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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웅천(성주)지맥(終)

웅천(성주)지맥 제 2구간 - 말재에서 부사방조제까지

by 범여(梵如) 2017. 5. 19.

☞ 산행일시: 2017년 5월 18일

☞ 산행날씨:맑은 날씨에 미세먼지...한여름 못잖은 더운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20.8km  + 어프로치 2.1km  / 8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남포농협-남포초교 입구-남포읍성-쉼터-약수터-말재-317m봉-321m봉-NO58송전탑

                  안부-옥서리 갈림길-380m봉-331m봉-안부-봉화산-갈림길-323m봉-수부리 갈림길

                  잔미산 갈림길-잔미산-다시 갈림길-사현마을 갈림길-윗잔뫼마을 갈림길-사현터널 위

                  이어니재-223m봉-215m봉-시멘트 임도-임도 사거리-여산송씨 묘비-275.1m봉-청주한씨 묘

                  두루니고개-무명봉-무명봉-안부-248m봉-폐함석 가옥-갈림길-안부-202m봉-173.6m봉-갈림길

                  무송윤공 묘-660번 지방도-진등삼거리-관당초교-기현삼거리-무창포 주유소-74m봉

                  김녕김씨 묘-간드리 고개-100m봉-75m봉-쉼터- 경주김씨 묘-독산사거리-황골마을 입구

                  갈림길-공군부대 철조망-광주안공 묘비-통달산-통달산성-임도-28m봉-607번 지방도

                  장안마을 표시석 입구-부사방조제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남포면, 웅천읍

 
이번주에는 이상하게 초반부터 업무가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꼴저꼴 다 보자니 머리가 터질것만 같다

안되는 것도 없고, 되는것도 없고... 미칠 지경이라 이꼴 저꼴 안보려고 산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 여름이면 갈 수없는 웅천(성주)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단하게 먹을 물과 갈아입을 옷만 챙긴 채 새벽 5시에 차를타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10분만에

대천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으려고 하니 영 입맛에 땅기는게 없고 지난 월욜부터 술을 계속 마셔던터라

속이 아직도 좋지않다... 그렇다고 안 먹을수도 없다... 점심은 중간에 매식으로 해결하려고 먹을거라곤

우유 하나와 초코파이 2개밖에 없기에 떡라면 하나 시켜 억지로 국물까지 다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대천I.C를 빠져나와 남포면 읍내리에 있는 남포농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준비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포 농협 주차장(06:55)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거 같다.... 하기사 새벽에 차량이 전혀 없어서 오랫만에 시속 140~160km 정도

시원스레 밟으면서 오다보니 그런거 같은데 가슴에 꽉막혔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해소된 느낌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7:00)

보령시 남포면은 1914년까지 하나의 현(縣)이었으며, 이 남포의 형승을 두고 김환(金丸)은

‘청련포(靑淵浦)는 바다와 통하고 옥마산(玉馬山)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하였다

 

남포라는 명칭은 이 지역 옥산에 빈번히 침입해오던 왜구와 해적들이 복어를 좋아했고

이 복어 가운데 쪽나무 꽃잎을 먹은 복어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데 착안하여

이곳 현감이 포구옆에 쪽나무를 많이 심도록 하여, 현민들이 많이 심은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포초교입구(07:02)

도로를 건너 읍내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남포초등학교 표시석이 나온다

마을 골목을 지나니 가야할 들머리 말재가 보인다

남포읍성(藍浦邑城:07:05)

충청남도 기념물 제 10호인 남포읍성이다

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하는데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으로, 남포는 백제 때 사포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읍성은 원래 고려 우왕 때 서해안을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성이었는데, 공양왕 2년(1390)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추가하여 완성하였으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쪽 벽은 돌을 이용하여

직각으로 쌓았고, 성벽의 안쪽은 흙으로 쌓아올렸다. 동·서·남 세 곳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4m의 높이로

성 바깥에 설치하는 또 하나의 성벽인 옹성을 둘렀는데, 1m 이상의 큰 돌로 축성하였다.

 

성벽이 꺾이는 부분에는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튀어나오게 쌓았으며,

그 양쪽 성벽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몇가지 시설을 해놓았으며, 성 안에는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현청 보존되어 있으며, 동서에 80㎝ 높이로 배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물이 세 군데 있었다고 하는데 이 읍성은 서해안의 요충지로 왜구를 경계하는 한편,

해상 교통을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포향교 표지판을 지나 계속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남포향교(藍浦鄕校)는 조선 태종 때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1530년(중종 25)에 중수하고 1635년(인조 13)에 중창하였으며, 1720년(숙종 46) 웅천면 대창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삼문()·동재()·서재(西

향관청()·수복청()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전교() 1명과 장의()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장 전적은 6종 36책이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웅천과 대천으로 이어지는 도로 공사중인데 남포면소재지로 안들어 오는 우회도로이다

등로입구(07:13)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산에 들었는데  이름모를 새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진한 아카시아향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쉼터(07:23)

지난 3월 26일 웅천(성주)지맥 1구간 하산길에 없었던 공사안내 플랑카드가 보인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데... 뭔 공사를 하려는지... 지자체장님들 제발 헛돈들 쓰지마소

약수터(07:30)

가뭄탓인지 약수터는 바짝 말라 버렸다.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듯한 돌무더기도 보인다

드디어 말재에 올라 지난구간에 끊었던 웅천(성주)지맥길을 다시 이어간다

말재(馬峙:07:32)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와 성주면 개화리를 잇는 고개로 큰 당산나무가 2그루있고 대형 등산안내도와

등산로 안내표시판과 이정표(↑개화리 2km,↓남포면 읍내리 1.2km, ←옥마봉 3.4km, →사현마을 2.2km)가 있다
대동여지도에 옥마산 아래 馬峙가 있고  남포(조선시대 藍浦)에서 홍산(조선시대 鴻山縣,부여군 홍산면)을

잇는 길목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황당은 아직도 洞祭를 지내는듯한 흔적들이 보인다

뭔 지랄인지?

지난 3월 26일에 성주지맥 1구간을 걸으면서 너무나 등로가 좋아서 마치 고속도로 걷는 기분이라

했는데 2달이 지난 후 오른 말재... 지금 이곳은 그것도 모잘라 다시 산을 까뭉개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현재 있는 등로도 아주 잘 정비되어 있고, 그렇다고 이곳은 특별한 것이 없는데 많은 돈을 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보령시장 나리는 아시는지?...환경이 파괴되면 인간도 망가진다는 것을...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멋있는데... 그리고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미세 먼지와 각종 질병

모든게 환경 파괴와 직결되는 거 아니요...

제발 펜대 굴리며 탁상공론으로 정책 결정 하지 마시고 자연을 그대로 좀 내버려두소

인간들의 등살에 희한하게 생긴 저 나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

서낭당 옆에 있는 김광현씨 기념비에서 본격적인 웅천(성주)지맥 2구간을 나선다

317m봉(07:34)

말재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앙증맞은 돌탑과 삼각점이 있는 317봉이 나온다

317m봉 삼각점(대천 456 / 1978.8 재설)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초반부터 바람한 점이 없고 무더운 날씨가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다

321m봉(07:36)

NO58 송전탑(07:38)

송전탑을 지나 조그만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니...

약간의 오르막길에 이정표(←말재 0.4km, →잔미산 3.3km) 이정표가 서 있다

안부(07:45)

낙엽이 수북한 등로를 지나니...

벼루를 만드는 돌로 유명한 남포 오석들이 등로에 많이 보인다

 

남포 오석은 웅천읍, 남포면, 미산면, 성주면, 청라면 등에서 생산되지만 옛날 

이 지역이 모두 남포현 관할지역이어서 총칭 "남포 오석" 이라고 부른다

흑색사암으로 갈면 검은빛이 나며 조각하면 흰색이 나타나는데 풍화에 강하고 아름다워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는 남포오석은 비석용으로는 최고품으로 손꼽히며 

생산되는 가공품도 비석, 상석뿐 아니라 트로피, 감사패 등 다양한 석가공품으로 제작되고 있다

 

남포 오석이 맨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백제때부터 라고 하지만, 보령지방에 

세워져 있는 오석으로 된 비석의 연대를 살펴보면 대략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웅천지방의 석공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되며 차령산맥의 끝자리에 

위치한 웅천은 전국 최고의 오석 생산지로 고려때부터 큰 규모로 발전하여 원석산지인 남포면 월전리, 

웅천읍 수부리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월전리는 경주이씨 동족마을로서 165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어 일제시대말엽 120호중 

100여 호가 석공업에 종사함으로써 석공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1940년대부터 돌을 가는 과정(마석과정)이 기계화된 뒤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웅천읍 대천리에 

공장이 집중적으로 들어섰고, 또 1970년대에 들어와서 돌을 자르는 절단기가 보급되고 전공정이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석공장은 웅천읍 대천리에 집중적으로 세워짐으로써 보령 석공업의 중심지를 이루게 되었다.

옥서리(玉西里)갈림길(07:48)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는 옥마산과 남포 저수지 사이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말엽엔

남포군 군내면의 지역인데 옥마산과 서리의 이름을 따서 옥서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건정이,

말굴, 바람막기, 월구리, 쟁그랭이 등이 있는데 건정이는 옥서리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말굴은 건정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말고개 밑에 있었다 하며, 바람막기는 월구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마시풍형의 명당이 있다 한다. 월구리는 옥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지형이 반달처럼 되었다 한다.

쟁그랭이는 옥서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포 오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이곳 토산품은 성주산 서쪽에서 나는

연석(硯石)이 좋다고 했으며 비석은 검정색인 오석(烏石)이 상품(上品)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남포 오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이 좋은 오석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를 세우는 돌로는 첫 손에 꼽히는 남포오석으로 만든 비가 성주사지에 있는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이며, 또한 파고다 공원에 있는 삼일독립선언비,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박정희 前대통령의 묘비도 남포 오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380m봉(07:52)

부드러운 등로에는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간간히 돌들이 보인다

331m봉(07:57)

그네 나무인가?

간간히 만나는 이정표는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안부(08:02)

안부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서니...

이정표가 나오고...

규암이라 부르는 차돌바위가 나온다

봉화산(烽花山:329m:08:07)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와 웅천읍 수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정표와 표지판이 있으나

봉화가 있을만한 곳도 아니다... 전망은 전혀없고 주위에 차돌바위만 간간히 보인다

여영님! 부산에서 이곳까지...멀리서 오셨군요?

땅비싸리가 이른 아침에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갈림길(08:12)

뚜렸한 우측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바래버린 시그널

이 분도 나만큼 똥고집인가 보다...원칙 좋아하다가 골병 들겠소

323m봉(08:15)

국립지리원 1/25000지도에는 이곳을 봉화산(烽花山.)으로 표기하였는데
봉화산은 烽火山이 아니고 꽃‘화(花)’자를 쓴 烽花山이라 조금 특이하다

323m봉은 아무도 오르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정상 주위에는 엄나물이 지천으로

널렸건만 짱아찌라도 못 담을만큼 늙어버려 수확을 포기하고 그냥 지나친다

잡목을 헤치고 직진으로 가다가...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작정 길이 없는 곳을 치고 내려오니 송화(松花)가루가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막무가내로 치고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갈림길을 다시 만난다(08:20)

소나무와 잣나무가 혼용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넓은 안부가 나오고...

아직도 먹을만한 두릅이 조금씩 보인다... 개고생하면서 걷는데 이런 수입이라도 잡아야제

수부리(水芙里)갈림길(08:25)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는 수안리와 부당리를 병합하여 수부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가름자골, 불근댕이,

새터, 수안 등이 있는데 가름자골은 가암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암자가 있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불근댕이는 옛날엔 마을앞에 연못이 있었고 그 옆을 부근당이라고 불렀다 해서 생긴 이름으로  수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며, 새터는 불근댕이 뒤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수안은 두 내가 마을을 둘러싸고 흘러서 삼면이 물로 되어있는 마을이라 하여 옛부터 수안이라고 불러오던 마을이다.

수부리에는 단원사가 있는데 가름자골에 있는 절인데 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가 1937년 중건되었다

수부리 갈림길에는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덤이 있고...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올라가는데...

준.희 선생의 격려문구

잔미산 갈림길(354m:08:37)

웅천(성주)지맥길에서 0.3km 떨어져 있는 잔미산으로 향한다

오름길 넓은 공터에는 휴게용 장의자 2개가 있고...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서 잔미산 등로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산불감시초소

잔미산 정상의 삼각점( 대천25  / 1986재설)

잔미산 정상의 이정표

잔미산(412m:08:45)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 대천리, 성동리, 수부리로 둘러싸인 산으로 웅천읍의 중심이 솟아 있는

높은 산이라 예부터 주민들의 연료 공급지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지질은 중생대 퇴적암으로

되어 있어 역암, 사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남포 오석의 산출지이기도 하다.

또한 석탄층이 있어 오랫동안 무연탄을 채취하기도 하였다.꼭대기에는 산성이 있다.

잔미산이라는 이름도 성(城)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성의 고어 ‘잣’에 뫼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잣나무가 많은 산이라 柏山(백산), 「잔비산」이라고 부르는 山(산)이다.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초소와 2등 삼각점, 표시석, 이정표, 옥미봉 봉수대지 표지판과 봉수대가 있다.

잔미산 정상에는 옥미봉(玉眉峰) 봉수대지 표지판과 봉화대로 보이는 석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봉화대 남쪽의 평평한 곳에 돌담으로 된 건물지가 있고, 남쪽 능선에도 건물지가 있다

건물지 주변에는 시누대가 울창하여 방풍용으로 대나무를 심었음을 알려주며, 약 1.5km 남쪽의

보령지역의 봉수대는 전라도 순천 방답진(防踏鎭)에서 시작되어 진도의 여관산(女寬山) , 옥구 화산(花山)을

거쳐 서천 →비인→ 남포→ 보령→ 결성→ 홍주 →당진→면천을 거쳐 양성의 괴태관(塊苔串)에서 직봉(直烽)으로

연결되었는데 옥미봉 봉수는 비인 칠지산(漆枝山) 봉수에서 받아 보령 조침산(助侵山) 봉수로 전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을 옥미봉으로 불렀던 모양이다 (범여의 생각中에서)

잔미산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잔미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서둘러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돌아온 잔미산 갈림길(08:55)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처져 있고...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옥마산과 미세먼지가 자욱한 보령시내의 모습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

“충청도의 산천에서는 보령이 가장 훌륭하다”라고 저술되어 있다

택리지가 쓰일 무렵에 보령 서쪽에는 수군절도사 군영이 있었으며, 영 안에는 영보정이

있었는데 이곳은 호수와 산의 경치가 아름다워  명승지라 불렀다고 한다

사현마을 갈림길(09:00)

넓은 임도로 내려오는데 남포면 옥서리 사현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조금전 잔미산 갈림길 이정표에 이어니 고개까지 0.9km 남았다고

했는데 500여m나 내려온 지점인데 이곳도 0.9km나 남았단다... 어느게 맞는지 헷갈린다

이른 아침인데도 날씨는 무쟈게 덥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편안하게 내려간다

윗잔뫼마을 갈림길(09:05)

좌측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좁은 임도로 향한다

또다시 좌측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향했건만 길이 없어 개고생을 한다

후답자들은 원칙대로 가서 개고생하지 마시고 좌측의 뚜렸한 임도로 가시길...

사현터널 위(09:10)

이 봉우리 아래로 대천에서 웅천으로 이어지는 장항선 열차가 지나가는 사현터널이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엄청난 절개지가 나오고 대천에서 웅천으로 가는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인 이어니재가 보인다

水路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차량의 흐름을 확인하고 재빨리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길을 건넌다

조금전에 우회길로 내려서면 개고생 안하고 편하게 내려왔을텐데... 뭔 지랄이라 사서 개고생을 한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내려온 수로의 모습

배수지 앞에 있는 이어니재 수준점

이어니재(112m:09:20~09:30)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 사현마을과  웅천읍 두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21번 국도가 지나가고

맞은편에는 장항선 철길이 지나는 사현터널이 있는 곳인데 지금은 도로확장 중이라 어수선하다

고개 정상에는 만세보령지킴터에 충혼탑과 참전경찰공적비를 세운 경찰공원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장항선 열차가 지나는 굴이 있는데 이굴을 「이어니굴」이라고 부르며

굴의 길이는  500m나 되는 긴 굴로서 1931年 일제시대에 뚫은 굴로서 이곳에서 지명을 따온듯 하며

실제 이어니굴이라 부르는 터널은 지도에는 사현터널로 표기가 되어 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군·경찰·방첩대 등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적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이승만 정권 하인 1949년 4월21일부터 좌익 전력자들을 사상적으로 개조한다는 취지하에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들 연맹원들이 북한 정권에 동조해 정부를 전복할 것을 우려하여  집단적으로 사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도연맹 추모지 옆에 충혼탑과 참전경찰공적비를 세운 경찰공원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곳 주차장에 있는 수돗가에서 송화가루를 털어내며 머리를 씻은 다음에

쉼터에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좌측의 철계단을 따라서 다시 길을 나선다 

철계단을 올라선 다음에 배수지 철조망 우측으로 오르니...

묘지 3기가 있는 곳을 지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또 다시 묘지 2기를 연달아 지나며 능선으로 오르니 223m봉이 나오고...

223m봉(09:43)

223m봉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선다

마가목 나무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는데...

희미한 등로를 따르다 내려서니...

등로 좌측 아랫쪽으론 풍천임씨 묘지가 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무명묘지 가운데로 지맥길은 이어지고...

무명묘지에는 백선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둥굴레가 잔디를 대신하고 있다

215m봉(09:52)

등로 좌측 아래에 있는 골재 채취장에선 돌깨는 소리가 요란하다

묘지 가운데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가야할 275m봉이 보인다

시멘트 임도(10:00)

보령시 남포면 신흥리에서 웅천읍 두룡리를 넘어가는 고개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온다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선다

임도사거리(10:10)

뚜렸한 좌측의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등로를 따른다

억새가 무성한 곳으로 올라서니...

여산송씨 묘비(10:13)

여산송씨 묘지에서 뒤돌아보니 지난 구간의 성주산과 옥마산, 오늘의 봉화산과 잔미산이 차례로 보인다

본격적인 고행의 길이 시작된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뚜꺼비처럼 생긴 바위도 지나고...

군 교통호처럼 생긴 곳의 가운데로 올라서니...

275.1m봉(10:22)

정상에는 외래식물인 자리공이 완벽하게 봉우리를 점령하고 있고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다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보령452이란다

275.1m봉에서 잡목을 헤치고 서쪽으로 치고 나가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무명묘지를 지난다

등로가 거칠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청주한씨 묘(10:35)

등로에서 바라본 웅천읍 두룡리(杜龍里)

보령시 웅천읍 두룡리는 두명리와 용와리를 병합하여 두룡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용안이, 두루니, 웃말리 등이 있다.

용안이는 두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인데 옛날에는 용못이 있었다 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또한 지형이 용이 누운 형국이라 용화리라고도 부른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둘이 있는데 이 바위를 쌍바위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한다. 두루니는 산이 앞뒤로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는 산새의

울음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마을이였다 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웃말리는

두루니 마을 위쪽으로 자리한 마을이라는 해서 이루어진 이름이다.

잡목이 우거진 봉우리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니 자작나무 조림지가 나온다

두루니 고개(135m:10:40)

웅천읍 두룡리 용안이 마을 북쪽으로 두루니 마을이 윗족에 있는 고개로 두루니 마을을

두명리(杜鳴里)라고도 부르는데 山(산)이 앞뒤로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산새의 울음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마을이였다 한다.

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갑자기 거칠어지면서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등로는 잘 보이지도 않고  송화가루가 너무 많이 날려서 베낭과 옷이 송화가루 범벅이다

꼬인 소나무를 지나니...

무명봉(10:55)

잡목에 갇혀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계속되는 잡목의 태클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산초나무와 아카시아가 태클을 걸어된다

다들 대단들 해요

무명봉(11:05)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은 상상조차 하기가 힘들다... 손등은가시에 긁혀 피투성이다

준.희 선생님 지나가신지는 꽤나 오래된 모양이다

안부(11:08)

보이지 않은 등로를 헤치고 올라서니...

이곳이 248m봉이란다

248m봉(11:13)

248m봉에서 우측의 희미한 등로로 향하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르는데 우측으론 넓은 공터가 보인다...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따른다

폐함석 가옥(11:17)

등로 좌측 아랫쪽에 폭삭 주저앉은 폐함석 가옥이 있다

갈림길(11:20)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선답자들의 시그널 서너개가 보인다

아예 등로 자체가 없기에 내가 길을 개척해서 걸어간다

개고생을 하면서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안부(11:28)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202m봉(11:33)

바위지대를 지나는데 오늘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다

등로 우측으로는 죽도 관광지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보인다

집채만한 암릉구간도 지난다

등로 좌측으로는 건강한 소나무 군락지도 보이고...

조금 편안하게 지맥길을 이어간다

낙엽이 수북한 안부도 지난다

173.6m봉(11:45)

정상에는 잡목이 무성한데 삼각점이 있건만 삼각점 자체로는 판독이 안된다

국립지리원에서 세워논 표지판에는 서천 404라고 한다

173.6m봉에서 지맥길은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주위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랴... 잠깐 사이에 고사리를 꽤나 많이 수확한다

173.6m봉 삼각점

173.6m봉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서 내려서니 잣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갈림길(12:00)

무명묘지 2기가 보이고...

무송윤공 묘지(12:03)

무송윤씨 가족묘지로 내려서니...

606번 지방도(12:07)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에서 관당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내려서니 도로 건너편에 진등식당이 보인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고 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싸지 않았는데 절묘하게 점심시간을 맞춘다

점심시간(12:08~12:30)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이곳에서 매식을 하려고 점심을 싸오지 않았다

이곳에는 주위의 공장과 논밭에서 일하는 인부들로 인해 식당은 만원이다

빈자리가 나오기에 쨉싸게 앉아 백반 한그릇(7,000원)에 션한 맥주 한병으로

점심을 먹은 다음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 수통을 물을 보충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가정식 백반인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입맛에 딱 맞았다.

진등 삼거리(12:31)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 남포면 원전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진등삼거리란다

606번 지방도가 지나는 윗쪽으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고개인데 이 지역 사람들은 굴고개라 부른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 계속해서 606번 도로를 따르는데 좌측으로 관당 카 공업사가 보인다

관당초등학교 도로옆에는 공적비가 여러개 보인다

관당초등학교 입구(12:35)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도로 좌측에는 수피아펜션도 보이고...

기현삼거리(12:38)

기현 삼거리 좌측에는 축청1리 표시석이 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춘장대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이고, 지맥길은 직진방향인 무창포해수욕장 방향으로 향한다

무창포해수욕장(12:40)

무창포 해수욕장을 지나니 보령예석 석재공장이 보인다

무창포주유소를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에 있는 시멘트 임도로 올라선다

시멘트 임도에 오른 다음 직진으로 능선에 오른다

74m봉(12:47)

엉컹퀴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묘지가 있는 74m봉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녹음이 우거진 등로를 따른다

등로 우측으론 무명묘지가 보이고...

이 넘도 참으로 이쁘게 피어있다

김녕김씨 가족묘가 나오고 가야할 100m봉이 보인다

김녕김씨 가족묘(12:53)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간드리 고개(12:55)

웅천읍 무창리 간드리 마을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로 시멘트 도로된 된 사거리인데 최근에

조성된듯 한 간드리 마을 둘레길 안내도와 무창포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이며

간드리, 또는 간입리(看入里)라고 부른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몸에 병이 있거나 벼슬길에서 그만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

모두 편안하게 사는 마을이라 「간드리」, 간입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를 따른다

고속도로만큼 넓은 임도를 따르는데 이곳을 간드리 둘레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무창포 해수욕장

웅천읍 무창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일제시대에 개장했다고 하니 꽤나 오랫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창(武昌) 서쪽으로 포구가 있는데 이 포구를 무창포(武昌浦)라고 부르며 조선시대 때 세미(稅米)

창고가 있 는 갯가에 포구라 해서 무창포(武昌浦)라 부른다고 한다.

계속해서 편안한 등로를 걸어간다

100m봉(13:05)

간드리 둘레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정상에는 최근에 지어진 듯한 태봉정이란 팔각정과 이정표,

무창포 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각종 운동기구와 동백나무를 많이 식재해놨다

무창포 해수욕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태봉정의 모습

운동기구 앞으로 무창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이고...

이곳에서 독도에 조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무심코 직진을 하다간 알바를 하기 딱 좋은 곳이다

태봉정 계단에서 좌측으로 심하게 꺽어져 내려서니 아주 넓은 임도가 나온다

등로 저 너머로는 장항의 용당정으로 이어지는 금북기맥의 뚜렸한 능선이 보이고...

75m봉(13:08)

75m봉 좌측 아랫쪽엔  묘지들이 보이고...

쉼터(13:17)

컨테이너 하우스를 지나니...

등로 좌측 아래에도 잘 관리된 묘지들이 보이고...

경주김씨 묘지(13:23)

묘지를 지나자마자 607번 지방도가 보이고...

독산 버스 정류장이 있는 독산사거리가 나온다

도로 우측으로는 독산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독산해수욕장은 무창포해수욕장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홀뫼해수욕장이라고도 하며,  

해변 남쪽에 섬으로 착각할 정도로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솟아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폭이 10여 m에 불과한 해변에서는 남쪽으로 장안해수욕장과 부사방조제가, 북쪽으로 독산해수욕장이 보인다.
독산해수욕장 북단에는 무창포해수욕장과 경계를 이루는 ‘닭벼슬’이라는 곶이 튀어나와 경계선 구실을 한다.

해변의 길이는 무창포보다 다소 짧다고 한다

독산(獨山) 사거리(13:25)
웅천읍 독산리에 있는 마을로 홀미 또는 홀뫼 라고도 부르는데 홀로 떨어져 있는 山(산)아래에

마을이 있다고해서 「독산」,「홀미」,「홀뫼」라고 부르는데  이 마을에는 옛부터 말무덤과 말구멍이

있다고 하며. 옛날 남원양씨(南原 梁氏) 집안에 장수 한사람이 탄생하였는데, 출생한 지 1년도 못되어
아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곤 해서 장수가 낳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그 아이를 몰래 죽였다 한다.

그 아이가 죽자 바위가 들석 하더니 백마(白馬)가 튀여나와서 바닷가를 뛰여다 니다가 죽었는데,

그 말을 묻어준 자리는 「말무덤」이라 부르 고 말이 튀여나온 암굴은 「말구멍」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그 자리가 있다고 한다

황골마을 입구(13:30)

웅천읍 소황리에 있는 마을로서 소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소황리와 황교리에 걸쳐있는 마을이다

독산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직진하여 서천방향의 607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갈림길(13:32)

ㅏ자 갈림길을 지나니 창고같은 건물이 하나 보이는 곳에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607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 마을길로 들어서는데

공군 웅천파견대라는 표지판이 서 있고 좌측 도로쪽은 철조망 작업이 진행중이다

창고와 사일로가 보이는 건물쪽으로 가는데 우측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가 있다

계속해서 마을 도로를 따라서 직진을 한다

마을 도로를 벗어나 농로쪽으로 들어선다

마지막 민가를 지나고 농로를 따라서 걸어가니...

우측으로는 공군전투 비행단 사격장 후문이 나오고...

넘어진 공군부대 철조망 안쪽에는 농사를 짓는 농토가 보이고 민가같은 주택도 가끔 보인다

경고판이 붙어있는 공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계속해서 걷는다

농로 좌측으로는 공중수로가 보인다

공군부대 철조망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지맥길은 조금을 더 진행하여 숲으로 들어선다

갈림길(13:48)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숲길로 들어서는데 우측에는 광주안공의 묘비가 보인다

등로옆에 서 있는 광주안공의 묘비

등로에 들어서면서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고... 원형 철조망과 대나무의 심한 태클을 받으면서 걷는다

맨발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길은 보이질 않고 어디로 가란 말인지?... 내가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대밭 아랫쪽으로는 먹기 좋은 머위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늑대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 꼴이랄까... 대밭을 피해 우측으로 우회하니 가시나무들이 몸뚱이를 마구 할킨다

건물을 부순 흔적들이 보이고...

이번에는 찔레꽃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 막는데 스틱을 헤쳐가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이번에는 대밭이 나오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계속되는 고통의 연속

대단하신 선답자들

숲속에 방치된 군용짚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려진 짚차가 대충 세어보니 10대인가 11대인가 아리까리하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를 지나면서 또 찔레꽃 가시나무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초지같은 곳을 지나니...

이번엔 비행기 한대가 숲 속에 방치되어 있다

최대한 좌측 능선으로 붙어서 올라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어찌나 심하던지 죽을 맛이다

마치 지맥길중에 가장 악명높은 고흥지맥도 울고 갈만한 곳이다

암릉 구간을 걷는데 땅바닥에 새끼 손가락만 뱀 2마리가 또아리 틀고 있다

자칫하면 밟을 뻔했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 넘들도 놀랬는지 재빨리 도망을 가버린다 

통달산 오르기 직전에는 넓은 두릅밭이 보이는데 쉬어버려 먹을 수 없는 두릅이 지천이다...에공 아까운 거

통달산(通達山:183m:14:40)

보령시 웅천읍 황교리와 소황리 사이에 위치하는 산이며 성주지맥을 이루는 산줄기 끝자락에 해당되는 산이다.

서쪽은 서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장안해수욕장이 위치해 있으며 남서쪽으로 부사방조제가 있으며 통달산

동남쪽으로 웅천천이 서해로 흘러들며 통달산 남쪽 사면에는 웅천천 일대를 간척하여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축성된 봉수대가 있다.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通達山인데 25000지형도에는 涌達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를 옮겨 쓰면서 책받침변(辶)이 삼수변(氵)으로 바뀌어 통달이 용달로 둔갑을 하고 말았다.

한심한 국토지리원...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에 수록되어 있고, 서해안에 우뚝 솟아 산에 올라가면 사면이 잘 보이며

사통오달된 산이라 하여 통달산이라 이름 붙였다. (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통달산 아래 넓은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 묘지 2기가 묻혀있다 

앞에 보이는 넓은 들이 보령시 주산면지역이고 그 너머로는 서천으로 이어지는 금북기맥 능선이다

주산면 들녘을 적시는 웅천천은 서해바다로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가야할 웅천(성주)지맥 합수점이 보이고 부사방조제  너머로는 춘장대해수욕장이 보인다

통달산에서 벌목지로 내려서니 통달산성의 흔적이 보이는데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

간벌지로 내려서는데 비행기 사격훈련이 계속되는데 전투기의 굉음과 폭탄 투하에 귀가 찢어지는 느낌이다

뒤돌아 본 통달산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장안해수욕장의 모습

통달산성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햋빛은 따갑고 식수는 떨어져 목이 바짝바짝 타는데 미칠지경이다

가야할 길과 배랑모랭이의 모습

웅천읍 황교리 구진마을 남쪽에 자리한 모롱이를 배랑모랭이라고 부른다.

배지만이라고도 부르는 모롱인데 옛날엔 이곳을 거쳐 배가 드나 들었다 한다.

통달산 주변으로는 계속해서 공군부대의 철조망 공사가 진행중이다

산행후에 알았던 얘기인데 조금전에 지나온  독산삼거리에서 이어지는

이곳을 공군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공군부대 폭격장으로 활용을 한다고 한다

아마 저 철조망이 완성되면 웅천(성주)지맥도 독산사거리에서 접을듯 하다

그러니 이번 산행은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통달산을 걷는지 모르겠다

등로 우측으로는 마치 논처럼 보이는 둠벙이 보이는데 예전에는 새우같은 것을 양식하였던 곳이란다

임도(15:02)

임도를 가로질러 직진으로 가니 좌측엔 묘지들이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 묘지들이 보이고...

묘지 뒷쪽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데 길은 전혀없다

28m봉(15:10)

이곳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가니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아 갈 수가 없다

다시 좌측으로 내려가 본다

이번엔 시누대기 길을 막고 있고 겨우 빠져 나가니 또다시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하는 수 없이 좌측으로 빠져 나오니 묘지가 나오고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가 보인다

군부대 철조망(15:20)

아마도 후답자들이 이 철조망만 완성되면 통달산 오르기는 아마도 불가능할 듯 보인다

철조망을 빠져나와 607번 도로를 따라서 부사방조제 방향으로 걸어간다

장안마을 입구(15:22)

지금은 마을이 군부대가 들어서는 바람에 마을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라고 한다

장안마을 버스정류장 뒷쪽 철조망이 있는 곳이 원 지맥길이다

부사방조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부사방조제(扶士防潮堤:15:28)

충남 서천군 서면 부사리에서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를 잇는 있는 부사방조제는 1986년에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하였으며, 총길이는 3,474m 이며 매립면적은 1,244ha이고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를 연결하는 부사방조제는 서해 바다에서 밀려드는 조수의 피해를 막고

웅천읍 일대의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방조제는 원래의 목적이외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느데 특히 바다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우럭, 놀래미, 도다리, 광어 등 바다낚시를 하고 방조제 안쪽 담수호에는

민물낚시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다. 부사지구 담수호는 오염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부사방조제에 올라 장안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웅천(성주)지맥 산행을 종료하다(15:30)

부사방조제에서 바라본 장안해수욕장

보령시 최남단에 자리한 장안해수욕장은 부사방조제가 시작되는 지점에 숨은 해변으로

평일 오전이면 갈매기 떼가 인적 드문 모래사장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곳 역시 조개잡이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조개잡이가 잘 되는 해변이라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장안해수욕장 북쪽 해변이 ‘소황사구’ 생태학습장이라는 것이다. 해수욕장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데크로 된 생태탐방로를 따라 갯메꽃 군락, 해당화 군락이 있으며, 더 걸어가면 띠 군락, 통보리사초 군락,

갯방풍 군락 등을 만날 수 있고, 소황습지, 소황사구, 해송이 우거진 송림 군락 등이 장안해수욕장의 중요 자원이다.
해안사구는 갯벌, 사빈(모래해안), 습지 등과 함께 해안 퇴적 지형 중 하나로 파도 등에 의해 해안으로 운반된

모래가 육지 쪽에 낮은 언덕 형태로 쌓여서 형성된 것을 말한다.

이곳 해안사구에서는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표범장지뱀, 매, 삵 등 멸종 위기 야생동물이 관찰되고 있다.

부사방조제에서 내려오니 물레방아 민박이란 가건물이 보이는데 조그만 물 한병을 사서 한번에 다 먹으니

쥔장인듯한 여편네가 담배한대 꼬나 물고는 ‘아따 이 양반! 목이 엄청나게 말랐던 갑소’ 하는게 아닌가

‘그려! 보면 모르요’ 하니 자기가 먹던 물을 하나 더 준다... 그것마져 묵고나니 조금은 살 것만 같다.

배가 고프니 돈은 없고 라면이나 끓여주소 하니까 라면을 하나 끓여주는데 꿀맛이다

 

어디서 왔냐고 하기에 개포동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도 개포동 근처에 살았다고 하면서 지금은

김포공항 근처에 사는데 겨울에는 서울에서 살고 여름에 이곳을 내려와서 장사를 한단다

라면을 먹고나서 기왕이면 샤워나 좀 합시다하여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나서 옷을 갈아입고

버스 시간을 물으니 저녁 7시에 있다고 하는데 남포면 농협에 차를 세워놓았으니 택시를 좀 불러

달라고 하니 바로 위 민박집에서 남녀 서너명이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이 아짐씨가 어느

남자에게 박사장! 대천 언제갈껴 물어보니 4시반쯤 나간다고 하는데 지금이 오후 4시 10분경

그러면 이 양반 가는길에 남포면에 내려주소... 하니 그러겠구마 한다

오늘도 양넘 지갑줏는 기분으로 지맥 하나를 끝내고... 서울로 향한다... 박사장님! 복받을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