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6월 09일
☞ 산행날씨: 약간 흐린 날씨에 션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8.2km + 어프로치 1.2km / 9시간 18분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산악회 지맥팀 10명과 함께
☞ 산행코스: 용문산 기도원-사사봉 갈림길-백두대간 능선-기양(감천)지맥 분기점-사사봉-갈림길
584봉-무명봉-갈림길-무명봉-진주강공 묘-말랑고개-263.9봉-안부-무명봉
임도사거리-무명봉-353봉 갈림길-무명봉-무명봉-동지골산-갈림길-여남재
이동통신탑-서낭당-280봉-무명묘지-무명봉-유인 동래정씨 묘-352.4봉-경주이공 묘
안부-서낭당-갈비봉 갈림길-306봉-상리고개-무명봉-421봉-안부-482.3봉 갈림길
무명봉-578.1봉-암봉-유인 경주정씨 묘-암봉-갈림길-조망봉-백운산-안부-531.1봉
안부-무명봉-무명봉-463.7봉-ㅏ능선 갈림길-산태백-ㅜ갈림길-356.9봉-진주강씨 묘
의성나씨 묘-산태백재
☞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경북 상주시 공성면/김천시 어모면, 감문면/구미시 무을면
백두사랑 산악회 일요지맥팀에서 이번주 부터 기양(감천)지맥 첫 구간을 한다는데 고민이 많다.
3주전 숭덕(병성)지맥길에서 컨디션 난조로 인해 치욕스런 중탈을 했기에 상당히 망설여지기도 하고
거기다가 당일 산행인데 첫 구간이 20km라 웬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간은 대중 교통으로는 상주나 김천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데 당일 산행으로는 상당히 불편하고
이른 시간에 들머리로 접근하려면 김천이나 상주에서 1박을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지난주는 초딩이 동창들과 2박 3일간 일정으로 울릉도 여행을 갔다오는 바람에 맥길을 걷지않아 체력도
비축되고 하여 조금은 무모한 짓거리이지만 도전해 보기로 하고 지맥팀을 따라 나선다
감천(기양)지맥 개념도
감천(기양)지맥(岐陽支脈)은 백두대간 국수봉(794m) 남쪽 0 .6km지점인 무명봉( 734m)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여남재(3번국도),백운산(631m),기양산(705m),수선산(683m),주아현,형제봉(532m),신산(457m)를 지나
감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구미시 선산읍 원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45.8km되는 산줄기로
감천(甘川.69km)의 우측 분수령이 되는데 산으로님이 저술한 대한산경표에서는 감천지맥이라 부른다
필요한 지도.1/25000. 추풍령, 옥산, 비룡, 낙동, 선산. 1/5 만. 김천, 상주, 안계, 구미. 영진지도. 1/5만. 330, 331, 332,333 쪽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고도표
양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가다가 낙동J.C를 빠져나가 당진~영덕 고속도를 타고 남상주I.C를
나와서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에 있는 용문산 기도원이 곳으로 향하는데 날씨는 생각보다 시원하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용문산 기도원 애향문 입구에서 산행을 하였는데 우리는 애향문을 지나 대성전 앞
주차장까지 마이크로 버스가 올라가 차에서 내리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교회로 향하는 사람이 많다.
교회 입구에 있는 사람이 우리들을 보고 예배를 보고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용문산 기도원 대성전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 용문산 기슭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개신교 기도원으로 평안북도 박천군 출신인
나운몽(羅雲夢,1914∼2009) 목사가 1947년 4월 5일 ‘애향숙’이란 이름으로 설립한 기도원으로, 한국 개신교
기도원의 모체이다. 나운몽은 한국전쟁 시기에 입신·방언·신유 등의 신비 체험을 한 후 용문산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에 나섰고, 이를 통해 용문산기도원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나운몽 목사는 젊은 시절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 번민하여, 불교에 귀의해 승려 생활을 하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1940년 5월 7일 용문산에 입산하여 개인적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해방된 해에
수표감리교회로 옮겨 1946년 장로 임직을 받았다
나운몽은 1947년 다시 용문산에 들어가 4월 5일 ‘애향숙’이라는 이름을 짓고 5명의 숙생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후 신비체험을 하고 전국 각지에서 부흥회를 주도하였으며, 애향숙과 구국 기도를 접목시킨 용문산기도원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이 운동은 더욱 발전해 나운몽의 3겹줄 전도운동인 부흥·문서·기도 전도의 열풍도 크게 일어났다
1955년 기드온고등성경학교 설립, 1956년 기드온신학교와 기드온수도원을 창설하였고, 1961년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1962년 용문산기도원에는 신도 4백여 명 외에 남녀 학생 3백 명을 합쳐 7백여 명이 있었다
1960년 4·19 직후에는 ‘북진통일’을 한다며, 신학생 3백여 명이 김천에서 대전까지 무임승차하는 사건도 발생했고,
1968년 2월 9일에는 용문산기드온신학생·수도생·수도사 등 400여 명이 십자군전도대회 깃발과 플래카드,
멸공통일이라고 쓴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향해 행진하며 북괴의 만행을 규탄하는 행진을
하다 미군과 충돌하기도 했다
지나친 신비운동을 막았던 기존 교회들로부터 논란이 벌어져, 1968년 7월 22일 예장(고신) 총회의 경남노회는
용문산기도원을 이단으로 결정했고, 이후에도 이단 논쟁 시비는 계속 일어났다
용문산기도원은 793.39㎡[240평] 규모의 대강당 대성전을 비롯하여 88회관, 사무실, 도서관, 성경학교,
신학교, 수도관, 중앙숙, 기념관 등이 있는 애향촌, 그리고 소망촌, 칠성촌, 믿음촌에는 150여 가구가 상주한다.
전국에서 이주해 온 독신자들이 700명, 학생이 600명에 이른다. 고등성경학교에는 현재 300명의 학생이
취학하고 있는데, 2010년 10월 현재 남자 641명, 여자 559명을 배출하였다. 1990년대에는 300여 가구에
1,000여 명이 상주하였고, 전국의 신도 3만여 명이 연중행사로 기도대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2010년 5월
현재 약 2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현재 형태의 기도원으로는 한국 최초라고 하며 통일교의 문선명, 부산 신앙촌의 박태선과 더불어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보기도 하는데 나운몽목사는 2009년 별세했고 현재는 그의 아들이 운영을 하고 있단다.
이단으로 몰리긴 하지만 위 3인의 교리에 한 때 우리나라 전체 기독교인 절반 정도가 따랐다고 할 정도였다.
산행을 시작하다(09:45)
용문산 기도원 얘향숙
1947년에 나운몽 목사가 백두대간 능선 아래에 입산하여 애향숙(愛鄕塾)이라는 기도원을 세우고
산 이름을 용문산이라 고쳐 불렀는데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용문산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도원인 ‘애향숙’ 은 ‘하나님께서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용남하고 만나 준다’는 뜻이란다
곳곳에 기도원 건물과 일반 건물이 많은데 아마도 교인들이 몰려사는 촌락처럼 보인다.
한때는 교인이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예전의 영화를 잊어 버린듯 그저 그런 시골마을처럼 한적하다.
이곳에서 배출된 목사만도 1,000명이 넘는다고 하며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성전으로 예배보러 가는
사람들을 간간히 만나는데 아마 교회 성직자 분 같은 여자분은 검정색 치마저고리를 입은게 특이하다
얘향숙을 지나 사사봉 팻말쪽으로 올라간다
본격적인 산 속으로 접어든다
사사봉(?) 갈림길(09:55)
기도원을 빠져 나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뚜렸한 사사봉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웅북리 방향으로 오른다
등로는 없고 길은 난해하다...우측의 계곡옆 등로를 따라서 백두대간 능선으로 오르는데
어찌나 급경사인지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것만 느낌이다...그 사이 동료산꾼들은 다 도망을
가버리고 늘 꼴찌인 조여사님과 나만 남았다.
백두대간 능선(630m:10:12)
기도원에서 이곳까지 아주 짧은 곳을 고도 200m이상을 치고 오르려니 엄청나게 힘이든다.
이곳에서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 능선을 따라서 웅이산 방향으로 향한다.
안부에 올라서니 이정표( ↑용문산 기도원 ↓웅북리(중웅) ←국수봉 1210m →용문산 정상 1100m)가 나온다
웅북리는 영동군 추풍령면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곰산(웅이산) 뒤쪽에 있어 곰뒤 또는 웅북이라는 지명이
생겼으며, 웅북리에 있는 중웅마을은 각골 또는 각곡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국수봉은 2012년도에 웅이산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지도에는 용문산은「1:25000 지형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산이지만 용문산기도원(일명 용문산 신앙촌]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다.
1800년 무렵 박송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龍門山)이라 이름 지었고,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입산하여 기도원인 애향숙(愛鄕塾)을 세우고,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는 누구나 다 용납하고 만나 준다’는
뜻으로 ‘용(龍)’자를 용서하다는 의미의 ‘용(容)’자를 써서 용문산(容門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백학산, 국수봉에서 뻗어 나온 백두대간 산줄기가 용문산을 지나 갈현(葛峴),
사기점고개, 추풍령(秋風嶺)으로 이어진다. 용문산 일대 백두대간 산줄기 높이는 500~700m로 대체로
낮은 산지를 이루는데 2017년 6월 29일 백두대간 3차때 나홀로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걸었으니 2년만에
다시 찾아온 셈이다
대간꾼들의 시그널
기양(감천)지맥 분기점( 734.2m10:35)
대간 안부에서 300m도 안되는 거리를 급경사에다 초반부터 컨디션 저하로 인해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23분이나 걸렸고, 용문산 기도원에서 이곳 분기점까지 1.2km의 거리를 50분이나
걸렸으니 말 그대로 미칠 지경이다...초반에 너무 산행 속도가 나질 않으니...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예열이 덜 된 탓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분기점에는 이정표(↖국수봉 0.65km →백두대간 등산로(김천.영동 구간 ↑용문사 3.0km (1시간 30분)이 있다.
이곳에서 길게 쉼 호흡을 한번 하고 용문사 방향으로 지맥길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10명의 동료 산꾼들은 진작 갔을거라고 생각하고 조여사님과 함께 지맥길로 내려서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온다...자세히 보니 오늘 처음 동행한 젊은 친구가 웅이산을 갔다 온다고 한다
웅이산이라면 이곳에서 왕복 30분이 걸리는데 참으로 호화준족이다.
이 친구를 처음본 곳은 홀로 금북정맥을 걸을 때 2012년인가 예산 가야산에서 첨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금새 사라지는 바람에 그 이후는 끝날때 까지 사람 구경을 못했다.
내리막길에다가 등로는 뚜렸하다
큰 등로를 따라서 가니 커다란 바위위에 빨간 십자가가 보인다
사사봉(710m:10:40)
분기점에서 5분정도 지나니 넓은 암릉위에 빨간 십자가가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지도에는
없는 지명(사사봉)인데 아마도 용문산 기도원과 관련된 지명인 모양인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이곳은 용문산 기도원이 국가와 민족를 위하여 기도하는 구국기도제단이라고 하는데 아침에
기도원을 출발할 때 보니 애향숙 좌측으로 구국기도제단 안내 팻말이 있는걸로 보아 옮긴 모양이다
기도터 옆에 텐트가 있고 쉴 의자들이 보이고 빨래도 걸려있는 걸 보아 텐트안에 사람이 있는 듯 한데
텐트는 닫혀있고 인기척은 전혀 없다.
바위에 십자가와 글귀가 적혀 있는데 내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사사봉에서 바라본 웅이산(熊耳山)의 모습
기도터 아래의 모습
텐트속에 사람이 있는 듯 하나 인기척이 전혀 없다
기도터 우측 능선을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권작가님! 이번주에도 지리산을 헤매고 있으신가요?
맥길에서 바라본 용문산의 모습
그 뒤로 무좌골산이 보이고 작점고개와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제 몸이 좀 풀리는 듯 하다
갈림길(10:52)
우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보이나 맥길은 길이 없는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폐헬기장인 넓은 공터가 나온다.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잡목만 무성하다
소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웅이산의 모습
웅이산(熊耳山:795m)은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웅북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최근엔 지명이 웅이산(熊耳山)으로 바뀌었고 정상석도 국수봉((掬水峰)에서 웅이산으로 바뀌었다
국수란 ‘두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뜬다는 의미의 掬水(국수)’, 라 부르는데
뜬 물은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내리게 마련이다.
말인 즉 국수봉 또한 물을 가르는(낙동강과 금강을 가른다) 분수령이라는 뜻일게다.
큰재에서 남쪽방향으로 약 4km 지점의 능선상에 솟은 산으로 맑은 낮에 국수봉에 서면
상주의 너른 평야와 백학산. 서산, 기양산, 갑장산, 난함산, 황악산, 민주지산등 주변의 산들이
전개되고 날씨가 좋은날이면 백두대간 상주, 문경, 김천구간과 소백산까지도 조망되는 곳이다.
국수봉은 웅산(熊山), 용문산(龍文山), 웅이산(熊耳山) 또는 곰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정상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고 아울러 낙동.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菊水)라 한 듯 하고
웅신당(일명 용문당)이라는 대(臺)가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이라고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이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584봉(11:05)
계속되는 내리막길...숲속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덥지는 않다
무명봉(11:10)
갈림길(11:14)
능선 좌측에 뾰족한 무명봉도 보인다
무명봉(11:20)
우측으로 살짝 꺽어졌다가...
좌측으로 내려 가는데...
녹슨 철조망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녹슨 철조망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감각적으로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구간을 치고 내려가니...
최근에 조성한 듯한 묘지 2기가 나온다
묘지 좌측으로는 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나오나 맥길은 직진의 절개지로 향한다
다시 등로는 보이질 않고...
진주강공 묘(11:32)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잡풀에 묻혀버린 묘지가 나온다
아카시아 숲을 헤치고 나오는데 몸뚱아리가 수난을 당한다
초지 지대가 나온다
골골히 파여진 황토밭을 지난다
양파밭 너머로 백두대간 길에서 살짝 벗어난 난함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대간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난함산(卵含山:733.4m)은, 다수의 백두대간 종주 자료에
묘함산(卯含山)으로 표기돼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 '卯含山'이라
표기돼 있기 때문이 빚어진 일이다. 그러나 현지명은 분명 난함산(卵含山)이다.
현재 난함산 정상에는 한국통신의 무선통신 중계소가 있는데, 그 이름도 난함산 중계소였다.
지도를 만들 때 난(卵)자가 묘(卯)로 오기(誤記)된 게 확실해 보인다. 산의 형국이 알을 품고 있다 해서
명명된 것일 텐데, 십이지(十二支)의 넷째이자 동쪽을 가리키는 말인 묘(卯) 자가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마도 한문에 ‘알 난(卵)’을 ‘토끼 묘(卯)’로 잘못 해석한
해프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범여의 생각 中에서)
말랑고개(末郞峙:250m:11:36)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와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옥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상주시와 김천시가
농사 짓는 물 때문에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역 주민들이 물을 지키기 위해 임시거처로
자리 잡은 산꼭대기 마을이라 하여 불린다고 하며 ‘말랑’은 ‘꼭대기’를 뜻하는 상주지역에서 쓰는 말이다.
말랑고개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쪽의 모습
이 도로를 따라서 계속가면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작점고개를 지나 영동군 추풍령면소재지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어모면(禦侮面) 능치리는
과거 어모면이 있던 지역에 어모국(禦侮國)이 있었다고 전해진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지며 어모는 어머니를 뜻하는 말로 물과 땅의 신, 곧 지모신을 말한다. 기원적으로는 능치(能治) 또는
능점(能店)에서 발음이 변한 곰마을에서 비롯한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거북이와 접합되어 쓰이게 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고개를 가로질러 농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살구가 많이 열렸다
263.9봉(11:38)
복숭아밭을 지나고...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들의 태클이 무쟈게 심하다
능선에서 바라본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 말랑마을의 모습
오늘 산행은 거리도 길지만 공성면을 C자 형태로 빙 돌아가는 형식이다
등로 가운데 후손들이 관리하지 않은 폐묘(廢墓)가 보인다
안부(11:52)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무명봉(11:55)
무명봉을 내려서니 사과밭이 등로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다
사과밭 좌측으로 돌아간다
길은 없고 아카시아와 산초나무 그리고 넘어진 고사목...별별 넘이 태클을 걸어댄다
한참을 헤맨끝에 사과밭 끄트머리에서 넓은 임도를 만난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를 하는데 무명봉 아래 사과밭에서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돌아야 편할 듯 싶다
임도 사거리(12:10)
점심시간(12:10~30)
20분동안 점심식사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간다
무명봉(12:45)
353봉 갈림길(12:55)
우측의 직진으로 가면 족보가 있는 353봉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길은 좋아지고 좌측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무명봉(13:02)
등로에서 바라본 웅이산
산 아래의 채석장이 흉물스럽게만 보인다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고...
뚜렸한 등로를 걷다가 보니 ...
삼각점이 있는 331.6봉이 나오는데 동지골산이란 팻말이 보인다.
동지골산(331.6m:12:25)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와 김천시 어모면 옥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에 동지골이 있어서
동지골산이라 부르는데 동지’는 ‘날마다 지내는 생활’을 뜻하기도 하고, ‘같은 지방’을 뜻하기도 하다고
공성면 마을 유래에 적혀있다
동지골산 정상 삼각점(△312재설 / 1978.10 건설부)
등로가 희미하다
갈림길(13:30)
내 스마트폰에서 받아온 트랙에는 직진의 뚜렸한 등로로 맥길이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산꾼들의 시그널은 우측 아래에 걸려있고 앞에 간 동료산꾼들도 이쪽으로 간 흔적이 보이기에
나도 기존의 트랙을 무시하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벌목한 나무들이 능선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3번국도 절개지가 나오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간다
뒤따라 오는 조여사님...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절개지 아랫쪽에는 김천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3번 국도가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
구 3번 국도를 따라서 육교로 향한다
좌측의 육교로 향한다
여남재(汝踰峴:210m:13:45)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 창말에서 김천시 어모면 구례동 여남으로 가는 고개로 3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1913년 도로를 개설하여 자동차가 다니고, 1925년 굴을 뚫어 경북선이 개통되어 기차가 다닌다.
《여(汝)+남(踰)+고개(峴)=여남 고개. ‘여(汝)’는 음(音)이 ‘너’인데 ‘늘어지다(느러지다)’의 ‘느(너)’를 한자로
옮기면서 취하던 글자인데, ‘남(踰)’은 ‘너미, 나미’로 ‘넘다’의 뜻이다. 상주시와 김천시 사이의 느림이 큰 고개다.
또, ‘왜유령’이라고도 하여 고려 말엽 충청도에서 중모를 통하여 상주로 침입한 왜구가 다시 김천으로 진출할 때
이 곳을 통과하였으므로 불리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남재 남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구례리 남부에서 아천(牙川)으로 흘러들고, 아천은
개령면에서 다시 감천(甘川)으로 흘러든다. 상주시에 속하는 여남재 북쪽 비탈면에서 병성천(屛城川) 지류
소하천이 발원하여 흐른다.
여남재 육교를 지나 좌측으로 꺽어진다...맥길을 한참 돌아가는 형국이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는데...도로 옆에는...
국회의원을 지낸 정휘동님의 묘지가 보인다
이동통신탑(13:48)
절개지로 올라선다
3번 국도로 인해 짤려나간 맥길을 한참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이곳에서 조여사님과 함께 물 한모금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뚜렸한 등로를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 등로는 거칠어 진다
서낭당(14:10)
완만한 오르막길
280봉(14:18)
이 봉우리 아랫쪽으로 경북선 철도가 지나가는 여남터널이 있다
280봉 내려가는 길에는 만난 선답자들의 시그널
경북선 철도와 공성면, 그리고 그 너머로 백두대갼 능선이 보인다
상주시 공성면(功城面)은 본래 신라의 대병부곡(大幷部曲)이었는데, 고려 초에 공성현(功城縣)이라 하였고
현종 때상주군에 예속되었으며, 1895년 공동면(功東面)으로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공성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곳은 북쪽에 봉수가 있고 남쪽에 속문산산성(俗門山山城)이 있던 것으로 보아 군사상 중요한 곳이었다.
상주와 진주를 지나는 도로가 발달되어 교통상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청리(靑里)ㆍ화령(化寧)ㆍ화창(化昌)과 함께
상주 주변에 발달하였던 위성취락(衛星聚落)으로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청리면(靑里面)과 구미시, 북쪽으로 외남면(外南面), 남쪽으로 김천시, 서쪽으로 모동면(牟東面)과
충청북도 영동군에 접하며 면의 중심부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천(南川) 상류의 침식분지이고, 그 주변은
웅이산(684m)·성봉산(星峰山:572m)·기양산(680m) 등 여러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는 수리안전지대로서, 농경지로 이용되어 쌀·보리 중심의 농경이 이루어진다.
그 밖에 사과를 비롯한 복숭아·감 등의 생산이 많으며, 경북선 철도와 김천~문경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방향으로 관통하며, 옥산∼중앙동 및 모동∼옥산 군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무명묘지(14:24)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뚜렸한 좌측의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능선으로 오른다
최근에 날씨가 더워서 물과 이온 음료를 많이 준비하였는데 날씨가 선선하다
등로는 생각보다 부드럽다
다시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45)
무명봉 아래에 있는 무명묘지 쪽으로 내려선다
또다른 묘지가 나오고 묘지 뒷쪽 우측 능선으로 향한다
유인동래정씨 묘(14:49)
유인동래정씨, 경주이공 합장묘인데, 비석에 통상 남편을 먼저 적고 부인을 뒤에 적는데
이 상석은 부인을 먼저 적었다...좀 특이한 상석이다...부인이 먼저 간 건지 끌발이 높은 건지?
352.4봉(14:54)
경주이공& 단양우씨 묘(14:55)
계속 묘지를 만난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또 다른 묘지를 만나고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다시 등로는 잘 안보이고...
안부(15:00)
또다른 묘지를 만난다
서낭당(15:05)
멋진 나무들이 힘들어하는 범여를 격려해준다
다시 오르막길
갈비봉 갈림길(321m:15:18)
대구 宜山님의 시그널에 갈비봉 10분 걸린다고 표기를 해놨다
갈비봉의 유래는 "옛날엔 이 지역이 물이 찼으나 백운산과 이 봉우리만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은 백운산은 배(舟), 이곳은 뱀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라한다.
갈비봉을 포기하고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그 참 희안하네
306봉(15:27)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절개지 아래에 도로가 보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내려가는 도로가 보인다.
감문면에 있는 문무리(文武里)는 삼한 시대 소국인 문무국(文武國)이 있었다 하여 문무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 김산군 위량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여(上余)·하여(下余)·장전(長田)[일명 긴밭사래]이
통합되어 김천군 위량면 문무동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곡송면과 위량면을 통합하여 신설된 감문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감문면 문무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문무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가 되었다.
상리고개(250m:15:37)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와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997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지명의 유래는 좌측 아래에 있는 상리마을에 따온듯 하며 상리가 있는 이화리는 산간오지
마을이며 병성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이내(里內)가 있으며 그 안에 원상리, 상리, 중리,
하리로 나뉘어지며 주요 특산물로는 고추, 마늘,표고가 있다.
도로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오르면서 바라본 이화리 상리마을
초반에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특히 산딸기가 산꾼 범여를 엄청 괴롭힌다
능선에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이 쉬끼 엄청나게 싸놨네
완만한 오르막길
무명봉(16:10)
마지막 길이지만 초반의 등로는 좋다...다만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긴 시작하지만...
멋쟁이 나무를 지나고...
421봉(16:14)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 능선에서 바라본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482.3봉
안부(16:20)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천상병 님의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서서히 오르막은 시작되고...
묵은 묘지를 지나면서 급경사로 올라간다
482.3봉 갈림길(16:45)
이곳에서도 우유 하나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무명봉(16:51)
좌측으로 꺽어진다
578.1봉(17:54)
조그만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암봉(16:58)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구름이 끼여 날씨가 흐리니 똑닥이 카메라 초점이 흐려진다
유인경주정씨 묘(17:00)
묘지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또 다른 묘지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암봉(17:15)
상리고개에서 힘들게 올라와서 편하게 능선을 걷는다
갈림길(17:24)
우측으로 약초 재배지 경고문구가 붙어있는 뚜렸한 능선이 보이는데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가면 잠시 후 가야할 지맥길 백운산이 아닌 구미시 무을면 송북리에 있는 백운산 가는 길이다
조망봉(17:28)
숲으로 인해 조망은 꽝이다...뒤따라 오시는 조여사님이 힘들어 하기에 이곳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한다
백운산(白雲山:631.3m:17:33)
상주시 공성면 산현리와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경계에 있는 산인데 이곳의 바로 옆에도 또 다른 백운산이 있다
지명이 유래는 옛날 문무국이 망하자 문무국의 장사가 이 산으로 숨어들어갔는데, 그 때 흰 구름이 산을
덮어 보이지 않았다 하여 백운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백운산 정상부 일대의 산 능선은 Y자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북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상주시 공성면을 흘러
병성천에 유입하며, 남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도명리를 지난 어모면에서 아천에 유
입하고, 남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외현천이 되어 남동쪽으로 흘러 바로 감천에 유입한다.
인증샷
백운산 정상에서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내리막길에는 산수국 군락지가 있는데 아직 꽃이 필 생각도 안하고 있다
산딸기가 많이 익어 있다...갈길이 멀어도 딸기는 먹고 가야지
안부(17:38)
멋진 신갈나무를 만나고...
만세부르는 나무도 만난다
531.1봉(17:48)
상주시 공성면과 김천시 감문면, 구미시 무을면이 만나는 3市 경계봉이다.
북쪽은 분기점에서부터 아직까지 상주시 공성면이지만 남쪽은 김천시에서
구미시로 행정구역 경계가 바뀌는 셈인데 우측으로 이터재,미모산 능선으로 분기한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7:54)
이곳도 산딸기가 지천인데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무명봉(17:57)
기린초도 간간히 보인다
고달픈 셋방살이
무명봉(18:01)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관리가 안 된 묘지가 보인다
편안한 능선
암릉지대가 시작된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곡저수지와 구미시 안곡리(安谷里)의 모습
안곡리는 안실(安室), 저전(楮田), 도가(都家)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실은 영남의
상인들이 부구 지방으로 오갈 때 이곳에서 말의 짐을 풀고 편안히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전은 마을을 개척한 선비가 닥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문종이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닥박골이라고도 한다. 도가는 술도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도간이라고도 한다.
현재 술도가는 없어지고 안곡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463.7봉(18:17)
463.7봉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지나온 백운산의 모습
분기점 옆에 있었던 웅이산이 아직도 보이고 공성면 소재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ㅏ능선 갈림길(18:20)
우측으로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
산태맥(山太白:18:32)
상주시 공성면 산현리 옥산마을에서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딱박골로 넘어 가는
고개의 안부인데 지금은 넓은 공터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흔적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잠시후의 오늘의 날머리가 신태백재인데 이곳은 아마 예전의 고개인 모양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ㅜ 갈림길(18:38)
다음구간에 가야할 기양산과 수선산도 보인다
갈림길에서 바라본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의 모습
상송리의 자연마을에는 팥죽골, 모래지기, 선돌 등이 있는데 팥죽골은 옛날 심한 한발로 기근이
심하여 전답을 가진 주민들이 팥죽 한 그릇과 논밭 한 마지기를 바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지래기는 수다사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많았으나, 들이 넓어서 논밭에 댈 물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선돌은 선돌이 있던 곳이라 한다.
좌측 능선으로 가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356.9보으로 향한다
356.9봉(18:43)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나 아카시아, 산딸기 등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삼각점을 굳이 찾을려면 찾을수야 있겠지만 날씨도 꾸무리하고 바람이 부니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여 그냥 우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반갑습니다
묘지 뒷쪽으로 내려간다
진주강씨 가족묘(18:56)
또 다른 묘지로 향한다
의성 나씨 묘(19:00)
묘지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먼저간 동료들이 산태백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산태백재(山太白峴:180m:19:03)
상주시 공성면 산현리에서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67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참으로 힘들었지만 완주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2시간 가까이 먼저와서 기다려 준 동료 산꾼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다...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상주시 청리면 옥산으로 와서 식당에서 간단하게
씻고 이름이 생소한 쭈구리탕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에 저녁 8시경에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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