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6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간간히 불어오는 션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7.2km / 8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지맥팀 10명과 함께
☞ 산행코스: 산태백재-전원주택-김해김공 묘-483.2봉-안부-537.1봉-무명봉-암릉-무명봉
안부-임도삼거리-암봉-안부-기양산 남봉-안부-기양산-암봉-안부 쉼터-이정표
647.6봉-쉼터봉-수선산-642.5봉 갈림길-안부-501.9봉-442.3봉-이실고개-420.8봉
506.4봉-무명봉-무명봉-임도삼거리-골마마을 갈림길-대고개(수정고개)-무명봉
그린레미콘 공장-상주터널 위-버스 정류장-석거실 고개-신오리(석거실) 버스 정류장
452.3봉-갈림길-무명봉-362.9봉-임도 갈림길-379.8봉-409.4봉-무명봉-갈림길
목장-무명봉-329.5봉-묘지-주아현
☞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공성면, 청리면, 낙동면 / 구미시 무을면, 옥성면
내가 지상파 TV뉴스를 안 본지가 2년은 훨씬 넘은 듯 하다.
왜냐고?... KBS를 비롯해 공영방송이라는 곳들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지는 못할망정 홍보기관
노릇을 하고 있으니 볼 맛이 나겠는가...수신료를 안내고 싶지만 전기요금에 포함되니 안 낼수도 없고...
KBS는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처럼 존경받는 매체는 될 수 없는 것인가
그 대신에 신문 4가지를 정기 구독하며 정독을 하는 편인데 신문을 보니 나라가 정말 큰일이다 싶다.
경제는 둘째치고 국가 안보도 구멍이 나 북한의 조그만 목선이 삼척항에 들어와 어부들이 항구에 활보를
하고 다니는데도 모르고 있고... 그것을 민간인들이 신고를 한 다음에야 부산을 떨며 감추기에 급급하지만
국방장관, 동해를 담당하는 23사단장, 해군 1함대 사령관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진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이 나라에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 누굴믿고 두 다리 뻗고 자라는 얘기인지...
하긴 내가 더 큰일이긴 하지만 5월부터 매출이 곤두박질 치더니만 6월은 개시도 못했다.
일이 없어 편하긴 하지만 지출은 그대로이니 결국은 마이너스 인생이 아닌가.
이게 요즘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현실이건만 이 정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힘없는 민초들은 답답하다
최저 임금 때문에 천정 부지로 오른 인건비... 공사를 해봐야 남는 것도 없거니야 해도 재미가 없다.
요즘 일을 하며 오너는 현장해서 막일을 하는 잡부보다도 수입이 적으니 흥도 나질 않는다
유일한 樂이라면 매주 이렇게 걸을 수 있는게 樂이고 희망이다.
2주만에 만나는 맥꾼들과 이른 아침에 조우를 하여 경부고속도로에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남상주I.C를
빠져나와 김천, 거창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에 들어섰다가 다시 68번도로 바뀌어 들머리인 산태백재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산태백재(山太白峴:160m:09:15)
상주시 공성면 산현리와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구미와 상주를 잇는 68번
도로가 통과하며 고개 옆에는 재일교포가 기증한 소공원과 공성면과 무을면 경계 표지판이 서 있다.
상주시 공성면의 마을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공성면 산현리(山玄里) 산태백(山太白)재 【고개】
산태백이. 《‘태백’은 ‘태백성(太白星)’의 준말이다.》
공성면 산현리(山玄里) 산태백이 [산태백] 【고개】
920번 지방도로가 옥산 북쪽의 3번 국도에서 갈라져 동쪽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딱박골로 넘어 가는 고개.
해발 180m 가량된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산대백’은 경상도 표현으로 ‘높은 고개’를 뜻하는 모양이다.
산태백 고개에서 바라본 무을면 안곡리의 모습
안곡은 우리말로 안골 안실인데, 골 안쪽에 깊숙이 들어 있어 불리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교통
요충지로 성황을 이루어 1960년대에는 안실 마을에 마방(馬房)까지 운영하였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이 밖에도 안곡역 시절을 헤아릴 수 있는 자료가 더러 있는데, 안곡1리 마을회관 앞에 2008년 복원된
우물과 마을 입구의 서낭당과 느티나무로 구성된 마을숲이다. 역터에서 수다사로 향하는 닥밭골
(저전 : 楮田)에는 광서(光緖) 15년(1889)에 명정된 효자 김광택(金光澤)의 정려비와 비각이 있어
이리로 옛길이 지났음을 일러준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걷던 길이다
무을면 안곡리 옛길은 들어오는 길이 두 갈래이며, 한양으로 가는 길도 두 갈래 인데, 우선 12㎞가량
떨어진 선산 화조역에서 오는 길과 김천 개령 쪽에서 우태산(옛 복우산) 이티재를 넘어오는 길이 있다.
이 길을 거쳐 온 한양 나들이객들과 선비들은 무을면 안곡리에서 하루 밤을 지낸다.
안곡1리 마을을 통과해 삼시봉(구미·김천·상주시 경계산) 길마재를 넘어 추풍령으로 가는 길이 있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또 연악산 지류 흰티재를 넘어 상주 청리면을 지나
추풍령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 두 개의 길은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이 꺼리는 길이었다고 한다.
추풍낙엽처럼 과거에서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국도 68호 선으로 길이 나 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수다사에서 안곡2리 송정지를 휘감고 돌아 문경새재로 가는 길만이
아련하게 남아 있으며, 산 속에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남아 있는 오솔길이 조선시대 500년을 지나
현재까지 생명력을 유지해오고 있는 길이다.
이지역 출신 재일교포가 기증했다는 소공원
지도에는 이곳에 수준점이 있다고 표시가 되어 공원을 헤맸지만 결국은 수준점을 찾지 못했다
지맥길은 좌측 능선이지만 잡목으로 인해 도저히 갈 수가 없고 선답자들도 우회를 했기에 우리도 우회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22)
기존의 맥길을 버리고 논두렁을 지나 기양산으로 향하는데 몇분만 빼고 10여전부터
맥길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산행만 시작하면 인정사정이 없다... 다들 왜 그리 급한지...
오늘도 이곳에서 얼굴을 보고 산행이 끝난후에 봤으니...다들 의리는 전당포에 잡힌 모양이다
三白(곶감, 쌀, 누에고치)의 고장 상주라 그런지 감나무가 유난히도 많이 보인다
비가 오질않아 논이 죄다 메말라 있다
동료 산꾼들은 진작에 도망(?)을 가버리고 오늘도 조여사만 남아 느림의 美學을 즐기면서 걷는다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오와 박 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들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젹셔도 좋으련,
아이야,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전원주택(09:32)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숲으로 들어선다
숲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선답자들의 시그널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좌측으로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올라선다
솔나물(꽃말: 고귀한 사랑)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나 들에서 자란다.
모여 나는 줄기는 높이 60~120cm 정도이고 곧추 자라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8~10개가 돌려나는 잎은 길이 2~3cm, 너비 1~3mm 정도의 선형으로 뒷면에 털이 있다.
6~8월에 원추꽃차례로 달리는 꽃은 황색이며, 2개씩 달리는 열매는 타원형이다.
관상용, 밀원용, 사방용으로 심기도 하며 봄에 어린순을 삶아 나물로 먹거나 다른 나물과 섞어
데쳐서 된장이나 간장에 무쳐 먹거나 쌈장에 찍어 먹는다
대머리 묘지 2기가 연달아 나온다
김해 김공 묘(09:48)
긁은 땀을 쏟은 다음에야 마루금으로 복귀한다(09:52)
오늘 날씨는 참으로 좋다...지난 구간의 백운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첫 구간과 마친가지로 초반의 빡센 오르막 초반에 진을 다 뺀다
조여사님의 발걸음도 무거워 보인다...어젯밤에 모친 기일이라 잠을 한 숨도
못자고 오셨다는데 그래도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급경사로 올라서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는데 구미 둘레길 코스란다
다시 능선을 올라서고....
암릉 구간을 지나고 다시 빡세게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483.2봉에 도착한다.
483.2봉(10:17)
들머리에서 1.5km 거리밖에 안되는 거리를 55분에 걸쳐서 힘들게 올라온다
483.2봉 삼각점(△418재설 / 78.11 건설부)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공성면 무곡리(戊谷里)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지명의 유래는 기양산 밑이 되어, 물이 좋고 많다 하여 무곡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무곡,
고사리골, 새곡, 아가리바웃골, 핑바웃골마을 등이 있다. 무곡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무곡리의 그것과 같다. 무실 또는 수곡이라고도 불리우며 고사리골
마을은 고사리가 많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곡마을은 무곡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아가리바웃골마을은 입을 벌린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핑바웃골마을은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하여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28호인 상주 무곡리 삼층석탑 (尙州 茂谷里 三層石塔)이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2년 6월 마을 주민들이 발견하여 산 아래로
옮겨 놓았는데 탑신(塔身)의 1·2층 몸돌이 없어지긴 하였으나,그 외에는 완전한 3층 석탑으로 추정되는
부재를 갖추고 있었고, 1991년 탑을 복원하여 다시 세우면서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이라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으며, 남아 있던 부재들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0:19)
다시 오르막길
희안하게 생겼네
헬기장터가 있는지 오르막길에 보도 블럭이 보인다.
537.1봉(10:28)
537.1봉 정상에는 넓은 폐헬기장이 있고 우측으로는 옥루봉 가는 길이고 맥길은 좌측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옥루봉 아래에 있는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는 안실(安室), 저전(楮田), 도가(都家)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안실은 영남의 상인들이 부구 지방으로 오갈 때 이곳에서 말의 짐을 풀고 편안히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저전은 마을을 개척한 선비가 닥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문종이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닥박골이라고도 한다. 도가는 술도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도간이라고도 한다. 현재 술도가는 없어지고
안곡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조선시대에 김천찰방 관할로 기마 2필, 복마 4필, 역사 62명, 노(奴) 20명,
비(婢) 5명으로 운영하던 안곡역이 설치되기도 하였으며 유적으로 김광택 효자비가 있다.
해마다 마을 뒤 산제당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1977년부터 폐지되었으며, 마을 앞 조산걸에는 돌무지가 아직 남아 있다.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안부로 내렸섰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무명봉(10:36)
힘겨루기?
간간히 불어오는 션한 바람...산행하긴 딱 좋은 날씨이다
뚜꺼비 바위?
암릉(10:47)
무명봉(10:55)
안부(10:57)
임도 삼거리(11:07)
우측으로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수다사(水多寺)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유난히 구미지역 산악회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암봉(11:10)
암봉에서 바라본 상주지역
상주(尙州)는 옛날 부족시대의 큰 고을이던 사벌국(沙伐國)을 신라 점해왕(沾解王)이 정벌하여
"사벌주(沙伐州)"로 고쳤으며, 당시 신라의 주도(州郡)중 最上部에 있다는 뜻으로 법흥왕때
"上州"로 고쳤다가 한자어 "上(높다)"이 "尙(숭상하다)"으로 통하기 때문에 경덕왕이 "尙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BC 58 년경 지금의 영남지방의 상주라는 곳에는 사벌국이라는 씨족국가가 있었다.
철을 생산하여 왜(倭)와 대방군(帶方郡),마한(馬韓)에 수출을 하기도 한 고대 국가로서
오늘날 낙동강의 이름의 유래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낙양이라는 마을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낙동강이라고 불러서 오늘날의 낙동강이 된 것이고 , 경상도라는 경주와 상주의 '경'과 '상'을
합쳐서 경상도라는 새로운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상산은 영남대로의 중심축이었다. 모든 길은 반드시 상산을 거쳐 문경새재를 거쳐 북쪽으로 ,
남으로는 낙동강을 통하여, 낙동강을 거쳐 지나가야만 하는 반도의 중심무대였다.
공검지라는 큰 못이 삼한시대에 이미 건립되었고 한반도의 김제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상주의
공검지(공갈못 )라는 거대한 농경문화의 상징물이 건립된 것이다.
낙양(洛陽, loyang.net ),사벌 (沙伐, Sabul.com),상산(商山, Sangsan.com),사불(沙弗,, 沙佛,Sabul.com ),
상락(上落),상주(上州),상령(商嶺), 사량벌(沙梁伐), 사나벌(沙那伐 )은 모두 상주( 尙州 )의 고대 지명이다.
안부(11:13)
올해 처음으로 나리꽃을 만난다.
다시 빡센 오르막길을 오른다
기양산 남봉(703m:11:20)
이곳으로 북동쪽 신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기양산 남봉 아랫쪽에 자리잡고 있는 수다사의 모습
수다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12번지 연악산(淵岳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통일신라시대에 하동 쌍계사를 중창한 진감국사 혜소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도리사와 더불어 선산 지역의 가장 오래된 절 가운데 하나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계속해서 법등을 이어왔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승군이 결집하여 호국법회를
열었던 호국사찰이었으며, 경내에는 고로쇠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등 나무와 꽃이 가꾸어져
있으며 현재 다양한 법회를 통해 지역주민과 함께 하고 있는데 지정문화재로는 명부전을 비롯하여
전부 4점의 지방지정문화재가 있다
수다사(水多寺)란 많은 중생의 청정법계도량(淸淨法界道場)이라는 뜻이니 여기서의 ‘수’는
관음보살의 감로법수(甘露法水)를 말한다. 감로는 관음의 모든 중생의 고통과 징악한 병고와
위급할 때에의 구세수(救世水), 곧 감로수를 의미한다. 절 주변에는 무을의 안곡지(安谷池)를
비롯해서 상주의 청상지(淸上池), 선산의 대원지(大圓池) 등 못이 특히 많은 것도 절 이름인
‘수다’와 일맥상통하고 있어 신비롭다.
수다사 일주문...사진 펌
구미시 무을면의 수다사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민속놀이 무을풍물(舞乙風物)이 있다.
무을풍물은 전형적인 전투농악형태로서 북가락이 웅장하고 장쾌하며 소고놀음이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쇠4명, 징4명, 북8명, 장구8명, 소고12명 등 총 45명 내외로 질굿,
반죽궁 등 총 12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승계보가 뚜렷하고 우수한 예술성은 물론 박진감이 넘치며
행위가 다양하여 영남풍물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이 무을풍물의 발원지는 구미의 북서쪽에 위치한 수다사(水多寺)로서 수다사는 상주시와 경계의
연악산 99곡 지맥이 합쳐져 있는 명산터에 자리잡은 신라 고찰로서 9세기경 신라 진감국사가 연악산
상봉에 백련(白蓮)이 한 송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蓮花寺)라 하였고 후에
수다사로 개칭하였다
남쪽으로는 금오산과 영암산이 아련히 보인다
금오산(金烏山:976m)을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지명의 유래는 중국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문종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불교의 포교 및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다.
이는 금오산의 품격과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역사적 근거라 하겠다.
현재 불리는 이름인 금오산은 고려 후기부터로 되는데 이 산에 금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육당 최남선의 학설에 의하면 이러한 설화는, 모계(母系) 씨족사회(氏族社會)에서 출중한 단군을 임금으로
모시는 데에 건국 신화가 필요하듯이, 위대한 인물에게 왕손의 칭호를 붙여야만 했던 것이라 여겨진다.
곰은 ‘웅(熊)’이 아니라 ‘검’ 또는 ‘금’에서 오는 말로, 임금의 뜻을 가진 말이라 한 것처럼 곰의 후손설과 같은 의미,
즉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또 금오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굳이 ‘숭(崇)’자를 붙여 중국의 숭산에 비유한 것은 생김새가 비범한 데서
유래할 수도 있는데 금오산을 칠곡과 인동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거인산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와불산이라고 하였으며, 선산에서 금오산을 보면
끝이 뾰족하여 붓끝 같으므로 필봉(筆峰)이라고 불렀다
북서쪽으로는 구병산과 속리산...그리고 늘 산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백두대간이 보인다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도 아련히 보이고...
기양산 남봉 정상에서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진짜배기 기양산으로 향한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절개지로 내려선다
안부(11:20)
기양산 (岐陽山:706.8m:11:24)
상주시 공성면과 청리면, 그리고 구미시 무을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구미 무을면에서 세운
'연악산'과 상주 청리면에서 세운 '기양산' 등 2개의 다른 이름으로 된 정상석이 있어 상당히 헷갈린다
연악산은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산이고, 기양산은 현재 지형도에 표기된 이름이다.
기양산 뒷면에는 일명 조양산이라 기록이 되어 있다
구미 무을면에서는 “淵岳山” 이란 정상석을 세워 놨는데 기양산과 연악산이라니
이것도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지...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증샷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을 향하는데 이 이정표는 어디 마을회관을 말하는지?...
암봉(11:34)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 쉼터(11:38)
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수다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산로 폐쇄 팻말이 보인다
점심식사(11:45~12:05)
조 여사님과 함께 점심과 휴식을 겸해 커피한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정표(12:07)
이정표(←마공리 4.2km,↑수선산 1.4km,→기양산 0.5km)와 안내도가 있고 맥길은 우측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직진으로 가면 상주시 청리면 마공성이 있다는 스테인레스 안내판이 있다.
상주시 청리면 홈페이지의 마을 지명 유래를 보면
청리면 마공리(馬孔里) 마공성(馬孔城) [성 둑] 【산성】
마공리 산126번지 마공 마을 뒤에 있는 토성. 청리면과 구미시 무을면 사이에 있는 기양산에서 북쪽
마공리를 향해 갈라져 나온 산등성이의 성둑에 있다. 성은 해발 531m 고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향하는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가 해발 380m까지 에워싼 테뫼식 토석성이다. 산등성이의 서쪽으로
마공 마을이 멀리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의 급경사면 바로 위쪽 두 곳을 석축 하였는데, 모두 50여m
정도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토축(土築)했다. 다만 531m 고지 부근에 축성의 가능성을 추정한다면 이
성의 둘레는 1,050m 정도가 된다. 언제 축성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군의 전초기지 또는
상주 방어를 위하여 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오늘은 공기가 참으로 맑다...숨쉬기가 한결 편안한 느낌이다
647.6봉(12:15)
앙증맞은 암릉구간을 지나고...
쉼터봉(12:24)
다시 오르막길
수선산 (修善山:683.6m:12:35)
상주시 청리면과 낙동면, 구미시 무을면의 경계이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연악산'이라는
이칭으로 기록되고 통용되었으며 관련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은
선산도호부의 서쪽 32리에 있는데, 이 산의 북쪽 지맥은 곧 상주의 갑장산(甲長山)이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선산)에는 "연악산(淵岳山)은 속리산에서 뻗어 나온다."라는
기록이 있어 산줄기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해동지도』(선산),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선산)에 '연악산(淵岳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선산)의 무을면에는
연악산(淵嶽山)은 상송동에 있는데, 수다사(水多寺) 뒤에 있는 산이라는 기록이 있어 연악산의 표기자
일부가 '악(嶽)'으로 표기된 것과 함께 산 아래에 수다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수성산(水城山)을 수다산(水多山), 수선산(修善山),
연악산(淵岳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상주군 낙동면과 선산군 무을면 경계에 있는 산.
꼭대기에 못이 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칭인 '수성산', '수다산'과 함께 '수선산'이라는 현재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수선산의 서남쪽 기슭에 1551년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신잠(申潛)이 세운 수선서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청상못둑 아래로 이건했는데 연산군의 포정을 피해 은둔 수도한 선비가 많았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라 한다
수선산 정상 삼각점(△304 재설 / 78.10 건설부)
좌측으로는 갑장산(돌티고개)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수선산 내리막 아랫쪽에는 벌목지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복우산(伏牛山:509m)의 모습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와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와 옥관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평오 마을 동쪽과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꼭두점 마을의 서쪽, 낙동면과 경계를 이루는 높이 508.7m의 산으로삼각점이 있다.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고 풍수지리적인 의미로 지명을 풀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내려오는 지명이라면 ‘:1의 산’ 즉, ‘복의 산’이라는 뜻이 된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
642.5봉 갈림길(12:55)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족보가 있는 642.5봉이 있지만 갈길이 멀어 그냥 패스한다
642.5봉 갈림길 이정표( →선산임도 1.1lkm. ↑수선산 0.6km, 상주시 청리면)에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 등로는 산악 오토바이가 작살을 내놨다
안부(13:10)
암릉 구간을 지나고...
501.9봉(13:12)
벌목지가 나오고 햇빛이 상당히 따갑다
저 멀리 금오산이 상당히 가까워 보인다
저 금오산 아래에는 참으로 많은 인재들이 태어났다.
진보 좌파 세력한테서는 독재자로 손가락 받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생가가 금오산 아래인
구미시 상모동이며, 자유당 시절 장택상 국무총리, 3공시절 신현확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 등 거물들이 참으로 많이 배출한 곳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와 장자골 소류지의 모습
송삼리는 송삼, 우산(牛山, 일명 우자리), 성황당, 비석걸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송삼은 조선 중종 연간에 김보륜(金輔輪)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고 마을 앞 우거진
소나무 숲이 세 군데 있으므로 송삼이라 하였다. 송상(松上), 송중(松中), 송하(松下)
세 마을을 합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우산은 송삼2리에 속하는 마을로 풍수설에 따르면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며, 성황당은 송삼2리에 속하는 마을로 예전에 옛 도로 옆에 성황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석걸은 송덕비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 토기를 만드는 토굴이 있었다 하여 굴모리라고도 한다
까치수영(꽃말:동심, 친근한 정)
까치수영·개꼬리풀·꽃꼬리풀이라고도 하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전체에 갈색의 잔털이 난다.
줄기는 붉은빛이 도는 원기둥 모양인데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잎은 식용한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한다. 외상에는 짓이겨 붙인다
주로 부인과와 호흡기 질환에 효험이 있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임도가 나온다
이곳부터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442.3봉(13:20)
녹슨 임도 차단기가 보이고...
ㅅ길이 나오는데 안이실 마을과 합류되는 도로이다
격외사 표지판을 보면서 걷는다.
밖이실 마을 내려가는 좌측에는 성황당과 25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마을 도로 우측에는 또 다른 350년된 보호수와 정자쉼터. 안이실마을 표석이 있다.
마을 도로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이실고개(梨室峴:405m:13:25)
낙동면사무소 마을 유래의 자료를 보면
낙동면 수정리(水晶里) 이실(梨室) 【마을】
밖이실 북쪽 800m 지점에 있는데, 안이실의 동쪽이다. 옛날 마을 가운데 큰 돌배나무가 있다고 하여
이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돌티고개로 안이실에서 청리면 청상리로 통하고, 뒤기고개로 밖이실에서
구미시 옥성면 태봉리로 통한다.《배(山)+실(室)=배실→이실(梨室). 골짜기 마을. ‘박치기, 머리팍, 대갈팍,
머리로 받다’에서 보듯 ‘박’은 ‘머리’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배’는 ‘받’에서 나온 말로 본다. ‘박’은 ‘백, 배‘로
옮겨가 ’산‘의 뜻으로 산지 지명에 많이 쓰인다. · 배티. 배재. 배고개. 배골. 배다리. 배꼬지 ‘배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이실(梨室)’이 되었다.》
이실고개에서 바라본 밖이실 마을의 모습
격외사라는 절이 있는 뒷쪽이 지맥길이나 잡목과 절집 안이라 갈 수가 없다
경주이공 묘비를 지나...
잡풀이 무성한 묘지를 지난다
엉퀑퀴(꽃말:사랑의 메시지)
묘지를 지나니...
잡풀이 많은 넓은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향한다
고추밭 뒷쪽이 격외사 뒷쪽이고 지맥길이다.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속으로 들어선다
아카시아가 군락을 이루며 갈길 바쁜 범여를 괴롭힌다
420.8봉(13:34)
잡목의 태클을 피해 개고생하면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서 바라본 중부내륙고속도와 복우산의 모습
지나온 수선산도 다시한번 뒤돌아 보는데 하늘이 참 맑고 곱다.
저런 멋진 전경을 보면 멋진 詩想이 떠올라야 하는데 이제 나이가 먹었는지
아무런 시상이 안 떠오르니...멋쟁이 시화님은 어떻게 詩想을 떠올릴까
시화, 까치샘, 태양, 하늘마음 등등...아그들은 뭘하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
숲속 임도에 RV 차량 한대가 보이고 감나무밭에 농약을 쳤는지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숲속으로 들어선다
다시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뚜렸한 능선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506.4봉(13:37)
산으로님 반갑습니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무명봉(13:55)
좌측으로 향한다
무명봉(14:04)
임도 삼거리(14:07)
임도삼거리 우측에는 잡풀이 무성한 묘지들이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선다
비포장 도로를 따른다
잠시후에 걸어야 할 능선이 보인다
도로옆에는 블루베리가 익어가고 있다
골마마을 갈림길(14:20)
상주시 낙동면 수정리 골마마을에서 나오는 도로와 만나는 곳이다
골마는 중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구미시와 경계지점에서 200m 서쪽에 있으며
임란 때 신안 주씨가 피난하여 정착한 마을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닭둥지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도로 좌측 위가 지맥길이나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916번 도로가 나오고 전봇대쪽 위가 지맥길이나 날씨도 덥고 선두와의 차이가 많아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916번 지방도가 나오고 우측에는 수정리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수정리 버스 정류장
대고개(竹峴:310m:14:25)
상주시 낙동면 수정리와 구미시 무을면 태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버스 정류장이 있다
선산고 상주를 잇는 916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수정리 버스 정류장이 있어 산꾼들은
수정고개라 부르지만 낙동면 사무소 마을 지명유래에는 대고개로 기록이 되어 있다
낙동면 수정리(水晶里) 대고개[죽현(竹峴)] 【고개】
수정리에서 구미시 옥성면 대원리(원래 이름은 죽원리였음)로 넘어 가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
왜적이 상주로 침공하는 길이었는데, 왜적은 이곳에서 상주까지 길 가에 많은 가건물(假建物)을
세워 후방기지로 이용했다고 한다.
상주시 낙동면 표지판 뒷쪽으로 올라서니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우측 버스 정류장 아래로 가면 편안한 길이 있지만 맥길을 고집하며 능선에 올라
베낭을 내려놓고 과일 한조각으로 원기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커다란 영지버섯 서너개가 보이기에 재빨리 수확을 한다
무명봉(14:40)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도로로 내려선다
그린레미콘 공장(14:50)
912번 도로가 지맥길이다
도로 좌측에는 옥녀봉(玉女峰:520.1m)이 보인다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에 있는 옥녀봉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옥녀봉 봉우리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는데 옛날 하늘나라에 사는 선녀(옥황선녀)들이 봄, 가을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지맥길인 도로 좌측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경주이공 묘지들이 보인다
이 할배는 생전에 부인을 두 분이나 두셨군요...부럽소이다
상주터널 위(14:58)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휴게소 바로 윗쪽인 상주터널이 이 아랫쪽으로 지나가고 있다
버스 정류장(15:00)
이동통신탑이 있는 고개로 향한다
석거실 고개(360m:15:03)
912번 도로에서 바라본 석거실 마을의 모습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 복우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상주시와 구미시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임란 때 피난민들이 이 마을에 있는 큰 바위 밑에 은거하면서 차츰 마을이 형성되어 석거실 이라 하다가,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신기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바다에 사는 연체동물인 ‘낙지’를 ‘석거(石距)’라고도 한다.》
석거실 버스 정류장(15:06)
석거실 정류장 버스 시간표
복우산도 아직까지 뚜렸하게 보인다
도로 좌측 윗쪽에는 창원김씨 수일공 묘비가 있다
912번 지방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부터는 맥길 좌측으로는 여태껏 같이해 온 상주시 낙동면에서 구미시 옥성면으로 面界가
바뀌고 우측은 아직까지 구미시 무을면이니 좌.우가 상주시를 완전히 벗어나 구미시로 들어선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가는데 앞에 보이는 저 능선이 지맥길이다
농로에서 바라본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山村里)의 모습
고려 성종 2년(986년) 선인(仙人)이 살았다 하여 선동(仙洞)이라고도 하며 현재 영양 남씨(英陽 南氏)들의
집성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라 산촌(山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농로 우측에는 조그만 저수지도 보인다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뒤돌아서 당겨본 복우산의 모습
농로를 따라서 간다
바람이 불긴 하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더운 편이다...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임도는 우측으로 빠지고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르막길
452.3봉이 나오고 맥길은 직전에 우측으로 꺽어지고 직진하면 옥녀봉으로 가는 길이다
452.3봉(15:43)
452.3봉 직전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산초나무가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갈림길(15:47)
등로가 희미한 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진다
독도에 좀 신경을 써야 할 곳이나 자세히 보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있어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형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15:52)
갑자기 나타난 뚜렸한 임도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362.9봉(15:57)
족보가 있는 봉우리이나 임도가 붙었고 귀찮아서 그런지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없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 갈림길(16:00)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향한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걷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나오니 힘이 든다
379.8봉(16:05)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409.4봉(16:15)
오랫만에 미세먼지 없이 걸어보는 맥길...숨쉬기가 너무 좋다
무명봉(16:25)
갈림길(16:29)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하게 내려가니...
쇠파이프 울타리가 처진 한우 목장이 나온다
아이쿠 깜짝이야...목장 안쪽이 길이 좋아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울타리를 잡고
넘어서려 하는데 전기 철조망을 건드렸는지 갑자기 온 몸으로 전기가 흐른다.
좀 편하게 가려다가 영원히 편한 황천길 갈뻔 했네
목장 안쪽의 모습
간간히 한우들이 보이는데 방목을 해서 키우는 모양이다
15분정도 목장길을 걷다가 목장을 벗어나 우측 능선으로 향한다
등로는 좋다
무명봉(16:50)
相生
329.5봉(17:05)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희미한 넓은 임도가 보이고...
저 아래 주아현에 있는 옥성영농 곶감작업장인 파란색 건물이 보인다
모자라면 소리가 나지만
가득하면 매우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 정도 담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자는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
숫타니파타 중에서
묘지(17:14)
옥성영농 곶감작업장 옆 숲을 내려오니 오늘의 날머리인 주아현에 도착한다
주아현(注兒峴:180m17:27)
구미시 옥성면 주아리와 덕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망해버린 ‘언덕배기’란
라이브 카페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고개 좌측에는 옥성영농 곶감작업장 건물이 있다
주아리 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주아현이라 하면 주아리는 조선 태종 원년 임씨 집안에 9형제가
살았다 하여 9제동으로 불리어 왔으나 그 후 약관 소년이 주서(고려 시대 관직)에 급제하였다 하여
주아동이라 이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이 마을이 점령당하여 주민 학살이 많았다고 한다.
망해버린 언덕배기 까페 마당에 도착하니 동료 산꾼들이 기다리고 있다.
늘 거북이 걸음인 범여를 1시간 반이상을 기다려 주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버스로 선산 휴게소 근처인 덕촌리 식당으로 와서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닭도리탕에다 저녁을 먹고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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