을 지나 벤취가 있는 곳에서 산으로 아우님과 물한모금 마시면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각산 끄트머리에 있는 이정표
이곳에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벤취에서 유월리 방향으로 가는 넓은 길은 영암지맥이 아니고, 지맥길은
이정표에서 10m 정도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지니 봉수대의 돌담이 잡초속에
묻혀 버리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곳을 헤치고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유월리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다
갈림길(16:33)
아예 등로는 보이질 않고 독도에 아주 신경쓰야 할 구간이다
마른 잡초가 가득한 급경사로 내려서니 낙엽에 파묻힌 무명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면서 무조건 좌측으로 붙어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선다
산불이 난 지역인지 불에 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넘어져 있다
급경사로 내려선다
잡초에 파묻힌 전주이공과 부인 성산이씨 묘지가 보이고...
무명봉(16:50)
무명봉에서 희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안부(16:52)
안부로 올라서니...
가야산 너머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맘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363봉(17:02)
급하게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면서 베낭을 들쳐메고 마라톤하듯 달린다
묘지를 지나면서 등로가 잘 보이질 않고...
계속되는 잡목의 저항
묘지를 지나니 고개가 나온다
느린골 고개(120m:17:20)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 유촌마을에서 칠곡군 기산면 금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어둠속이긴 하지만 성황당같은 흔적이 약간 보이는데, 고개를 가로질러 오르막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는데 재선충이 심했던 모양이다... 소나무를 훈증하여 쌓아둔 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를 지나고 마른 잡초가 무성한데 어둠은 밀려오기 시작하고... 맘은 점점 급해진다
무명봉 2개를 더 넘어서는데도 날머리는 보이질 않고...
서울 청산수 산악회에 표지판을 걸어 놨는데 위치 선정이 잘못된 듯하다 (17:36)
220.9봉(17:42)
220.9봉 삼각점(△ 왜관 410 / 1998 복구)
220.9봉에서 삼각점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잡목속에 묻혀있는 삼각점을 찾았다.
그런데 날이 너무 어두어 내려가가는 등로가 아예 보이질 않아 하는 수 없이 헤드렌턴을 켠다
海州吳公 묘지(17:49)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어둠속을 헤매면서 내려서니 다람쥐재라 불리는 달암재가 나온다
달암재(月岩峙:17:55)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와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3번 구 국도가 지나가고
바로 앞에는 왜관에서 성주로 이어지는 33번 신국도가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
지도상에는 생뚱맞게 다람쥐재라고 표기해 놓았는데 고지도를 비롯한 자료를 찾아봐도
생뚱맞은 지명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국토지리 정보원에서 편찬한 한국지명 유래집 경상편에 보면
월암고개는 영취산에서 도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에 위치한 고개로, 문화천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이 고개는 성주의 동북쪽 관문에 해당하며, 예로부터 성주와 칠곡을 연결하였다. 지금도 33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월암고개는 『대동여지도』에 월암현(月岩峴)으로 표기되어 있고, 이 지도에는 성주에서 월암고개를
넘어 동안역(東安驛)을 거치고, 다시 낙동강을 건너 인동까지 가는 도로가 그려져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개의 이름이 월현암(月峴巖)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다람티주막[月峴酒幕]이 인근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월암이라는 이름은 고개 남쪽의 산봉우리인 달암산[月岩山]에서 유래하였다.
달암산은 이 산의 바위 위로 달이 떠올라서 붙여졌다는 설과, 이 산에 달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달암재로 내려와 산행을 종료하며 스틱을 접는데 짙은 어둠속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히치할 엄두도 못내고, 왜관 택시를 부르니 10분만에 택시가 도착하여 왜관으로 향하면서
귀경 차량편을 검색하는데, 왜관이란 곳은 대구와 구미가 가까워서 그런지 서울로 가는 버스는
아예없고, 열차는 20시 10분에 출발하는 입석만 남아 있다... 그걸 타려면 2시간 이상을 왜관에서
축쳐야 하고 설령 서울에 떨어진다해도 자정쯤이라 귀가 시간이 불편할 것 같아, 구미로 향한다.
구미에 도착하여(택시비 34,000원) 버스표를 알아보니 우등고속버스표는 없고 일반 버스표만 있다
구미고속버스 터미널(18:45)
터미널에 도착하여 19시 10분발 고속버스표를 예매하고, 잔치국수에다 오뎅에
캔맥주 하나를 마시며 저녁을 대신하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승강장으로 향한다
구미발 → 서울행 고속버스(19:10)
우등 고속버스는 표가 없어서 난리인데 일반 버스는 40인승 버스에 우리 둘을 포함하여 승객이란곤 달랑 5명뿐...
우등이 아니라 완전히 침대 버스다...기사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굉장히 편하게 왔다
서울에 도착하니 정각 밤 10시... 산으로 아우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한다
'백천(영암)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천(영암)지맥 제2구간 - 월암재(다람쥐재)에서 합수점까지 (0) | 2017.02.27 |
---|---|
백천(영암:鈴岩) 지맥 개념도와 지도 (0) | 2016.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