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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양천(정수)지맥(진행중)

양천(정수)지맥 제2구간 - 584봉 안부에서 척지마을까지

by 범여(梵如) 2021. 3. 29.

 

☞ 산행일시: 2021년 03월 28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강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5.6km+들머리 0.6km / 7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염소농장-평산신공 묘-무명봉-이승골재-584m봉-안부-송의산 갈림길

                 628.9m봉-다시 송의산 갈림길-562m봉-안부-탁고개-안부-매봉-안부

                 523.9m봉-505.2m봉-501.7m봉-임도삼거리-송재-무명봉-풍욕대-무명봉

                 구인산-545.2m봉-밀양박공 묘-용궁김씨 가족묘-달임재-59번 도로

                 435m봉-매곡재-452.7m봉-무명봉-무명봉-무명봉-안부-상여봉 갈림길

                 489.8m봉-다시 상여봉 갈림길-비득재-495m봉-안부-임도-593.6m봉

                 묘지-573.2m봉-안부-581.5m봉-535m봉 갈림길-829.1m봉-정수산

                 폐헬기장-내수마을 갈림길-쉼터-안부-전망대 바위-가재산-안부사거리

                 NO4송전탑-안부-719.7m봉-세신바위 갈림길-묘지-523m봉-척지마을

소 재 지: 경남 산청군 오부면, 차황면, 산청읍, 신등면

 

한 주일동안에 정신없이 바빴다...왜 이리 세월이 빠른지 모르겠다

토요일 아침에는 내일 산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체크하는게 날씨이다

이제는 아무리 산이 좋아도 무박을 하면서 어둠속에 길을 걷는것과 비를

맞으면서 걷는 우중산행은 죽기보다 더 싫다...더군더나 수술이후 몸뚱아리의

신체 변화로 인해 추위를 많이 타다보니 체온이 많이 뺏기는 우중은 아예 안하는데 어랴...

이번주말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로 인해 고민이 많다...

그래 안되면 주중에 산에 가면되지 뭐.

 

토요일 오전부터 비는 쏟아져 뭘할까 고민중인데 친구들이 사무실로 쳐들어(?) 온다.

비 올때는 파전에다 막걸리 한사발이 제격이지, 하면서 낼 비도오고 하니 자네 산에도

안 갈것이고, 하면서 점심때부터 술판이 벌어진다...나 역시 낼 비가오니 산에 안 계획이다

대낮부터 얼큰한 아구찜에다가 막걸리 각 2병씩 마시고 친구가 운영하는 스크린 골프장으로

장소를 옮겨서 스크린 골프 한게임에다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에오니 밤 9시가 조금 넘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4시가 체 안되었다.

 

행여나 하여 컴퓨터를 켜고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중부지방 이북으로는 낮 12시까지 비가 온다는 예보이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니 남부지방 경상도쪽은 아침 9시부터 비가 개인다는 예보에 눈이 번쩍 뜨인다

어디로 갈까 이리저리 검색을 하니 2년전 첫 구간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로 인해 중탈을 했던 양천(정수)지맥이

눈에 들어오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식구들이 잠든 틈을 타서 대충 베낭을 챙긴 다음에 5시반쯤에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집을 나와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부터미널(05:45)

집을 나서는데 가랑비가 내려 자꾸만 망설여진다.

이왕 집을 나섰으니 안 갈수도 없고 15분만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한다

06시발 서울남부발 →원지행 버스표

내가 오늘 가야할 산행 들머리는 2년전 첫구간에 컨디션 난조로 인해 탈출한 산청군

차황면 지역으로 산청읍내로 가야만 들머리가 가까우나 교통편이 문제이다.

서울에서 산청읍으로 가는 첫 버스가 08시이고 서울에서 3시간 10분정도 소요되니

그렇게되면 산행은 12시가 되어서야 가능하기에 들머리가 좀 멀더라도 원지행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진주로 가는 06시 첫 차를 타고 원지로 향한다.

손님은 대략 10명쯤 되는데 대여섯명은 등산복 차림인걸로 보아 지리산을 가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는데 갑자기 청학동 아지매가 생각이 난다

 

이 아지매를 처음 만난건 2016년 3월에 낙남정맥을 하는 아그들에게 빌붙어서

진권아우와 둘이서 신백두대간 2구간을 하면서 돌고지재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상대로

앵벌이를 할 때 돌고지재에서 원지까지 태워준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지리산 아래에서 생산되는 고사리와 곶감을 해마다 200만원 정도씩 팔아 주었다

그 바람에 이 여인은 해마다 봄이면 맨처음 채취했다고 하면서 고로쇠물을 보내주고

4월이면 두릅과 엄나물, 취나물을 먹으라고 보내준다.

 

올해도 2월에 고로쇠 2박스를 보내왔다...그래 이 여인에게 갑질을 좀 해야겠다.

금산 휴게소를 지나면서 전화를 하니 친정 오라버니 대하듯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내가 지금 원지로 가는게 차황까지 좀 태워줘야겠다고 하니 혼쾌히 승낙을 한다

원지버스 정류소(09:00)

원지에서 내리니 하나로마트 건너편에서 청학동 아지매가 서방님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차황을 향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올해도 내가 고사리를 100개정도 주문을 받아 놨다고 하니 고마워한다

 

이 아지매가 생산하는 고사리를 먹어본 사람은 이듬해 꼭 다시 주문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내가 고사리 영업사원이 된 느낌이다...사실이지 지리산 고지대에서

생산된 고사리는 향이좋고 맛이있어 내가 품질을 보증할수 있다

행여 고사리가 필요한 사람은 범여에게 연락 주시길...ㅋㅋㅋ

차황 황매산 가든(09:30)

원지에서 차황까지 약 30분정도 걸려서 도착하여 청학동 아지매부부와 이별을 하고

황매산 가든을 운영하는 택시기사분에게 부탁하여 들머리로 향한다.

그런데 원지에는 날씨가 맑더니만 차황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는데 불안하다

들머리로 가는 길은 농로에다가 길이 하도 꼬불꼬불하여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갈수 없는 길이다...택시비가 7000원정도 나오는데 미안하여 10,000원을 줬다

염소농장(09:55)

차황면 양곡리 이장님이 운영하는염소농장

택시가 도착하니 양곡리 이장님이 나와서 택시기사에게 ‘형님 웬일인기요’하면서 인사를 한다

내가 2년전에 이장님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때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니 나를 기억한다

염소농장을 하는 양곡리 이장님

2019년 5월 11일 혼자서 첫구간을 하다가 급체와 컨디션 난조로 인해 이곳으로 탈출할 때,

응급조치와 차황면소재지까지 태워줘서 그런지 단박에 나를 알아본다

그러면서 조금전에 나은 알이라면서 유정란 2개를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하나를 그 자리에서 먹고 하나를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고 가려니 깨지니

다 먹고 가시란다...자기는 이곳에서 35년을 산에서 살지만 산에는 절대

안 올라간다고 하면서 위험하게 혼자 산에 다니냐고 하면서 조심하라고 한다

양곡리 이장님은 이곳에서 15,000여마리의 염소를 사육하고 있다.

산에도 염소들이 많이 보인다

산행을 시작하다(09:55)

택시기사는 가고 양곡리 이장님에게 유정란 2개를 얻어먹고 고맙다는

인사를 나눈다는 다음에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향한다

마루금이 보이는 능선 아래의 묘지로 올라간다

평산신공 묘(10:02~10:10)

묘지 2기가 있다... 아마도 형제의 묘인듯 한데 우측은 ‘집사 평산 신동석의 묘’

측은 ‘평산 신동현(요셉)&용궁 김옥자(헬레나)’의 묘이다...형제지간에도 종교가 다르구나

이른 아침에 집을 나온 탓에 밥을 먹지못해서 묘지에서 망자의 밥상(?)을 빌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충무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아침을 해결하고 마루금에 복귀하여 본격적인 맥길을 시작한다

등로는 비에 젖어 촉촉하다

봉우리로 올라가는 등로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무명봉(10:16)

가야할 584m봉이 곧추 서있다

무명봉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이승골재(10:17)

산청군 오부면 오전리 이승골에서 차황면 양곡리 못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옆에는 묘지가 있고 양곡리 방향에는 약초 재배지가 보인다

 

산청군 차황면 양곡리()는 황매산의 동쪽 자락인 송의산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금호천이 흐르고 양곡소류지가 있는데 양지쪽의 골짜기라 하여 양곡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못골, 판계가 있다. 못골은 양곡리에 있는 마을로 못이 있다 하여 못골 또는

지동()이라 한다. 지동은 무오사화 때 이곳에 정착한 김해 김씨 퇴은공(退)이 연동()

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넓은 연못의 못둑에는 정자목이 있으며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연못은 못골못이라 하는데 원래는 집터였는데 이곳에서 힘쎈 장군이 나므로 역적을

도모할 것을 두려워 하여 나라에서 그를 죽인 다음 이곳에 연못()을 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판계( 너더리)는 지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등로 좌측에는 약초 재배단지가 보인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은 滿開한 진달래로 인해 온 산이 벌겋게 물들었다

능선 북쪽으로는 2012년에 걸었던 남강(진양)기맥 능선에 있는 바랑산과 소룡산이 아련히 보인다

소룡산(巢龍山:760.9m:11:55)은 경남 산청군 오부면(梧釜面에 있는 위치한 산으로 정말 때묻지 않

은 오지의 산으로 '소룡산'이라는 이름을 굳이 뜻풀이 하자면 '용의 둥지'쯤이 될 법하다.

지나온 바랑산과 소룡산의 글자 지명은 바랑산의 ‘바랑’은 새의 둥지를 뜻하고, 소룡산의

‘새집 소(巢)’자도 둥지 또는 집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의 이름대로 본다면 바랑산은

모든 새의 둥지이고, 소룡산(巢龍山)은 용의 둥지를 뜻하므로 새와 용의 보금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바랑산은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넘은 산이라고 하여 바랑산이란 말도 있다.

8부 능선에는 천지사(사찰)가 위치해 있다

우측으로는 황매산이 보이지만 박무로 인해 흐릿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산청군 오부면(梧釜面)의 모습

동쪽으로 차황면(車黃面), 북쪽으로 거창군 신원면(神院面), 남쪽으로 산청읍, 서쪽으로

생초면(生草面)과 접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보구산(保銶山:797m)·소룡산(巢龍山:740m)·송

의산(松義山:538m)·바랑산(796m) 등의 산봉들이 기복하는 산지이고, 그들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소

하천들이 면의 중앙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곡지를 형성하면서 남서쪽 면계(面界)를 이루는

경호천(鏡湖川) 및 그 지류인 월곡천(月谷川)으로 흘러든다. 토

질은 식질(埴質) 내지 식양질(埴壤質)의 적황색토 및 사양질 내지 식양질의 암쇄토(岩碎土) 등이다.

얼마 안되는 경지에서 식량작물을 비롯하여 마늘·양파 위주의 경작이 이루어지며, 특산품으로 흑돼지가

사육되고 있으며 내화 도가니를 생산하는 요업공장이 있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양촌리(陽村里)에서

청읍 및 거창 방면으로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584m봉(10:34)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오늘은 지난주 화요일 서화(장령)지맥 3구간 때 처럼 강한 바람이 거세다.

안부(10:36)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이어지는 맥길로 향한다

송의산 갈림길(612m:10:48)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송의산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좌측으로 선답자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조금만 가면 족보가 있는 628.9m봉이 있다

송의산 갈림길에 베낭을 벗어놓고 628.9m봉으로 향한다

정상에 암릉이 있는 628.9m봉에 도착한다

628.9m봉(10:54)

628.9m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

언제봐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늘 어머니의 젖가슴만큼이나 포근한 지리산

善人이나 잡놈이나 가리지 않고 보듬어 주는 지리산...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에 부탁한다

사람들을 다 받아주되 정치하는 인간들은 제발 사절해주소

민초들을 온갖 형태로 괴롭히면서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인간들

신성한 지리산을 오염시킬까 걱정이 되서...노파심에서 그럽니다

628.9m봉에서 바라본 송의산(松義山:539.0m)의 모습

경남 산청군 오부면 일물리와 오전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의 북사면에서 발원하는 계류는

생초천에 합류하며, 송의산의 북쪽 기슭과 생초천이 만나는 일대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자연마을의

취락이 발달하였으며 조선시대 산청의 주요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송의산에 관련된 기록은 없다.

송의산 자락의 한재마을에는 강처문(康處文)이라는 효자의 전설이 전해진다.

강처문의 부모가 제사 음식을 즐기므로 밤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과 다른 동리를 돌며 제삿밥을

얻어다가 봉양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사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제삿밥을 얻어 집을 나섰는데

그믐밤에 구름까지 끼어서 산길을 헤매게 되었다. 뜻밖에도 두 개의 불빛이 다가와 가까이 보니 범의

두 눈에서 나는 빛이었다. 범이 타라는 시늉을 하여 올라탔더니 쏜살같이 달려서 순식간에 집 앞에 내려놓아

부모를 온전하게 봉양할 수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어 장사를 치르는데, 상여를 메고 강을 건너야 하지만

비가 와서 도저히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강 효자가 대성통곡을 하니 갑자기 강물이 멈춰서 상여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알려져서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하여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워주었다

628.9m봉에서 바라본 남강(진양)기맥 능선에 있는 철마산의 모습

철마산(鐵馬山 :744m)은 경남 산청군 생초면과 거창군 신원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鐵馬山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오는 지명이다.

우리나라 철마산 이름이 20여개 되는데 말발굽형태를 지닌 산이란 뜻도 있고

말을 탄 장군이 탄생한 곳이란 뜻도 있고 여러가지 어원에서 전이된 산도 있어

그 어원은 여러가지인데 아마 여기는 말발굽형태의 철마산이란 뜻일 것으로

추측되고 6.25때 지리산빨치산과 국군토벌부대인 107연대와 대치했던 곳이다.

그래서 맞은편 신원면 대현리에는 빨치산과 내통했다하여 인근주민 700여명이

학살되었던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다시 송의산 길림길(10:55)

내리막길은 철쭉군락지로 맥길은 희미하다

내리막길을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능선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산으로님의 시그널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심하게 흔들려버린 산으로님의 흔적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멋진 나무 한그루가 독립군을 반긴다

562m봉(11:05)

능선을 따라서 가다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1:07)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落花

탁고개(520m:11:10)

산청군 오부면 일물리에서 차황면 양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성황당터의 흔적이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탑고개 아니면 턱고개가 變音이 된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그러나 전국에 산재해 있는 탑고개는 탑이 있는 고개가 아니면 고개턱이 높아 턱고개 또는

탑고개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아마도 후자가 이날까 싶다

탁고개를 지나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12)

매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오늘도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매봉 정상이 나온다

매봉(鷹峰:599.0m:11:26)

산청군 차황면 양곡리와 오부면 일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뾰족한 봉우리에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산패 2개가 있으나 주위의 조망은 전혀없다...산청군의 지료에는 매봉에 기록은 없으나

()의 모양이 매와 같이 영특하게 생겼거나, 산의 모양이 매의 뿌리(주둥이) 같이

생겼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수많은 매봉과 응봉이라는 지명은 산의 지형이 매의 형상처럼 생겨서

붙혀진 지명이 아니면, 임금이 사냥을 할 때 매를 놓아 꿩을 잡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들이

대부분인데 아마도 이곳 역시 그와 같은 뜻이 아닐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매봉에서 능선을 따라서 조금을 진행하다가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등로가 없는 우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가 바람이 흔들린다

조금을 더 내려서니 철제 휀스가 처져있는 약초 재배지가 나온다

산청땅의 산에는 약초재배지가 유난히 많다.

2013년 10월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 이후에 지금은 산청군의 가장 역점 사업이 되었다고 한다

산청이 한방을 역점사업으로 내세운 것은 1991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동의보감”에서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가 이곳 산청출신이라는데서 착안하여 한방과 약초를 중점 사업으로

한다는데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라고 한다.

약초재배지를 벗어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35)

523.9m봉(11:37)

봉우리를 내려와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소나무숲이 시작되는데 어제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공기가 상큼하다

살짝 꺽어져 완만한 능선으로 내려간다

소나무 숲길을 힐링하면서 호젓하게 홀로 걷는 이 맛...독립군의 특권 아닐까

능선으로 올라간다

505.2m봉(11:42)

뚜렸한 소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우측에 또다른 약초재배지가 보이고...

두릅이 나오는 능선으로 올라가니...

궁소가래송이라 불리는 백만불짜리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501.7m봉 정상에 도착한다

501.7m봉(11:47)

전망대란 산패와 국립지리원의 높이가 다르다

멋진 소나무인 궁소 가래송과 쉼터용 벤취가 있는데 차황면 사람들의 전망대인 모양이다

남쪽으로는 오늘 내가 가야할 정수산이, 동쪽으로는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궁소 가래송

이 백만불짜리 소나무를 궁소 가래송이라고 부르는데 산청군 차황면 장위리 궁소마을

위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수령은 대략 250~300년쯤 되었다고 하며

소나무 가지가 두갈래로 갈렸다고해서 가래송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서면 서쪽으로는 민족의 영산이자 어머님 품안같이 포근한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남쪽으로는 웅석봉, 서북쪽으로는 서북쪽으로는 필봉산, 왕산, 동쪽으로는

무학대사가 수행한 곳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뚜렸하게 보이는 곳이다

가래송은 ‘예로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吉地)라고 전해지며 소나무를 만지면 좋은 기(氣)가

흐른다고 하여 사업가, 수험생, 정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라고 한다

소나무가 넓은공터에는 쉼터용 벤취들이 보인다

소나무 저너머로 보이는 정수산은 구름에 가려 신비스럽기만 하다

산청군 차황면에서 전망대라 부르는 501.7m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우측으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약초재배지 철조망이 보인다

내리막길 좌측에는 송전탑이 보이고...

우측에는 약초재배지에서 설치한 곤도라가 보인다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삼거리(447m:11:53)

산청군 오부면 일물리 일물마을에서 차황면 장위리 궁소마을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로

주위에 약초재배지가 많은 탓인지 차량이 다닌 흔적들이 보인다

일물마을로 이어지는 임도 바리게이트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어댄다

송재(450m:11:58)

좌측으로 궁소마을로 내려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이고 성황당에 노거수 3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성황당 아래에 깨져있는 기물(器物)들

송재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청군 차황면 장위리 궁소마을이 희미하게 보인다

차황면에 있는 장위리(長位里)는 조선시대에는 차현면 장위동에 속했으며, 국사봉 아래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자연마을로는 궁소(弓所), 수신촌(修身村), 양촌(陽村) 등이 있는데, 궁소는 양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활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 하여 궁소라 하며 수신촌은 갓재에서 장실 앞으로

흐르는 내인 수신천(修身川) 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신촌이라 한다.

이 마을에 살던 용궁 김씨가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매일 목욕한 곳이라하여 수신천으로 부르게 되었다.

양촌은 궁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햇빛이 잘 든다 하여 양촌이라 한다. 음달말은 장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음지에 있다 하여 음촌 또는 음달말이라 하였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04)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苦行이 시작된다...벌목을 하고 방치된 간벌목으로 인해 산행속도가 느려진다

빡센 오르막을 오르는데 어찌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지 모자가 몇번이나 날아간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풍욕대(風辱臺:12:10)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오석(烏石)으로 된 비(碑)가 서 있다.

처음에 묘지에 있는 묘비인줄 알았는데 ‘風辱臺’라고 적혀있다

‘풍욕대(風辱臺)’를 한자어로 직역하면 ‘바람으로 목욕하는 곳’란 뜻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문신(文臣)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광명시 충현박물관에 있는 풍욕대(風辱臺)란 정자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이원익(李元翼 : 1547 ~ 1634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경세가 중의 한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사형으로 이어질 뻔 했는데

당시에 <영의정 겸 도체찰사(국가비상사태직무총사령관)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선조임금의 어명(御命)으로 임진왜란의 전시상태에서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이원익에게 아무리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외쳐도, '도체찰사'인 이원익의 승낙 없이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 임금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대사

"전하께서 전시 중에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臣)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라는 이원익의 이 말 한마디에 선조 임금도 체념을 하고,

드디어 장장 이틀에 걸린 ‘이순신의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라고 선조 임금이

이원익 도체찰사에게 건넨 이 말 한마디로 이순신장군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대 1 즉 이원익, 딱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그리고 사형을 모면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도체찰사 이원익의 명령을

받았고, 동년 1597년 8월 28일(음력 7월 16일)에 이순신의 백의종군으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칠천량 해전에서 왜적의 기습을 받아 판옥선 대부분이 불타거나 왜군에게 노획 당하면서 원균이 대패하자,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청사에 남는 그 유명한 결사항전의 비장한 각오의 말 한마디 !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의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명량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던 정유재란의 전세를 역전시켰고,

도망가는 왜적을 한 척이라도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이순신의 결기로 인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다

이원익의 혜안(慧眼)이 나라를 구한 셈이다

'풍욕(風浴)'은 '바람으로 목욕한다'는 뜻으로 《논어》의 <선진>편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된 말인데,

공자가 제자 증점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니 증점이 '기수'라는 강에서 목욕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무우'라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이다

풍욕대에서의 오르막 등로는 간벌하고 마구 버려진 간벌목으로 걷기가 엄청 불편하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힘들게 간벌목 지대를 빠져 나온다

조금 편하게 능선을 따라서 간다

뫳돼지 체력단련장인가

무명봉(12:20)

암릉구간이 나온다

암봉의 우측으로 우회한다

암릉구간을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삼각점이 있는 구인산 정상에 도착한다

구인산(九仞山:584.1m:12:28)

산청군 오부면 방곡리, 차황면 장위리, 산청읍 송경리의 경계에 있는 삼면 경계봉으로

정상에는 2개의 산패와 4등 삼각점이 있다...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오룩스맵에서는

동남쪽에 살짝 떨어져 있는 587.0m봉을 구인산이라 표기를 해놓아 헷갈린다

구인산(九仞山)은 ‘길 인(仞)’를 한길, 두길 등 높이를 뜻하는 길 인(仞)자를 사용하는데 ‘아홉 구(九)’

숫자의 끝으로 매우 높다는 뜻이며, 또한 아홉 길이 있는 산이라는 뜻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길은 많이 없어졌고 지금도 길이 많으나 숲이 너무 우거져 조망이나 길 찾기가 싶지는 않다.

산청 북쪽 산으로서 여름 휴가철에 복잡한 유명계곡보다 원시림을 느낄 수 있는 금곡계곡과 함께 하는 산행지다.

 

방곡리에는 느티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조선초기에 이 마을에 청송 심씨가 살았는데 집을 여러 채 지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하였다.

그때에 여러 성이 들어와서 마을이 100호가 넘게 살았다.

 

임진왜란 때에 도승 한 분이 찾아와 김첨지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고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주고 가면서

"이 나무를 잘 가꾸어서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것"이라 하였다.

 

말대로 나무를 심으니 잘 자랐는데 그 후에 김첨지가 아들을 못 낳아서 이 나무에 빌었더니 마침

득남을 하게 되었고 박첨지도 같이 빌어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뒤로부터 마을에는 해마다

이 나무에 고사를 지내고 있다.

안면이 많은 선답자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구인산 정상 삼각점(△산청411/1981재설)

우측으로는 오룩스앱에서 구인산으로 표기해놓은 587.0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갑자기 맥길을 바꾸는 바람에

공부를 안하고 온 탓에 구인산이라 부르는 587.0m봉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쉬운 맘을 가슴에 간직하고 맥길을 이어간다

구인산에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는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비에젖은 소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상큼하다

내리막을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아무래도 찜찜하여 베낭을 내려놓고 오룩스맵에서 말하는 구인산(587.0m)으로 향한다

조금을 더가니 587.0m봉이 까칠하게 곧추 서있다.

아무래도 척지까지 가려면 늦을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비에젖은 등로가 생각보다 미끄럽다

545.2m봉(12:38)

좌측으로 내려간다

미끄러운 등로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벌써부터 잡목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묘지로 내려간다

밀양박공 묘(12:45)

등로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잘 관리된 가족묘지가 보인다

묘지에서 바라본 황매산은 구름에 가려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용궁김씨 가족묘(12:49)

용궁김씨 가족묘가 죽계원(竹溪園)인 모양이다

달임재(12:50)

산청군 산청읍 송경리와 차황면 장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형도상에는 달임재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실제 사람들은 잠시후에 만날 59번 국도에 있는 고개를 달임재라 부른다

달임재는 달음재, 다람재, 달임재, 달현재 등의 여러 지명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란다

고개를 가로질러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59번 국도변에 멋진 정자가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은 늘 신비롭게만 보인다

도로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황매산의 모습

이곳에는 ‘黃梅樓’라는 멋진 정자가 있고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차장 간판에는

‘차황면 달음재 천왕봉 전망대’라고 적혀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달음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59번 도로(393m:12:54)

산청군 산청읍 송경리와 차황면 장위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청읍과 차황을 잇는 도로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주변에는 황매루라는 정자가 있는데 천왕봉전망대라 부른다

황매루에 올라서니 동쪽으로는 황매산, 서쪽으로는 웅석봉과 천왕봉이 보이지만 구름에 가려져

잘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달임재라 부르지만 옛 문헌에는 갓재라는 지명이 보인다

깔끔하게 단장된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도로명 주소는 황매루로이다

능선에 오르면서 뒤돌아본 59번 도로의 모습

뒤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조금전에 지나온 구인산이다.

59번도로 좌측으로 올라간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묘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대밭으로 들어간다

폐가가 보이고...

등로는 사라지고 개고생이 시작된다

뭔 지랄인지?...

천신만고 끝에 대밭을 빠져나와 보니 우측으로 편안한 길이 보인다

비 때문에 산행을 변경한 게 화근이다...공부를 안하고 가면 트랙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에 개고생을 한다

망해버린 과수원옆 능선을 올라간다...여름철에는 힘들겠다

지나온 매봉이 보이고 좌측 아래에 보이는 소나무 한 그루가 궁소 가래송이다

435m봉(13:06)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가야할 정수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독립군의 점심밥상(13:10~25)

바람이 없는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겸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떠난다

등로 우측으로는 천왕봉이 보이고 산청에서 올라오는 구절양장의 59번 도로도 보인다

등로에서 당겨본 산청읍 송경리(松景里)의 모습

송경리는 남산자락 골짜기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송경사가 있으므로 송경이라

하였다고 하며 송경을 셍겡이라고도 불렀다. 오래전 이곳에는 수령이 천년가까이 되는 소나무가 있었고 울창한

송림(松林)이 있었다고 전하며 1914년 3월 1일 임촌리를 병합하여 송경리라고 이름 짓고 군월면에 속했다가

1979년 5월 1일 산청읍 송경리가 되었고 자연마을로는 임촌이 있다. 임촌은 숲이 우거졌다 하여 임촌이라 하였다.

송경 남쪽 어귀에는 강씨열녀문이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송경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매곡(맥골)재(13:27)

산청군 산청읍 송경리에서 차황면 부리 맥골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물탱크가 있다

고개에서 좌측의 농로쪽으로 올라간다

농로에서 바라본 산청군 차황면 부리 아래 매곡마을이 보이고 그 뒤에 보이는 산이 남산이다

매곡은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화가 많이 피었다 하여 매곡이라 한다.

매곡의 위쪽 마을을 상매곡, 아랫쪽 마을을 하매곡이라 한다

농로를 따라서 가면서 잠시후에 오를 452.7m봉을 바라본다

과수원을 조성하려는지 유실수를 심어논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뒤돌아 본 산청군 차황면 부리의 모습

부리(傅里)는 정수산의 북쪽 자락인 남산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산소류지와 매골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곡, 상매곡, 하매곡, 서잿말 등이 있으며, 매곡은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화가 많이 피었다 하여

매곡이라 한다. 매곡의 위쪽 마을을 상매곡, 아랫쪽 마을을 하매곡이라 하며 서잿말은 부리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심재'가 있엇다 하여 서잿말, 또는 서원동이라고도 한다. 양심재유적비와 양심재터와 몽암정이 있으며

우계당(愚溪堂:경남문화재자료 244)이 있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452.7m봉(13:33)

가는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여기서부터 苦行이 시작되는 맥길이다

무시무시한 가시가 가득한 잡목지대이다

살짝 우회를 해본다

무명봉(13:38)

가시넝쿨이 자꾸만 베낭을 땡기는 바람에 시간은 지체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능선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묘지를 이장(移葬)한 듯한 넓은 공터로 내려선다

무명봉(13:40)

무명봉을 지나서 편백나무를 조림한 능선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맞은편에는 지맥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남산(南山:628.2m)을 바라본다

산청군 차황면 부리에 있는 산으로 차황면 마을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붙은 이름이다

부리마을 너머로 황매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12년 2월 19일 남강(진양)기맥길에 걸었던 황매산 능선

그 당시 체감온도 영하 25도 넘어서 강추위에 개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편백나무 조림지 끄트머리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예전에 불이난 모양이다...아직도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다

보라색 제비꽃(꽃말:진실한 사랑)

조금 이른듯한데 조팝나무도 꽃이피기 시작한다.

요즘 인간들이 하도 반칙을 하니까, 꽃들도 원칙없이 피고있다

무명봉(13:48)

다시 잡목들의 거친 저항이 시작된다

능선 우측으로는 임촌소류지와 임촌마을 너머로 산청읍내는 미세먼지로 흐릿하다

임촌(林村)마을은 숲이 우거졌다 하여 붙혀진 마을 지명이라 하였다

무시무시한 잡목지대로 들어선다

맛있게 생긴 참취들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 미치겠다

안부(13:57)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상여봉 갈림길(14:02)

이곳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지고 직진으로 가면 맥길에서 살짝 떨어진

489.8m봉이 있어 거기로 갔다오기로 한다...이 등로는 산청읍내로 이어지는 상여봉,

와룡산 능선이나 등로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489.9m봉 정상으로 향한다

489.8m봉(14:10)

낙엽에 숨어버린 489.8m봉 정상 삼각점

489.8m봉 정상 삼각점(△산청415 / 1981재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돌아온 상여봉갈림길(14:11)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만난 산으로님의 흔적

잠시후에 내려가야할 비득재 너머로 정수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소나무를 식재된 곳을 지나니...

비득재가 나오는데 절개지라 내려갈 수가 없어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비득재(鳩峙:430m:14:20)

산청군 산청읍 부리와 차황면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고개 양쪽마을이 모두 ‘부리’이다

산청읍과 차황면을 잇는 8번 군도가 지나가며 우측엔 꽤나 큰 규모의 농장이 있다

남쪽은 산청읍 부리(釜里)이고, 북쪽은 차황면의 부리(傅里)인데 고개의 지형이

비둘기 모양으로 생겼다고 비득재이고, 일명 삐뜩재라고도 한단다.

고개 우측으로 올라서서 쇠사슬이 처져있는 산나물 체취 체험장쪽으로 올라간다

농장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올해 처음으로 솜나물꽃을 만났는데 너무 급하게 찍다가보니 흔들려 버렸다

정상으로 올라서니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495m봉(14:33)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등로가 없는 철쭉 군락지로 내려간다

지나온 구인산과 매봉이 멀게만 느껴진다

밤나무 농장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14:37)

우측의 묘지쪽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길을 버리고 폐묘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힘들게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4:52)

좌측에 있는 남산으로 향하는 임도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길...등로는 보이지 않고...

593.6m봉(14:58)

좌측으로는 남산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숲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15:01)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573.2m봉(15:04)

가을철엔 송이버섯이 나올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안부(15:07)

무명봉을 넘어서서...

소나무숲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581.5m봉(15:17)

뚝방처럼 생긴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노란색 제비꽃들이 많이 보인다

정수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좌측은 소나무 군락지이고 우측은 측백나무 조림지이다

주위에 고사리들이 많이 보이는 오르막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정수산을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늘 격려 감사합니다

빡세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서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535m봉 갈림길(15:47)

좌측으로는 차황면 철수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조금만 더가면 족보가 있는 535m봉이 나온다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좌측으로도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기에 조금은 헷갈린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에는 예전에 약초재배지였는지 철조망 말뚝이 간간히 보인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홀로걷는 범여를 반긴다

829.1m봉(15:52)

스마트폰의 오룩스맵에서는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나오는데 억새밭을

보물찿기 하듯 찾았지만 실패를 하고 갈 길이 바빠서 정수산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은 구름에 휩싸여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앞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489.8m봉에서 이어진 상여봉과 와룡산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줌인해 본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鐵水里)의 모습

철수리는 효염봉과 정수산 사이에 위치하여 산지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철수와 평촌이 있는데 철수는 철수리의 본마을로 무쇠(철)가 났다고 하여 새장골 또는 철수라 하였다.

평촌은 철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평평한 곳에 있다 하여 평촌 또는 팽지말이라고 한다. 베틀굴 동쪽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굴이 있다.

정수산으로 가는길은 생각보다 별로 좋지않다

바로 앞에는 효렴봉에서 이어지는 능선 뒷쪽으로는 구름에 가려진 황매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효렴봉(孝廉峰:648.0m)은 산청군 차황면 내수리와 상법리, 철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 아래에서 보면 크고 작은 절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산 아래에서 많은 효자, 효부가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또한 황매산과 부암산이

연출하는 철쭉들의 향연과 기암괴석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산으로 산 아래에서 보면

장수가 투구를 쓰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이 산에는 3개의 천연석굴이 있는데 베틀굴, 박쥐굴, 누운굴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효렴재 이경주

(孝廉齋 李擎柱:1500~1597)의 유허비가 있는데 효림재 선생은 경주(월성)이씨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당시에 장수한 유학자인데 1534년 효림봉 아래 우사리에 기거를 하면서, 동시대에 산청

덕산에 머물던 남명 조식 선생과 교우했고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덕계 오건(德溪 吳健:1521~1574)

등과 함께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만년에 왜적이 침입하자, 효렴산에서 피난하며 정상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대성통곡하고 절을 했다고 한다

일찍이 시를 지어 “아들의 직분은 효(孝)를 다함이요, 선비의 직분은 청렴을 지킴이니

청렴하면 누가 나를 모욕할 것이며, 효도하므로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가르침을

남겼다고 하는데 효렴봉의 지명도 효와 청렴을 강조했던 효렴재선생의 호에서 비롯된 듯 하다

철마산~바랑산~소룡산~밀재~감악산~월여산~황매산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환상적이다

밀치 아래쪽에 있는 산청군 차황면 실매리...2015년이던가 실매리에 있는 금포림에서 열린

장사익 선생의 찔레꽃 자선음악회에 팬카페 회원으로 왔던 기억이 아련하다.

참고로 범여는 장사익 선생의 열혈 팬중에 한 명이다

그 당시 찔레꽃이란 노래로 열창하시던 장사익 선생 ...2018년 하남시 공연이후로 뵙지 못했다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중략)/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찔레꽃처럼 사랑했지/찔레꽃처럼 살았지/찔레꽃처럼 울었지/당신은 찔레꽃 /

찔레꽃처럼 울었지/(장사익의 노래 찔레꽃가운데)”

숲이 무성한 능선을 따라서 간다

지도상에는 이곳을 정수산이라 나오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만 가득하다

정수산(淨水山:829.8m:16:12)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와 산청읍 내수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산(淨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산에 있는 정수암이라는 절에 물이 맑고 좋았다 하여 산을 정수산이라고 하였으며

덕유산에서 발원한 지맥(支脈)이 금원산과 황매산을 거치고, 황매산의 일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정수산과 와룡산을 일으켰으며 차황, 산청, 신등면의 꼭지인 삼면 경계봉이기도 하다

정수산의 맥은 다시 남쪽으로 둔철산과 월명산으로 이어졌으며 정수산에서 북쪽으로 남산을 거쳐 평지로

잦아든 일대에는 차황면 소재지가 위치하였고, 서사면의 지맥이 남강과 만나는 일대로는 산청읍 소재지가 입지하였다.

옛 명칭은 척지산(尺旨山)이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산청)에 "척지산은 현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의 단성현에는 "척지산에 철이 산출된다."라고 적었다. 『여지도서(보유)』(단성)에서도 "산청의

경계이다.

황매산에서 맥이 와서 척지촌(尺旨村)의 주맥이 되었다."라고 자세한 내맥을 기록하였다. 『해동지도』(산음),

『지승』(산음) 등에 척지산이 표기되었고, 『해동여지도』(산청)과 『1872년지방지도』(산청)에는 척지령(尺旨嶺)이

표기되었다.

정수산 자락에는 651년(신라 진덕여왕 5)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율곡사(栗谷寺)가 있다.

율곡사 아래로 암벽(새신바위)가 있는데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에 올라 터를 정했다고 한다.

율곡사에는 법당의 단청을 그리던 화공이 법당 안을 들여다보자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번주 원래 계획은 대전으로 내려가서 갑천(식장)지맥 마지막 구간을 끝내려고 했는데

일요일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갑작스레 계획에도 없었던 공부를 안하고 이곳을 오는

바람에 많이 헷갈린다...언뜻 본 산행기에는 분명히 정수산 정상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수산 정상석은 커녕 흔한 선답자들의 시그널 하나없이 누군가가 코팅지에 ‘정수산’이라는

표식이 유일하다...표시석이 없어 행여나 알바를 했나싶어 산으로님에게 전화를 했더니만

분명히 맥길에 정상석이 있다고하여 조금을 더 가보기로 한다

폐헬기장(16:14)

이곳부터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정상이란 표시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정상은 정수산을 말한인 듯 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내수마을 갈림길(16:20)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內水里)는 가재산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정곡천이 발원지이며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흔한 골짜기라고 하여 물안실 또는 내수라 하였다.

달성 서씨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 농사를 지엇는데 땅이 기름져 수확이 좋았다고 전해지자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연마을으로는 풋가실이 있는데 풋가실 마을은 내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부락 근처에 풀이 많이 우거졌다 하여

풋가실 또는 초수라 하며 풋가실 앞에는 역시 풀이 많다 하는 풋가실들이 있으며 풋가실 동쪽 산에는 조선 명종 때

홍문관 전한과 덕계 오건이 공부하던 곳이라는 정수암터가 있다.

낙엽이 수북하고 등로가 희미한 맥길을 이어간다

쉼터(16:24)

오후에는 바람이 많이 잦아들고 햇볕이 따스하다

이곳은 지대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아직도 春來不似春이다

안부(16:26)

잡풀로 인해서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수산 전망대라는 팻말이 나온다

전망대 바위(16:30)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니 내 고향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이 아련히 보이고 능선에 있는

풍력발전기와 그 옆으로 한우산과 삼성산 능선이 펼쳐지지만 똑닥이 카메라의 한계로

뚜렸한 그림을 잡을수가 없다...내가 고향을 떠난지가 어언 5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고향이란 단어도 추억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故鄕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을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전망대 바위에서 당겨본 효렴봉(앞)과 황매산의 모습

황매산(黃梅山:1,113.1m)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릴만큼 뛰어난 암릉과 멋진 평전이 자리를 잡고있다.

백두대간 덕유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황매산은 무학대사가 수도를 한 산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풍광이 활짝 핀 매화꽃잎 모양을 닮아 황매산이라 부른다.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5월이면 수십만평의 고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선홍색깔의 철쭉꽃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황매산은 효의 산. 3무(無)의 산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왕사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도을 할 때 어머님이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리면서 칡덩굴과 땅가시에 발등이 긁혀 넘어지고

상처가 나고 뱀에 놀라는 일이 자주 있어 황매산 산신령에 100일 기도를 드렸다. 이후 지금까지

뱀과 땅가시 그리고 칡덩굴이 자라지 않아 3무(無)의 산이라 한다, 무학대사의 어머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은 전설로 이어져 오고있다. 무학(無學)의 의미는 불경에서 더 배울것이 없는 경지를 뜻 한다.

황매산은 중국 황매산이 육조 혜능선 사가 전법계을 받은 산의 이름과 같다.

전망대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우측으로 지리산 천왕봉 조망대란 팻말이 보이나

나뭇가지에 가려져 천왕봉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등로 가운데 산청 산사랑 산악회에서 세운 정수산 표시석이 나온다

가재산(부봉:841.3m:16:33)

가재산은 경남 산청군 척지리에 위치한 산으로 제2 정수산, 부봉이라 말하는데 지도상에는

이곳이 가재산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다.

가재산은 산의 모양이 가재 같다 하여 가재산으로 부르고, 제1 정수산(淨水山/829.8m)보다는

더 높으나 바로 부근의 봉(峰)으로 제2 정수산과 부봉으로 부른다.

인증샷

이곳부터는 제도권 등로인지 등로는 아주 좋다.

가재산을 지난지 얼마 안되어 또다른 정수산의 표시석을 만난다

쌩뚱맞은 정수산 정상석(16:35)

산청군에서 정수산이라 부르는 가재산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척지마을로 완만하게 내려갈 수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곳에 부산 선운산악회라는

곳에서 세운 정수산 표시석...정상석이나 이정표 하나를 세울때도 철저한 고증을

거친 다음에 세워야 정상이거늘...아무런 공부도 없이 무조건 설치하면 안되죠

기왕 세울거면 지도상에 정수산이라고 표기된 829.8m봉에 세웠으면 훨씬 나았을텐데...

척지마을 가는길이 2군데라 헷갈린다...율곡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내리막길로 향한다

좌측은 잣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여기서부터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잣나무 조림지 사이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오니 안부 사거리가 보인다

안부사거리(630m:16:50)

안부사거리 이정표

율곡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NO4 송전탑(16:53)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7:00)

좌측의 나뭇가지 아래로는 율현저수지가 보인다

멋진 암릉을 만나고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로 올라가는데 허기가 지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힘들게 능선을 올라가니 삼각점이 있는 719.7m봉이 나온다

719.7m봉(17:08)

719.7m봉 정상 삼각점(△산청424/ 1981재설)

나도 인테리어업을 하는데 어디 인테리어 산악회인지?

내가 소속되어 있는 인테리어 경영자협회 산악회는 표시석을 설치한 적이 없는데...

이곳을 준.희 선생께서는 세신바위라 해놨는데 조금 헷갈린다

719.7m봉에서 바라본 세신바위(鳥神巖)

세신바위 아래에 있는 율곡사의 전설

율곡사(栗谷寺)의 대웅전을 중창할 때 한 목수가 찾아와 일을 자청했다고 한다.

마침 목수를 찾고 있던 스님은 흔쾌히 그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

그런데 이 목수는 석달이 지나도록 목침만 다듬을 뿐 다른 목수들처럼 터를 고르고 기둥을 세우는 등

절을 지을 생각은 하지 않는 듯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스님은 목침 하나를 숨겨 보았다.

한없이 목침만 만들고 있는 목수가 어떻게 하는지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며칠이 지나서 보니 하루는

목수가 목침을 세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목수가 연장을 챙기더니 떠나려고 했다. 스님이 까닭을 몰어보니

계획을 세우고 목침을 만들었는데 세어보니 하느를 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큰 절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는 떠나겠다는 것이다.

스님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설명들은 목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공사에 열중한 끝에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했다. 그래서 율곡사를 목침절이라고도 한다. 이어서 단청이 시작되었다.

목수는 안으로 들어가며 7일 동안은 아무도 건물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고 스님께 당부하였다. 그

러나 스님은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지은 목수가 법당안은 얼마나 장엄하게 짓고 있는지 궁금하여 견

딜수가 없었다. 스님은 급기야 7일째 되던 날 문틈으로 법당안을 그만 훔쳐보고 말았다.

그 안에는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다니면서 단청을 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낀 새가 단청을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바위가 되었느데 그 바위를 새신바위(鳥神巖)라고 한다.

다음구간에 걸어야할 둔철산(屯鐵山:823.4m)의 모습

준.희 선생은 이곳을 왜 세신바위라 불렀나?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베낭털이를 한다.

베낭털이라 해봐야 초코파이 하나에 마지막 식량인 우유하나가 전부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미끄러운 등로를 내려가는데...

반가운 산으로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세신바위 갈림길(17:17)

좌측으로는 세신바위와 율곡사로 가는 방향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여기서 많은 고민을 한다...대다수의 맥꾼들이 세신바위로 향했는지 시그널이

모두 그쪽으로 걸려 있지만 귀경하는 교통편도 걱정이고 체력도 바닥이 나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세신바위 가는 걸 과감히 포기하고 우측으로 향한다

그래 過猶不及이라 하지 않았던가...

내려가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세신바위 갈림길에서 내려오니 동남쪽으로 9년전에 걸었던 남강(진양) 기맥 능선의

금성산~악견산~허굴산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오니...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서 척지마을로 내려간다

사면길로 내려간다

雌雄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능선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7:25)

등로는 희미해지고...

안부를 지난다

523m봉(17:3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소나무 숲사이로 내려간다

척지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지리산 동쪽에 위치한 웅석봉이 보인다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척지리(尺旨里)는 둔철산 위에 위치한 마을로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산 위에 마을이 있으므로 자머리, 재머리 또는 척지(尺旨)라 하였다고 한다.

척지마을은 예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척지가 있다.

척지는 척지리의 원마을로 역시 자머리 또는 재머리로도 불린다. 척지 서쪽에는 안동 권씨의 묘인 장군설이 있다

우측의 척지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직진의 대밭길로 들어선다

다음구간에 오를 둔철산을 바라보며 대밭길 가운데로 내려간다

대밭길을 빠져나와 척지마을길로 내려간다

마을에서 뒤돌아 본 841.3m봉(정수산 표시석)의 모습

좌측의 고개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늘 유일한 인증샷

척지마을(17:45)

산청군 산청읍 척지리와 신등면 모례리의 경계에 있는 척지마을 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고개 좌측에는 척지소류지라는 저수지가 있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는 쉼터를 만들어 놨다.

이곳은 산청읍내와 가까운 거리라 산청읍에서 서울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하루에 5번

운행하는데 06:33, 10:55, 13:35, 16:55, 23:03 이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내린 원지로 가야할 듯 싶다

느티나무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택시 한대가 지나가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마을에 물건 하나만 갔다주고 올테니 잠깐만 기다리다라고 한다

잠시후에 택시가 도착하여 서울가는 교통이 좋은 원지로 향한다

원지 버스정류장(16:25)

척지마을에서 산청택시를 타고 원지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진주에서 서울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온다... 택시 기사분이 내가 버스를 잡아놓을테니 빨리

버스표를 끊어 오라고 한다...대합실에 가서 표를 끊어려니 매진이란다

다시 밖을 나와서 기사양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택시 기사분에게 미터기 요금

22,000원을 지불하려고 하니 어차피 자기는 척지마을에서 읍내까지 빈 차로

갈뻔 했는데 손님을 태우고 왔으니 고맙다고 하면서 15,000원만 달라고 한다

아!...아직도 살만한 세상이구나

원지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원지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있는데 버스표가 거의 매진이다

지금 시간이 18시 30분인데 잠시후에 올 18시 50분 버스표도 매진이라 표가 없고,

19시 20분 버스표 한 장이 남아 있다고 한다...버스표를 예매하고 식당으로향한다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육계장에 맥주 한병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원지 버스정류장

10분정도를 기다리니 진주에서 19시에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