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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양천(정수)지맥(진행중)

양천(정수)지맥 제1구간 - 밀재에서 584봉 안부까지

by 범여(梵如) 2019. 5. 12.

                사람이 그리워 무작정 걷다가 대형 사고를 친 1구간

 

☞ 산행일시: 2019년 05월 11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8.2km(알바포함)  / 4시간 18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밀치-강섭산-밀치(대형알바)-합천이씨 묘-농장-정수지맥 분기봉-590봉-안부

                  560봉-안부-520봉-고제재-안부-무명봉-암봉-무명봉-폐헬기장-500봉-안부

                  513.6봉-안부-무명봉-무명봉-평산신씨 묘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신원면 / 산청군 오부면, 차황면

 

이번주 일요일이 부처님 오신날이라 가기로 계획한 숭덕(병성)지맥 2구간을 접고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중에 예전에 몇번 산행을 따라갔던 3050알파산악회에서 진양기맥 밀재에서 황매산 구간을

간다는 공지가 올라와서 갑자기 일정을 바꿔 토요일에 정수(양천) 첫 구간을 가기로 한다.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하는 나로서는 가장 큰 고민이 교통 문제이다.

더군더나 들머리가 오지(奧地)인 맥길을 나설때는 고민이 크지 않을수가 없다.

접속구간도 문제이지만 교통비도 만만찮기에 안내 산악회를 따라가는게 경비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간단하게 베낭을 챙기고 집을 나오면서 떡집에 들려 점심 대용으로 인절미

한팩을 사고 편의점에서 쥬스 2개를 산 다음에 탑승지인 사당역으로 도착한다

 

사당역에 도착하니 06시 40분... 등산과 행사를 가는 관광버스가 엄청나게 많다.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산악회 버스를 찾아 버스에 오르는데 아는 분이 거의없다.

배정된 좌석에 앉으니 버스는 출발하고 잠시후에 뒤에서 어느 산꾼이 아는척을 한다

몇년전 이 산악회를 따라서 지리산 성삼재에서 뱀사골 가는 구간에서 나를 보았던 모양이다

난...기억이 안나는데...그 당시 난 반야봉에서 삼도봉으로 안가고 혼자서 묘향암-빨치산 비트-

이끼계곡으로 향하는 비탐구간을 가면서 귀한 石間水를 팻트병에 받아 왔는데 그걸 얻어

먹었다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이번엔 어떤 여인이 아는척을 한다...이 여인은 지금 로체등정에 가 있는 진권아우 친구란다

진권아우한테서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단다...다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정수지맥 개념도

정수지맥(淨水枝脈)진양기맥 소룡산(761m) 남쪽 약 0.8km, 밀치(59번도로) 서쪽 0.6km 지점인 약 625m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서로는 경호강,동으로는 양천을 가르며 송의산(538.9m -0.9), 매봉(599m) , △구인산(587m),

비득재,정수산(841m), 둔철산(811.7m), 마제봉(198.4m), 적벽산(166m) 을 거처 양천이 경호강에 합류하는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원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7km되는 산줄기로 양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데

대한산경표에서는 양천지맥이라고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길이 참으로 멀기는 멀다.

버스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생초I.C를 빠져나와 좁은 길을 따라서 헉헉거리며 밀재에 도착한다

생초는 지금 베트남에서 축구 신드롬을 일으키는 박항서 감독의 고향이 아니던가.  

11시 10분경 밀재에 도착하여 버스에 내리니 햇살이 엄청나게 따갑다.

2012년 2월 19일 진양기맥 4구간 때 이곳을 통과했으니 꽤 오래되었구나.

밀재 정상에 있는 진양기맥 지도

 도로가에 있는 수준점

밀재(蜜峙:510:11:10)

경남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룡마을과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진양기맥 종주 등산안내도와 수준점, 버스 정류장이 있고 59번 국도가 지난다

고개의 높이도 생각보다 상당히 높으며 밀재라고 불리워진 유래는 예전부터 이곳에는

밤나무가 많아 양봉이 성행했는데 ‘꿀 밀(蜜)’자를 붙여서 “밀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양질의 끌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밀짐재’라고 부른다

산행을 시작하다(11:12)

20명이 넘는 기맥꾼들이 내리자마자 서둘러 길을 떠난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따라서 산행을 해 본지가 몇년만이던가.

1년 산행중에 90%이상을 나혼자 아니면 한.두명이 같이 했는데...

갑자기 산꾼들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간다.

난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확인도 없이 기맥꾼 따라서 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잘못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해봤다.

 이정표를 따라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예전에 나홀로 금남정맥을 할 당시 계룡산에서 만났던 홍길동 아우의 흔적...잘 살고 있겠지

급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예열되지 않은 탓인지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 다음에...

안부로 내려섰다가...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38)

다시 소나무숲이 우거진 능선으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오른다

650봉(11:40)

650봉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시야가 확트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야(所也)마을의 모습

마을의 뒷산의 모습이 ‘이끼 야(也)자 형태로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원면의 산그리메

저 아랫쪽에는 70년전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거창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이 있는 곳이다

 

거창양민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2월, 한국군 11사단이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산청과 함양에서 시작되어 거창에서 끝난 사건이므로,

 “산청·함양·거창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간, 지리산 인근의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주민 719명이 한꺼번에 학살되었다.

이 중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61세 이상의 노인도 74명에 이르렀다.

국군 11사단 9연대 군인들은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11사단장 최덕신이

빨치산 토벌을 위해 휘하 부대에 보낸 작전 방침은, 적이 이용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정리하여,

적의 생존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리 겠다는 방법으로 일종의 초토화 작전이었다.

그래서 하달된 작전은 다음과 같다.

1) 작전지역 안의 인원은 전원 총살하라.

2) 공비(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되는 건물은 전부 소각하라.

3) 적의 보급품이 될 수 있는 식량과 기타 물자는 후송하거나, 불가능한 경우 소각하라.

문제는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의 주민을, 모조리 적국 국민으로 보고,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즉, 지리산 산악지대에 산재한 “좌익 게릴라 수천 명을 토벌”하기 위해서, 군이 수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다.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출동한, 한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민간인들을 안전

지역으로 피난시킨다는 명목으로 인근 초등학교 건물로 사람들을 전부 모은 후, 군경 가족 등을 추려내고는

주민들을 전부 인근 박산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700명 가까운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죽인

11사단 병력은, 시체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이고 매장하는 등 증거인멸에도 나섰다.

강섭산 갈림길(11:45)

이곳에서 우측으로 강섭산이 있고 진양기맥길은 좌측으로 냐려간다.

3050알파산악회에서 전설적인 존재인 알프스님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뵌 건 오늘 처음이다...반가웠습니다

산에서 시그널로 가끔 알현하기는 했지만 신난다 대장님한테서 대단하신 분이라고 얘길 많이 들었다

기맥꾼들과 사진한장 찍고 난 강섭산쪽으로 향하면서 작별을 한다 

강섭산(646m:11:50)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와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정표(←할미산 3.4km →솔봉산 1.8km)와

앙증맞은 표시석(강섭산:641m 無心)이 있고 뒷면에는 ‘거창군 극남점 E127˚ 56.30 N 35˚30.50 거창군수’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거창군의 가장 남쪽이라지만 실질적으로 정상석은 산청군쪽에 있다.

 

좌측으로 가면 할미산이라 이정표가 표시되어 있는데 할미산성이 있었던 할미산이

있는 곳은 합천지역으로 가야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첨예하게 대립한 곳이 대야성(지금의 합천)이다.

신라와 백제가 영토 확장이 치열했던 곳... 백제가 신리의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를

치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이곳 합천이었고 신라 역시 백제를 치기 위해서

이곳이 아주 중요한 거점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기에 이곳 할미산성도 그런곳이 아닌가 싶다.

 

이 산성아래 넓은 바위를 치마 덤이라 하여 선녀가 황매산 아래 소(沼)에서 목욕을 하고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치마덤이라고 전해진다.

강섭산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자료도 없다.

2012년도에 진양기맥 산행을 하면서 하도 궁금하여 산청군 차황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그 당시 면사무소 직원이 하는 말 ‘ 우리 지역에그런 산도 있어예?’ 하는 대답이다.

거창군 신원면 사무소도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추측컨데 강섭산은 혹 가섭산(迦葉山)이 세월이 지나 변음(變音)되어 강섭산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실제로 가섭산은 한남금북정맥을 타다보면 음성읍내를 외호하고

있는 뒷산이 가섭산이고 그 산명을 여러군데에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 명산의 산명의 대부분이 불교지명인걸 보면 충분히 추측이 간다.

부처님의 10대제자중의 제1인 가섭(迦葉)존자의 명칭이 아닌지 ...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부르는 가섭존자는 옛날 세존이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모두 잠잠히 말이 없었으나 가섭(迦葉) 존자만이 빙긋 미소 지었다.

선(禪)은 한 송이 꽃과 한 번의 미소 사이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세존이 꽃을 들었다는 ‘세존염화(世尊拈花)’, 꽃을 드니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 대중에게 꽃을 들어 보인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생겼다

내일이 부처님 오신날이라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ㅋㅋㅋ 

본격적인 정수지맥을 시작한답시고 물 한모금 마시고 트랙을 확인하는데 이게 뭐여?

여태껏 기맥꾼들과 어울려 떠들면서 오다가 반대로 와버린게 아닌감.

밀재에서 소룡산쪽으로 가야 정수지맥 분기점인데...강섭산이라니

천하에 범여가 이런 실수를 한다...이제 몸이 예열되었고 평지와 내리막길은 정상인

못지않게 빠르게 갈 수 있다...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밀재를 향해 뛰고 있는데

산행대장님한테 전화가 온다...잘못가고 있다고...감사합니다

다시 밀재(12:10)

강섭산까지 왕복 2.3km를 갔다가 다시 오는 바람에 1시간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동통신탑이 보이는데 달려 내려온 열기땜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소룡산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서 있다.

능선에서 만난 이정표

숙부인 합천이씨 묘지(12:13)

묘지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나이론끈 줄이 처져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룡(巢龍)마을의 모습

마을 뒷산인 소룡산의 지명을 따서 붙혀진 이름이다

급경사의 오르막길

밀재에서 분기점까지 짧은 구간에 고도를 120m이상 높이려니 등로가 곧추선 느낌이다

거기다가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에 소득도 없는 대형알바를 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힘이든다

암봉(12:32)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몇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평지 능선을 걷는다.

우측으로 밤나무 농장이 보이고... 

넓은 임도를 따른다

지맥 분기점 아래에 밤나무농장의 모습

농장 뒷쪽으로  소룡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소룡산(巢龍山:760.9m) 경남 산청군 오부면과 거창군 신원면의 경계에 있는 위치한 산으로 정말

때묻지 않은 오지의 산으로 ‘소룡산'이라는 이름을 굳이 뜻풀이 하자면 '용의 둥지'쯤이 될 법하다.

지나온 바랑산과 소룡산의 글자 지명은 바랑산의 ‘바랑’은 새의 둥지를 뜻하고, 소룡산의

‘새집 소(巢)’자도 둥지 또는 집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의 이름대로 본다면 바랑산은 모든 새의 둥지이고, 소룡산(巢龍山)은 용의 둥지를 뜻하므로 새와 용의 보금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또 바랑산은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넘은 산이라고 하여 바랑산이란 말도 있다. 8부 능선에는 천지사(사찰)가 위치해 있다

정수지맥 분기점(636m:12:40)

분기점 표식을 확인하고 진양(남강)기맥 능선과 작별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거창군과 작별을 하고 합수점까지 온전히 산청군에 들어선다

밤나무 농장에서 닦은듯한 넓은 임도 끝으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흔적들이 조금씩 보인다

빽빽한 잡목과 키작은 소나무숲을 헤치고 내려서는데 송화(松花)가루가 엄청 흩날린다

지난해 수술때 좌측 폐 1/3을 절개하여 제거한 탓인지 이럴땐 아주 고통스럽다.

점심시간(12:45~55)

바람이 부는 능선에서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한다.

점심이래봐야 아침에 떡집에서 산 인절미 한팩과 쥬스 하나가 전부이다.

대형 알바를 한 탓에 마음이 급해져 번개불에 콩꾸어 먹듯 급하게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590봉(12:58)

넓은 공터에 키작은 소나무와 가시넝쿨이 빽빽하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이러저리 헤매다가 좌측으로 약간 꺽어져서 내려간다

정수지맥길은 서서이 지맥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뭄에 콩나듯이 만나는 선잡자의 흔적...반갑기만 하다

다시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무명봉 하나를 내려서니 안부가 보인다

안부(13:04)

560봉(13:08)

넓은 공터인데 마치 예전의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곳에 키작은 소나무가 빽빽하다

지나가신지가 꽤나 오래된 듯...

등로는 보이질 않고 바람에 날리는 송화가루 땜에 엄청 괴롭다.

게으름뱅이...지금이 어느땐데

안부(13:15)

다시 급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520봉(13:20)

520봉 삼각점(△거창468 / 1981재설)

520봉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흔적은 보이나 잡목이 빽빽하여 볼 품없는 곳이다

520봉을 벗어나니  잠깐동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다시 등로가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앙증 은방울꽃(꽃말:순결. 다시찾은 행복)

향기가 무척 매혹적이어서 '향수화'라는 향명을 가지고 있으며 '골짜기의 백합', '5월의 작은 종',

 '당신의 그림자 풀', '천국의 계단', '요정들의 찻잔' 등 모두가 은방울꽃을 지칭하는 말이다.

 

은방울처럼 피는 꽃도 예쁘지만 잎 모양도 좋아 자생화 중에서는 고급 분화용으로 취급된다.

향기가 짙어 향수의 원료로 쓰이지만 꽃에 독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며, 세계적으로 3종이 분포하며,

그 중 한 종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분포하는 은방울꽃인데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전국 산야의

반 그늘진 곳에 살고 있으며 시원스러운 두장의 잎과 길게 뻗은 꽃대에 달린 꽃망울이 참 예쁘며 가을에

달리는 빨간 열매도 관상가치가 있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부면 대현리(大峴里)의 모습

황매산의 서쪽자락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현천이 흐르고 갓골소류지와 대현못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대현마을이 있다. 대현마을은 대현리의 원마을로 큰 고개 밑이 되므로 한재 또는 대현이라 하였다

조금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지난 대현저수지가 보인다. 2006년에 준공된 이 저수지의 물은 생초천으로 흐르고 있다.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서니...

갑자기 절개지가 나오면서 등로를 막고 있다.우측으로 내려서니 고제재가 나온다.

고제재(高濟峙:429m:13:35)

서쪽은 산청군 오부면 대현리이고 동쪽은 차황면 실매리인데 생초에서

차황과 거창의 신원면으로 넘어가는1026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이 지역 사람들은 황산재라 부르기도 한다

고제재에서 바라본 오부면쪽의 모습

차황면쪽의 모습

고제재를 건너 잡목이 무성한 능선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옮기기조차 힘이 드는데 미칠 지경이다...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지고 다니는 침으로

손을 따보지만 별무 소용이 없다... 조금전에 급하게 먹은 인절미가 체한 모양이다

다시 베낭을 메고 힘들게 올라서니 커다란 밤나무밭이 나오고 너머로 황매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밤나무밭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밤나무밭에서 황매산쪽을 바라보는데 능선 너머로 황매산이 겨우 얼굴을 내밀고 있구나.

저기에 올라서면 합천호가 보일 것이고 그 너머 어디쯤에 내 고향 의령땅도 보일텐데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45년이란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는 점점

옅어지는 느낌이다...고향을 안 간지가 벌써 3년이나 되었으니...연로하신 큰 형님은

잘 계신지 궁금하다...내일은 전화라도 한 통화 해야겠구나.

 

황매산 너머 합천땅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소규모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졌다가 고령의

대가야에 병합되어 신라에 복속이 된 지역으로, 이곳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벌였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합천이 자랑하는 역사적인 인물로는 신라시대의 죽죽장군이 있었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왕사(無學)였던 무학대사가 황매산 아래 대병면 출신이다

그리고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居頭)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도

합천 삼가출신이었다...그리고 좋든 나쁘던간에 현대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전두환

대통령도 합천군 율곡 출신이다 

황매산(黃梅山:1108m)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릴만큼 뛰어난 암릉과 멋진 평전이 자리를 잡고있다.

백두대간 덕유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황매산은 무학대사가 수도(修道)를 한 산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황매산이라 부른다.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5월이면 수십만평의 고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홍색깔의 철쭉꽃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황매산은 효(孝)의 산. 3무(無)의 산으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왕사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도를 할 때 어머님이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리면서 칡덩굴과 땅가시에 발등이 긁혀 넘어지고

상처가 나고 뱀에 놀라는 일이 자주 있어 황매산 산신령에 100일 기도를 드렸다.

이후 지금까지 뱀과 땅가시 그리고 칡덩굴이 자라지 않아 3무(無)의 산이라 한다,

무학대사의 어머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은 전설로 이어져 오고있다.

무학(無學)의 의미는 불경에서 더 배울것이 없는 경지를 뜻하며 황매산은 중국 황매산이 육조 혜능선사가

전법계(傳法偈)를 받은 산의 이름과 같다.

무학대사의 존영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일조한 승려로 조선 개국 후 왕사를 지냈으며, 이성계가

'대사는 꼭 돼지 같아 보이오.'라는 말에 '전하께선 꼭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하며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응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밤나무 단지를 ㄱ형태로 꺽어져 가다가 숲으로 들어선다

밤나무 단지를 벗어나니 다시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밤나무밭을 벗어나면서 바라본 소룡산의 모습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무명봉을 지나는데 등로 좌측 아랫쪽에서 기계음소리가 요란하다

계속되는 통증...또다시 베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한다

안부(14:10)

희미한 등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무명봉(14:20)

이곳에서 맥길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갑자기 무쟈게 좋아지나...

소나무 군락지라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송화가루 땜에 숨쉬기조차 힘이든다

웬만하면 몸뚱아리에 칼대지(수술) 말아야 하는데 수술이후 산행이 너무 힘이 드는구나

암봉(14:24)

소나무 숲길을 따라 가다가...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무명봉(14:28)

폐헬기장(14:38)

다시 희미한 등로를 걷는데 바람에 날려오는 송화가루 땜에 숨이 멎어드는 느낌이다

갑자기 맥길이 사라져 버리고 선답자들의 시그널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

이마에는 자꾸만 식은 땀이 흐르고 배가 아파서 도저히 걸을수가 없다

다시 베낭을 베게삼아 등로에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500봉(14:55)

이곳에서는 맥길 찾기가 아주 고약하다

좌측의 내리막길에는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아예 등로가 없는 우측이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등로가 조금 보인다

다시 등로는 희미해지고...

안부(15:00)

송화가루를 뒤집어 쓴 베낭과 모자

513.6봉(15:10)

다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반가운 산으로님의 흔적도 만난다.

안부(15:13)

다시 곧추선 봉우리를 올라가는데 2번이나 중간에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무명봉(15:20)

다시 약간의 내리막길

등로 우측으론 진양(남강)기맥 능선인 철마산-바랑산-소룡산이 보인다

무명봉(15:25)

소나무 숲길로 내려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산청군 오부면 양촌리(陽村里)의 모습

오부면 양촌리는 남강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 평지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양

지쪽이 되므로 양촌이라 하였고, 자연마을로는 구주막, 음촌, 양촌 등이 있으며, 구주막은 백재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때 관행길로서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음촌은 백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음지에 있다하여 음촌이라

하며 양촌은 양촌리의 원마을이고 양촌과 음촌을 통틀어 일컫어 면호리라 한다. 얼마 안되는 경지에서

식량작물을 비롯하여 마늘·양파 위주의 경작이 이루어지며, 특산품으로 흑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능선 앞에...

곧추선 628.9봉이 보이는데 현재의 컨디션으로는 저 봉우리를 오를 자신이 없어 중탈을 결심하다

오늘만 날이던가...다음 구간에 조금 더 걸으면 큰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초반에 한 대형알바에다가 급한 마음에 무리한 오버페이스 , 거기다가

급체까지...미련없이 중탈을 결심하니 마음이 편하다.

등로 좌측으로 내려서니 잘 관리된 평산신씨 묘지가 보인다

평산신씨 묘(15:30)

좌측은 평산신공 동현(요셉)& 배부인 용궁김씨옥자(엘레나)의 천주교 묘지이고

우측은 집사 신동석의 (기독교)묘지이다...형제간인 듯 한데 종교가 달랐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오늘도 산이라는 스승한테서 또 하나를 배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것)이란 단어를...

묘지를 내려오니 엄청난 염소들이 도망을 가고 있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차량 한대가 보이고 논두렁에 앉아있던 남자 한사람이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웬일로 왔는냐고 시비조로 말을 걸어온다...등산객인데 산행을 하다가 급체를 하여

내려 온다고 하니 길이 없는데 산에 다닌냐고 묻는다.

이 분에게 자세한 산 이야기를 해봐야 알 길이 없을테고 면소재지까지 걸어 가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까...5km 가량 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앉으라고 하면서 체했으니 나보고 누워라고 한다

그리고는 등을 밟아주는데 생각보다 시원하고 체기가 좀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차황 택시하시는 분이 자기가 아는 형님이고 자기는 이 아래에 있는 마을인

양곡리 이장인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면서 염소 150마리를 사육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택시를 보내 달라고 전화를 하는데 이 분이 멀리 가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내 차를 타라고 하더니 면소재까지 태워 주는게 아닌가...서울을 가야 한다면서

어떻게 갈꺼냐고 묻길래 우리 일행이 구름재로 내려 오니 그곳으로 간다면 된다고 하니

이 지역 사람들은 구름재를 아예 모른다

양곡리 이장 차를 타고 차황면소재지까지 편하게 온다...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러면서 황매산 철쭉 구경을 온 서울차는 무조건 차황면소재지를 거쳐야 간다고 한다

양곡리 이장이 아는 형님이 운영하는 황매산 가든

이 분은 가든과 노래방, 택시를 운영하시는 분이시다.

이장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이 곳에 내리니 송화가루에 뒤집어 쓴 내 몰골이 우스운 모양이다

내가 좀 씻어야 하는데 편의 좀 봐달라고 하니 영업을 하지 않는 노래방으로 안내한다.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으니 좀 살것만 같다.

미안하여 밥을 시키니 체하였을때는 굶어야 한다고 하면서 밥을 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어 맥주 하나를 시켜서 마시고는 노래방 룸에서 1시간동안 눈을 부치고나니 살 것만 같다  

기맥팀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3시 50분에 이곳에 도착하여 4시간을

죽치고 있으니 기맥팀들이 그때서야 이곳에 와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랫만에 많은 사람들 틈에 어울려 산행을 같이하니 좀 어리버리해진 느낌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다...남부터미널에서 내리는데

나야 집이 개포동이라 금방 집에 가지만 일산, 의정부쪽 계시는 분들도 계시는

모양인데 잘 가셨는지 걱정이다...서울까지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