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2년 04월 10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지독한 미세먼지...생각보다 더운날씨
☞ 산행거리: 9.8km / 6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과게이재-안부-411m봉-안부-적성터널 위-안부-472m봉-안부-456.8m봉-무명봉
448m봉-445m봉-중앙광산-526.2m봉-안부-묘지-안부-494m봉-안부-천주봉-폐초소
496m봉-471m봉-안부-안부-무명봉-삼면경계봉-535.9m봉-안부-무명봉-안부
473.5m봉-무명봉-충주지공재오지묘-5번국도-묘지-무명봉-군부대 끝-359m봉
356.7m봉-안부-삼봉교 하늘다리-하늘다리 쉼터-매포천/남한강 합수점
☞ 소 재 지: 충북 단양군 매포읍, 적성면, 단양읍
지난주에 밀양(비슬)지맥 마지막 구간을 끝내면서 좀 무리를 했던 모양이다.
보통 같으면 산행을 하고 하루를 지나면 체력이 원상으로 회복되었는데 이번에는
3일이 지났는데도 체력이 회복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산행이 힘이 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요즘 사무실의 업무도 너무 빡센 탓인지 아니면
체력만 떨어진 탓인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3년을 빡세게 걸어야만 지맥길을 마무리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5년만 더 일찍 이 길을 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하는 수 없이 시간을 내어 병원에서 영양제 링겔을 한 병 맞았지만 효과는 모르겠다.
이번주에는 한번을 쉴까 생각했지만 이리저리 생각을 한 끝에 거리도 짧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매포 서(금수)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로 베낭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매포행 버스표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06:25분경.
버스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밖에있는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때 먹을 김밥 한줄을 사서 베낭에 넣은 다음에 버스타는 곳으로 향한다
07시에 단양과 구인사를 거쳐가는 매포행 버스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덜컥거리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버스는 북단양I.C를 통과하자마자 곧 바로 매포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매포버스정류장(08:55)
버스정류장 이름은 매포가 아닌 평동버스 정류장이라 난생 처음와 본 이곳이 상당히 헷갈린다.
평동은 매포읍사무소가 있는 매포읍의 중심 마을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매포읍(梅浦邑)의 모습
시멘트 공업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이곳에 매포라는 땅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14년부터이다.
예로부터 이곳에 매포(買浦)가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행정구역의 개편 과정에서 같은 음의 매포(梅浦)로
변형의 과정을 밟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買 → 梅’로 바뀌면서 오늘의 지명으로 정착된 것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계급이 통용되던 당시의 상황에서, 사고파는 상행위를 포기하는 한편
고결한 군자의 도를 지향하는 것은 신분 상승의 길로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남한강의 깊은 물줄기를 끼고 있기에 줄곧 하항(河港)으로 전통이 계승되었지만, 물줄기의
발원지인 설매(雪梅)산에서 지명변경의 암시를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일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질구조가 압도적이다. 시멘트의 원료는 무거운 석회암이며, 관련공업은
원료 산지에 세워질수록 교통비가 절약된다. 현재 이곳에는 한일 · 현대 · 성신 등 많은 시멘트 공장들이
입지하여, 농촌 속의 공업지대로 변모하고 있다. 그 결과 석회암의 채석과 가공 과정에서 날리는
비산분진(飛散粉塵)이 환경 문제를 유발함으로써, 당초에 고결함을 지향하던 향토 조성의 방향과 어긋나고 있다.
매포(평동) 정류장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택시 한 대가 온다.
손을드니 택시는 서고 곧바로 과게이재로 향한다...20분정도 걸렸나 과게이재에 도착(요금10.000원)
지난해 한여름인 8월 8일에 이곳을 왔으니 8개월만에 다시 과게이재에 다시 온 셈이다.
과게이재(09:15)
단양군 적성면 기동리에서 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가 통과하며
도로옆 공터에 시멘트로 된 의자들이 몇개 보이고 이동통신탑과 도로명 주소 안내판,
새마을기가 걸려있는 국기봉이 여러개 보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과광재 또는 과경티라고 하며 과게이재라고 하면 잘 모른다.
이곳 단양군 적성면은 과게이재를 기준으로 생활권이 갈라지는데 과게이재 남쪽으로는
적성본면이 있는 곳으로 들이 넓어 옛부터 품달촌이라 불렀으며 구(舊)단양 문화권과
함께 했고, 북쪽으로는 각기리를 중심으로 해서 대가천을 따라서 길에 뻗어있는 마을로
매포문화권에 포함되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20)
근데 뭔가 이상하고 허전하다...그러고보니 모자와 장갑, 타월을 넣어둔 주머니를 집에서 안가져 왔다.
치매인가?...요즘은 이상하리만큼 꼭 한가지를 빼먹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나?
날씨도 더운 편인데 어찌해야 하나...그렇다고 되돌아 갈수는 없지 않은가.
이동통신탑 옆쪽의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녹색휀스가 처져있는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산에 올 때마다 나날이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 때문에 포기하려 했지만 토요일만 때면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산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힘이들고 괴롭긴 하지만 13년째 하는 이 짓거리에 대한 후회는 없다.
이제는 범여에겐 맥길이 종교와도 같은 신념인지도 모르겠다.
布行도 수행의 한 방편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길을 걷는다
절반쯤 짤려나간 절개지 봉우리로 올라서니 대구의 비슬이부부님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이 분...참으로 대단하다 생각하며 존경심마져 든다...늘 健安하소
반쪽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는 모양이다...세월이 지나면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는데
요즘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자만이 그걸 모르나보다...대선에서 졌으면 民意에
따라야만 하거늘, 아직도 172석이라는 국회의원 자리를 가지고 민초들에게
갑질을 하는 것은 뭔 똥배짱인지 모르겠다.
안부(09:27)
안부옆에 서 있는 NO108 송전탑
짧은구간의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그래!...참 곱구나
411m봉(09:30)
정상에는 398이라고 적혀있는 지적삼각점이 박혀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생각보다 등로는 상당히 미끄러워 짧은구간의 내리막이지만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안부(09:32)
안부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와 단양휴게소의 모습
안부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단양군 적성면 상리(上里)쪽의 모습
상리 마을 윗쪽으로는 금수산에서 말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다.
말목산(710m)은 단양군 적성면에 있는 산으로 마항산(馬項山)이라고도 하며
《정감록》을 보면 이곳을 십승지지 중 한 곳이라 하였으며 조선조때 단양군수이던 퇴계 이황과
이 마을 여인인 두향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향은 제비봉 자락 두항리에서 태어남. 관기인 두향이 이황에 대한 사모의 마음으로 10여 년동안
수절하였다고 하는데 이황이 사망하자 애절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하였고, 말목산의
남녘자락의 강선대 옆에 여인을 묻었다고 한다
적성터널 위(09:34)
이 능선 아래로 중앙고속도로 적성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생강나무가 꽃이 피기 시작하는구나...산행하기는 덧없이 좋은 날씨이다
회양목 나무가 군락을 이루 있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춘천방향)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무명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우측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발한번 삐끗하면 그대로 黃泉길로 가는 지름길인 듯 싶다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나홀로 걷는 독립군에겐 더없이 고마운 존재이다.
안부(09:37)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산이란 인간들에게 참으로 많은것을 가르쳐 준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빡세고 힘든 구간이 있으면
분명히 쉬운 구간이 나온다는 것을...
472m봉(09:45)
이곳에서 90도 좌측으로 확 꺽어져 내려간다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작년 8월에 걸었던 금수산이 보인다
안부(09:49)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요즘에 누적한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오르막길에는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하기 위하여 수난당한 소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100여년이 흘렀건만 그 아픔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구나...나라가 힘이 없으면 나무도 수난을
당하는데 아직도 이 나라의 정치하는 인간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도 깨달은 바가 없을까...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가장 괴롭고 수난을 먼저 당하는 것이 민초들과 山河가 아니였던가.
지난핸가...歌皇 나훈아가 말했었지...나라가 위급할 때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역사속의 왕도 없었지만, 지금의 대통령 역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구구절절이 지당하신 말씀이다.
456.8m봉(09:55)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올라간다...초반인데도 짧은 빨래판 구간이다.
하기사 맥산행을 하면서 그리 만만한 산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오르막 주변에는 오갈피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10일만 늦게 왔어도 손맛을 봤을텐데...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59)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좌측으로 광산인듯한 채석장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중앙광산자원(주)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곳을 통과한다
회양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로 올라간다
낙엽속에 다소곳이 숨어있는 보라색 제비꽃
448m봉(10:05)
다들 대단혀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채석장 너머로 가야할 526.2m봉(우)과 천주봉(좌)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편안한 내리막길이 계속되고... 햇살이 꽤나 뜨겁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닐때는 몰랐는데 오늘은 모자도 없고 수건이 없으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여태껏 모자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으니
모자야!...정말 미안하다...너의 고마움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으니...
낙엽속에 솜나물이라 부리는 아이리스꽃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피고 있다.
445m봉(10:10)
채석장으로 인하여 봉우리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채석장 너머로 가야할 천주봉이 보인다.
이곳 단양은 우리나라에서 시멘트 회사가 가장 많은 곳인데 석회석 광산이 많은 탓이겠지
절개지라서 내려갈 수가 없어서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광산으로 인해서 파괴(?)되어 버린 등로로 내려선다.
중앙광산(10:15)
광산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영월, 제천, 단양(매포) 지역은 우리나라의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을 채취하는 탄광들이 유난히 많다.
등로 좌측으로는 족보가 있는 497.4m봉은 봉우리 전체가 사라져 버렸구나.
왔던길을 뒤돌아 본다...조금전에 뒤돌아 왔던 445m봉은 절반은 날아가 버리고
그 절반마저도 언제 없어질지...물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시멘트가 필요한 건
인정하지만 산꾼으로서 이렇게 산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가슴이 아프구나.
산행을 출발한 지 1시간정도밖에 안되었는데도 벌써부터 필요가 몰려온다.
이번주는 산행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무리인 듯 싶다.
사실은 다음 주말에 모임에서 강원도 삼척에 있는 파인밸리 C.C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골프 모임이 있어서 이번주에 빠지면 2주 연속 산행을 못할것 같아서
길을 나섰는데 초반부터 체력에 과부하가 걸려온다.
휴식(10:20~30)
가던 길을 멈추고 광산 도로에 주저앉아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거기다가 모자와 장갑, 수건을 가져오지 않았고 평소에는 모자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는데 잠깐 사이에 날씨가 더운지 햇빛의 영향으로 얼굴이 따끈거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또 한가지를 배운다...過猶不及이란 의미를...
다시 길을 떠나면서 왔던 길을 뒤돌아서 보니 지난해 걸었던 금수산이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지난해 여름에 보았던 금수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뾰족한 483m봉이 보이지만 그냥 광산 도로를 따라서 간다.
잠시후에 오를 526.2m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광산 아래로 내려섰다가 우측의 채석장쪽으로 올라서니 526.2m봉이 반쯤 날아가 버렸고
좌측으로는 하늘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하는 천주봉이 버티고 있다
광산도로 좌측 아랫쪽은 운산채석장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엄청난 규모의 한일 시멘트 공장이 보인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이 단양군 매포읍 응실리 어의곡마을인데 전형적인 탄광촌처럼 보인다
광산의 채석장이 꿑나고 526.2m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다.
좌측의 금수산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에 걸었던 신선봉, 단백봉, 용바위봉, 동산이 보인다
절개지를 올라서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망가진 국유림대부 경계 말뚝도 보인다.
등로에는 회양목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526.2m봉(11:00)
526.2m봉 정상 삼각점(△단양302 / 1988이설)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낙엽으로 인해서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낙엽속에서 피는 현호색...색깔이 참으로 곱다.
안부(11:03)
능선으로 오르면서 좌측을 바라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운산채석장이 보인다
묘지(11:05)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반갑습니다...유난히 많이 만나네요.
안부(11:06)
494m봉(11:10)
반갑구먼...
잠시후에 오를 천주봉을 바라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1:13)
다시 빡센 오르막길.
늘 감사합니다
천주봉으로 오르는 계속되는 오르막길.
너무 힘이들어서 베낭을 내려놓고 그낭 주저앉아 버린다.
날씨도 더운데 모자가 없으니 얼굴이 익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한참동안 휴식을 취한다
천주봉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난다
빡세게 올라서니...
망가진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천주봉 정상에 도착한다
천주봉(天柱峰:579.2m:11:40)
충북 단양군 매포읍 응실리 어의곡과 적성면 애곡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많은 지도에는
천주봉은 천계봉으로 많이 표기가 되어 있는데 한자의 기둥 주(柱)자를 누군가 최초에 옮겨 적을때
계수나무 계(桂)자로 착각하여 천주봉(天柱峰)이 천계봉(天桂峰)이 되지 않았나 추측 된다.
대한민국에서 발행되는 수 많은 지도책에 정확하게 해발 579.2m 천계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 사람들은 천주봉은 알지만 천계봉은 모르고 있으며, 하늘이 무너짐을 천주봉이 막았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산이다.
정상에는 망가진 산불감시초소와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설치한 산패가 보이나 전망은 별로이고
봉우리의 동쪽의 절반은 백광채석장의 채석(採石)으로 인해 봉우리 절반이 날아간 상태이다.
천주봉(天柱峰)...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지리산 천왕봉 아래의 암릉에도
“天柱”라 적혀있고, 가장 유명한 천주봉은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에 있는 천주봉이 아닐까.
물론 문경의 천주봉과 비교가 안되지만 이곳 역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단양의 천주봉이다.
인증샷
간간히 남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지만 날씨는 더운 편이다.
천주봉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野性을 잃어버린 산으님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천주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광산의 시설물인듯한 파이프가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다
광산의 탐욕(?)으로 인하여 맥길이 끊어져 버렸다...우측의 절개지로 내려간다
맥길을 마구 파먹고 있는 백광채석장의 모습
채석장 초입의 끊겨진 맥길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니 봉우리 절반이 날아가 버린
갑산과 한일시멘트 공장 석회석 채석장으로 인하여 제천(갑산)지맥이 없어지는 중이다.
건너편 아래로는 남한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소백산 연화봉은 흐릿하기만 하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미끄럽기만 하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갔다가...
채석장 안으로 들어선다
백두대간 연화봉에서 죽령을 거쳐 흰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두악산~사봉~제비봉이 아련히 보이고 그너머로 백두대간상에 있는 황장산도 아련하다
금수산에서 말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인다.
폐초소(12:00)
봉우리 절반이 날아가버린 535m봉의 모습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百尺竿頭에 서 있는듯한 535m봉
535m봉에서 ⌒형태로...
지저분한 채석장 등로를 따라서 간다.
조금전에 내려온 천주봉을 뒤돌아 본다.
천주봉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535m봉 아래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535m봉 옆 사면길로 능선에 올라선다
496m봉(12:09)
점심시간(12:10~30)
오늘은 산행거리가 짧아서 점심이라곤 아침에 포장마차에서 산 김밥한줄과
바나나 하나가 점심만찬(?)의 메뉴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관나발 식물인 석송목의 작은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다발 식물인 석송목(石松目)부처손은 건조한 바위 표면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보처수(補處手)라고 불리기도 하고, 생김새가 호랑이 발처럼 생겼다고 하여 표족(豹足)이라고도 한다.
담근체(擔根體:외생적으로 발달하여 잎이 달리지 않고, 내생적으로 다수의 뿌리가 달림)와 뿌리가
엉켜 줄기처럼 만들어진 끝에서 사방으로 퍼져 약20cm의 크기로 자란다.
가지는 평평하게 갈라지고 앞면은 녹색, 뒷면은 다소 흰빛이 돌며, 습기가 없을때는 동그랗게 말렸다가
습기를 머금으면 화짝 펴지는 습성을 가졌으며 만년송, 만년초, 장생불사초, 불사초, 회양초(回陽草),
교시(交時) 등으로 부르고, 한자로는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잎은 잣나무 같다고 하여
권백(券柏)이라고 부른다.
동남쪽으로는 남한강과 단양읍내가 보이고 요즘에 단양의 여행객들에게 꼭 들려야 할
만천하스카이 워크로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길이 보인다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는 한국의 에펠탑이라 불리우는 만천하스카이 워크는 단양강변에서
약 200여m 높이에 위치한 만학천봉에 조성된 전망대로 소백산 능선과 단양강의 눈 아래로 펼쳐지는 곳이다.
만천하 스카이워크는 해발 320m 만학천봉 정상에 세워진 아치형 철골 구조물로 단양읍내와 단양역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2017년 여름에 개장된 이후 단양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만학천봉은 만개의
골짜기와 천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라는 봉우리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조만간 사라질듯한 천주봉을 다시한번 뒤돌아 본다.
등로에서 바라본 단양군 매포읍 응실리 어의곡 계곡의 모습
예전에 단양군 북이면(北二面) 지역으로 두 골짜기가 어우러져 있으므로 엉이실,
응실 또는 어의곡(於儀谷)이라 하는 곳이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471m봉(12:32)
안부(12:34)
잠시후에 오를 535.9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암릉이 있는 조그만 봉우리를 통과하여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 아래로는 만천하 스카이워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헐~~~태백산같은 지대가 높은 지역이나 고도가 높은 산에서만 보이는 겨우사리가 보인다
안부(12:36)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지나온 535m봉...봉우리의 절반만 남은 저 산...웬지 惻隱之心이 드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잣나무인듯한 조림지가 보인다
무명봉(12:43)
생강나무꽃을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삼면경계봉(12:52)
단양군 적성면과 매포읍, 단양읍의 꼭지점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이곳부터는 과게이재에서부터 같이 걸어온 적성면과 작별하고 단양읍으로 들어선다
좌측의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간다
뫳돼지 놀이터도 만나고...
등로는 무쟈게 좋다
535.9m봉(13:02)
편안한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간다.
활엽수 군락지속에서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535.9m봉을 따라서 오다가 넓은 임도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등로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내려간다
그림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급경사에다 낙엽으로 인해서 상당히 미끄럽다.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하산할 때 조심해야 하는게 삶의 진리라 했던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급경사를 내려서니 암릉구간이 길을 막는다.
우측으로 우회를 해야 하는데 등로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라 발한번 삐껏하면 그냥 황천길이다
급경사를 내려와서 앞을보니 473.5m봉이 길을 막고 있다.
소위 말하는 빨래판 구간인 셈인데, 오늘 산행거리가 짧다고 방심할 건 아닌가 보다.
암릉구간이 끝이나고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3:10)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간다
무명봉(13:20)
무명봉 주위에는 노간주 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안부(13:22)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단양읍내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아마도 봉우등(峰郵燈:695.7m)인 듯 싶다.
473.5m봉(13:26)
우측으로 내려간다
地.水.火.風을 실천하는 枯死木
무명봉(13:32)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노간주 군락지 사이의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桃花도 滿開를 준비하는구나.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아서 좌측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다시 향하는데
그 바람에 송전탑이 있는 곳을 사면으로 통과하는 憂를 범한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묘지를 이장한 듯한 묵묘의 흔적을 지나고...
맞은편에는 잠시후에 오를 356.7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폐전주의 흔적도 보이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잘 관리된 묘지가 나온다
충주지공재오지묘(13:50~55)
단양라이온스클럽 출신으로 지역부총재까지 역임하신 분이시구나.
같은 라이온스 멤버라 비록 亡者이긴 하지만 반갑다.
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라이온스 활동을 하셨구나...나 역시 1996년부터 활동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묘지 좌측에는 변전소가 보인다.
변전소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가니...
단양로 팻말이 나온다
5번국도(13:58)
단양군 매포읍에서 단양읍으로 이어지는 5번국도가 지나며 도로명 주소는 단양로이다.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본다...5번 국도로 인하여 맥길을 짤려 버렸다.
좌측의 등로로 올라가야 하는데 급경사를 쳐다보니 갑자기 기가 질린다.
급경사로 오르지않고 5번 국도를 따라서 단양읍 방향으로 향한다.
도로변에는 고물상이 입구가 보이고...
고물상 입구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니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이 어렴풋이 보인다
묘지(14:04)
묘지에서 우측 임도로 갔다가 좌측의 뚜렸한 등로로 올라간다
다정스런 아이리스 세자매
능선으로 올라서니 송전탑이 나오고 군부대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좌측으로 향한다
한참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무명봉(14:12)
군부대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356.7m봉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가는데 초소에서 초병이 나를 째려보고 있다.
아이~~~깜짝이야! 자세히 보니 초병이 아니라 마네킹이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가는데 잡가시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더군더나 모자도 없고 장갑도 없어서 도저히 통과할 수가 없어 왔던길을 되돌아 나간다
사서 개고생을 한 셈이다...철조망 조금 아래에 이런 좋은 길이 있었는데...
군부대 끝(14:20)
군부대 훈련장 시설물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생각보다 덥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이곳은 예비군부대 동원 훈련장인 모양이다
나무에 숫자들이 붙어 있는데 갑자기 군부대에서 설치한 듯한
철조망이 맥길을 가로 막는데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니다.
베낭을 먼저 밀어넣고 낮은 포복으로 철조망을 통과한다
움막처럼 생긴 비트가 보인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훈련장의 마지막 구간을 통과한다
359m봉(14:40)
359m봉에 올라서니 좌측 아랫쪽의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359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훈련장의 휴식시설이 보인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가니...
망가진 의자와 벙커가 있는 356.7m봉에 도착한다
356.7m봉(14:45)
356.7m봉 정상에 있는 망가진 벙커
356.7m봉에서 좌측 아랫쪽을 내려다보니 도담삼봉이 있는 남한강이 보인다
남한강 좌측으로는 천마표 시멘트를 생산하는 성신양회 제2공장이 보인다.
안부(14:47)
이곳에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와 신산경표와는 합수점이 다르다.
대한산경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서 매포천이 남한강을 입수하는
도담삼봉 방향으로 향하지만 신산경표는 이곳에서 3.5km정도 더 걸어가서
단양읍내에 있는 소금정 공원을 합수점으로 하는데 많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소금정 공원이 아닌 도담삼봉쪽으로 내려가기로 하는데 도담삼봉쪽으로 가던,
소금정 공원쪽으로 가던간에 그것은 각자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 있는게 아닌가...
지맥길을 걷다보면 그런곳이 꽤나 많이 부딪히는데...생각하기 나름이겠지...
안부 좌측으로 희미한 흔적은 보이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은 전혀없다.
물론 이곳으로 등로를 잡은것은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의 의중에 적극 동감을 한 탓이고, 아마 매포천으로 내려가는 산꾼도
산으로님 이외는 아마 어쩌면 내가 처음인지도 모르겠다...ㅋㅋㅋ
경사도가 75도정도쯤 되는 엄청난 절개지에다가 낙엽, 거기다가 의지할
나무들도 없어서 스틱에다가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이곳을 통과할 때는 죽겠다싶을 정도의 위기감이 올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10m정도 미끄러져서 쳐박히기도 했다...내가 뭔 지랄인지
그 바람에 태백산이나 오대산 등의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박새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아직도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한다.
음지에서 핀 현호색(꽃말:희소식)...참 곱다.
갑자기 등로가 막혀 버렸다...사면을 따라서 한참을 돌아야 한다
성신양회 2공장 앞으로 보이는 매포천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음지라서 그런지 이제서야 청노루귀가 피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급경사의 내리리막길
드디어 매포천변으로 내려선다...얼마나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힘이 들었던지
약 0.7km의 내리막길을 40여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몇년전 티벳의 메리설산
오름길에 고산병의 영향으로 300m 오르는데 1시간이상 것처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려오는 길에 별 생각을 다했다.
급경사에 발한번 까딱 잘못 디디면 그냥 황천길로 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내가 무모한 행동을 한게 이해가 안 되기도 하도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저 앞에 보이는 삼봉교 너머가 합수점이나 아래에 보이는 매포천을 건널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좌측의 삼봉교 하늘다리쪽으로 향한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괭이눈 군락지를 지난다.
괭이눈(골짜기의 황금, 변하기 쉬운 마음)
범의귀과에 속하는 약 55종(種)의 다년생초로 이루어진 속으로 중국과 한국이 원산지이고,
계곡의 가장자리나 어둡고 물기가 많은 곳에 서식하는데 꽃이 마치 고양이 눈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것인데, 고양이 눈을 줄여서 괭이눈이라고 칭한 것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샘물가, 혹은 나무가 잘 우겨진 습지가 유지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열매는 삭과인데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지고 칸 마다 씨가 고양이 눈처럼 새카맣게 들어있다.
매포천을 건너기 위해서 삼봉교 하늘다리 쪽으로 올라간다
삼봉교 하늘다리(15:33)
삼봉교 하늘다리에서 내가 내려온 길(그늘진 응달쪽)을 뒤돌아 보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내가 내려온 길이 맥길이 아니다...내가 내려온 안부에서 조금을 더가서 좌측의
뚜렸한 능선을 따라서 터널 윗쪽으로 왔으면 등로로 수월하고 목숨을 건(?) 산행을 하지 않았을텐데...
삼봉교 하늘다리 쉼터(15:34)
삼봉교 하늘다리 쉼터에서 바라본 매포천(梅浦川)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을 관류하는 하천으로 매포읍과 제천시에 걸쳐있는 갑산에서 발원하여 고양 ·
가평 · 영천 · 상시 · 하시 · 안동 · 매포리를 경유하여 하괴리에서 도담삼봉이 있는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해동지도』에는 갑산에서 발원하여 영천역(令泉驛)과 석문암을 지나 도담이 있는 곳에서 상진(지금의 남한강)
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도』에는 제천과 접해 있는 호명산에서 발원하여 영천역을 지나 금수산에서 발원한 하천과 합류 한 후,
매포를 지나 은주암 앞에서 마진(지금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고양리 뒷산에서 발원하여 영천역과 안동리를 곡류하여 도담리에서 상진으로
흘러드는하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대동지지』(단양)에는 "영천(靈川)이 갑산에서 나와 남류하여
영천역(靈川驛)에 이르고, 남류하여 매포에서 금수산에서 나온 하천과 합류한 후 상진으로 흘러든다."고
수록되어 있다.
영천(靈川)은 역이름에서 유래된 것인데 지금의 매포천을 가리킨다. 『대동여지도』에는 호명산 북쪽
갑산에서 발원하여 북면을 관통하여 금수산에서 발원한 하천과 합류한 후 상진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표기되어 있다.
삼봉교 터널 저 윗쪽으로 내려와야 산행도 수월했고 고생을 덜 했을텐데 안부에서 조금 더가야 하는것을
너무 일찍 내려온 게 아쉽기만 했다.
이정표를 따라서 삼봉교 아래로 가니 도담삼봉 주차장이 나온다
매포천/남한강 합수점(15:40)
드디어 매포천이 남한강을 만나면서 맥을 다하는 합수점에 도착한다.
신산경표상의 소금정 공원이 아닌 수계상의 매포천 서쪽 산줄기를 따라서 매포천이
남한강에 入水하면서 맥을 마칠때 범여도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으로 접는다.
주차장에서 물가로 내려가서 손을 씻는 의식을 하려 했지만 내려 갈수가 없구나.
합수점의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최근 들어서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에 40여개 남은 맥길을
마무리나 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착작함과 함께 5년만 먼저 맥길을 알았으면
하는 悔恨이 앞서지만 그게 어쩌면 내 운명이라 생각해야지 우짜겠노...
인증샷
모자를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지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린 느낌이다.
山明楓葉水明沙(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삼도사양대만하)
석양의 도담삼봉에는 저녁노을 드리웠네
爲泊仙蹉橫翠壁(위박선사횡취벽)
신선의 뗏목은 푸른 절벽에 기대어 자고
待看星月湧金波(대간성월용금파)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진다
퇴계 이황의 詩 도담삼봉(嶋潭三峰)
주차장에서 바라본 도담삼봉(嶋潭三峰:명승 제44호)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중의 제1경으로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해서 명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양읍내에서 제천 방향으로 3km 정도 남한강을 따라가면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강 한가운데에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바로 도담삼봉이다.
푸른 강물 위에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중봉)가 가장 높고
각각 남과 북에 낮은 봉우리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중봉은 주봉으로서 장군같이 늠름한 형상을 하고 있고,
남봉은 교태 어린 여인에 비유되어 첩봉 또는 딸봉이라 하며, 북봉은 이를 외면하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처봉 혹은 아들봉이라고 한다.
중봉에는 현재 삼도정(三嶋亭)이라는 육각정자가 서 있다.
1766년(영조 42)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조정세(趙靖世)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능영정(凌瀛亭)이라
이름 지었는데 이후 1900년대에 김도성(金道成)에 의해 사각정자가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빼어난 모습을
간직해왔는데 안타깝게도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이후 1976년 콘크리트로 다시 지은 정자가 삼도정이다.
퇴계 이황은 단양을 무척 사랑했는데 단양의 빼어난 경치 때문에 스스로 청해서 단양군수로 부임하기도 했다.
단양군 내에는 명승지가 많았는데 이황은 그중에서도 도담삼봉을 가장 으뜸이라 했으며 아름다운 경승지를
보고 많은 시를 남겼다. 도담삼봉은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의 시인묵객들이 시와 그림을
많이 남긴 곳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도담삼봉은 실경과 거의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다.
도담삼봉은 조선시대에 이미 잘 알려진 명소였기 때문에 옛 문헌에도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 산천조에는 “도담은 군 북쪽 24리에 있다.
세 바위가 뾰족하게 못 한가운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에는
한강 상류에 위치한 영춘, 단양, 청풍, 제천 등 4군의 산수를 말하면서 빼어난 산과 시내, 기암과 골짜기의
경치로 이담삼석(二潭三石)을 설명하고 있다.
이담삼석이란 도담과 구담, 그리고 상선암과 중선암, 하선암을 의미한다.
도담삼봉은 고지도에도 자주 등장한다. 《해동지도》에는 상진나루, 즉 남한강 가운데 도담이 표시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도담리의 맞은편에 뚜렷하게 세 개의 봉우리가 나타나 있다. 또한 〈대동여지도〉에는
상진나루가 가운데, 은주암과 도담이 그 양측에 그려져 있다.
조선왕조의 이념적 기반을 구축한 개국공신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즐겨 찾았다.
태조 이성계의 장자방 역할을 했던 정도전은 도담의 경치를 좋아하여 젊은 시절 이곳에서 오랫동안
청유했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한 것도 도담삼봉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정도전은 삼봉에 얽힌 전설의 인물로도 전해진다. 전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가져온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쓸데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과거 남한강의 수운이 번창하던 시기에 도담삼봉의 나루에는 소금배와 뗏목들이 몰려들어 물산이
넘쳐났고, 경강상인과 봇짐장수들이 흥청거렸다. 지금도 당시에 불리던 〈삼봉용왕제소리〉와 〈띠뱃노래〉,
〈짐배노래〉 등 여러 민요뿐만 아니라 삼봉주막의 주모가 부르던 한탄 섞인 노랫가락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짐배노래〉는 도담삼봉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담삼봉 나루에서 바라본 단양읍내 아파트촌
단양(丹陽)이라는 지명이 '신선이 살기 좋은 고장'이란 의미의 '연단조양(鍊丹調陽·신선이 먹는
환약과 고루 비치는 햇살)'에서 지명이 유래됐으며 국내 시멘트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며
산수가 뛰어난 관광의 명소가 많은 곳이 이곳 단양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휴게소쪽으로 올라가니 재상의 나라로 꿈꾸다가 이방원에게 피살당한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1342~1398)의 동상이 보인다
재상의 나라를 꿈꾸다가 이루지 못한 삼봉 정도전 동상
정도전(鄭道傳)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이자 혁명가로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시호는 문헌(文憲)으로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부패 정치와 이에
기생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성리학(신유학) 이념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인 조선
왕조 성립에 핵심적인 공헌을 하였다.
1370년 성균관에 중영되고 성균박사가 되었으며, 1383년 이성계를 찾아가 세상사를 논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일으킬 때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워 밀직부사가 됐다.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되고 반대세력이 제거되자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해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재상의 나라”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훌륭한 재상을 선택하여 그 재상에게 정치의 실권을 부여하여 위로는 임금을
받들어 올바르게 인도하고, 아래로는 신하들을 통괄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중책을 부여하자고 주장하였다.
즉, 정도전은 임금은 단지 상징적인 존재로만 머물고 나라의 모든 일은 신하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나라를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현대의 영국식 입헌 군주제를 그때부터 생각한 것이다.
또한 감찰(사헌부)의 탄핵권을 강조하고 간관(뒷날 사간원)의 권리를 국왕과 대등하게 설정했다.
고려 정치 제도에서 어사대(사헌부)는 독립된 기구였지만 낭사(사간원)는 중서문하성 산하 기구에 불과했기
때문에, 간쟁 기구를 왕과 대등한 위치에 놓은 정도전의 사상은 조선 정치 체제의 중요한 특징인 전제
왕권 통제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윗쪽으로 올라오니 삼봉스토리관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조선의 풍운아였던 삼봉은 1398년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이방원에게 살해당한 조선을
개국한 일등공신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전략, 외교, 행정, 법제에
밝았으며, 시와 문장에도 뛰어나 「고려사 37권」을 개수하고 「납시가」, 「신도가」 등 악장을
지었으며 「조선경국전」, 「경제문감」의 저서와 「삼봉집」 등의 문집이 있다.
삼봉은 조선의 개국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서 “해동의 장량(張良)”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책략가로 알려져 있다.
장량이 고조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제국을 건설했듯이 삼봉도 태조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왕조를 건설한 즉, 조선 개국의 실질적인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읍지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는 천도 작업을 총지휘하면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으로 500년의 조선 역사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된 비운의 정치가였다.
삼봉이 꿈꾸는 새로운 나라는 백성의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
즉, 그가 바랐던 조선 정치의 근본은 위민(爲民:백성을 위함)이었으며 그가 바란
이상적인 국가는 민본(民本:국민을 으뜸으로 삼음)이었다.
특히 삼봉은 임금은 세습되는 직책이라 어리석은 임금이 나올 수 있다 생각해서 어린 세자
방석을 교육시켜 재상이 중심이 되는 재상정치 실현을 꿈꾸다가 이를 두려워한 이방원에게
살해를 당한다.
조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했던 이방원의 세력과 신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세력이
건국 초기에 부딪히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삼봉은 숙청을 당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평가는 절하되는 수 밖에 없었으나 삼봉은
서양 근세의 민주주의를 무려 300여년이나 앞서간 꿈꾸는 혁명가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도전이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 했듯이 이방원이 삼봉을 비열한 인물로 묘사했다.
정도전의 난은 태조 7년(1398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였던 이방원과 이방석
일파가 충돌하여 이방원 일파가 승리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장량(張良)은 한나라의 재상. 명참모를 의미하는 ‘장자방(張子房)’의 주인공으로 항우에게 세력이 밀리던
유방을 도와 그가 함양을 돌파하게 하고, 홍문의 연에서 유방의 목숨을 구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장량은 소하, 한신과 더불어 한나라를 건국한 3걸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일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유방을 도와 진나라를 멸망시킨 일,
둘째는 유방을 보좌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건국한 일,
마지막으로 한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일이다.
기원전 206년 진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 고조로 즉위했다.
장량이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건국하는 데 일생을 바친 것은 오직 조국 한(韓)나라를
멸망시킨 진시황제에 대한 복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앞에 보이는 저곳으로 내려 왔어야 했는데 산으로님 이외는 아무도 걷지않은
매포 서(西)지맥이란 이름으로 팔자에도 없는(?) 개척산행을 하다가 보니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개고생을 했다.
삼봉 선생의 동상 뒷쪽으로 올라서니 도담삼봉의 관광지 휴게소가 나오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보이기에 그냥 택시를 타고 단양역으로 향하는데 15여분만에
단양역에 도착한다(택시비 10,000원)
단양역(16:20)
도담삼봉을 형상화한 단양역의 모습
단양역은 1942년 충북 단양역이라는 이름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가 1948년 역명을 개칭했다.
1956년 지어졌던 역사가 1985년 충주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면서 1985년 현재의 위치로 역사(驛舍)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舊단양역과 단양역으로 분리되었다.
舊단양역은 단성역으로 이름을 바꾸어 단성면에 위치하고 있다가 현재는 추억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단양역은 단양읍 중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앞 광장에는 중앙선(경경선) 개통비와 詩碑가 있다.
역명(驛名)의 유래인 단양(丹陽)이라는 지명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연단(鍊丹)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고, 조양(調陽)은 빛을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다.
〈고려사지리지〉에 ‘단산현은 본래 고구려의 적산현으로 고려 충숙왕 5년(1318)에 지단양군사
(知丹陽郡事)로 승격시켰다’라는 기록에서 단양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단양역 안내판
단양발 → 청량리행 열차표
단양역에서 서울가는 표가 완전히 다 매진이 되어 버렸고 입석표도 없다고 한다.
매표소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매표원이 ‘어르신! 저녁 7시 10분 표한장이
떴다고 하면서 예약을 할까요?’ 하기에 무조건 표를 끊는다.
3시간 가까이 이곳 단양역에서 멍때리기를 해야하나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우선 배가 너무 고파서 허기를 면하려고 하는데 이곳 단양역은 편의점 하나도 없다.
시간이야 많겠다...역에서 10분정도 읍내쪽으로 향하니 주유소 뒷쪽에 쌍다리 휴게소라는
식당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한다.
쌍다리휴게소(16:40)
이곳에서 오삼불고기 정식을 시켜놓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몸이 개운하다...늦은 점심에 맥주 한병으로 지맥 하나를
마무리하면서 자축한다
범여의 늦은 점심겸 저녁
쌍다리 휴게소에서 느긋하게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고 카피까지 한잔을
마신 다음에 황소걸음으로 단양역에 도착한다
단양역에서 바라보니 주차장 너머로 만천하스카이워크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오늘 내가 걸었던 능선들이 보인다
단양역 버스 시간표
아직도 열차를 타려면 1시간 40분정도 시간이 남아서 대합실을 빠져나와 광장으로 향한다
단양역 광장에 있는 詩碑
경경선 개통비
단양역 근처에서 3시간 가량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가 19시 열차를 타고 청량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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