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01월 20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차갑고 강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8.3 km + 어프로치 2.2km / 8시간 05분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일요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불무골 도로-갈림길-쉼터-가재산-173m봉-159m봉-면사무소 갈림길-안부-무명봉
안부-국사봉-안부-192m봉-당하마을 갈림길-190.8m봉-국사봉 이정표-양개고개
솔향기길 표지판-무명봉-노인봉-갈림길-안부-82m봉-밀양손공 묘-무명봉-창말고개
밀양손공 묘-안부-95.5m봉-누리재-91.6m봉-일출봉-후망산-사목재-60.5m봉-사목고개
사목마을 입구-장문고개-98.3m봉 갈림길-안부-갈림길-88.8m봉-꾸지나무골 가는길
무명봉-이동통신탑-94.4m봉-산제산 가는길-산제산-84m봉-임도 합류점-96.5m봉
남산고개-97.9m봉-후망산-93.2m봉-82m봉-용난골 가는길-45.8m봉-안부-무명봉-안부
돌앙뗑이-전망대-안부-69.8m봉-큰봉-염전마을 가는길-묘지-칼바위-근육골 해변 안부
36.8m봉-샘너머 안부-회목쟁이-당봉-갈림길-화장실-무명봉-붉은앙뗑이-60.2m봉
헬기장-1606부대 입구-입성끝 전망대
☞ 소 재 지: 충남 태안군 이원면
요즘 여당의 모 여성 국회의원이 목포에 도시재생 사업을 한답시고 20채가 넘는 부동산을 사들인 문제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나 같은 민초가 보기엔 딴 나라의 얘기같고 서민들은 늘 이방인 같은 존재이다.
얼마전에는 예천군 군의원들이 캐나다 연수를 간다고 하여 가이드 폭행 등 각종 일탈행위로
국제적 망신을 사질 않나...정치인들의 자질은 양아치 보다도 못하다는 말인가
국회의원을 없애버리든지 해야지...원, 국민들의 걱정을 들어주고 민초들의 머슴이 되겠다던 자들이
당선만 되면 민초들에게 군림이나 하려고 드니...당신네들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운지 알기나 하는가
제발 좀 정신 좀 차리소...우리같은 자영업자들은 요즘엔 정말 죽을 맛이요.
오늘은 이원(후망)지맥을 끝내기 위해 이른 아침에 버스 탑승 장소인 양재역으로 향하는데
주중에 여러가지 잔무들이 많아 상당히 피곤하여 쉴까도 생각봤지만 그것이 내 의지대로
되질 않으니...지난주 첫 구간을 걸을 때 미세 먼지로 인해 상당히 고생했는데 오늘은
어찌될지 고민도 되고, 버스를 타고 잠깐 잠이든 사이에 버스는 서산 시내를 지나고 있다.
다행히 미세먼지는 전혀 없고 날씨는 쾌청하나 아침부터 차가운 바람이 상당히 거세다.
그러는 사이에 12명을 태운 미니버스는 오늘의 들머리인 불무골 도로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오늘의 들머리에 버스가 도착하는데 날씨가 생각보다 훨씬 춥다.
지난해 큰 수술 이후에 옷을 두껍게 입었건먼만 이상하리만큼 몸뚱아리가 추위를 많이 탄다.
안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베낭을 정리하며 산행을 준비한다
불무골 도로(09:20)
태안군 이원면사무소에서 당산리 불무골로 넘어가는 1차선 도로로 가재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고개 우측 아래에 있는 불무골 마을은 불뭇간이 있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25)
버스가 늦게 도착한 탓인지 사진 한컷 찍는 사이에 마음 급한 동료 산꾼들은 서둘러 도망(?)을 간다
늘상 그러듯이 오늘도 남미로 한달간 여행을 간 산동네님이 없어서 꼴찌는 나와 조여사님이다
오르막길에 162지맥을 마치시고 요즘은 野性을 잃어버려 동네산꾼(?)이 돼버린 산으로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감사합니다...초반에 오름길이라 참으로 힘이 드네요
초반부터 잡목의 태클이 심하다.
갈림길(09:30)
급경사의 등로로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데크목을 깔아논 편안안 등로를 만난다.
갈림길에서부터 가재산으로 가는 길은 꽃길이다
쉼터(09:31)
암릉 좌측 아래로 지나간다
가재산(185.2m:09:34)
태안군 이원면 포지리와 당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원면소재지와 가까워서 그런지 산행하는 등산객도 있고,
등로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나무로 만든 정상석이 산꾼을 반기는데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대산(鰲大山)이라고도 부르며 산의 형세가 가재 모양과 같다고 하여 가재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적산의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내려 이루어졌으며, 이적산에서 뻗은 국사봉, 노인봉, 파금산 등과 인접해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로림만의 아름다운 경관과 가재산에서 피어 오르는 아침, 저녁 너울과 아지랑이는
이원면 8경중에 제1경인 오산연무(鰲山煙霧)로 가재산을 바라보는 경관이야 말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미경(美景)이다
인증샷
동료산꾼들은 엄청난 속도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173m봉(09:40)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나무 계단의 내리막길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오른다
159m봉(09:45)
제도권 등로인지 길은 좋다
면사무소 갈림길(09:48)
이정표(↑면사무소 1.0km, →국사봉 1.0km)와 벤취가 있는데 면사무소란 이원면사무소를 말한다
이원면(梨園面)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는데, 동쪽은 가로림만이고 북서쪽은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현재 5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조선 시대의 북일도면(北一導面) · 북이도면(北二導面) · 원이도면(遠二導面) 지역이었다.
북일도면은 다시 북이면(北二面)으로, 북이도면은 북이면(北二面)으로, 원이도면은
원이면(遠二面)으로 각각 바뀌었으며 1914년 태안군과 서산군이 합병할 때 서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27년 북이면(北梨面)과 원이면(遠二面)에서 한 글자씩 조합하여 이원면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명 변경 과정에서 원이면의 원(遠)이 원(園)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동리 지명은 1914년에 둘이나 그 이상의 마을 이름을 단순히 조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 관리(官里)는 조선 시대의 관동리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곳에 관사가 있어서 일찍부터 관사골 ·
관골 · 관동으로 불리었는데, 이 자연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여지도서』북일도면에 "관동리(官洞里)는
읍치에서 북쪽으로 40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40호, 남자 58명, 여자 62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련 지명으로 관동분교가 있다. 사창리(社倉里)는 조선 시대 때 이곳에 사창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관련 지명으로 사창저수지가 있다. 『여지도서』의 북일도면에 "읍치에서 북쪽으로 20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32호, 남자 56명, 여자 58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할 국사봉이 보이고...
등로 우측의 가로림만에는 밤섬이 보인다
안부(09:54)
본격적으로 잡목의 저항이 시작된다
우측으로 편안한 임도가 있지만 능선으로 치고 올라선다
무명봉(09:57)
무명봉에서 바라본 태안화력발전소
다시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잠시 후 안부를 만난다.
안부09:58)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 당하마을에서 밤섬(栗島) 넘어가는 곳으로 망가진 이정표가 서 있다
안부 이정표
등로에서 바라본 당하 마을과 태안화력 발전소의 모습
이원면 당산리에 있는 당하(堂下)마을은 마을 뒷산에 신당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란다
안부에서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
들머리부터 여기까진 잠깐을 제외하곤 꽃길을 걸어 왔는데 슬슬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쉼터도 보이고...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율도(밤섬)이 보이는데 섬이 밤처럼 생겨서 밤섬이라 부르나?
아니면 밤나무가 많아서 밤섬으로 부르는가?...국사봉으로 올라선다
국사봉 정상의 이정표
국사봉(國祠峰:205.6m:10:15)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에 있는 국사봉은 서쪽 기슭에 민초들의 안녕을 비는 국사당(國祠堂)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하며, 국사당이 있는 당산리(堂山里)는 본래 태안군 이원면의 관할 지역으로,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활곡리(活谷里), 야곡리(冶谷里), 당하리(棠下里), 청산리(靑 山里)
그리고 마방리(馬防里) 일부를 병합하여 당산리(棠山里)가 되었다.
지명은 당하리의 당(棠)자와 청산리의 산(山)자를 합친 것으로 마을 동쪽이 서해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작은 구릉성 산지가 분포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갓골, 개건너, 당하, 불뭇골 마을 등이 있다.
갓골 마을은 웅덩이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개건너 마을은 해벌 남쪽 개
건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당하 마을은 뒷산에 신당이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불뭇골 마을은 불뭇간이 있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국사봉이나 국수봉은 대개 마을 뒤쪽에 있는 높은 산으로, 꼭대기에 마을을 수호하는 국사당이라는
신을 모시는 당이 있던 산으로. ‘국사(國師), 국수(國守)’는 한자로 취음 표기된 문헌상 기록으로 특별한
뜻이 있지 않으며 어원은 구수봉이다. 구수(龜首)는 향찰어로 ‘구(龜)’가 향찰어 음차 ‘검’, ‘신’으로 읽었음과
‘수(首)’ 향찰어 음차 ‘마루’로 읽어 순국어음으로 거북의 머리가 아니라 ‘신(神)마루’를 의미이다.
따라서 국사봉, 국수봉은 ‘당금’, ‘당그미’로 어미 -금 -그미는 짐, 검, 곰, 금 등 신을 가리키는 말로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고 천신이 하강하는 신산(神山)마루라고 할 수 있다.
신산마루는 천상신이 하강한 태백산정, 가야국 시조가 강림한 ‘가락구기’의 구지봉, 신라 육촌장이 하강한
산정(山頂)을 말하지만 전국에 걸쳐 믿어졌던 전통적인 마을 신앙의 한 갈래인 국사당은 점차 사라지고
일부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당은 국사당신을 직접 신체로 봉안하지는 않고, 산꼭대기에 석반단(石盤壇)을
가운데 두고 잡석을 쌓아 두른 돌담 안에 신수(神樹)를 둔 형태다.
오늘날에는 특히 제단나 제당이 없이 ‘국수봉’이나 ‘국사봉’이라는 산 이름만 남아 있다.
이런 국사당은 현재는 대부분 사라져 중서부 해안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며,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는
그 자취를 산 이름에서나 가끔 찾아볼 수 있다. 관북과 관서 지방에서는 국사당이 신수와 누석단 형태로
서낭당 신앙에 흡수되어, 그 신당의 명칭만 남아 있는 형태로 이들 산에 전해오고 있다.
국사봉 정상 2등 삼각점(△서산 25 / 1995복구)
국사봉에 잠깐 서 있는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잡초가 무성한 나무 계단을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20)
192m봉(10:23)
다시 약간의 내리막길로 걸어가는데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당하마을 갈림길(10:30)
190.8m봉(10:33)
서래야님은 이곳 좌측 아래에 있는 당산리 장골마을 지명을 따 장골봉이라는 지명을 붙혀놨다.
국사봉 이정표(10:35)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나무계단이 나온다
소나무숲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뚜렸한 임도를 지나니...
벌목지가 나오고 가야할 등로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 양개마을과 가로림만
양개고개(10:44)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 양개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로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비포장 사거리다.
고개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가재산, 국사봉의 등산 안내판이 서 있다.
뒤돌아 본 양개고개의 모습
등로에서 바라본 가로림만(加露林灣)
가로림만(加露林灣)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북서부 해안에 있는 만으로 서쪽은 태안군 태안읍 ·원북면·
이원면으로, 동쪽은 서산시 팔봉면·지곡면· 대산읍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만의 입구가 북쪽으로 열려 있다.
만내에는 고파도· 웅도 등 규모가 큰 유인도와 율도· 피도 · 조도 · 대우도 등 규모가 작은 무인도가 있다.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지명을 볼 수 있다. 그 지도에 해안선의 드나듦이 매우 복잡하고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현대지도에는 만의 곳곳에 농경지와 염전이 조성되어 해안선이
많이 단조로워졌으며 육지에 가까운 작은 섬들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로림만 너머로 대산(망일)지맥 첫구간에 자주 만났던 서산 팔봉산이 아련히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태안절경 천삼백리 이정표가 나온다
태안절경 천삼백리 표지판(10:50)
이 구간은 솔향기길 3코스로 밤섬 나루터 3.2km→ 볏가리마을 홍보관 1.8km 이정표가 있다
태안 솔향기길은 통상 4코스로 구분하는데
제1코스는 만대항-당봉전망대-여섬-꾸지나무골 해수욕장 코스로 약 10.2km,
제2코스는 꾸지나무골-가로림만-볏가리마을-희망벽화 코스로 9.9km,
제3코스는 볏가리마을-당산 임도-밤섬나루터-새섬리조트 코스로 9.5km,
제4코스는 새섬리조트-호안 임도-청산포구-갈두천(풍천교회) 코스로 12.9km 등이다.
코스안내판과 코스 중간 이정표에는 '태안절경 천삼백리 솔향기길'이라 쓰여 있다.
솔향기길 전체길이가 천삼백리에 이른다는 뜻인가?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간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엄청난 잡목으로 인해 임도를 따를걸 사서 개고생을 한다
무명봉(10:53)
잡목을 헤치고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솔향기길을 만난다.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다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만만찮다... 힘들게 올라서 노인봉을 만난다.
노인봉(老人峰:164.9m:11:00)
태안군 이원면 당산리와 관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저 밋밋하다.
지명에 대한 유래는 알 길도 없고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우측의 벌목지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 노인봉을 지나면서부터 2구간 시작부터 같이해 온 당산리와 작별을 하고 관리(官里)로 접어든다
이곳은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이곳은 기존의 수목을 벌목을 한 다음에 편백나무를 식재해놨다
우측 너머로 2주전에 걸었던 대산(망일)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갈림길(11:10)
벌목지 능선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의 저항을 뚫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선다
안부(11:13)
다시 힘겨운 잡목과의 전쟁
해송(海松)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벌목지가 나온다
82m봉(11:17)
다시 벌목지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우측으로 창촌 저수지가 보인다
벌목지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지나가신 지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벌목지를 지나...
소나무 터널을 빠져 나오니 부인을 2명이나 두어 생전에 女福이 많으셨던 밀양손공 묘가 나온다
밀양손공 묘(11:25)
묘지를 나오니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태안군 이원면 관리와 음포 해수욕장의 모습
태안군 이원면에 있는 관리(官里)는 본래 북일도면, 원이면의 관할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외동리(外泂里)와 마방리(馬防里)의 일부를 병합, 이원면에 편입시켜 관리(官里)가 되었다.
지명은 과거에 마을이 원이면의 소재지로 관사골, 관골, 관동 등으로 불리던 것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마을 동부와 서부는 서해와 접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관동, 창말, 범적굴 마을 등이 있다. 관동 마을은 전에 관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창말 마을은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범적굴 마을은 호랑이와 같은
지형의 골짜기에 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이원면 관리에 있는 음포해수욕장은 1990년에 개장했으며 옛날에 인간들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 있던 곳이라 해서 음포란 이름이 붙었으며 태안반도 북쪽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아직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그 만큼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폭 200m, 길이 800m 크기의 백사장에는 고운 모래가 펼쳐져 있으며 주변에는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크진 않으나 아담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해수욕장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묘지 뒷쪽을 지나 내려서서...
밭 가운데를 통과한다
우측 아랫쪽으로 창촌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가로림만에 있는 고파도가 보인다
해송 조림지 가운데로 지맥길은 이어지고...
웬 지게?
우측 아래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무명봉(11:33)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창말고개(11:35)
태안군 이원면 관리 관동마을에서 창말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고개 우측 아래로는
창촌 저수지와 창말마을, 그리고 그 너머로 가로림만에 있는 고파도가 뚜렸하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창말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선시대 때 창고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고개로 올라서니 마늘밭이 많이 보인다
이곳 서산과 태안지역에는 육쪽마늘 재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마늘밭에서 바라본 이원면 관리 관동마을의 모습
관동 마을은 예전에 관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마늘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밀양손공 묘(11:43)
이 지역에는 밀양손씨들이 많이 사는 모양이다
안부(11:44)
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고...
능선에 올라서서 약간 좌측으로 꺽어진다
갑자기 등로는 좋아지고...
95.5m봉(11:54)
벌목을 하느라 산은 마구 파헤처져 있고 지금도 나무 자르는 소리가 무쟈게 시끄럽다
벌목지 너머로 태안화력 발전소와 음포해수욕장, 갯벌염전 체험장이 보인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엄청 차갑다...
앞에는 후망산이 보이고 벌목지 아래에서는 선두로 간 동료산꾼들이
식사를 끝내고 출발중이고, 진권아우만 남아서 행님을 기다리고 있다
점심식사(11:55~12:15)
동료산꾼들은 진작에 가버리고 진권아우만이 느린 행님을 기다리며 떡라면을 끓이고 있다.
늘 행님을 챙겨주는 아우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3월이면 히말리야 로체로 떠나는데 올 때가지 어떻게 기다리지...
누리재(12:20)
태안군 이원면 관리와 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원에서 만대항으로 이어지는
603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눈이재라고 하는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고개정상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사목마을 안내판과 폔션 간판들이 보인다
고개를 가로질러 벌목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너머로 망일산과 바로 앞에는 소우도, 대우도,저도와 웅도가 보인다.
91.6m봉(12:28)
91.6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소나무숲 사이로 좋은 등로를 따라서 후망산으로 향한다
전통적인 육산(陸山)인 후망지맥길에 앙증맞은 바위가 귀엽기만 하다.
일출봉(日出峰:12:40)
후망산 오르는 길에 ‘사목마을 일출봉’ 표지판이 있는데 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대부분 일출이 볼 수 있는 곳은 전망이 톡 튀어 있는 곳인데 나무가 우거진 곳에 일출봉이라니...
후망산(候望山:145.3m:12:42)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팔각정과 3등 삼각점이 있다.
팔각정 아래쪽에 갈림길이 있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좌측으로는 사목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인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지맥길은 모세골 방향인 직진으로 내려서면 잡풀에 갇힌 나무 계단이 있다.
후망지맥길에는 이곳 말고도 조금 더 가면 또다른 후망산이 있지만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태안군은 지역의 지명유래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여 아쉽기만 하다.
국어 사전에 ‘후망(堠望 )’ 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살피며 경계함’이라고
나오는데 아마 망을 보는 산이라서 후망산이라 부르는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후망산 정상 3등 삼각점(△307재설 / 76.10 건설부)
후망산을 내려오면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좌측으로는 사목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인데 그쪽으로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다
후망산을 내려오니 운동시설과 쉼터가 있으나...
망가지고...
관리가 안되고...
민초들이 피땀흘려 번 돈인 세금이 줄줄 세고 있다
공무원 나리들! 자기돈으로 사업을 한다면 저렇게 계획없이 할까?
사목재((沙項峙:12:52)
후망산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사목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길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만대항으로 이어지는 603번 도로가 사목고개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원래 이곳이 사목재인듯 하다...예전에 民草들이 넘었던 哀歡이 서린 고개
지금은 아무도 찾지않은 잊혀진 고개인 듯 하다
사목재를 지나면서 편안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60.5m봉(12:57)
좌측으로 내려 가는데...
얼굴이 할키고 모자는 나무에 걸리고 그야말로 고역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로로 내려선다
사목고개(13:00)
만대항에서 태안으로 나가는 유일한 도로인 603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 지금의 사목고개이다
이곳부터 장문고개까지는 도로가 지맥길이라 한 동안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고개 우측에는 힐링하우스라는 폔션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좌측으로 사목마을과 해수욕장이 나오고 입구에는 민박집 간판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사목(沙項) 마을 입구(13:03)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있는 사목마을 입구에는 사목여항비(閭巷碑)와 사목공원 캠핑장 간판이 있다
지금은 해안이 오랜 세월 퇴적되어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서해안의 넓은
백사장이었는데 마을 안을 흐르는 하천 물이 이 백사장을 관통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목이
되었다 하여 이름이 ‘모래 사(沙) 목덜미 항(項)’이 되었다
사목여항비(閭巷碑) 뒷면에 기록된 사목의 유래
이 마을은 이원면 내리에 있는데 옛날부터 세가지 의미가 담긴 전설과 실화가 있어
사목(沙項), 사목(司牧), 사목(巳目) 등으 로 표현되고 있다.
첫째, 사목(沙項)은 한자와 우리말의 합성어로 대자연의 형태를 상징함인데, 이마을의 지형은 양쪽바다
서해 와 가로림만 사이에 끼여있어 폭은 좁고 길어 태고적을 거슬러 연상해 볼때 100여미터에 불과한
장고목 같이 잘록지고 양쪽바다 가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 전래된 것이라 하며,
또한 지금은 오랜세월 해안이 퇴적되어 약 500미터 넓이 의 농경지로 변형 되었으나 서해안에는 백사장이
형성되였는데, 마을안의 흐르는 하천물이 이 백사장 한허리를 관통함으로써 자연히 모래 목이 되었으니
역시 사목이라는 것이다.
둘째, 사목은 말의 방목장을 경영하던 관리소가 있던 곳이라 하여 역사적인 배경을 상징함인데,
실제로 그럴싸한 곳곳의 지명들이 입증하고 있으며 목장의 출입문이 있었다는 곳을 장문(場門)재라
하는데 이곳 양옆으로 말의 탈주를 방비한 시설로서 양쪽 바다에 맏닿도록 산허리 700미터 거리를
깊이 파고 쌓아올린 구덩(壕)이가 원상에 가까울 정도로 역력히 남아 있으며, 목장 감시초소가 있었다는
전망좋은 세곳에 후망(候望)재, 바람(眺望)쟁이, 바람이재, 목군(牧軍)들이 주둔 했다는 곳을
진둔(陣屯)재, 활쏘던 터라 해서 진실(陣失)부리와 과녁터, 그리고 목장 총수가 기거한 곳이라 하여
두목(頭目)목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실지로 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웃한 마을
관리에 속하는 창말(마을)에 말먹이 곡초 1,800속(束)을 저장하던 창고(194번지) 4칸이 있었다는
서산군지, 대동여지승람 등의 문헌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명실상부한 사목(司牧)이라는 것이다.
셋째, 사목(巳目)은 144미터의 후망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로 풍수설적으로 명당자리라고 일러 왔는데
400여년 순홍안씨 낙향조 묘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명당 자리여서 후손이 번성하여 세칭 사목안씨라
할 만큼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그 명당이란 긴 뱀이 개구리를 물고있는 형국이라 하는데 어쩌면
그 모양이 그렇게도 흡사한지 후망산 한줄기가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 내려와 개구리를 물고있는
양턱이며 뱀머리에는 조그마한 산 돌 6개가 드문드문 박혀있고 눈이 있어야할 바로 그 양쪽자리에는
벼가마니만한 산돌이 하나씩 박혀있으니 이를 상징하여 사목이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서해안의 북부권의 해수욕장으로 사목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도 아름답지만『사목』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고운 모래사장이 일품이다.
603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603지방도에서 바라본 고파도(우측) 대우도(좌측:동그란 섬)의 모습
도로에서 바라본 사목해수욕장
도로 우측에는 화이트하우스 폔션이 있고...
내1리 버스 정류장도 있다.
장문고개(場門峴:13:10)
태안군 이원면 내리 사목마을에서 장구도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고개로 내1리 버스정류장과
화이트하우스 폔션이 있는데 지명 유래는 옛날 이곳에 말의 방목장을 경영하던 관리소가
있던 곳이라 하여 목장의 출입문이 있었다는 뜻으로 장문(場門)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사목고개에서 장문고개까지 도로를 따라서 10분간 걸어서 온 다음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 아랫쪽엔 염전이 보이고 웅도와 그너머로 망일산이 보인다
벌목을 한 능선으로 오르는데 찬바람이 상당히 거세다
98.3m봉 갈림길(13:22)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족보가 있는 98.3m봉이 있으나
꼴찌로 가는 주제에 거긴 들릴수는 없고 직진의 벌목지로 내려간다
98.3m봉에서 바라본 염전과 장구도의 모습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있는 장구도는 지금은 제방이 만들어져 육지와 연결되었다.
『조선지형도』에는 '장구도(長龜島)'로 표기되어 있으며 가로림만에 섬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온다.
하나는, 조선조 세조 때에 순절한 충의공 김문기의 후손 김흥관이 영조 때 중추부사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정의에 민감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관리였으며
영조에 이어 정조가 등극한 이후 홍국영의 세도가 날로 팽창하여지자, 이에 반기를
들고 관직을 버린 채 낙향한 곳이 이원면 내리였다.
그는 거처를 찾기 위하여 후망산에 올라 사방을 살펴 그 앞바다에서 장구처럼 생긴 조
그마한 섬을 발견하였다.
장구란 평화롭고 즐거울 때 사용하는 악기이므로 이 섬에 들어가 살게 되면 홍국영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내리에는 김홍관의 측근들이 많이 살게 되었고, 지금도 50여 가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받아들이면 지명은 '장구처럼 생긴 섬'에서 유래하였으며, 지명의 역사는 18세기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장구도는 본래 물이나 술, 간장 등을 담아 옮길 때 쓰는 나무로 만든 그릇, 즉 장군을
닮았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그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장구도로 음이 변하였다는 것이다.
두 지명의 유래가 섬의 모양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공통하고 있다.
안부(13:24)
무명묘지 4기가 맥길 가운데 있다
갈림길(13:30)
무명봉에 올라섰다가...
다시 내리막길...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88.8m봉(13:38)
약간 우측으로 꺽어지니...
소나무 조림지가 나온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구도 마을의 모습
지맥 끝이 가까워질수록 잡목의 저항이 심해지기 시작한다
꾸지나무골 가는 길(13:42)
시멘트 도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내려가면 꾸지나무골 가는 길이다
꾸지나무골은 뽕나무의 일종인 꾸지나무가 이곳에 자생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 꾸지나무골 서편 바다에 모래사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을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태안군 이원면 내리 태안반도 북쪽 끝자락에 있는 해변에 있는 꾸지나무골은
생소한 이름만큼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백사장 양 끝에는 갯바위가
있어 바다낚시터로 많이 이용되며, 이곳의 소나무숲은 숲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인데 아직 피서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이 적다
도로를 건너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잡목으로 인해 본격적인 개고생이 시작된다
무명봉(13:48)
잡목에 갇혀 버렸다...우이씨 어디로 가란 말이여
얼굴이 할키고 베낭은 찢어지고 천신만고 끝에 좌측의 임도로 탈출한다
이동통신탑(13:53)
이동통신탑을 지나면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94.4m봉(13:54)
산제산 갈림길(13:56)
산제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피도(皮島)
피섬(도)은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있는 섬으로 『조선지형도』에 그 모습이 또렷이 나타난다.
이 섬은 가로림만의 간석지 위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만조 때는 섬이나 간조 때에는 섬이 드러나
걸어서 오갈 수 있으며 지명은 이 섬에 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원래 피목도(皮木島)였다고 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산제산 정상으로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삼각점이 있으며 맞은편 가로림만에는 유명한
피도가 보이고 바다 건너에는 2주전에 걸었던 망일산과 서산시 대산읍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산제산 정상 삼각점(△ 서산 402 / 1999 복구)
산제산(山祭山:109.4m:13:58)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있는 산으로 지도에는 ‘산제곡(山祭谷)’이란 지명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산제산이란 지명의 유래는 태안 어느곳의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혹 이 산 아래의 골짜기에서 산신제를 지는 곳이 있어서 산제산이라 부르나(범여의 생각중에서)
넓은 공터가 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가로림만으로 이어지는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바다 건너편에는 망일산을 비롯한 대산(망일)지맥 능선 그리고 대산유화단지가 보인다
산제산에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한참을 편하게 걷는다
84m봉(14:08)
근심 걱정없는 삶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 삶 누군고.
시기 질투없는 사람 누군고.
흉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 가젔다 기 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녹 들지마소.
세상 살이 다 거기서 거기 외다
가진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 소리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 주지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간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 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 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뿜이건 이별의 슬픔이 건 다 한순간 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 바람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 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
아무리 지독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것은 버려야지
내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오.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노.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것이라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것 탐 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 하늘도 있지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소,
살다 보면 기뿐일도 다 있는것,
잠시 대역 연기 하느 것일뿐,
슬픈 표정 짖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소.
기뿐표정 짖는다 하여 모든게 기쁜것 만은 아니요.
내인생,네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은 거라,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서산대사께서 입적하기 직전 읊은 해탈시
生也 一片 浮雲 起 <생야 일편 부운 기>
死也 一片 浮雲 滅 <사야 일편 부운 멸>
浮雲 自體 本 無實 <부운 자체 본 무실>
生死 去來 亦 如然 <생사 거래 역 여연>
서산대사 해탈시 원문
등로 우측아래에는 더덕을 심어논 모양이다
임도 합류점(14:15)
산제산에서 내려와 또 다른 임도를 만나고 산제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데 누군가가 붉은 페인트로 칠을 해놔서 알아볼 수가 없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하여 주머니를 뒤져보니 핸드폰이 없어졌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한참을 가니 등로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벌목후에 마구 버려진 잡목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산초나무를 비롯한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후답자들은 여름철의 이원(후망)지맥길은 피해야 할 듯 싶다
이곳도 벌목을 한 후에 편백나무를 조림해놨다
등로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96.5m봉(14:30)
벌목지를 지난다
벌목후에 마구 버려진 나무들로 인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대산(망일)지맥 능선
벌목지 끄트머리 부분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우이씨 ~~~미쳐 버리겠다
돈받고 벌목을 했으면 정리라도 해놔야지.
남산골재(14:47)
수산종묘 양식장으로 넘어가는 도로이며 우측으로 내려서면 목섬고개로 가는 길이다
남산골재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또 다시 지독한 잡목으로 인해 길을 잊어 버렸다.
97.9m봉(14:53)
좌측으로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갈림길이 나오면서 후망산으로 올라선다
산으로님 반갑습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후망산 아래에 중부지방 해양경찰청 대산항 해양교통 관제센터가 보인다
철조망 우측의 뒤로 돌아 후망산으로 올라간다
후망산(候望山:103.7m:15:04)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는 2개의 후망산이 있는데 오늘 2번째 만나는 후망산이지만
이곳 역시 아무런 자료도 없고, 산 아래에는 대산항 교통 관제센터가 있고 정상에는
1등 삼각점이 있는데 신산경표를 저술한 박성태 선생께서 이 산에서 후망지맥의
이름을 따온듯 하다...산은 별로 높지 않지만 대산항 교통관제센터가 이곳에 있다
후망산 정상 1등 삼각점(△서산 11 / 1985 재설)
직진으로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군 방공호도 보인다
93.2m봉(15:25)
등로에서 바라본 만대항의 모습
태안군 이원반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만대항은 이원면 내리에 있는 어항으로 2010년 12월 10일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의 명칭의 유래를 보면 예전 도보로 다니던 시절 너무 멀어 가다가다
만곳 즉 이곳 사투리로 가다가다 만디(만데)라 해서 만대라는 지명이 지어졌다는 말이 전해진다.
허들경기를 하듯이 마구 버려진 간벌목을 피해서 82m봉으로 올라간다
82m봉(15:30)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
천신만고 끝에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용난굴 가는길(15:42)
용낭굴은 이원면 내리 2구의 속칭 만대라고 하는 중막굴에 있는데, 이 중막굴에는
꾀깔(고깔)봉이 있고, 이 꾀깔봉 앞에는 여섬이 덩그렇게 보이는데,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육지와 연결되어 사람 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된다.
용난굴의 지명유래는 옛날에 용이 나와 승천한 곳이라 하여 용난굴(용이나온 굴)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이 말이 줄어서 용난굴로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수 10년 내려오면서
발음의 편의상 『용낭굴』로 굳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용(龍)에 관한 전설이나
‘용’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전국 각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군내 각 지역에 용에 대한 전설과 지명이 많이 있다.
용이 살고 있었다든가, 혹은 용이 굴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 갔다든가 하는 등의 전설이 남아 있는
동굴도 여러 군데 있으며 이 중막굴에 있는 용낭굴은 산줄기가 뻗어내리다 끊긴 해변가에 있는데,
바닷물이 들어 왔을 때(滿潮)는 굴속까지 물이 들어가고,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사람들이 굴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굴이다.
이 굴의 입구의 높이는 약 2미터 50센티이고, 밑바닥의 너비가 약 1미터 60센티로 되어 있는 3각형이다.
굴 속에는 바닷물이 들어올 때 모래가 밀려들어 쌓여 있어 5미터쯤 들어가면 더이상 들어 갈 수 없다.
이 용낭굴은 깊숙히 들어가면 양쪽으로 뚫려있다고 하는데 역시 모래로 막혀 있어 확인할 수가 없다.
또 용이 앉아 있었다는 자리의 흔적과, 용이 먹든 샘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확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용이 이 굴에서 도를 닦고 무사히 승천 하였는데, 승천할 때 굴속에서
나와 산을 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도 그 흔적이 굴 속에 하얗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입구의 바깥쪽 윗 부분의 암석이 벼랑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 5~6미터에 달하고 있으며,
또한 입구 천정에서부터 바깥의 암석 중심부에 폭 30센티 가량의 차돌이 뚜렷하게 산꼭대기를 향
해 길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보면 누구나 당연히 용이 올라간 흔적이라고 믿게 될것이다.
6.25동란 때만 하여도 굴속이 묻혀 있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피난처로 이용했다고 한다.
용난굴 갈림길 좌측으로는 폔션들이 보인다
등로로 올라서는데 길은 아예 보이질 않고 시멘트 말뚝과 굵은 전선줄이 길을 안내한다
45.8m봉(15:47)
안부(15:55)
안부에서 오르는데 이번에는 고사리밭이 갈길 바쁜 산꾼의 발목을 붙잡는다
무명봉(15:59)
무명봉을 치고 내려와 철조망을 넘으니 오전에 양개고개 지나면서 헤어진 솔향기길을 만난다
넓은 솔향기 길옆의 철조망에는 시그널이 엄청나게 달려있는데 마치 히말라야 설산에 온 느낌이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차가운 바람이 엄청나게 드세다
안부(16:02)
돌앙뗑이(14:03)
앙뗑이는 이 지역의 사투리로 ‘절벽’을 뜻하는데 돌로 이루어진 절벽이란 뜻이다
돌앙뗑이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돌앙뗑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섬(餘島)
면적 약 1ha 높이는 20m 되는 작은 섬인데 안쪽에 있는 대섬과 비교하면 면적과 높이
섬의 생긴 모양이 비슷한데 여섬은 서해바다쪽으로 이원방조제 축조로 제방안에 있는
검은 육지화 되고 단 하나남은 섬이 되었다.
먼 옛날 선인들이 지명을 지을때 이 섬이 유일하게 하나만 남게 될것을 예견하고
남을 여(餘)자를 붇여서 여섬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일몰풍경이 아름다워 낙조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루어낚시로 유명한 곳이며 농어, 광어, 우럭, 삼치, 학꽁치등이 잘 잡혀
낚시꾼들 사이에서도 인기많은 포인트중의 한 곳이란다.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전망대에 들렸다가 맥길로 다시 복귀한다
안부(16:06)
솔향기길을 걸어서 조금전에 엄청나게 고생한 길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솔향기길과 다시 작별을 하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69.8m봉(16:13)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능선 윗쪽에 벤취가 보이고...
희미한 등로로 가다보니...
조금전에 헤어진 솔향기길을 다시 만난다.
다시 바닷가 절벽으로 향하는 솔향기길을 버리고 철조망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억새밭을 가로질러 큰봉으로 향한다
이원(후망)지맥길을 산이 낮다고 우습게 봤다가 정말 개고생을 한다
그래서 지맥길은 스틱을 접어야 끝난다고 했던가
쉼터가 어디인지?
큰봉(76.2m:16:23)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또다시 솔향기길을 만난다
염전마을 갈림길(16:27)
좌측으로는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마을(염전)→0.3km 표시목이 있다.
마을 염전이란 백화염전을 말하는 듯 싶다... 다시 잡풀이 무성한 숲으로 올라간다
태안절경 천삼백리 솔향기길은 태안의 대표적인 상징인 '바다'와 '소나무'를 테마로 조성된 도보 중심의 길이다.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천삼백 리 솔숲길은 총 5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코스는 길이가 약 10km 내외로 되어 있어서 풍경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으며 그중 제1코스는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에 이르는 길로 총거리가 10.2km이다.
1코스 전 구간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삼림욕을 하기에 좋다.
만대항을 지나 걷다 보면 삼형제바위를 볼 수 있으며 이 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도 보이기도 하고
둘로도 보이며 셋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섬과 6.25 전쟁 당시의 해안초도,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용난굴을 거쳐 걷다 보면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에 다다를 수 있다
능선을 넘으니...
묘지(16:32)
또다시 솔향기길로 들어선다
칼바위(16:34)
지맥 끝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로 내려서는데 우측에 양식장이 있고 300m에 버스길 있고 바로 만대항이지만
삥돌아가는 솔향기길은 3.2km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드세고 사나운지 몸을 가누기가 힘이든다
근육골 해변(16:37)
36.8m봉(16:41)
샘너머 안부(16:43)
일몰 시간이 1시밖에 안 남았다고 스마트폰이 알려주는데 오늘 날씨는 생각보다 엄청 춥다
이건 뭣인지?...산골 출신이라 잘 모르겠다.
회목쟁이(16:47)
서해바다에는 커다란 화물선이 한 척이 떠있고 그 너머로 덕적도가 보인다
조금을 더 올라가니 당봉 팔각정이 나온다
당봉 정상에 올라선다
당봉(58.3m:16:55)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마을 뒷쪽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과 팔각정, 이정표전망대와 안내판 등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있고, 서해안의 덕적도를 비롯해 문갑도, 선갑도.지도 등이 한 눈에 보이고 맞은편에는
가로림만 너머로 황금산과 대산 유화단지가 보인다
당봉 정상의 삼각점(△401재설 / 76.10건설부)
지명 알림판
당봉 정상에서 바라본 황금산의 모습
황금산(黃金山:129.7m)은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산으로 ‘항금산(亢金山)’이라
불렸는데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 되었다고 한다. 금을 파내던 흔적이 남아 있다.
황금산 정상에 있는 황금산사(黃金山祠)는 산신령과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풍어제, 기우제 등을 지내던 곳이다.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6년 복원하였다.
또한 빈대 때문에 망했다는 절터, 옹달샘 등이 있으며 구릉지성 산지인 황금산은 해송과 야생화,
다람쥐 등 빼어난 자연 경관, 완만한 숲길, 코끼리바위[시아치] 등 해안 절벽이 펼쳐져 있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산석유화학공단과 가로림만의 아름다운 조망 덕분에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대 갯바람 솔향기길은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조선과 삼성중공업 크레인바지선이 태안 앞바다에서 충돌하여 유조선에 구멍이 생겨 원유가 유출되면서 태안 앞바다는기름으로 뒤덮여는데 그때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 봉사자들이 기름을 퍼내고 닦아낼 때이 지역 출신인 차윤천 선생이 자원 봉사자들이 다닐수 있게 삽과 곡괭이로 절벽으로오르 내릴 수 있게 길을 내면서 만든게 시초였다고 한다
당봉 전망대의 모습
당봉 전망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끝지점을 향해서 길을 떠난다
갈림길(17:03)
화장실(17:05)
갈림길을 지나 직진으로...
임도를 버리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7:08)
무명봉에서 억새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다시 임도가 나온다
또다시 솔향기를 만나고...
붉은 앙뗑이(17:18)
붉은 앙뗑이 옆에는 수인등표 등대와 장안여 안내판이 서 있다
내용을 보면 섬돌모양으로 길게 뼏어 물에 잠기고 드러나기 때문에 “장안여”라고 주민들과
항해하는 선원들에 의하여 이름지어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만대부리 해안으로부터
150m 바다 깊숙이 뻗어나가 가로림만으로 들어오는 항로 근방에 있어 항해의 위험 요소를
항시 주의해야 하는 바위로 해수의 유속이 빠르게 흐르고 안개가 자주 짙게 끼어 크고 작은
해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38년 음력 2월 17일인천~구도간의 여객선인 해룡환이 짙은 안개로
파선하여 80여명의 승선 인원중에 7명만 생존하고 모두가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있어서
이 지점에 등대를 세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던 중 1998년에 점등 함으로써
이 해역을 향해하는 선박을 인도하고 있다.
등대 아래에 있는 장안여(돌섬)는 밀물로 인해 물에 잠겨 버렸다.
장안여는 육지에서 200여m 떨어진 바위섬으로 만조때는 물에 잠기는데
이 때문에 여객선이 침몰하여 1998년 등대를 설치하였는데 이원면의
유일한 등대라고 한다
60.2m봉(17:20)
솔향기 등로를 버리고 올라서니 잡목만 무성한 이원(후망)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좌측의 바닷가 방향으로 산줄기를 타고 내려 가는데 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중간 중간에 폐벙커들도 보인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헬기장이 보인다
헬기장(17:25)
1606부대 정문(17:27)
헬기장으로 내려오니 군부대가 후망지맥의 끝자락으로 점령하고 있어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더군더나 부대 정문에 ‘실탄휴대 근무중 통제 불응시 발포’라는 팻말을 걸어놨는데 간이
배밖에 나와있는 범여도 약간 쫄린다
군부대 정문에서 돌아나와 끝부분을 갈 수 있을까 싶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군부대 철조망까지 왔지만 부대안쪽에 있는 끝지점으로
접근할 수가 없기에 이곳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산행을 종료하고 해안가
솔향기길을 따라서 2.2km 정도되는 만대항으로 향한다(17:30)
입성끝 전망대(17:35)
만대항 끝자락에 있는 삼형제 바위
만대항 끝자락에 있는 삼형제 바위는 같은 곳에서 보아도 위치에 따라서 하나로도 보이고
둘로도 보이고, 셋으로도 보인다고 하는데 바위를 중심으로 남쪽 방향인 만대 부두에서 보면,
첫째인 큰 형이 아우들을 감싸고 숨겨주어 하나로 보이고, 서쪽 방향인 구메에서 보면, 첫째가둘째 아우를 감싸 숨기고, 막내 아우를 드러내어 첫째와 막내 둘로 보이며, 동쪽인 황금산앞바다에서 보면 삼형제가 모두 드러나 셋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한 집안에 삶을 같이하는 삼형제가 서로 감싸주고 의좋고, 다정하게 지내면서잘못된 것은 숨겨주고, 잘된 것은 들어내는 현상과 같다고 전해지고 있어 의좋은 삼형제 바위라고 한다
만대항 가는 길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동반자인 조여사님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듯 하다
큰구메 마을 입구 바닷가 너머로 삼형제 바위가 보인다
큰구메마을에서 바라본 황금산의 모습
해가 저물면서 丁酉年 섣달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오늘 따라서 유난히도 보름달이 크게 보이는데 오늘 절에가서 보름 법회에
참석하지 못해 괜스레 큰 스님에게 꾸중을 듣는 기분이다...죄송합니다
선두로 가버린 동료산꾼들이 우릴 기다리며 얼마나 지루할까.
괜스레 미안하기만 하다...부지런히 만대항으로 향하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큰구메에서 이정표는 만대항까지 0.9km라 해놨지만 실제 거리는 2km는 더 되는듯 싶다.
그러는 사이에 카메라 베터리는 수명을 다하고 어두컴컴한 내2리(만대기지 입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을 태운 버스가 우리를 태우러 오고, 버스를 타고 이원면 사무소
근처에 있는 유명한 낙지전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서울로 향한다.
산은 높지 않았지만 잡목으로 인해 엄청나게 개고생을 하면서 후망지맥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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