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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매포 서(금수)지맥(終)

매포 서(금수)지맥 제 2구간 - 새목재에서 과게이재까지

by 범여(梵如) 2021. 8. 9.

☞ 산행일시: 2021년 08월 08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오후에 비

☞ 산행거리: 13.6km + 들머리 2km/ 10시간 15분 소요(휴식 55분 포함)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무암사-쇠뿔바위 갈림길-동산갈림길-새목재-중봉갈림길-동산-모래고개 갈림길

                 무명봉-안부-대가리 갈림길-안부-암봉-안부-조망바위-753.6m봉-안부-680m봉

                  안부-암봉-갑오고개-621m봉-무명봉-안부-안부-용바위봉-단백봉-안부-암봉

                  조망바위-금수산 갈림길-망덕봉 삼거리-금수산-다시 금수산 갈림길-무명봉

                  864m봉-설금전망대-묘지-임도갈림길-576.9m봉-무명묘지-무명봉-585m봉

                  무명봉-안부-칠성봉-516m봉-무명봉-과게이재

☞ 소 재 지: 충북 제천시 금성면, 청풍면, 수산면 / 단양군 매포읍, 적성면 

 

이틀전에 휴가를 겸한 옥동(두위)지맥 3구간을 갔다가 기상청의 엉터리 예보로 인해

개고생을 한 이후라 그런지 피로가 좀 덜풀린 느낌이지만 그래도 지맥길에 발을

들여놔서 안 할수도 없고하여 어디로 갈까하고 전국의 날씨를 검색하여  본다.

 

구라청(기상청)의 예보는 너무 틀리기와 그리 신뢰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산꾼들에게는 鷄肋같은 존재처럼 되어 버렸다...인터넷을 검색하여보니 전국적으로

거의 다 비가 온다...예정대로라면 이틀전  2구간을 한 강릉남(만덕)지맥을 마감하고 싶었다.

 

이 구간은 강릉 시내를 둘레길 걷듯이 가면 될것같아 조금 힘이 안들것 같아 계획을 했는데

일요일날 강릉은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예보가 나오기에 포기하고 내일이 음력으로 7월 칠석이라

절에나 갔다가 오후에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는 친구집에 가서 막걸리나 한사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 잠에서 깨어난다

할 일도 없고하여 행여 비가 안오는 곳이 있나하고 인터넷을 검색을 해보니 유일하게 충북 제천

지역이 오후 5시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나오는게 아닌가...오후 5시정도면 산행이 끝날것 같다

그래 이곳으로 가자 생각하고 지난 4월에 수헌아우의 지원산행으로 조금 편하게 1구간을 끝내고

남겨둔 매포서(금수)지역 2구간을 하자고 생각하고 산행에 대한 아무런 공부도 없이 오룩스맵에서

지도를 다운받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역(06:10)

집 앞에서 한번에 청량리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50분만에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청량리발 → 제천행 열차표

역 대합실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고 플렛홈으로 향한다

코로나 탓인지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예약도 안하고 왔는데 열차 객실은 텅텅 비었다.

지랄같은 역병이 참으로 여러 사람을 죽이는구나...열차를 탔는데 일찍 잠자리에

일어났던 탓인지 열차를 타자마자 깊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제천역에 거의 다왔을 즈음에

잠에서 깨어난다...하마터면 단양까지 갈 뻔했다.

제천역(07:05)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천역에 도착하고 역을 빠져 나와서 이 지역의 지맥길을 타면서

자주 이용했던 김밥집에 들려서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에 먹을 김밥 한줄을 산 다음에

제천의 단골 택시인 강사장님에게 전화를 하여 택시를 타고 무암사로 향한다

무암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08시 05분이다.

제천택시 강사장님과 작별을 하고 마침 오늘이 칠월칠석이고 하여 무암사를 참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암사로 향하는데 입구 좌측 동굴법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암릉

깊숙한 곳에 부처님을 모셔놨다...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

무암사(霧巖寺:08:05)

무암사 입구로 들어서는데 마치 가정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무암사(霧巖寺)는 대한불교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기도 하며,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무림사(霧林寺)라 칭하였다.

그 후 우암사(牛岩寺)로도 부르다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무암사(霧巖寺)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청풍군 불우조(佛宇條)에 '무암사 구재백야산'(霧巖寺俱在白夜山)이라

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청풍부 사찰조에도 무암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무암사 유래에 대한 다음과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무림사를 세우려고 큰 나무들을 잘라 다듬어 힘겹게 나르고 있었다. 

이때 황우(黃牛)가 나타나서 목재 운반을 도와  손쉽게 절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후로  대사는

소를 극진히 위해 주었는데, 얼마 뒤에 죽게되었다. 소를 화장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왔고 

소의 불심에 감동하여 사리탑(소부도)을 세웠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이때부터  무림사를  

우암사(牛岩寺)라 불렀다 한다.

무암사 극락보전(極樂寶殿)

무암사의 주전(主殿)인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셔놓은 법당이다

현재의 사찰은 목조와즙의 10간 맛배집의 극락보전(極樂寶殿)과 1간의 7성각(七星閣), 1간의

산신각(山神閣), 10간의 요사(寮舍) 및 객실과 수호실이 있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지붕위 망와(望瓦)에 건융(乾隆) 5년이라 새겨져 있으며, 2000년에 이 절의

극락전 보수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의 기록에 의해 조선 영조(英祖) 16년(1740)에 중창 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대웅전 전면의 기둥이 수령 1200년이 넘는 싸리나무 기둥이라 하는데,  굵기로 보아 싸리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으나 오래 된 것으로 보존 가치가 충분한 것만은 틀림없다.

무암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霧岩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충북 유형문화재 제214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전체 높이는 85㎝이며 복장은 유실되었다.

극락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으로 최근에 극락보전을 새로 중수하고

단장하면서 목불에 개금을 하였다. 현재 2층의 닫집 아래 좌우에 최근에 조성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아미타여래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으며, 불상의 뒤편에는 목조에

금박을 입힌 극락회상목각탱이 장엄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상은 비교적 규모가 큰 목불로 통나무로 조각되었고, 두 손은 따로 만들어 끼운 형태이다.

머리가 큰 편이고 머리와 육계의 구별이 불분명하며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은 흙으로 만들어 붙였으며,

이마 위와 정수리에 계주 장식이 붙어 있다. 얼굴은 턱이 넓어서 넓적한 인상이나 눈썹과 코를 연결하여

높게 세우고 눈은 옆으로 길게 표현되었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상호는 원만한 네모난

형태이고 양미간에는 수정으로 조성한 백호(白毫)가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위엄이 있고 불격이 느껴지는

원만상이다.

 

상체는 길쭉하고 다리의 폭이 넓지 않으며, 평면적인 양감이 느껴진다.

팔은 상체와 붙어있고 어깨는 움츠리고 있어 경직되어 있지만, 어깨와 무릎 부분에는 환미감(丸美感)이 드러난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놓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았으며, 두 손 모두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이러한 손모양은 아미타구품인 중에서 하품중생인으로, 조선시대 아미타불상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약지 부분이 검지 부분과 같이 구부리고 있는데, 이 점은 조선 후기적인 특징이다. 결가부좌한

 

다리는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불의는 양쪽 어깨를 가리는 이중착의식 통견형식으로,

오른쪽 어깨를 반원형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이 가사(袈裟)이며, 그 아래의 안쪽 옷이 대의(大衣)이다.

가슴 아래 중앙에 보이는 옷은 승각기로 직선적인 띠를 두르고 있어 윗단이 주름져 있지만 띠매듭은 없다.

 

대좌는 조선시대에 유행한, 측면의 모를 죽인 3단의 팔각대좌로, 최근에 다시 색을 입혔다. 중대석에는

안상이 있고, 내부에는 학, 꿩 등의 새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불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불상을 직접 받치는 연화좌가 없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비록 복장 유물이 유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여래좌상으로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며, 원만한 얼굴과 몸체의 양감 표현에서 훌륭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통나무로 조각한 극락전의 주존불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座像) 충북 유형문화재

제214호 이다.  오랜 세월에  떨어져 나갔던 두 손을 따로 만들어 붙였고,  머리의 나발은  흙으로

만들어 붙였다지만 금빛으로 찬란한 모습이다.

극락보전에서 바라본 종무소를 겸한 요사의 모습

오늘이 음력 칠월 초하루이자 칠월칠석 입재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신도들은 한명도 안 보인다.

법회를 준비하려는지 절 집 살림을 맡고있는 듯한 보살들이 극락보전 청소에 열심이다

이러다가 우리 스님들께서 밥을 굶지나 않으시려나 걱정이 앞선다

 

칠월칠석은 민간신앙에서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시고 인간의 복을 비는 날이다.

원래 칠석은 도교에서 천체를 신앙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북두칠성을 신격화해 부처님을 외호하는

호법신장으로 불교신앙과 습합되어 불교의 명절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전에 민초들은 올바른 성인의 가르침을 몰라 눈에 보이는 모든것을 스스로 믿으면서 자신들의

가정에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자녀들의 수명장단을 빌었는데, 이렇게 볼때 칠석은 원칙적으로는

불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칠석신앙이 우리나라 사찰에 칠성단을 모시게 되고 신앙으로 자리한 것은 조선시대

불교탄압으로 인하여 불교를 유지하고 편의상 칠성신앙을 받아들여 민간인들이 불교를 받들고

불법을 외호하는 호법신으로 흡수시키면서 칠성신앙이 불교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칠석날에 사찰에 가서 칠원성군을 염송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신중님께 기도하는 것 같은

효험이 있다고 믿어왔다.

무암사 마당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무암사의 유래가 된 바위의 모습

무암사는  통일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옛날에는 무림사라 불리었다.

그러다가 건너산에 바위가 안개가 끼이면 부처로 보이다가 안개가 걷히면 바위로보인다

하여 안개‘무(霧)’ 바위 ‘암(巖)’ 무암사라 하였다한다.

 

무암사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을 한 다음에 절집 마당에서 극락보전 부처님을 향해서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면서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절집을 빠져 나온다

산행을 시작하다(08:15)

무암사를 지나서 4개월전 수헌아우와 같이 내려왔던 무암계곡 길을 올라간다

작성산 갈림길(08:23)

작성산으로 올라가는 일반 등산로로 지맥길로 이어지는 작성산 등로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좌측으로 0.2km 지점에 소뿔바위 있다고 하나 그냥 통과한다

계곡을 건너 가는데 무암계곡에는 물은 별로없다.

동산 갈림길(08:45)

또 다시 계곡을 지나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새목재(鳥峙:663m:09:08)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에서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날이 저물면 새떼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고개 양쪽으로는 지명이 비슷한 사찰이 있다.

무암사에서 새목재까지 2km거리인데 5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맥산행이 시작된다

새목재에서부터 동산 오르는 등로는 시작부터 급경사의 깔닥능선이다

오르막 주위에는 야생화들이 꽤나 보인다

병조회풀

폐결핵이나 진해, 거담에 좋다는 잔대들도 간간히 보인다

원추리 너는 이제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너나 인간들이나 마무리가 중요한데 너는 깔끔하게 준비하는데 

인간들은 왜그리 추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범여는 이런곳은 쥐약인데 그나마 다행인게 무암사에서 새목재까지

걸어면서 약 50분정도 몸뚱아리가 예열(?)이 된 탓인지 조금 나은 편이다

빡센 오름에서 힘이들 때는 야생화 한번 바라보면서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개갈퀴는 이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빡세게 오른 다음에...

능선에  한번 꺽어져 약간 편하게 걷는다

산으로님은 언제 지나가셨나?

또 다시한번 빡센 등로를 치고 오른다

등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는 조금전에 헤어졌던 동산 오름길을 다시 만난다

중봉 갈림길(868m:09:45)

제천시 금성면과 청풍면, 단양군 적성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이곳부터 우측은 금성면에서 청풍면으로 面界가 바뀐다

직진으로도 시그널이 여러개 달려 있지만 맥꾼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등로로

중봉, 성봉을 지나 금성면 성내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정표(↑중봉 0.45km, ←동산0.4km, ↓새목재0.4km)가 있는데 중봉을 갔다오고

싶지만 이곳은 비소식 때문에 갑자기 온 곳이라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동산으로 향한다

중봉갈림길에서 동산으로 가는 길은 고도차가 별로없어 좀 편하게 걷는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고...

간간히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는데 이곳은 갈림길이 없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잠시후에 동산 정상에 도착한다.

동산(東山:895.5m:09:55~10:03)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충주댐 건설 이전 청풍 동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단양군 적성면 금수산(錦繡山:1,015m)과 한 맥락의 소백산맥줄기로 북쪽 제천 쪽 갑오고개와

새목재 사이에 솟아 있으며 북릉은 작성산(鵲城山:844m)· 마당재산(661m)· 구동산(句凍山:470m)을

빚고 남쪽 장평천으로 가라앉는다. 오목조목한 암릉과 기암괴석이 그림 같은 소나무들과 어울려

매혹적이며 금수산같이 길지도 않고 작성산 경계에 안식처 같은 무암사(霧岩寺)까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하여 무림사(霧林寺)라 한 절 왼쪽에는 대사의 전설을 말하듯

시린 옥수가 흘러내린다

동산 정상 이정표

동산 정상 이정표(△309 / 1977복구)

인증샷

비는 오지 않으나 날씨가 꾸무리하고 습도가 높아서 힘이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그리 덥지 않아서 살 것만 같다.

새목재에서 빡세게 오른 탓인지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짚신나물(꽃말:감사)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은 식물에 달린 털들이 짚신에 달라붙어 신과 함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는데에서 유래했다.

또한 학명의 ‘agrimonia’는 ‘가시가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pilosa’는 ‘부드러운 털’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서양에서는 한 왕이 독살의 위험에서 짚신나물을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마법의 풀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동산을 지나자마자 지도상의 모래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모래고개 갈림길(883m:10:05)

우측으로 제천시 청풍면 교리 모래고개로 가는 등로인데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제천시 청풍면 교리와 학현리 사이에 있는 모래고개는 모래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지맥길치고 오랫만에 정말 편안한 꽃길을 따라서 걷는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암봉으로 올라간다...이곳부터 갑오고개로 이어지는 등로는 암릉구간이 많다

무명봉(10:13)

내리막길에서 만난 반가운 시그널들...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암릉구간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등로는 이어진다

암릉 아래로 내려간다

우회하면서 바라본 암릉

안부(10:28)

직진으로 이어지는 지맥길

대가리(大加里) 갈림길(10:30)

제천소방서에서 설치한 구조이정표가 있고 좌측으로는 단양군 적성면 대가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가 맥길을 우측으로 확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단양군 적성면 대가리는 음으로만 보면 마치 사람의 머리를 저속하게 부르는 것처럼 들려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자로 '大加'로 표기하여 '큰 것을 더한다'는 의미이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을 이름의 유래는 지형이 큰 가락처럼 생겼으므로 '한가래기'라고 불리어 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므로 '大'로 표기하였으나 '가래기'의 의미를

몰라서 '加'로 표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가래기, 한가리는 큰 갈림길 또는 크게 갈라지는 지형이라는 의미이며 '거문거리(크게 갈라지는 길)'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마사토 지역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0:32)

좌.우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예전에 제천 청풍에서 단양 적성으로 이어지는 길인 모양이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일제시대 일본의 자본수탈의 아픈 흔적이 있는 송진 채취를 한 소나무를 만난다.

100년이나 지난 세월동안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 말 한마디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지도자 한명 잘못 뽑으면 다들 개고생이지...

그런데 또 다시 대선이 다가 오는지 대통령하겠다는 나서는 자들이 많으나

한결같이 민초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이 이익을 위해... 진보, 보수로...있는자,

없는자의 편가르기로 표를 얻어 대통령하겠다는 자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대통령 퇴임하면 추하게 감빵가는 저 자리를 왜 하려려는 지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제발 민초들 편하게 해주소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멋진 촛대바위가 보인다

촛대바위 너머로는 중앙고속도로가 아련하게 보인다

너럭바위같은 곳을 지난다

산악마라톤 코스인 모양이다

가야할 금수산은 구름속에 휩싸여 버렸다

臥松을 지나고...

암봉(10:38)

잠시후에 오를 753.6m봉이 까칠하게 솟아있다

신선봉에서 저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암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려온 곳을 뒤돌아 본다

안부(10:40)

안부 좌측 계곡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거풍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조망바위(10:45)

능선 너머로 학강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나온 동산의 모습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있는 청소년 야영장과 상학현(上鶴峴) 마을의 모습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학현리(鶴峴里)는 상학현에 숫학, 하학현에 암학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학을 닮은 기암에서 마을명(名)이 유래되었으며 또한 마을의 풍수적 형국이 학 모양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마을에 학이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가야할 금수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칼날 능선을 곡예하듯 걸어간다

중앙고속도로 너머로 펼쳐지는 소백산 줄기는 雲海로 덮혀 버렸다

753.6m봉(10:48)

암릉 아래로 내려간다

조심...또 조심

나홀로 산행길은 이런 곳이 가장 겁이난다

우측의 상학현(上鶴峴)의 학생 야영장에서 행사를 하는지 음악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암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암봉으로 올라간다

다시 내리막길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안부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로프에 의지한 채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지나온 곳을 뒤돌아 본다

우리 民草들만큼이나 힘들게 살고 있구나

좌측의 능선은 암릉구간이다

암릉 아래의 편안한 우회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반갑습니다

안부(11:05)

능선에 올랐다가...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등로는 희미하고 다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암릉의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 사이로 뚜렸하게 등로가 보인다

680m봉(11:05)

680m 옆에 있는 기암

암릉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11:08)

돌담같은 같은 흔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토굴같은 흔적이 있는 암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봉(11:20)

암봉 아래로 내려가는데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걸로 보아 갑오고개가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갑오고개 너머로 오를 걸어야 할 용바위봉(791.2m)이 급경사엔 쥐약인 범여의 기를 꺽는다

갑오고개로 내려선다

갑오고개로 내려서니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국립제천 치유의숲 표석이 있다

국립제천치유의숲은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소속기관으로 산림복지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민 건강증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으며, 면적은 61.3ha(치유센터494.82㎡)

으로 운영인력은 총 8명(센터장1, 산림치유4, 운영지원3)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갑오고개(鶴峴:527m:11:30)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고소미골과 단양군 적성면 소야리 집다락골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532번

도로가 지나가며, 제천쪽으로는 국립제천 치유의 숲이 있고 길은 청풍쪽으로 이어지며 도로명 주소는

학현소야로인데 지맥꾼들의 산행 지도에는 갑오고개라고 하나 이지역 사람들은 학현리 윗쪽에 있는

고개라 하여 학고개(鶴峴)이라 부르며 갑오고개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단양군 적성면 소야리(所也里)쪽으로 향한다

소야리는 쇠(金)이 많이 났으므로 쇠골, 새골 또는 소야곡이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갑오고개 단양쪽으로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모습

갑오고개에서 능선에 오르기 전에  너무 덥고 습도가 많은 탓인지 상당히 지친다.

아침을 일찍 먹은 탓인지 배도 고프고 하여 식당에서 산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휴식을 취한다.

이틀전에 빡세게 산행을 한 탓인지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는것 같아서 오늘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여기서 끊으면 내 체력으로는 다음 구간을 한번에 못할것 같아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17분정도 식사겸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라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숨한번 크게 쉰다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621m봉(12:00)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무명봉(12:05)

희미한 등로는 우측의 사면길로 이어지고...

안부(12:07)

안부앞에는 커다란 암릉이 맥길을 막는다

우측의 급경사 암릉으로 오르는데 물기에 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능선에 오른 다음에...

조심스럽게 사면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암릉구간

조심스럽게 암릉 아래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오를 무명봉의 모습

내리막 등로는 상당히 까칠하다

안부(12:35)

오름길도 그리만만하지는 않다

등로에서 바라본 경찰청 제천 수련원의 모습

암릉 사면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그래도 오늘은 힘든 산행구간에는 어김없이 사면길을 만들어놔서 나같은 거북이는 상당히 도움이 된다

조심스럽게 오르막을 올라가고...

무명봉인 암릉 정상은 오를수가 없어 우회를 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

넓은 공터같은 곳이 나온다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단양군 적성면 각기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각기리는 원래 단양군 소야면의 지역으로 마을 앞에 뿔처럼 솟아 있는 바위 두 개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관주원과 이현을 통합하여 각기라 하였고, 단양군 적성면에 편입시켰다.

 

각기리에는 관잣(관주원), 배마루(이현), 버오심이, 본동, 삼거리 등의 자연마을이 있으며

관잣은 관주원이라고도 부르며, 각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구슬을 꿰어놓은 것 같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배마루는 이현이라고도 부르며, 각기 남서쪽에 잇는 마을로 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버오심이는 각기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본동은 각기리의 본마을이다. 삼거리는 관주에 딸린

마을로 매포․각기․소야리로 통하는 세 갈래 길이 있는 곳이다. 

용바위봉으로 향한다

전생에 뭔 업보가 있어 힘든 삶을 살까

바위쪽으로 올라서니 용바위봉 정상이 나온다

용바위봉(龍巖峰:791.2m:12:50~13:00)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와 단양군 적성면 소야리, 각기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정상 윗쪽은 펑퍼짐한 암릉으로 되어있고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정상에 서면 금수산과 동쪽으로는 소백산 주릉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꽝이다.

 

지명의 유래는 단양쪽에서 서쪽으로 치솟은 산을 바라보면 대.소(大.小) 골짜기 5개가 패여져

있는데 이 중에 가운데 것인 큰 용바위골이 마치 용이 승천하면서 올라가면서 파낸 자국처럼

보이기 때문에 두 용바위골 끝머리가 만나는 꼭대기라서 붙혀진 지명이다

 

용바위봉 정상에는 큰 용바위골과 작은 용바위골에 걸쳐 앉힌 용머리를 닮은 커다란 바위

2개가 협곡을 마주보고 있으며, 이곳은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으로

갑오고개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상당히 힘이 들었다

갑오고개에서 용바위봉 오름길은 너무 힘이들어 몇번이나 포기할까 망설이다 도착했다.

넓은 바위에서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별 방법이 없다...날머리까지 가는 수 밖에...

오후 5시이후부터 온다던 비가 일찍 시작하는데 오늘도 기상청은 어김없이 구라청이 되는구나.

베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라디오도 끄고, 스마트폰은 물이 안 들어가게 비닐로 꽁꽁

동여맨 다음에 비를 맞으며 너럭바위에서 한 동안 휴식을 취한다

오늘 날머리인 과게이재와 다음구간인 천주봉으로 가는 능선쪽으로 먹구름이 몰려온다

매포서(금수)지맥 능선은 금수산을 깃점으로 ∩ 형태로 맥길을 형성하고 있다

용바위봉 정상에서 비를 맞으며 10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우의는 있었지만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똑같은데 차라리 비를 맞는게 더 시원하다

암릉 내리막길로 내려서면서 뒤돌아 본 용바위봉의 단애(斷崖)

안부로 내려섰다가...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암릉 사이로 내려가는 등로는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단백봉으로 오르는 능선이 보이고 비는 잠깐 소강상태이다

내리막길에는 손가락 굵기의 로프가 있어 손쉽게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암릉구간에서 마사토 지형의 육산 사면길로 내려선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을 만나고...

좌측의 윗쪽 능선이 족보가 있는 737.3m봉이나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동산을 지나면서부터 이곳까지 암릉구간의 위험한 구간은 어김없이 사면길을

만들어놔서 걷기는 편하다마는 맥꾼이 野性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아!...왜 사면길이 많은지 이 리본에서 답을 찾았다.

산악마라톤을 하느라 사면길을 많이 만든 모양이다

좌측 능선이 맥길인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계곡으로 이어지는 일반 등로만 뚜렸하다

좌측의 오리지널 능선으로 올라가고 싶지만 비도오고 컨디션도 안좋아 그냥 일반 등산로를 따른다.

계곡으로 올라 가다가...

우측으로 오르는데 고수님들도 이 길로 간 모양이다.

등골나무도 갈 준비를 하는구나.

한번왔다 한번가는 人生 다들 왜이리 아둥바둥 사는지...

길이 좋은 능선으로 올라가니 이대장도 이쪽으로 간 모양이다

고도를 높이면 올라가니...

좌측의 오리지널 지맥과 만나는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원지맥길과 합류하여 우측으로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단백봉이란 표시석이 넘어져 있는 899.1m봉에 도착한다

단백봉(899.1m:13:55)

제천시 청풍면,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망가진 정상석과

이정표에는 900봉이라 적혀있다...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단백봉이 아닌 899.1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다...단백봉이란 지명유래는 없다.

단백봉이라는 지명은 단백산악회라는 곳에서 정상석을 세우면서 임의로 표기하여

단백봉으로 부르는 모양인데...산악회라는 곳에서 지명을 왜곡하면 안되제

 

넓은 공터의 정상에는 이정표와 넘어진 표시석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어지럽게 걸려있다 

금수산으로 이어지는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신선봉, 저승봉으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그쪽으로도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부터는 우측의 제천시쪽은 청풍면에서 수산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정상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금수산으로 향한다

오늘 자주 만납니다

등로는 아주 양호하다...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풀섶에 묻은 빗물이 카메라 렌즈에 닫으니 그림이 흐려진다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서...

급경사의 암릉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공터의 전망 좋은곳이 나온다

지나온 단백봉(우)을 뒤돌아 보는데 좌측으로 신선봉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와 수산면 능강리 사이에 솟아 있는 신선봉(838.9m)은

금수산과 동산 사이에 서북쪽 청풍방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의 최고봉이다. 

신선봉은 산자락에 비상하려는 학을 닳은 바위가 있어 일명 '학봉바위'로 불리며

학현마을 이름도 학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온통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자락에 들어 서면 마치 조각가가 정성들여 빚어 놓은 듯한

기암고석들이 줄이어 나타나고, 바위이름도 재미있어 킹콩바위, 손바닥바위, 못난이바위,

물개바위, 학바뛰, 발바위 등이 있으며, 이 일대의 모든 산 준령이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

기암괴석과 노송, 신록으로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앞쪽으로는 금수산 정상에서 갈라져 나온 망덕봉이 보인다

좌측 윗쪽이 족보가 있는 849.1m봉인데 암봉이라 오르지 못하고 사면으로 통과한다

 849.1m봉...눈팅이만 하고 아쉬운 맘으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4:15)

좌측 아래로는 협곡처럼 보이는 천길 낭떠러지인데 협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안부를 통과하여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 등로로 오르면서 오르지 못한 849.1m봉을 뒤돌아 본다

좌측 윗쪽으로 암봉이 보이나...

능선의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구간을 우회하고...

암봉으로 올라간다

암봉(14:22)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능선으로 올라가니 주위가 잘 보이는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14:32)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는 구름에 가려있다

암릉 구간을 통과하고...

비실이부부님의 흔적을 만난다

암봉 정상쪽은 오르지 못하고...

다시 좌측의 사면길로 비스름하게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금수산 갈림길이 나오는데 976m봉이 길을 막고있다.

금수산 갈림길(14:48)

맥길은 좌측 아래의 급경사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바로 앞에는 엄청나게 큰

976m봉 암릉이 있는데 비도오고 등로가 젖어있어 오르는 걸 포기하고 우측으로

우회를 하여 금수산으로 향한다...이곳에서 금수산 정상까지는 왕복 1.2km가 넘는 거리이다.

976m봉을 우측으로 우회를 하여 금수산으로 향한다

976m봉을 돌아서 오니 상학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가 나온다

다시 빗줄기는 굵어지고 등산화에 물이 가득찼는지 물소리가 들린다

잠시후에 가야할 칠성봉과 과게이재가 흐릿하겐 보인다

까칠한 금수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금수산 가는 길....일반 등로를 따라서 편하게 간다

망덕봉 삼거리(15:05)

철계단을 따라서 금수산으로 향하는데 빗줄기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망덕봉과 좌측 아래로 청풍호가 보인다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와 상천리의 경계에 있는 망덕봉(望德峰:930.9m)은 금수산과 함께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암릉구간이 멋져 일명 용아장성이라 불리는 산이다

 

인자요수(仁者樂山)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망덕봉은 어진 이에 덕을 주는 승경의 봉 이름이다.

 금수산 정상 북쪽 안부에서 서쪽 청풍호반 쪽으로 지능선의 최고봉으로 금수산(의 일부분이며, 

망덕봉은 제천의 명산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골이 깊으며 기암 절벽과 함께 용담폭포, 선녀탕, 

얼음골 등의 명소들이 즐비하고 계속되는 암릉길은 최소 5m이상의 직벽 암벽길이 수차례나

있는 로프 암반길이 엄청 힘이 드는 곳이다

금수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제천군 수산면 능강리 얼음골의 모습

가뭄이나 장마 등 때를 가리지 않고 바위틈 사이로 일정한 수량이 용출되는 용소와 

삼복 더위에도 얼음이 나는 곳이라 하며, 이곳이 얼음을 먹으면 만병이 통치된다고

하여 피서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라 한다 

금수산 오르는 길은 철계단으로 되어 있지만 생각보다 까칠하다

철계단에서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오르지 못한 976m봉과 그 너머로 있는 제천시내는

비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운해에 뒤덮혀 버렸다...숨을 헐떡거리면서 비에젖은

철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들리더니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왠 박수소리!...이 빗속에 등산객이 있는걸로 봐서 금수산이 명산이구나.

 

독립군으로 산행하는 범여로서는 꽤나 어색한 장면이다

근데 건장한 10여명(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음)의 등산객들이 도열하여

큰 박수를 치면서 선배님 어서 오십쇼 하는게 아닌가...내 평생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환영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며...처음 본 산꾼에게 선배는 뭐람.

 

나중에 알고보니 서울에서 온 등산객들인데 목포에서 명문고교 동창으로

같이 산행을 왔다고 하면서 단체로 인증샷을 남기고 싶었는데 내가오니

반가워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환영의 박수를 친 것이란다

이 분들이 내가 찍사인 줄 어떻게 알았어...근데 난 인물 사진이 전공이 아니고

야생화만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이고 거기다가 스마트폰으로는 사진을 

인증샷 이외는 안 찍는데,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찍어 달라고 해서

찍어주긴 했는데 스마트폰이 비에젖어 잘 터치가 안되어 애를 먹었는데

사진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는구먼...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금수산(錦繡山:1,015.8m:15:20~45)

충북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능강리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옛 청풍군의 주산으로 본디 이름은 백운산이었으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로 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몹시 아름다운 이곳의 가을 경치에 감탄하여

금수산(錦繡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는데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조에 인용된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기문에 금수산의 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 이전부터 금수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린 정인지의 제영(題詠)에 의하면 "복사꽃 마을길은 신선의 지경이요

(桃花村路神仙境) 단풍 든 계곡과 산은 금수(錦繡)의 병풍이다(楓葉溪山錦繡屛)"라고 하여

금수산의 지명 유래가 시인묵객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생성되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금수산은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으며 월악산 국립공원 북단에 위치한

산으로 울창한 소나무숲과 맑고 깨끗한 계류 등 경관이 뛰어나며, 봄철의 철쭉과 가을철의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금수산 7부 능선에 숨어 있는 얼음골은 드넓은 돌무더기를 조금만 들추면

밤톨만한 얼음 덩어리가 쏟아져 나와 붙인 이름이다. 금수산 얼음골은 4월 초에서 8월 초까지

얼음이 얼었다가 처서를 전후해 얼음이 녹는다. 금수구곡은 약 7㎞에 이르는 계곡으로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아 청풍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금수산 자락에 무암사(霧巖寺)가 있어 세속을 잠시 떠날 수가 있다.

금수산 정상 이정표

인증샷

망덕봉과 능강계곡 너머로 신선봉~학봉~저승봉(미인봉)~조가리봉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능선상에는 작성산(844.3m), 동산(895.5m), 말목산 등 700∼800미터 높이의 산들이 여럿이고,

서쪽으로 뻗은 지릉에도 중봉(890.6m), 신선봉(838.9m), 미인봉(595.7m), 망덕봉(930.9m) 등 크고

수려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단양의 시멘트 광산과 소백산 연화봉 천문대의 지붕까지 보인다.

멀리서 보면 능선이 마치 길게 누워있는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미녀봉 또는

처녀봉이라 불리는 금수산(錦繡山)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청풍호 너머로 월악산 영봉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앞으로 지난해

4월 15일 나홀로 걸었던 광천(등곡)지맥 능선이 구름에 가려 몽환적인 풍경을 지아낸다

 

망덕봉 뒤로는 청풍호반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월악산과 대미산, 백두대간이 지나는 황장산이 아련하다.

그 아래로 청풍호반은 마치 피요로드를 연상케 할 만큼 멋진 모습으로 산꾼을 유혹한다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좌측으로 단양군 매포읍이 얼굴을 내밀고 구름을 이고있는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과 우측으로 죽령에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금수산 정상에서 등산객들과 어울리다보니 가야할 길이 먼 나의 본분을 망각하고

25여분이나 지체하면서 정작 찍어야 할 삼각점을 놓치는 憂를 범했다.

속된말로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고 신선놀음 한 꼴”이 되어 버렸다

삼각점은 데크목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살짝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산같이 물같이 살자


텅빈 마음엔 한계가 없다
참 성품은 텅빈곳에서 스스로 발현된다
산은 날보고 산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물같이 살라한다

빈몸으로 왔으니 빈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집착 욕심 아집 증오 따위를 버리고
빈그릇이 되어 살라고 한다
그러면 비었기에 무엇이든 담을수 있다고 한다

수행은 쉼이다
이것은 내가 했고 저것은 네가 안했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항상 마음이 바빠서는 도무지 자유를 맛볼 수 없다
내가 내마음을 이것에 붙들어 매어놓고
저것에 고리를 걸어놓고 있는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항상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

수행은 비움이다
내가 한다 내가 준다 내가 갖는다 하는 생각
또는 잘 해야지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버리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 수행이다

 

- 법정스님 -

서쪽으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단백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뒷쪽으로

아침에 걸었던 동산과 지난 4월에 걸었던 작성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등산객들은 먼저 내려가고 난 정상에서 조금 더 머물렀다가 내려간다

좌측의 맨 끄트머리 부분에 있는 미인봉 너머로 청풍호가 마치 산정호수처럼 보인다

 

지형도에는 저승봉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미인봉(美人峰:595.7m)이라고 부르며 금수산

자락의 신선봉에서 청풍 방면 도화리로 벋어내리는 능선 위에 솟아 있는데 산을 중심으로

북쪽 학현리계곡, 서쪽 동천협곡, 남쪽 능강천계곡이 깊게 패어 있다. 

 

산 이름에 관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이곳에 저승골이라는 협곡이 있어 마을사람들이 저승봉(猪昇峰)이라 불렀다는 설과 옛날에

멧돼지가 많이 살아서  돼지 저(猪) 자를 써서 저승봉(猪昇峰)이라 불렀다는 설이 그것이다

 

저승봉 아래 골짜기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이 골짜기는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그 뒤 저승골과 저승봉으로 각각 불렸다.

저승봉에 오르는 등산로에는 신라 문무왕2 의상대사가 창건한 정방사라는 1천여년된 고찰이 있다.

큰 바위덩어리인 976m봉 아래로 잠시후에 걸어야 할 지맥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영월지맥

능선인 누에머리산과 가창산. 좌측으로는 산이 절반정도 날아가버린 제천지맥 갑산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치악산도 시원스레 보이겠다

아직 필 시기가 안되었건만...철없는(?) 구절초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청풍호 너머로 보이는 월악산 영봉을 당겨보는데  월악산 앞의 조그만 능선이 광천(등곡)지맥이다

월악산 영봉을 보면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임산부처럼 보이기도 하며

사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멋진 산이다

다시 망덕봉 삼거리(15:55)

망덕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좌측의 조망대에 먼저간 등산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가는 길이 달라서 서로의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왔던 맥길로 향한다

일반 등로로 내려가는 철난간을 넘어 좌측으로 향한다 

선답자들도 이곳으로 간 모양이다

다시 금수산 갈림길(16:05)

금수산을 갔다오는데 25부간의 여유로운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17분이 걸렸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비에젖은 낙엽이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초반에 된통 미끄러지면서 보기좋게 능선 아래로 쳐박힌다

976m봉을 우회하는데...

최근에 지나가신 모양이다

한참을 내려오니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등로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명봉(16:12)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와서 암릉 아래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내리막길에는 등로가 보이지 않고...

감사합니다.

소강상태였던 비는 다시 시작되나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안부를 지나서 ....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864m봉(16:22)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한없이 내려간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고...

이곳은 등로가 전혀 안 보이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안 그래도 느린 발걸음인데 더 느려진다

안부를 지나고...

이곳에 도착하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갑자기 오룩스맵이 작동을 멈춰 버린다

조금을 기다리니 맵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철쭉 군락지 사이의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 가뭄에 콩나듯이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들이 눈물나게 고맙다

조그만 능선을 넘으니...

내리막길에 산딸기 군락지가 보이고... 등로가 엄청 거칠다

우측의 나뭇가지 아래에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이 보여 우측으로 나간다

우측으로 나가니 잡목속에 묻혀버린 데크목 광장이 나온다

광장으로 올라가보니 조금전에 올랐던 금수산이 보인다

설금(雪禁)전망대(16:22)

꽤나큰 규모의 데크목 광장에는 설금(雪禁)의 안내판이 있는데 ’이 지역은 동남향의

따뜻한 지역으로 예부터 서리와 눈이 늦게 내리는 곳이라 하여 설금(雪禁)이라는

옛 지명으로 불리우고 있다’라는 팻말이 있다

설금전망대에서 바라본 상학마을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서는데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잡목으로 뒤덮인 등로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저항으로 인해 몸뚱아리가 상처투성이다

저 멀리 백두대간상에 있는 죽령(가운데 옴팍한 부분)과 우측으로 삼형제봉, 도솔봉이 보인다

고수님들이 지나간 흔적...맥길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있다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하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따르는데 자꾸만 지맥길에서 멀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면 남근석 공원이 나오는 편안한 길이지만

왠만하면 맥길에 충실하기 위해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길로 들어선다.

 

우측 아래에 있는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는 남근석(男根石)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다음에 가보기로 한다... 남근석 공원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금수산은 여인이 누워 있는 자태 속에

계절별로 절경을 자아내는 곳이나 여자의 지근이 강하여 남자는 단명한다는 유래에 따라 오래전

남근석이 설치된 이곳 품달촌에서 신혼부부가 초야를 이루면 귀남을 낳고 득남하지 못한 여인은

남근석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면 아기를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나 이조 말엽에 파손되어

다시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설금전망대 팻말이 보인다

그물망을 가로질러 사면길로 향한다

본격적인 마루금으로 들어서니 하남시부시장을 역임한 양호님의 흔적을 만난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소나무 무덤이 보이고 묘지가 나온다

묘지(16:55)

묘지에서 살짝 좌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다시 좋은길이 나온다

임도 갈림길(17:05)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갔다가...

곧바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576.9m봉(17:08)

엄연하게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그 흔한 띠지 한장도 안 보인다

우측으로 꺽어서 내려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내 맘대로 간다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무한도전팀의 띠지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무명묘지(17:20)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아!...체력은 안받쳐주고 넘 힘들어요

무명봉(17:28)

안부를 지나서...

 다시 봉우리로 올라간다

585m봉(17:38)

우측으로 내려간다

흐린 날씨라 그런지 금방이라도 어두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측으로 사면길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7:42)

이곳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칠성봉쪽으로 향한다

안부(17:44)

먹은것이 별로없는 탓인지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로 갈까하다가 족보있는 칠성봉을

놓칠수가 없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칠성봉 정상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칠성봉(七星峰:574.0m:17:58)

충북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있는 산으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오르는 길이 꽤 까칠했다.

조망이라고는 전혀없는 정상에는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걸어논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이끼가 끼어 판독이 어려운 4등 삼각점이 있다...칠성봉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칠성봉 정상 삼각점(△403재설 / 77.6건설부)

칠성봉 정상에서 Λ 형태로 왔던 길로 내려와서 직진에 가까운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의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조금전 칠성봉 오르기 전에 헤어졌던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안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는 판석처럼 생긴 암릉지대이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516m봉(18:10)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과게이재가 가까워 오는지 근처에 있는 중앙고속도로의 차량소리가 요란하다

안부를 지나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선다

무명봉(18:14)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비는 소강상태이나 등로는 아주 미끄럽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인 과게이재가 나온다

과게이재(18:25)

단양군 적성면 기동리에서 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가 통과하며

도로옆 공터에 시멘트로 된 의자들이 몇개 보이고 이동통신탑과 도로명 주소 안내판,

새마을기가 걸려있는 국기봉이 여러개 보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과광재 또는 과경티라고 하며 과게이재라고 하면 잘 모른다.

이곳 단양군 적성면은 과게이재를 기준으로 생활권이 갈라지는데 과게이재 남쪽으로는

적성본면이 있는 곳으로 들이 넓어 옛부터 품달촌이라 불렀으며 구(舊)단양 문화권과

함께 했고, 북쪽으로는 각기리를 중심으로 해서 대가천을 따라서 길에 뻗어있는 마을로

매포문화권에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수통에 남아있는 물을 수건에 적셔 몸을 닦는데 땀냄새 때문인지

갑자기 날아던 산 모기가 몸뚱아리에 새카맣게 붙어서 물어대는데 가려워서 미치겠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속옷까지 갈아입은 다음에 행여 앵벌이라도 해볼까하고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10분이 지나도 차 한대가 지나가지 않는다.

 

오늘은 앵벌이(히치)가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매포택시를 부를려고 하는데 상리쪽에서

1톤 트럭 한대가 올라오기에 얼른 길을막고 서울을 가야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그러니

버스 타는데 까지만 태워 달라고하니 코로나 때문에 차량 운행이 대폭 줄어서 지금

이 시간대에는 버스타기가 거의 힘들다고 하면서 자기가 단양읍내를 가는중이니

단양역까지 태워 주겠단다...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트럭에 오른다

단양역(19:00)

貴人의 도움으로 단양역에 도착하여 다시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표를 예매한 다음에

장애인 화장실에 가서 다시한번 머리까지 깔끔하게 씻고 나오니 산 모기한테 물렸던 자국이

피멍이 들었고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다... 새로 생긴 단양역은 읍내와도 멀고 편의시설이라고는

자판기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표를 파는 곳에서 매표원에게 모기한테 물려서 엄청 가려운데

바를 수 있는 연고나 물파스가 있으면 좀 달라고 하니 자기들이 쓰던 물파스를 빌려준다

그 물파스를 바르고나니 조금은 살 것만 같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서 베낭에 남아있는 빵쪼가리와 우유 하나로 허기를 달랜 다음에

30여분간 대합실에 죽치고 앉아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서울가는 열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