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07월 2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9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6.2km / 2시간 50분정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수서역-쉼터-사각정자-쟁골마을 갈림길-둘레길 갈림길-갈림길-강남LH4단지 아파트 갈림길
로봇고 갈림길-260m봉-헌.인릉 철조망-실로암 약수터 갈림길-성지약수터 갈림길-대모산
헬기장-소방,통신 중계탑-전망대-갈림길-대천약수터-구룡마을 갈림길-구룡터널 윗쪽
구룡산-돌탑-암릉-구룡터널 입구-암봉-구 경계지역-염곡마을 갈림길-쉼터-284.1m봉-전망대
능인선원 갈림길- 둘레길-구룡산 약수터-능인선원
☞ 소 재 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자곡동, 일원동, 개포동 / 서초구 내곡동, 염곡동
지난 4월에 국민건강보험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받다가 폐쪽에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보인다고
하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권고를 받는데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여태껏 잘먹고, 잘자고, 잘싸면서 살아 왔는데 내가 암이라니?...
그렇다고 아픈데도 전혀없고 1주일에 서너번씩 술마시고 20km이상씩 지맥길 걸어왔지 않았는가
그런데 암이라니...도저히 믿을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誤診이 아닌가 싶어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니 집에서 난리부르스를 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수술대에 오른다
2018년 6월 25일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여 26일에 수술대에 올라 6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폐 윗쪽에 있는 흉선에 8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대에 올랐는데 이곳은 대동맥과 식도와 성대가
지나는 부분이라 생각보다 수술이 컸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회복되는 시간도 늦어졌고 거기에 수반되는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
거기다가 가장 불편한 것은 성대에 마취로 인해 목소리가 잘 안나오는게 가장 힘이든다.
더군더나 나같은 경우 소비자와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해야 하는 직업인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으니 굉장히 불편하다... 목소리가 돌아 오려면 최소한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12일정도 병원생활을 지고 퇴원하여 수시로 병원에 가서 체크를 하고 약을 먹는데 아침에는
약이 한주먹이나 되는데다가 항생제와 통증을 줄여주는 마취제 등이 있다가 보니 약을 복용하고
나면 잠이 쏟아지고 몽롱해지고 전혀 맥을 추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암으로까진 발전하지 않았다고 하는것에 위안을 삼아야지
그래도 수술 후 회복을 빨리하는 길은 걷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저녁이 집 근처의 양재천을
매일 6~8km정도를 걷다가 지난주는 하남시 검단산으로 갔느데 오르지도 못하고 개고생을 했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더워 낮에는 꼼짝도 못하다가 저녁에서야 움직이는데 지난주 힘든
과정을 지켜본 마눌의 감시가 어찌나 심하던지 집밖을 한 발자국을 나갈 수가 없다
평생을 내 맘대로 살다가 통제를 받으면서 살려고 하니 참으로 힘이들고 그것도 스트레스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둘러 물 한통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10분정도 거리인 수서역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대모산.구룡산 등산지도
수서역(15:35)
집 앞에서 3426버스를 타고 10분만에 수서역 맞은편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계속되는 무더위로 인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熱氣는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좌측 폐를 절개한 탓인지 평지길은 문제가 없으나 오르막은 힘이든다
지난주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오늘은 스틱도 준비를 했다
이곳에 대모산 둘레길 시작점인 모양이다
인증샷을 남기는 스템프도 보이는데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에 오르막을 조심스럽게 오르니 넓은 등로가 보인다
무더운 날씨에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호젓하게 홀로 걷는다
쉼터(15:50)
무더운 날씨도 숲 속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그리 덥지는 않다
좌측으로 쟁골마을로 이어지는 안부가 나오고...
서울둘레길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대모산 방향으로 오르는 오르막길
사각정자(15:57)
둘레길 시그널이 보이고...
쟁골마을 갈림길(15:58)
쟁골마을이 있는 자곡동은 이곳의 자연부락명인 紫陽洞의 紫자와 池谷洞의 谷자를 각각 따서 칭한 것이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자곡동이 된 것으로 자곡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원래 이곳은 조선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의 자양골(또는 쟁골, 자양동), 못골(또는 목골, 지곡동)로 칭하던 것이 1914년 3월 1일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광주군 대왕면 자곡리라 명명했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을 확정할 때 서울시에 편입, 자곡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곡동의 행정동 변천관계를 살펴보면, 1962년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관할 아래 있었으며,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성동구 송파출장소의 관할하에 들게 되었다.
이때 자곡동은 인근 율현동과 함께 행정동으로서 자현동사무소에 속하게 되었다.
이 자현동이란 행정동명은 자곡동과 율현동의 동명에서 각기 따온 것이다.
이 동에 있던 자연부락인 못골(池谷洞)은 자곡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새로 개통된 도로를 따라
수서입체교차로를 가다가 율현동과의 경계가 되는 곳에 이르면 못골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못골은 일제때까지만 해도 광주군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池谷洞은 完南府院君 李厚源의 묘 앞에
연못을 팠으므로 못골이라 한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 연못은 100여평의 크기였으나,
1987년 취락구조 사업때 매몰되었다.
자곡동은 인근의 동과 같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이 되어 있으므로 전원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1987년의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舊屋은 거의 헐리고 2층 양옥의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어 있다.
자곡동 520번지 도로변에 오래된 물오리나무 8주가 있어 못골 마을의 역사와 함께 주민들이 아끼고
있었는데 취락구조 사업으로 뿌리가 손상되어 고사되고 말았다.
못골에서 자양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서낭당고개라고 부르는데,이 고개에는 서낭당이 있고, 또한 못골에서
수서동과 일원동의 약사절(지금의 불국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대모산 절재고개라고 부른다.
한편 자양골(紫陽洞)은 못골의 북쪽인 양재대로 가까이에 있다. 자양골은 서쪽 산을 등지고 동쪽을 향한
마을로 날이 밝으면 제일 먼저 돋는 해의 붉은 볕을 받으므로 자양골로 부르다가 변음되어 쟁골이라 부르고 있다.
전에는 이 곳의 교통이 불편했으나, 1986년에 세곡동과 수서입체교차로를 지나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대치동까지 이어지는 양재대로가 이 동의 동쪽지역을 관통함으로써 크게 호전되었다우측으로는 궁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돌무덤이 있다
궁마을은 수서역에서 개포동 방면으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오른쪽 아파트 단지와 맞은편
주택가가 궁마을이다. 현재 수서동 400∼500번지 일대가 해당되는 곳인데 본래 궁마을은 궁말, 혹은
궁촌(宮村)이라 불렸고,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에 속해 있었다.
궁마을의 유래는 성종 원년(1470)에 세종대왕의 손자인 영순군(永順君)을 현재 궁마을 앞의 대모산
(당시 경기도 광주 수토산)에 예장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그 후 연산군 2년(1496)에 무안대군과 광평대군의
묘소를 광주 서촌 학당리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후,영순군의 아들 3형제가 수토산 아래에 집을 짓고 삼궁(三宮)이라
일컬었기 때문에 이 마을을 궁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궁마을이 지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영순군의 차남 청안군(淸安君)의 손자인 아산현감 이인건이 궁촌에다
재실을 지은 후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는데,용주별곡에 보면, 궁촌마을은 남한산성에서
서쪽으로 20리 지점 대왕면에 있으며 백제 때 도읍한 곳이라고 나와 있고, 중종실록에는 남한산성 서쪽에 탄천이
흐르고 탄천 동쪽과 서쪽에 수초가 무성하므로 수렵의 장소로 삼았다고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궁마을은
수풀이 울창하여 사냥터로도 즐겨 이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일대는 옛부터 경관이 아름다워 궁촌팔경으로도 유명했다. 궁촌팔경으로 꼽은 것은 동곡의 봄꽃,
약사의 새벽종 소리, 구현의 나무꾼 노래, 금평의 농부 노래, 쌍봉의 가을달, 남한의 저녁 노을,
탄천의 고기잡이 횃불, 광진의 돛단배이다
서울둘레길 갈림길(16:05)
궁마을 갈림길에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사면길로 서울둘레길로 나있고 대모산은 윗쪽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곳은 내 나와바리구역이라 좁은 개구멍까지의 등로까지 꿰고 있는 곳이라 힘이 들지만
둘레길이 아닌 대모산으로 향한다
갈림길(16:18)
대모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도를 조금씩 높혀가고... 그에 대한 반비례로 내 몸의 통증도 심해지기 시작한다
수서역에서 대모산으로 오르는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새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는지 예전에 없었던
아파트 이정표들이 많이 보인다
숨이 목에 찬다
힘들어 땅만 보고 앞으로 앞으로
이 깔딱고개만 넘으면 하늘밑
높은 꼭지에 닿겠지
능선을 넘고 계곡에 닿으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의 인사
들꽃들의 미소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영의 팡파르 울리고
말하지 않아도
엉덩이 땅에 내려앉고
목에 찬 숨이 환희로
눈에는 초록빛 가득하고
코에는 풀향기 넘치어
막혔던 가슴 뚫어지니
이곳이 선경이로구나
생각하면 더욱 선경이 되고
몸을 감싼 땀은
한줄기 얼음 되어 기쁨을 뿌리는 찰나
또 다른 기쁨으로 들어가려
걷고 걷는 등산
환희요, 기쁨이요, 즐거움이 가득한
그곳을 오르고 또 오르려니
등산 (박태강·시인, 1941-)
래미안 강남힐즈 6단지 아파트 갈림길(16:35)
쉼터 의자가 나오길래 쉬고 싶지만 그래도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대모산으로 향한다
모든게 예전 그대로인데 내만 변해가는구나
강남LH4단지 아파트 갈림길(16:38)
돌무덤을 지나니 약간의 편안한 길이다.
황갈색털대구멍 버섯같기도 하고... 버섯은 늘 아리까리하다
로봇고등학교 갈림길(16:43)
예전엔 강남공고였는데 敎名이 바뀌었구나
두꺼비 바위(?)인가...범여의 생각중에서
260m봉(16:48)
260m봉 정상의 모습
이곳이 대모산 문화유적지로 추정되는 지역이란다
다시 약간의 내리막길
강남 LH 2.3, 5아파트 갈림길이 헌.인릉 철조망을 따라서 있는데 예전에 혼자서
강남 5산(우면산, 청계산, 인능산, 대모산, 구룡산)을 걸었던 그 능선이 아니였던가
그 때가 봄날이였는데 이젠 범여는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남들의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으니
가는 세월을 어찌하란 말인가...
철조망을 따라서 대모산 정상으로 향한다
헌.인릉 철조망(16:50)
헌.인릉(獻.仁陵, 사적 194호)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조선조 왕릉이다.
이 곳에는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능인 인릉이 있다.
좌측 철책을 끼고 대모산을 향한다
실로암 약수터 갈림길(16:53)
성지약수터 갈림길(16:57)
커다란 암릉지대에는 우회길을 데크목으로 해놨다
데크목 계단을 올라서니 대모산 정상이 나오고 나뭇가지 사이로 아파트 단지와 남한산성이 보인다
대모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은 1910년 10월 서울 지역의 토지 조사사업을 위해 설치한 8개의
삼각점(2등 삼각점) 중하나이며 현재에도 모든 측량의 기준점으로 이용되고 있는 국가의 중요
시설물이라 기록되어 있다
대모산(大母山:293m:17:05)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강남구의 진산이다
산의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하여 할미산으로 불리우다가 태종의 헌릉을 모신 후
어명(御命)으로 대모산(大母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산의 모양새가 여승(女僧)의 앉은 모습과
같다하는 설과 여자의 앞 가슴 모양과 같다하여 대모산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산에는 불국사(약사절)를 비롯하여 수질이 좋은 약수터가 많다고 한다
예전에 없던 정상 표지목이 새로 만들어져 있어 인증샷을 남긴다.
수서역에서 이곳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왔으니 지난주에 비해 대단한 발전이다
날씨는 덥고 늦은 시간이라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보이질 않는다
가는데까지 가보자 맘을 먹고 구룡산으로 향한다.
대모산 헬기장(17:10)
헬기장에서 바라본 롯데타워의 모습
헬기장을 바라보니 서울에서 제일높은 롯데타워가 보이고 바로 아래에 삼성병원이 있다.
저곳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님이 투병중에 있는데 잘 계시는지?
우리 국민 1/3이상을 먹여 살리면서도 정권을 잡은 자들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고 있고욕을
먹고 있으니 참으로 불쌍하신 분이다.그러고 보면 범여는 수술 후 힘이 들기는 해도 내 발로
걸어 이곳까지 왔으니 내가 저 분보다 훨씬 나은 거 아닌감
구룡산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우수조망점 전망대로 향한다
소방통신 중계탑(17:12)
이 길로 내려가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오고 불국사가 나온다
불국사(佛國寺)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태고종 사찰로서 유명한 경주 불국사와 이름이 같다.
예전에 아침 운동을 할 때 매일 아침에 들려서 108배를 하는 곳이라 정감이 가는 절이다.
현 주지이신 김 영길스님은 동국대 선배이시기도 하다
불국사 약사보전
불국사는 강남의 남단에 자리잡은 대모산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고려 공민왕 2년(1353) 진정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당시 사찰이름은
약사절로 절 아랫마을 농부가 밭을 갈다 땅 속에서 돌로 만든 부처님이 나와 마을 뒷산에
모시고 있다가 진정국사가 현위치에 절을 짓고 약사 부처님을 모신 절이라 해서 약사절로 불리었다.
그 후 조선말 고종황제가 대모산 남쪽 헌인릉에 물이 나는 것을 보고 당시 주지스님께 방지책을
문의하니 대모산 동쪽(현 성지 약수터)에 수맥을 차단하면 된다고 하여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고종황제가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서
불국사란 절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불국사는 6.25사변으로 인해 사찰이 소실되고 약사부처님만 남았는데 1964년 관악산 삼막사
주지이던 권영선 스님에 의해 법당, 칠성각, 나한전, 요사채 2동이 건립되었다.
그 후 절이 낡고 협소하여 1993년부터 김영길 주지스님에 의하여 약 3년간의 불사끝에
나한전을 제외한 전 건물을 헐고 현 법당을 건립하고 본존 약사부처님을 모시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상단 목탱화와 신중 목탱화등을 새로이 봉안하였다. 특히 약사부처님은 600년
이상된 고불로서 원근 각처에서 기도 발원하여 소원을 이루고 가피를 입은 영험있는 부처이며
정교하게 조각된 목조탱화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성보이다.
불국사 석불좌상(서울시 문화재 자료 제36호)
이 불상은 고려 말의 고찰로 알려진 불국사 약사보전에 모셔져 있고 크기는 79.5cm이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유행하던 불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나 머리와
신체의 비례가 어색하고 옷주름 조각도 자연스럽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고려 말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상에는 전체적으로 호분이 여러 겹 칠해져 있어 불상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불상의 얼굴이 동그랗고 이목구비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전체적인 인상이 원만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머리에는나발이 새겨져 있고 머리 꼭대기에는 계주가 새겨져 있다.
왼쪽 어깨에 걸쳐 입은 법의의 옷주름은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약간 투박하게 새겨졌다.
두 손은 마주 포개어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여러 차례 보수되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나 고려 후기 석불조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망대(17:13)
내가 맥산행을 하기 전에는 매일 아침 이곳까지 와서 아침 운동을 하고 갔던 곳이라
감회가 참으로 새롭기만 하다... 그게 벌써 어언 35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다.
재건축중인 우리 아파트가 보인다...내년 2월이면 저기 새 아파트에서 살아볼 생각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무더운 날씨에 박무가 끼긴해도 내가 사는 개포동 지역이 비교적 뚜렸하게 보인다
내 나이 28에 흔히 말하는 장화를 신고 개포동이란 곳에 들어와서 조그만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정말 열심히 살다보니 35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는데 예기치 않은 병이 발견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 아팠던 적도 없었고 이상한 점이 발견된 적도 없었다...우연히 신체검사중에
발견되어 수술을 하여 다른 사람들은 天運이라고 하나 당사자인 나는 몹시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아무것도 없이 0알 두쪽만 가지고 개포동에 들어와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젠 먹고 살만큼의 돈과 집도 있으니 부족함도 없다
주말마다 베낭을 메고 열심히 산을 다녔고, 주중에는 지인들과 골프를 즐겼고
흔히 대포라고 하는 DSLR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야생화와 별 궤적의 촬영을 다녔고
명산대찰을 찾아 다니면서 부처님을 친견하였으니 이보다 더 얼마나 잘 살아라고...
더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제...
念身不求無病 (염신불구무병)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身無病則貪欲易生(신무병즉탐욕역생)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是故聖人設化(시고성인설화)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以病苦爲良藥(이병고위양약)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였느니라.
寶王三昧論 중에서
시집간 우리 딸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빨리 일어나라고 쾌유를 비는 엽서를 만들어 왔다.
그래! 너거들 봐서도 빨리 일어나야지
다시 대모산 갈림길로 되돌아 오다(17:15)
이곳은 대모산에 삼국시대 축성한 석축산성이 최근 밀려드는 등산객들 때문에 수난을 받고 있다.
동쪽과 북쪽에 온전하게 남아 있던 성벽은 출입구로 이용되면서 무너지고, 부서지고
주민들의 무관심에 훼손 방치돼 사라지고 있다.
강남지역에 마지막 남은 선조들의 유적이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산성 정상에는 흉물스런 통신안테나, 철탑구조물과 헬기장이 들어서 있다.
성벽아래는 반공 호 시설을 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그곳에 쌓았다.
또한 산성 일부는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다. 산 아래 국정원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2천여 년 된 유적이 묻히고 있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산성은 지난 199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양대학교 박물관 팀이 발굴조사를 했다.
산 정상 반달형태의 지형에 약 600m에 걸쳐 절벽과 암벽을 석축으로 이었다. 성 돌은 50~70cm 정도의
자연석과 활석을 이용했다.
북쪽성벽 일대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일부가 발굴됐다. 후대에 성벽을 쌓으면서 주거지는 반 이상 파괴된 상태였다.
발굴시 출토된 유물은 투창이 있는 단각고배류, 대부완, 연질, 경질의 각종 호 및 개배류와 신라시대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정상에 서면 사통팔방이 조망권에 들어온다. 예사롭지 않는 군사 요충지가 이곳이다.
당시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북한산성과 아차산성, 이성산성과 남한산성,
백제의 초기도읍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관악산의 호암산성 까지. 삼국을 통일한 신라군의 예지가
이 산성에 녹아 있다.
대천 약수터(17:21)
대천 약수터 자리에는 공원이 만들어졌다.
하기사 예전에도 이 약수터는 조금만 가물어도 물이 잘 않나왔제
국정원 철조망에 피어있는 원추리도 범여의 쾌유를 기원하는 듯...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곳에 영지버섯 幼生들도 보인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이곳에 도통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덥기는 더운 모양이다
구룡마을 갈림길(17:28)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 도심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는데 현재 1천242가구에 2천53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서울 최대의 무허가 판자촌이라고 한다
이곳은 예전에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과 증권계의 광화문 곰으로 유명한 분의 땅이
상당한 부분이 있고 개인 소유자들의 땅이 많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
철거민들이 밀려 들어와 남의 땅을 무단으로 점거하여 살면서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구룡터널 윗쪽(17:47)
저 나뭇가지도 지금 나만큼이나 아프겠지
구룡산 정상에 있는 헬기장
구룡산(九龍山:306m:17:00)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서초구 염곡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하늘에 오르지 못한 1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9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강남과 강북을 최근 거리에서 관망할 수 있으며, 남한산성, 관악산, 청계산, 대모산, 우면산이 조망된다
구룡산(306m)과 대모산(293m)은 코스들도 많고 교통 좋은 도심의 공원 같은 산으로 높이도 낮고,
도심에 근접해 있어 명산으로 대접받지 못하나 옛날 여러 임금이 날 복지명당처로 풍수가들이 예언한 산이라 한다
수서역에서 이곳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이곳까지 왔다.
엄청나게 힘이 들기는 했지만 내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지난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많이 걸었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다
구룡산 정상 전망대
구룡산에서 바라본 개포동의 모습
구룡산 정상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구룡산을 내려선 다음 능인선원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돌탑(18:03)
구룡터널 입구 가는 길(18:05)
예전에 없었던 구룡터널로 내려가는 데크목 계단이 새로 보인다
저 곳으로 내려가면 내가 지금 임시로 살고있는 아파트로 가는 길이다
암봉(18:06)
구 경계지역(08:08)
사실은 이곳에서 조금 더 가야한다
염곡마을 갈림길(18:08)
서초구 염곡동의 동명은 이곳 지형이 염통과 같이 생겼으므로 염통골이라 하고, 한자명으로
영통곡(靈通谷)・염곡동(廉谷洞)이라고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염
곡동이었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이 일대 탑곡・장승꽂이를 병합하여 광주군 언주면 염곡리로 칭하였으며,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시 성동구 언주출장소에 편입되어 염곡동이 되었다
이 동리는 약 500여년 전부터 전주이씨(全州李氏)가 거주를 시작했고, 이후 거주한 신라(新羅) 진골( 眞骨)
창녕(昌寧) 조(曺)씨들이 90여 가구로 번창한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전체가 돌담이고 감나무가 많은
마을로 구룡산 전설에 따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8군데가 우물이 매몰되고 , 현재는 염곡마을 북동쪽에 '구룡산제1약수' 라는 옛날 옻우물만이 남아 있다.
이 '옻우물' 이란 약수 이름은 옻이 오른 사람이 이 우물 물을 마시거나, 우물 물로 몸을 씻어내면
옻이 깨끗하게 낫는다는 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탑성골(塔谷)은 옛날에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염통골에 속한 마을이며, 염곡리는 피난골이라고도
부르는데 6·25 전쟁 당시 이름 그대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전해 지고 있다.
염곡동 언남공원에 570년된 느티나무 (서울시지정 보호수22-1, 22-2 )가 있어. 이곳에서 주민들이 국가의
안녕과 마을에 악귀를 멀리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쉼터(18:09)
284.1m봉(18:10)
구룡산 정상보다 조금 낮은 이 산의 주봉(主峰)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곳에는 바위굴 국수방(國守房)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284.1m봉 삼각점(△ 수원 303 / 1976복구)
봉우리 아랫쪽에는 동양 최대의 약사불을 모셔논 능인선원이 보인다
전망대(18:10)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284.1m봉 삼각점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의 모습
연리지를 연상케하는 멋진 소나무의 모습
능인선원 갈림길(18:18)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능인선원 방향으로 내려간다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멋진 물개바위(?)는 예전 그대로이다
누리장풀 나무도 보이고...
둘레길(18:32)
좌측으로 내려서니...
능인선원 뒷쪽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구룡산 약수터(18:24)
약수터에서 물 한바가지 내려서니 능인선원 입구가 나온다.
능인선원(18:25)
능인(能仁)이란 남을 교화하여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1985.12.14 서초동의
삼호아파트 상가건물에 처음 능인선원이 세워진 이후 발전을 거듭해
등록신도만 35만에 이럴정도로 대단히 큰 사찰이다
현재의 자리에 대한민국 새로운 불교의 메카로 능인선원이 자리 잡았다.
1996년에 서초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범여도 1996년 12월에 능인불교대학 22기를 졸업했다.
법당과 약사대불을 참배하려니 도심사찰이라 그런지 셧터가 내려져 있어 가지 못하고
다시 입구로 되돌아와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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