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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조 지훈님의 고사(古寺)

by 범여(梵如) 2019. 12. 21.

古 寺

                                           조지훈

 

목어(木漁)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청록집 1946 >

 

 

 

 

참고자료

 

시에 대한 이해는 때로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인상느낌으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절의 해질 무렵 풍경을 절제된 언어민요적 리듬으로 여백이 많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이 그려져 있다시인은 고사(古寺)’의 은은한 정경을 관조하면서, ‘상좌 아이’, ‘부처님’,

눈부신 노을’, ‘지는 모란’ 등의 대상을 아무런 주관적 정서의 개입 없이 그저 그림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

 

시의 소재들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한다면그 대상들이 심오한 선()의 세계에 젖어 드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고운 상좌 아이도 부처님일체 중생의 상징일 수 있는 모란도 모두 눈부신 노을과 같은 환희희열감에

젖어 정토의 세계인 서역 만리 길로 귀의하고 있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절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고민과 갈등에 싸인 현실로부터 벗어나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시에 대한 감상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 시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묘사와 서술로만 일관하고 있는 작품으로각각의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나 인상으로 감상해야 한다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시는 옛절의 고풍스런 풍경을 절제된 언어와 민요적 리듬을 통해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한 폭의

동양화로 보여 줌으로써 여백으로 남겨둔 시인의 주제 의식을 찾아내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이 사용한 여러 소재들즉 잠든 상좌 아이말없이 웃으시는 부처님눈부신 노을

지는 모란’ 등이 갖는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마침내 서역 만리 길로 귀의(歸依)함으로써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심오한 선()의 세계로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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