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12월 23일
☞ 산행날씨: 청명한 맑은 날씨에 차가운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0.2km + 어프로치 1.3km / 8시간 40분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일요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음골- 시멘트 임도-금북정맥 능선-분기봉-NO21송전탑-안부-갈림봉-161.7m봉-삼고개
시온감리교회-120.1m봉-쇠이골 고개-경주최공 묘-안부-131m봉-130m봉-국가유공자 묘
폐묘-무명봉-갈림길-고개-경주김공 묘-무명봉-임도-NO71송전탑-226m봉-연화산
다시 226m봉-전망봉-화천리 갈림길-198.4m봉-갈림길-시멘트 도로-허봉산-140m봉
99m봉-화동갈림길-NO29송전탑-111m봉-NO27송전탑-장현1리 갈림길-NO28송전탑
114.6m봉-돌탑봉-버두고개-폐축사-경주최씨 묘-51봉-2차선 도로- NO34송전탑
샘골입구 버스정류장-78.5m봉-산성1리 버스정류장-산성리 입구-부성사 입구
부성산-도로-78.1m봉-78.5m봉-김해김공 묘-안부-삼거리-헤브론수양관 삼거리
감나무골 삼거리-53.8m봉-한양조공 묘-무명봉-무명봉-안부-팔각정-가랑비아 모텔
환성1리 버스 정류장-임도 삼거리-63.3m봉-사거리-환성2리 버스 정류장-망뫼산
꿈의궁전 모텔-영탑1리 사거리-영탑1리 버스 정류장-영탑리 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서산읍, 성연면, 팔봉면, 지곡면, 대산읍
어제가 동짓날이라 전날 제적 사찰에 들렸다가 법보신문사 성지순례팀을 따라서 공주 마곡사와
부여 무량사 성지순례를 갔다 저녁 늦은 시간에 귀경을 하여서 그런지 상당히 피곤하다
일요일날 대산(망일)지맥 첫구간을 가기로 약속을 했으나 피곤하여 취소를 할까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약속인데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챙겨 양재역으로 향한다
대산(망일지맥:望日枝脈)개념도
대산(망일지맥:望日枝脈)은대산(망일지맥:望日枝脈)은 금북정맥이 서산의 성왕산(252.3m)과 금강산(316.1m)사이인
비룡산(×292) 북봉에서 분기하여 북진하며 蓮花山(△234.6),허봉산(×140),화방산(×114),富城山(△118.3),
망뫼산(△119.6),望日山(×302),沒泥山(△169.2),紫容山(△150.6), 가당산(37m),원수당산(59m),벌천포해수욕장을
지나 오배산(45.8m)에서 가로림만 건너로 후망지맥의 끝자락을 마주보며 서해바다에 드는 도상거리 35.8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필요한 지도는 1/25000. 서산, 대간, 고파. 영진: 1/5만 187.188.214쪽
산으로님이 저술한 대한 산경표에서는 망일지맥이 아닌 대산지맥이라 부르며 날머리가 벌천포가아닌 황금산을 날머리로 설정해놨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음골 샘가든 입구(08:55)
양재역에서 출발하여 잠깐 조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를 태운 버스는 서산을 통과하고 있다
잠시 후 서산시 음암면을 지나 우측으로 빠진 다음에 서산종합운동장 옆길을 따라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대부분의 맥꾼들은 들머리를 백련사 방향으로 잡았는데 산동네 대장님은 가장 단거리 코스인
서산시 부춘동 음골쪽으로 들머리를 정했다... 어쩌면 이곳이 신의 한 수인듯 하다.
좁은 도로를 따라가다가 현재 영업이 중단된 샘가든이란 식당앞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
버스가 더 올라와도 될 뻔했다.
임도인듯 한데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중장비가 보관된 건물도 보인다
중장비 보관소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오른다
또 다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금북정맥 능선(09:15)
이정표(←금강산 2.3km →서산종합 사격장 3.0km, ↓갈산리 ↑고남리)가 있는 금북정맥 능선에 올라선다
2012년 2월 26일 나홀로 금북정맥 능선을 걸어면서 이곳을 지나갈 땐 대산(망일)지맥이란 자체를 몰랐었고
내가 지맥길에 미치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 이곳을 오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아곳에서 금강산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대산(망일)지맥 분기점 가는길
분기점으로 향하는 등로는 제법 까칠하게 급경사를 이루는 바람에 범여에겐 꽤나 힘이든다
대산(망일)지맥 분기점(258m:09:24)
분기점에 올라서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지만 어제와는 달리 미세먼지가 전혀없어 숨쉬기는 수월하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대산(망일)지맥 분기점” 표지판은 보이질 않는다.
지난번 석문(고산)지맥과 미호 서(전월)지맥에서도 펫말이 보이질 않았는데 아무래도 누가 없애버린 모양이다
동료산꾼들과 분기점에서 인증샷
분기점에 잠깐 서있는 사이에 너무 추워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낙엽이 수북한 급경사의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벌레먹은 영지버섯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NO21 송전탑(09:40)
안부(09:41)
등로 나뭇가지로 보이는 팔봉산을 당겨본다
갈림봉(09:44)
직진 방향으로 뚜렸한 내리막길이 보이고 봉우리 아랫쪽엔 무명묘지가 있다.
이곳에는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봉우리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여러개 걸려있고 맥길은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161.7m봉(09:48)
급한 내리막길
좌측으로는 서산의 진산인 팔봉산이 보인다
서산 팔봉산(八峰山:361.5m)은 산의 형세가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정기있게 솟아 있으며, 산의 명칭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8봉중 가장 높은 곳은 3봉으로 높이가 361.5m이고 산세가 수려하며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산세가
절경이며 휴식 및 3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워낙 홍천 팔봉산이 유명해서 이 팔봉산은 앞에 "서산"임을 분명히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곳은 봉이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을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하였고, 매년 12월 말이면 그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았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희미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경주최씨 가족묘가 보인다
시눗대가 있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오고 가야할 맥길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시온감리교회가 보인다
삼고개(09:58)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와 성연면 고남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634번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금학3리 버스정류장과 팔봉면 안내 표시석이 있고 시온감리교회
표지판이 있고 금학리쪽으로 바라보면 팔봉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여지도서』의 성면면에 "삼고개 리는 관문에서 북쪽으로 15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43호, 남자 53명, 여자 43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명은 고남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3개의
고개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고남리 1리에서 팔봉면 금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다른 하나는 삼고개 마을에서 윗갈티를 통하여 서산장으로 가는 고개이며, 또 다른 하나는 쇠길이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며 지금도 고남리에는 삼고개 마을이 있다
삼고개 정상에 있는 금학3리 버스 정류장
도로를 가로질러 시온감리교회 방향으로 향한다
시온감리교회(10:00)
교회옆으로 올라서니 청풍김공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 등로로 올라선다
등로 옆에는 약초재배지가 있는지 입산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석문(고산)지맥 첫구간의 등로처럼 이곳도 첫구간은 꽃길(?)로 걸어간다
120.1m봉(10:06)
잘 조성된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정원수 조림지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쇠이골 고개(10:09)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쇠이골 마을에서 성연면 고남리 삼고개 마을 내려가는 길로
고개 주변에는 정원수를 심어논 조경농원이 보이고, 삼고개 마을쪽은 시멘트 도로이나
쇠이골 마을쪽은 비포장 도로인데 지도에는 소골고개라 표기가 되어 있다.
쇠이골 고개의 지명유래는 쇠이골 마을 위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소에 이로운 마을이라서
쇠이골(우길리:牛吉里)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쇠이골이 있는 금학리(金鶴里)는 남쪽의 금강산으로부터
북서쪽의 팔봉산과 북쪽의 연화산을 향해 좌우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마을들을 감싸고 있는 형세이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물길들이 마을을 품으며 방길천을 이루어 북서쪽으로 흘러 가로림만에 유입한다
으뜸 마을인 쇠골[금곡]을 비롯하여 삼밭골[마전]·산이벌[산평]·삼거리·추학·소길·우길 등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마늘, 생강, 감자, 양배추 등이 생산된다. 유적으로는 백제 시대 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금학리 고분과
금학리 사기점골 백자 가마터가 확인된다.
팔봉산은 계속 시야에 들어오고...
시멘트 도로를 지나니 갑자기 등로는 거칠어진다
대나무밭을 지나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여름에는 상당히 힘들겠다
경주최공 묘(10:20)
다시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陸山 등로에서 만나기 힘든 앙증맞은 바위도 만나고...
안부(10:24)
고개에서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131m봉(10:30)
등로는 차츰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130m봉(10:36)
130m봉에서 내려오니 잡풀에 묻혀버린 묘비가 보인다
국가유공자 묘(10:38)
관리가 안된 국가유공자 함평이공 묘지를 지난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향한다
2번째 갈림길에서 또 다시 좌측으로...
폐묘(廢墓:10:40)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꽃길이 끝나고 苦行의 길이 시작된다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좌측 능선 아랫쪽엔 약초재배지가 있는지 차양막이 처져있다.
간벌을 하고 마구 버려진 나무를 피해서 걷는다
무명봉(10:47)
다시 등로는 꽃길로 변한다...♬룰루랄라♪♩
갈림길(10:57)
직진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좌.우에 있는 엄청나게 큰 엄나무의 사열을 받으면서 걷는다
고개(10:58)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에서 성연면 오사리 사장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우측으로는
엄나무 재배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고개의 역할을 잊어 버린지 오래된 듯 하다
고개 좌측의 묘지로 올라선다
경주김공 묘지(10:59)
우리 할아버지도 부인이 둘씩이나 두었으니 생전에 女福이 많으셨군요.
근데 묘비가 좀 특이합니다... 대체적으로 남자는 우측에 그리고 본부인,첩의
순서로 표기하는데 이 분께서는 부인을 좌청룡, 우백호 형태로 기록해놨네요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엄나무 숲길을 걷는다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무명봉(11:07)
다시 내리막길
능선 위의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임도(10:10)
오늘 산행을 시작한 대산(망일)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제일높게 우뚝선 비룡산도 아련히 보인다
오늘 산행중 가장 힘이드는 구간이다...잡목에다가 가시나무, 엄나무에 칡넝쿨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사리(梧沙里)의 모습
서산시 성연면에 있는 오사리는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지리(梧枝里)의 ‘오(梧)’자와 사동(砂洞)의 ‘사(砂)’자를
따서 오사리(梧砂里)가 되었으나, 광복 전후까지만 하여도 조선 시대의 이름인 사장골[沙場골]로 불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성연면에 오지평[梧枝村], 직동(直洞), 사장
[砂洞],
[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연화산의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골짜기와 성연천(聖淵川)의 지류 주변에
농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국도 29호선 동쪽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오지평(梧枝平)이라 불린다.
원래 천수답으로, 하천 주변에서 논농사를 하였으나, 지금은 원예 단지와 과수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사동[사장골]·오사·생동·오평리·새무골 등이 있는데. 그중 사장골은 고려 시대 때 고려청자
도요지가 있던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생긴 이름이다.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276번지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오사리 느티나무가 있다.
유적으로는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 오사리 불당골 절터, 오사리 사장골 절터가 있다. 교통은 국도 29호선을
통해 대산읍과 서산시 도시 지역에 연결되어 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되는 고난의 길이다
하늘로는 송전탑이 지나는 고속도로(?)이다
하! 너무 힘들다
등로에서 뒤돌아 본 팔봉산(우)과 금강산(중) 비룡산(좌)의 모습
NO71송전탑(11:22)
돌아가는 길도 있다마는 직진으로 치고 오른다
226m봉(11:30)
이곳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에 약간 떨어져 있는 연화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임도 능선에 올라서니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연화산(蓮花山:236.3m:11:35)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성연면 오사리, 지곡면 화천리의 경계에 있는 삼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서산 지방의 문화권을 나누는 경계가 되는데 이 경계에 있는 봉우리가 대치봉이며, 대치봉에는
대치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지곡면 화천리와 성연면 오사리를 이어준다.
연화산(蓮花山)은 산의 전체적인 형상이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계곡의 형태나 분포가 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어 산의 형태와 명칭이 관련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다.
그러나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연화산(烟花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꽃 모양과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꽃 모양과 산이 관련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연화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크고 작은 지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남서쪽 방향의 지곡에서
기원한 지류가 합수해 방길천을 이루고 있으며 연화산 동남쪽에 위치한 고남저수지에서 발원한 한천이
안성천에 합류하고 연화산 서쪽 골짜기는 고라실골이며, 대항리가 위치하고 있다.
좀 더 서쪽으로는 황골이 있으며, 고학이들을 지나 가로림만과 만난다
연화산 정상 삼각점(△서산304/1990재설)
인증샷
연화산에서 바라본 서산시내와 금북정맥 능선의 모습
고남저수지 뒷쪽으로 삽교(석문)지맥 분기봉에서 가까운 가야산이 아련히 보인다
다시 226m봉(11:43)
다시 맥길에 복귀하여 길을 떠난다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걷는데 능선 꼭대기라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현오님의 흔적이 자주 보인다
좌측으로는 가로림만과 1월쯤에 걸어볼 생각인 이원(후망)지맥 능선들이 보인다
대산(망일)지맥의 주봉인 망일산이 멀게만 보이고...
2주일전에 걸었던 석문(고산)지맥 능선도 아련히 보인다
전망봉(11:48)
이곳에서부터는 좌측은 팔봉면에서 지곡면, 우측은 성연면에서
지곡면이니 좌.우 모두가 온전히 지곡면으로 들어서는 셈이다
다시 꽃길을 걷는다
화천리(花川里) 갈림길(11:54)
이정표(←연화리 →정상 1.0km(연화산을 말하는 듯)↑화천리 0.4km)가 있다.
화천리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우측 사면길이 있으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서산시 지곡면에 속해있는 화천리는 마을 외곽은 산지로 둘러 싸여 있는데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감나뭇골, 건잿버, 벌뜸, 샘골 마을 등이 있다.
감나뭇골 마을은 감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건잿벌 마을은 화동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벌뜸 마을은 밤실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리워진 지명이며, 샘골 마을은 샘이 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198.4m봉(11:55)
갈림길(11:56)
198.4m봉을 내려서자마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경주최공과 부인 서령유씨 합장묘가 나오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다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 급하게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12:02)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와 화천리의 경계에 있는 시멘트 도로에
이정표가 있고 도로 우측 능선에는 엄청나게 큰 엄나무 재배지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에 있는 이정표
좌측으로는 연화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연화리(蓮花里)는 남쪽의 연화산과 주변의 산지에 의해 형성된
분지인지라 마을의 형태가 물 위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리(蓮花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문현면에 연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전기에는 문지촌이었고 후에는 문현면 이화리로 변경되었다. 이 지역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문현면 잉목리의 일부를 편입하여 서산군 지곡면 연화리로 변경되었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의 통합에 따라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가 되었다
남쪽의 연화산과 북쪽으로 뻗어 감싸고 있는 능선으로 인해 분지 형태이다.
북쪽은 해안가였으나 가로림만의 간척에 의해 육지로 바뀌었다.
윗말·아랫말·미륵굴·피아굴 등의 자연 마을이 산촌(散村)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쌀, 양배추 등이 있다. 미륵골에 조선 후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화리
미륵골 백자가마터와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화리 석불입상이 있다
점심식사(12:03~28)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식사장소가 마땅찮아 고민을 했는데 엄나무 재배지
임도에 바람을 좀 피할수가 있어서 이곳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임도 아랫쪽으로 이어지는 신곡재가 보이고 우측에 있는 산이 화방산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능선 우측으로는 성연면과 지곡면의 경계인 화방산(花芳山:176.4m)이 보인다
이곳까지 엄나무재배지에 이용되는 듯한 넓은 임도가 끝나고 좁은 임도가 시작된다
벤취가 있는 허봉산에 도착한다
허봉산(167.6m:12:38)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와 화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산 좌측 아랫쪽에 있는 장현리에는 어현(於賢) 마을 있는데 어현이는 어진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하는데 그것과 관련된 지명은 아닌지
(범여의 생각 中에서)
그런데 또 한가지 의문점은 최근의 지도와 오룩스맵에서는 이곳이 허봉산이라고 하지만
예전 선답자들의 산행기와 지도에는 이곳에서 조금을 더 가면 있는 140봉을 허봉산이라
해놓아 처음 이곳을 지나는 범여로서는 상당히 헷갈린다
허봉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 갔다가 안부에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140m봉(12:48)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을 허봉산이라 해놨다
140m봉을 지나 좁은 등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99m봉(12:55)
등로에서 바라본 장현리(長賢里)의 모습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장현리는 산아래 구릉지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중간으로 어현천이 흐른다.
장이티, 독주골, 어현 등으로 불리다가 장이티와 어현의 한글자씩을 따서 장현리로 되었다.
어현이·원댕이·양지말·설굴·절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는데 어현이는 어진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생긴 지명이며, 설굴은 쟁이재 동쪽의 마을인데 마을의 뒷산에 봄 늦게까지 눈이
녹지 않고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특산물로는 쌀, 고추, 생강, 마늘 등이 있다. 서산의 특산물 중 하나인 캡 오이도 생산되고 있다.
잡목을 헤치며 뚜렸한 등로로 내려온다
화동 갈림길(12:58)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화동골 초입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가 있다.
북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성 산지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서 확인되었는데, 주변 지형이 대부분
밭 경작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며, 경작지를 중심으로 토기편과 가마 소토편이 산견(散見)된다
석문(고산)지맥과는 달리 꽃길이 이어진다
묘지 윗쪽으로 걸어 가는데...
등로 아래에 있는 경주최공의 묘지
이 지역에는 유난히도 경주최씨의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계속해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NO29 송전탑(13:08)
111m봉(13:10)
벌목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오늘 산행내내 이 길만 같아라
벌목지 너머로 보이는 서산 데크노밸리
NO27 송전탑(13:15)
쉬어 갔으면 좋으련만...갈 길이 바빠서리
빈의자 / 이 선 영
가다가 지칠 땐 내 빈 무릎 위에
털썩 앉아 보렴
네 얘기도 잠잠히 다 들어 줄께
마음 놓고 푹 쉬렴
기운이 날 때까지 노래도 불러 봐
정말 널 기다린 거야
내 이름은 빈 의자
너의 편한 친구야
언제라도 찾아오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2번째 갈림길에서는 좌측으로 향한다
장현1리 갈림길(13:18)
NO28 송전탑(13:19)
넓은 길을 따라서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114.6m봉(13:25)
정상에는 용도 폐기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서레아님은 화천봉이라 써놨다
이 분의 봉우리 작명은 영 믿음이 가질 않으니...
다시 내리막길
돌탑봉(13:31)
지곡면소재지가 있는 화천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체육시설이 완비되어 있지만
누가 올라와서 운동을 하지 않은지 사람의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가 이곳을 둥근산이라 써났는데 둥근산은 이곳과는 거리가 멀다
둥근산은 성연면 오사리 사장골 뒷쪽에 있는 산이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지맥길은 녹색 휀스가 가로막고 있다.
나혼자 같으면 쑤시고 들어가련만 꼴찌로 가면서 이곳저곳을 다 들릴수가 없어 편안 길을 따른다
등로에서 바라본 지곡면소재지가 있는 화천리의 모습
화천리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위치한 흑점리(黑店里)와 율곡리(栗谷里)였다.
1895년 흑점리가 화동으로 바뀌고 율곡리가 율리(栗里)와 목곡리(木谷里)로 각각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천리를 편입하여 화천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머
[遠川里], 밤실[栗里], 화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1926년 산성1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화천리로 이전하고 1932년 화천리와 율리에 부성초등학교가 세워졌으며, 농협과 같은 면의 중심지에 위치하는
다수의 기관이 위치하면서 화천리는 지곡면의 중심지가 되었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의 통합에 따라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가 되었다
성연면과 접한 남쪽은 연화산(蓮花山) 줄기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에서 북동 방향으로 흐르는
화천천(華川川) 주변에 평야 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감나뭇골·건잿버·벌뜸·샘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화천리는 지곡보건지소, 지곡면 주민센터, 부성초등학교, 서일중학교, 서일고등학교 등이 위치하고 있는 지곡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로 유명한 안견(安堅)의 출생지로 그의 예술혼을
후세에 기리기 위한 안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번두고개(13:36)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와 장현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 아래에는 지곡면소재지가 있다.
10번 군도가 지나며 버스정류장과 도로 맞은편에는 민가들이 보인다
셀카놀이
민가 뒷쪽이 지맥길이나 동료산꾼들이 편안한 도로를 따라간다
늦게 가면서 원칙을 지킨다는 눈치 보기 싫어서 도로를 따라 가지만 맘은 편치않다
도로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마루금에 복귀한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능선 우측에는 망해버린 축사가 보인다
폐축사(13:41)
폐축사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경주최씨 묘(13:43)
경주 최씨는 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으며,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그는 양주에서 살다가 지곡으로 옮겨와 살았으며, 고려 후기
절의계 인물 최정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의 묘지 뒷쪽으로 간 다음에...
잡목을 헤치며 내려서니...
밭을 가로질러 가니 마을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내려서니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엄나무골이 나오는데 예전에 엄나무가 많아 붙혀진 지명이란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고추밭으로...
대밭속으로...
시누대 터널을 통과한다
51m봉(13:50)
51m봉에서 바라본 산성리(山城里)의 모습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산성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부성산 아래에 구릉지와 계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 농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내동·
산동·갈마실·서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으며, 오이, 딸기, 마늘 등 특수 작물을 재배한다.
조선 선조 때 부성군 태수를 지낸 최치원(崔致遠)을 모시는 사당이 있던 도충사(道忠祠)는 산성2리의 부성산
남사면으로 옮기면서 부성사(富城祠)로 바뀌었으며,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갈마실마을에 고려 시대 고분 2기의 유적이 있으나 도굴된 상태이며 장방형 석재가 남아 있어 고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동쪽은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서쪽은 중왕리, 남쪽은 장현리, 북쪽은 부성산 줄기를 경계로 도성리와 접한다51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등로가 거칠어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산동마을을 지나고...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2차선 도로(14:05)
NO34 송전탑(14:06)
샘골입구 버스 정류장(14:07)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 있는 샘골마을은 샘이 있는 마을이라 샘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샘골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도로를 버리고 우측 주차장으로 향한다
78.5m봉 가는 길
78.5m봉(14:12)
정상에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
이동통신탑이 있는 78.5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잡목의 저항은 심하나 등로는 뚜렸한 편이다
절개지가 나오고...
산성1리 버스정류장(14:20)
산성리 입구(14:21)
버스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74.6m봉인데 올라가자마자 내려와야 하고 해서 생략한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 가다가 좌측의 도로로 올라간다
부성사(富城祠) 입구(14:28)
사진 캡쳐
부성사는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당으로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 유학, 17세에 급제하여 승무랑시어사내공봉(承務郎侍御史供奉)을 지냈으며, 귀국 후
〈시무십조 時務十條〉를 올려 아찬(阿飡)이 되었다.
사당의 명칭은 그가 태수를 지낸 곳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조선 선조 때 그의 덕망을 추모하던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1907년(순종 1)에 중건되었다으며 현재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1974년·1981년·1984년 등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다.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본건물과 부속건물로 사당과 내삼문, 동재·서재 등이 있으며,
최치원의 친필로 새긴 ‘過仙閣(과선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부성사가는 길에서 우측의 부성산으로 올라선다
부성사에 들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맨 꼴찌로 가는게 눈치가 보여 포기를 한다
칡넝쿨을 헤치면 부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다음 구간에 가야할 망일산도 시원스레 보인다
부성산(富城山:118.3m:14:34)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와 도성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넓은 공터에 2등 삼각점이 있고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예전에 있었던 부성산성터의 흔적이 약간 보인다
서산시 성연면의 대치봉(大峙峰)에서 뻗어나온 지맥이 지곡면 산성리에서 이룬 산으로 삼한시대에는
치리국국(致利鞠國)이라는 부족국가에 속하였고, 신라시대에는 부성현(富城縣)으로 진성여왕 때
최치원(崔致遠)이 부성태수(富城太守)로 부임하여 다스렸던 곳이다.
고려시대에 축성하였다고 전하는 석성(石城)의 고적(古蹟)이 남아 있는데, 삼한시대에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백제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12년 최치원·정신보(鄭臣保)·정인경(鄭仁卿)·유숙(劉淑)·고경명(高敬命) 등 5명을 모신 오현각(五賢閣)이 세워졌다
부성산 정상 삼각점(△서산 24 / 1986 재설)
부성산 정상의 넓은 공터는 옛 부성산성(富城山城)터로 보인다
부성산(富城山)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에 표고 80m
이하의 나지막한 구릉들만 있어 산성에 오르면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서해가 펼쳐진
서쪽 전망이 좋아 바다를 통하여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하여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
동서 방향이 길쭉하고 남북 방향이 좁은 타원형의 산세를 따라 산성의 동쪽 부분은 정상부를 지나고
서쪽 부분은 산 중턱 가까이 내려와 능선을 가로질러 타원형을 이루며, 둘레는 490m이다.
성벽은 대부분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나 잔존한 상태로 미루어 대체로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능선을 가로지르는 동벽과 서벽에는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운
내탁식(內托式)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구조가 다른 현상은 다른 지역의 백제 산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문은 동문·서문·북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성안에는 곳곳에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으며, 약 3곳이 건물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서 유물이 많이 수습되었는데, 대부분 백제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었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이곳이 부성산임을 알려준다
칡넝쿨을 헤치면서 조금전 부성사 입구에서 헤어진 도로로 다시 내려간다
도로(14:41)
도로를 가로질러 생강수확이 끝난 밭을 가로 지른다
78.1m봉(14:44)
내려가는 길에 잡목의 저항이 무쟈게 심하다
78.1m봉을 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
78.5m봉(14:48)
등로는 보이질 않고 잡목의 태클이 상당히 심하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우측으로 빠져 나오니 희미한 등로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묘지의 좌측 아래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수문장 김해김공 묘(15:00)
수문장(守門將)이란 조선시대 도성 및 궁궐의 각 문을 지키던 관직으로 당초 궁궐의
각 문은 오위의 호군(護軍)이 당번에 따라 수위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1469년(예종 1)에
별도로 수문장을 두어 그 책임을 맡기게 되었다
그리하여『경국대전』에는 서반(西班)의 4품 이상 중에서 망점(望點 : 후보자에 대한 추천 점수)에 의하여
충차되어 수점(受點 : 선정된 후보자 가운데 원하는 인물을 왕이 점을 찍어 결정함.) 입직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4품 이상의 군직(軍職)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서반직을 지니고서 동반에서 치사(治事)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인원이 모자라 충의위(忠義衛)나 충찬위(忠贊衛) 또는 족친위(族親衛) 가운데서 수문장이 차출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당초 수문장은 20인에 불과하였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430인에 이르렀던 적도 있다
안부(15:08)
안부를 지나면서 묘지들이 많은 곳을 지난다
송전탑이 있는 좌측의 등로를 걸어간다
비포장 도로가 보이고 맞은편에는 조금전에 이동통신탑이 있었던 78.5m봉이 코앞에 보인다
그러니까 오늘의 지맥길은 ∩자 형태로 빙 둘러서 온 셈이다
이곳은 공동묘지인지 묘지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삼거리(15:07)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도로에서 바라본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道成里)의 모습
도성리는 가로림만의 일원으로 갯벌이 발달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시드물, 성동, 절골, 운부리 등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낙지, 바지락, 굴, 맛 등 해산물이 있다
넓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개조심하라는 팻말과 함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에는 잘 관리된 묘지들이 보인다
저 윗쪽 능선이 51m봉인데 그냥 통과한다
51m봉 내려오는 길...눈팅이짓만 했다
헤브론 수양관 삼거리(15:18)
고개를 넘어서니 밭이 나오고 바람을 피하면서 바나나와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10분 넘게 휴식을 취한다
감나무골길 삼거리(15:33)
53.8m봉(15:38)
다시 도로로 내려와 도로를 건너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뚜렸한 등로를 지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지독한 잡목지대를 만난다
잡목을 헤치면서 좌측으로 나가니...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한양조공 묘(15:44)
무명봉(15:46)
무명봉에서 내리막으로 내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5:48)
좌측으로 내려가니 검은 차양막이 보이고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부(15:51)
고개를 지나 능선에 들어섰다가 나오니...
송유관이 매설되어 있는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임도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물탱크를 지나 포장도로에서 우측으로...
팔각정(15:58)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 한우물 마을 도로를 지난다
한우물마을은 대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우물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좌측으로는 진충사로 가는 길인데 우측으로 꺽어진다
정미소가 있는 곳에서 다시 좌측으로...
이 대요리에는 진충사가 있다
사진 캡쳐
진충사(振忠祠:충남문화재자료 제206호)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정충신(鄭忠信)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홍살문과 삼문, 사우, 동서 양재로 구성되어 있다.
삼문은 솟을대문이고,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팔작지붕, 겹처마의 양식이다. 전면 1칸을
개방하였고, 그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깐 후 뒷면에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둥근 주춧돌 위에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공포(栱包)는 전형적인 무출목 익공집 형태이며 기둥의 주춧돌·기둥·창방·대들보의 부재는 시멘트이고, 주심도리·
장혀와 익공(翼工)은 목재를 사용하였고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접시받침이 중앙 칸에 4개, 양 협간에 2개
끼워져 있으며 1969년의 상량문이 있으며, 건물의 정면에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의 친필 ‘진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에는 영정뿐만 아니라 투구·군령기·교지 등의 1978년에 중요민속자료 제36호로 지정된 정충신장군유품 및
저서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만운집(晩雲集)》 등이 보관되어 있다
정충신(1576~1636)장군은 체구는 비록 작지만 담력이 컸고,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1537~1599)이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이후 장만(張晩:1566~1629)을 따라 청의 연경에 다녀왔으며, 1630년 평안북도
철산 지방에서 일어난 유흥치의 난을 평정하였다. 1617(광해군 10)에는 오윤겸(吳允謙:1559~1636)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1618년에는 대북파의 음모로 인목대비가 서궁에 감금되자 주모자를 소탕하였으나 허균의 부재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관직을 버리고 북청으로 유배되는 이항복을 따라 그를 받들었으며 이때 저술한 저서가 《백사북천일록》이다.
치밀한 전략가로서 청의 정세에 밝았기 때문에 늘 군비 확장에 주력하였다
멋진 개새끼 한마리가 지나가는 산꾼에게 포즈를 취해준다
지맥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가랑비아 모텔...도로를 따른다
가랑비아 모텔 입구(16:05)
공군부대가 자리를 잡고있는 망일산을 바라보면서 29번 국도를 따라서 걷는다
뒤돌아 본 29번 국도
환성1리 버스 정류장(16:18)
29번 국도를 버리고 좌측의 도로로 올라선다
다시 좌측으로...
대나무 숲속에 폐가가 보이고...
임도 삼거리(16:23)
송유관 묻혀있는 대밭을 지난 다음에...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63.3m봉(16:27)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좌측으로...
보릿밭 가운데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농로를 따라서 가는데 망일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등로 우측으로는 폐차장이 보인다
탄저병으로 인해 수확을 포기한 고추밭
사거리(16:37)
넓은 농로를 따라서 간다
환성2리 버스정류장(16:40)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환성리(環城里)는 마을 모습이 문고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골환이[谷環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문곶리(門串里)와 지곡면 대요리(大要里) 사이에 동서로 쌓은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이 있었으므로 골환이의 ‘환’자와 토성의 ‘성’자를 따서 환성리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산면(大山面)에 탑골[塔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자연마을로는 밤골, 절골, 목재, 토성골, 문꼬지, 헌터울 등이 있으며 헌터울 동북쪽에 물새들이 많이
살았던 새섬이 있고 특산물은 쌀, 생강, 고추 등이 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환성교회가 보이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망뫼산 가는 길
망뫼산(119.7m:17:00)
서산시 지곡면 환성리와 대산읍 영탑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다만 영탑리에 망뫼마을이 있어서 지명을 따온듯 하며
망뫼산이란 ‘뫼’도 산이요, ‘산’도 산이니 흔히들 서울역전 앞이라는 뜻과 똑같은 이치가 아닐까
마을이름이야 ‘망뫼’라 했으니 ‘망산’이라 부르면 되지만 ‘망뫼산’은 좀 그렇다.
이곳에는 ‘망(望)’자 들어간 산 이름이 유난히 많다...망일지맥의 주봉인 망일산과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망미산(望美山)이 있는데 아마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망뫼산 정상 삼각점(△서산 418 / 79.8 복구)
인증샷
망뫼산 정상의 모습
망뫼산을 내려간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이경일님의 격려문구도 잘 보이지 않는다
등로를 내려가니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나오나...
맥길은 직진이다... 험한 맥길을 버리고 좌측의 편안한 길을 택한다
망일산을 바라보면서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지맥길은 우측 밭 가운데로 이어진다
꿈의 궁전 모텔(17:20)
영탑1리 사거리(17:22)
뒤돌아 본 꿈의 궁전 입구의 모습
영탑1리 버스정류장(17:24)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망일산의 모습
29번 국도를 따라서 가는데 해가 진 다음이라 그런지 손이 시릴정도로 날씨가 춥다
날머리가 200m 남았구나.
우리를 태우고 온 미니버스가 보인다
영탑리 버스정류장(17:35)
버스를 바라보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의식으로 스틱을 접는다.
너무 거리가 길어서 안 올려고 했는데 동반자 조여사님과 산동네 대장님의
배려로 인해 20km가 넘는 거리를 무사히 완주를 했다
수술을 한 지가 정확하게 오늘로 6개월이 지났다...이렇게 다시 산에 오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젠 어느 정도 산행 속도도 나고 숨이 차는것도 많이 좋아진 느낌이다
내일 아침에 병원가서 CT를 찍고 채혈을 한 다음에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버스를 타고 1시간이나 더 일찍 도착한 동료 산꾼들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향한다
내가 느린 탓에 답답할텐도 불구하고 전혀 싫은 내색을 않고 기다려 준 동료산꾼들이
정말 눈물나게 고맙기만 하다...다들 감사합니다...世世生生 복받을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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