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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대산(망일)지맥(終)

대산(망일)지맥 제2구간 - 영탑리 버스 정류장에서 벌말포구 선착장까지

by 범여(梵如) 2019. 1. 6.

☞ 산행일시: 2018년 01월 06일

☞ 산행날씨: 청명한 맑은 날씨에 산행하기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18.4 km / 7시간45분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일요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영탑리 버스 정류장-군부대 철조망-공군부대 후문-삼거리-석탑갈림길-깔딱고개

                  망일산 문필봉-전망대-갈림길-임도-도적골 교육장-126.3m봉-지새고개-안부

                  NO73송전탑-107m봉-72.2m봉-갈림길-29번 국도-풍성한 교회-삼거리-임도삼거리

                 경주정씨 묘지-돌탑-몰니산-암봉-안부-131m봉-안부-갈림길-119m봉-두루골-66m봉

                 삼길포 갈림길-124.8m봉-74.8m봉-82.9m봉-이동통신탑-복우재-64m봉-안부-갈림길-도로

                 한글도서관-SK이동통신탑-갈림길-49.1m봉-갈림길-도로-묘지-갈림길-서낭당 고개

                 자용산-갈림길-안부-98.3m봉-갈림길-해서염전 수문-안부-갈림길-가당산

                서해바다 글램핑장-가로림민박-원수당산-벌말포구 선착장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대산읍

 

多事多難했던 戊戌年을 보내고 己亥年 새해가 밝아왔다.

매년 해가 바뀌지만 지난 한 해는 나에게 너무나 힘든 고비였기에 올해는 그저 아무런 욕심없이

무사하기만 바랄뿐이다...내 삶을 뒤돌아 보니 모든게 감사할 뿐이다.

기해년 들어 첫 맥산행을 나서는데 하필이면 절에서 행사가 있는 섣달 초하룻날이다

요즘들어 이상하리만큼 절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산행이 많이 겹쳐진다

토욜일날 절에 들렸다가 오니 맘이 좀 편하기는 하지만 스님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원래 이번주는 진권아우와 보현 지맥을 가기로 했는데 내가 바쁜 바람에 펑크를 냈다.

이젠 혼자서 산에 다니기가 조금씩 겁이난다...상당히 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몇십명씩 다니는 산악회는 죽어도 싫고하여 오늘도 10명 미만으로 다니는

백두사랑 산악회 일요지맥 팀을 따라서 대산(망일)지맥 마지막 구간을 나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영탑리 삼거리(08:50)

양재역에서 출발하여 2시간만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영탑리 삼거리에 도착한다

평소에는 6~7명이 산행을했는데 오늘은 일행이 늘어서 13명이나 된다.

산행 대장을 맡고있는 산동네님이 한달동안 남미로 여행을 가는 바람에

나를 후미에서 항상 챙겨주는 후원자가 없어서 조금 불안하기는 하다.

영탑리(里) 버스정류장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영탑리()는 조선 시대에는 영전리()와 탑동()이었는데, 영전리는

전씨()가 많이 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탑동은 마을에 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전리의 ‘영’자와 탑동의 ‘탑’자를 따서 영탑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영젼리[], 탑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망뫼산, 북쪽으로는 망일산()을 두고 그 사이에 위치한 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망뫼산 남쪽은 서산시 지곡면 환성리로 이어지고, 망일산 동쪽으로는 운산리,북쪽은 대산읍과 맞닿아 있다.

이렇다 할 큰 하천은 없지만 망뫼산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큰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이 평야가

대호방조제 건설 이후 매립된 평야로 이어져 있어 상당히 넓은 평야가 이어져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 잡목이 무성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맥꾼들은 마치 뭐에 쫒기듯이 도망을 가버리고 졸지에 늘 꼴찌인 나와 조여사만 남았다.

나는 수술이후 몸이 예열되기 전인 초반엔 상당히 걸음이 느리고 숨이 가빠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갈테면 가라지...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걷는다

공군부대 철조망을 걷는데 아카시아가 상당히 성가시게 군다

철조망에서 바라본 망일산 정상의 모습

공군부대 후문(09:10)

공군부대 후문에 도착하니 군부대 스피커에서 군사지역에 들어왔으니 나가라고 경고방송이 나온다

넓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삼거리(09:13)

이곳에서 군부대로 이어지는 좋은 길을 버리고 우측의 등로로 향한다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 1분정도 지나니 영탑리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돌탑 갈림길(09:15)

돌탑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일반 등산객들이 망일산으로 오르는 등로라 길은 아주 좋다.

구조 표지판도 자주 보인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수술을 하고나서 부터는 이런 곳은 범여에겐 죽을 맛이다

급경사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동료 산꾼을 도저히 따라 갈수가 없어서 너무 처지는 바람에

나와 동행한 조여사님만 남았다...조여사님이 나보다 더 처지는 바람에 나에겐 그나마 위안이 된다...ㅋㅋㅋ

깔딱고개(09:27)

가쁜 숨을 쉬면서 올라서니 깔딱고개가 나오는데 갑자기 잘 작동하던 똑닥이 카메라가 속을 썩인다

지난주 위천(보현)지맥 길에는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하고 생각하여 집에서 시험할 때는 작동이 잘 되었는데

오늘 산행 출발때는 잘 되었는데 이곳부터는 카메라 셧터는 작동이 되는데 액정 모니터에 그림이 뜨지

않으니 사진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몰라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대호지만(芝灣)과 영탑리의 모습

이곳이 서해안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하여 그림이 흐릿하다.

‘대호지’란 촌명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망뫼산쪽의 모습

망일산 문필봉(文筆峰:252m:09:35)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문필봉은 예전에 망일산 동봉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문필봉이란 어였한 지명이

있으나 일반적으로(특히 맥산꾼) 망일산 동봉으로 통하는데 망일산 정상에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어서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이곳이 실질적으로 망일산 정상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쉴 수 있는 벤취가 여러개 있고 이정표와 금지행위 안내판이 있다 

문필봉(文筆峰)이란 산이 뾰족하게 붓의 끝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지는게 대체적이이다

계룡산의 문필봉, 아산 설화산의 문필봉, 의성과 안동의 경계에 있는 갈라산의 문필봉이 유명하다

이곳의 지명은 최근에 결정된 듯 한데 유래는 잘 알길이 없다.

군부대 건물이 보이는 곳이 원래 지맥인데 갈수가 없기에 아쉬움이 크다.

망일산 동봉에서 바라본 갈 수 없는 망일산(山:302m) 정상의 모습

망일산은 서산시 대산읍의 영탑리·운산리·대산리의 경계에서 평지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건지산()과 시루산()을 이루는 곳이 영탑리이고, 그 동쪽으로 삼형제봉()

아래가 운산리이며, 그 북쪽으로 한 줄기가 뻗어 말이 달리는 듯한 모습의 진후봉()을 이룬다.

이 산에 오르면 당진과 면천 지역의 여러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삼길포()의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워

봄가을에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수덕사()의 말사인 망일사()가 있다.

 

『호산록()』에서는 망일산을 대산()이라고 적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군의 북쪽 35리에 있으며

목장()이 있으 이 산은 바다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듯해서 그 형체가 구릉보다 더 높고 크지 않지만, 바다

가운데 가리는 것이 없어서 대산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망일산 북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형성된 계곡에서 발원한 진천이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망일산 남서쪽과 남동쪽에서 발원한 하천은 운산1지로 흘러가며 다시 흘러 대호방조제로 유입된다.

대호방조제 근처에는 과거에 간석지로 이용되던 땅이 간척지로 개발되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망일산의 전제적인 경사는 서산의 다른 산에 비하여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산의 침식 방향은

북서쪽과 남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망일산 북쪽에 있는 지사고개는 동서 방향을 이어주고 있다.

 

지사고개 동쪽과 서쪽의 큰 골짜기는 현재 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현재 망일산 정상에는

공군 레이더 기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한국군 최초의 레이더 기지라고 하며 그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애정을 가지고 건설했다고 하며 망일조양으로 대산읍의 진산이다 

망일산 정상을 오를 수가 없어서 일반 등산로인 옆사면길을 따라서 간다

현오님의 흔적도 만나고...

사면길을 따라서 가다가...

이 팻말이 있는 곳에서...

사면길을 버리고 망일산 정상쪽으로 가보려고 사면길을 버리고 절개지로 향한다

누군가가 간 흔적이 윗쪽에 보인다

계속해서 카메라거 쏙을 썩인다...셔터 소리는 나는데 액정이 보이질 않으니...

급경사로 올라서니...

망일산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 돔이 보이건만 철조망과 저 가시넝쿨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

나혼자 같으면 어떻게 치고 나가려고 시도를 해보겠지만 조여사님이 뒤따라 오는 바람에 포기를 한다

다시 급경사로 되돌아 와서...

사면길로 복귀를 한다

편안한 꽃길을 걸어간다

사면길에서 바라본 대산읍 운산리(雲山里)의 모습

운산리는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때, 운전리()의 ‘운’자와 산후리()의

 ‘산’자를 따서 운산리()라 하였다. 운전리는 망일산() 밑의 마을이었는데, 산이 높고

구름이 많은 탓에 밭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여서 구름밭이라 하였고, 이를 한자로 옮길 때 운전리가 되었다.

산후리는 망일산의 뒤편에 자리 잡은 마을로, 산의 뒤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 운젼리[], 산뒤말[]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대호방조제 건설 이전에는 자연 마을인 횟개가 실치잡이로 유명하였으며, 간월개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화염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정도로 화염법을 통한 소금 생산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대호방조제 건설과 이에 이어지는 매립으로 어촌은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간척된 평야에

논농사를 짓는 외지인이 대규모로 유입되어 기존의 주민들을 대체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운산리는 논농사에 경제적 기반을 두고 있다.

운산리의 회포마을[횟개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부터 2월 초하루까지 운산리 횟개 볏가리제라는

마을 제사를 모신다. 또한 회포마을은 2005년 행정안전부 지정 정보화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운산리는 남쪽으로는 서산시 대산읍 영탑리, 서쪽으로는 대산리, 대로리와 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화곡리와 닿아 있다.

나무 다리를 건너 오르막을 올라서니 팔각정이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10:03)

팔각정과 원형의자, 이정표가 있다.

그런데 나보다도 한참 먼저가신 산꾼들이 다른 산꾼들을 기다린다.

망일산을 돌면서 서로가 헤어진 모양이다

전망대 이정표

이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군부대 철조망인데 카메라의 스트레스 때문에 포기를 한다

운산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망월사 갈림길(10:09)

망일사 대웅전(사진 ...펌)

망일사(望日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창건 후 임진왜란 전까지

다섯 차례 중수를 하였다고 하며,1589년(조선 선조 22년)에 중창하고 1628년(인조 6년)에도 중수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한 정충신(鄭忠臣) 장군이 당파싸움에서 밀려나 1633년 충청남도 당진군에

유폐되었을 때 이 절에서 40일간 머물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1801년(순조 1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두열(杜悅)이 중수하였고,1857년(철종 8년) 묘열(竗悅)이 중수하여

100 여년간 사세가 유지되어 있으며, 건물로는 대웅전, 산신각, 범종각, 세심문(일주문), 망로정이 있다. 

다시 내리막길로 향한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갈림길(10:12)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등로 가운데 무명 묘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이곳에서 내리막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임도로 내려가도 맥길을 다시 만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잡목으로 인해 등로는 보이질 않는다

임도(10:20)

조금전 묘지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들어선다.

생각보다 등로는 좋다

나무 무더기 서너개를 지나고...

등로에 이런 팻말도 보인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건물이 나오고...

컨테이너가 있는 마당 가운데로 들어선다

도적골 교육농장(10:30)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서 운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에에 도적골 교육농장이 있다

서산시 대산읍에 위치한 도적골농촌교육농장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교육농장 품질 인증을 받았다.

시에 따르면 도적골은 농업자원, 교육 운영자, 교육 프로그램 등의 품질 요소를 충족해 품질 인증을 받게 됐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 흙 생태 교육, 우리밀 칼국수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도로를 가로 질러 밭으로 올라간다

밭을 지나니 등로는 잘 보이질 않으나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흔적이 나침판 역할을 한다

능선에서 올라서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126.3m봉(10:45)

서래야 박건석님은 이 봉우리 아래에 있는 지사마을 넘어가는 지새고개의 지명을 따서

지새봉이라 붙혀 놨는데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 분의 지명은 믿음이 별로 안간다.

지명이란 국립지리원에서 붙이는 것과 그 지역의 지명위원회에서 검증이 된 다음에

붙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지명을 정한다는 건 옳은 방법은 아닐 듯 싶으나

이 분의 산에 대한 열정 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126.3m봉을 지나 조금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보이질 않으나 소나무 숲길을 헤치면서 내려간다

잠시 후 임도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지새고개(10:50)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와 운산리 지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운산리 사람들이

읍내에 볼 일을 보러갈 때 넘는 고개였으며 고개 우측에 지사마을이 보이는데 모래가

많아서 지사 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안부(10:55)

안부를 지나면서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치고 오르는데

동행한 조여사님이 자꾸만 뒤처진다...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도 여기서 물 한모금 마시면 휴식을 취한다

갈림길엔 맨발님의 격려 문구가 걸려있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무조건 치고 올라선다 

잠시후 좌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NO73 송전탑(11:10)

송전탑 위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 주장하는 이경일님의 격려 문구가 있다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107m봉(11:13)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망일(대산)지맥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고 우측으로는

틀목봉(113m)이 있는데 맥길에서 좀 떨어져 있는데다가 동료 산꾼들은 진작에

도망(?)을 가버렸는데 가 볼수도 없고 틀목봉에 대한 지명도 알 길이 없어 그냥 간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도 보이고...

안부를 지나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72.2m봉(11:20)

갈림길(11:22)

독도에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고 길이 좋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오늘이 小寒인데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생강나무 봉우리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예전에 서해안 지역을 강타한 태풍 콘파스의 잔해가 범여를 엄청나게 괴롭힌다.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가시나무가 계속해서 태클을 걸어댄다

천신만고 끝에 내려서니 민가가 있는 도로가 보이고 앞선가던 동료산꾼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점심식사(11:45~12:05)

먼저간 진권아우가 행님 줄라꼬 떡라면을 끓이고 있다

덕분에 베낭 무게도 줄이고... 나는 숟가락과 입만 가지고 있다.

늘 행님에 대한 배려...진권 아우님! 복받을기야

다시 길을 나선다

마을길에서 바라본 망일산의 모습

이곳 서산시 대산읍은 망일산에서 지명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대산은 서산시 북쪽에 위치한 읍으로 남쪽을 제외한 3면이 가로림만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동쪽의 가로림만은

대호방조제로 인해서 대호(大湖)가 되었고 북쪽의 해안에 한화토탈·현대석유화학·대산산업단지가 있다.

 

본래 대산은 홍주의 월경지였다. 행정 지명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여지도서에서 대산면(大山面)이 처음이다.

이후 관할 동리의 변동이 있었지만 줄곧 서산군 관할로 있다가 1991년 대산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95

도농통합으로 서산시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요녕성의 광개토대왕비문에 "호태왕이 백제의

58개를 공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거기에 대산한성(大山韓城)이 나오는데, 이것은 대산 읍내에 있는 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이 내용을 받아들인다면 대산(大山)이라는 지명은 4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대산포(大山浦)는 군 북쪽 4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산포는 군 북쪽 57, 조립부곡(助立部曲)은 군 북쪽 53리에 있다. 지금은 대산곶(大山串)이라 일컫는다"

기록이 나오는데. 1619(광해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 산천조에서 대산(大山)! 그 산은 바다 가운데 꿇어

앉은 듯하고, 맑은 날에 산 정상에 오르면 먼 곳까지 잘 보인다라고 하여 이는 큰 산과 연관하여 대산의 연원을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대산은 망일산(望日山)으로, 망일산은 서산의 서북부 지역에서

높이 우뚝 솟아오른 해발 302m의 산이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계가 탁 트여 공군 레이더 기지가 자리 할 만큼 좋은 입지적 여건을 갖추고 있어

위용과 기품이 있는 명산이다. 이로써 큰 산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망일산에 연유되어 대산이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대산이란 지명이 문헌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태종실록 1412(조선 태종 12) 820

3번째 기사에 배를 잘 관리하지 않은 충청도 대산만호(大山萬戶) 박의손(朴義孫)을 논죄하다ʼ라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 1426(세종 8) 816일 정축조에 충청도 감사와 절제사가 합동하여 아뢰기를 도내에 있는 서산의

 다리곶, 흥양, 토진, 맹곶 등 네 개의 목장을 친히 답사하여 살펴보니 불편한 점이 있어 - 중략 - 대산곶은

수초가 풍부하고 목장 축조하는 공역도 편리하게 되었으니 - 중략 - 큰 말은 대산곶에 방목하고 작은 말은

흥양곶에 방목토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어 관명으로, 또는 지명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대산읍발전위원회]

마을 길을 따라서 가다가 보니...

산꾼들의 이정표가 되는 삼호아파트 101동이 보인다

29번 국도(12:08)

이곳은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로 29번 국도가 관통을 하고 있다

대산리의 ‘대산()’이라는 뜻은 큰 산이라는 뜻인데, 이는 대산리()에 있는 망일산()을 뜻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산젼리[], 노상리(), 노하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남동쪽에는 대산읍에서 가장 높고, ‘대산’ 지명의 유래가 된 망일산이 있다. 이 망일산을 기준으로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 영탑리와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국도를 통해 대로리와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오지리와 연결된다.

대산읍 내의 유일한 지방 하천인 구진천()이 남서쪽으로 흘러 가로림만으로 유입된다

도로를 가로질러 풍성한 교회 방향으로 향한다

풍성한 교회(12:10)

교회를 지나 마을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삼거리(12:13)

직진의 도로를 따라서 간다

몰니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임도삼거리(12:22)

오르막을 오르니 좌측으로 묘지가 보인다

경주정씨 묘지(12:25)

잘 조성된 경주정씨 양경공파 대산문중 가족묘가 있다

묘지 뒷쪽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곳부터 합수점까지 선두는 도망(?)가고 조여사님과 같이 간다

무명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돌탑(12:38)

이곳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몰니산으로 향한다.

몰니산(沒泥山170.7m:12:40)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으나 잡목만 무성하다.

물우산,몰리산 등으로 불리웠으나 1999.5.1 몰니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구 지형도에는 沒混山으로 한자가 잘못 표기되어 몰곤산 또는 몰혼산으로 읽을 수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 지도보기-지명정보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지형도를 보면

沒泥山(몰니산) 169.2m로 고시내용과 같이 올바르게 표기되어 있다.

 

산의 지명을 한문으로 풀어 쓴다면 ‘잠길 몰(沒), 진흙 니(泥)’이니 진흙에 잠긴 산이란

얘기인데 이건 아무래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산 아래의 마을 이름 모리골은 마을이 몰니산 기슭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물하니는

몰니산 밑이 되어 물이 많이 난다해서 생긴 이름이며 물안지[명지지()라고도 불림]라고

불리는데 마을 지명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삼각점 안내판(△서산302)

실제 삼각점은 판독불가

옛 표지판...물혼산이라 해놨다

돌탑으로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암봉(12:43)

몰니산을 내려서면서는 돌들이 많이 보인다...암봉을 넘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46)

131m봉(12:46)

안부(12:48)

갈림길(12:49)

안부에서 올라오자마자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서낭당의 흔적인가?..돌무더기가 보인다

아카시아 나무의 저항을 받으면 야트막한 오르막으로 오른다 

119m봉(12:54)

119m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등로가 희미한 소나무숲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골프 연습장처럼 그물망을 쳐놨는데 골프 연습장은 아니고 농산물 말리는 시설물 같다

맥길은 막혀있고...

그물망을 넘어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대문이 길을 막는다.

대문을 넘어 내려서는데 건너편 마을에서 쥔장인듯한 남자가 농장에 들어 갔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조여사님이 연신 미안하다고 하니 조용해진다 

두루골(13:05)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올라오니 주택 한채가 있다

민가를 지나서 좌측으로 향한다

NO66 송전탑(13:14)

송전탑을 지나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삼길포 갈림길(13:15)

직진길은 삼길포와 황금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이고 망일지맥은 좌측 임도로 향한다.

산으로님이 저술한 대한산경표에는 대산(망일)지맥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벌천포가

아닌 황금산을 합수점을 잡는다.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삼길포항은 조선 시대부터 인천을 왕래하던 범선이 출입하던

포구였으며 우럭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갈림길에는 고산(망일)지맥 표시 코팅지가 보인다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온다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124.8m봉(13:29) 

뚜렸한 등로가 좁은 小路로 바뀐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야트막한 오르막길

74.8m봉(13:35)

82.9m봉(13:38)

이동통신탑(13:40)

등로 우측 아래쪽엔 한우목장이 있다.

산꾼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송아지들

복우재(伏牛峙:13:44)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는 고개로 말바구지에서 복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2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고개 우측에는 오지2리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고개의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복우재(伏牛峙)라고 한다

고개 우측에 있는 오지2리 버스정류장

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선 다음에...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고 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64m봉(13:51)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방화선 임도가 나오고 잡풀이 무성하여 방화선이 아닌 발화선 임도 같은 느낌이다

안부(13:57)

등로는 우측 아랫쪽으로 이어지고...

내리막 능선을 내려오니 간벌한 나무를 쌓아논 곳이 보인다

갈림길(14:00)

이곳은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나무가지를 쌓아 놓은 좌측 능선이

실하여 지맥길처럼 보이나 지맥길은 직진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서 내려오니 오지리 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지 2리의 모습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오지리(里)는 가로림만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독곶리()와의

사이에 있는 갯벌을 하나의 거대한 웅덩이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오지(洿)’라고 하다가 후에

오(洿)자를 쉬운 오()자로 바꾸어 ‘오지()’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오지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마을이 오지에 있다하여 오지리라 하는데 자연마을로는 고창개, 말마구지, 벗말, 절골이 있다.

고창개는 오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말마구지는 조선시대 때 말을 놓아 먹이던 곶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벗말은 마을 앞에 벗터가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며, 절골은 마을이 자각산 밑이 되는데, 절이 있었다해서 생긴 이름이다

서산의 특산물 육쪽 마늘 재배지가 많이 보인다

마늘밭을 지나 2차선 도로로 내려선다

원 지맥길은 민박집 뒷쪽의 능선이지만 도로를 따라서 간다

서산 글램핑 한글도서관(14:05)

서산 글램핑은 폐교된 옛 초등학교 건물을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글램핑이란 화려하다는 뜻의 글래머러스와 야영을 의미하는 캠핑의 합성어로
평범한 텐트와 달리 돔텐트 글램핑으로 캠핑의 세계를알수 있다고 한다

오지2리 SK이동 통신탑(14:07)

이동통신탑을 지나자마자 도로를 버리고 임도로 올라선다

등로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향한다

갈림길(14:12)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49.1m봉(14:20)

십자(十字) 안부를 지나고..

갈림길(14:24)

반가운 인연들

좌측으로는 밭이 보인다

어지러운 공사장으로 내려선다

공사를 하다가 자금이 모자란 모양이다... 업자들이 유치권 행사중인 건물이다

불경기에 여러 사람 힘들겠구나

도로(14:32)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오지보건지소가 보이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향한다

도로를 버리고 밭으로 올라선다

착한 넘...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부린다

묘지(14:38)

밭을 지나고...

갈림길(14:44)

묘지를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서낭당 고개(14:48)

고개에는 서낭당은 보이질 않고 공동변소가 보인다

길가에서 장작패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고개가 예전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 고개라고 한다

서낭당 고개에서 바라본 대산석유화학 단지의 모습

가야할 자용산도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또 다른 고개를 넘는다

통포염전이 있는 통계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북나무골 마을이 보이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는데 바람도 불지않아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떡과 밀감,

우유 하나로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지나가신 지가 얼마되지 않으신 모양이다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진다

북나무골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고...

자용산으로 가는 완만한 오름길

넓은 임도를 버리고 급경사의 오르막길로 올라서 자용산으로 향한다

지나온 망일산이 아련하게 보인다...참으로 많이 걸어왔다

자용산(山:150.5m:15:30)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는 산으로 서쪽의 가로림만으로 돌출하여 있는 반도에 위치하여 있다.

이 산은 오지리의 주산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이 산의 머루와 다래넝쿨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절경을

이루므로 '자객산()'이라는 이름이 얻어졌다고 한다. 『대산읍지』에서는 "서해의 낙조가 산에 비치어

자기()의 절경을 이루므로 자각산()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명의 유래가 자연의 풍경을

언급하는 것이 공통점인데『서산군지』(1926)에서도 '몰니산에서 한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 오지리 자각산이

되고'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지도제작 과정에서 자객산의 '객()'이 '용()'으로 잘못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은 망일산 · 황금산 · 몰니산과 함께 대산의 4대 명산 중 하나이다

자용산 정상 삼각점(△서산21)

인증샷

자용산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생각보다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갈림길(15:35)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부(15:44)

98.3m봉(15:47)

갈림길(15:49)

잡풀이 무성한 맥길...여름에는 고생 좀 하겠다.

억새를 헤치면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해서염전 수문(15:58)

해서염전 수문에서 바라본 대산석유화학단지와 황금산의 모습

수문옆 민가로 들어선다

민가를 지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바다와 염전 사이의 좁은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황금산의 모습

선두는 진작에 지나간 모양이다

그래도 맥길은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져 간다

좌측은 가로림만, 우측은 해서염전인데 곡예하듯 걸어간다

안부(16:08)

안부에서 바라본 해서염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는 해서염전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여 경지정리된 논처럼

보이는데 대산반도와 이원반도에 둘러싸인 가로림만은 염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히 대산반도 북단인 대산읍 화곡리와 독곶리, 오지리 일대에는 조선시대부터 자염(鹽 :원주민들은

화염()이라고 함)생산이 성행했고, 그 이후 천일제염을 바꾸어 소금 생산이 많았던 곳이다.

 

서해안 중에서도 특히 조수의 간만의 차가 큰 것으로 유명하며 농업 용수의 확보가 어려워 해안 간척은

결국 염전 개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의 자연 지명중에 벗터, 벌말

등은 제염을 생산했던 곳임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 전후의 서산지역의 대지주들이 염전을 운영하여 부를 축척 하는 등 근대에서 부터 이미

서산에는 많은 염전이 있었고, 이후 1950년대를 지나 1970년대까지 천수만 간척 사업은 농경지

조성과 염전 개발등 2가지 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이 지역의 입지 조건이 천일제염에 적합할 뿐

아니라 그 당시 소금은 국가의 전매 사업으로 보호되고 있었다고 한다

안부에서 올라서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갈림길(16:10)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오배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꺽어져 조금 올라가니

지형도상의 37m봉이 나온다

가당산(37m:16:14)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는 산인데 바닷가라 그런지 해발이 37m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높다.

지형도에는 가당산이란 명칭은 없고 그냥 37m봉은 나와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가당산을 내려오니 밭이 나오고 마지막 봉우리인 58.7m봉이 보인다

밭 우측으로는 오배산과 황금산이 보인다

밭을 가로 질러서 간다

밭을 지나 도로로 나오니 서해바다 글램핑 간판이 보인다

서해바다 글램핑(16:20)

서산 글램핑은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고 텅텅 비어있다.

직진을 하니 장애물이 맥길을 막고 있어 우측의 논으로 마지막 길을 이어간다

논에서 올라와 묘지옆 건물로 간다

가로림 민박(16:27)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고산(망일)지맥의 마지막 봉우리 오르는 길

맥길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어느 지맥치고 그리 만만한 길은 하나도 없다

고산(망일)지맥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오름길에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드디어 고산(망일)지맥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선다

원수당산(58.7m:16:35)

고산(망일)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58.7m봉에 올라선다

이곳의 지명을 원수당산이라 부르고 있으나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지형도상에는 그냥 58.7m봉이라고만 표기가 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고산(망일)지맥의 합수점을 이곳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 벌말포구를

보느냐, 아니면 우측으로 내려서 벌천포 해수욕장으로 보느냐, 또 벌천포

해수욕장을 지나 오배산 끄트머리를 보느냐를 산꾼들마다 제각각이다.

오늘 같이온 산꾼들도 선두로 가신 분들은 벌천포해수욕장으로 내려갔고

맨 꼬라비로 온 나와 조여사님은 벌말포구로 내려왔다.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서 각자 자기의 몫이다

원수당산에서 바라본 황금(黃金山:129.7m)의 모습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산으로 지리적으로는 대산반도 북서쪽 끝에 위치하여있다.

조선지형도에서 황금산을 볼 수 있는데서산군지(1926)에 의하면 "기은리 자지산(紫芝山)에서 세 지맥으로 나누는데.

한 지맥은 서쪽으로 뻗어 독곶리 황금산이 되어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나왔으며 크고 작은 용굴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 이름이 '항금산(亢金山)'이었고, 산이 있는 전체를 총칭해서 '항금'이라 했었다고 전한다.

 '황금'은 평범한 금이고 '항금'은 고귀한 금을 뜻하므로 마을의 옛 선비들은 고집스럽게 '항금산'으로 표기하였다고

하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항금산(項金山)'으로 한자 표기가 다르다.

 

삼성종합화학이 생기면서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었지만, 그전에는 일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산의 서쪽은 바위 절벽으로 깊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2개의 동굴이 있어 예부터 금을

캐던 굴로 알려져 있다. 관련 지명으로 황금목[黃金項]이 있다. 산의 앞바다는 수심이 깊으며 간조 때에는

유속이 빠르고 파도가 높아서 황금목은 험한 뱃길로 알려져 있다.

가로림만 맞은편에는 만대항과 이원(후망)지맥의 꼬리 부분이 보인다

벌말포구로 내려가는 길

잡목이 어지럽게 널려 있으나 다행히 넓은 임도가 있어서 편하게 내려간다

예전에 바닷가를 지켰던 초소인듯한 폐건물 2동이 숲속에 묻혀 있다.

잡목을 헤치며 급하게 내려간다

벌말포구의 버스 정류장

벌말포구 선착장(16:40)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 있는 포구로 벌천포라고도 불리며 꽃게가 많이 잡히는 작은 포구이다.

예로부터 염전과 낙지, 굴 등이 유명했던 지역으로 ‘벌말’은 소가 쟁기질로 소금을 만드는 벗질에서

유래된 벗마을이 벌말로 바뀐 것으로 향토 연구가 이은우에 의하면 “서산시 팔봉면 구도포구에서

지곡면 우도, 대산읍 고창계, 벌천포에 이르는 가로림만의 항로는 1000여 년 넘게 군량미가 수송되던

항로였다”고 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지맥 하나는 끝냈다는 희열을 느끼면서 고산(망일)지맥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끝까지 동행한 조 여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고산(망일)지맥을 종료하면서...

대산읍내에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벌말이라 부르는 벌천포는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멸종 위기에 있는 점박이 물범이 가로림만에

무리지어 살고 있으며, 조선시대 저염 생산이 되었던 염전의 중심지로 자연의 곱돌 바닷가와갯벌 등

다양한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벌천포(벌말) 마을은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과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 촬영한 장소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벌천포 해수욕장을 합수점으로 잡은 동료 산꾼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벌천포 해수욕장 가는 길

조금전에 지나왔던 자용산도 바라보고...

벌천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오배산과 황금산의 모습

먼저 도망간(?) 진권아우가 마중을 나왔다

벌천포 해수욕장은 길이 1㎞, 폭 약 50m 규모로 충청남도 태안군 통개와 벌말의 육계사주()

 해안 사구에 위치하고 있는 서산 내륙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육계사주에는 사빈이 형성되어 있고,

후사면에서 공급된 모래, 자갈 등으로 인한 조립질 간석지와 퇴적 물질, 연안에서 이동해 온 실트와

모래 등의 세립질 퇴적 물질이 혼합되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해안 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육계사주로 도로가 건설되어 있고, 벌천포 해수욕장 북쪽 육계도 주변은 캠핑장으로 이용되면서

본래의 사구 모습이 훼손되었다.

벌천포 해수욕장에서 버스를 타고 오지리에 있는 오리로스 집으로 향한다

오리로스 식당 마당에서 바라본 서해 낙조(落照)

이곳에서 동료들과 오리로스로 식사를 마치고 귀경하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