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1년 02월 14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 산행거리: 18.2km+들머리 0.7km+날머리 1.2km / 7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일출암-고개-먹골저수지 갈림길(지맥 분기점)-봉수산-쉼터-다시 일출암 고개-일출정-용암산
기독교인 묘지-진주강공 묘-안부-473m봉-477m봉-암봉-무명봉-안부-442.2m봉-갈림길
안부사거리-무명봉-363.9m봉-안부-393.9m봉-408.3m봉-안부-393.5m봉-378.8m봉
진성이공 묘-삼밭골 배수장-삼밭골 고개-275m봉-안부-263.9m봉-야성송씨 가족묘
시멘트 도로-무명봉-삼거리-278.8m봉-당고개-농로안부-322m봉-안부-320.8m봉
안부-무명봉-325.6m봉-금학봉-346.5m봉-무명봉-325.6m봉-331.1m봉-도로 삼거리
354.3m봉-364.5m봉-295.5m봉-안부-303m봉-새마고개-306.9m봉-318.6m봉
예천임공 묘-후동고개-268.2m봉-황터고개-무명봉-278m봉-안부-묘지-임도삼거리
286.2m봉-고개-264.5m봉-단양우공 묘-오노봉 갈림길-오노봉-다시 오노봉 갈림길
고개-안동권공 묘-무명봉-감애고개-강릉최공 묘-262.4m봉-명잣고개
☞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평은면 / 안동시 녹전면, 북후면, 와룡면
어제 서화(장령)지맥 2구간을 끝내고 조금 일찍 집에 도착하여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가 좀 넘었다...1시간 넘게 소파에 앉아서 멍때리기를 한다.
연휴인데 뭘하지...마땅히 생각이 나지않아 산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기예보를 검색하는데
충청도 지역 이하로 비가 온다네... 그럼 어디로 가지?...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보니 안동쪽은 저녁
9시 이후에 비가 온다고 예보가 나와서 영주, 예천쪽의 지맥은 다 끝냈고 마지막으로 아껴둔(?)
지맥 하나가 송야(용암)지맥이다... 내성(문수)지맥에서 가지쳐 나온 이 지맥은 분기점에서
계속 고도를 낮추기에 산행이 조금은 수월할 듯 하고 도심 근처라 귀경길이 편할것 같아 베낭을
챙겨서 몰래 집을 나와서 집앞에서 청량리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송야(용암)지맥 개념도
용암지맥(龍巖枝脈)은 백두대간의 옥돌봉 아래에서 분기한 내성(문수)지맥의 봉수산(x569.6m)에서 남
동쪽으로 분기 해서 용암산(龍巖山 x478m), 삼밭골재, 금학봉(△364.5m), 오로봉(△342.9m), 율미고개,
옥달봉(x263.7m), 한티재, 솔티고개를 지나 안동시 송현동 송야천/낙동강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5 km인 산줄기 인데, 송야천(松夜川)의 좌측 분수령을 이루는데 지맥의 서쪽에는 송야천 등이 낙동강으로 흐르며,
동쪽과 남쪽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송야지맥(松夜枝脈)이라고 부른다
◆ 주요 봉우리
봉수산(x569.6m), 용암산(龍巖山 x478m), 금학봉(△364.5m), 오로봉(△342.9m), 옥달봉(x263.7m)
◆ 종주에 필요한 지도
1/50000 : 안동, 예안 (2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5:35)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영주행 KTX 열차표를 예매한 다음에 플렛홈으로 향한다
청량리역 발 → 영주행 열차표
지난해 12월에 개통된 중앙선 KTX 열차 때문에 이곳을 제천, 영주, 안동쪽으로 조금 접근이 빠르다.
명절 연휴라 그런지 하행선 열차는 텅텅 빈 채로 안동으로 향한다.
열차는 원주를 지나 제천, 단양으로 향하는데 차창밖이 컴컴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눈,비가
쏟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일기예보에는 밤9시 이후로 비가 온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자.
영주역(07:48)
영주는 옛 지명인 ‘나이(奈已)’ 혹은 ‘내기(奈己)’의 ‘내(奈)-’가 물을 뜻하는 ‘내(川)’를 드러내는 형태이며
여기에서 영주가 비롯하였음을 언어 지리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지명소 ‘내(奈)-’는 소백산을 동과 서로
하여 영주는 ‘내기(奈己)’, 영월은 ‘내생(奈生)’ 그리고 제천은 ‘내제(奈堤)’로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도 ‘내(奈)-’는 냇물을 뜻하는 지명소로 볼 수 있다.
영주의 경우, 전래 지명으로서 가장 오래된 이름이 ‘나이(내이/날이/내기)’라 하였고 영주의 속현으로서
‘선곡(善谷)현’이었는데 ‘선곡현’의 본디 이름은 고구려의 ‘매곡(買谷)’이었다. 여기서 ‘매곡’의 ‘매(買)-’ 는
지명 변천의 대응으로 보아 물을 뜻한다. 이와 관련한 선행 논의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1)
영주의 옛 지명을 ‘내이군(奈已郡)’으로 번역한 것은 민족문화추진회(1970)의 번역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독음은 류렬(1983)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이(奈已) : 내이(?已) : 날이(?已)’로 대응관계를 상정하고 ‘나이’를 기본으로 읽고 있다. 정문연의
『삼국유사』 색인에서도 ‘내이군(?已郡)’으로 읽는다. 이러한 지명 읽기는 노중국(1993)에서도 나이로 읽는다.
같은 글에서 『고려사』와 『여지도서』,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순흥과 영주가 본디 고구려 지역임을
드러낸 것으로 미루어 『삼국사기』 자료에서만 백제 지역으로 기술하고 있다
영주역 대합실 편의점에서 점심 대용으로 먹을 빵과 음료수, 우유를 사서 베낭에 넣고
영주역 광장으로 빠져 나오니 이게 뭐여!...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구라청의 일기예보를 믿은 내가 심한 배신감에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다...15분 정도를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아 다시 서울로 가려고 표를 알아보니 귀경 열차는 전부 매진이라네
하는 수 없이 영주역에서 택시를 타고 영주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영주터미널에 도착하여 09시에 서울 경부고속터미널 표를 예매해놓고
멍하니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비가 그치네...얼른 예매를 취소하고
택시를 타고 산으로 향한다
일출암(09:30)
영주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분기점인 봉수산 아래에 있는 예고개까지 가는데 택시비가 23,000원 정도 나왔다.
여기서 내가 심한 착각을 한다...이곳 예고개는 내성(문수)지맥 산행을 하면서 들.날머리로 삼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분기점인 봉수산까지 약 1.3km 거리이고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내 체력상 초반에는 상당히 힘이들 것 같아
분기점 바로밑에 있는 일출암까지 가면 시간이 엄청 줄일것 같아 택시기사분에게 일출암까지 가자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산행거리가 1.3km밖에 안되기에 금방갈 줄 알았는데 택시를 타고보니 영주시 평은을 지나 안동시 녹래면소재지를
돌아서 가는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분기점을 바라보며 20km 가까이를 돌아서 일출암에 도착한다
걸어서 40분이면 올 거리를 택시로 30분 걸렸으며 택시비가 56,000원이나 나왔다.
택시에서 나혼잣말로 '서울갈 차비가 걱정이네'하면서 중얼거리니 택시기사가 자기도 일출암을 처음와서
길을 몰라 미안하다고 하면서 택시비를 깍아주겠단다...요금이 56,000원인데 30,000원만 달라고 한다
이러시면 내가 미안하잖아요 하니까...자기가 아침 6시부터 영주터미널 승차장에서 대기했는데
오늘 내가 첫 손님이라면서 오히려 고마워한다...기사님과 유쾌한(?) 작별을 하고 차에서 내린다
영주터미널에서 택시로 50분정도 걸린 셈이다
택시에서 내려 바라본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祿來里)의 모습
녹래리는 봉수산 자락에 위치하여 마을 뒤로 산이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개천이 흐르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용골(구룡곡), 녹전(놋점,녹전리), 올골(내동), 장밭(장전,장전리), 중들(중평) 등이 있다.
구용골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녹전은 녹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녹전산 밑이 되는데,
예전에 놋점(유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장밭은 예전에 장이 섰었다고 하며, 중들은 녹전 남쪽 들 한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녹전과 내동의 이름을 따서 녹래리라 하였다. 문화유적으로 의상대사가 창건한 일출암이 있다
일출암은 요즘 한참 중창불사중이다...산신각(뒷쪽)과 대웅전(앞쪽)이 보이는데 특이한 것은 대웅전이
너무 규모가 작은데 놀라웠다
일출암 범종각을 바라보면서 절집 마당으로 들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
이곳에 또 언제 올수 있으랴. 생각 같아서는 두루두루 둘러보고 싶지마는
아침에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버벅거리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여 마음이 급해 그냥 통과한다
일출암 금오선원...이 절집에서 제일 큰 건물이다
대부분의 자료에는 일출암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일출사로 개명이 되었다.
일출사(日出寺)는 신라 법흥왕(514∼540)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전해지나
절집에 관한 기록이 없어 확인은 어려우며 의상대사가 일출사를 창건할 때에는
5명의 스님들이 있었다고 하나, 그 이후 점차 불사가 늘어 사세가 커지면서
스님들도 100여 명이 되는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봉수산(烽燧山)의 8부 능선에 신라 23대 법흥왕(520년)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대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인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 안동시 녹전면 녹내리
소재의 일출암...이곳은 해가 정동진보다도 먼저 뜬다고해서 일출맞이 행사로 유명한 곳이다
스님들이 많이 모이자 생활하기 불편하고 물도 부족해 의상대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물을 끌어 올려 우물을 만들었다고 하며 이 우물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찰의 주지스님이 잘못하면 우물의 수위가 내려간다고 하는 전설도 전하여 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중창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름난 사찰이 되었다.
귀중한 문화재와 성보가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많이 소실되어 사찰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최학수 스님이 6.25 전쟁 때 임시로 대웅전을 중건하여 거처하게 되었고,
이어 본원스님이 주지로 7년간 있으면서 사찰명을 일출암에서 일출사로 바꾸었다.
대웅전과 범종루는 1950년경에 중건되었으며 삼성각은 2002년에 중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출사를 빠져나와 맥길로 올라간다
일출암 고개(09:40)
일출암에서 분기점인 봉수산까지는 약 0.7km정도이다
좌측으로 예고개로 가는 등로가 뚜렸하다...예고개에서 이곳으로 올 걸...
일출암 고개위에 베낭을 벗어놓고 봉수산으로 향하는데 아침에 버벅거린데다가
어제 좀 빡세게 산행을 한 탓인지...편안한 등로인데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힘이든다
먹골저수지 갈림길(09:47)
내성(문수)지맥에서 송야(용암)지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50m쯤 떨어져 있는 봉수산 정상으로 향한다
2019년 9월 1일 내성(문수)지맥 3구간길을 혼자 걸었을 때 왔으니 거의 1년반만에 온 셈이다
봉수산(烽遂山:569.6m:09:48)
안동시녹전면 녹래리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산 남쪽에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일출사(日出寺)가 있으며 강원도 강릉시의 정동진보다 더 빨리 일출을
볼 수 있어서 해마다 1월 1일에는 다채로운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봉수산 명칭은 조선시대 때 봉수대가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예안)에 "봉화가 1곳이니,
녹전산(祿轉山)으로 현 서쪽에 있다. 서쪽으로 영천(榮川, 지금의 영주) 소산(所山)에 응한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를 통해 원래의 명칭은 녹전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에서는 또 일출봉(日出峰)이란 명칭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일출사가 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한편 지역에서는 박달산(朴達山)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예전에 박달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10여 분 내려오면 수령 200년의 박달산 신목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박달산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동지도』(예안)을 비롯한 여러 옛 지도를 보면, 이 일대에는 위쪽부터
녹전산, 박달산, 봉수 세 개의 산이 나란히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고증이 필요하다
봉수산 정상 삼각점(△ 24 재설 / 78.7 건설부)
왔던길을 되돌아서 간다
본격적인 송야(내성)지맥 첫 발을 내딛는다
쉼터(09:51)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니...
능선 좌측 아래로 아침에 지나온 일출사(암)가 보인다
잘 있었니?
다시 일출암 고개(09:57)
일출암 고개를 지나자마자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단청이 빛바랜 팔각정이 나오는데 이름하여 일출정이다
지도상에서 일출봉으로 나오고 팔각정 앞에 안동시에서 설치한 일출봉 표시석이
있는데 안동지역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고 동해안의 정동진보다 먼저
뜬다고 설명을 해놨으나 실제로는 사방이 나무숲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일출암에다 팔각정을 짓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일출정(日出亭:515m:09:59)
다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만난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용암산으로 향한다
초반이라 그런지 아니면 제도권 등로라서 그런지 길은 아주좋다
마치 우리동네 대모산 둘레길 걷는 기분이다
용암산(龍岩山:529.6m:10:08)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패만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봉우리인데 신산경표에서는 지맥길의 主山으로 삼고 있는 산이 산꾼들에게는 조금 헷갈린다.
이곳 말고도 조금 더가면 만나는 곳을 용암산이라 하기 때문에... 지명의 유래는 찾을길이 없다
한문을 풀어서 보면 '용을 닮은 바위처럼 생긴 산,이라는데 바위는 보이지 않는 전통적인 육산이다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좌측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기독교인 묘지(10:10)
또 다른 기독교인 묘지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온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고...
낙엽이 푹신한 길로 내려가니...
묘지가 보인다
진주강공 묘(10:15)
약초재배지인지 송이버섯이 나오는 곳인지 경고판이 보인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10:18)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473m봉(10:20)
선답자들은 이곳을 용암산이라 기록한 것이 많이 보이고 실제로 용암산이라 붙혀논 시그널도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만나고 송이막사도 보인다
잠시후 또 다시 사면길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송이가 많이 나오는 곳인 모양이다
완만하게 능선으로 올라가니...암봉이 나온다
477m봉(10:24)
전망이 확 트이면서 주위가 다 보이나 흐린 날씨에 짙은 미세먼지로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안동 웅부산악회에서는 이곳을 용암산이라고 하는데 처음온 산꾼은 상당히 헷갈린다
남서쪽은 안동의 진산이라는 학가산과 그 옆에 조운산이 육안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똑닥이로는 잡을수가 없구나
안동웅부산악회에서는 이곳을 용암산이라 하는 모양이다
살짝 우측으로 내려간다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송이가 나는 곳이라 그런지 샛길이 많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암봉이 나오고...
암봉(10:27)
암봉을 내려선 다음에...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고속도로같은 넓은 등로가 나오고...암릉구간이 시작된다
물개바위?
암릉구간을 지나고...
오르막이 나오고 좌측으로 사면길이 보이나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0:32)
정상에는 묘지를 옮긴듯한 흔적이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입산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묘지를 지나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0:35)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으로 사면길이 나오고 맥길은 직진으로 올라간다
442.2m봉(10:37)
442.2m봉의 선답자 흔적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살짝 우측으로 내려서니 검정색 호스가 땅바닥에 깔려있다
갈림길(10:40)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좌측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좌측으로내려간다
안부 사거리(10:45)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에서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나들었던 고개인지 좌,우로 등로가 뚜렸하고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안부를 올라서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363.9m봉(10:50)
조그만 능선을 지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간다
등로가 조금 거칠어지나 그래도 다른 지맥길에 비해선 꽃길이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안부를 지나고 살짝 좌측으로 계속해서 편안한 길을 걷는다
안부(10:58)
393.9m봉(11:02)
393.9m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송이가 나올것 같은 가느다란 소나무숲길을 여유롭게 걸어간다
묘지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좌측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준.희 선생의 산패가 걸려있는 408.3m봉이 나온다
408.3m봉(11:07)
다시 내리막길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안부(11:09)
좌측으로는 송이꾼들의 길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393.5m봉(11:11)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판독이 잘 안되는 납작 삼각점이 있는 378.8m봉에 도착한다
378.8m봉(11:15)
좌측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야 하는데 산불이 난 지역인지 잡목이 무성하여 틈이 안보인다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간다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묘지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인다
뒤돌아본 마루금의 모습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진성이공 묘(11:25)
임도 아래로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삼밭골 마을 너머로 가야할 맥길이 보이다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삼밭골배수장(11:30)
지나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은듯...
등로에서 바라본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삼밭골([麻田谷)의 모습
“삼밭골은 예전에 김녕김씨와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며 “이 때 대마(大麻)을 많이 재배하여
베를 짜는 집이 많아 삼 마(麻)자에 밭 전(田)자를 써 ‘마전(麻田)’이라 쓰고, ‘삼밭골’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삼밭골 고개로 내려선다
삼밭골 고개(11:35)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삼밭골과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터골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928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시멘트 농로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가서 우측으로 꺽어져 통신탑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이동통신탑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희미한 농로를 따라서 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텃골의 모습
서삼리(西三里)는 마을 뒤로 국사봉이 우뚝 서 있고 앞의 들로는 역계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돌미들(돌모들,이전), 말바우, 모란,
보재, 아르돌모들, 연불당, 웃돌모들, 자구벨, 텃골(기곡) 등이 있다. 말바우는 마을에 말바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란은 서삼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모래가 많다고 한다. 아르돌모들은 돌모들 아래쪽에, 웃돌모들은 위쪽에 위치한다.
연불당은 불당이 있다고 한다. 동현리, 사천리, 이전리의 3개 리를 병합하여, 서면의 3개 리라는 뜻으로 서삼리라 하였다.
좌측의 밭을 바라보면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임도가 나오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275m봉(11:40)
우측으로 내려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벌목으로 인해 어지러운 등로가 나오고...
등로에서 바라본 서삼리 텃골마을의 모습
돌머들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여씨(呂氏)들이 살았는데 좋은 집터들이 많다하여
기곡(基谷)이라 칭했으나 조선시대에 당쟁으로 인해 폐동(廢洞)이 되었다.
그 후에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새마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안부(11:45)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263.9m봉(11:50)
263.9m봉에서 잘 관리된 묘지로 내려간다
야성송씨 가족묘(11:51)
야성송씨(冶城宋氏) 시조는 송맹영(宋孟英). 고려 목종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총부의랑(摠部議郎)을
지내고 야성군(冶城君)의 봉호와 야성현(冶城縣)의 식채(食采)를 받았다고 족보에 전한다
야성송씨 묘지에서 바라본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사장골(沙場谷)의 모습
묘지 너머로 학가산이 희미하게 보이나 미세먼지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서당동이었는데 서당동은 조선 후기 무렵 진성이씨 일족이 이곳에 정착하여 서당을 짓고
아동 훈학(訓學)을 하던 곳이라 하여 이곳 선비들이 서당동(書堂洞)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을 ‘새장골’이라 부른다. 1800년경 경주이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냇가의 모래가 희고 깨끗하여 모래 사(沙)자 사장골(沙場谷)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해
‘새장골’이 됐다고 한다
시멘트 도로(11:52)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사장골에서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텃골로 이어지는 마을길이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55)
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삼거리(12:00)
좌측으로는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연불당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어느 대학 교수인지?
대학교수는 남의 땅 안밟고 다니나?
제자들이 뭘 배우겠노...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좌측 아래로는 염불당 마을이 보인다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에 있는 염불당 마을은 예전에 불당이 있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묘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를 지나 넓은 임도로 올라간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삼밭골(마전)마을이 보인다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독도에 주의해야할 곳이다
278m봉(12:12)
봉우리 아래는 묘지가 보인다
빛바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맥길을 안내한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당고개(12:10)
여주시 평은면 지곡리 사장골 마을에서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돌머들마을에
있는 고개인데 도로명 주소가 서삼로이다...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던 모양이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서삼리 상이전(돌머들)마을이 보인다
상이전(上梨田) 마을은 이전(梨田)마을은 모란 서북쪽에 있는 동네로 외딴 산이 우뚝 솟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약 400여년전 배나무밭을 개간하여 이룬 마을이라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또 지형이 배가 돌아드는 형상과
흡사하여 돌머들, 돌모들, 돌미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전마을을 세분하여 상이전(上梨田), 하이전(下梨田) 마을이 생겼고 서삼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저곳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돌아가는 길이 있구나
마루금에 복귀한다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밭이 보이고...
밭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있어 이곳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농로안부(12:35)
묘지 뒷쪽으로 올라가는데 등로가 희미하다
소나무숲이 길을 막으면서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다시 등로가 보이고 오르막이 계속된다
322m봉(12:40)
안부(12:41)
등로는 살짝 좌측으로 이어진다
무명봉에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니 못생긴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그것은 자연의 세계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사가 똑같은 모양이다.
잘 생긴 나무들은 진작에 잘려나가 버렸고 못생긴 나무들이 숲을 이루면서 산을 지키고 있다.
인간사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즘 정치판에서 보면 지도자라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라고는
시정잡배들보다도 못하다.
니편 내편 편가르기도 모잘라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으로 치부해버리면서 비난을 하니...”
자기들을 뽑아준 민초들의 眼中에도 없고 자기들의 잇속만 챙기기에 血汗인 인간들이 지도층이라고
나대고 다니는 꼬락서니 참으로 역겹다
지난해 추석에 歌皇 나훈아가 한 말이 구구절절이 뼛속까지 감동으로 다가온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
이 나라를 구한 사람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잘 따르는 이 나라의
民草들이지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이 아니듯... 산을 지키는 것도 못 생긴 나무들이 아닌가.
대통령 나리!...자기 식구들만 챙기지 말고...코로나 때문에 정말 힘들게 사는 민초들의 삶을 돌보소서
오늘도 산이란 스승한테 삶의 지혜를 배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른다
등로가 약간 거칠기는 해도 그래도 걸을만 하다
320.8m봉(12:50)
벌목지를 지나가는데 우측으로 등로가 살짝 열린다
남서쪽으로 안동의 진산이라는 학가산과 그 옆의 조운산은 미세먼지로 흐릿하게만 보인다
안부(12:53)
안부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무명봉(13:00)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341m봉으로 올라간다
341m봉(13:08)
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단맥, 분맥 산행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설적인
존재인 신경수 선생의 빛바랜 시그널을 만난다...잘 계시죠?...뵌지가 5년은 넘은듯 합니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
등로에서 금학봉으로 올라간다
일출봉이 이후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지나온 등로쪽으로 관찰사 김연, 김부필의 묘가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지나오면서 보지도 못했고, 알 길이 없다
관찰사(觀察使)란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된 지방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지금의 직급으로는 도지사급이다
김연(金緣:1487 ~ 1544 )은 조선 중기의 문신. 중종 때 김안로의 추방과 재기용을 주장하였으며, 재집권한
김안로에 의해 좌천되기도 하였였으나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되자 사간으로 기용되고, 강원도관찰사 등을 거쳐
1544년 경주부윤으로 재직하였으며 저서로는 저서에 《운암일고(雲巖逸槁)》가 있다.
김연의 아들인 김부필(金富弼)은 안동부 예안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동생
김부의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37년(중종 32)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유학하면서 김인후(金麟厚)와 교유하였고 1556년(명종 11) 41세의 나이로 다시 이황에게 가 제자로서의
예를 올렸으며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렸지만 사양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이에 이황이 “후조주인(後彫主人)은
깨끗한 절개를 굳게 지켜 임명장이 문전에 이르러도 기뻐하지 않는구나……”라는시를 지어 김부필의 지조와
절개를 높이 평가하였다
금학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금학봉 정상은 암릉덩어리로 되어 있다
금학봉(金鶴峰:364.5m:13:10)
안동시 북후면 대현리에 있는 산으로 나즈막한 산이만 정상은 커다란 암릉으로 되어있고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산들이 다 보이는 멋진 산이지만 오늘은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꽝이다
엄연히 족보있는 산이지만 안동시의 어느 자료에도 금학산에 대한 기록이 없어 유래를 알 길이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삼각점이 있었고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있어 삼각점을 찿느라 5분정도 헤맷지만 허탕...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금학봉 정상의 모습
학가산, 조운산으로 이어지는 내성(문수)지맥 능선의 모습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의 모습...모든게 흐릿하여 아쉽기만 하다
삼각점 수색에 실패하고 다시 맥길로 내려간다
금학봉을 내려서면서 뒤돌아 본 모습
금학봉 정상에서 1시 방향으로 내려서서 맥길을 이어간다
가느다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가을철에는 송이가 나올법한 곳이다
346.5m봉(13:24)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제도권 등로인지 간간히 이정표가 보인다...금학봉의 유래를 알 수 없어 두고두고 아쉽다
연휴가 지나면 북후면사무소에 전화하여 지명유래를 알아봐야겠다
하기사 요즘 동직원들...그런데 별 관심이 없어서 알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우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0)
무명봉을 지나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어제 서화(장령)지맥 2구간을 끝내고 이틀 연속 산행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등로가 좋아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325.6m봉(13:35)
좌측으로 꺽어져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333.1m봉(13:37)
뚜렸한 등로를 가다가 내려서니...
시멘트로 포장된 삼거리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 삼거리(13:39)
좌측은 안동시 북후면 대현리로 이어지고 우측은 연곡리쪽이다
우측 아랫쪽은 목장이 있는 모양이다
직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곧바로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임도가 나오고 직진의 등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로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못생긴(?) 소나무 숲사이로 올라간다
354.4m봉(13:48)
맥길은 좌측으로 내려간다
잡풀지대 능선 뒷쪽으로 향한다...여름철엔 고생 좀 하겠다
능선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무명묘지(13:50)
묘지에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3:51)
무명봉(13:55)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넓은 등로가 보인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354.3m봉(14:02)
이경일님의 흔적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은 숨쉬기가 힘이 드는구나.
조그만 능선에서 내려서니...
잡풀이 무성한 밭이 나온다
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밭에서 올라 약간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364.5m봉(14:08)
묘지 뒷쪽 능선으로 향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가 보이고 맞은편은 벌목지대이다
재선충으로 인한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295.5m봉(14:15)
계속해서 편안한 등로는 이어지고...
안부(14:18)
능선으로 올라간다
벌목지대가 가까이 보인다
303m봉(14:25)
편안한 공터에 준.희 선생님의 격려문구가 걸려있다.
이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무심코 직진으로 가면 대형 알바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등로는 희미해진다
양호님의 흔적이 맥길을 안내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으로 내려간다
신덕원이라는 호화묘지로 내려서니 새마고개가 나온다
새마고개(14:30)
안동시 북후면 서현리 새마마을에서 연곡리 용수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새마마을은 서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약 150년 전에 봉화에서 입향한
봉화정씨(奉化鄭氏)가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새마, 새마을 또는 우두산이라고 하는데 우두산은
소의 머리처럼 생긴 산으로 이 산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마을 이름도 따라서 우두산이 되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밭 가운데를 통과한다
밭을 지나서 절개지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간다
306.9m봉(14:37)
정상에는 목재 테이불이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고 맥길은 90도 좌측으로 꺽어진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318.6m봉이 나온다
318.6m봉(14:42)
318.6m봉 정상 삼각점(△424재설/78.2 건설부)
선답자들의 흔적
좌측으로 향하는데 이곳부터 고행의 길이 시작되는 듯 하다
안부에 올라서서...
우측의 능선을 따라서 맥길이 이어지는데 근처에 축사가 있는지 축분(畜糞)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자꾸만 등로는 점점 거칠어 지고...
희미한 등로에서 안부를 지나고...
오랜 가뭄 탓인지 낙엽의 먼지로 인해 목이 상당히 아프다
우측 아래로는 묘지와 시멘트 농로가 보인다
등로 주위에는 키가 큰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직진으로 가보니 절개지라 다시 되돌아 와서...
우측의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처사 예천임공 묘(14:55~15:00)
날씨가 잔뜩 흐리나 바람이 불지않아 그리 춥지는 않다.
이곳까지 오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허기가 몰려와 빵과 우유로 허기를 면하고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후동고개(後洞峴:15:01)
안동시 북후면 주하리 후동마을에서 서현리 양돈단지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주하리 신부골 북쪽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뒷골 또는 후동이라 부른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들어선 다음에 좌측 절개지로 올라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268.2m봉(15:07)
268.2m봉에서 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대동유기질 비료공장 지붕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 주위에는 키가 큰 아카시아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 산불이 난 모양이다
불이난 지역을 내려서니 커다란 밭이 나온다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서 좌측으로 나간다
농로가 나오고...
등로는 유기질 비료공장을 골짜기에 두고 ⊂형태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에 있는 대동유기질 비료공장
농로로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보인다
지맥길은 도로건너 밭 가운데 간이화장실쪽으로 이어지는데 휀스문이 굳게 잠겨있다
황터고개(15:15)
안동시 북후면 서현리에서 감애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5번 군도가 지나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밭 가운데를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가림막이 높게 처져 있다
명절이라 그런지 주변에 사람도 보이고 하여 밭으로 갈 용기가
나지않아 감애리쪽으로 가서 좌측 전봇대쪽으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등로가 장난이 아니다
올라서자마자 가시나무를 비롯한 잡목의 태클이 시작된다
절개지로 올라간다
무명봉(15:24)
계속되는 잡목의 저항...선답자들의 흔적(시그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감애리 마을이 보인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봉분 뒷쪽으로 맥길이 이어진다
묘지에서 바라본 안동시 북후면 감애리(甘厓里)의 모습
지형이 가마솥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마골[釜谷]·가마촌(加麻村)·감이촌(甘爾村)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인 우무실(憂無室)은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곡(憂谷)이라고도 한다.
미우리(일명 미꾸미)는 웃골 앞에 있는 와우형(臥牛形) 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로가 조금씩 좋아진다
278m봉(15:28)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는 조금씩 좋아지고...
등로 좌측 아래에는 서현양돈단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 지나온 금학봉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안부(15:31)
또 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묘지(15:37)
좌측의 편안한 임도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서현리 양돈단지가 보인다
임도 사거리(15:38)
직진 오르막으로 오른 다음에 좌측의 임도를 버리고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286.2m봉(15:41)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다시 오르막길
벙커봉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간다
고개(15:46)
고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뫳돼지 쉬키들의 체력 단련장이 나온다
낮으막한 봉우리를 지나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64.5m봉(15:52)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묘지쪽으로 내려간다
단양우공 묘(15:54)
묘지 아래의 농막쪽으로 내려간다
농막을 지나서 밭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밭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묘지로 이어지는 뚜렸한 길을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가 나오고 맥길은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오노봉 갈림길(16:10)
지맥길에서 북쪽으로 200여m정도 떨어져 있는 오노봉을 갔다오기로 한다
베낭을 벗어놓고 오노봉으로 향한다
오노봉(五老峰:342.9m:16:15)
안동시 북후면 감애리와 서현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오노봉에 대한 자료을 찿을수가 없지만
이 산 아래에 있는 호계서원에 대한 기록에는 1575년(선조 8)지방사람들이 안동부(安東府) 동북쪽 여산촌(廬山村)
오로봉(五老峯) 아래에 있는 백련사(경상북도 안동시의 와룡면 서현리에 있는 산이다라는 기록만 보인다.
오로봉(五老峯) 아래에 있는 백련사(白蓮寺) 절터에 여강서원(廬江書院)을 세웠다가 대홍수로 유실되자 지금의 와룡면
도곡리로 옮겨 새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오로봉이란 명칭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지지자료』의 북선면(北先面) 외감애동(外甘厓洞)에 오로봉산(五老峰山)으로 나온다. 『조선지도』(안동)에 지금의
오로봉 위치에 해당하는 산 이름을 여산(廬山)으로 표기하였다.
오노봉 정상 삼각점(△예안301/2004재설)
다시 오노봉 갈림길(16:18)
묘지 뒷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은 묘지 가운데로 이어진다
고개(16:22)
또 다른 묘지를 지난다
등로는 뚜렸하다
조그만 봉우리에서 아래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안동권공 묘(16:26)
안동권공 묘지 아래는 최신식(?) 묘지도 보인다
무명봉(16:28)
무명봉 아래로 내려간다
넓은 길을 따라서 편안하게 내려가니...
도로명 주소가 웃골1길인 표지판이 보이는 감애고개로 내려선다
오늘 유일한 인증샷
감애고개(甘厓峴:16:34)
안동시 북후면 감애리 웃골마을 앞에 있는 고개로 축사와 버스정류장, 반사경이 보인다
조금전에 지나온 황터고개에서 올라오는 25번 군도가 지나간다.
도로 맞은편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이동통신탑을 끼고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임도에는 수로 시설물이 보인다
계속되는 수로 시설물들을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 위에는 스텐레스 배수장이 보이고...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안동시 북후면 주하리(周下里)쪽의 모습
주하리는 자연마을로 두루, 대밭골, 서당골, 마창골, 명잣, 신부골, 신그네, 뒷골 등이 있다.
두루는 오랜 세월동안 마을이 두루 평안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대밭골은 옛날에 대나무밭이
있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서당골은 진성 이씨 이정회라는 이가 진앙서당을 지어서 학문을 가르쳤던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마창골은 햇살이 잘 들고 동네가 따뜻하며 매화꽃이 많다 하여 매창골이라 부르던 것이 이후에 이름이 바뀐 것이다.
명잣은 명계천이 앞으로 흐른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명계라고도 부르며 신부골은 봉화 금씨와 선성 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살다가 타지로 떠났는데, 이어서 안동 권씨가 새로 입향하여 새 부자가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신그네는 단양 우씨와 평창 이씨가 입향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뒷골은 신부골 북쪽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314호로 지정된 수령 600년의 뚝향나무가 유명하다
수로 시설물이 있는 곳에서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묘지 우측 아래로 지나가는 수로의 모습
올라가야 할 묘지의 모습
강릉최공 묘(16:38)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또 다른 묘지를 지나 숲속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262.4m봉(16:46)
좌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니...
안동시 북후면 주하리에서 감애리로 넘어가는 2차서 도로가 나오는데 도로명 주소가 감애주하길이다
명잣고개(明溪峴:16:50)
안동시 북후면 주하리 명잣마을에서 감애리 안동예절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커다란 축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명잣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주하리 명잣마을은 명잣(일명 명계)은 마을 앞으로 명계천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북후면 주하리(周下里)는 둘레에 들이 널찍하게 퍼져 있어, 또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이 두루 평안하다고 하여
두루라 하였고, 한자로는 주촌(周村)으로 표기하였다. 15세기 말 영춘이씨 주하리 입향조인 이유선(李惟善)과
진성인(眞城人) 이정(李禎)이 낙향하여 한 마을에서 함께 늙었으므로 이로촌(二老村)이라고도 하였다
문화 유적으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2호인 안동 주하동 경류정 종택, 천연기념물 제314호인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낙금헌(樂琴軒) 이정백(李庭栢, 1553~1600)을 향사한 유암서원(流巖書院) 등이 있다. 경류정 앞뜰에 있는
뚝향나무는 조선 세종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었던 세 그루 중 아직 남아 있는 한 그루라고 하며,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나이 약 550년, 높이 3.3m, 둘레 2.3m의 크기이다
원래는 명잣고개를 지나 안동소주 공장이 있는 35번 국도까지 가기로 했는데 이른 아침 구라청의 엉터리
예보로 인해 초반부터 버벅거리는 바람에 아무래도 35번 국도까지는 좀 무리일 듯 싶어 명잣고개에서
아쉽지만 산행을 종료하고 안동예절학교 청소년 수련원 쪽으로 내려간다
다음 구간에 거리가 많이 남아있어 좀 부담이 되지만 그때는 그때이고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동예절학교 버스 정류장(17:05)
이곳은 안동시내와 가까워서 교통편에 관한 큰 걱정은 없다
정류장 의자에 베낭을 내려놓고 수통에 남은 물로 타월에 적셔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으려는데
녹전쪽에서 버스가 오는게 아닌가...옷을 갈아입다 말고 런닝 바람으로 손을 드니 버스를 세워준다
버스 기사가 나를 보더니 허탈하게 웃으신다
안동예절학교 버스 시간표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구 안동역으로 향하는 558번 버스
안동의 시내버스는 모든게 구도심권인 교보생명 앞에서 시작된다
새로생긴 안동터미널과 신안동역은 외곽에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대중교통은 상당히 불편하다
안동초등학교 버스 정류장(17:35)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터미널로 향한다
안동터미널(18:05)
터미널에 도착하여 18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 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 6.000원짜리 식사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커피까지 한잔 마시는 여유를 누린다
버스 기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가격대비 가성비는 상당히 좋다.
버스에 올라 깊은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천등산 휴게소에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명절 연휴임에도 생각보다 교통편은 수월하다...편하게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이틀동안 연산(連山)을 한 탓인지 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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