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7년 12월 16일
☞ 산행날씨: 맑음... 생각보다 상당히 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2.2km + 어프로치 0.65km / 8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수헌. 산으로 아우님과 함께
☞ 산행코스: 반송고개(왕복)-노성지맥 분기점-130.7m봉-194.3m봉-범복이고개-개코백이산-176.9m동네들 쉼터
턱골갈림길-두루봉-수실고개-시묘살이 건물-175.1m봉-밀머리고개-156.1m봉-161m봉-NO124송전탑
구야고개-무명봉-기도처-255.2m봉-안부-253.6m봉-안부-노성산-노성산성-금강대도 노성본원
갈림길-봉우재산-스피커탑-육군항공학교 후문-창공아파트 버스 정류장-송당리마을회관
노성어린이집-육군항공학교 정문-두고랭이 마을-23번 국도 암거-69m봉-하도교 교차로-64m봉
컨테이너 하우스-23번 국도 암거-두사교회-두사2리 입구-물레고개-39.8m봉-사월2리 입구
사월3리 버스정류장-향월3리 버스정류장-동부팜-이화농원 입구-노성육묘장-(주)TC-신당사거리
광석초교-광석면사무소-사거리
☞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이인면, 계룡면 / 논산시 노성면, 상월면, 광석면
이번주에 송년회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탓에 아홉개의 송년회의 송년회를 끝내고 나니 心身이 지쳐있는
상태라 날씨도 춥고하여 이번주에는 맥산행을 접으려고 했는데 수헌아우님이 논산(노성)지맥을 가자고 한다
자기 고등학교 동창이 계룡산 옆에있는 향적산을 가는데 가는길에 들머리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맥산행의 들머리가 가장 힘들기에 이런 횡재가 있나 싶어 OK하고 토요일 이른 새벽에
탑승장소인 복정역으로 가는데 이른 새벽의 칼바람은 살을 에이는 듯 뼛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다
복정역에는 수헌아우를 만나고 동천역에서 산으로 아우님을 만나 따뜻한 차안에서 잠깐 조는 사이에
자동차는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 도착하고... 해물순두부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풍세I.C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린 다음에 논산(노성)지맥 들머리인 반송고개에 도착한다
수헌아우님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차갑다
그러나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눈이 내리지 않는것만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산행을 준비한다
논산(노성)지맥 (魯城枝脈)개념도
논산(노성)지맥 (魯城枝脈)은 금남정맥 성정산((성항산.237.1m)동쪽 약 1.5km지점의 표고 약 140m되는
곳에서 남진하며 반송고개,개코빽이산(195.4m),수실고개,175.1m삼각점봉,밀머리고개,구야고개, 256m를 지나
노성산(魯城山.348.1m)에 오른후 봉우재산(205m)를 지나 쇠지기(645번도로 항공학교후문)에 내려선다.
여기서 부터는 산다운 산은없고 어디가 맥인지도 모르게 얕은 구릉지로 대부분 도로가 맥이되어 소곡저수지앞,등
등골 도로(항공학교입구), 23번 4차선 국도,69m봉,두사리 두사교회,광석면입구 사거리,광석면사무소앞,갑산리,
서논산IC 높은점고개,고속도로 원남교,성동면사무소뒤,월성리 뒷능선,51m,상리,75.9m,장판고개,불암산(59m),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2.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금남기맥 일부를 합쳐서 논산지맥이라고 부른다
논산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며 지맥의 절반정도는 산이고 절반정도는 도로를 따라간다.
필요한 지도는 1/25000 : 탄천.월암.논산.석성. 1/50000 ; 공주.논산. 한산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반송고개(伴送峴:08:50)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와 논산시 계룡면 유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97번 지방도가 지나고
유평리쪽에는 호남선 KTX열차가 지나가며 KTX 공주역이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8:57)
반송고개에서 그리멀지 않은곳에 논산(노성)지맥 분기점이 있어서 그곳을 찍고 다시 반송고개로 내려와야 한다
이곳 노성지맥은 수계를 기준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논산지맥이라 부르는데 상당히 비중을 두고있는 지맥이다
반송고개를 올라서니 밤나무밭이 나오고 밭가운데 제주고씨 중시조 묘역이 있다
제주고씨 상석옆의 모습
제주고씨 묘역에서 바라본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伴送里)의 모습
공주시 이인면에 있는 반송리는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남쪽에 안들이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원산천이 지나가고 있는데 북쪽 위로 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일대에는 구릉성 지대로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검산 마을 등이 있다.
검산 마을은 금상 나무가 있어 검상골이라 불리다 후에 검산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반송리에 있는 용화대(龍化臺)는 마을 뒤편에 굴이 있는 큰 바위를 말하는데,
그 굴에 살던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용화대에서 노신제를 치르는 것은 갑자기 마을에 교통사고가 잦고 나쁜 일들이 많아지면서부터이다.
그때부터 마을 부녀회를 중심으로 용화대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반송리 용화대 노신제는 지금도 마을의 평안과 재액을 예방하기 위해서 마을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치러진다.
간혹 무당을 불러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대개의 마을 제의는 여성이 배제된다.
하지만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의 경우는 마을 부녀회를 중심으로 제사를 치르는데, 이것을 다른 지역의
제례와 다른 특이한 점인데 사실 마을신앙이 마을 부녀자들의 개인 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마을 제의를 여성 주관으로 치른다는 것은 원형의 마을신앙이라 볼 수 있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논산(노성)지맥 분기점(09:05)
조약봉에서 분기한 금남정맥이 이곳에서 부여 구드레나루터가 아닌 강경근처의 논산천에서 금강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지금의 금남정맥은 논산천이 아닌 부여로 가는 명백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최근에 일부의 산꾼들은 이것을 금남정맥이 금강정맥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많이 대두된다
마치 진양기맥이 진양호가 아닌 기강나루로 흘러가 남강기맥이 되야 한다는 논리처럼...
그거야 정통 산꾼들이 논할 일이고...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반송고개로 향한다
논산(노성)지맥 분기점에서 바라본 성항산(237m)이 아닌 성정산(城頂山)
논산시 노성면 반송리와 공주시 이인면 작골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의 800여m의 둘레가 되는 백제시대의 용산성터가 남아 있으며
원래 이름은 성정산이라고 한다. 지도에는 ‘성항산(城項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한문으로 정수리 정(頂)을 목덜미 항(項)으로 잘못알아 표기한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표기의 80%는 한문인데 한문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
그러나 영진지도, 동아지도, 온맵지도에는 성항산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는데
지도를 정확히 제작하려면 직원들 한문 교육도 필요할 듯 싶다
성정산은 이곳 분기점에서 1.5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논산(노성)지맥 분기점 좌측으로는 이동통신 중계탑이 보인다
다시 반송고개(09:15)
고개를 가로질러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竹泉선생의 낡은 표지기도 보이고...
130.7m봉(09:20)
130.7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능선 우측 반송리쪽 아래에는 묘지들이 보이고...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벌목지대의 오르막을 올라간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호남선 KTX 선로와 논산시 계룡면 유평리(柳坪里)의 모습
계룡면에 있는 유평리는 버들미들, 봉수쟁이들이 마을 중앙에 조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유평, 신곡, 주막거리 마을 등이 있으며 유평 마을은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미 또는 유산이라 불리었는데,
후에 유평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신곡 마을은 유평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큰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주막거리 마을은 주막이 있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가야할 논산(노성)지맥 능선
194.3m봉(09:40)
벌목지를 따라서 내려간다
194.3m봉 아랫쪽으로는 호남선 KTX가 지나가고 있다
북동쪽의 금남정맥 능선으로 바라보고...
무명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니...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최대한 좌측으로 붙어서 길이없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허허벌판 가운데 서 있는 KTX공주역이 보인다
잠시후에 도착할 개코백이산이 보인다
예전에 홀로 호젓하게 걸었던 금남정맥 능선의 모습
잡목이 무성한 인삼밭 옆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범복이 고개(虎伏峴:09:54)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새뜸마을에서 공주시 계룡면 죽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명은 고개너머에 있는 범복이 마을에서 따왔는데 범보기 마을은 영청이 옆에 있는
마을이며 범이 엎드린 형국이라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무명묘지 3기가 보이고...
밤나무단지를 가로질러 개코백이산으로 올라선다
개코백이산(195m:10:08)
공주시 계룡면 상성리와 이인면 반송리, 신영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에 대한 자료는 없다
산 좌측으로는 공주에서 논산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가 달리고 있고 그 너머로로 계룡산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개코처럼 생겼다고해서 개코백이산이라 불리는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인증샷
낙엽이 수북한 등로를 내려선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이곳부터는 등로도 뚜렸하고 이정표도 서있다
176.9m봉(10:15)
이정표에는 돔벵이 쉼터라고 해놨다...지명은 이곳 아래에 있는 죽곡리 돔벵이 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176.9m봉 이정표
부드러운 능선을 넘어서니 벤취 3개가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동네들 쉼터(10:20)
동네들 쉼터 이정표
턱골 갈림길(10:24)
완만한 오르막길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두루봉(169.4m:10:27)
두루봉은 지도상에는 없는 지명이고 169.4m봉으로 되어 있는 곳이다
두루봉 정상 이정표
두루봉 정상에서 바라본 계룡산
오늘 산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좌측으로 계룡산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아침에 차를 태워준 수헌아우님 동창이 간 향적산도 보인다
두루봉으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보이고...
계속해서 밤나무밭으로 내려가다가 ...
밤나무밭 끄트머리 지점에서 지장정사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송림사이의 임도를 따라서 내려서니...
수실고개(10:35)
공주시 계룡면 월곡리 음정이 마을에서 논산시 노성면 화곡리 수실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에는 논산과 공주의 경계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고 우측으론 지장정사가 보인다
수실마을이 있는 화곡리(禾谷里)는 논산시 노성면에 속해 있으며 동쪽으로 월산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독적골, 상전말이 있으며 독적골은 턱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큰절이
있었다하여 독적골 또는 석적곡이라고 했으며 상전말은 수실 서쪽에 있는 마을로 뽕나무
밭이 있었다 하여 상전말 또는 상전리라고 불렀고 참샛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수실 입구에 있는 골짜기로 찬샘이 있어서 참샛골이라 한다
수실고개에 있는 이정표
수실고개 공주방향의 모습
고개 아랫쪽에있는 엄정이 마을은 통샘말 북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수백년 된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며 다시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시묘살이 건물(10:38)
수실고개에서 올라서니 우측 아래에는 단양우씨 장집공파 종중묘가 있고 가건물이 보인다
산으로 아우님이 궁금하여 안으로 들여다 보는중...자세히 보아도 안쪽이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바로 아랫쪽에 있는 묘지는 최근에 단장한 모양이다...깨끗하다
어느 산꾼의 산행기에 보니 시묘살이 하던 건물이란다
참으로 조상님에 대한 예경심에 존경을 표한다... 요즘에는 상여가 집밖에 나가기만 하면
상복을 벗어 버리는데... 하긴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는 3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시묘살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탈상을 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것을 말하는데 3년이라는 기간은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유아기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기간으로 효를 중시하던 유교 사회에서 널리 이루어졌어요. 자식은 산소를 돌보고
좋은 먹을거리를 대접하며 돌아가신 어버이를 모시는 것으로 부모님이 살아 계시던 때와 똑같이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리고, '공양'이라고 부르는 간단한 상차림도 했으며 또한 부모님의 죽음이 자신의 불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여 3년 동안 수염과 머리카락도 깎지 않았다고 하며 이는 당시의 예절이자,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였다
단양우씨 장집공파 종중묘
175.1m봉(10:50)
175.1m봉 삼각점(△공주 447 / 1992 재설)
175.1m봉을 내려서니....
넓은 임도를 만나고....건너편에 있는 계룡산을 당겨본다
계룡산은 조선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 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 金鷄抱卵形 : 금닭이 계란을 품은 형국 )이요,
비룡승천형 ( 飛龍承天形 :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 )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라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계룡산의 풍수지리는 흔히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세라고 한다,
이는 계룡산과 주의산천의 형세가 계룡산을 중심으로 산과 물이 태극 모양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왔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부분에 위치하여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 등의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민족의 명산으로 알려져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 중 서악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 중 중악으로 봉해져서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낸곳이기도 하다
밤나무 단지 옆 임도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내려서니....
다시 내리막길
계룡면 월곡리 밀머리고개 정상에 경주김씨 계림군파 후손 감찰(監察,정6품검사)공(公) 김최호와 후손들의 묘역이 있다
나와 종씨인 경주김공 묘지로 내려서는데 멧돼지의 횡포가 심한지 묘지 주위로 홴스가 처져있다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신라 왕족 3성씨(박.석(昔).김)가운데 하나로 한국의 대표
삼한갑족(三韓甲族,옛날 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가문)으로 불린다.
경주김씨인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와 역시 경주김씨인 승일연(김견명)이 지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시조 알지(閼智)는 영평3년(서기60,탈해왕4) 8월4일에 호공이 월성의 서리(西里)를 걷고 있을때,
큰 빛이 시림속에서 나오는데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쳐있었고,그 구름속에는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는데 금궤에서 빛이 나오고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탈해왕은 친히 숲으로 행차하여 궤를 열어 보았더니, 사내아이가 누워있다가 곧 일어났다.
왕은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들어오니, 새와 짐승들이 따라와 춤추고 뛰놀았다고 한다.
시림의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으로 하였고, 우리말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고 이름 하였다.
왕은 "하늘이 내리신 아들"이라 하여 훌륭히 키웠다.
알지는 태자에 책봉되어 왕위에 추대되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파사대왕에게 양보하였으며, 알지의 6세손인
미추왕을 시작으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알지의 28세손)이 서기 935년 천년사직인 신라를 고려에
손국할때까지, 38대왕을 상계하여 선원세계(璿源世系)를 계승했다.
천년사직의 가문인 만큼 경주김씨는 그 파계가 복잡하다
묘지 우측 아래쪽엔 엄청난 규모의 양계장이 보인다
인삼포가 보이고...
밀머리고개(11:04)
공주시 계룡면 월곡리 밀머리 마을에서 노성면 구암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엄청난 규모의
농장이 보이고 좌측 윗쪽엔 나와 종씨인 경주김씨 계림군파 묘역이 있는 시멘트 도로이다
고개의 지명은 월곡리 밀머리 마을의 지명을 따온듯 하다
밀머리 고개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양계장에서 나온 개쉬끼들이 때거지로 따라오면서 짖어댄다
배기구처럼 커다란 시설물이 보이는데 아마도 양계장의 시설물인듯...
156.1m봉(11:08)
156.1m봉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니 검은색 그물망이 보이고 닭똥냄새가 코를 괴롭힌다
비교적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른다
등로 우측으로 단풍나무를 식재해논 농장이 보인다
161m봉(11:17)
앞서간 산으로님의 흔적
NO124 송전탑(11:20)
이곳에서 비교적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송전탑 밑으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독도주의)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서 내려오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경주김공 묘지가 나오는데... 이곳은 “學˝ 돌림인데 나와 파가 달라서 잘 모르겠다
묘지를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구암리 표지판이 있는 구야고개가 나온다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구암리(龜岩里)는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어 붙혀진 지명이며 주변은 낮은
구릉지로 둘러쌓여 있고 구릉지를 지나면 논산평야가 펼쳐지는데 자연마을로는 칠부정이 있다.
귀야앞에 있는 마을로 일곱주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고령 김씨들이 이곳에 살면서 가문을 빛냈는데
당시 칠부정에 병부를 걸어놓고 노목인 느티나무 밑에서 장기 바둑을 두며 쉬던 곳으로 지금도 병부
7개를 걸어놓았다는 망부석이 있고 노목인 느티나무가 있는 정자가 있는 곳이라 하여 칠부정이라 부른다.
구야고개(11:27)
논산시 노성면 구암리와 상월면 월오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1번 군도가 지난다
지명은 귀야마을에서 따온듯 하며 고령 김씨들의 집성촌인 귀야마을이 변음이 되어 구야로 변한듯 하다
고개 우측으로 올라서는데 주변의 묘지에는 펫트병으로 만든 바람개비들이 이채롭다
아마도 뫳돼지들의 횡포를 막기위한 방편으로 후손들의 고육책은 아닌지?...
노성산으로 향하는 넓은 임도가 나오고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1:32)
잡목을 헤치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고...
3갈래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갔다가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 등로로 올라선다
기도처?(11:40)
오르막 등로 우측에 가건물이 있어서 가봤더니 무속인들의 기도처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255.2m봉(11:52)
다시 약간의 내리막길
여름에는 힘들겠다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신성골 저수지와 그 너머로 내가 오늘 걸어야할 광석면소재지가 보인다
점심식사(11:15~12:58)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망자의 음택을 빌려 버너에 불을 피우고 라면에다 떡국과 오뎅, 만두를 넣어서
느긋하게 소주 한잔을 하면서 점심만찬을 벌인다...거기다가 후식으로 커피에다 과일 디저트
오랫만에 수헌아우님과 여유를 부려보는 점심만찬이다
그 중에 한명인 산으로님은 합수점까지 가겠다고 커피도 안마시고 먼저 도망(?)을 간다
산꾼들 사이에 전설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35km 넘는 거리로 당일치기로 한 방에 끝내겠다고...
아우님! 산은 늘 거기 있는데 뭘그리 집착을 하시는가... 버리고 비우면 무쟈게 편한데
앞으로 23km를 더 걸어야하는데 둘이는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면서 담 구간에 짧게
한 구간을 더 하기로 하고 산으로님을 먼저 보내면서도 솔직하게 걱정스럽다
안부(13:02)
253.6m봉(13:08)
노성산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오르막...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전위봉에 올라선 다음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3:20)
안부에서 올라서니 개.보수중인 노성산성 성벽이 보인다
정상으로 올라서니 가장 먼저 무인감시 카메라가 산꾼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요즘은 어딜가나 CCTV를 피할 방법이 없으니...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사는 느낌이다
노성산(魯城山:348.9m:13:22)
논산시 상월면과 노성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무인감시 카메라
니산산정이라는 팔각정과 판독이 안되는 삼각점이 있다.
노성산이 있는 지역의 예전 지명은 신라때부터 이산현(尼山縣) 이었는데, 이것을 1800년
순조때 노성현(魯城縣)으로 고쳤다고 한다. 노성산은 원래 이산(尼山), 진산(鎭山),
성산(城山) 으로 불리다가 조선 효종때부터 노성산(魯城山) 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준.희 선생님의 산패도 보인다
정상에서 인증샷
노성산을 감싸고 있는 노성산성은 백제가 적으로부터 수도 사비성(泗沘城:오늘날 부여)을 방어하기 위해
주요 교통로인 노성산 정상부에 둘레 590m, 높이 2~4m로 쌓은 성벽이 있으며 노성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당시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였다고 한다
동으로는 계룡산, 남으로는 논산, 북으로는 공주, 서쪽으로는 부여가 한 눈에 조망되는 곳으로
연산의 황산성과 함께 백제 말기에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장군이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이다
저 황산벌에서 최후를 마친 계백장군... 누구를 원망하랴... 군주를 잘못만난 탓인걸
160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신의 후손들이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노성산 정상의 니성산정 (尼城山亭) 이란 이름을 가진 멋진 정자가 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노성산은 예전에 니산((尼山)으로 불리웠는데, 이는 중국 공자와 관련된 지명에서 유래 한다고 하는데
중국의 니산은 원래 니구산으로 노성산과 비슷한 높이의 야트막한 구릉같은 산인데, 공자의 부모가 이곳에서 기도후에 공자를 얻었다고 하여 이름을 구 라 하고 둘째 아들이라 중(仲)자를 붙혀, 자를 중니 라고 하였는데, 니산은 거기서 유래한다고 하며 노성산 아래에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궐리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 역시 공자의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 한다고 한다.
판독이 불가능한 노성산 대삼각점
노성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노성산정 정자 뒷쪽이 산세가 뚜렸하여 착각할 수도 있으니 독도주의 할것
이곳의 소나무에는 일제강점기에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니...
노성산성 표시석
충남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일원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393호로
둘레 약 950m이며 옛 이산현(尼山縣)의 진산인 노산(魯山) 혹은 성산(城山)이라 불리우는
산 위에 있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인데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주산석성(主山石城)이라 하여
둘레 350보(步)이고 성안에 3개의 샘이 있어 마르지 않으며, 군창이 있다고 하였고, 이곳의 봉화대가 남으로
은진의 노산(蘆山 : 지금의 황화산)과 이어지고, 북으로 공주의 효포산(曉浦山 : 지금의 月城山) 봉수와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노산성(魯山城)이라 하고, 둘레 1,950척(尺)이고, 높이 8척이며, 성안에 4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 이용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해발 348m의 성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형성된 작은 곡부(谷部)의 상단을 삼태기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으며,
성벽은 남쪽에서 6.8m나 되고, 서쪽에서도 4.2m나 된다. 성벽은 표면이 장방형으로 다듬어진 할석으로
수평쌓기하고, 기단의 아래에서는 계단식으로 점차 안쪽으로 수렴되도록 축조되어 매우 견고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성내에 봉수대가 있어 황화산과 월성산을 잇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성내에는 백제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토기와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있게 한다
좌측의 등로옆에 삼신암과 칠성암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 뒤에는 “총석사” 라고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이곳이 예전엔 총석사(叢石寺) 라는 절터였던 모양이다
사찰처럼 보이는 기와집 건물이 나온다
금강대도 창시자 토암 이승여의 묘
묘비에는 金剛 三宗大聖師父聖山라고 적혀있다
금강대도(金剛大道) 노성본원(13:37)
금강대도란 고려말 삼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색의 18대손인
이승여(李昇如:1874~1934)가 창시한 종교로서 유교, 불교, 선교의 세 종교를 융합한 1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종교로서 총본산은 세종시에 두고 있다고 한다
금강대도는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난 이승여가 33세에 대도를 얻은 후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포덕(布德)을 한 데서 비롯된다.
제2대 교주는 그의 장남 이성직(李成稙)[1913~1957]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며, 제3대 교주 이일규(李一珪)[1934~2004]는 이성직의 장남으로 포교에
주력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108개의 본원·분원이 설치되어 있다.
금강대도는 3대의 교주와 그들의 배우자를 건곤부모(乾坤父母)라 하여 섬기고, 우주적으로 천·지·인이,
종교적으로 유·불·선이, 인간적으로 심(心)·성(性)·신(身)이 그리고 가정적으로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이
합치됨을 종지로 하며 또한 남자 도인을 금강(金剛), 여자 도인을 연화(蓮華)라 하여 철저한 남녀
평등사상을 유지하고 있다
금강대도 안내문
입구에는 금강 도덕문이고 안으로 들어가니 삼종대성전이라는 전각이 보인다
창시 배경을 보면 석가모니와 공자,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각각 동.서양의 정신문화의 토대를 쌓았고,
모든 인류가 그 분들의 사랑과 가르침으로 구원을 받으며 살아온 지가 어언 3천여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성인의 대도를 잃어 버리게 되었고 도덕의 타락과 문명의 위기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는데
이를 구제하기 위해 “건곤부모님”이 인간세계에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종대성전
아쉽게도 안쪽을 볼 수가 없었다...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아쉽다
금강대도 노성본원을 대충 훓어보고 갈 길이 멀어 서둘러 길을 떠난다
길은 무자게 좋다... 오후되면서 찬바람을 불기 시작하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3:48)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비포장 임도로 올라선다
봉우재산(204.5m:13:50)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금강대도 노성본원 아랫쪽에 있는 조그만 산인데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
암릉이 있는 곳을 지나...
지맥길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월명저수지가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묘지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먼저간 산으로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비포장 도로로 내려선다(14:05)
좌측으로 축사가 있고 당산나무가 있는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도로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지맥길
스피커 탑(14:10)
정처없이 걷다보니...
육군항공학교 담벼락이 나오고...
육군항공학교 후문(14:15)
육군항공학교 후문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창공아파트 버스 정류장(14:16)
육군항공학교 담벼락을 끼고 645번 지방도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옆에는 인삼포도 보인다
송당리 마을회관(14:20)
송당리 버스정류장에서 645번 지방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송당리(松堂里) 마을회관의 모습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 동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로 여기에 있던 산신당을
속칭 속당이라 하였는데, 점차 송당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서쪽엔 송당저수지,
동쪽엔 소곡저수지를 두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대문다리, 불무고개, 소곡, 소라실,
월명골이 있는데 대문다리는 송당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99칸 집이 있어 여기에 대문이 있었다 한다.
불무고개는 부엉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로 고개의 경사가 심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불무를 불 듯
이리저리 비틀거리지 않고서는 넘어다닐 수 없다 하여 불무골 고개라고 부른다.
소곡은 월명동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소라실은 마을의 모양이 소라와 같다 하여 소
라실 또는 송아리 라고 부르며 월명골은 송당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옥토망월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풍수설에 의하면 그 인물이 옥을 물고 망월한다는 뜻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될
명당자리라 하며 월명동 이라고도 한다
마을회관을 지나니 축사가 나오고...
축사 가운데를 가로질러....
뒷쪽으로 나와 밭으로 올라서니...
나와 종씨인 경주김씨 가족묘가 나온다
공수특전사 출신인 경주김공 “ 煥”자 돌림이니 나하고 같은 항렬이네...
묘비에는 자식들이 부모님 사람하는 맘을 묘비에 새겨놨다
묘지에서 바라본 노성면(魯城面])소재지와 그너머 향적산의 모습
백제시대의 열야산현(熱也山縣)이었는데, 당나라가 점령하여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
신라 경덕왕 때 이산(尼山)으로 고쳐 웅주(熊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공주(公州)로 예속되었다.
1414년(태종 14)석성(石城)과 합쳐 이성(尼城)으로 하였다가 1416년 다시 나누었다.
정조 초에 노성으로 고쳤고, 1895년 23부제 실시 때 공주부 관할의 군이 되었으며,
1896년 13도제 실시 때 충청남도의 4등군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논산군 노성면이 되었으며, 1996년 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지명유래는 이산현의 지형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노나라 이구산(尼丘山)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노’(魯)자를 따고 이산(尼山)의 성을 상징하는 ‘성’자를 따서 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밭을 가로지르니 농로가 나오고 농로를 지난다
밭두둑을 따라서 가니...
사유지라고 가지 말란다...그런다고 안 가는 지맥산꾼 봤어?... 당신은 남의 땅 안밟고 사시나요
능선에 오르자마자...
도라지밭으로 내려선다
도라지밭 끄트머리에서 마을도로로 내려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 길
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사람들은 오가는데
그이만은 왜 못 오나
푸른 달빛 아래 나는 눈물진다
이별의 종착역
아 언제나 이 가슴에
덮인 안개 활짝 개고
아 언제나 이 가슴에
밝은 해가 떠오르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멋진 대나무밭 가운데를 지나니...
노성어린이집(14:32)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육군항공학교 정문(14:37)
육군항공학교 정문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읍내2리 표시석이 있는 곳에서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논산평야에 자리잡고 있는 노성면 읍내리(邑內里)는 자연마을로
고랑이, 등등골, 무정골, 옥거리, 왕솟골 등이 있다.
고랑이는 읍내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해랑산 밑에 있다하여 고랑이라고 하며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소리를 듣고 좋아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무정골, 무정리라고도 부른다.
등등골은 남산밑에 있는 마을로 교촌리 옥녀봉에 옥녀탄금형이 있는데 그곳에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소리를 상징하여 등등골 또는 등등곡이라고 부른다
도로를 따라서 걷다가...
마을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잡풀이 무성한 밭을 지나니...
농가가 지맥길을 점령하고 있어서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선 다음에...
두고랭이마을(14:45)
고랑이는 읍내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해랑산 밑에 있다하여 고랑이라고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니 공단을 만든다고 지맥길을 깡그리 뭉개 버렸다
공단 조성지역에서 바라본 향적산(香積山)
향적산은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유래하였다고 하며 국사봉(國師峰)이라고도 하는데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나라의 왕을 가르칠 스승이 이곳에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단 조성지 끄트머리에 가니 철구조물이 길을 가로막고 있고 23번 국도가 지나는데
차량들이 어찌나 많은지 목숨을 걸면서 무단횡단은 하고 싶지않아 우회하기로 한다
가야할 지맥길과 우회길
대다수의 산꾼들은 저 곳을 생략하고 곧바로 23번 국도로 광석면을 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헌아우님이 선배님 어떡하실껀가요 물어 보는데 느낌상 가고 싶지 않은 눈치다
내가 산꾼이 이것저것 다빼면 지맥길을 왜 타냐고 하면서 가자고 하니까 착한 아우님은
선배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싫은 내색 안하며 따라오니 참으로 착한 후배이다
속으론 그랬겠지...너무 까칠한 선배라고...
23번 국도 암거(14:54)
23번 국도 지하를 빠져나오니 인삼포가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23번 국도가 나온다
23번 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23번 국도 우측으로 올라선다
도로에서 올라서서 바라본 공단 조성지와 지나온 노성산의 모습
능선으로 올라서니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들이 갖은 태클을 걸어댄다... 아우에게 괜스레 미안하다
몸뚱아리는 가시덩쿨에 휘둘리고 개고생하면서 잡목지대를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69m봉(15:04)
지도상에도 없는 69m봉을 만나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잡목지대를 지나 임도를 따라다가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묘지를 지나고...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논산~공주를 잇는 23번 국도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23번 도로를 내려서 철구조물 공사를 전문으로 태호건설을 보면서 좌측으로 간다
하도교 교차로(15:25)
태호건설쪽으로 내려서니 어떤분이 차를 세우더니 손짓을 하면서 우리에게 아는척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홀대모 출신으로 이곳이 고향인 바랑산님이 수헌아우 마중을 나왔다
난 첨 뵌 분인데 그 분은 나를 잘 아신다고 하는데... 내가 유명인사인가...ㅋㅋㅋ
그 분 曰 이곳은 내 나와바리 구역인데... 볼 품도 없는 곳은 생략하고 가자면서 자기 차에 타라고 한다
하지만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지하 통로를 지나면 명재고택으로 가는 길이다
논산명재고택(論山明齋古宅: 중요민속자료 제190호)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시대 조선 숙종때의 학자인 윤증(尹拯, 1629~1714) 선생의 고택이다.
고택을 향하여 왼쪽에 장방형의 연못이 있고, 중앙부분에는 샘이 대지보다 낮게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평면이 '冂'자형으로, 높지 않은 기단위에 사랑마당과 바깥마당을 주변에 두었고, 안채의
남쪽에는 행랑채가 위치하고 있어, 전체 구조는 '口'자형을 이룬다. 안채의 오른쪽 뒤편에 사당(祠堂)이
있으며, 안채의 앞에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는데, 행랑채나 대문이 없고 전면 개방되어 있다.
사랑채는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하며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대청.누마루.고방(庫房) 등의 짜임새가 간결하고 품위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방
양식을 따르면서도 남도풍을 가미한 특이한 형태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샘, 연못과 나무에는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으며, 뒤안의 장독대와 울창한 숲은 우리나라 살림집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우리 지방의 양반 가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자료 - 펌)
공장 옆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를 계속 따라서 간다
64m봉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64m봉(15:38)
인삼포 가운데가 지맥길이나 오해받지 않기위해 우측으로 돌아서 간다
밭 가운데를 가로 질러서 가니...
바로 앞에는 초지가 있고 저 멀리 노성산과 육군항공학교 체력단련장(인도어 골프장)이 보인다
컨테이너 하우스(15:43)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간다
경주이공과 부인 청주한씨 묘지를 지나고...
우측에 있는 교회를 포스트 삼아 걷는다
다시 23번 국도를 만나고 도로 건너편에는 노성고물상이 보인다
23번 도로를 거너지 않고 우측으로 꺽어져 암거를 지나 도로를 건넌다
23번 국도의 모습
23번국도 암거(15:50)
23번 지하로 나오니 노성고물상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져 인공수로가 보이는 곳에서 밭으로 올라선다
고구마밭을 지나 두사교회를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두사교회(15:55)
교회앞으로 내려와서...
두사교회앞에서 23번 국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향하는데 두사1리 정류장이 보인다
두사2리 입구(15:58)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두사리는 이곳에 팥절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팥절을 한문화하여
두사(豆寺)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지형이 비교적 평탄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물레 고개, 산정, 중산 마을 등이 있다.
물레 고개 마을은 옥녀가 물레를 잣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는 물레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산정 마을은 명재 윤증의 아내 권씨의 묘소가 있다 하여, 큰 산소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지명이며, 중산 마을은 대산 아래 중간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물레고개(16:00)
사월 1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곳을 물레고개라고 부르는데 노성면 두사리와 광성면 사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의 모양이 옥녀가 물레를 잣는 형국이라서 물레치라고 부른다
광명사란 표시석도 지나고...
들판 너머로는 금북기맥 능선도 아련히 보인다
39.8m봉(16:02)
도로 우측 해송 솔밭에 수준점이 있는 39.8m봉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사월2리(월여마을) 입구:16:06)
논산시 광석면에 있는 사월리는 기름진 전답이 많아 논밭에는 곡식들이 풍성하였는데, 새들이
곡식을 먹기 위해 많이 모여들어 서식했다 하여 새들 또는 새롤이라 하였고, 모래가 많은
지역이므로 사동(沙洞)이라고도 하며 자연부락으로는 당산, 새롤, 안산, 월디, 헛골 등이 있다.
사월3리 버스 정류장(16:09)
향월리(恒月里)입구 버스 정류장(16:15)
광석면에 있는 향월리는 풍수지리에 따르면 운중명월이란 명당이 있고, 또 지형이 반달 모양이라하여
항월이라 하였으며 합정리, 오류동, 서변리, 대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형성된 곳이다.
자연부락으로는 큰골, 망정, 반월, 서변, 오릿골, 주막거리, 풋개 등이 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회전교차로가 나오고 23번 신국도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지나온 회전교차로의 모습
동부팜(16:23)
논산시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도 지나고...
이화농원 입구(16:28)
노성육묘장(16:32)
(주) TC(16:40)
거북선 모양과 조금 특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많이 보인다
먹보쌈밥 고깃간이란 간판이 붙은 식당도 지난다
신당사거리(16:52)
논산시 광석면에 있는 신당리는 자연부락으로는 골당디, 구당, 당너머, 대당, 덕포, 소당, 월당,
장승배기 등이 있으며 신당(神堂)이 있었다 하여 신당(新堂)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광석면 소재지가 있다
회전교차로를 지나 농산물 산지유통유통센터를 지나니...
광석초등학교(16:56)
광석초교 맞은편에는 보건지소도 보인다
광석면(光石面)사무소(16:57)
논산시 광석면은 북서쪽으로 석성천(石城川)을 끼고 부여군 (草村面), 남동쪽으로 논산천을 끼고
논산시내와, 남서쪽으로 국도를 끼고 성동면(城東面), 북동쪽으로 노성면(魯城面)에 접한다.
면 전역이 평야지 또는 낮은 구릉지이며 가장 높은 구릉이 70m, 평균 높이 10m 내외이다.
따라서 면의 대부분이 농경지로 이용되어 동남부는 딸기·토마토·채소단지가, 서북부는 축산·과수·
채소·잎담배·땅콩 등이, 중서부는 미곡, 영농기계화단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교통은 4번 국도와
23번 국도가 지나며 논산∼공주간 고속화도로, 논산∼천안간 고속도로가 지나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노강서원(魯崗書院:충남유형문화재 37)이 있다
광석면 사거리(17:05)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면서 스틱을 접는다
광석면 사거리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맞은편에 버스매표소로 가서 표를 끊으려니
문은 굳게 잠겨있고 시간표를 보니 16시 50분에 버스는 가버렸고 다음 버스는 25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땀이 식으면서 갑자기 惡寒이 몰려오기 시작하여 서둘러 자켓을 꺼내
입었지만 엄습해오는 추위를 막을 길이 없다
수헌아우가 택시를 부르니 시간이 안맞다고 못 온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카카오 택시를 검색하여 12분 기다렸다가 택시를 타고 논산터미널로 향한다(택시비 7,000원)
광석면 터미널 버스 시간표
논산터미널(17:25)
논산터미널에 도착하여 합수점으로 향한 산으로님에게 전화를 하니 18시쯤 끝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어 일단 2명의 표를 예매하고 건너편에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소주+맥주로 느긋하게 한잔 하고 있는데 18시 40분쯤 산으로 아우님이 도착한다
참으로 대단한 친구이다... 우리보다 23km 정도는 더 걸었으니 속된말로 사람도 아니다
그러고도 오늘밤에 또 청도(열왕)지맥 32km짜리를 간다니 아둔한 범여로선 이해가 안되는 친구다
그래도 셋이서 저녁을 먹으니 맘이 참으로 편하다
19시 25분 버스는 40인승이라 요금이 리무진보다 훨씬 저렴하다
거기다가 승객이라곤 10명정도... 참으로 편하게 생각보다 일찍 귀경한다
광석면에서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대처하지 못해 독감으로 지금 고생중이다
'논산(노성)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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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노성)지맥 (魯城枝脈)개념도와 지도 (0) | 2017.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