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3년 04월 23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5.5km / 7시간 19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마당재-갈림길-NO21송전탑-약초재배지-안산-무명봉-광제고개-469.7m봉
갈림길-산불감시초소-여덟말 고개-갈림길-234.3m봉-시루봉-하사촌 사거리
갈림길-NO75 송전탑-돌탑-조망바위-421.7m봉-590.3m봉-무명봉-안부
무명봉-무척산-조망바위-모은암 갈림길-주차장 갈림길-안부-갈림길-백운암 갈림길
십자 안부-622.5m봉-무명봉-안부-587.0m봉-갈림길-안부-무명봉-안부-무명봉
무명봉-안부-무명봉-안부-안부-419.8m봉 갈림길-무명봉-무척산터널 위
갈림길-384.8m봉 갈림길-안부-쉼터-313.2m봉-폐묘-안부-갈림길-비암봉
안부-278.6m봉-사명산 갈림길-안부-도요고개-경주이공 묘-141.9m봉
동래정공& 순흥안씨 묘-162.8m봉-감나무밭-안부-안부-무명봉(생림2터널)
갈림길-kt이동통신탑-쉼터 정자-안부-106.6m봉-둘레길-안양천/낙동강 합수점
창암마을-창암취수장- 생림나루터 광장
☞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상동면, 생림면
독립군(나홀로)산행을 하다보니 여기저기 벌려논 맥길이 지저분할 정도로 많다.
단체로 다니는 산악회를 따라가고 싶지만 몸뚱아리에 칼을 댄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 탓에 가봐야 밉상이고, 눈치만 보이니 남들한테
내 밥먹고, 욕먹을 필요는 없다싶어 안 간다.
그 다음에는 예전과는 달리 백두대간을 제외하고는 정맥길도 산악회에서
인원을 채우지 못해 안하는 곳이 많은데, 하물며 지맥길 하는 산꾼들은
더더욱 없다보니, 지맥꾼들은 대부분이 마음이 맞는 서너명씩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니면 나처럼 홀로 다니는 독립군(?)들이다.
그런데 이 분들의 특징이 대부분 개성이 강하고, 산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호화준족에다 산줄기에 대한 이해력과 맥을 읽는 눈이 뛰어나다.
그야말로 진정한 산꾼들이 많은데 내야 그 분들에 비하면 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근데 어영부영 하다가 100개가 넘는 지맥길을 끝내다보니 약간의 욕심이생겨서
남은 산줄기를 마무리 하려니 힘에 부치지만 열심히 해보련다
이번주에는 어디를 갈까 생각을 하다가 2020년 8월에 2구간을 마치고
남은 한구간이있는 화포 동(무척)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려고 주중에 열차편을
예약해 놓고는일요일 이른 새벽에 베낭을 꾸려서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집 앞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 둔 열차표를
매표소에 찾은 다음에 서울역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발 → 동대구역 열차표와 동대구발 → 삼랑진역 열차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열차를 타고 07시에 동대구역에서 내려서
삼랑진역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야 한다.
서울역에서 열차에 오르자마자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졸음이 밀려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동대구역이다
동대구역(06:55)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기하고 있는 무궁화열차로 환승한 다음에
삼랑진가는 열차로 환승한 다음에 차창밖을 바라보니 오늘 역시 창 밖에는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것 같은 예감이 든다...차창밖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는데, 열차는 경산, 청도, 상동, 밀양을 거쳐서 삼랑진역에 도착한다
삼랑진역(三浪津驛08:10)
삼랑진(三浪津)은경남 밀양시 동남부에 있으며, 밀양, 양산,김해 등 세 지역이 접경을 이루며,
경부선과 경전선이 분기하는 철도교통의 요지로 밀양강(응천강)이 낙동강 본류에 흘러들어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 하여 삼랑진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영남대로와 접속하는 수운의 요충지로 조선 후기 동안 낙동강의 가장 큰 포구 중의 하나로
1765년(영조 41년)에는 삼랑창(三浪倉, 후조창 後漕倉)이 설치되어 밀양,현풍, 창녕, 영산, 김해.양산 등
여섯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수납, 운송하며 물자의 최대 집산지로 성장하였으나, 육로교통의 발달로
조창이 없어지면서 읍의 중심이 삼랑리(낙동)에서 송지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1928년 이전까지는 자연, 인문지명으로서의 삼랑진으로만 존재하였으나 1905년 송지에 삼랑진역
들어서고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번창하면서 공식 행정지명을 ‘하동’에서 ‘삼랑진’으로 개칭하였다.
며칠전에 우연찮게 객지에서 알게된 김해에 살고있는 의령읍내 출신의 고향후배와
통화를 하다가 후배가 ‘선배님! 이번주에는 어느 산에 가십니까’ 하고 묻길래
김해 무척산이나 갔다올까 했는데 이 친구가 토요일 오후에 계속 문자가 온다.
몇시 열차이며, 언제 삼랑진에 도착하시냐고 묻길래, 열차표를 찍어서 문자로
보냈더니만 역 안쪽의 철길까지 들어와서 나를 반긴다.
와이프와 같이와서 반겨주는 후배
김해쪽을 오면 내 친 조카들과 고향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연락을
안하고, 살짝 산행만 하고 올라갔었다...예전 같으면 당연히 연락을 하고
술 한잔 기울이기도 했을터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민폐인기라...
후배의 차를 타고 삼랑진역을 빠져나오니 후배가 커피라도 한잔하지고 하면서
가는길에 커피집에 들려서 따끈한 차한잔을 대접받고, 들머리로 가는길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후배와 내가 나이차가 그리 많지 않을줄 알았는데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 띠동갑이다
오늘 산행 들머리인 마당재에 도착하여 베낭을 내리는데 후배 와이프가 참외와
금방 삶았는지 따끈한 계란 2개, 초코파이가 든 팩을 하나를 주는데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러면서 같이 산행을 하고 싶다기에 내가가는 무척산길은 험한 곳으로 가야
한다면서 잔뜩 겁을 주었다...사실 아픈 나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후배 부부의 인사를 받으면서 헤어진다
후배와 산행 들머리에서 인증샷
마당재(210m:08:40)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와 상동면 우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나전산업단지가 있는
공장지대인데, 지도상의 마당재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있는데
산꾼들은 이곳을 마당재로 부르며 예전에 마당처럼 넓은 공터라서 불렀다고 한다
고개에는 상동면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꽤나 큰 규모의 가로등 제작업체인
(주) 유전사라는 공장이 있으면 김해나전일반산업단지를 통과하는 도로명 주소가
상동로인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8:55)
우정 산행을 하면서 나에게 보조를 맞추겠다는 후배부부를 잔뜩 겁을(?)
주어서 보내고나니 맘이 좀 편안하다...산행 준비를 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하다
이곳은 남쪽이라서 그런지 여름에 보여야 할 땅비싸리를 벌써 만난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초반부터 편하게 천천히 오르막을 향해서 걷는다.
평범한 길이지만 나는 이곳을 걷기위해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호젓하게 홀로 걸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산행 들머리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
갈림길(09:02)
우측으로 휘어지는 넓은 도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택한다
생전에 YS는 “君子는 大路라” 하면서 “大道無門”이라는 휘호를 즐겨 썼는데
나는 군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大路가 아닌 小路로 향한다
*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중국의 남송(南宋) 시절에 혜개선사(無門慧開1183~1260)가
불교 수행을 모아서 지은 책의 무문관(無門關)에 ‘대도무문’ 의미로 〈금강경〉 가르침과
일맥상통해 분별망상 없는 삶 속 수행 강조한 것으로
본래성불로 수행 불필요 주장
유무의 양변 집착과도 같아서
수행은 망상 완전히 비우는 것
이라는 뜻으로 대도무문의 뜻을 바로 알면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를 알고
선(禪)의 지혜가 열리다는 매우 중요한 말인데 YS라 불렸던 김영삼 대통령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아 붓글씨를 자주 썼다고 하는데
독실한 기독교 교회 장로였던 그가 선어(禪語)인 大道無門을 어떻게
이해했를까 하는 아이러니가 든다
넙직한 도로를 따라가는 길에 홀아비꽃대들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홀아비꽃대(꽃말:외로운 사람)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중국과 한국 등이 원산지이고, 산지에 서식하며,
크기는 약 20~30cm이고 뿌리를 약재로 쓸 수 있으며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다
살가운 처녀들은
나들이 분주하고
初老의 단벌신사
하산을 서두르니
언덕을 돌아 오시던
할머니가 그립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름이 홀아비일까...하기사 같이사는 사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니 너무 서러워 마시게나...왠지 너가 더 부럽구나
NO21송전탑(09:02)
마당재에서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고속도로같은 등로로 올라서니
야생화들이 계속해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맨처음 만난 땅비싸리,
홀아비꽃대, 양지꽃도 보이고 편안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덜꿩나무들이
꽃을 피우면서 산꾼을 유혹한다
덜꿩나무(꽃말:주저)
인동과에 속하는 덜꿩나무는 잎은 마주나고 달걀형으로 뾰족한 치아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잎의 앞 뒤면에 털이 소복하여, 뚜껍게 느껴지며, 만지면 부드럽다
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포기를 이루어 자라며, 나무껍질은 회갈색여며
가지에 별모양의 털이 있다...비슷한 나무로 분꽃나무, 백당나무, 배암나무,이며
새덜꿩나무, 개덜꿩나무로도 불린다.
짧은 가지끝의 산방 꽃차례에 자잘한 흰색꽃이 피며, 11월에 익는 붉은색의 열매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데, 들꿩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오래된
잎과 줄기는 한방에서 구내염이나 가려움증에 약용된다
약초재배지(09:12)
넓은 공터에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의 봉분없는 묘지는 하얀 줄이 처져있다.
죽은 조상을 위함인지 살아있는 후손들이 땅을 찾기 위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임산물 산약초 재배지이니 채취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나같은 지맥꾼들에게 하는 건 같지 않다...갈 길이 바쁘고, 산에만
들어서면 죽기 살기로 가는 맥꾼들은 그런것에 관심조차 없으니 걱정마소
이곳 쥔장은 그래도 양반인 듯 하다...지맥길은 만들어 놨다
약초 재배지안에 있는 불법(?) 가건물을 지나니 오늘 첫번째 만나는 산이 나온다
안산(安山:251.8m:09:16)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와 상동면 우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밋밋한 봉우리에
산패는 3개나 붙어있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 있으나 이곳 안산에 대한
자료는 김해시의 어느 곳의 문서에도 찾을수가 없구나.
서울의 청와대 뒷쪽에 있는 산도 안산(安山)인데 이 산의 유래는 안산(鞍山)의
'안(鞍)'은 말안장이란 뜻하며, '鞍'이란 글자는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가죽 혁(革)' 또는 '고칠 혁'과 '편안할 안(安)'이다. ..도성 서쪽 산인 안산은 서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편안하다고 해서 안산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이 곳의 안산은 마을 안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주민들을 안전하게 보호
해주는 산이라는 뜻인지?...지자체의 무성의가 그대로 남아있는 산인듯 하다
사유지를 지난 등로 우측에는 두릅밭이 보이는데 누군가가 한번 손맛을
본 것 같지만, 조금전에 팻말을 걸어논 사유지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간간히 손맛을 느낄 수 있을듯한 두릅순이 보이지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듯이 괜한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산에서 시그널로 자주 만나시는 산꾼인데 지나가신지가 얼마 안되었는지
시그널이 따끈따끈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새것이다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고 초반이지만 편안한 지맥길은 계속된다
등로에서 멸종 희귀종인 금새우난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누군가의 손을 안타고 잘자라야 할 터인데 불안하다
금새우난초는 미종자목 난초과 새우난초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전세계에 약 200종이며,
한국에는 약 3종이 분포하는 희귀 식물로 잎은 밑부분에서 2~3개가 나와 밑부분이
초상엽으로 싸여 섰다가 점점 벌어지며 주름살이 많고 길이 20~30cm, 나비 5~10cm로서
넓은 타원형이며 다음해 봄에 새 잎이 돋는다.
꽃은 4~5월에 피며 황색이고 꽃대는 잎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잎속에서 자라 높이가
40cm 정도이고, 열매는 삭과이고 밑으로 처지며, 멸종위기 1급(CR급)으로 제주도와
전남 일부 섬 그리고 울릉도에 자생하는 꽃인데 이곳에 보다니 정말 행운이
무명봉(09:21)
내리막길에는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는지 등로가 마구 파여있다
마당재에서 안산까지 완만하게 올라왔다가 다시 내리막길.
앞으로 다가올 맥길은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다가올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안부로 내려서니 잡목이 태클을 걸어오지만
그리 우려할 수준은 아닌데 지도상으로 광제고개라는 곳이다
연두물 짙어지니
오동통 살오르고
찰나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가니
가슴속 울려퍼지는
수더분한 느낌뿐
광제고개(光在峴:09:24)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와 생림면 사촌리의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지금은 동서로 이어지는 고개로는 인적이 끊겼는지 등로가 잘 안보이고
등산로만 뚜렸이 보이고 고개 정상에는 잡목만 무성하다.
석룡산 남서쪽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시루봉, 무척산 등과 이어지며, 고개 이름은
상동면 우계리의 광재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광재'는 풍수적으로 황금소반모양의
명당으로 '금빛[光]이 있는[在]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광재고개를 지나면서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서 등로는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렴...산행을 수없이 해봤지만 어디 쉬운 산이 있었던가
김해는 남녘이라 그런지 날씨가 따뜻하긴 따뜻한가 보다.
5~6월이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백선(白鮮)이 금방이라도 꽃이 필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백선(白鮮:꽃말:방어)
백선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록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5~6월에 꽃이 피며
반그늘 또는 햇빛이 잘드는 습지에서 잘 자라며, 꽃송이가 많은게 특징이며 아름답다
꽃과 잎에서 가연성 물질이 방출되어 벌레나 곤충들이 잘오지 않는데 호랑나비
애벌레만 잎을 먹는다고 하며, 또한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자체에 저장되어 있는
독특한 향을 발산하여 자신을 방어하는데 이러한 습성 때문에 붙혀진 꽃말이
“방어”라고 한다.
백선은 뿌리가 봉황을 닮았다고 하여 봉황 또는 봉황삼이라고 하며 한방에서
뿌리를 황달이나 구충약으로 사용하며, 뿌리의 껍질을 백선피(白鮮皮)라 하여
피부병 치료제로 널리 쓰고 있으며,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염 천식, 무좀,
폐결핵, 관절염, 위장병, 간염, 당뇨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옛날 신라와 백제가 격렬하게 싸웠던 황산벌 전투에서 싸우다 계백장군에게
패하여 숨진 화랑 관창을 아직 못잊어 하는 무용이라는 처녀의 아픔의 전설을
안고 있는 각시붓꽃...관창의 무덤 옆이 아닌 이곳에서도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구나
1,500년도 훨씬 넘은 세월이 흘러갔건만 아직도 관창을 잊지 못해 꽃잎마저도
관창의 칼을 닮았구나
오름길에 자꾸만 숨이차고 콧속이 간질간질하다
처음에는 탁한 공기에다 미세먼지 탓이려니 했는데
오르막길에 신발을 보니 주범이 따로 있었구나
주범은 다름아닌 송화(松花)가루였구먼...
빡센 오르막길이었지만 나름 등로는 뚜렸하다
평범한 산길이지만 그래도 맥길이니 나름 의미있는 길을 이어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이 한꺼번에 후답자에게 충고를 한다...
지금부터 고생하면서 땀께나 쏟아야 할 깁니다
좌측의 오르막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코가 땅에 닿을건만 같은 급경사의 오르막길...길은 아예없고
선답자들이 걸어둔 시그널만 이곳이 지맥 능선임을 알려준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오지만 이 또한 내가 극복해야할 운명이다.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길이 없는 곳에서 준.희 쌤의 격려문구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늘 健安하셔요
빡세게 급경사를 치고 올라서니 넓은 공터에 돌탑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469.7m봉에 도착한다
469.7m봉(10:05~8)
광제고개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라 밀려오는
통증 탓인지 짧은 거리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 헬기장이었는지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석룡산 방향으로는 소나무들이 길을 막고있는 시멘트 임도가 보이는데
이곳이 석룡산 갈림길이도 한 곳이다
469.7m봉 정상에 돌탑이 보이고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면
석룡산 방향으로 가는 길인데 이 지맥길을 걷는 대부분의 맥꾼들이 이곳에다
베낭을 내려놓고, 석룡산을 갔다오는데 느림보의 범여는 꿈도 꾸지못할
焉敢生心이라서 이곳에서 석룡산을 바라보면서 눈으로만 갔다온다
석룡산(石龍山:493.7m)은 경상남고 김해시 상동면의 여차리와 우계리 및 생림면 사촌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서쪽의 무척산과 동쪽의 금동산과 이어지며 북쪽에서 여차천이 남쪽에서
대포천이 발원하는 산으로, 김해지명변천사에 의하면 석류봉이라고도 하였고 한국지명총람 등에
지명은 옛날 석룡이라는 사람이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산소를 이곳에 모시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김해)에 상동면 우계리에 있는 산으로 석류산(石榴山)이 기재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김해)에는 우계리 북서쪽과 생림면과의 경계부에 석룡산(石龍山)이 묘사되어 있다.
469.7m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우측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
신어산(神漁山:630.8m)이고, 공장지대를 지나가는 부산외곽순환도로
상동터널이 지나가는 뒷쪽이 김해의 도봉산(348.6m)이다
김해사람들은 산에 대한 욕심이 많은지 서울에 있는 도봉산도 있고,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도 김해에 있지만, 금관가야가 태동한 이곳에
일반적인 산에 대한 자료는 별로없어 조금은 아쉽다.
신어산(神魚山:630.8m)은 김해의 진산으로 가야의 옛 도읍지를 부채살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신어산 자락에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의 오빠 허보옥(장유화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찰 은하사(銀河寺)가 있다.
은하사 아래는 내가 아는 자칭 어리버리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잘 있는지 궁금하다.
연락을 한 한지가 10년도 훨씬 넘었고,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지...잘 살고 있겠지...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마당재는 손에 잡힐듯이 가깝고, 나전일반산업단지 뒷쪽에 있는
삼각점봉(322.7m) 너머로는 맥길을 점령(?)하고 있는 가야C.C가 보인다
오늘 저 가야C.C에서 열리는 KLPGA 넥센 세인트마인 마스터즈 2023 대회
마지막날인데 어제 내려와서 산행을 하고 오늘 대회를 보고 가려고 생각을 했지만
주중에 일정이 좀 바빠서 못 본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469.7m봉 정상에서 바라본 석룡산의 모습
가보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기만 하다...내 걸음으로는
적어도 왕복 4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래 부러우면 지는거야...능력대로 살자
석룡산을 가지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척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469.7m봉 정상에서 초반의 내리막길은 완만하다.
갈림길(10:13)
469.7m봉 정상에서 5분정도 내려오니 좌측에서 사면길로 이어지는
등로가 나오는데 조금전에 급경사의 오르막길로 오르는 길에서
헤어진 등로이다...이곳으로 우회해서 왔더라면 개고생을 안해도
될뻔 했는데, 융통성없이 원칙을 고집하다 개고생을 한 꼴이다
綠陰芳草가 완연한 맥길...이곳의 산은 한여름을 방불케하지만
오늘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의 恩德으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거기다가 흐린 날씨에 햇빛마져 없으니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錦上添花이다
내리막길 나뭇가지 사이로 무척산이 얼굴을 내밀면서 빨리오라고 손짓한다
너럭바위같은 곳을 지나서 내려가는데 다소곳이 피어있는 각시붓꽃을 만난다
각시붓꽃(꽃말:기쁜 소식)
붓꽃은 키가 60㎝가 넘지만 각시붓꽃은 10~20㎝밖에 안되며, ‘각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애기붓꽃이라고도 한다... 각시붓꽃은 햇볕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인적 드문 양지쪽에 몇몇이 모여 봄을 속삭이는 듯하다.
마치 수줍은 새색시들이 봄나들이를 나선 것 같은 각시붓꽃은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도 자라는 들꽃으로 한 해만 피고 마는 일년생이 아니라 여러 해
피었다 지고 또 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각시붓꽃은 봄이 가기 전에 꽃을 땅에 떨어뜨린다. 하지만 가늘고 긴 잎은 30㎝
정도까지 계속 자라며 꽃의 크기는 3~4㎝, 꽃잎 안쪽에 수술과 암술이 들어 있다.
꽃이 지면 갈색의 열매가 6~7월경에 긴 타원형으로 달리고, 그 속에 약간 반짝거리는
검은색 씨가 들어 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 남부, 중국 북동부 및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산불감시초소(10:18)
산불감시초소가 아닌 산속에 무단으로 지은 불법 가건물처럼 보이는데
김해시에서 파견한 듯한 무전기까지 소지한 산불감시요원이 있다.
내가 도착하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내려가실 때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한다...고맙소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본 김해나전논공공단과 아침에 지나온 58번 국도의 모습
예전에는 김해하면 넓은 평야로 유명한 곳이였지만 지금은 부산의 외곽에 자리한
도시이다보니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평야보다는 눈에 보이는 건 전부가 공장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오는 등로는 감시요원의 말마따나 마사토 지대라 엄청 미끄럽다.
산딸기와 미역줄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의
등로는 여름철에 한꼬라지 할 곳 같은 느낌이다
봉분의 거의 보이지 않은 폐묘를 지나니...
소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곳곳에 편백나무를 심어논 것이 많이 보인다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루금이나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원칙을 고집하면서 직진으로 가면 도로 철책으로 인해 길도 없고, 되돌아와야 하니
사서 개고생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잠시후에 가야할 421.7m봉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니...
여덟말 고개가 나온다
여덟말 고개에서 바라본 석룡산의 모습
여덟말 고개(10:30)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와 생림면 사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무척산으로 가는
등로 입구가 있고, 여차리와 사촌리를 잇는 6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데
도로명 주소가 여차로이다..무척산 안내판과 이정표, 쉼터가 있고, 주차해 둔
자동차들이 간간히 보이는 고개이다
여덟말고개의 지명유래는 여차리에 옛날 어떤 사람이 이장(移葬)을 하려고 명당을 여덟 번이나 찾은
끝에 찾았는데 나룻배가 닿는 곳이 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고개 이름이 여덟마을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다른 설은 여차리 마을에 8개 부락이 있었고 이 8개 부락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여덟말 고개라 한다는 설도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이다
무척산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무척산 정상 2.7km 팻말옆에 버려진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콩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콩제비꽃(꽃말:행복은 반드시 온다)
제비꽃과 여러해살이풀로 키 높이 5~20cm정도로 자라고 줄기는 한 자리에서
개의 줄기가 자라나 비스듬히 퍼지며, 잎은 신장 꼴에 가까고 끝은 무디며,
뿌리에서부터 자라나는 잎은 잎 길이의 4배쯤 되는 기다란 잎자루를 가지고 있다.
줄기에 생겨나는 잎은 서로 어긋나게 자리하며, 꽃은 줄기에 자리한 잎의 겨드랑이로부터
자라나는 긴 꽃대 끝에 1송이씩 피며, 5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지며 좌우가 같은 모양인 꽃은
지름 1cm 정도로 희게 피는데 매우 앙증맞고 아름다운 꽃이다
갈림길(10:35)
여덟말 고개에서 5분정도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오니 입산통제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직진길이 아닌 좌측의 오르막으로 향한다
갈림길에 서 있는 입산통제 안내판
입산통제 안내판을 올라서니 봉분조차 잘 보이지 않은 亡者의
천년주택(묘지)를 지나는데 길가에 있어 잠이나 제대로
주무실란지 모르겠다.
234.3m봉(10:38)
234.3m봉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개고생을 하면서
올랐던 469.7m봉이 좀 미안했던지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몸뚱아리를 너무 혹사 시키지 마시게...
234.3m봉 삼각점(△밀양 463 / 1997복구)
산딸기 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이 넘들은 맥꾼에겐 공포의 대상이지
234.3m봉을 지나면서 풀섶에는 양지꽃들이 숨어있고
조금을 더 지나니 노린재 나무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노린재 나무꽃(꽃말:동의)
노린재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서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화회목, 황회목이라고도 한다.
영명인 'Sweet leaf'는 직역하면 '달콤한 잎사귀'라는 뜻이 되는데,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위키피디아
글로벌판에 실린 설명에 의하면 오래된 잎사귀에서 옅은 단 맛이 난다고 한다.
노린재 나무의 지명은 황회목(黃灰木:누르스름한 잿빛으로 물들인 무명)에서 유래되었으며, 자초나
치자 등 식물성 물감을 천연 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재(媒染劑:옷감에 염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매개역할을 하는 약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노린재 나무는 전통 염색의 매염재로 널리 쓰이는
황회를 만들던 나무로 잿빛이 약간 누런빛을 띠어서 붙혀진 이름이다.
요즘은 숲속의 수많은 이름없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100여년전만 해도 천에 물감을 들일 떄
꼭 필요한 귀중한 식물 자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중종 8년(1514)에 ‘죽청’이란 스님이 “지금 황회목으로 돈버는 일
때문에 곽산에 와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고 〈상방정례(尙方定例:1750년(영조 26) 상의원에서 편찬한
궁중의복에 관한 책〉에는 “명주를 보라색으로 염색할 때에는 한 필에 지초 8근, 황회 20근, 매실 1근”
으로 염색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순조9년) 빙허각 이씨가 가정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에는 “자초를
염색할 때는 노란 잿물을 받아서 사용한다”라고 하여 조선조 때는 황회가 염색에 빠져서는 안되는
매염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황회를 이용한 염색 기술은 일본에 수출을 하였으며, 〈대화본초((大和本草)〉 라는 일본의
옛 문헌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노린재나무 잎을 끓인 즙으로 찹쌀을 물들여 떡을 만들고
사각형으로 만들어 팔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제주도에서 나는 섬노린재 나무를 일본 사람들은
탐라단(耽羅檀이라 불렀다고 한다
휴식(10:40~50)
산행 2시간만에 등로 가운데 앉아서 물 한모금 마시면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오늘은 산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지만 송화가루로 인해 숨쉬기는 힘들다.
등로 가운데 퍼질러 앉아서 10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3분정도를
걸어서 올라서니 평퍼짐한 넓은 공터에 묘지가 있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시루봉이다
시루봉(277.9m:10:53)
김해시 생림면 사촌리와 상동면 여차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봉이라기보다는 예전에 작물을 재배한 밭처럼 보이는 펑퍼짐한 넓은
공터에 묘지가 있는 곳이라 산패만 없다면 무심코 지나기 딱 좋곳이다
이곳의 시루봉 지명에 대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으나 전국의 수도없이 많은
시루봉의 유래는 ‘산의 모양이 시루와 같다고 한 데서 유래된 이름’인데
아마도 이곳 시루봉의 지명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이 산은 여차천(余次川)의 발원지이기도 한 곳으로 김해시 상동면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상동면 여차리 시루봉과 여덟말고개 동쪽 산록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며 백운소류지,
여차소류지 등을 이루고 여차제 서편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는데, 무척산, 석룡산, 금동산 등의
산지가 좌우로 발달하며 그 사이 비교적 넓은 평지를 형성하며 흐르는데, 하천을 따라 69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여차천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여차리에서 유래하였다.
여차리는 옛날 어떤 사람이 이장을 하려고 명당을 여덟 번이나 찾은 끝에 찾았다는 지역이며,
나룻배가 닿는 곳이었다고 하는 곳인데 여차리를 여차(余茶)로 보고 차(茶)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시루봉 정상에는 독도님의 빛바랜 격려문구도 보인다
시루봉 정상에 있는 무명묘지를 지나서 뚜렸한 등로로 내려선다
등로로 내려서니 무척산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이곳에서 고도를 4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하니 고생 좀 하겠구나
모진 風波를 이겨내지 못하고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저 나무의
인생이 기구하기만 하는구나...나무나 사바세계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중생들의 삶과 다를바가 없으니 어디가 극락이며,
천국이련가...
산에 들어와서 세속의 모든 잡념을 털어내려 걷고 또 걸어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사거리가 나오고, 등로 가운데 집채(?)만한
묘지가 나오는데 규모가 너무커서 처음에는 가야왕국의 왕릉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왕족이 아닌 일반 평민인듯한 무덤이 있는 사거리가 하사촌 갈림길이다
하사촌(下沙忖) 사거리(10:58)
김해시 생림면 사촌리 하사촌(下沙忖, 아랫사촌)은 아랫사촌이라고도 하는데 사촌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북동쪽에 있는 무척산 과 석룡산(494.5m)이 이어진 산줄기가 있다.
하사촌소류지가 있고, 사촌천이 흐른다. 마을에는 사촌리와 상동면 백운암, 용당나루를 연결하는
재가 있는 마을로 사촌리는 마을에 사기점이 있었다고 하여 사기말 또는 사촌이라고 불렀으며
상사촌과 하사촌 사이에 강화 어씨의 열녀비가 있다.
커다란 묘지의 쥔장이 뉘신지 자세히 보니 분성배씨(盆城裵氏)의 묘지이다
김해의 옛 지명이 분성(盆城)이다
하사촌 사거리에 있는 이정표
조금전 여덟말고개를 자나자마자 헤어진 임도를 이곳에서 만난다.
지맥길이 아닌 저 곳이 일반등산객들이 다니는 무척산 등산로인 모양이다
갈림길(11:00)
하사촌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무척산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사면길을 버리고 좌측의 급경사 오르막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오르자마자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나무계단.
그러나 조금전에 지나온 469.7m 봉을 오르면서 개고생을 한
학습효과(?) 탓인지 그리 힘든줄을 모르고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다가 뒤돌아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467.9m봉(우)과 석룡산(좌)이 보인다
지맥길은 송전탑 아래로 개구멍 지나가듯 통과한다
맥산꾼에겐 공포의 대상인 청미래(망개나무)가 벌써 이만큼이나 커버렸다
저 넘들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지나가니 천만다행이다
NO75 송전탑(11:07)
송전탑을 지나기전에 잠시 완만했던 오르막 등로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급경사로 바뀌는 바람에 힘이 들긴 하지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등로 주변에 핀 철쭉의 응원을 받으면서 牛步걸음으로 무척산으로 향한다
돌탑(11:17)
돌탑이 보이는면서 오르막길로 향하는데...
늙은 소나무 / 신경림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여자를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세상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바람소리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조망바위(11:20)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余次里)의 모습
여차리는 마을의 북쪽 입구를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서쪽에는 무척산,
남동쪽에는 석룡산과 금동산의 산줄기가 있는데 산에서부터 여차천이 흘러내려
마을을 지나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자연마을로는 다섯골(다시곡, 다시골), 동용성(東龍城),
용두(龍頭), 백학(白鶴), 백운동(白雲洞), 학운동(鶴雲洞), 포고정, 후포(뒤개) 등이 있다.
여차리는 옛날 어떤 사람이 이장을 하려고 명당을 여덟 번이나 찾은 끝에 찾았다는 지역이며,
나룻배가 닿는 곳이었다고 하는 마을로 무척산 아래에 가락국시대에 장유화상이 설립한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송전탑을 지나 빡세게 오른 다음에 조만 능선을 지나 잠시 편하게 걷는다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악오토바이들이 다닌탓에
등로가 움푹 패인 길을 걷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빡세게 오른 다음에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향한다
421.1m봉(11:28)
421.1m봉을 찍고 우측 능선으로 향하여 잡목을 헤치고 내려선다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나서...
무척산으로 향하는 동쪽 능선으로 걸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오르는데...
등로 주위에 앙증맞은 바위들이 꽤나 보이는데 등로가 좋으면
걸어가면서 조는 못된(?) 버릇이 있는 범여를 배려함인가?
못난이 바위?
김해시장님...산길을 파괴하는 산악오토바이를 단속해 주셔요
철쭉은 내년을 기약하면서 落花를 하기 시작한다
너무 슬프하지 마시게나...세상사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은 不變의 이치가 아니던가...
하기사 그 이치를 모르고 天方地軸으로 나대면서 민초들의
피땀흘려 번 돈으로 내 세금으로 好衣好食하면서 살다가
막판에 개피를 보는 인간들도 아직 여의도에 많이 있긴있다마는...
590.3m봉(11:50)
레드카펫이 아닌 낙엽이라는 양탄자를 밟으면서 걸어가는 무척산길
꽤나 유명한 산으로 알려진 무척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등산객이
별로 없어 호젓하게 홀로 걸으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무명봉(11:53)
안부(11:55)
다시 오르막길은 시작되지만 이른 아침에 빡세게 올랐던 469.7m봉의
오름길에 대한 학습효과 탓인지 아직까지는 그리 힘든줄 모르고 걷는다
산꾼들이 지루할까봐서 중간중간 만나는 암릉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망바위처럼 보이는 집채만한 암릉을 지나면서 또다시 오름길은 시작된다
산악오토바이를 타는 라이더의 횡포에 망가져 버린 능선으로
올라서니 무척산의 전위봉인 듯한 무명봉이 산꾼을 반긴다
무명봉(12:08)
무척산의 전위봉인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확 꺽어져 무척산
가는길에 관리가 되지않은 망자의 천년주택(무덤)이 보인다
무척산 가는 길
조주(趙州) 선사의 끽다거(喫茶去)일화
한 수행승이 찾아왔습니다.
선사는 그에게
"자네가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나?"하고 물었습니다.
"네 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차를 마시게.(喫茶去:끽다거)"하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에 다른 수행승이 조주선사를 찾아왔습니다.
선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
"아니요,"하고 수행승이 대답하자, 선사는 전과 같이
"차를 마시게."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절의 주지가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사는 전에 이곳에 왔던 자나 오지 않았던 자나
똑같이 차를 마시라고 말한 것은 무슨 까닭이오?"
조주는 말했습니다.
"주지 스님!"
"네."
"차를 마십시오!"
*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선사는 선종(禪宗) 스님으로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제자로
속성은 학씨이며, 산동성(山東省) 조주(曹州) 출신으로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한 당나라 후기의 스님으로 천하조주(天下趙州)라는 명성을 드날린 동아시아
선불교(禪佛敎)의 거장이다.
조주 선사는 천하 조주와 더불어, 고불(古佛),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는
세 가지 별명이 그의 명성을 대표하고 있으며, 선사의 `끽다거` 화두는
그가 80세 이후 주석한 관음원에서 행해졌다.
'끽다거'란?
단순히 차나 한잔하고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차를 마시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라는 선사의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다.
차는 하찮은 음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내명을 정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깨달음의
관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스승은 알려주 싶었을 것이다.
답은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요즘 정치한다는 자들이 간간히 자기가 불리할 때 선문답 형식으로 얼버부리며
위기를 묘면하려는 간사한 인간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선사를 욕되게 하는것
안타깝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무명봉에서 2분만에 무척산 정상에 도착하니 명산(?)답게 대여섯명의 등산객을 만난다.
무척산 정상에 있는 태극기 문양의 정상석
무척산(無隻山:702.2m:12:10~20)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와 생림면 봉림리 , 생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서사면에서 안양천이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낙동강에 유입하며 산줄기 북쪽으로 부산과 대구간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무척산터널이 있는데 무척산은 식산과 무착산 또는 무축산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계곡이 깊고 산세가 험한 무척산 일명 식산이라고도 불리는 무척산은 산세는 기묘한
바위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으며 산의 높이에 비해 계곡이 깊고, 산세가 험하다.
산정의 천지는 수로왕의 국장 때 장지에 물이 고여 정상에 못을 파서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았다는 전설을 담고 있으며, 중부에는 수로왕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모은암,
동쪽에는 가락국의 불교 중흥을 위해 창건했다는 백운암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에 식산(食山)은 부 북쪽 30리 지점에 있고 남쪽으로 분산(盆山)과 이어져
있으며 매우 높고 크다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김해)에는 식산은 무착산(無着山)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영남읍지(김해), 조선환여승람(김해) 등에도 식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조선지지자료(김해)에는 상동면 여차리에 있는 산으로 무척산(無隻山)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도(김해)에 신어산 서쪽의 산으로 생림면 남쪽의 산으로 식산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고지도에 식산 또는 무착산 등이 표기되어 있다.
무척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 너머의 금오산의 모습
금오산은 영남 알프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으로 “영남알프스의 전망대”란
별명을 얻은 산이다
무척산 정상 삼각점(△밀양311 / 1993복구)
인증샷
무척산에서 바라본 김해
김해의 역사는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AD42년 고대왕국인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 국제결혼을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김해김씨와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김해 김씨와 허씨
양집안 간에는 혼인을 하지 않는 풍습도 있다.
“금바다”라 불리는 “김해(金海)”라는 이름이 처음 불리게 된 것은 500년간 번창했던 가락국이
신라에 합병된 후 정치적·군사적으로 요충지였던 이곳에 AD 756년 신라의 작은 수도격인
“김해소경”이 설치되면서이다.
경상남도가 펴낸 『알기 쉬운 경남의 가야역사』에서는 김해(金海)의 지명유래에 대해,
일본서기에 김해 가락국을 여러 차례 '쇠나라'라고 적고 있다는 점과 신라가 가락국을 병합하고
나서 붙인 지명 ‘금관’은 '쇠를 관리한다.'는 뜻이라는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김해시는 1896년에 김해군으로 바뀌었고, 1981년 7월 1일 김해군 김해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되었고, 그후 1995년 5월 10일 양시·군이 14년만에 다시 통합되어 도·농복합의
통합시로서 오늘날 경상남도의 중추도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이다.
선암산과 금동산은 약간 미세먼지에도 흐릿하게만 보인다
선암산은 신선이 내려와서 놀던 산이라는 별칭을 얻은 산이며,
금동산은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서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낙동강 너머로 보이는 토곡산의 모습
토곡산은 천태산, 천성산과 함께 “양산시의 3대 악산”으로 “토를 하고 곡을 해야
갈 수 있는 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산이다
무척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조망바위(12:22)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낙동강(洛東江)
낙동강은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강으로 한반도에서 압록강, 두만강 다음으로 길며,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이다. 지류를 포함한 유로의 총연장은 한강이 더 길며, 유역 면적과
유량 또한 한강이 더 크다.
발원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역이 영남지방에 있기 때문에, 일명 영남의 젖줄로 불리기도
하는 강으로, 남한에서 한강(수도권), 금강(충청권), 영산강(호남권)과 함께 4대강으로 꼽히기도
하는 강으로 한국에서 중요한 강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은 고대부터 존재했으며,신라와
조선에서는 낙동강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강으로서 사독(四瀆) 중 하나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중사(中祀) 제사를 지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에는 황산강이라 불렀으며, 현재 명칭인 낙동강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과거 바다에 접하던 김해지역에 위치한 금관가야를 뜻하는 다른 말(가락국, 駕洛國)인
가락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해석이 있다.
둘째는, 경상북도 상주시의 옛 이름 중 하나인 낙양(洛陽)에서 온 것으로, 상주(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낙동강'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현재에도 이 흔적은 남아 있어서,
상주에 '낙양동'이라는 행정구역이 있고 그리고 낙동면도 있다.
무척산을 내려와서 북측으로 향하는데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김해동부 3-11 경남소방’이란 구조 이정목을 만나는데 아마도
무척산의 주 등산로가 내가 걸어온 맥길이 아닌 북측의 길인 모양이다

모은암 갈림길(12:24)
무척산에서 4분정도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흔들바위 1.4km,
모은암2.2km, 석굴암2.0km 이정표가 있고, 무척산에 같이 내려온 등산객들은
전부 다 그쪽으로 향하는데 가야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찰인 조계종 제14교구
통도사의 말사인 모은암이 있는 곳이다.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건립했다는 사찰의 전설이 서려있는 모은암(母恩庵)은
가락국의 2대왕인 거등왕이 어머니인 수로왕비를 위해 지었다는 설과,
수로왕비가 인도의 모후(母后)를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으며, 지리산의 하동 화개의
칠불암 전설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절집이다
김수로왕은 인도에서 배를 타고온 허황옥과 결혼, 10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에
일곱왕자가 성불(成佛)하여 칠불사(亞자방으로 유명)를 창건하게 됐고, 또 김해 일대에
왕후사(王后寺), 장유사(長遊寺)·부은암(父恩巖)·모은암(母恩巖)등도 모두 가야국의
왕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찰로 가야불교의 수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을 상징하는 자연 남근석이 암자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男根)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 있는 절집이다.

맥길은 직진의 내리막길인 백운암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곳부터 무척산으로 오르는 등산객은 만날수가 없었다

맥길이지만 오랫만에 아니 아주 오랫만에 꽃길을 걸어본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던가...등로가 좋으니 새벽 4시에
집을 나온 탓인지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밀양에서 서울가는 열차표도 예매해놨으니 뭔 꺽정이람
???
주차장 갈림길(12:27)
엄밀히 말하면 무척산 중턱에 있는 천지(天池)로 향하는 길이다
김해에서 전해 내려오는 대부분의 설화들이 가야와 수로왕과 관련된 것이
많았는데, 천지 역시 김수로왕과 관련된 연못이란다.
수로왕이 붕어(崩御:임금의 죽음)하자, 지금의 김해시 서상동의 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에 왕릉을 조성하기 위해 땅을 파는데, 갑자기 물이 솟아나와 곤란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갑자기 늙은 도인이 나타나서 무척산 정상에 연못을 파면 수로왕릉의 물줄기가
끊어질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또 다른 설은 이를 일러준 것은 도인이
아니라 인도에서부터 허왕후를 수행하기 위해 동행했던 신보(申輔)였다고 한다
이 말을 믿고 연못을 파니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고, 무사히 장례를 마쳤는데 그 때
판 연못이 천지였다고 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주차장길이 아닌 직진으로 향하니 무영객님의 시그널이 반긴다
등로에 있는 소나무 고사목 한그루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살고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
살고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삶과 죽음에 너무 연연하지 말란다
고사목을 지나서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바위 위에서 자라는 습성이 있는
매화말발도리꽃을 만난다
매화말발도리꽃(꽃말:애교)
매화말도리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범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산 기슭의 바위틈에서
1m쯤의 낮은키로 자라는 특이한 식물로 꽃이 진 뒤에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붙이는 쇳조각 )처럼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꽃이 만개하며 참으로 아름다우며, 전 세계적으로 60여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만첩빈도리, 빈도리 등 1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
안부(12:29)
안부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뭇남성들의 애간장을 다 녹인 꽃말이 ‘바람난 여인’이라는
요염한 얼레지도 늙어서 쭈구렁 밤탱이가 되어버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조금을 더 내려서니 새색시처럼 수줍어하는 족도리풀꽃도 꽃이 다 져버리고 입만 무성하다
족도리풀(꽃말:희망)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이 식물의 뿌리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뻗으며, 잎은 두 장씩 나와 마주나는 것처럼 보이며,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잎자루는 길고
꽃은 잎 사이에서 나오는데, 대개 한 포기에 꽃이 한두 개 정도 달린 것에 비해 깊은 산속에서
여러 해 동안 제대로 자란 것은 포기가 다발로 퍼져 자라서 꽃이 무더기로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족도리풀 무리들의 비교 특징은 종류도 제법 다양해서 기본종인 족도리풀(Asarum sieboldii Miq.)부터
털족도리풀, 만주족도리풀, 민족족도리풀, 영종족도리풀 등이 있으며, 서울족도리풀의 특징은 악편이
둥굴게 뒤로 말리고 악통 입구에 고리 모양의 흰색이고, 잎 양면에 털이 있고 줄기에도 털이
밀생하는 꽃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2:32)
좌측으로 무척산 기도원이란 팻말이 보이고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무척산을 올랐다가 좌측의 천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척산 기도원이란 팻말이 있는 갈림길에서 올라서자마자
넓은 너럭바위가 나오고 약간의 허기가 지기에 이곳에서
점심 밥상을 펼친다
점심만찬(12:33~45)
아침에 고향의 후배가 싸준 참외 한개와 계란 2개, 초코파이 하나로
집나온 산꾼으로서는 훌륭한 만찬이다...가는 곳마다 갑질할 사람들이
있으니 범여!...세상 헛되이 살지 않았구나...후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의 날씨는 잔뜩 흐린 날씨는 춥지 덥지도 않은 날씨라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지만, 무척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조금 차갑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백운암 갈림길(12:47)
점심만찬을 끝내고 길을 나서자마자 만나는 백운암 갈림길
이정표(↑백운암 506m, ←도요5.9km, ↓무척산 정상 718m)와
구조이정목(김해동부 7-4경남소방), 쉼터의자 2개가 있고
능선에는 지도상에는 표기되지 않은 619.5m라는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은 산패
직진의 내리막길로는 백운암이 있고, 맥길은 좌측의 도요방향으로 이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백운암을 참배하고 가고 싶지만 그냥 도요고개로 향한다
백운암은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무척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로 가락국의 사찰임은 분명해 보이나
장유화상, 또는 무척대사의 창건설이 전해올 뿐 정확한 역사는 전해오지 않는다.
다만 무척산의 정상 부근 기암절벽 아래에 위치해 아름다운 전망과 아울러 무척산
등반객들의 휴식처이자 불자들의 기도처로 사랑받고 있는 절집이다.
십자 안부(12:49)
좌측으로는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우측은 상동면 여차리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 십자 안부이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별로
안 보인다
십자 안부에서 올라서니 좌측로 집채만한 암릉이 나오고
저 암릉 위가 지도상에 표기된 족보있는 622.5m봉이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봉우리이다
622.5m봉(12:52)
622.5m봉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무척산을 정점으로 하여 조금씩 고도를 낮춰 가는데 등로는
지맥길에서는 겪어보지 않는 그야말로 고속도로같은 느낌이다
무척산 정상에서 만난 몇명의 등산객은 모두 다 모은암 방향으로 가버리고
나홀로 외로움을 느낄만큼 호젓하게 걷는 이 길이 너무나도 좋다
사람들이 없으면서 가지고 다니는 리디오를 켜서 음악을 들어면서 걸어간다
무명봉(12:57)
완만한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안부(13:00)
집채만한 암릉이 나오는데 이곳이 587.0m봉이다.
587.0m봉(13:02)
급하게 사진을 찍다가 보니 소나무에 걸려있는 준.희 쌤의 산패를 놓쳐 버렸다.
587.0m봉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 너머 토곡산의 모습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오전과는 달리 무척산의 북동쪽 능선은 낙동강이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도 세차고 寒氣를 느낄만큼 춥다
갈림길(13:06)
내리막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다가 직진으로 이어지는 생림면 생철리 방향의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급경사로 내려서는 등로는 극락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길은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의 흔적들이 반겨준다.
급경사의 암릉구간에는 다행히 로프가 있어서 유격훈련하듯 하면서 내려선다
계속되는 로프지대의 급경사
4번인가 5번인가의 로프지대 지나 급경사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3:15)
안부에서 올라선 다음에...
암릉지대를 지나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3:21)
무명봉을 지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멋지게
보이는 능선이 영남알프스의 능선 같은데 遠景이라 그런지 흐릿하게 보인다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3:23)
안부에서 좌측으로 향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나 선답자들의 흔적이
직진으로 걸려 있어서 아무런 의심없이 직진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27)
무명봉에서는 길이 전혀 안 보이고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이 나오는데 누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마사토 지역이다...사면길로 오를걸 괜한 고생을 사서 한 꼴이 되어 버렸다.
마사토 지역에서 동북쪽으로 등로가 열리길래 똑닥이 카메라로 zoom in을 해본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잠시후에 가야할 지맥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419.8m봉이고,
우측 앞에 보이는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물체가 천태호의 둑방이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산이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천태산이고, 그 뒷쪽으로는 운문(신산경표상:영축)
지맥길에 있는 금오산, 다시 좌측으로는 구천산, 뒷쪽 북측으로는 만어산이 보인다
2020년 겨울과 2021년 봄에 저 길을 걸으면서 쌓았던 추억이 아련히 밀려온다
뒷꿈치 세우려다
바람에 걸려드니
사심은 오도가도
허공을 맴돌고
얄미운 몸부림치니
기다림만 늘더라
마사토 지역으로 내려온 다음에 숲속으로 들어선다
무명봉(13:35)
무명봉을 지나 내려서니 암릉으로된 구간이 나오는데 밋밋한
능선이면 범여가 졸면서 갈까봐서 배려를 해주는 느낌이다
안부(13:38)
안부의 우측 아래로 낙엽이 푹신한 사면길이 보이지만 직진으로 향한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보이질 않고, 오랫만에 맥길의
本色을 드러내는 듯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아서 편하게 무명봉으로
올라서니 맥꾼들이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지 시그널 하나도 없고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느낌이지만 트랙상으로는 분명한 봉우리다
무명봉(13:41)
봉우리에 올라서니 아무런 흔적도 없고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직진 능선으로 한동안 걷다가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사면길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3:44)
다시 맥길은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죄다 편안한 사면길인 제도권 등로로 갔기에 나도
선답자의 뒷길을 따른다
걷지는 않했지만 능선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무명묘지가 있고...
마루금에 복귀한다
안부(13:48)
안부에서 직진이 아닌 우측으로 향하니 앙증맞은 골짜기가 나오고
골짜기 위를 올라서니 419.8m봉 갈림길이 나온다.
419.8m봉 갈림길(13:52)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419.8m봉이 우측에 있는데
선답자들이 거기를 갔다왔는지 시그널이 걸려 있는데
난 거기를 가지 못했다...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느림보가 호화준족의 고수들을 따라갈 수가 없기에
맥길에 충실하기 위해 좌측의 등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시그널이 반갑다...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3:56)
무명봉인 암릉의 좌측 아래로 내려서서 편안한 등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무척산터널 위(13:59)
이곳 아래로 대구~부산간을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 무척산 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무척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사면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4:01)
상식적으로는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선답자들의 흔적들은
죄다 좌측의 편안한 사면길로 이어지고 있어서 나역시 선답자들을 따른다
원칙을 중시하는 백두사랑산악회 이대장도 이쪽으로 갔으니 좌측의
사면길이 맞은것 같은데, 트랙상으로는 직진의 오르막으로 되어 있다
이쪽도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는지 등로가 많이 파여있다.
편안한 사면길을 걷는 바람에 손쉽게 마지막 구간을 걸어간다
384.8m봉 갈림길(14:06)
우측으로 지맥길에서 꽤 벗어나 있는 384.8m봉이 있고 나하고는 관련없는 봉우리다
안부(14:07)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비실이부부님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준.희쌤의 격려문구가 보인다...감사합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마사토지대가 나오고 직진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무척산 터널을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 중앙고속도로가
보이고 여차리 용산마을이 아련하게 보인다
등로 우측에 있는 뫳돼지 못간통에는 가뭄탓인지 물이 말라 버렸다
썩어 문드러져 버린 장의자 2개가 맥꾼을 반긴다.
쉼터(14:15)
313.2m봉(14:18)
313.2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 폐묘를 만난다.
폐묘(14:21)
계속되는 완만한 길
안부(14:28)
안부에서 올라서니 갑자기목이 마르기 시작하기에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베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하고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이정표가 있고 비암봉을 만난다
갈림길(14:39)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발길을 돌리니 썩어빠진 쉼터의자가 눈에 거슬린다
늘공들의 전시행정을 보는 느낌에 씁쓸함을 느낀다
비암봉(348.1m:14:40)
경남 김해시 생림면 안양리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앙증맞은 돌탑 하나와
산패 2개, 선답자의 시그널, 망가 문드러진 쉼터 의자가 있고 T자 삼거리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꺽어지고, 비암봉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경상도에서는 뱀을 ‘비암’이라 부르는데 이 봉우리가 뱀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나?
비암봉 정상의 돌탑
아무도 찾지않는 쉼터의자는 망가져 있는데 수요와 공급이(오는 사람은 없는데
쓸데없이 설치한 의자) 잘못된 실패한 경제정책인 듯(?) 쉽다
고도차가 별로없는 완만한 능선을 걷다가보니 지루한 느낌을 주는 길이다
안부(14:48)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길에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오른다
노간주 나무의 저항을 받으면 무작정 치고 오르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278.6m봉 정상에 도착한다.
278.6m봉(14:51)
278.6m봉을 찍고 좌측으로 확 꺽어져서 내려오니...
다시 뚜렸한 등로만 만나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비가 올것만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구라청의 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하지 않았는데..
사명산 갈림길(14:53)
우측으로 사명산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사명산(169.4m)은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에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는 산이고 이 산 역시 지명의 유래를 알 수가 없다
앙증맞은 바위 하나를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반가운 송주봉님의
흔적을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칠순이 훨씬 넘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 대장들의 못지않은 체력과 走力을 갖추신 분이시다.
나와는 진양, 팔공, 호미를 같이 했는데, 지금은 지맥길을 졸업하신 분이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가늘고 키가 큰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차량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데, 좌측으로
지나가는 대구~부산간을 잇는 중앙고속도로의 차량소리인 듯 싶다
안부(15:05)
내리막길에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가니 농장 철망이 나오고 전기가 흐르는 철망이라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찔레꽃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선 다음에...
좌측으로 향하니 녹슨 철대문이 보이고 그 너머로 도요고개가 보인다
자물통이 잠겨있는 녹슨 철대문이 쬐끔 벌어져 있는데
뚱뚱이 산꾼들은 한참을 우회해야 할 듯 싶으나 날씬한(?)
범여는 충분히 빠져 나갈수 있을 것 같아서...
베낭을 벗어 밖으로 내보내고, 맨몸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도요고개(都要峴:15:13)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와 안양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의 좌측에는
담양전씨 동래문중 자연공원이 있고, 2차선의 12번 군도가 지나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우측의 낙동강변에 있는 도요리에서 따온듯 하다.
생림면에 속해있는 도요리(都(要里)낙동강강변에 조성된 마을로 무척산의 낮은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마을 뒤로 비암봉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대맛, 아랫도요,
웃도요, 엄실 등이 있고, 낙동강 건너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를 잇는 도요나루가 있었던
마을이다.
도요나루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사료에서 찾아 볼 수 없으나 나루 일대에 있었던 마을이자
강변을 일컫는 도요저(都要渚)에 관해 『세조실록』(제6권)에 "김해(金海)의 도요저(都要渚)는
본래는 선척(船隻)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에도 "도요저(都要渚)는
부 동쪽 30리 지점에 있으며 강을 따라 민가가 있는데 거의 200여 호가 된다."라고 하여
그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김해)에 도요리에 있는 나루로 도요진(都要津)이 수록되어 있다.
'도요' 지명과 관련해 도요새가 강가에 날아와서 살았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과,
'중심이 되는 곳의 삼각주'라는 뜻이 한자화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도요고개에 있는 담양전씨 동래문중 자연공원
동래문중 자연공원에는 돌탑과 가야왕조 김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있다.
쇠사슬을 넘어 문중사유지 외부인 출입금지란 팻말쪽으로 올라서니
문중에서 식재한 새로운 묘목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조성한 지가 얼마안된 듯한 시멘트 도로가 보이기에
그곳을 따라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경주이공 묘(15:18)
경주이공 묘를 지나 능선의 숲으로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141.9m봉이 나온다
141.9m봉(15:21)
141.9m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밀양441 / 건설부)
141.9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유인김해김씨 묘지가 소나무들에 갇혀 버렸다
비는 오지 않으나 날씨는 잔뜩 찌푸린 시어머니상이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불어대니 오전과는 달리 생각보다 춥다
대머리 무명묘지를 지나 안부에서 올라서니 동래정공&순흥안씨 묘지가 나온다
동래정공& 순흥안씨 묘(15:28)
동래정공& 순흥안씨 묘 옆에다가 베낭을 벗어놓고 우측으로
1분 거리에 있는 162.8m봉으로 향한다
162.8m봉(15:29)
다시 묘지로 되돌아와서 베낭을 메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동래정공 묘지에서 바라본 지나온 비암봉의 모습
묘지옆에 피어있는 꼬들빼기를 보면서...
묘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감나무밭(15:32)
감나무밭 사이의 농로를 따라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안부 너머로 잠시후에 오를 봉우리가 보인다
감나무밭 우측 아래는 도요리 양지마을이 보이고 낙동강 너머로
아침에 내렸던 삼랑진역이 있는 삼랑진 읍내가 보인다
안부(15:35)
새로 조성된 감나무밭을 지나서...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간다
안부(15:39)
안부를 지나서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비암봉(좌)과
무척산(뾰족한 봉우리)을 뒤돌아 본다...내 생전에 다시 올 일이 없을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오름길은 미끄러운 마사토 지역에 산불이 났던 지역인지
火魔에 흘킨 나무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어 보기가 안쓰럽다.
무명봉(15:48)
이곳 아래로는 대구~부산간을 잇는 중앙고속도로 생림2터널의 통과한다
능선에 올라서는데 불탄 나무들 사이로 새로 식재한 편백나무들이 보이고
평화로는 생림면 생철리에 있는 작약산(芍藥山:△377.8m)이 보인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무척산 아래 모은암 갈림길에
작약산으로 연결되는 저 능선을 타고 화포천으로 入水하는데 나중에
개척산행길에 저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약산(芍藥山:377.8m)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의 마사리·생철리, 한림면 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마현, 무척산이 있으며 서쪽의 모정고개를 지나면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있으며, 『조선지지자료』(김해)에 생림면 신포리(현재 생철리)에 있는
산으로 작약산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지형도』(밀양)에 생림면 마사리 동남쪽의
산으로 작약산이 기재되어 있다. 작약산 지명은 옛날부터 작약이 자생하였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 산이다.
갈림길(15:50)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가 희미한 곳으로 내려서니 급경사가 나오고 곧이어 우측에는
배수지의 FRP 물탱크 2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이동통신탑이 있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배수지의 FRP 물탱크
kt이동통신탑(15:52)
쉼터 정자(15:53)
쉼터 정자 아래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향한다
쉼터 사각정자가 보이면서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15:57)
임도 좌측으로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나뭇가지 뒷쪽으로는
생림2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중앙고속도로가 보인다
작약산 아래로 펼쳐지는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의 들녘
생철리(生鐵里)는 작약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시곡저수지가 있으며, 생림중학교를
중심으로 주거지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생철(生鐵), 성포(석개, 新浦),
훈두골 등이 있는데 생철리는 시내에 쇠가 많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고, 성포의 옛 이름은
섶개이며, 신포라고도 불리다가 최근 성포라 불리게 되었으며, 무척산 중턱에 가락국시대에
수로왕이 창건했다는 모은암이 있다.
안부에서 올라서서 맥길의 마지막 봉우리인 106.6m봉을 향해서 간다
산불감시초소 깃발이 보이는 106.6m봉을 향해서 가는데
갑자기 뒷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잔차를
끌고오는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106.6m봉(16:00)
화포 동(무척)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낮은 산이지만 주의의 전망은 아주 좋다
106.6m봉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초소안에는 감시요원이 있건만 퇴근 준비를 하는지
주변에 사람이 와도 관심조차 없다
106.6m봉 정상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낙동대교의 모습
106.6m봉 정상에서 바라본 생림면 안양리의 모습
안양리(安養里)는 생림1터널과 생림2터널을 통과하는 도로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나릿가, 마느실(선곡), 신안(新安, 시이), 안양(安養), 엄실, 창암(蒼岩, 창바우) 등이 있다.
선곡은 뒷산이 마늘쪽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신선이 사는 골짜기라고도 한다.
신안은 약 300년 전 파평 윤씨가 합천에서 거주지를 옮겨와 개간하며 조성한 지역이고, 안양에는
가락국시대의 고분이 있으며, 남쪽에 해오농주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안양이라 하였다.
창암은 낙동강 제방에 있는 마을로 창바위, 창바우라고도 하며, 삼랑진으로 건너가는 창암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106.6m봉 정상에서 내려서서 합수점으로 향하는데 6.25동란때의
방공호가 있었다는 팻말이 보여 가슴이 찐하다...70년도 지난 싯점에
이곳 낙동강 전투에서 북한의 공산군 침략자들에 맞서 피를 흘리면서
지켜낸 선조들을 고귀한 희생을 우리가 잊고 사는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둘레길이란 팻말을 따라서 내려간다
그럼에도 지난 정권에서는 한반도프로세서인지 뭔지도 모를 해괴한
언어로 민초들을 혹세무민하면서 북한 괴뢰정권에 무한대로 퍼준
결과는 맨날 미사일이나 쏘면서 겁박을 하건만 다들 무덤덤하니
선조들에 면목이 없구나...정신 좀 차리고 삽시다.
아주 미끄러운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안양천이 낙동강에 입수하는 창암취수장 끄트머리의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둘레길(16:12)
새로 조성하는 둘레길의 목책을 넘어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후답자인 범여를 격렬하게 환영을 해주는구나
드디어 합수점에 도착한다...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낙동강 건너에는 매봉산에는 내려오는 조창나루가 보인다
2년전인 2021년 5월 2일에 영축(양산)지맥의 합수점이라는 타이틀로
조창나루로 내려선 적이 있었는데 저곳은 아무리봐도 합수점은 아닌듯
한 곳으로 지맥의 끄트머리로 좀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 이곳은 예전에 창암(蒼岩)나루가 있었던 곳으로 김해시 생림면 안양리
낙동강변에 있었던 창암나루는 동쪽의 도요나루, 서쪽의 명례나루 등과 이어졌던
곳으로 현재 나루터 주변으로 낙동유원지가 형성되어 있으며,창암나루는 한자화해
창암진(蒼岩津)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김해)에 생림면 안양리에 있는 나루로 창암진(蒼岩津)이 기재되어 있으며,
『조선환여승람』(김해)에도 창암진이 생림면에 있는 나루로 기재되어 있는데 나루 지명은
창암 마을에서 유래되었고, 마을 이름은 낙동강 제방에 있던 바위인 창암(蒼岩)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안양천/낙동강 합수점(16:14)
창암취수장을 통과한 다음에 내려오는 코딱지만한 안양천이 낙동강에 입수하면서
나 역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또 하나의 지맥을 끝내는 희열을 느낀다
인증샷
낙동강 하구에서 / 허만하
바다에 이르러
강은 이름을 잃어버린다.
강과 바다 사이에서
흐름은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강은 슬프게도 아름다운
연한 초록빛 물이 된다.
물결 틈으로
잠시 모습을 비쳤다 사라지는
섭섭함 같은 빛깔.
적멸의 아름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커다란 긍정 사이에서
서걱이는 갈숲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처럼
강의 최후는
부드럽고 해맑고 침착하다.
두려워 말라, 흐름이여
너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리니
일곱 가지 슬픔의 어머니.
기분좋게 맥길을 마무리하고 데크목 도로를 따라서 간다
강가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창암마을에서
도요리 양지마을로 이어지는 잔차길을 만드는 모양이다
구 창암취수장으로 나와서 주차장 방향으로 향한다
생림면 안양리에 속해있는 창암마을은 낙동강 제방에 있는 마을로 창바위,
창바우라고도 하며, 삼랑진으로 건너가는 창암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창암취수장(16:25)
생림나루터 광장(16:27~17:05)
생림나루터 광장에 도착하니 사람들도 별로없고 멋진 원형 팔각정이 있어서
이곳에다 베낭을 내려놓고 씻기 위해서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뒷쪽으로는 아침에 지나갔던 58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어서 누구 눈치도 보지않고
훌라당 벗고는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나니 개운한 느낌이다
옷을 갈아입고는 삼랑진에서 18:58분 열차이니 시간적으로 여유도
많고해서 김해에서 삼랑진으로 가는 58분 국도에서 앵벌이(히치)를
시도해 보지만 4차선의 도로에다 자동차를 너무 빠르게 달리는 통에
세워주는 차가없다...30분을 허비한 끝에 히치를 포기하고 아침에
명함을 받은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멀리와 있어서 올 수가 없다고
하면서 사무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는데, 택시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데 5분을 넘게 신호를 보내도 연락이 없다...처음부터 걸어갈 껄
이곳에서 삼랑진읍내까지 30분이면 충분히 갈거 같은데...58번 국도변에
30분을 쭈그리고 앉아서 개고생을 한 셈이다
하는 수 없이 밀양(비슬)지맥과 양산(영축)지맥을 하면서 여러번 이용했던
밀양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만 내 전번을 저장해놨는지 단번에 알아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삼랑진에 와 있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서
고속도로를 타기 직진이라면서 택시를 돌려서 오는데 5분도 안 걸려서
생림주차장으로 온다
생림주차장을 출발하여 삼랑진역으로 가자고 하니 그러지 말고
밀양으로 가잔다...어차피 삼랑진에서 밀양까지 자기는 빈 차로
간다고 하기에 그러자고 하고 20분 조금 지난 시간에 밀양역에
도착하고 톨비를 빼고 21.800원의 택시비가 나왔는데 전부 합쳐서
15,000원만 받고는 잘가시라는 인사를 하고는 가신다
밀양역(17:52)
밀양역에 도착하여 삼랑진에서 밀양역의 표를 환불을 하니 10% 공제하고
4,000원을 되돌려 준다...열차 시간이 1시간 40분이나 남아있어 조금 빠른
시간대의 열차가 없냐고 하니까, 입석까지 다 매진이란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역으로 가서 몇번 이용했던 추어탕집으로 가니 문이
닫혀 있어 우측으로 돌아가니 예전에 없었던 깔끔한 인테리어를 한 짬뽕집이
보이는데 시골동네 치고는 인테리어는 수준급이다(직업은 못 속여 ...ㅋㅋㅋ)
원래 밀양지역에 유명한 짬뽕집은 삼랑진에 있는데 이곳도 가격대비(8,000원)
음식맛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다...따끈한 짬뽕 한그릇에 소주 한병으로
혼자서 지맥 졸업을 자축하고 한참동안 중국집 안에서 밍기적 거리다가 역으로 향한다
지금 밀양역은 새청사를 지을 준비를 하느라 역앞은 공사판이다
역 대합실에 들어오니 탑승객들도 북적여서 플렛홈으로 가서
의자에서 30분 가량 멍때리기를 하다가 19시 22분 서울가는 열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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