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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송야(용암)지맥(終)

송야(용암)지맥 제2구간 - 명잣고개에서 송야천/낙동강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9. 7.

☞ 산행일시: 2021년 09월 05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생각보다 무더움

☞ 산행거리: 25.4km / 9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명잣고개-291.6m봉-공터-무명봉-270.2m봉-안부-오리원재-300.8m봉

                 시멘트 도로-288.6m봉-옛 안동소주공장-수위실-안동소주 홍보관-무명봉

                 매구내 고개-무명봉-삼각점봉-276.7m봉-안부-시멘트 도로-지리산 갈림길

                 무명봉-무명봉-안부-시멘트 도로-안부-묘지-이상리 고개-능선 갈림길-무명봉

                 무명봉-주하굴-경주김씨 가족묘-249.2m봉-안부-무명봉-삼각점봉-묘지

                 269.7m봉-924번 지방도-임도갈림길-NO85송전탑-NO86송전탑-안부

                 NO87송전탑-갈림길-안부-무명봉-안동권공 묘-율미고개-고개-안부-산불감시초소

                 갈림길-한티재-도로-안부-갈림길-무명봉-쉼터-사곡육교-무명봉-송현배수장

                 매아골 고개-백조씽크공장-189.1m봉-안부-182.2m봉-쉼터-은하수빌 B동

                 솔티고개-서안동주유소-갈림길-무명봉-무명봉-임도사거리-153.8m봉-송하동 도로

                무명봉-호암마을 입구-호암1배수장-호암제-호암2배수장-송하천/낙동강 합수점

☞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북후면, 와룡면, 이천동, 안기동, 노하동, 송현동, 송하동

 

지난주 일요일(8/29) 구라청(기상청)의 오보로 인해 송야(용암)지맥을 하러 안동에 갔다가

엄청나게 비가오는 바람에 산행 시작도 하지 못하고 서울로 되돌아서 오는 바람에

1주일 내내 생체 리듬이 깨져 상당히 힘이 들었다...10년을 넘게 매주 산행을 한 탓인지

내 몸뚱아리는 이제 주말에는 산행으로 셋팅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어제 안내 산악회를 따라서 달천(계명)지맥 2구간을 끝내고 내 체력으로는 조금 무리일 듯

싶으나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아 이틀 연속 산행을 하여 지난주에 하지 못한 맥길을

보충하기로 하고 1주일만에 다시 송야지맥에 재도전을 한다.

 

오늘 산행구간은 거리는 길지만 고도가 낮고 도심 근처라 길이 좋을거라 짐작을 하고

그렇게 큰 공부를 하지않고 오룩스앱의 트랙 하나만 믿고 산행을 나서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새벽 5시에 집을나서 한번만에 가는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05시 45분.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청량리역은 아직까지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벌초기간이라 올라올 저녁 7시 귀경표까지 예매를 한 다음에 열차를 타러 플렛홈으로 내려간다

청량리발 → 안동행 열차표

안동으로 가는 ktx 첫 열차를 타고 가는데 지난주와는 달리 승객이 많은 편이다.

영주를 지나면서 창밖을 바라보니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왠지 불안하다.

일기예보에는 오전에는 구름만 끼고, 오후에 맑음이라고 했는데...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 열차는 종착역인 안동역에 도착한다

안동역(08:05)

안동역에 도착하여 코로나19 열체크 검사대를 통과한 다음에 길건너 안동터미널 내에 있는

기사 식당에 들려서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편의점에서 점심때 먹을 빵과

음료를 사서 베낭에 넣고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안동시 와룡면 명잣고개로 향한다

명잣고개(明溪峴:08::50)

안동시 북후면 주하리 명잣마을에서 감애리 안동예절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커다란 축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명잣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주하리 명잣마을은 명잣(일명 명계)은 마을 앞으로 명계천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 정상에는 넓은 공터에 최신식으로 지어진 계사(鷄舍)에다 지붕은 태양광으로 덮혀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지난 겨울인 2월 14일에 1구간을 했으니 7개월만에 2구간을 나서는 셈이다

오늘의 산행구간은 고도가 낮은 안동지역이라 어쩔지 모르겠으나 거리가 25km가 넘어

걷는데 까지 걸어보기로 한다...지난 1구간때 안동소주 공장까지 갔으면 편안하게 산행을

했을텐데 그때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영주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늦게 산행을

시작하여 안동소주 공장까지 못가는 바람에 오늘 많은 부담을 갖고 산행을 시작한다

넓은  공터를 지나 계사를 통과하는데 조금은 미안하다

그런데 최신식의 계사에서는 어쩐 일인지 닭의 울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쫒겨날 각오를 하고 들어왔는데 다행히 사람은 보이지 않아 계사를 통과하여 절개지로 향한다

급경사의 절개지...마사토 지대라 상당히 미끄럽다

대단들 하십니다...절개지를 통과하여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선다

절개지에 올라서서 뒤돌아 본 계사와 명잣고개의 모습

절개지에 올라서자마 부딪치는 지독한 잡풀지대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대포로 밀어 부치니...

소나무 무덤이 있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잠시후에 족보가 있는 291.6m봉에 도착한다

291.6m봉(09:02)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아카시아 숲사이로 수로가 지나가는데 수로에 다행히 물은 없다

숏다리인 범여는 한번에 수로를 건너 뛸 수 없어서 수로 아래로 내려섰다가 올라간다

농사철에 물이 있었더라면 한참을 돌아갈 뻔 했다

공터(09:10)

농로의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공터 좌측 아래로는 수로가 보이고 와룡면 가야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농로이다

가야리(佳野里)는 산골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아름다운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개실·계실(溪實)·가야촌(佳野村)으로도 불리며, 자연마을인 돌미(일명 석산)는 마을 앞뒤에

예쁜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돌미 서쪽의 늪실은 마을 앞의 연못에 늪이 워낙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늪실은 눌곡(訥谷)이라고도 한다.

 

권익창(權益昌, 1562~1645)의 저서 『호양집(湖陽集)』「우유당기(優遊堂記)」에는 눌곡의 유래에

관하여 “인산(仁山)의 아래에 눌곡촌(訥谷村)이 있으니 호양자(湖陽子)가 병란을 피하여 여기에

기거하여 온 지 16년째 된다. 땅이 정해진 이름이 없고 사람들도 또한 끊어져서 상황을 바꾸고자 하여

누곡(陋谷)·연곡(淵谷) 등으로 불러 보았으나, 세상 사람들이 다 방언으로 눌곡이라 칭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이름을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넓은 공터 윗쪽으로 올라간다

등로에는 검정색 호스도 보인다

무명봉(09:13)

좌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수로가 보인다

수로를 건너니...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만만찮다

무대포로 치고 오르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270.2m봉(09:2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9:23)

벌초꾼이 등로를 정리해준다...베낭을 진 나를 보고는 놀라는 눈치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가는데...

훈증한 재선층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아카시아의 저항을 받으며 희미한 임도를 통과한다

늦둥이 패랭이꽃

아카시아가 길을 막는 등로를 무조건 치고 나간다.

숲이 무성한 임도가 나온다

오랫만에 만나는 신경수선생님의 흔적...맥산행에 관한한 전설적인 존재이시다

신선생님은 이곳을 안동단맥으로 걸으신 모양이다...뵌지가 오래되어 얼굴도 가물가물...

좌측의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오리원재가 나온다

오리원재에서 바라본 안동중고 와룡분교장쪽의 모습

오리원재(五里院峴:09:30)

안동시 와룡면 태리 장수골에서 감애리 오리원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비포장 농로가 지나가는데

고개같지도 않다...오리원 마을 근처에 조선시대의 역원(驛院)제도의 산물로 행인들에게 숙박과

편의를 제공하던 원(院)이 있었서 마을이름이 되었으며 이 마을의 언덕(구 오룡초등학교 뒷편)을

중심으로 북쪽 5리, 남쪽 5리의 중간 지점에 원이 있었으므로 이 원을 오리원(五里院)이라고

불렀으며 마을이름도 오리원 또는 오리원촌(五里院村)이라고 하였다

오리원재에서 갈라지는 풀섶의 임도로 올라서니 중장비가 길을 막고있다

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중장비들

또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뫳돼지 목욕탕을 지나 300.8m봉으로 올라간다

300.8m봉(09:35)

희미한 등로에서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독립군으로서는 상당히 반갑다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09:38)

와룡면 태리에서 감애리로 넘어가는 시멘트 도로가 있는데 도로명 주소가

감애리 퇴계로이고 고개를 넘어면 감애리인데 맥길은 좌측 비포장 임도로 향한다.

 

우리나라에서 ‘퇴계로’(退溪路)라고 명명된 도로는 3곳이 있는데 서울과 강릉, 안동이다.

퇴계로란 안동 출신 유학자 이황(李滉)의 호에서 유래되었으며, 서울의 퇴계로는 3.5㎞에

불과하지만 안동의 퇴계로는 운흥동 천리고가교 남단에서 도산면까지 이어지는 34.6㎞가 넘는다

 

와룡면에 있는 감애리(甘厓里)

영가지에는 전민(田民)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였으며, 감메촌(甘 村)이라 표기하였다.

구한말 북선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가마형국이므로 가마골, 가마촌(加麻村), 부곡(釜谷),

감이촌(甘爾村), 감애(甘厓)라 하였는데,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감애동, 외감애동,

마암동과 동선면의 가야리, 지상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감애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는 안동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감애리는 1, 2리로 구분되는데 가구수는 약 180호로 감애 1리에는 우무실과 미우리,

명잣, 한골, 오리원 등의 작은 마을이 있으며, 감애 2리에는 웃골과 도래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시멘트 농로가 나오고 좌측의 고구마밭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고구마밭을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좌측 아랫쪽은 벌초를 한 묘지가 보인다

288.6m봉(09:42)

좌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 가다가...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오니 녹슨 철조망이 보인다

철조망 안쪽으로 맥길을 이어 가다가...

좌측 아래로 내려서니 안동소주 공장이 보인다

옛 안동소주공장(09:50)

예전에 안동소주 공장이었는데 지금은 안동시 풍산읍으로 이사를 갔고 빈 건물만 남아있다

소주공장 도로를 따라서 정문으로 향한다

뒤돌아 본 안동소주 공장

안동소주 수위실(09:52)

정문은 바리게이트로 굳게 닫혀있다...우측으로 돌아서 소주공장을 빠져 나온다

안동소주 홍보관(09:54)

안동시 와룡면 태리 안동에서 영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상의 구 안동소주 공장앞 있다.

카페 형태로 운영되는듯 하며 무료시음장도 있는 모양인데 예전같으면 당연히 들어가서

한잔을 얻어 먹겠지만 요즘은 술을 잘 못 먹으니 그냥 입맛만 다신다.

 

1구간때 이곳까지 왔었으면 2구간을 여유롭게 할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이틀 연속 산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차가 그리크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왔다

예전부터 안동에서는 가문마다 독특한 재료와 방법으로 만드는 청주가 전해져왔는데, 이 청주를

증류하여 만든 것이 소주이며 순 곡주이다. 알콜 도수는 45도나 되며 주로 5∼10월 사이에 마신다.

1920년 안동시 남문동에 현대식 설비로 세워진 제비원소주가 대표적이었는데 1962년 주세법 개정

등으로 순곡주의 생산이 금지되면서 명맥을 잃어가던 안동소주는 1990년대 민속주 생산이

재개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로 자리를 잡았다.

 

안동소주의 제조과정은 멥쌀 또는 찹쌀로 고두밥을 찐 뒤 이를 누룩·엿기름·물을 섞어 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곳에서 2∼3일 발효시켜 부글부글 올라오는 술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솥에 물을 조금 넣고 끓이다가 소줏고리에 발효시킨 술을 담아 그 위에 올려놓고 끓인다.

소줏고리 위에 움푹한 뚜껑을 덮고 찬물을 번갈아 부어 뚜껑 밑에 주정이 이슬처럼 맺히게 하여

소주를 받아낸 것이 안동소주이다

 

7%

예부터 안동소주는 상처소독,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의 구급방으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안동소주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무형문화재와 연관된 전통

안동소주 제조 기능보유자로 조옥화(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 2000년 지정)가 인정되었다.

한편, 무형문화재와 연관되지는 않으나 전통과 현대를 절충한 안동소주는 박재서(대한민국

식품명인 제6호, 1995년 지정)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안동소주 홍보관에서 도로를 건너 최근에 생긴듯한 기사식당 마당으로 향한다

기사식당 마당에서 청색 물탱크를 바라보면서 올라간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의 물받이 홈통방향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절개지 능선에서 바라본 안동소주 홍보관과 와룡면(臥龍面)의 모습

앞에 보이는 35번 국도 너머가 와룡면소재지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내가 참 좋아하는 미스트트롯 가수 영탁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안동시의 한 가운데 위치한 와룡면은 동쪽의 와룡산을 경계로 월곡면과 맞대고 있었으나

안동댐의 수몰로 사라지게 된 월곡면 지역의 일부를 흡수하여 호수에 접해있고, 서쪽은

북후면, 남쪽은 구 안동시, 북쪽은 예안면과 녹전면을 경계로 하고 있다

 

와룡산의 지명을 따와서 와룡면이라 하였으며 이 산은 퇴계 이황의 큰 제자인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이 “산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국과 같다”라 하여 와룡산이 불렀다고 한다

 

와룡면의 지세(地勢)는 금학산(琴鶴山)을 면의 주산으로 하여 동쪽에는 와룡산(臥龍山),

동쪽에는 왕상산(旺相山), 중앙에는 사리산(師尼山)이 솟아있고, 야산 구릉(丘陵)이 종횡으로

서려있어 넓은 들도없고, 큰 냇물도 없으나 비교적 농토는 적지 않은 편이어서 농산물이 많다

와룡휴게소 절개지 뒷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가지말라고 차양막을 쳐놨다...그런다고 안 가나...

무명봉(10:05)

사람들이 안 다니는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잡목의 저항의 엄청나게 심하다.

몇년전에 이곳을 지나간 산으로님은 이곳을 거의 공짜라고 했는데

산꾼들 말은 믿을게 못되는 느낌이다...ㅋㅋㅋ

희미한 묵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소나무숲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솔밭 사이의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보이고...

산이 좋은 이유

 

그동안의 산이 항상 목마른 열망덩어리였다면

이제 비로소 편안한 산을 만난 것이다

그동안의 산은 오로지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오르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다.

 

남난희님의 『낮은 산이 낫다』 중에서 

철조망을 지나니...

묘지 아래로 축사가 보인다

임도를 내려와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좌측 아랫쪽으로 젖소를 키우는 축사가 보인다

강아지가 산꾼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매구내 고개(10:25)

도로명 주소가 매구내길 98이다...도로를 건너서  개가 있는 곳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와룡면 태리에 있는 매구내 마을이 나오는데 매구내길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매구내는 보티 안마에서 북서쪽의 말바우 마을 가는길에 있는 고개로 안동부의 주산 가운데

하나인 영남산의 맥(脈)이 이곳에 와서 맺었다고 하여 ‘안동 명지(名地), 논, 둑, 명산(名山)이다’라는

말이 구전된다...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 하여

이곳의 혈(穴)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너무 쉬끼는 지랄발광을 하면서 짖어댄다

임도로 올라서니 잡풀이 무성하여 걷기가 힘이든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무명봉(10:28)

내리막길도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잡목의 저항을 피해서 이리저리 길을 만들어서 간다

안부를 지나고...

등로가 잘보이지 않는 소나무 숲길 사이로 간다

뫳돼지 쉬키의 횡포(?)로 생을 마감한 소나무도 만난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 아랫쪽으로는 묘지가 보이고...

삼각점봉(10:35)

지형도상에도 없는 삼각점(△경동13)이 보이는데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은 아닌듯 하고 아마도 지적도근점같이 보이나 기존의 지적도근점과는 다르게 보인다

삼각점봉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송이가 나올법한 소나무숲을 지나니 276.3m봉이 나온다

276.3m봉(10:37)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좌측으로 묘지가 보인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버섯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편안한 내리막길

안부(10:39)

넓은 공터가 나오는 곳에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소나무숲 끄트머리를 지나...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따라서 가니...

묘지가 나오고 곧이어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10:44)

안동시 와룡면  태리 보현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좌측으로 가면 보현마을이 나오는데 태리 보현(甫峴)마을은 무이마을 북쪽에 위치하며

지내리의 오리원 고개밑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부터 경치가 좋고 마을터가 아름답다고하여 

보티, 보현 등으로 불렸다고 하며 본 마을인 안마와 길거리에 있는 거리못과 맥서리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보현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묵은 임도로 올라선다.

묵은 임도를 지나니...

이내 뚜렸한 임도가 나오는데 뫳돼지 쉬키들이 등로를 난도질을 해놨다

곧이어 지리산 갈림길이 나온다

지리산(枝里山:334.8m) 갈림길(10:47)

우측으로 가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안동의 지리산이 있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지리산을 이곳에서 왕복으로 2.5km 이상 떨어져 있어 갈 일이 없다...좌측으로 향한다

 

지리산(枝里山:334.8m)은 안동시 와룡면 태리 무이 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또다른

지명으로는 사니산(師尼山)이라고도 부르며 산의 지세가 둥그스름하게 생겼으며 가뭄이

심할 때 산정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방장님! 송야지맥 능선으로 잘가고 있습니다 

희미한 능선으로 가니...

묘지가 보인다

무명봉(10:49)

희미한 등로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벌초를 안한 묘지도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수로 공사를 하면서 만든듯한 임도같은 곳이 보인다

희미한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0:53)

오늘 산행은 고도차도 없고 길은 비교적 뚜렸하나 여름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여 생각보다 상당히 힘이들지만 산행 속도는 괜찮다

살짝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0:56)

안부에서 좌측으로 완만하게 올라간다

편하게 맥길을 이어가는데...

또 다시 잡목의 저항에 부딪힌다.

묘지를 지나고...

수로관이 묻힌곳을 지나간다

서쪽으로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내성(문수)지맥 능선인 조운산(우)과 학가산이 보인다

무명봉을 통과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가을이 오는가 보다...낮은 산에도 금마타리가 피기 시작한다

잡풀 사이로 수로(水路)가 보이고...

길이 전혀 안보이는 등로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11:05)

이우리에서 태리의 말바우로 이어지는 농로인 듯 싶다

말바우(馬巖)는 죽헌종택 앞 동네 어귀에 2개의 커다란 바위 2개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공터로 올라서는데 잡풀이 길을 막는다

먹구름이 잔뜩 끼여 왠지 불안하다

나와 비 그리고 안동...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절개지로 올라선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수로가 지나가는 지역을 통과한다

안부(11:13)

안부를 통과하여 숲속으로 들어선 다음에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묘지(11:16)

묘지를 빠져나와...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이상리 고개(伊上峴:11:18)

안동시 와룡면 이상리와 주하리를 이어주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곳을 이상리 고개라 

하는데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고 이상리 마을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산꾼들이 붙힌듯 하다

도로 우측 주하리 지르내 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 311호인 안동 와룡면 뚝향나무가 있고

좌측의 이상리쪽에는 1761년(영조 37)에 사림의 공의로 이정백(李庭栢)을 제향하기 위해

북후면 도진리와 와룡면 주하리의 경계인 ‘유암(流巖)’ 위에 세워졌다는 유암서원이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간다

흰색 꼬들배기가 산꾼을 응원한다

좁은 시멘트 도로로 올라서니...

고추밭이 나오고 우측의 임도로 올라간다

등로는 좋다

능선 갈림길(11:22)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할 구간이다...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한장없고 잡풀이 무성하여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잡목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선답자의 시그널 한장이 보인다

무명봉(11:24)

뫳돼지의 횡포로 고사직전인 소나무

능선을 넘어간다.

고공수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공수로 안으로 내려서서...

고공수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고공수로에서 바라본 와룡면 이상리 상이우리(上伊友里) 가는길

이우리(伊友里)는 이상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중앙선 열차길이 마을 가운데로 통과하며

익우촌(益友村), 이계(伊溪), 천동촌(泉洞村)으로 불리워 왔으며 세분하면, 마을 초입에 있는

중리와 마을 서쪽 양지바른 지대에 형성된 양지마, 그 맞은편에 형성된 음지마, 그리고

마을 맨 윗쪽에 있는 상이우리로 구분된다.

 

영가지(永嘉誌)를 보면 이 마을은 천동촌 또는 속명으로 이화어(伊火於)로 불렀으며 

판회령부사(判會寧府事) 남우량(南佑良)공의 별장이 있었으며, 생원(生員) 권대기

(權大器)공이 이어서 살았다고 한다...당시 안동부사로 온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마을의 이름이 군자가 사는 곳으로는 합당치 못하다”하여

이계(伊溪)로 고쳤음을 알 수 있다...또 이계는 마을로 흘러드는 내로 한거량이라 불리는데

남으로 흘러 가수천(嘉水川)이 되고 동남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수로에서 올라와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곳을 통과하는데도 애를 먹는다

무명봉(11:30)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반갑습니다...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주하굴(周下窟:11:34)

이곳 아래로 중앙선 철길이 지나는데 주하리를 통과한다고 해서 주하굴(周下窟)이라고 부른다

고공수로 안으로 들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끝나는 지점에 경주김씨 가족묘가 나온다

고공수로에서 바라본 와룡면 이상리 샘골마을의 모습

샘골마을은 이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좋은 샘이 있어 샘골 또는 한샘골이라 불렀으며

한자로는 천동(泉洞) 또는 천곡(泉谷)이라 부르며,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이면 그 샘에가서

목욕을 하고 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근래에는 천곡지(泉谷池)가 생겨서

농업용수로 요긴하게 쓰이며 약 100년전부터 안동권씨가 입향하여 살았다고 한다  

경주김씨 가족묘(11:36)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베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핸드폰을 비닐봉지에 넣어 고무줄로 묶은 다음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뒤돌아본 경주김씨 가족묘

능선으로 올라갔다가 금방 내려선다

수로공사를 하면서 만든듯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꺽어지는 부분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금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249.2m봉이 나온다

249.2m봉(11:45)

맥길은 좌측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재선충 소나무 무덤들이 간간히 보인다

안부(11:50)

이노무쉬끼들...

무명봉(11:53)

좌측으로 내려서 아카시아 군락지를 통과한다

아카시아 숲을 통과하는데 몸뚱아리는 상처투성이다

도저히 틈이 안 보인다

이제 끝이 보이는가 보다...여름철에는 절대 올 곳이 못된다

뫳돼지의 횡포

능선에 올라서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잠깐 좋은 길이 나타났다가...

다시 고행이 시작된다

죽을 맛이다

찬신만고 끝에 잡목지대를 빠져 나온다

삼각점봉(12:10)

삼각점이 아니고 지적도근점인 듯 하다

맥길은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키가 큰 아카시아 군락지를 통과한다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12:20)

골짜기 같은 곳이 보이는데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다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비가 온 다음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흰국수버섯들

또다시 잡목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다

한참을 버벅거린 다음에...

잡목지대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꺽어진다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사면으로 이어지는 좋은길을 버리고... 잡목을 헤치고 올라선다

269.7m봉(12:31)

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내려가면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 보내마을로

내려가는 곳이고 지맥길은 봉우리 좌측 아랫쪽으로 보이는 묘지쪽으로 이어진다

 

보내[甫川]는 300여 년 전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어서 산 밑에 우물을 파니

메말라 보이던 곳에서 물이 내를 이룰 정도로 펑펑 솟아올라 클 ‘보(甫)’자를 써서 보내라고 한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가뭄이 심하여 다른 우물이 모두 말라도 이 우물만은 마르지 않아 인근 마을에서

물을 길어 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우물에서 물이 많이 나와 작은 내를 이루고 있다

풀섶에 숨어버린 삼각점

269.7m봉 삼각점(△422복구/건설부74.10)

269.7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공인(恭人) 안동권씨 묘가 있고 그 아래는

경주 이공 묘지가 나온다...공인(恭人)이란 조선 시대, 정오품과 종오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는 품계를 공인이라 한다.

공인(恭人) 안동권씨 묘 아래로 내려오니 경주이공 묘가 나온다

경주이공 묘를 지나니 희미한 임도는 완전히 정글로 변해 버렸다

아카시아와 등나무 넝쿨이 엄청 괴롭힌다...무대포로 치고 나오니...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다가...

등로가 사라진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고 도로로 내려선다

924번 지방도(12:41~53)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 맥현(보리고개)에서 와룡면 이하리로 넘어가는 도로이다.

배도 고프고하여 도로옆에 베낭을 내려놓고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며 휴식을 취한다.

 

맥현(麥峴, 일명 보릿고개)은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왔을 때

이 지역의 여러 곳을 암행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어느 날 공민왕이 이곳으로 암행을 나왔는데

마침 점심때가 되어 가까이 있는 집에 점심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해에는 근래에 보기 드문

흉년이 든 터라 곡식을 구할 수가 없던 주인은 설익은 보리를 잘라 대용식을 만들어 바쳤는데

왕이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보릿고개로군” 한 데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도로 우측의 임도로 올라서는데 은행나무에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달려있다

잡풀이 무성한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 산막골(山幕谷)의 모습

산매골이라도 부르며 안동시에서 6km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이하역(伊下驛)이 있는

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중앙선을 통과하는 노변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나무를

베기위한 산막이 있었다고 하여 산막골, 산매골로 부르며 안동김씨, 안동권씨, 김해김씨,

진성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또 옛날에 90세가 넘은 노인이 아홉분이 살았는데

이로인해 구로곡이라고도 불렀다

송전탑이 있는 모양이다...한전에서 걸어논 산불예방 리본이 보인다

임도에는 잡풀이 너무 많이 커서 걷기가 불편하다

임도 갈림길(12:57)

송전탑 공사를 하면서 만든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곧이어 등로는 좋아진다

NO85 송전탑(13:01)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NO86 송전탑(13:05)

송전탑 아래로 통과한다

등로가 잘 안보이고...

이곳에는 개복숭아들이 간간히 보인다

또 다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된다

서쪽으로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안동시 북후면의 산그리메가 보인다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정통 맥길을 고집하다 이곳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린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후퇴...우측 아래로 내려선다

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3:15)

안부에서 올라서니 NO87송전탑이 나온다

NO87 송전탑(13:20)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갈림길(13:28)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간간히 모싯대도 보인다

안부(13:30)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3)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동권공 묘(13:35)

안공권공 묘를  내려서니...

간벌을 한 아카시아가 길을 막는다

또 다른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율미고개(栗美谷:13:39)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 율미마을에 있는 고개이다

율미고개에서 바라본 율미마을의 모습

와룡면 이하리 산막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은 밤(栗)이 많이 생산되었던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율미곡(栗美谷) 또는 이명(異名)으로 유을산동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늙은 밤나무가 많다고 한다 

혼자놀기

율미고개를 지나 돈사(豚舍)가 있는 와룡농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서 간다

우측의 시멘트 도로로 향한다

도로 옆에는 돼지 이동차량도 보인다

도로에서 바라본 와룡농장 돈사(豚舍)

와룡농장 입구(13:44)

와룡농장 입구에서 우측의 밭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들깨밭 옆으로 향한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에서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무명봉(13:52)

희미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곧이어 뚜렸한 길이 나오고...

안부(13:54)

갑자기 등로가 좋아지니 불안하다

쉼터(13:57)

갈림길(13:58)

이곳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3시방향으로 내려간다

곧바로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안부를 지나서 좌측의 임도로 내려간다

희미한 임도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탄약창인듯한 군시설물이 보인다

고개(14:01)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와 와룡면 서기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 좌측으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옥달봉 갈림길(14:05)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옥달봉으로 향한다

옥달봉가는 길에 이경일님의 빛바랜 격려문구가 보인다

옥달봉(玉達峰:263.7m:14:07)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와 이천동, 안기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중 지명이 있는 유일한

봉우리이다...산행지도에는 옥달봉으로 나오지만 안동시의 어느 자료에도 옥달봉이란 지명은

없고, 왕달봉이란 지명만 보이는데 상당히 헷갈린다

 

조선시대에는 봉화대가 있었던 높은 산이라고 하며 왕달봉 밑에는 양의곡(良義谷) 마을이

있는데 지방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봉화대를 통하여 임금님께 소상히 알리는 어진

백성이 살고 있다 하여 양의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인증샷

옥달봉의 또 다른 흔적

우측으로 내려가면 양의골(良義谷)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옥달봉 정상 삼각점(△306복구 / 건설부 74.10)

다시 옥달봉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직진으로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 아래의 묘지가 보이는 능선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이발한번 잘했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오늘 산행중의 유일한 전리품

들깨밭을 지나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월영고개(14:15)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와 안기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좌측 아래는 월영사가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월영사 방향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버리고 우측의 콩밭쪽으로 향한다

잡초가 무성한 넓은 공터를 지난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동시의 산그리메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안동의 마을 순례길을 걷는 기분이다.

가장 높은 산이 300.8m이고 밭과 임도에 잡목의 저항, 지독한 거미줄이 산꾼을 괴롭힌다.

 

안동(安東)이란 지명은 BC57년 창녕군으로 시작해서 삼국시대에는 고타야군, 후기 신라시대에는

상주(尙州)에 속한 고창군이었다...안동이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후삼국의 패권을

위해 930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고창의 병산전투에서 당시 고창성주는 신라 52대

효공왕의 유일한 혈손인 김선평이었는데 927년 신라의 왕손 신분인 견훤이 신라의 수도 경주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던 경애왕을 죽이고 왕비를 능욕, 왕제(王弟) 효림과 제상(宰相) 영경을

잡아간 사건이 고창성주 김선평에게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는데, 신라의 도움 요청을 받고

견훤의 북진을 대비하기 위해 풍기, 영주, 예안을 거쳐 안동의 병산에서 안동의 호족인 권행,

장정필 등과 함께 대치중인 왕건의 고려군을 도와 대승을 거둠으로서 후삼국 시대의 통일

전쟁에서 대세가 고려로 확 기울었다...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은 안동 병산전투의 의의를

깨닫고 전쟁이 끝난 5일만에 왕건은 화답했다.

 

왕건은 고창군을 동남땅이 편안해졌다는 뜻이 “안동부(安東府)”로 개칭 승격하고 고창전투의

승리를 이끈 고창 성주(城主) 김선평(안동김씨 시조)과 김행(안동권씨 시조), 그리고 장길
(안(인)동장씨의 시조)을 국가 최고 명예인 태사(太師)에 봉하고, 벽상공신(壁上功臣)으로 현양했다.

 

두 김씨(金氏)는 신라 왕성(王姓)으로 이들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안동을 지켰다.

3인의 묘우(廟宇:신위를 모신 집)가 있는 곳이 안동웅부공원 뒤에 있는 태사묘(太師廟)다

1천여년을 이어오며 해마다 삼공신(三功臣)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며, 차전(車戰)놀이는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열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우측 제일 높은 봉우리)과 보문산(좌측)이 보인다

갑자기 마사토의 절개지가 나오는데 스틱에 의지한 채 내려오다가 스틱에

너무 힘을 가했는지 스틱이 꺽어지면서 한바퀴 돌아서 고개 아래로 쳐박힌다

얼굴에 이마에 약간의 피가 나긴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했다.

고개(14:18)

휘어져버린 스틱

지난해 봄에 김해 용지봉에서 내려오다가 스틱 한짝이 뿌러졌어 짝짝이로 1년넘게

다녔는데 이번에 또 다른 한짝이 망가져서 아무래도 바꿔야 할 듯 싶다.

한셋트에 35,000원씩 2셋트를 사서 3년을 썼으니 본전은 찾았지 싶다.

마사토 고개를 지나 잡풀을 헤치고 나오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 우측 아래에는 윗지르네 마을이 보이고 그너머로 조운산에서 학가산으로 이어지는

내성(문수)지맥 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등로는 좋다

안부(14:26)

묘지 석물이 보이는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14:29)

관리가 안되는지 용도 폐기된 초소인지...칡넝쿨이 초소를 포위해 버렸다

갈림길(14:30)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지나니...

소나무숲이 보이고 가운데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한티재가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절개지로 내려서니...

묵은 도로가 나오고...

우측으로는  상수도 배수장이 보인다

한티재로 향한다

한티재(漢峙:14:36~45)

안동시 안기동과 이천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제비원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고 

좌측 아랫쪽은 안기동 사무소 우측 너머로에는 이천동 석불상이 있으며, 이천동쪽의

비골은 조선시대에 출장 가는 관리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연미원(燕尾院)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설로는, 도대목(都大木)이 법룡사(法龍寺, 일명 한절)를 짓고 제자가

미륵당(彌勒堂)의 미륵을 덮는 난간 집을 짓기로 하였는데, 도대목이 법룡사를 다 짓고 왔더니

제자는 아직도 평고자(平高子)를 박고 있었다. 화가 난 도대목이 난간 집을 차 버리자 아래로

떨어지던 제자가 제비가 되어 날아가 제비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 난간 집 무너지는 소

리가 30리 밖까지 울렸다고 한다.

 

이천동 석불상은 일명 ‘제비원 미륵’으로 불리며 안동시 북쪽 이천동 태화산 기슭에 위치하며, 

화강암 석벽에 10m 높이의 몸통을 새기고 2.5m 높이의 머리 부분을 조각하여 올려놓은 고려시대

마애불로 산신의 정기와 부처의 원력이 만나 소원을 이루는 곳으로 이름 높으며 인자하게 뻗은

긴 눈과 두꺼운 입술, 잔잔한 미소가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석불상이 위치한 제비원은 민간신앙의 성지이며 성주의 본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의 의자에 앉아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GS칼텍스 간판이 있는 뒷쪽으로 오르니...

텃밭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좌측으로는 제비원주유소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솔밭이 나오고...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도로(14:50)

제비원주유소에서 이천동 감나무골로 넘어가는 도로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임도로 올라간다

이천동(泥川洞)은 마을에 진흙이 많고 진흙의 질이 좋아서 도기(陶器)를

만들었다고 하여 도천이라 하다가 이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묘지 뒷쪽으로 맥길은 이어지고...

등로는 좋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56)

우측에서 올라오는 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올라가는데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도로도 좋고 고도차도 별로 없어서 빠른 속도로 산행을 이어간다

길이 너무 좋으니 늘 하던 습관인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5:02)

이곳에서도 독도에 주의해야할 구간이다

송전탑 직전에서 직진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곧바로 좋은 길이 나온다

둘레길같은 등로를 걸어가는데 좌측 아래에 군부대가 있는 모양이다

늦은 시간인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인지 산책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10)

정상에는 방공호같은 구덩이가 있는데 우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서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쉼터(15:10)

쉼터를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로 내려가니 5번 국도위를 통과하는 육교가 보인다

사곡육교(15:12)

사곡육교 위에서 바라본 5번국도(경북대로) 영주쪽의 모습

사곡육교 위에서 바라본 5번국도(경북대로) 안동쪽의 모습

우측앞에 보이는 전원이 있는 곳이 맥길이다

육교를 지나니 전원주택 단지인지 공단인지 모를 넓은 공터가 나온다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전원주택을 포스트 삼아 맥길을 이어간다

절개지를 올라간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킨포크라는 카페 마당이 나온다

건물 뒷쪽으로 올라가니...

개쉬키들이 지랄발광을 한다

무명봉(15:20)

무명봉으로 내려서는데 길이없다

배수장이 보이고...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숏다리 범여는 상당히 애를 먹는다

배수장에서 바라본 킨포크 카페의 모습

킨포크 까페 건물 뒷쪽이 맥길이다

송현배수장(15:22)

배수장 아래로 내려간다

킨포크 간판이 보이는 맞은편으로 가야하는데 휀스가 처져있고 한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한다

울고 싶은데 빰맞은 격이다...좌측의 마을 도로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노하동 전원주택 단지들이 보인다

매락골 고개(15:28)

안동시 송현동에서 이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매락골[일명 매화곡(梅花谷)]은 송현동 몰갯골에서 북동쪽으로 조그마한 고개 넘어 있는

마을로 매화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매화나무를 찾아볼 수 없고 주변이

전원주택 단지로 바뀌어 버려서  고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경동농기계 간판을 보면서 도로를 버리고 전봇대가 있는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노하동 전원주택단지

뒤에 보이는 저 봉우리에서 전원주택 사이로 와야하는데 갔어도 못올뻔 했다

송천탑이 있는 저 봉우리가 족보가 있는 189.1m봉...저리로 가야 한다

절개지를 따라서 곡예를 하듯 맥길을 이어간다

절개지에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백조씽크공장(15:31)

백조씽크공장 마당으로 들어가서 건물사이로 간 다음에...

절개지를 빡세게 올라간다

절개지 능선에 올라서 씽크대 공장너머로 바라본 전원주택의 모습

189.1m봉(15:37)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내성(문수)지맥 조운산~학가산~보문산 능선의 모습

안부(15:39)

안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간다

길은 좋다

182.2m봉(15:47)

등로 위에 있다

풀섶에 숨어있는 삼각점

182.2m봉 삼각점(△432재설 / 78.7 건설부)

임도 갈림길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편안한 길을 가다가 내려서니...

뚫린 철조망이 나오고 아래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택지 조성지가 보인다

쉼터(15:53)

택지조성지 윗쪽으로 걸어간다

블럭 담벼락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향한다

선답자들의 대부분이 담벼락을 끼고 갔는데 잡목으로 인해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알미늄 삿시 문이 있기에 밀어보니 문이 열린다...에라 모르겠다...안으로 들어간다

비단길(?)로 내려간다

십자가의 모양으로 봐서는 천주교 시설물인 모양이다

좌측으로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높은 담장이라 갈 수가 없다

계속 내려선 다음에...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입구에서 우측으로 가니...

합전고개(16:00)

제일씽크 공장이 나오고 도로에서 씽크공장옆 밭쪽으로 올라간다

도로 건너편에는 안동소망교회와 대풍가든 간판이 보인다 

밭가운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능선 오르기전에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다시 길은 무쟈게 좋다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언덕에 올라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은하수빌B동이 보인다

은하수빌B동(16:23)

빌라앞 능선으로 가니 좌측 아래에 SK이삿짐센터가 보인다

쉼터(16:26)

ㅜ자 갈림길인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맥길에서 약간 떨어진 

족보인는 155.2m봉이 있으나 합수점까지 가는 시간이 촉박하여 표기한다

우측의 묘지를 끼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솔티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선다

솔티고개 입구에 있는 이안아파트의 모습

솔티고개(松峴:16:31)

안동시 송하동에 있는 고개로 안동터미널과 신 안동역에서 구도심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본래 안동부 부내면 지역으로서 솔티고개가 있으므로 솔티라 했으며 느티나무골과 수고내미골로

나뉘어지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송자(松字)가 든 곳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안전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거대한 아파트촌이 되었다.

 

이곳에서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에서 자꾸만 에러 메시지가 뜬다.

하는 수 없이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메모리 카드로 교체를 하고 솔티고개를 건너

S-oil 주유소 방향으로 올라간다...부지런히 촬영을 하면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서울에 올라갈 열차시간 때문에 정신없이 오느라 카메라를 확인하지 못한 탓이었나...

솔치고개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난감하다.

1년 넘게 베낭에 넣어 다니다가보니 에러가 나는 것 확인을 못했다...이걸 어쩌나.

일단 방법이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면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호암1배수문을 지나서 제방길을 타고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호암2배수장에 도착하니 송야천(우)과 낙동강(좌)이 만나는 합수점이 보이는데

참으로 기가 막히고 힘들게 온 맥길에 김이 빠진다 

송야천/낙동강 합수점(18:05)

메모리 카드 에러로 인해 김도새고 흥도 안 난다

제방길에서 산책을 하시는 분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내 성격상 아무래도 틈을내서 다시와야 할 듯 싶다

합수점이 있는 호암 2배수장에 제방길을 따라서 안동역으로 향한다.

15여분을 걸어서 안동역에 도착한다

안동역(18:30)

선비의 고장이자 정신문화의 수도로 알려진 곳...안동

人性이 메마르고 갈수록 인간성을 잃어가는 요즘 시절 꼭 필요한 기본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나 세상사 돌아가는 걸 보면 정신문화와는 반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특히 예와 인성,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정치하는 인간들의 막말은 귀를 의심케 한다

 

얼마전 명문대를 나와서 판사까지 한 초선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국회의 가장 큰 어른인

국회의장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법을 단독으로 처리하려는데 협조하지 않았다고 ‘개××’를

상징하는 ‘GSGG’ 을 하지 않나, 형수에게 입에 차마 담지못할 욕설을 퍼부은 이 지역출신의

모 지사가 여당 대권 후보의 선두이다...그 뿐인가, 막말과 인성이 부족한 인간들은 여,야

가릴것 없이 너무나 많다... 저런자들을 국가 지도자인 이 나라... 정말 미래가 안 보인다.

 

최근에 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파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때린 사건과

민주노총 택배노조원들이 비노조원들에게 차마 입에 담지못할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고

힘없는 택배 점주를 괴롭혀 젋은 점주가 자살케 한 사건...열거하지도 못할 일들은 

사회 전체가 반(反) 인성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안동발 → 청량리행 열차표

아침에 청량리에서 역에서 미리 예매한 열차표를 확인하고 화장실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열차에 오르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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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0일 ...땜방

2주전인 2021년 9월 5일에 송야(용암)지맥 마지막 구간에 나섰다가 카메라 메모리 카드의 에러로 인해

사진이 지워졌는데 아무리 복원을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복원을 할 방법이 없어

또 다시 마지막 구간을 나선다.

2014년 10월이었던가 땅끝기맥 월출산 구간...도갑산에서 제안고개 구간에서도 메모리 카드의

에러로 인해 2번을 간 기억이 있었는데 이곳 송야지맥 구간은 이상하리만큼 첫 구간부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애도 많이 먹었고 경비 지출도 많지만 지맥길을 위해서는 영주, 안동, 예천쪽이 올 일이

없을 듯 싶어 액땜을 한 셈치고 늦은 시간에 다시 한번 길을 나선다.

서울경부발 → 안동행 버스표

어제 대전에 있는 용수(관암)지맥을 1구간을 끝내고 늦은 시간에 서울에 왔었는데 피곤했던지

조금 늦게까지 잠을 자고 경부고속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으로 향하는데 추석 전날

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추석 전날답지 않게 도로는 한산한 편이다

평소의 주말과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버스는 12시 45분에 안동터미널에 도착한다

안동터미널에 내려서 커피 한잔을 사서 마시고 걸어서 12분만에 솔티고개에 도착한다

솔티고개(13:20)

지금도 2주전의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만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오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씨는 무쟈게 좋으나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이다

산행을 시작하다(13:25)

트랙을 따라서 솔티고개 옆에 있는 S-oil 서안동 주유소 직전의 우측 밭으로 들어간다

도로에서 내려서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 가운데를 질러서 주유소 뒷쪽으로 올라간다 

개쉬키 한마리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다행히 짖지는 않는다

잡풀을 헤치고 올라서니 밭 가운데로 뚜렸한 길이 보인다

밭 가운데서 뒤돌아 본 서안동 주유소의 모습

농가의 그물망을 넘어서 도로로 올라선다

뚜렸한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따가운 햇빛이 장난이 아니다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빨간 벽돌집인 안동 성좌원이 보인다

성좌원은 한센인들의 치료시설인 요양원이란다

맥길은 계속해서 도로로 이어지고...

갈림길(13:30)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등로 우측으로는 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3)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나오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5)

우측으로 내려간다

임도사거리(13:37)

임도를 따라서 가니 비닐하우스 가건물이 보이는데 사람이 사는 모양이다

153.8m봉(13:39)

갑자기 절개지가 나오고...

절개지로 내려서니 한빛모터스와 한길상사가 나온다

마당을 지나 나오니 금강 중장비 간판이 보이고 새로 생긴듯한 4차선 도로가 나온다

안동역과 터미널에서 송하동으로 넘어가는 도로인데 지도상에도 없으나

교통량은 생각보다 많아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길을 건넌다

송하동 도로(13:42)

도로를 건너서 편안한 우회길을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아 콘크리트 옹벽으로 올라간다 

절개지는 개똥쑥이 많이 보이나 생각보다 엄청나게 미끄럽다

무대포로 치고 오르는데 아카시아 나무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

무명봉(13:48)

송야(용암)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준.희 선생의 흔적을 만난다

묘지(13:54)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중앙선 철길의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마지막 내려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거미줄에다가 잡풀의 저항까지...

천신만고 끝에 호암마을 도로로 내려선다

낙동강을 가로 지르는 중앙선 철교의 모습

낙동강(洛東江)은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강으로 한반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다음으로 길고

남한에서는 긴 강으로 발원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역이 영남지방에 있기 때문에, 일명 영남의

젖줄로 불리기도 한다.

 

남한에서 한강(수도권), 금강(충청권), 영산강(호남권)과 함께 4대강으로 꼽히기도 하는

강으로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강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은 고대부터 존재하여, 신라

조선에서는 낙동강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강으로서 사독(四瀆) 중 하나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중사(中祀) 제사를 지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당시 이 강의 이름은 황산강이었다.
현재 명칭인 낙동강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과거 바다에 접하던 김해지역에 위치한 금관가야를 뜻하는 다른 말인 가락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해석이 있다.
둘째는, 경상북도 상주시의 옛 이름 중 하나인 낙양(洛陽)에서 온 것으로, 상주(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낙동강'이 되었다. 현재에도 이 흔적은 남아 있어서, 상주에 '낙양동'이라는

행정구역이 있고 낙동면도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원래 큰 하천은 숱한 지류들이 모인 물줄기이므로, 각 지류들의 발원지가 모두 큰 강의 발원지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임의로 그중 한 곳을 상징적인 대표로 정해야 하는데, 지리학계에서는 강 하구로부터

물줄기의 중심선을 따라 올라가 가장 먼 곳에 있는 발원지를 대표로 삼고, 이를 최장(最長) 발원지라고도 한다.

이런 기준을 따르면 낙동강의 최장 발원지는 황지천의 상류인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梅峰山)

천의봉(天衣峯)에 있는 너덜샘인데, 학계 일부에서는 이 곳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인정한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1486년)을 비롯하여 《척주지》, 《대동지지》 등 한국의 여러 고서에서는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황지연못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기술하며, 지금도 태백시에서는 황지연못을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관리하고 한다. 발원지를 인정하는 기준이 지리학계와 전통적인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황지 연못은 옛날부터 신령스러운 곳이라 하며 수량도 어느 정도 되지만,

너덜샘은 정말 병아리 눈물처럼 조그마하다.

호암 1배수문(13:58)

제방길에는 낙동강 하구 둑으로부터 340km라는 말뚝이 서 있다

우측으로 호암마을 비닐하우스 너머로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과 바로 앞에는 새로 생긴 안동역이 보인다

호암제라는 표시석을 지나고...

중앙선 철길 아래를 통과한다

송야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강 아랫쪽으로

현수교의 행태인 서안동대교가 멋진 모습으로 보인다

호암2배수지(14:08)

배수지 아래로 내려간다

잡풀과 억새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몸뚱아리가 가려워서 미치겠다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에서 내려오는 송야천은 물이 별로 없다.

송야천(松夜川)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 봉수산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북후면을 거쳐

서후면 남동쪽 끝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조선지지자료』의 서후면 경광리(지금의 교리)에

순 우리말로 '솟밤거렁'이라는 하천 기록이 나온다. '거렁'은 시내를 나타내는 방언이며, '솟밤'은

'솔밤'이란 방언을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교리 앞 하천변 들을 '솔밤들'이라 하는데 이 '솔밤'을 한자로

표기하면 솔 '송(松)'과 밤 '야(夜)'의 '송야(松夜)'가 되는데 『조선지형도』에 낙동강과 송야천이 만나는

지점에 '송야천(松夜川)'이 표시되어 있다

송야천/낙동강 합수점(14:18)

영주시 평은면 지곡리 봉수산 아래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이곳에서 낙동강으로

입수하면서 힘들었던 범여의 송야(용암)지맥 발걸음을 멈추고 스틱을 접는다.

인증샷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호암2배수지가 아닌 철교쪽으로 바라보며 호암마을로 가는 길이 훨씬 편하다

철길 아래의 제방길로 올라서니 호암마을이 보이고 산 아래에 임천서원이 보인다.

이래라도 송야(용암)지맥을 마무리하고 나니 꽉 막혔던 체기가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 

 제방에서 바라본 호암마을의 모습

안동시 송현동에 있는 호암(豪岩·虎岩)마을은 범이 누워 있는 형상을 가진 산이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호암이라고 하며, 낙동강변에 위치한 마을로서 강변에 호걸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바위로 인하여 낙동강에 홍수가 나도 호암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이 바위는 원래 한 개이었으나 어떤 장군이 은거해 있다가 막곡동의 석문정으로 간 뒤

갈라졌다고 하며 그 윗바위는 흔들면 흔들리는 채로 얹혀 있다고 한다.

호암1배수지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호암마을로 들어서서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임천서원으로 향한다

호암마을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임천서원으로 가는데 명색이 경상북도가 지정한 문화재(제164호)인데

관리는 허술하기 그지없다...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듯 하면 문이 굳게 잠겨 들어가 볼 수도 없다

임천서원(臨川書院)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성일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으로 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성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18년(광해군 10)에 ’‘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러나 1620년(광해군 12)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을 모시는 여강서원()으로 김성일의

위패를 옮기게 되었고, 그 후 오랫동안 복구하지 못하다가 1847년(헌종 13)에 중건하고 다시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8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정사(), 15칸의 홍교당(), 각 3칸의 동재()와 서재(西),

신문(), 4칸의 전사청() 등이 있다. 사우()인 숭정사에는 김성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홍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곳이며, 주소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의 강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3월 초정(: 첫번째 )과 9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 4두()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평 등이 있다.

김성일(, 1538~1593)은 자가 사순(), 호가 학봉()이며 시호는 문충()이다.

내앞 의성 김씨 종가에서 청계공 김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568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학문이 넓고 깊었는데 의성 김씨 가문에는 그 가학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성품이 강직하여 임금 앞에서도 직언을 굽히지 않았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도 머리를 수그림이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에 왜국에 부사(使)로서 갔다 돌아온 후 정사인 황윤길과는 달리 왜적이 침범해 올 기미가

없다고 보고하여,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상황판단을 잘못하여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하게 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학봉은 정사와 부사가 입을 모아 전쟁의 위험성만을 강조하면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정사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아 민심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고, 실제로는

전쟁의 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할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추스려 적군에 대항하기를 가장 먼저 했으며, 각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지휘함으로써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끄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1593년에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 안동에서는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적군과 의연히 대처한 지사의 면모로 더 잘 알려져 있고,

특히 퇴계의 수제자이자 학맥을 이은 학자로서 존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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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서원을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주만간산격으로 구경을 하고 걸어서 15분만에

안동터미널에 도착하여 15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