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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이원(후망)지맥(終)

이원(후망)지맥 제1구간 - 분기봉에서 불무골 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9. 1. 13.

☞ 산행일시: 2018년 01월 13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지독한 미세먼지

산행거리: 도상거리 15.9 km + 어프로치 0.3km / 7시간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일요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장대1리 도로(삼곳말)-후망지맥 분기봉-구정봉-십자안부-비포장 도로-안골고개

                  무명봉-철마산 농원-묘지-무명봉-철마산 갈림길-철마산-안부-안부-156.8m봉

                  132.3m봉-시멘트 도로-장재-153.9m봉-141m봉-큰터골-방공산-79m봉-다룡고개

                  원주변씨 묘-통봉산-안부-111.4m봉-사기점재-승주산-갈림길-NO35송전탑-안부

                  108m봉-95m봉-갈림길-원북고개-이동통신 중계기지-무명봉-은혜요양원-폐축사

                  119.8m봉-갈림길-망월산-149.3m봉-NO33송전탑-118m봉-장자골 고개-갈림길

                  126.7m봉-NO23송전탑-146.2m봉-126.5m봉(둥근봉)-묘지-사직고개-순흥안공 묘

                  104.3m봉-116.6m봉-바구니산-불무골 도로

소 재 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원북면, 이원면 

 

오늘은 미세먼지가 엄청 심하다...식구들은 폐가 좋지 않으니 산행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다

거기다가 이번 일요일은 불교의 4대 명절중에 하나인 성도재일이라 은사스님에게도 미안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지난번의 동료 산꾼과 약속 때문에 하는 수 없이산행을 나선다...

집을 나서면서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를 썼지만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진다.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충청도 지역에 들어서면서 도로가 보이질 않을정도 미세먼지가 심하다

숨을 쉬기도 힘이들고...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들머리에 도착하고... 

 

 

이원(후망지맥:侯望枝脈)개념도 

이원(후망지맥:侯望枝脈)은 ?이원(후망지맥:侯望枝脈)은 錦北正脈이 태안의 退飛山(×165m)을 지나 북서쪽

약 4.5km 떨어진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 삼곳말 마을 서쪽 구정봉(107m)어깨에서 분기해 태안반도를 따라

북진하며 九政峰(×107m), 鐵馬山(×213m), 방공산(×101m), 통봉산(×107m),승주산(×146m), 둥근봉(×127m),

바구니산(△156.8m), 가재산(×178m), 국사봉(△205.6m), 老人峰(×165m), 侯望山(△144.2m), 山祭谷(△109.4m/山祭山),

侯望山(△102.1m)을 지나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에서 맥을 다하고 서해로 흘러드는 도상거리 약 31.5km에 달하는

산줄기를 말하며 동쪽 가로림만 건너로 대산(망일)지맥과 마주보고 있다.

 

산으로님이 저술한 대한산경표에서는 이원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필요한지도 : 1/2만오천.소원, 태안, 고파 영진 1/5만 . p 213.187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들머리에 도착하다(08:50)

버스는 서산 시내를 지나 서산과 태안을 잇는 32번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시목리의

좁은 마을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새로 포장된 도로가 있는 태안군 소원면 시목리

구정봉 아래에 있는 삼곳말에 버스가 도착한다

삼곳말이 있는 소원면 시목리의 전경

시목리()의 지명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감의 생산량이 많아 옛부터 감나무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표기한 것에서 유래했다.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마을 동쪽에 퇴비산이 있다.

자연 마을로는 시목, 구억말, 귀목, 돌고개 마을 등이 있다. 구억말 마을은 구석진 곳에 자리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귀목 마을은 느티나무가 많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돌고개 마을은 돌이 많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원래 도로 우측 마늘밭으로 가면 분기점이 가까우니 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가다가 임도로 들어선다

금북정맥 능선에 들어선다 

이원(후망)지맥 분기봉(09:00)

인증샷

준.희 선생의 패찰이 반갑기만 하다.

지난 11월부터 석문. 고산, 망일지맥을 걸었을 때 누군가 준.희 선생을

패찰을 다 망가뜨려 놓아서 안타까웠는데 이곳은 온전히 그대로 걸려있다

산으로님은 후망지맥을 이원지맥으로 부르고 있다

구정봉(九政峰:107.3m:09:05)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에 있는 산으로 이 산에 묘지를 쓰면 아홉 정승이 나온다고 하여 구정봉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이 지역 향토지리지에는 이 풍수지리설 유래애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향토지리지에 의하면 구정봉은 산기슭이 동쪽으로 툭 튀어나와 부리를 이루고 있으며, 부리 밑에는

9개의 샘(泉)이 있었는데 3개는 없어지고 지금은 6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현지에서 말하는 구정벼루산은 구정부리산의 와전이라고

하고, 구정부리산의 부리는 새의 부리를 말하며 봉우리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구정부리산은 구정봉이 맞는 표현이라고 하며 1972년 지방도에 표기되어 있는 구정봉은

샘과 관련된 지명 유래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정봉은 맥길에서 5m정도 떨어져 있다...갔다가 되돌아와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초반이기는 하지만 맥길 치고는 상당히 좋다

십자안부(09:10)

비포장 도로(09:12)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가야 맥길이나 숲으로 들어가 보니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다시 돌아 나온다

도로옆 으로 들어가서...

희미한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평양조씨 묘가 있고...

부인을 둘씩이나 두었던 평양조씨 할배의 묘

묘지를 지나 넓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출입을 금지하라는 개인농장 팻말도 만난다

개인농장 팻말 우측으로 지맥길은 이어지나 앞서가는 동료산꾼들은 전부 임도로 가버린다.

안 그래도 늦어서 눈치가 보이는데 늦게가는 주제에 다 들렸다 가면 욕 먹을것 같아 그냥

임도를 따르는데 맘이 편치 않다...그래서 맥길은 혼자 다녀야 맘이 편한데...  

이원(후망)지맥중에 가장 높은 철마산(213.5m)을 바라보면서 농장길을 걷는데

출입을 금지한다는 매실(개인)농장은 망해 버렸는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농장도로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편백나무 숲 터널을 빠져 나가니 도로가 보인다

안골고개(09:24)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 안골마을과 소원면 영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버스 정류장과 민가가 보인다 

안골고개에 있는 버스 정류장

안골고개에서 바라본 원북면 장대리(將臺里)의 모습

장대리는 본래 태안군 원이도면 관할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동리(), 고현리(),

송우리(), 석문리(), 추동리(), 삼봉리() 각각의 일부를 장대리()와 병합,

원북면에 통합시키면서 그대로 장대리가 되었다. 서해안에 가까운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바다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내륙으로 큰 하천은 흐르지 않으며 작은 하천과 저수지가 많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장대,

장대문이 있는데 장대와 장대문은 옛날에 군사 지휘에 사용하던 장대가 있던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맥길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명봉(09:32)

등로에서 바라본 안골마을의 모습

철마산 농원(09:34)

오늘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미세먼지가 아주 심하다

농장을 가로질러 철마산으로 향한다

농장을 지나 철마산 오르는 길에 돌탑이 보이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철마산으로

향하는데 동료 산꾼들은 무심하게도 다들 도망(?)을 가버리고 오늘도 나와 조여사님만 남았다

묘지(09:40)

무명봉(09:43)

다시 가쁜 숨을 쉬면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철마산 갈림길(09:48)

철마산은 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갔다 오기로 한다

철마산 가는 길

철마산(山:213.5m:09:50)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영전리와 원북면 장대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사각정자와 체육시설,

영전리로 내려가는 길에는 쉬운질 바위의 표지판이 보인다.

『1872년지방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서산군지』(1926)에 "철마산은 백화산 아래 마혁치에서

나와 서쪽으로 본면 시목리에 이르러 우뚝 솟아 고봉산과 묘봉산이 되고 세 지맥으로 나뉜다.

한 지맥은 북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영전리 뒤에서 철마산이 되고 한 지맥은 남쪽으로 내려가 법산리에서

우뚝 솟아 왕지산의 대소 두 봉우리를 이룬다. 한 지맥은 서쪽으로 뻗어 신덕리에서 우뚝 솟아 일모산과

명월산이 되고, 여기서 비스듬히 뻗어 파도리 후 망봉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옛날 이 산마루에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산신각에 신앙용 철마가 안치되어 있었다.

철마산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체육시설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지 먼지만 잔뜩 끼여있다

철마산 정상에서 내리막길 100m라 맨꼬래비라 포기하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망가진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철마산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이원(후망)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09:54)

이곳 어느곳에 권총바위가 있다는데 너무늦어 그냥 간다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나 아직까진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비실이부부님의 흔적이 맥길을 안내한다

안부(10:03)

뒤돌아 본 철마산의 모습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156.8m봉(10:07)

내리막으로 내려 왔다가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132.3m봉(10:14)

잡목이 무성한 132.3m봉

132.3m봉을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10:18)

가야할 맥길을 바라보면서 도로로 내려선다

장재가 보인다

장재(10:50)

태안군 소원면 소근리와 원북면 장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장대리쪽은 멋진

가옥 한채가 보이고 소근리쪽은 버스 정류장과 도로 너머로 백화산이 아련히 보인다

장재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잡목의 저항이 아주 심하나 등로는 희미하게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오르는데 여영님의 격려 문구가 산꾼을 반긴다.

다시 좀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153.9m봉에 도착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태안군 소원면 소근리의 모습

소근리(所斤里)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원이면의 원동 일부 지역과 소근면의 소근리와 율도리가 통합,

소원면에 편입되면서 소근리()가 되었으며 바닷가 마을로, 서쪽은 만입부로 바닷물이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다.

 

자연마을에는 성()안, 풀무골, 풍구재가 있는데 성안은 과거에 이 지역이 성터의 안쪽이라 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며, 현재는 성터와 동문만이 남아있다. 풀무골은 성의 동쪽에 위치하였는데 과거에 무기를 만들기 위해

풀무질을 하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풍구재는 싸움에서 승리를 하였거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풍악을 울려 풍류놀이를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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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근리에는 조선 태종 시절에 소근진(鎭) 설치했던 진영()이 있었는데 태안군에서 최초로 설치된 진이다.

소근진은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수군이 주둔했던 군항으로 좌도 수군 첨절제사영(使)으로

19세기 말엽의 기록에 의하면 첨절제사(使) 1명, 첨사무종3품(使)1명, 방졸()41명,

선창대장()1명, 지고관()1명, 기패관()10명, 교사()2명, 훈도()2명, 포도관()4명,

군졸()303명을 두었으며, 전선()1척, 방선()1척, 병선()1척, 사후선()3척 가량의 병력이

배치되었고 이곳을 후근리 포구라고 불렀다.

 

1467년(세조13년)이 후근이포를 소근진으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1514년(중종9년)에는

돌로 성을 쌓아 군대를 주둔 시켰으며 태안 부근의 해로(海路)는 옛부터 군사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아야 했으며, 조정으로 올라가는 조운선(漕運船:물건을 실어나르는 배)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후기에는 이곳에 경제적 목적으로 수군(水軍)을 주둔시켰다고 한다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왜구의 침입은 무려 470여회나 달했다.

왜구들은 적게는 20여척, 많게는100여척의 군단을 이루어 침략을 자행했으며 그로 인해  조선초부터

60여년간 조운선의 피해는 선박 200여척, 인명 1,200여명, 미곡 15,800여석의 피해를 보았다.

이에 소근진은 그 시절 국토방위의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요새가 되었다.

 

지금은 방파제를 쌓아 바다가 많이 막혔지만 그 시절에는 산들로 둘러쌓인 천연의 요새였다.

산성에서 올라 내려다보면 주변의 바다가 한 눈에 보이며 멀리 서해로 지나가는 배들의

상황을 알 수 있으며 바다에서는 소근진 성이 보이지 않으며 들어오는 입구는 좁은 수로로 진지로는

최적의 장소이다...긴 세월을 지킨 소근진성은 동학농민 혁명때 소실되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안흥성보다 140여년 먼저 세워진 성이라고 한다.

153.9m봉(10:38)

희미한 등로로 내려섰다가...

쓰러진 나무들의 저항을 받으며...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그저 밋밋한 141m봉에 도착한다

141m봉(10:47)

내리막길에 만난 시그널

자그만한 무명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낙엽이 수북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 능선에서 내려오는 넓은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니...

파란색 양철지붕이 산꾼을 가로 막는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올라야 할 방공산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큰터골(10:58)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에 있는 마을로 대기(基) 마을은 큰 터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대기1리 버스정류장과 마을회관과 민가들이 보인다.

이곳부터는 분기봉부터 좌측으로 쭉 같이 걸어온 소원면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좌.우가 온전히 태안군 원북면으로 들어선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전원주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면 힘들이지 않고 다룡고개까지 갈 수가 있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좌측에는 한국 어린이 경찰대라는 건물이 보인다

전원주택 뒷쪽으로 올라선다

101.3m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원북면 대기리(大基里)의 모습

대기리는 본래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의 관할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북이도면의

대기리(), 대정리(), 석우리(), 소정리(), 신안리(), 신사리(),

안파리()와 북일면의 월은리(), 보정리()를 병합, 원북면에 편입시킴으로써 그대로

대기리가 되었으며 성대산이 마을 북쪽에 있어 외곽은 산지이며, 마을 중심부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대기, 대정, 도모루, 잿말 마을 등이 있다. 대기 마을은 큰 터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대정 마을은 큰 샘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돌모루 마을은 모롱이에 돌이 많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잿말 마을은 큰터골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빡세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101.3m봉(방공산)에 도착한다

방공산(101.3m:11:10)

태안군 원북면 동해리와 대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지도상에는

101.3m라고만 표기가 되어 있는데, 산꾼들의 지도에는 방공산이라는 표기도 보인다

근데 이 분은 한술 더뜨서 안보산이란 지명을 하나 더 붙혀놨다. 

직진의 능선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79m봉(11:18)

독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곳이다...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 아랫쪽으로 꺽어진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능선에서 내려오니 밭이 나오고 마을로 내려서는데 원북면 동해리 안파골 마을이다

원북면 동해리(東海里)는 본래 북이도면의 관할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해리(), 

거로리(), 원동리()를 통합시켜 원북면에 편입시키면서 그대로 동해리가 되었다.

마을 북동쪽에는 성대산이, 서쪽에는 불당산이 있으며, 중심부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인 마을이다.

동쪽이 서해와 접하며 자연 마을로는 거로골, 고재나뭇골, 당꾸지, 큰말 마을 등이 있다.

거로골 마을은 예전부터 장수하는 노인이 많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고재나뭇골 마을은

고재나무(자작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당꾸지 마을은 신당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큰말 마을은 동해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다룡고개(11:23)

원북면 동해리와 대기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곳에 있는 마을 이름이 동해리 안파골이다

민가 뒷쪽이 지맥길이나 등로가 험해서 밭으로 가서 시멘트 도로로 들어선다

편안한 비포장 도로에 들어선다

트랙터 한대가 방치된 채 썩고 있다...비쌀텐데

임도로 올라서니 선두로 간 동료산꾼들이 점심식사를 끝내고 떠널 채비를 하고 있다.

꼴찌로 도착한 나와 조여사님도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다

선두는 진작에 가버리고 둘이서 여유롭게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식사를 끝내고 임도를 따라서 올라오니 묘지가 보인다

원주변씨 묘(11:50)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통봉산(106.9m:11:55)

태안군 원북면 대기리와 동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곳 역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지명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유래가 있을터인데 태안군 그 어느곳에도 자료가 없다

통봉산을 지나자마자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안부(11:57)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커다란 벌목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벌목 후에 편백나무를 새로 심어놨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한참동안 걸은 다음에 능선에 올라서니 111.4봉이 나온다

111.4m봉(12:09)

이 분은 111.4m봉을 사기점봉이라 붙어놨는데 영 믿음이 안간다.

이곳에서 좌측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1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사기점재이다

사기점재(沙器店:12:14)

태안군 원북면 사무소에서 동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사기그릇

파는 곳이 있었다 하여 사기점재라 부르는데 실제 사기점은 이곳에서 동해리

쪽으로 더 내려가면 사기점 마을이 있는데 아마도 그 지명을 따온듯 하다

고개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능선으로 오르는데 개고생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에 올라오니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희미한 등로에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승주산(165.6m:12:35)

태안군 원북면 동해리와 반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의 1/50,000지도에는

이곳을 승주산이라 적혀있고, 1/25,000의 지도에는 이곳의 우측에 있는 146봉을 승주산이라 했다

또 이곳에서 좌측으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성대산()을 현지 주민들은 성주산()이라

부르고 있기에 이곳을 처음온 맥 산꾼들은 상당히 헷갈린다 .

좌측은  성대산(148.4m), 불당산,국사봉으로 해서 학암포 해수욕장으로가는 능선이고  지맥은 우측으로 간다

승주산에서 내려서니...

벌목지가 나오는데 이곳에도 기존의 나무를 벌목하고 편백나무를 조림해놨다.

조림지 너머로 원북면 면소재지가 보인다

충남 태안군에 북서쪽에 위치한 원북면(面)은 동쪽에는 가로림만이 있고, 서쪽에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이 있다.

서쪽 해안에는 학암포 해수욕장 · 신두리해수욕장이 있으며 현재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원북면은 1914년 원이면()과 북이면()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면 이름은 양쪽 면에서

첫 글자를 따서 명명되었으며 당시는 서산군과의 합병에 따라 서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동리 지명은 행정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이 합해져서 단순히 조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 동해리()는 조선 시대의 동해막리()에서 유래하였다. 동해라는 지명은

소근진에서 보았을 때 동해막리가 정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지의 주민들은 동해막리를 '동해매기'라고 한다. 현대 지도에는 '동해맥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모두 발음이 와전된 것으로 동해매기는 지금의 충원저수지를 따라 소근진 안쪽으로 5㎞쯤 깊숙이 들어간

내륙인데 예전에는 해만()으로서 그곳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그곳에 어막()을 짓고 어구들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바닷가에 어막을 짓고

생활을 영위하여 왔으므로 그곳을 '동해막리'라 하였다고 한다. 『여지도서』북이도면에 "동해막리는

읍치에서 북쪽으로 20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33호, 남자 56명, 여자 51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산리()는 다른 마을에 비하여 산이 많은데, 마을이 푸른 산 밑에 자리하여 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장대리()는 군사지휘에 사용하던 장대 밑에 해당하므로 장대 또는

장대문이라 명명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갈림길(12:40)

우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벌목지로 내려와서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다

NO35 송전탑(12:42)

안부(12:45)

아무도 찾지않은 벤취만 산꾼 범여를 반긴다

오늘은 미세 먼지가 너무 심해서 산행을 하면서도 숨을 쉬기가 힘이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안경에 끼는 불편함 때문에 마스크를 낄 수도 없고, 이 지역에 있는 태안화력

발전소의 문제인지, 아니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 먼지 탓인가?

 

 요즘 청와대나 고위 공직자들이 자주 인용하고 있는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문구

“춘풍추상(春風秋霜)”이다... 얼마전에 취임한 노영민 비서실장도 취임사에서 얘기했고,

문무일 검찰총장도 인사 청문회에서 그의 좌우명으로 소개했던 글인데 난 청와대에

가보지 않았지만 청와대 비서실마다 액자에 이 문구가 걸려 있다고 한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 <춘풍추상>이라는 말의 ‘춘풍(春風)’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고,

 ‘추상(秋霜)’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엄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원문을 보면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으로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春風)처럼 부드럽고 너그럽게 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남의 과오는 마땅히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너그럽고 두터운 사람은 봄바람이 만물을 따뜻하게 기르는 것과 같고, 모든 생령(生靈)이

봄바람을 만나면 살아나며, 생각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람은 찬 서리에 모든 것을 얼게 함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곧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액자에 걸려 있다는 “春風秋霜”의 실천에 대해 별로 믿음이 안 간다.

미세먼지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문통이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미세먼지 30% 줄이겠다고

했으면서 국민의 67%가 반대하는 탈원전을 밀어 부치고,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중국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이 아닌가.

 

국민한테는 봄바람처럼 너그럽고 공직자들에게는 추상같이 엄하게 하겠다는 다짐...

우매한 범여에겐 청와대의 다짐이 내로남불처럼 들리니 비단 범여만의 생각일까.

산에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산 아래의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들까

108m봉(12:50)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길

95m봉(12:56)

갈림길(12:56)

갈림길에는 아무도 찾지않은 의자에 낙엽이 수북하고 우측으로 녹슨 TV 안테나가 보인다.

직진의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원북고개(13:00)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 ‘태안화력발전소 11.7km’ 표시석이 있는

삼거리로 634번 지방도가 지나가면 좌측은 태안화력 발전소와 학암포 해수욕장가는

길이고 우측은 원북면소재지가 있는 반계리와 태안읍내로 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가서 이동통신탑으로 가는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다

이동통신 중계기지(13:05)

규모가 큰 이동통신 통신탑이 보이고...

통신탑 철조망 옆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3:10)

등로는 뚜렸하다

내리막 등로 우측 아래에 건물이 보인다

은혜 요양원로 내려선다

경고 문구가 은혜롭지 못하고 좀 과격하네요

은혜 요양원(13:16)

자녀들이 일요일이라 면회온 듯한 차량들은 보이나 요양원 안에는 적막강산처럼 조용하다

은혜요양원은 원북면 반계리에서 원북면사무소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요양원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며 반계리쪽은 내리막길이다...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원북면 반계리(里)는 본래 북이도면, 원이도면의 관할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계리(), 상이리(), 상리(, ), 정포리() 그리고 반계리()를 통합,

원북면에 편입시키면서 그대로 반계리가 되었다. 대부분의 지대가 구릉성 지형으로, 마을 곳곳에 산이 있다.

동쪽은 서해와 접해 있고 자연 마을로는 닻개, 방죽안, 상리 마을 등이 있다. 닻개 마을은 마을 앞이 큰 포구였는데,

배의 출입이 많은 정박지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방죽안 마을은 큰 방죽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상리 마을은 반계리 위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잡목지대를 치고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폐축사가 나온다

폐축사(13:30)

망해버린 폐축사를 지나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119.8m봉(13:35)

119.8m봉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3:40)

폐축사에서부터 같이해 온 넓은 임도를 버리고 잡목지대로 올라선다

반갑습니다...오늘 자주 보이는데 이쪽이 나와바리 구역인가봐요

망월산(望月山:148.6m:13:50)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와 마산리 이원면 상창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잡목만 무성한 밋밋한 산이다.

충청남도 지자체들은 지명유래 설명은 상당히 인색한 모양이다...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범여의 생각으론 산에서 바라보는 달빛이 좋다 하여 붙인 지명이 아닐까?
근데 이곳은 산도 낮은데 잡목이 무성하여 그것도 아닌듯 싶고...헷갈린다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흔적들

망월산 정상 4등 삼각점(△431재설 / 76.10건설부)

다시 내리막길...그리고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

149.3m봉(13:55)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좋은 편이다

NO33송전탑(13:58)

안부로 내려가서 다시 오르막길

118m봉(14:05)

벌목지를 지나고...

장자골 고개(14:08)

태안군 원북면 마산리와 이원면 사창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임도 삼거리에 마산리와 사창리가는 이정표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 좌측에 장작골에서 따온듯 하다 

장자골 고개에 있는 이정표

좌측 윗쪽 능선이 맥길이나 그냥 임도를 따라서 간다

묘지로 가는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갈림길(14:15)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계속되는 오르막길

126.7m봉(14:25)

등로에서 바라본 태안군 이원면 이곡리 장작골의 모습

이원면 이곡리(里)는 본래 태안군 북이도면의 관할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연곡리(),

송곡리() 그리고 산이리()가 합쳐져 원북면에 편입되면서 이곡리()가 되었다.

지명은 산이리의 이()자와 연곡리의 곡()자를 합친 것이다.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로, 북쪽에는 바다가

내륙으로 많이 들어와있는 만입부이며 죽도라는 섬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잿말이 있다.

잿말은 간척사업이 실시되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마을로서, 전설에 의하면 차돌이 부서져 재로

변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현재는 간척사업이 상당히 진척되었으며, 두 개의 구로 나뉘어 있다

NO23송전탑(14:30)

송전탑을 지나 양지바른 곳에서 우유와 떡 하나를 먹으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146.2m봉(14:50)

편안한 사면길을 버리고 잡목을 헤치고 봉우리로 올라선다.

이 분은 또 사창봉이란 작명으로 146.2m봉의 지명을 붙혀놨다.

하긴 이 봉우리 아래의 마을 이름이 이원면 사창리이니까.

편안한 사면길을 무심코 가다가 보면 놓칠 우려도 있다. 

잡목을 헤치고 편안한 사면길 등로로 내려온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

뭔 심사가 저리도 뒤틀렸을까?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126.5m봉(15:00)

126.5m봉을 지도상에는 둥근봉이라 해놨는데 정식 지명이 아닌지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아무런 표식도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만 몇개 걸려 있을 뿐이다

우측의 흼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멎진 소나무 몇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지독한 잡목지대를 치고 내려간다.

묘지(15:07)

잡목의 저항이 심하고 급경사의 절개지라 상당히 위험하다.

맥길을 포기하고 우측으로 편안한 임도로 향한다

임도로 내려서니 옛 603지방도가 보이고 이 길을 따라서 좌측으로 향한다

태안군 원북면에서 이원면으로 넘어가는 사직재(사창고개)의 새 도로가 보인다.

이렇게 깊이 팔 것이면 터널로 연결할 것이지 이게 뭔 짓거리란 말인가. 

도로로 짤려버린 지맥길을 잇기 위해 좌측으로 향한다

옛 도로를 따라서 이원면쪽으로 내려가니...

지극히 당연한 말을 표시석으로 해놨다.

사직(辭職)고개(15:15)

태안군 이원면 포지리와 사창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사창고개라고도 부른다.

둥근봉(126.5m)과 바구니산(156.8m) 사이에 있는데 포지리 외포동에서 사창리로 넘어가는 곳이다.

 

고개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한 공무원의 일화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전한다.

 "50~60년 전의 일인데 이원면사무소에 처음 발령을 받은 한 공무원이 태안에서 걸어서 그곳으로 갔다.

가는 길 중간에 그는 원북 장터에서 상인에게 '나는 태안에서 이원면사무소에 가는 중인데 얼마쯤

더 가면 됩니까?'하고 물었더니 상인이 말하기를, '반쯤 왔는데 앞으로 남은 길은 왔던 길보다 험하기

때문에 좀 힘들 겁니다'하는 것이었다. 얼마쯤 걷다가 행인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서 이원면사무소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예 10리쯤 남았습니다.' 그는 다시 걸었다.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 마침내 고개(당시에는 '말새기재'라고 하였음)에 이르렀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발은 물집이 잡혀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고개에서 쉬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행인 한 사람이 오르고 있었다.

그도 지친 듯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에서 쉬는 것이었다.

이때 부임차 임지로 가던 공무원은 행인에게 '이원면사무소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하고

다시 물으니, '앞으로 10리쯤 더 가야 합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래 걸었기 때문에 20리는 충분히 온 것 같은데 또 10여 리가 남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도 가도 10리 길이라더니 짜증이 났다. 그는 이 '말새기재'에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사직서를

써가지고 임지로 돌아갔다."고 한다. 고개 이름은 이런 사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사직고개 이전의 '말새기재'도 같은 맥락에서 유래하였다. 내용의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 중기 때 수원에 살고 있던 김 선비라는 사람이 분줄에 살고 있는 친구 부친의 문상을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이 길을 지났다. 여름철에 무더위를 참으면서 이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지친 김 선비가 말에게

풀을 뜯게 하고 자신은 누워 있었다. 잠시 땀을 식힌 김 선비는 다시 길을 떠나려고 말의 고삐를 잡고

재촉하였으나 말은 풀만 새기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일이 있는 뒤부터 이 고개에서 '말이 풀만

새기고 주인의 말은 듣지 않았다'고 하여 말새기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들어선다

순흥안공 묘(15:18)

지맥길에 복귀한다

104.3m봉(15:25)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116.6m봉(15:34)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산으로님...자주 만나네요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바구니산 정상에 올라선다

바구니산(156.8m:15:45)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와 포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다.

이 산 역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태안 지방의 지자체들의 역사와 문화 의식수준 알 만하다

혹 산의 지형이 바구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른것이 아닐까(범여의 생각中에서)

바구니산 정상 삼각점(△서산 428 / 1999복구)

인증샷

바구니산에서 바라본 다음 구간에 가야할 가재산의 모습

날머리 가는 길에서 바라본 미세먼지가 자욱한 가로림만의 모습

날머리 가는 길

드디어 내가 타고온 버스를 바라보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선두와의 시간 차이가 많아서 일찍 내려오신 분들이 지루하고 짜증이

날만도 할터인데 싫은 내색하지 않고 기다려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들 복받을깁니다 

불무골 도로(15:55)

태안군 이원면사무소에서 당산리 불무골로 넘어가는 1차선 도로이다.

고개 우측 아래에 있는 불무골 마을은 불뭇간이 있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가재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잘되어 있고 등산객들이 다니는지 쉼터용 벤취들도 보인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원북면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삼겹살로 맛있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데 미세먼지가 얼마나 지독한지 숨을 쉬기가 힘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