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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미호 서(전월)(終)

미호서(전월)지맥 제1구간 - 되재에서 돌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8. 12. 17.

 

☞ 산행일시: 2018년 12월 16일

☞ 산행날씨: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에 약간의 메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4.6km + 어프로치 1.3km / 6시간 4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삼거리-어물리소류지-전주최공 묘-폐묘-되재(분기점)-국사봉-묘지-283.7m봉

                  무명봉-무명봉-243.7m봉-사기소 고개-무명봉-안부-284.1m봉-천태분맥 분기점-240m봉

                  전주이공 묘-덕재고개-임도 삼거리-안부-206.5m봉-안부-184m봉-파평윤공 묘-아냉이고개

                  기독교인 묘-임도 삼거리-함안윤공 묘-빼띠고개-예안김공 묘-204m봉-224.1m봉-274.1m봉

                  310m봉-298.5m봉-강릉김공 묘-공주고개-무명봉-260m봉-324.6m봉 갈림길-253m봉-시멘트 도로

                  동막고개-260.8m봉-무인산불감시초소-봉화재-김해김공 묘-217.8m봉-무명봉-안부

                  경주이공 묘-224.3m봉-헌고개-무명봉-파평윤공 묘(1)-파평윤공 묘(2)-돌고개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정안면, 의당면 / 천안시 광덕면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연서면, 장군면

 

12월이 가기전에 위천(보현)지맥을 어느 정도 해놓고 1월 중순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동행하는

진권아우가 바쁘다는 핑계로 주저하는 바람에 갑자기 마땅히 갈데가 없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미호 서(전월)지맥 첫 구간을 하려고 자료를 검색하고

날씨를 체크하는데 기상청(구라청)의 예보로는 공주, 세종시쪽은 오후 3시 이후에

약간의 눈 또는 비가 온다고하여 망설여지나, 집에는 지금 감시자(?)가 속초로 2박3일

여행을 간 바람에 새벽에 날으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듯 싶다.

 

큰 수술이후 아직까지 감기와 폐렴에 대한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라 눈.비 오는것에 대해

아주 예민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것도 상당히 감시를 한다.

물론 나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참을 수 밖에...

 내일 아침에 출발하려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놓고 TV를 켠다

 

박항서!

나는 2여년 가까이 지상파 TV를 보지않고 종편 TV를 보는 편인데 체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동남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 대회 결승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와 경기를 하는데 베트남팀

감독이 한국인 박항서이다...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베트남 축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잖아

처음으로 베트남 축구를 봤는데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보다는 더 인기가 좋은 것 같다

박항서 감독은 히팅크 밑에 코치를 했지만 한국 축구에서는 국가대표도 못해봤고, 명문팀 감독도

해본적이 없는 요즘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흙수저이다.

 

그런 사람이 베트남에 가서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베트남 선수들을 다독거려 우승을 일궈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우리 업계의 경기는 저렇게 신바람나는 날이 언제쯤 올란가

TV를 보느라 12시 넘어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니 상당히 피곤하다  

 

미호서(전월지맥:轉月枝脈)은?

칠장산에서 태안반도 안흥진으로 남서진하는 금북정맥이 차령고개를 5.5km 앞둔 되재(388m)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국사봉(402.7m),덕재고개,공주고개,돌고개,국사봉(213.7m),연기고개(1번국도),

오산(178m),전월산(260m),노적산(183m)을지나 미호천(길이 89.2km.유역면적 1855.4㎢)이 금강에

합류하는 충남 연기군 전의면 월산리 월산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2km되는 산줄기를 미호 서(전월)지맥

(轉月枝脈)이라 칭하며, 울타리형 산줄기보다 합수점형 산줄기를 우선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이곳을

미호천의 서쪽 산줄기라 하여 미호서 지맥이라 부른다.

미호천의 좌측 물막이가 되며 금강건너 북동으로 미호(팔봉)지맥과 남동으로 용수(관암)지맥을 마주보고

있으며 행정도시건설이 끝나면 지맥은 많은 지형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필요한 지도는 1/50000.전의.공주.1/25000.의당.하봉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남부 → 광정간 버스표

집에서 10여분 거리인 남부터미널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터미널내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순부두찌게로 아침을 해결하고 보온통에 가져간 쌍화차 한잔을 마신 다음에

06시 55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른다

광정(공주시 정안면 소재) 버스 정류장(08:45)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입장I.C를 빠져나와 천안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10분 이상을 정차한 다음에 국도를 따라서 광정 정류장에 도착한다

광정정류장 버스 시간표

이곳은 조선조 말 개혁정치가인 김옥균의 고향이다

 

김옥균(1851∼1894)은 조선시대 말엽의 정치가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외치며 개화사상을 주장하였다.

고종 21년(1884)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만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4년에는 한·중·일 삼국의 제휴라는 삼화주의를 주장, 청나라의 실력자 리홍장을 만나러 상해를

방문하던 중 수구파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했다. 청나라와 수구파 세력에 의해 빼돌려진 시체는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개혁(1894)으로 개화당 내각이 조직된 후에 총리 김홍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었으며, 1910년에는 규장각 대제학으로 추증되었다.

 

처음에는 일본 동경의 청산외인무덤에 묻혔는데, 1914년 아산군수였던 그의 양자 김영진이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로 옮겨와 부인 유씨와 합장하였다. 

정류장 바로 아래에 있는 택시타는 곳으로 가니 기사양반이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의 몰골을 보더니 ‘국사봉 가는가벼!’ 하는 것이다... 범여 曰:어떻게 알았시오

택시 운전하지말고 서울 탑골공원 앞에가서 돗자리 펴놓고 부채도사나 하시죠 하니까

껄껄껄 웃으시며 커피나 한잔 하라고 타주는게 아닌가.

이곳에서 국사봉으로 가는 산꾼이 가끔씩 있나보다.

기사양반이 타 준 커피 한잔을 마시고 국사봉 아래에 있는 어물리 소류지로 간다

어물리 소류지 아래 삼거리(09:00)

저수지 아래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삼거리에 내려주고는 더 이상 못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택시요금은 6,000원)

삼거리에서 바라본 국사봉의 모습

산행을 시작하다(09:10)

뒤돌아 본 정안면 어물리와 당진~세종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정안면에 있는 어물리(里)는 정안면의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물천 연변의 평야는

벼농사 지대이며, 산기슭은 밭농사 지대인데 하천 연변의 평야 지대에는 양지말·아랫말·음지말

등의 자연 마을이 들어서 있고 지방도 604번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북서쪽으로는 내촌리에,

남동쪽으로는 장원리에 연결되는데, 지명의 유래는 이 지역에 큰 못이 있는데 그 못 속에 큰 고기가

많아서 고기가 춤을 춘다 하여 어무()라고도 하였는데 변음이 되어 어물리(里)로 바뀌었다

어물 마을은 오므라진 골짜기에 있다 해서 오무실 또는 어무실이라 불리다 후에 어물 마을이라 개칭되었었다

어물리 소류지로 가는 길

어물리 소류지(09:08)

소류지(沼溜地)는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써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를 소류지라 한다

소류지 우측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에서 묘지쪽으로 올라선다

전주최공 묘(09:10)

묘지에서 뒤돌아 본 어물리 소류지

낙엽이 수북한 등로로 올라서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폐묘(廢墓:09:20)

급경사의 능선...요즘의 범여에겐 이런 곳은 쥐약같은 코스인다

급경사의 국사봉 오름길

앞이 캄캄한데 어차피 국사봉을 올랐다가 분기봉인 되재고개까지 갔다가

다시 국사봉으로 되돌아 와야 하기에 잔머리를 굴려 완면한 좌측 사면길을 택한다

편안하게 되재고개로 향한다

미호 서(전월)지맥 분기점인 되재

2011년 7월 31일 금북정맥을 나홀로 걸으면서 이곳을 지나갈 땐 이곳을 다시 오리라 생각도 못했다.

그 당시의 기억은 별로 없는데 다시 오니 감개무량하다

되재고개(385m:09:55)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와 공주시 정안면 사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며

직진으로 가면 전월(미호서)지맥이 시작되는 고개인데 지명의 유래는 급한 비탈길이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되재는 되돌아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중엽에 한양에서 널리 알려진 지관(地官) 한 사람이 묘자리를

찾기 위해 차령산맥 줄기를 따라 오다가 지금의 사현리에 이르러 광정리쪽(현 정안 농공단지)을 바라 보다가 지형이

정안천으로 인해 뚝 끊어진 것을 보고 묘자리가 없어서 한양으로 되돌아 갔다 하여 되재라 했다고 한다.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약간의 눈발이 내리기 시작한다

고민이 시작된다... 산행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예까지 왔으니 가는데 까지 가보자

눈이 많이보면 그때 고민해 보기로 하고... 

국사봉(國士峰:403.4m:09:58)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사현리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국사봉 패찰이 2개나 걸려있는데 이 근처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셈이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미호 서(전월)지맥에는 국사봉이란 지명이 3개나 있는데 ‘사’자 한자 표기가

한결같이 다르다...이곳의 국사봉의 ‘사’자는 선비 사(士)이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서

284.1봉에서 갈라져 미호 서(전월)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국사봉의 ‘사’자는 맡을 사(司)이며,

또 다른 국사봉의 ‘사’자는 스승 사(師)를 쓰고 있다. 

우리나라 산 중에서 같은 이름이 가장 많은 곳은 백운산이요. 봉은 국사봉일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시대 궁안에서 왕자를 정성껏 가르치던 국사(國師)가 있었다.

그 후부터 그 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금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 파헤쳤으나 찾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금광을 개설하여 많은 금을 캤다고 한다

국사봉 정상 삼각점(전의 312)

어물천(於勿川)이 북쪽 경계부의 국사봉()에서 발원하여 어물리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흐르다가

내촌리()로 유입하여 북부에서 정안천에 합류하며 이 일대에 어물리의 양지말 · 아랫말 · 음지말 등의 마을이 있다.

가느다란 싸락눈이 내리고 잠깐 사이에 추위가 몰려와 서둘러 길을 떠난다

낙엽이 푹신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인데 낙엽 밑이 얼었는지 상당히 미끄럽다

묘지(10:08)

국사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속도로이다

낙엽이 수북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283.7m봉(10:15)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등로에서 바라본 세종시 전의면(옛 연기군) 금사리와 금사저수지의 모습

전의면에 있는 금사리( 里)는 국사봉, 국수봉이 에워싸고 있는 산촌마을로 고도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금사저수지가 자리하며 마을 남쪽으로 조천천이 흐른다.

위사기소와 아래사기소를 병합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부근에 있는 금성산과 사기소의 이름을 따서 금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사기소, 위사기소, 아래사기소, 주막뜸마을 등이 있는데, 사기소마을은 금사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고려 초부터 조선 때까지 사기소()를 두고 사기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위사기소마을과 아래사기소마을은 각각 사기소 위,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주막뜸마을은 예전에 이곳에 주막이 있었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라 한다.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으로 편입되었다

등로 좌측에는 묘지가 보인다

낙엽이 수북한 등로에서 맥길으로 이어진다

무명봉(10:17)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가고...

무명봉(10:20)

오래전에 지나가셨는가봐요.

2014년 1월에 홀로 영산기맥을 할때 장성 축령산 근처에서 엄청나게 배가

고팠을 때 귀 산악회의 어느 분에게 과일과 빵을 얻어 먹어 허기를 면헀는데...

243.7m봉(10:25)

下心을 하라네요

사기소 고개(10:27)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어무실의 북동쪽에서 연기군 전의면 금사리의 사기소로 넘어 가는 고개로

희미한 고개의 옛날 민초들이 넘어면서 돌무더기로 된 성황당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할미당 고개라 부른다.

할미당이라 부르게 된 이유는 고개의 지형이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할미당고개’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사기소고개’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거기에 사기그릇을 만들던 사기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할미당고개 주변에서는 사기그릇 부스러기가 발견되고 있으며, 사기소고개란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와전되어 ‘사구실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사기소고개가 할미당고개로 된 데에는 쓰라린 사연이 있었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장이 있었던

시대라 전하는데 이 고개 아랫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자녀를 3남매 두었는데, 위로 아들 둘과 막내딸이 있었다.

할머니는 큰 아들과 함께 살았다...세월은 흐르고, 아들과 며느리는 노모를 모시기 싫어서 학대하더니 마침내는

고려장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부모가 이야기하는 것을 잠자다 듣던 손자는 부모가 미웠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알려 주고는 함께 집을 나가자고 하였다. 할머니와 손자는 집을 몰래 빠져 나와 둘째 아들네

집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둘째 아들 내외도 반가워하지 않고 학대를 했다.

젊어서 모은 재산을 모두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고 애지중지 키운 아들들에게 학대를 받고 나니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저녁도 못 먹은 채 어린 손자를 데리고 막내딸을 찾아 떠났다.

막내딸은 사기소고개 너머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등에 업고 인적 없는 산길을 달빛을 벗 삼아

간신히 고개 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배고프다고 보채던 어린 손자는 자는지 등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고개 위에 오르니 배고프고 지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안은 채 막내딸을 부르다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이 고개는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이 고개를 ‘할미당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송나무가 소나무를 칭칭감고 있는데 둘은 어떤 사이일까...사랑하는 사이 아니면 웬쑤?

무명봉(10:30)

안부(10:32)

무명봉을 지나는데...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

완만한 능선들... 잔뜩 찌푸린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284.1m봉(10:38)

전월지맥, 천태지맥 (바탕화면 신산경표 박성태 )

천태분맥 분기점(10:43)

전월지맥에서 갈라져 천태산과 아침에 지나온 국사봉(國士峰)과는 다른 국사봉(國司峰:348.5m)로

이어지는 천태분맥길...분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지맥길은 좌측 아랫쪽으로 향한다

뫳돼지의 횡포

넓은 묘지군(墓地群)도 보인다

지나가신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듯...

240m봉(10:50)

맥산꾼들 사이에 전설로 통하시는 분...오늘은 그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맥길은 좌측의 아랫쪽으로 내려서는데 트랙이 아니면 알바하기 좋은 곳이다

능선으로 보면 우측의 능선이 훨씬 실하고 뚜렸해 보인다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다시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뚜렸한 등로를 지나니...

전주이공 묘(11:00)

다시 내리막길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공주시 의당면 덕학리에 있는 덕재마을의 모습

덕학리(鶴里)는 선학()과 관련하여 덕학()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덕재리()와 학연동()에서 ‘덕()’자와 ‘학()’을 따 ‘덕학()’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의랑면() 지역으로, 1914년 의랑면 덕재리·학연동·일라리()·신소리(

서대리(西)·대동()의 각 일부와 요당면()의 학운동()이 통합되어 덕학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덕학리가 되었다

임도를 가로질러 도로로 내려선다

덕재고개(11:02)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옛 연기군) 금사리에서 공주시 의당면 덕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9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교통량이 꽤나 많으며 지명은 고개 아래에 있는 덕재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덕학리에 있는 덕재 마을은 서대 북쪽 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로 사기소 고개 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대 마을은 온 마을의 지대가 서쪽을 향하여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세종시쪽의 고개 아래에는 세종미리내천문대가 있다

덕재고개를 가로질러 택지개발지구로 올라선다

택지개발지구에서 바라본 전의면 금사리의 모습

택지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택지에서 바라본 여인의 乳頭처럼 뾰족나온 지나온 국사봉의 모습

능선으로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 삼거리(11:12)

안부(11:16)

206.5m봉(11:18)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관리가 안된 묘지를 지난다

안부(11:20)

184m봉(11:25)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묘지위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묘지 너머로 오늘 내가 걸어야 할 능선들이 보인다

묘지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파평윤공 묘(11:30)

아냉이고개(11:32)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서 공주시 의당면 덕학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다방리쪽에는 축사들이 보이나 덕학리쪽으로는 시멘트로 된 농로로 되어 있다.

아냉이 고개에서 바라본 수랑골의 모습

수랑골은 미호천과 합류하는 조천의 수원지가 있고, 양반집 규수 인향이와

하인 경만이의 슬픈 사랑을 간직한 수랑골의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조천(鳥天)의 옛 지명은 생졸천(生拙川)이며,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서 발원하여 유로(流路)를

형성한 다음 북쪽으로 흐르다가 덕현천 합류 지점으로부터 동남류하여 미호천과 금강으로 유입되는

세종시 북부 지역의 젖줄 하천으로 갈대, 억새들이 무성하여 새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에서

새내(鳥天)라 부른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천 발원지 권역에는 통일신라 초기인 673년에 백제의 유민이었던 혜명법사가 전씨(全氏) 등의

도움을 받아 창건했다는 비암사와 고려시대 사기를 제작했던 곳인 사기소가 있고, 금이성, 작성,

운주산성 등의 역사, 문화 유적과 충신, 효자, 열녀의 정녀, 변응정 사당, 문목사,충정사, 전의초수

등의 문화 유산을 많이 분포하고 있는 하천이며, 식물 176종류와 포유류 25종, 양서류 8종, 조류50종

어류 12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옆쪽으로 올라간다

유실수 조림지를 가로질러 올라간다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서 좌측으로...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기독교인 묘지(11:38)

기독교쪽은 내 전공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권사(勸師)함은 교회에서 여성의

직책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여성 2명이 같이 묻혔다는 얘기란 말인가? 

 

위키백과 사전에서 찾아보니

권사(勸師, exhorter)란 교회에서 전도와 봉사 그리고 권면의 사역을 감당하는 직책의 사람이다

이 직분은 장로교회에는 원래 없었다. 미국 감리회에서 사용한 것을 한국감리교에서 사용하였고

후에 장로교에서 여성의 최고 직분자로서 칭호를 주게되었다.

등로에서 바라본 수랑골 마을의 모습

임도 삼거리(11:40)

직진으로 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좌측 아랫쪽은 밤나무단지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비암사 쪽의 山河

비암사 극락보전(사진갭쳐)

비암사는 2,000여 년 전 삼한시대의 절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진 않으며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며,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기록에 비암사라는 이름이 나온다.

1960년 삼층석탑 꼭대기에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발견되어 국보 제106호로 지정됐다.

이 밖에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영산회 괘불탱화와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갈림길이 나오고 뚜렸한 농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는 살짝 거칠어지고 두릅나무들이 많다.

밤나무 단지를 따라서 걷는다

묘지가 나오고...

함안윤공 묘(11:50)

묘지를 지나 거친 등로를 헤치고 내려오니...

빼띠고개(11:55)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에서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밤나무 단지가 나온다

예안김공&부인 해주최씨 묘(11:58)

등로에서 바라본 천태분맥 능선에 있는 국사봉의 모습

묘지를 지나 등로로 올라선다

204m봉(12:00)

절개지 능선으로 따라서 간다

언 넘이 이따위 짓거리를...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능선 아랫쪽 농가주택의 개쉬끼가 심하게 짖어댄다

224.1m봉(12:10)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북동쪽으로는 금북정맥 능선이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유구(무성)지맥 능선이 보인다

274.7m봉(12:18)

274.7m봉 삼각점(전의 423 / 1991재설)

반가워요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오르막길

臥木

310m봉(12:28)

찢어지는 아픔

310m봉을 지나니 나무 아래에 의자 2개가 있고 조금 지나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좌측으로 벌목지가 보이고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298.5m봉(12:28)

다시 내리막길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강릉김공 묘(12:50)

강릉김공 묘 아래로 내려서니 좌측 아래에는 과수원인듯한 농장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쥔장의 성격이 아주 고약하다고 하여 임도로 내려서지 않고

절개지 능선으로 걸어가는데 여러 마리의 개쉬끼들이 난리부르스를 치면 지랄발광을 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나발터 마을의 모습

앙증맞은 강아지 쉬끼

농장 윗쪽의 능선에 예전에 말을 싣고 다녔던듯한 화물차의 적재함이 있다.

어물리에서 부터 이곳까지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걸었더니 피로와

허기가 몰려온다...이곳에서 바람을 피하면서 빵 한조각에 커피 한잔으로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등로에는 농장에서 심은듯한 편백나무로 인해 길은 막혀있고...

편백나무와 아카시아의 저항을 받으면서 헤쳐나오니 다시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유구(무성)지맥 능선과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里)의 모습

도신리는 갈미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농경지가 적은 지역이며, 자연마을로는 가는골, 도리미, 방골, 신성 마을 등이 있다.

 가는골 마을은 하산정 서쪽,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방골 마을은 새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경치가 좋고 밤나무가 많이 있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신성 마을은 지형이 성을 쌓은 것 같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공주고개로 가는 길

직진으로 가니 절개지라 우측의 수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공주고개(13:13)

세종시 연서면 청라리와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에

민가와 농장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오늘 산행 후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싸이클을 즐기는 라이딩족들이 내가 혼자서 잡풀을 헤치고 내려오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공주고개 의당면쪽의 모습

맥길은 청라리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민가옆 좌측 임도로 올라선다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생각보다 등로는 좋다

무명봉(13:28)

밤나무밭을 지나고...

밤나무밭 갓길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힘이든다.

등로에서 바라본 유구(무성)지맥 능선의 모습

260m봉(13:37)

324.6m봉을 바라보면서 밤나무밭 갓길의 우측으로 꺽어진다

324.6m봉 갈림길(13:39)

이곳에서 부터는 처음 산행을 같이 시작했던 공주시 정안면,

의당면과 작별을 하고 좌.우가 온전히 세종시로 접어든다.

절개지에서 임도로 내려선다

이런 팻말도 보이고...

임도에서 바라본 세종시 연서면 청라리 나발터 마을의 모습

연서면 청라리는 세종시의 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조치원읍, 연동면과 접하고

서쪽은 공주시, 남쪽으로는 연기군, 북쪽으로는 전의면, 전동면과 인접해 있다.

연기군의 서면에서 세종시 출범과 함께 연서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청라리(靑羅里)

조선말엽 연기군 서면의 지역이었는데 지형이 나발 같다 하여

 ‘나발터’ 또는 ‘청라(靑羅)’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임도 끄트머리에는 모노레일이 보인다

253m봉(13:47)

급경사의 내리막길

반갑습니다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비포장 도로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13:54)

도로 우측 아래쪽으로 임도 삼거리가 보이고  임도 차단기도 있다.

시멘트 도로에서 치고 올라 능선을 지나 내려서니...

동막고개(13:58)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에서 청라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금전 시멘트 도로에서 보인 차단기가 아랫쪽에 보인다

다시 고도를 높혀 올라가는데 자꾸 흐려지는 날씨 때문에 맘이 급해진다 

등로는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고...

다시 우측으로...

등로 좌측 아랫쪽에 임도가 보인다

260.8m봉(14:20)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니...

무인산불감시초소(14:28)

낙엽이 수북한 등로는 완전히 고속도로 수준이다

봉화재(15:32)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에서 기룡리로 넘어가는 임도 삼거리로 우측에 김해김씨 묘지가는 길이 있다. 

기룡리(里)는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계()라 하여 기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동막골, 요화리 등이 있으며 요화리는 동막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요화방()이었다 하여 요화리라 부른다. 특산물로는 우유 등이 있다.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편입되었다.

김해김공 묘지(14:34)

묘지에서 바라본 세종시 연서면 기룡리의 모습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217.8m봉(15:38)

217.8m봉 삼각점(전의 459 / 복구 1991)

멧돼지 체력 단련장

오늘 산행중에 산꾼은 코빼기도 안보이고 노루와 고라니만 자주 보인다

무명봉(14:45)

안부(14:47)

등로로 내려서니 경주이공 묘지가 보인다

경주이공 묘지(14:58)

맥길을 따라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문패없는 묘지가 나온다

224.3m봉(15:08)

등로 우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보인다

이 지역은 지금은 세종시이지만 예전에 공주지역이라 그런지 밤나무 단지가 많이 보인다

밤나무 단지를 빠져나와 다시 등로로 들어선다

능선 좌측 아랫쪽에는 넓은 임도가 보이고...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병조판서를 지낸 진주유공의 묘지가 보인다

헌고개(15:25)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와 와촌리으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낙엽이 너무많아 고개로 보이질 않는다

지명의 유래는 찾을 길이 없고...그냥 패스한다

헌고개 와촌리(瓦村里) 방향의 모습

연서면 와촌리는 마을 남쪽으로 봉암천이 흐르고, 와촌소류지가 자리한다.

기와를 굽던 곳이므로 와촌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서계, 밤나뭇골, 은암마을 등이 있다.

서계마을은 서계(西)라는 호를 쓰는 학자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밤나뭇골마을은

밤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은암마을은 숨은바위가 있다 하여 은암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편입되었다.

헌고개를 지나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이상한 짐승소리가 들린다.

뫳돼지가 등로에 누워 있다가 베낭속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에 도망을 치는게 아닌가

나도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가슴을 쓸어 내리며 돌고개로 향한다

무명봉(15:30)

계속되는 내리막길

파평윤공 묘(15:38)

오늘의 산행 종점인 돌고개가 가까워지는데 시끄러운 차량소리와 축산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른다

등로 우측에는 전원주택 공사장이 보이는데 자금이 모자란지 유치권 행사의 플랑카드가 보인다

파평윤공 묘(03:40)

돌고개(15:42)

세종시 장군면(옛 공주시 의당면) 용현리와 연서면 와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2번 군도인데 생각보다 교통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 지역은 우측의 장군면은 공주시 의당면에서 세종시 장군면의 바뀌었고,

좌측의 연서면은 예전의 연기군 서면지역에서 세종시 연서면으로 바뀐 탓인지

지명에 대한 자료는 별로 없는 편이다... 명색이 세종특별자치시라는 홈피는

코딱지만한 조그만 군이나 면의 홈피보다 자료가 적으니 상당히 불편하다

범여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이곳에 돌이 많아서 돌고개라 부르는 건 아닌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좌측의 도로를 따라서 은암 마을로 내려간다

돌고개에서 조금 내려오니 한화홈샷시 공장인 (주) 태강이 보인다

은암마을 입구(15:50)

세종시 연서면 와촌3리에 있는 은암 마을은 숨은바위가 있다 하여 은암(隱巖)이라 하였다

마을 입구에는 버스정류장과 부안임씨 정려각과 사각정자,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부안임씨 정려각(旌閭閣)
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부른다.

건물이 아닌 문을 세우게 되면 정려문이고, 건물을 세우게 되면 정려각이 된다 건립 기준이 효녀나 정절을

지킨 정절녀인 경우 열녀문·열녀각이 되고, 효자인 겨우 효자각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정려문이나 정려각으로 칭하는데, 정려각은 정려를 받은 주인공의 이름과 고향, 행한 일을

기록한 나무판, 즉 현판과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정하고 유교의 지켜야 할 덕목 가운데 효(孝)·충(忠) 등을 장려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본받게 하여 이상적인 유교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지방을 확실하게 통치하기 위해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 대해 정확한 실상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지방의 수령들에게 명했으며, 수령과 향교의 유학자들, 혹은 해당되는 집안에서 신청을 하면 예조에서

심사하여 왕에게 올리고, 최종적으로 왕이 정려를 명하였다.

 

조선 시대 정려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집안뿐만 아니라 그 고을의 경사였으며 또한 국가에서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벼슬을 내리거나 세금과 군역을 면제하여 주니 이보다 큰 혜택은 없었다.

정려각 내부 기록물

정려각 안내판

버스 정류장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마을 주민에게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가 언제쯤

오느냐고 물으니 오후 5시 거의 다되어 온다고 한다... 그러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비록 군도이기는 하지만 차량의 통행이 많아서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하는데

40분 가까이 시도했지만 한 대도 세워주질 않는다... 후배 산꾼들이 히치대왕이라 부르는 범여도

충청도 양반(?)들한테는 통하질 않으니...인정머리라고는...

그 이후로는 자존심이 상해서 히치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17시 58분쯤 장군면에서 외국인 노동자 3명을 태운 75번 버스가 도착한다

1시간 가까이 정류장에서 개떨듯이 떨다가 조치원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75번 버스 노선표

75번 버스 시간표

조치원 역전의 모습

조치원역(17:15)

돌고개에서 조치원역까지는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열차표를 예매하는데 머리가 백발이라 그런가...표를 예매하는 젊은 친구가 어르신! 할인받을 수

있는 신분증이나 카드가 없냐고 묻는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이래저래 설움을 받는다

표를 예매하고나니 50여분정도 시간이 남는다.

산에서 빵 한조각만 먹었더니 허기가 몰려온다

역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해장국 한그릇을 해치우고 다시 역으로 향한다

예전 같으면 뚜꺼비 한마리(소주) 간단하게 해치웠을텐데 술을 먹지 못하니 사는 재미가 없다

조치원발 → 영등포행 열차표

밥은 먹었겠다... 시간은 남고하여 역 구내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가

깔끔하게 씻고 면도까지 한 다음에 역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플랫홈으로 향한다

열차는 들어오고 4호 객차로 올라가 틈을 비집고 등산용 의자에 앉아 조는 사이에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영등포역(19:32)

강남역 교보문고에 걸려있는 글귀

노량진역에서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