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산행일자: 2024년 05월 05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에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2km +날머리 8.6km / 6시간 5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백복령- NO225송전탑- 851.7m봉- 안부- 서낭당 터- 무명봉- 안부- 861.2m봉
안부- 959m봉- 서학골주차장 갈림길- 985.4m봉- 안부- 1,021.8m봉- 안부
무명봉- 861.0m봉- 암봉- 810.7m봉- 안부- 원방재- 870.4m봉 갈림길
무명봉- 무명봉- 무명봉- 안부- 암봉- 상월산- 안부- 쉼터- 962.3m봉
안부- 884m봉- 이기령- 계곡길- 원방재 입구- 사방댐- 임도- 물탱크
폔션- 부수베리 마을
☞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 정선군 임계면/ 동해시 달방동, 신흥동, 이기동
매주 지맥산행을 했던 나로서는 지난 4월에는 컨디션 저하로 한번 빠지고, 지난주는
애들이 어버아날 효도선물로 歌皇 나훈아의 마지막 콘서트를 예약해 주는 바람에
산에 가지 못했던 탓에 한달에 2번밖에 산행을 하지 못했더니만 산행 리듬이 완전히
깨져버린 느낌이다.
이번주도 초딩이 동창들이 1박2일간 남도 여행을 가는데도, 산행이 아닌 사무실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가고, 산행을 준비하는데, 일욜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라 참으로 난감하다...5월부터 강원도에 있는 지맥길을 걸으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비가 오다니...
알다시피 강원도의 지맥길은 워낙 오지에다가 계곡이 깊고 접속구간과 탈출로가
길어서 홀로 다니는 나로서는 일기가 불순하여 비가 내린다면 대처가 쉽지 않아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대간길 4차 구간의 백복령에서 이기령 구간이 문득 생각이 난다.
상세히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강원도 정선지역에 낮 12시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비가 오기전에 산행을 종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경에 아들 차를 빌려서 백복령으로 출발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집을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인 백복령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조금 지났다.
비는 오지 않지만 어둠속에 하늘을 쳐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산꾼을
겁박하는듯 하는데 아직까지 날이 밝으려면 1시간 30분정도 기다려야 할 듯
싶어서 자동차 시동을 끄고, 휴식을 취하는 잠을 청하려는데 좀처럼
잠이오질 않는다.
백복령(百卜嶺:780m:03:10)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의 경계에 잇는 고개로
정선과 동해를 잇는 42번 국도가 지나며, 고개 정상에는 백두대간 표시석과
정선 아리랑 표시석과 정자, 넓은 주차장이 고개를 지키고 있다
백복령은 석회암지대로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으로 소나무를 벌채하면 나무 뿌리에 수액이 응고되어 생성된 것으로 복령(茯笭)
이라 하며, 복령 가운데 특히 백복(白茯-흰 분말)이 많이 나는 것을 이름한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하며,
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 길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와 기껏
영월쯤에 닿아 멈추었고, 정선 땅은 올곧게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하여
살았으며, 백복령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복령의 정확한 이름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물어도 선뜻 일러주는 이가 없다.
이즈음은 그저 어디든 한결같이 백복령(白伏嶺)이라 쓰는데 『택리지』에는 백봉령
(百福嶺)이라 했고,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편에는 백복령(百福嶺)과 백복령
(百複嶺)을 혼용하면서 일명 희복현(希福峴)이라 한다고 덧붙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만 희복현이란 이름만 보이는 등 명확하지는 않다.
고갯길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백복령을 ‘뱃복이재’라고 불렀으며, 고갯마루에서
북쪽 산등성이에 올라가게 되면 둘레가 300-400m 쯤 되는 웅덩이가 있는데
이 웅덩이가 여자들 배꼽에 뜸을 뜬 자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뱃복이라
부른다는 마을 노인들의 말을 옮기고 있다. ‘뱃복’은 배꼽의 옛말이다.
카르스트지형에서 나타나는 돌리네의 움푹 파인 웅덩이가 신체의 배꼽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한자다.
한자로 쓰였던 지명은 앞에서 본 것처럼 제법 복잡 하지만 현재에 널리 쓰이는
백복령(白伏領)은 일제 때 지도 제작에 의해 고의든 실수든 잘못 기록되면서 전해
온 것으로, 백두대간보전회에서는 백복령(白福領) 보다는 주민 정서에서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 봉황의 뜻인 백복령(白鳳領)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정선 아리랑의 유래
고려왕조가 망한뒤 고려유신 72명은 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 하여
세상 미련을 버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송도(개성) 두문동에 은거하여
살았는데, 여기서 유래 된 것이 두문불출(杜門不出)이다.
이성계일파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응하지 않자 역적을 살려둘수 없다하여
두문동을 불바다로 만든다...거기서 나온다면 살려준다고 했으나 한사람도
나오지 않고 그곳에 있던 유신은 모두다 불타 죽었다.
그때 비명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민족사에 이처럼 불행한 역사가 또 있었을까.
한나라의 인재가 모두 몰살 되는 순간이었다.
고려말 안향이 성리학을 처음 도입하는 그과정에서도 처절하고 눈물겨워다고 하며
집뒤에다 정사를 짓고 공자와 주자를 진상을 모셔놓고 얼마나 정성을 드렸는지
몇년후 걸출한 인물이 탄생하는데 바로 목은 이색이다.
목은 이색 문하에서 배운 뛰어난 인재들(정도전,정몽주,길재,등..)과
고려왕조 중책에 진출해 있던 성리학 인재들이었다.
모두 불타 죽기전 두문동에서 나온 단 한사람이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으로, 그 황희와 맹사성은 세종을 도와 조선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된다.
정선아리랑은 두문동에서 강원도 정선이라는 유배간 전오륜(형조판서)외 선비들이
망국의 한과 고향의 그리움 비통한 심정을 한시로 지어 율창으로 부르던 것을
마을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 오늘날 정선아리랑 이라 한다.
아리랑은 지역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남과 북을 합쳐 3,600여 수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강원도의 정선 아리랑, 호남의 진도 아리랑, 경남의 밀양 아리랑이
3대 아리랑으로 꼽힌다
타관객리 외로히 난 사람 괄시를 마라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떨치고 청려에 의지하여 지향하여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저무는 저녁노을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왼갖것이 모두시름 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태산준령 험한고개 칡넝쿨 얽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구비치는 골짜기
휘돌아서 불원천리 허덕지덕 허위단심
그대를 찾아 왔건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
- 정선 아리랑 가사中 일부-
산행을 시작하다(04:10)
차에서 잠을 좀자고 날이 밝은 다음에 산행을 시작하려 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한 30분만 어둠속을 걸으면 될 것 같아서
12시부터 온다는 비의 예보가 어찌될 줄 몰라서 어둠속에 산행을
시작한다
참으로 오랫만에 어둠속의 길을 걷는다.
헤드렌턴을 켜고 산길을 오르는데, 멧돼지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지
짝짓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어둠속에 산이 흔들릴 정도의 뫳돼지
울음소리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내가 언제 짐승들의
태클(?) 때문에 산행을 중단한 적이 있었던가... 스산한 산길에
코 끝을 자극하는 강원도 청정한 공기에 기분은 정말 좋다
NO225송전탑(04:19)
백복령에서 시작하여 어둠속에 무심코 걷다보니 NO225송전탑이 나온다.
어둠을 잘 인지 못하는 똑닥이 카메라로 찍은 그림이 엉망이다
851.7m봉(04:28)
851.7m봉을 지키는 봉따먹기 大家들의 흔적
안부(04:40)
아무것도 보지 못한체 무작정 걷기만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되지만, 보기 싫은것은 안봐도 되니, 나름 편안한 면도 있구나.
마치 요즘에 나의 생활처럼...
한달여전에 치르진 총선 이후로, 난 tv는 물론이고, 30년 넘게 구독한 신문도
끊어 버렸다...남은 건 경제신문 2개 뿐이다...민초들을 편하게 해달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왜 이리도 이런 인간들만 국회의원을 하는지 모르겠다.
법을 만드는 자들이 가장 법을 우습게 하는 이 나라가 어게 될 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내가 걱정할 들 나아지진 않을 것 같으니, 내 눈.귀를 막고 사는게
편할 것 같고, 저 자들의 소식을 알지 않으니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겠나 싶다.
서낭당 터(04:50)
좌측 아랫쪽으로는 새벽에 옥계에서 백복령을 오를 때 지나온 42번 국도가
가까운 지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히 다니는 차량 불빛들이 보이고, 동해에서
해가 솟아 오르려는지 불그스레한 모습이다...갈참나무 한 그루가 있는
서낭터의 돌무더기는 예나 지금이나 대간길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구나
서낭당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이정표.
백복령을 지나온 지 1.30km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이정표에는
공식지명인 백복령이 아닌 백봉령이란다...언제쯤이 고쳐질란지?
서낭당을 지나자마자 다시 오르막은 시작되고, 무명봉에 올라선다
무명봉(05:07)
갑자기 날은 밝아지고, 무명봉 오르는 사이에 綠陰芳草로 물든 산길에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인지, 사연을 알 수 없는 처량한 절규인지
몰라도 내 귀에는 처량함으로 들리는구나
내리막길 나뭇가지 사이의 북측으로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명산의 역할을 잃어버린 자병산의 흉측한 모습이 산꾼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인간은 언제까지 자연을 괴롭힐 셈인가?
안부(05:15)
그래 이게 정상이지...새것으로 교체했으면 기존의 오류투성이
이정표는 철거를 해야지, 왜 그냥둬서 대간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겨...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지나서 조금씩 고도를 높히기 시작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벌써 해는 저만치 올라 왔구나...솟아 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제발이지 산행이 끝날때까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아닌 소원을 빌어본다
861.2m봉(05:21)
정상에는 지맥길과는 아무런 표식이 없고, 무영객님이 띠지에다가
861.2m봉이라고 표기를 해놔서 이곳이 족보있는 봉우리임을 알게된다
861.2m봉에 있는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좌측의 등로를
따라서 이기령을 향하는데, 청정지역 강원도의 상쾌한
공기가 이른 아침을 걷는 산꾼을 코 끝을 자극한다
대간길 주위의 나무들로 인해서 멋진 조망을 기대하긴 틀린 듯 하며,
기대하지도 발걸음을 옮긴다...간간히 조망에 대한 미련을 갖게 하지만
그 역시 기대하지는 않는다...동해바다 너머로 솟아오른 일출은 벌써
저만치 中天을 올라와 버렸구나.
안부(05:25)
간간히 보이는 철지난 처녀치마가 산꾼을 반기지만 급하게
걸으면서 셧터를 눌렀는지 꽃이지고 씨방을 품고있는
정수리가 사정없이 흔들려 그림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처녀치마(꽃말:절제)
옛 처녀의 치마를 닮은 참 독특한 이름으로, 이 식물의 잎 때문에 붙여졌다.
잎은 길이가 6~20㎝쯤 되는데, 땅바닥에 펑퍼짐하게 퍼져 방석 같기도 한데,
이 모습은 마치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와 비슷하다.
백합과에 속하며, 차맛자락풀, 치마풀이라고도 하는데, 비슷한 종으로는
칠보치마와 숙은처녀치마가 있으며, 숙은처녀치마는 2006년에 등재되었고,
바위틈에서도 자란며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에 분포한다.
이곳의 날씨가 춥긴 추웠던 모양이다...이제서야 진달래가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등로 주위에는 딱 먹기좋은 고비나물의 새순들이 간간히 보이고,
근처를 둘러보니 삼나물이라 불리는 눈개승마도 꽤나 눈에
띠건만, 비 예보 탓에 맘이 급해서 그냥 패스한다
좌측에 참꽃(진달래), 우측에 개꽃(철쭉)이 나란히 보인다.
예전의 자연 시간에 배운 상식으로는 참꽃이 지고나야, 개꽃이
핀다고 배웠는데, 요즘에는 야들도 법을 어기는지 동시에 꽃을
피워면서 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있으니 한심하다.
옛 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법을 어기면서 개판으로 살고 있는데, 너희들을 탓해서 뭐하랴...
959m봉(05:40)
철쭉이 지고 綠陰으로 변해버린 호젓한 산길을 홀로걷는 이 맛...
홀로 걸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맛을 모르제...참! 좋다
서학골주차장 갈림길(05:42)
959m봉에서 2분정도 걸어내려오니 안부에 예전에 없었던
이정표가 나오는데 서학골주차장 갈림길 4.15km 이정표가 나온다
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에 있는 서학골은 신흥동 서학골 일원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 전 물을 먹는 형상인 비룡음수형의 지형으로
예로부터 氣가 넘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학골은 과거 가마로
숯 굽는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서학골 주차장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는 상당히
넓은 공터로 서학골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주변에는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서학골 주차장 갈림길에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아직까지
활동을 멈춘 미역줄기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하늘은 조금전과
달리 잔뜩 찌푸린 날씨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산꾼을 겁박한다
노랑제비꽃(꽃말:수줍은 사랑)
다른 이름으로는 단화근채, 소근채, 노랑오랑캐꽃으로도 불린다
하늘의 먹구름이 일찍부터 산꾼을 겁박하지만 내 갈길은 멈추지 못하고,
이곳에서는 멈출수도 없는 곳이다... 12시부터 비가 내린다고 예보하는
구라청의 예보가 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985.4m봉(05:49)
985.4m봉 정상 삼각점(△구정467 / 2005재설)
無用之物?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철쭉의 배웅을 받으면서 완만한 돌계단으로 내려선다
베낭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취해서 아무런 생각없이
걷고 있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에 놀라서 앞을
쳐다보니 뫳돼지라는 넘이 땅파기 공사(?)를 하다가
달아 나는데 나 역시 엄청나게 놀라며 가슴을 쓰르내린다
갑자기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나타나는 멋진 산그리메.
자병산을 지나 석병산과 두리봉, 만덕봉 너머로 보이는
대관령 방향은 워낙 遠景이라 가늠조차 힘이든다
안부(06:08)
안부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향하는 등로 주변에 서서히
꽃을 틔울 준비를 하는 앵초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워밍업중이다
앵초 옆에는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는
좋은 시절을 다 보냈는지 꽃이지고, 씨방만이 남아 내년을 기약한다.
올해는 언 넘을 꼬시려다 실패를 했는지, 축 늘어진 얼레지가
안쓰럽게만 보인다
예전의 대간길에서는 느끼지 못한 여유로움으로 호젓한
돌길을 오른다...이 여유로움을 알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이 훨씬 넘은 듯 하다...예전처럼 산행을 빨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산에 대한 맛은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가사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우리 엄니 시집올 때 쓴 족도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족도리풀.
무심코 보면 꽃은 볼 수 없고, 잎만 보이는 꽃이다...시집가는 새색시의
수줍음이랄까...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이런걸 두고 그냥가면 눈개승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제...중간 중간 만나는 눈개승마를 수확하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눈개승마를 꽤많이 수확하면서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1,021.8m봉 정상에 도착한다
1,021.8m봉(06:47)
헬기장이 있는 1,021.8m봉 정상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향하고, 정상에서 직진으로 가면 달팽이산(1,027.0m)이
나오는데, 오늘 비가오지 않는다는 예보만 없다면 산행거리가
짧아서 충분히 갔다와도 될 것같은 거리지만 입만만 다시고
원방재로 향한다
원방재로 가는 길
마음은 용감하게, 생각은 신중히,
행동은 깨끗하고 조심스럽게 하고,
스스로 자제하여 진실에 따라서 살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은 영원히 깨어있는 사람이다.
밭은 잡초의 해침을 받고,
사람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해침을 받는다.
배우는 바가 적은 사람은
들에서 쟁기를 끄는 늙은 소와 같이
몸에 살이 찔지라도 지혜는 늘지 않는다.
병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며,
만족을 아는 자가 가장 넉넉한 자이다.
고운 꽃은 향기가 없듯이
잘 설해진 말도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법구경의 구절 중에서
안부(07:00)
오랫만에 맥산행에 관한한 전설로 통하는 竹泉선생의 흔적을 만난다
간간히 만나는 개꽃(철쭉)...이렇게 멋진 꽃을 개꽃이라니...
철쭉에 대한 모독이자, 예의가 아닌듯 싶다
무명봉(07:06)
멋진 금강송 몇그루를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원방재
자동차로 230여km를 달려와서 시작한 오늘 산행
2주만에 걷는 산길이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라
그런지 아직까지 그리 힘들다는 생각을 않고 길을 걷는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길을 걷다보니 861.0m봉 정상에 도착한다
861.0m봉(07:17)
조금씩 내리막길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보니...
가야할 상월산이 환상적이다...예전엔 저렇게 멋진 곳을
무심코 지나갔었는데, 대간길을 한번 더 걸었면서 저 멋진
상월산을 봤으니 오늘 산행은 충분히 본전을 뽑은 셈이다
암봉(07:19)
암봉을 살짝 우회하면서 걷는데...
좌측으로는 동해시 신흥동에 속해있는 서학골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른 아침에 금강송에서 뿜어대는 피톤치드향은 속세에서 찌든
때가 한꺼번에 벗겨지는 듯한 청량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810.7m봉(07:26)
건강한 금강송림...역시 강원도답다
안부(07:28)
안부에 있는 이정표
둥글레꽃도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사랑에 겨워 않고 마음에
집착하는 바 없이
나를 버려 바르게 다스리면
그만큼 괴로움은 없어진다.
생각을 한 곳에 모아 욕심이
동하게 하지말고,
뜨거운 쇳덩이를 입에 머금고
목이 타는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지 말라.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원방재에 도착한다
원방재(遠方峴:740m:07:36)
강원도 동해시 달방동 관촌마을과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를
넘나 들던 고개로 옛날 삼척사람들이 정선에 소금을 팔러가면서
넘었던 고개라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달방재로 기록되어
있는데 좌측의 서학골로 이어지는 곳으로 내려가며 달방동이라서
달방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원방이란 '먼 지방' 또는 '먼 곳'을 의미하며, 먼 거리 고개를 힘들게 넘나 들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란 뜻으로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는 정선땅
아우라지로 흘러가는 부수베리(부싯돌을 생산하던 곳)계곡과
동해방향으로는 오십천으로 흘러드는 서학골 계곡이 흐른다.
부수베리라는 지명은 ‘부수’는 부싯돌,‘베리’ 는 벼랑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고개는 힘에 부칠 때 산객들이 탈출로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다.
원방재 우측으로 아랫쪽으로는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로
이어지는 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명주목이로 가는 길이다
명주목이는 동해 소금길의 주 코스로 주막터에서 선녀소 개울을 건너
명주(明珠)로 가는 길목, 즉 여의주인 수병산(괘병산)으로 가기 위한 길목이었다
예부터 천리지행(天理地行)을 믿었던 산촌민들은 정초에 산제 및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이 길목을 지났고, 보부상들은 북평장과 삼척장을 거쳐
임계장과 정선장을 보기 위해 힘겨운 삶과 꿈을 이고 지고 이 길을 넘었으리라
백복령 주변 관광 안내도
소금길 생태 탐방로
자연환경을 활용한 옛길 재생의 하나인 백두대간 소금길 생태 탐방로가
강원도 동해시 신흥동 서학골 백두대간 일원에서 정선군 임계 방향의 길
총 4개 구간 약 12.2km 거리에 총 2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성되어 있다.
과거 영동지방에서 영서를 소금을 지고 이어가던 역사 속 이야기를 배경으로
지난 2015년 환경부의 국가생태탐방로 국고 보조 사업으로 선정되었으며,
탐방로는 신흥동 일대 17.9㎞ 중
1코스는 서학골~원방재~백두대간 능선~서학골로 이어지는 11.4㎞이며
2코스는 서학골~숯가마터~서학골로 이어지는 3.7㎞이다.
또 3코스는 두꺼비 바위~수력 발전 동굴터~주막거리 등 2㎞이며
4코스는 숯가마~망바위~제단터 등 0.8㎞이다.
이 생태 탐방로에는 코스별로 움막터,돌탑공원,전망쉼터와 숯 가마터 복원,
산업화시대 유물 자원 개발을 비롯해 주차장, 탐방 루트 등을 정비한다.
특히 3코스에는 수력발전 동굴과 폭포 쉼터, 돌다리 등이 조성돼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원방재의 서학골 방향 모습
예전에 비해서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원방재에 잠시 머물다가...
상월산을 향한 오르막길로 향한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오늘 처음으로 조금 빡센 오르막길이지만 왠지
오늘은 그리 힘들다는 느낌이 없이 급경사를 오른다
급경사에는 토사 유출방지를 위해 만든 나무계단이 왜 이리도 거추장스럽나...
870.4m봉 갈림길(07:57)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지도상에 족보가 있는 870.4m봉으로 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이고 대간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상월산
방향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올라 안부 능선에 도착하니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긴하지만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무명봉(08:00)
건강한 너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구나.
그래!...아프지마라...내가 아파보니, 마누라고,
새끼고, 아무 소용없고, 아픈 내만 서럽더라.
부디, 건강하시게나...
무명봉(08:10)
어떤 지도에는 이곳을 상월산이라 표기된 것도 있는 봉우리다.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완연한 5월의 초록은 싱싱함을 뽐내는데 자꾸만 왜소해지는
내 모습이 왜이리도 청승맞게 보이는 모르겠다.
이 길을 4번째 걷는다.
예전의 3번은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백복령에서 댓재까지
한방에 끝내고도 체력이 남아 돌았는데, 이제는 2구간을
나눠서 가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그래 다가오는 현실에 順應하면 살자
무명봉(08:17)
나뭇가지사이로 잠시후에 도착할 상월산이 얼굴을 내민다
상월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상월산가는 길에서 바라본 달팽이산(1,027m)의 모습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있는 달팽이산의 지명유래를 알길이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달팽이산이 있다는 것 조차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지역 주민의 말에 의하면 산의 모양이 달팽이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하고,
달팽이산 정상 근처에 우물이 있는데 달팽이가 많이 서식 했다하여 이름붙여 졌다하나
확실한 유래는 알수없다.
조금전에 숲속을 걸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걸어온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정말 멋지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맨 뒷쪽에 보이는 자병산은 푸르름은 전혀없는 홀라당 벗은 모습이
肉眼으로는 흐릿하게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확인이 어렵구나
안부(08:28)
좌측으로는 계속되는 암봉이 이어지고...
암봉(08:31)
달방계곡에서 올라오는 션한 바람에 맞서면서...
멋진 암릉이 나오는데 지도상의 상월산이다
상월산(上月山:970.5m:08:33)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와 동해시 달방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2개의 산봉(山峰)이 보이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을,
상월산이라 표기를 해놨고, 산림청에서는 잠시후에 가야할 봉우리를
상월산이라 기록을 해놔서 조금은 햇갈리는 곳이다.
예전에 걸었을 때 부산 낙동산악회에서 이곳에다가 상월산이란 산패를
걸어놨고, 나무의자와 고사목과 많은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있었는데, 모든게
변한건 없으나, 부산 낙동산악회의 산패만이 사라지고 없구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상월(上月)”은 지난달의 옛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산이 아닐까 싶다.
조금전에 지나온 원방재에 환경부와 동해시에서 설치한 상월산의 안내판을 인용하면.
백두대간 보호 지역 상월산은 백두대간 마루금 천수상이며 서학골 진산이자 마을의
수호산으로 용루폭포의 발원지다... 비룡음수형 (飛龍飮水形) 혈지의 주봉으로
여의주인 수병산(괘병산) 천기(天氣)를 받아 장수 공깃돌 바위와 망바위에 생기(生氣)를
전했다는 신성한 산으로, 상월산 정상에 장수가 올려놓았다는 공깃돌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곳은 천연기념물 산양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인증샷
비룡음수형(飛龍飮水形)이란?
풍수리리학상 용이 몸을 돌려 조산(祖山)을 돌아보는 형국으로 조상이
자손에게 큰 복을 주며, 자손번창과 부귀영화를 가져올 길지(吉地)로
자손들이 귀한 인물로 배출되는 명당터를 말한다.
또다른 상월산을 향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동해시 서학골의 모습
동해시 '지명지(地名誌)'에 따르면 서학골(棲鶴洞)이라는 이름은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던데서 비롯되었으며, 동네 사람들은 골짜기를
'사악골' 또는 '삿골'로도 부르는데, '서학골'의 발음이 변화한 듯하다.
상월산에서 내려오는 급경사 내리막길은 바지에 오줌을 저릴 정도의
급경사이고, 서학골로 이어지는 계곡은 천길 낭떠러지로
발한번 삐끗하면 황천길로 향하는 직행일 듯 싶다
안부(08:38)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쉼터(08:42)
다시 오르막길은 시작된다
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이제부터 조금씩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데로 걸을만한다
헐...!
지맥길도 아닌데 만난 준.희 쌤의 격려문구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능선에 올라서니...
삼각점과 넓은 헬기장이 있는 또다른 상월산에 도착한다
962.3m봉(08:55)
정상에는 4등 삼각점과, 헬기장, 이정표를 겸하고 있는
낡은 스텐레스 산패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산림청에서는
이곳을 상월산이라고 하고, 대간꾼들은 지나온 봉우리를
상월산이라 부르며, 이곳을 '구상월산', '상월산 동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증샷
962.3m봉 정상 삼각점(△임계423 / 2005재설)
2015년 지도(국토지리 정보원)에는 삼각점과
상월산 위치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이기령으로 향하는 편안한 내리막길
안부(09:04)
철지난 개꽃의 푸른잎의 격한 환영을 받으면서 조그만 봉우리로 향한다
884m봉(09:15)
어머님의 품안같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이기령으로 향한다
이기령으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처음에는 쉬영감탱이의 흔적인줄 알았는데, 자세히보니
쉬영감의 선배인 듯 하다...암튼 반갑습니다
수많은 대간꾼들의 격한 환영을 받으면서...
오늘의 날머리인 이기령으로 내려선다.
이기령(耳基嶺:810m:09:25)
강원도 동해시 이기동과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를 잇는 고개로
" 동기(銅基)”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는데,
이곳이 이기령이 된 理由는 대강 이렇다.
"銅基" 의 순수한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된 고개명으로,
구리터의 중간 자음인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 로
축약되어 "귀이<耳>"로 변음이 되었다고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재'를
의미하는 '령'으로 넘어 가니 "이기령<耳基嶺>이 되었다.
이 고개는 강원도 삼척의 해산물과 강원도 정선의 특산물을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우마차가 넘나 들던 고개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이기령은 백복령과 더불어 옛
북평읍에서 정선으로 통하게 되는 주요 관문구실을 하였으나, 백복령이 지방도로로
개통되면서 이기령은 고개로서의 기능이 상실되고, 이제는 점점 잊혀져 가는 옛길로
밀려나 이제는 백두대간 산꾼들만 걷는 고개가 되어 버렸다.
지역 주민들이 말한 바로는 '이기령' 이란 명칭은 예전에는 없었고 원래
'더바지'로 불렸다고 하는데, 더바지는 ' 옛날 마을 주민이 생계유지를
의미 ' 가 담긴 강원도 사투리다.
상인은 영동에서는 소금, 영서인 정선과 삼척 하장쪽에서는 삼베 같은 것을
가지고 더바지를 넘어 다녔다고 하는데, 더바지 길에는 국시뎅이가 있다.
쿠시라고 불리기도 하는 국시뎅이는 이 길을 오가는 사람이 무사안녕과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아 놓은 곳으로, 쌓인 돌탑은 서낭당과 같이 신령한
장소로 여겨진다.
이기령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탈출로를 정하는데, 이정표를 보니
동해 이기동 방향은 6.5km이고, 임계 부수베리 방향은 5.8km이다.
부수베리 방향은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넓은 임도로 이어지고
이기동 방향은 산길로 이어지기에 거리가 조금 짧은 임계쪽으로 향한다
이기령에서 가목리로 향하는 길은 널찍한 임도(林道).
정선군 임계면과 삼척시 하장면을 아우르는 이 임도는 길이가
100㎞에 가깝다고 한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오늘 12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인데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큰 걱정은 없다.
지금 걷는 이 길은 mein 산행이 아닌 날머리 산행이고, 넓은
임도를 걷는데다가, 자동차까지 가져왔으니, 비야 오던지
말던지 니 맘대로 해라...
임도 주변에는 물푸레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쪽으로 보이는 저 능선은 느르봉에서 백두대간 갈미봉,
고적대, 연칠성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벌써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이기령에서 이곳까지 지나온 거리가 1km이다.
아직도 부수베리까지 7km나 남았다는 얘기인가?
길에게 길을 묻다
돌아보면 먼 길을 걸어왔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 땀과 외로움 속에서
걷고 걷다가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사람들은 지천명(知天命)이니 이순(耳順)이니 하며
삶의 연륜에 걸맞게 나이를 구분하여 말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삶은 어렴풋하기만 하다
젊은 시절에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
그렇게 삶을 하나씩 알아가려니 하였고 나이들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저절로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가 쌓이며 작은 가슴도 넓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계곡길(09:53)
오룩스맵 지도를 보니 이곳으로 올라가면 870.4m봉으로 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데 이곳부터 임계천으로 흐르는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흰머리 늘어나고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 아집과 편협함이 지금도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나를 해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미움과 탐욕
그리고 원망의 감정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세치의 혀 위에서 아름답게 춤추던 사랑이라는 말도
막상 냉혹한 현실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한낱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 내 존재의 가벼움도 본다
그것은 삶의 서글픔이고 영혼의 상처이며 아픈 고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처절하게 다가서는 절망도 또 다른 빛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새로운 통로가 될 것이려니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서 지나갔던 끝없이 펼쳐진 그 길을 바라보며 이 순간 내가 가
는 길이 옳은 길인지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정말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길에게 묻고 또 묻는다
- 좋은글 중에서 -
가목리(柯木里)로 가는 길은 줄곧 내리막이다.
정선군 임계면에 속해있는 가목리(柯木里)는 삼척군 도상면 소속이었으나
1914년 삼척군 하장면에 이관되어 가목리로 불리었다가, 1973년 7월 1일자로
정선군 임계면에 이속되었으며, 이 지방에 가목(물푸레나무)이 다른 나무에
비하여 무성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가나무 정’이라고도 불린다.
자연부락으로는 가목, 군대, 명주목이, 구부렁골, 부수메리, 아상곡,
수봉어터골, 배나무골, 개병골, 사골, 칠만이골, 두레골, 새목골 등이 있다
아침부터 먹은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하지만
비가 오기전에 산행을 마치려고, 주린 배를 움켜지며 걷고 또 걷는다.
그래...배고픈 이 苦行을 참으면서 걷는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뒤돌아 보니 삼각뿔처럼 생긴 괘병산(수병산)이 산꾼한 내려다 보면서 하는 말...
아이쿠 우매한 저 衆生은 누가 구제할꼬...
원방재 입구(10:22)
우측을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간 원방재가 빼꼼히 보인다
이곳에서 가지고 온 두유와 초코바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방댐 너머로 바라본 괘병산(掛兵山:1,220.5m)의 모습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와 가목리 일원에 있는 산으로 괘병산(掛兵山) 또는
수병산(繡屛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원시림이 울창하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산으로,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정상에서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공룡 발자국 모양의 샘이 여러 곳 있고, 바닷
조개껍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억 년 전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날씨가 좋은 날은 정상에 있는 기암괴석 위 구부정한 노송을 구름이 비단처럼 감싸는듯한
풍경을 볼 수 있으며, 때마침 동해바다의 비릿한 내음이 실린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구름이
흩어졌다 다시 바위와 노송을 감싸는 멋진 광경이 보고 있는 사람들을 짜릿하게 만드는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인근 주민들이 가장 신성시 한 산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형상을 하였다고 괘병산이라 하며, 암벽이 흰색으로 변하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방댐(10:28)
등로 주위에는 조팝나무들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데,
동해에서 쑥을 뜯으러 온 부부인듯한 6분이 부지런히 쑥을 뜯고
있는데, 부수베리 마을까지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하느냐고 하니까.
아마 1시간 30분은 가야할 것이라고, 하는 그 말에 갑자기 다리가
풀려버린다
옷을 젖을 정도는 아니나 벌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구라청에 또 사기를 당하는 느낌이다
보이는 저 곳이 오룩스맵 지도에 표기된 명주목이란 곳이다
임도(10:43)
이기령으로 가는곳에 바리게이트가 처져있다...이기령에서
이곳까지가 5.5km거리이고, 1시간 10분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각종 안내판과 쑥을 뜯으러온 사람들의 차가 보인다
임계천 좌측으로는 더바지령이라 불리는 이기령으로 가는 길인데
임도가 아닌 지도상의 명주목이로 가는 길인데 이정표를 보니
편안한 임도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모양이다
도롯가에는 유난히도 유채꽃들 많이 보인다.
차단기를 지나면서 임계택시를 부르는데, 3군데나 전화를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도 못온다고 一言之下에 거절을 당한다
장사가 잘되는지, 아니면 서비스 정신이 안 된건지...나원 참...
하기사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지난해 노목지맥과 삽답령과
백복령 구간을 걸을때도 임계와 정선 택시의 횡포(?)에
힘이 들었다.
물탱크(10:45)
괘병산 등산로 입구(10:48)
임계천(臨溪川)을 따라서 걷고 또 걷는다.
임계천(臨溪川)은 백두대간 석병산(1,055m)의 험준한 골짜기 아래에서 발원하여, 정선군
북동쪽 임계면(臨溪面) 서쪽으로 흘러내리다가 이후 북부 여량(餘糧)에서 남한강의 발원천인
골지천(骨只川)에 합류하여 정선읍 남쪽에서 조양강(朝陽江)과 합류한다.
임계면 동부의 물과 북부의 물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그 하류로 임계천 본류 하천이라
볼 수 있으며, 정선 일대의 수많은 산으로 인해 곡류를 하게 되면서 뱀이 몸을 비트는
형상의 사행천(蛇行川)이 되었으며, 하계망이 전체적으로 수지상(樹枝狀) 패턴을 보인다는
점에서 정선지방 하천으로서는 예외적이다. 유역은 기반암이 전체적으로 화강암이다.
주변에는 구절리에서 내려오는 송천이 합류하는 아우라지 · 구미정 · 미락숲 · 바위안 ·
송계마을 · 번천 · 봉정마을 등의 명소가 있으며, 구미정은 조선 시대 숙종 대에 공조참의를
역임하던 이자가 당시 노론파로 사색당파 싸움에 실망과 회의를 느껴 관직을 사직하고
내려와 은거하던 중 임계 천변에 건축한 정자이다. 이 정자 주위에 9가지 특색의 절경이
있어 구미정(九美亭)이라 지었다고 한다.
'부수베리'에 대해 '정선군지(旌善郡誌)'는 '옛 사람들이 일상 용품으로
오늘날의 성냥 대신 돌과 돌을 마찰시켜 담뱃불로 이용하던 부싯돌이
생산되던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아쉽지만 다시한번 임계의
한곳에 전화를 하니, 택시를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조건을 붙인다.
출발하면서부터 미터기를 꺽으니 왕복 택시비 요구하는데, 비를
맞기 싫어서 OK하고 부지런히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뿌리줄기에서 쥐의 오줌과 같은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쥐오줌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넘도 꽃을 틔울 준비를
하는구나
화사하게 핀 귀룽나무꽃이 산꾼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귀룽나무(꽃말: 사색, 상념)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로, 어린 가지를 자르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꽃은 잎이 약간 올라온 5월에 하얗게 핀다. 꽃 이삭의 길이가 10~15cm, 꽃의 지름은 1~1.5cm이다.
핵과인 열매는 6월에 동그랗게 검은색으로 익으며 맛이 떫으며, 깊은 산골까지에서 흔하게 자라며
북쪽으로 갈수록 많이 분포하며, 어린 가지는 약용하고 어린순과 열매는 식용으로 쓰이며,
효능으로는 소화기능 증진 등이 있다.
택시를 걷고, 또 걷다보니 가목리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폔션(11:05)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빗줄기가 쏟아지니 맘이 불안하여
호출한 택시기사에게 전화하니 이제는 아예 전화도 받질 않는구나
부수베리 마을(11:15)
택시를 불러놓고, 30여분의 거리를 걸어왔는데 택시가 올 김미가 없어서
핸드폰에 찍힌 택시기사에게 다시 전화를 하니 아직 20분정도 더 기다리라고 한다
택시기사에게 ‘이 양반이 고객한테 장난을 치냐 하면서 그냥 돌아가라’고 하고는
가목교를 향해서 걸어간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폔션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 트럭이 보이길래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는다고 사정을 말하니 아무 조건없이
나를 태우고 백복령으로 향한다
트럭을 타고 15분만에 백복령에 도착한다.
고맙다고 하면서 택시 요금으로 줄 돈으로 사례를 하려고 하니
피곤하실테니 조심해서 가라고 하면서, 끝내 돈을 안받으시고
집으로 되돌아 가신다...고맙습니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백복령(12:10)
貴人의 도움으로 백복령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백복령 일대는 이곳에서 '군대(軍垈)'로 불리는데, 옛적부터 군사들이
많이 주둔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들의 愛馬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백복령에 도착하여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서울로 향하는데
정오가 지나면서부터는 장마비를 연상케 할만큼 빗줄기는
굵어진다...처음에는 옥계쪽으로 가서 고속도로로 집을 갈까
생각을 하다가, 山川景槪를 유람하기에는 국도가 더 없이 좋을듯
싶어서, 42번 국도를 따라서 임계를 지나서, 큰너그니재로 오르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는 쏟아진다.
산행이 끝났으니 비야 오던지 말던지 그거야 하늘의 마음이고, 정선군
여량면소재지를 지나, 북평이란 곳의 길가에 있는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수구레해장국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나니 살짝 졸음이 밀려온다
식당 주차장에서 30분정도의 꿀맛같은 쪽잠을 자고나니 머리가 개운하다
다시 차를 몰아서 도로명 주소가 ‘서동로’로 불리는 42번 국도를 따라가니
다음주부터 걸을 어천(신산경표상:금대)지맥의 끄트머리인 남평대교를
지나고, 정선 읍내를 통과하다가 길가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평창을 통과하고,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에
들려서 찐빵 한봉다리를 사서 간식으로 주전부리를 하면서 새말I.C에서
고속도로 들어선 다음에 집에 도착하니 저녁 6시쯤 되었다.
고속도로로 올때보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오랫만에 독립군의 特權을
제대로 누린 산행이었다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白頭大幹 4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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