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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청도(열왕)지맥(진행중)

청도(열왕)지맥 제2구간 - 666.3m봉에서 보름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5. 3. 10.

☞ 산행일시: 2025년 03월 02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오후에는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3km +들머리 2.2km+ 날머리 3.4km / 7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노단이 마을-세종정-갈림길-칠매기재-안부-무명봉

                     666.3m(계성(화왕:지맥 분기점)- 안부- 안부- 묘지- 암봉- 산죽군락지

                     614.0m봉- 안부- 572m봉- 안부- 안부- 511.0m봉 갈림길- 511.0m봉

                    쉼터- 무명봉- 갈림길- 안부- 무명봉- 497m봉- 546.1m봉- 심명고개

                   갈림길 - 535.7m봉 - 폐헬기장 - 임도 끝 - 안부 - 무명봉 - 안부 - 암봉

                   무명묘지 - 무명봉 - 안부 - 610.5m봉 - 안부 - 유인해주오씨묘- 안부

                   암봉 - 영취산 갈림길 - 영취산-다시 영취산 갈림길 - 무명봉 - 쉼터

                   645.4m봉 - 쉼터 - 안부 - 무명봉 - 안부 - 643.8m봉 - 천연돌 쉼터

                  옥천. 구계임도 갈림길- 암봉 - 632.5m봉 - 안부 - 642.2m봉

                  폐헬기장- 임도 - 병봉갈림길- 무명봉 - 502m봉- 구계임도 갈림길

                  보름고개 -구계리(내촌마을)  

☞ 소  재 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무안면 / 창녕군 고암면, 창녕읍, 영산면

 

이번주는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고, 주중에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휴식을 취하지 못했더니만 상당히 피로하다...한주정도 산행을 쉴까하고

고민을 했지만,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역마살이 범여를 못살게 구는구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화원지맥을 마감하려 했는데 그쪽은 비도 많이오고,

등로가 워낙 거칠어서 다른 곳을 찾아보는데, 지난번에 첫 구간을 끝내고

남겨둔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이 통과하는 경남 창녕지역의 날씨를

알아보니 오후 5시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전에 산행을 끝내면

되겠지 하고, 토요일 저녁에 베낭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집 앞에서 출발하는 서울역가는 첫 차를 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길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조금은 불안하지만 일단 구라청(기상청)의

예보를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대합실로 향한다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05시 13분으로 동대구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열차안의 멘트 소리에 깨어나 정신을 차린 다음에 열차에서

내린다

동대구역(06:58)

1여개월만에 동대구역을 왔는데 해가 많이 길어졌는지 역을 빠져 나오니

날이 훤하게 밝아있고, 이렇게 힘든 시기에 각하께서는 그래도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시려는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동대구역 광장을 빠져나와 서부정류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대구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35분만에 지하철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내려서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대구 서부정류장(07:38)

지하철에서 올라와 서부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대구 앞산은

비구름을 머금은 채,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지만

오늘은 구라청이 아닌 기상청으로 믿어보기로 하고, 버스표를 예매하러

서부정류장 대합실로 향한다

대구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오늘은 20분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대합실 내의 분식집에서

김밥 한줄에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 한잔까지

마신 다음에 08시 출발하는 창녕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창녕으로 가면 단골로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택시를 좀 대기시켜

달라고 하고 버스에 오른다...08시 대구를 출발한 버스는 35분만에

창녕터미널에 도착한다

창녕터미널(08:35)

노단이 마을(09:20)

창녕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옥천리 노단이 마을로 향하는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비를 맞으면서 산행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다행히 옥천저수지를 지나면서

비는 그치고, 노단이 마을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린다.

 

비는 그쳤지만, 습도가 많으면 기저질환을 앓고있는 범여로서는

오늘도 힘들게 산행을 해야만 할 것같은 예감이 든다...남쪽의

구름사이로 살짝 보이는 영취산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창녕군 창녕읍에 속해있는 옥천리(玉泉里)는 산이 수려하고 고찰(古刹)

관룡사가 있으며 계곡에 옥수가 흘러내리는 마을로 흔히 이 곳은 산옥정

(山玉亭)이라 하였으며,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밖으로의 교통이 불편한

천옥(天獄)과도 같은 뜻으로 불린 것이 옥천으로 변하였다 한다.

옥천리에 속해있는 노단이 마을은 놋다이(魯洞)와 노다이 또는 놋단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마을로 한자어로 노단(露丹)으로도 쓰이는데,

옥천리의 가장 깊은 골짜기 안의 마을로 토질이 붉다하여 초목까지 붉었다고

하는데, 이에따라 붉은 단(丹)자를 써서 노단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단(丹)'

땀이고 '' 의 음차(音借)이다...이곳은 지대가 아주 높은 마을이고 골짜기이니

높은 땀, 담, 뜸, 높다랐다는 등의 말이 높은 담, 놋단, 놋다이 등으로 변했다고 보여진다 

산행을 시작하다(09:30)

산행이 끝날때 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 간절한 바람으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비닐하우스를 지키는 개쉬키가 하는 말...

어르신!...날씨가 좋지 않으면 쉬시지...뭔 역마살이 붙었길래

타관땅까지 와서 개고생을 하는교... 글쎄 말이다...나도 모르겠다.

노단이 마을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다.

능선 위에서 내려오는 구름을 보면서 길을 걷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렇지 그리 춥지는 않구나

계성천의 발원지에서 내려오는 계곡 아래는 버들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면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春來不似春이다

世鍾亭(09:38)

계성천을 건너니 축대위에 노란칠이 된 긴다란 건물한채를

만나는데, 지금은 시용하지 않은 건물인지 창문이 하나도 없다

담벼락에 붙은 나무판데기에 '世鍾亭' 이라 써진 현판이 보이는데

예전에 고시생들이 공부하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세종정을 지나 좌측으로 오르는 길은 등로가 뚜렸하다.

윗쪽으로 바라보니 조만간 걸어볼 예정인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

능선인데, 창녕읍의 진산이라고 할 수 할수있는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오늘도 초반부터 선답자들의 외호를 받으면서 맥산길을 이어간다

우측에 계성천의 물줄기를 끼고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면서 청도(열왕)지맥의 들머리로 향한다

갈림길(09:50)

좌측으로는 화왕산으로 가는 길이고, 오늘 내가 가야할

들머리는 계성천을 건넌 다음에 완만하게 칠매기재로

향한다

계성천의 발원지 근처까지 왔다.

계성천(桂城川)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과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남쪽에서 발원해 화왕산군립공원 일대의 물을 합류한 후 옥천댐을

이루고계성면·장마면·남지읍을 지나 도천면 우강리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며,

장가천,관곡천, 동정천 등을 합류한다.

 

계성천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계성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757년

(신라 경덕왕 16) 화왕군의 영현 지명으로 계성현이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영산현이 되었다가 1914년 계성면이 되었으며, 지방 향토 자료에는 남방골

[桂南]의 앞산이 게[蟹]형상으로 생겼고 신당의 목마산성이 있어 게성

[蟹城]이→계성(桂城)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계성천을 따라 계성면 평성 들판, 광계 들판, 영남 수리 들판 등 넉넉하고 넓은

들판은 곡식을 키우기에 알맞았으며, 계성면 사리의 사은암과 하문암, 일미마을 고인돌,

계성과 계남리 고인돌, 그리고 장마면 유리 고인돌, 계성면 관동 고인돌 등 수많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남겨놓았다...이 청동기문화를 이룩한 세력들이 이웃 마을을

정복하며 성장하여 기원 전후에 나라를 세운다...이런 나라들이 원삼국시대이다.

 

즉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모두 78국이 탄생한 것이다.

창녕 최초의 왕국인 불사국은 계성천 중상류 지역의 장마면 거대한 유리 고인돌에서

탄생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불사국은 기원전 57년 삼한시대(원삼국시대) 진한 12국 중

하나로 후에 비화가야로 발전하여 진흥왕 16년(555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600여 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 땅에 꽃피웠다...그 흔적은 20곳 고분군으로 수천 기의 고분군이

비화가야의 역사를 증명한다.(비사벌 뉴스에서 발췌)

계성천의 발원지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칠매기재(505m:10:04)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노단이 마을과 고암면 감리의 윗쪽에 있는

고개로 이정표가 있고 반바지님이 코팅지에다 칠매기재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고개이다 

이정표가 있는 계성(화왕)지맥 능선에 올라서서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분기점을 가기위해 우측으로 향한다

비가 온 이후라 그런지 겨울철인데도 습도가 높아서  숨을 쉬기가 힘이든다.

좌측의 감리에서 습도를 잔뜩 머금은 듯한 구름이 꾸역꾸역 능선으로 올라온다

소나무들이 키재기를 하는듯 서로를 마주보면

내가 크니, 니가 크니 하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는 그 가운데를 나홀로 고독을 만끽하며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안부(10:06)

편안한 안부를 지나자마자 아직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고도를 급격하게 높히기 시작하고, 이런 곳은

기저환자인 범여에겐 쥐약같은 코스이다

급경사의 미끄러운 등로로 올라서니 준희쌤께서

화왕산으로 가는 산패를 걸어뒀는데, 내가 오늘

가는길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산패이다

좌측으로 향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아마도 감리로

이어지는 등로인듯 하고, 내가 들머리로 향하는는 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오르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너무 미끄러워 산행 속도가 나지 않으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아주 등로는 미끄럽다...가쁜 숨을 내쉬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데도 너무 힘이든다...들머리에 도착도 하기전에

지쳐간다...그러니 어쩌랴...내가 선택한 길인걸...

牛步걸음으로 걷다보니...

거의 힘든구간은 다 지나온 모양이다

평평한 무명봉에 도착하니 고사목으로

변해버린 소나무 한그루가 범여를 반긴다

무명봉(10:35)

계속해서 짙은 안개가 몰려오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것만

해도 그저 감지덕지하면서 3분정도 걸으니 오늘 내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할 계성(화왕)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계성(화왕)지맥 분기점(666.3m:10:38)

계성(화왕)지맥 개념도

 

계성(화왕)지맥은

밀양(비슬지맥)맥의 천왕산에서 분기한 청도(열왕)지맥의 663m봉(감리봉)에서

서쪽으로 다시 분기해서 구룡산(740.7m), 관룡산(754m), 화왕산(火旺山 758m),

구현산(579m), 쌍교산(486m), 큰갓실산(122m), 도초산(166m)을 거쳐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낙동강 남지체육공원 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6.8km인

산줄기이다.

 

화왕지맥의 북쪽과 서쪽에는 토평천, 칠곡천 등이 낙동강으로 흐르며,

동쪽에는 계성천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계성천의 우측 산줄기라 계성지맥이라 부른다

 

당초 신상경표에서 우봉지맥이 끝을 맺는 의령군 지정면 기강나루

맞은편으로 이었다가, 신산경표 개정판에서 도초산을 포함하여

남지리로 수정하면서 도상거리가 조금 길어진 지맥길이다.

계성(화왕)지맥 분기점(666.3m)은 창녕군 고암면 감리와 창녕읍 옥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은 펑퍼짐한 넓은 공터에서 선답자의 시그널과

준.희쌤의 산패, 반바지님께게서 감리봉이라는 코팅지를 붙혀놨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그냥 666.3m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다

 

노단이 마을에서 1시간 8분만에 정상에 도착했으니, 그리 늦은 셈은 아닌듯 하다

지난 1월5일에 첫 구간을 걸으면서 이곳까지 왔다가 중간에 스마트폰을

잊어버린지도 모르고 다시 되돌아가서 스마트폰을 찾아서 감리마을로

탈출하면서 개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 봉우리다

인증샷

분기점에서 4시방향으로 청도(열왕)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창녕사람들은 산길을 따라서 부곡온천을 다니는가?

분기점을 지나면서 부곡온천 가는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비에 살짝젖은 낙엽길을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맥길을 이어가는데, 예전같으면 이렇게 길을 걸으면

멋진 詩想이 떠오를 법도 한데,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없으니, 心性이 메마른 건지, 아니면 모진 풍파에 휩쓸리며

힘들게 살아서 그런가...

안부(10:43)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은 안개 때문인지

점점 夢幻的인 분위기를 자아내는구나

안부(10:45)

전혀 맥길스럽지(?)않은 제도권의 등로처럼 요소요소마다

이정표가 서 있어서 홀로걷는 산꾼으로서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펑퍼짐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내려서니...

移葬을 한 듯한 묘지가 보인다

묘지(10:49)

예전에 망자께서 생전에 한가닥 한듯한 분인듯 한데

봉분은 마구 헝크러져 있고, 봉분앞에 놓여있는 亡者의

밥상(床石)에 기록된 활자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구나.

묘지로 내려서자마자 펼쳐지는 산죽길

암봉(10:53)

산죽군락지(10:55)

맥길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detail하게 신경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산죽군락지를 지나 614.0m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바이크족이 다닌 흔적인지 등로가 파져있고, 비온뒤라서

그런지 상당히 미끄럽구나...조심스레 614.0m봉으로 오른다

614.0m봉(10:59)

오후 5시부터 온다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빗줄기는 굵지 않아서 우의는 입지않고

베낭에 레인커버만 씌워서 맥길을 이어간다

비가 조금 겁나기는 하지만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천천히 편안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03)

안부만 도착하면 어김없이 이정표가 보이는데, 똑닥이 카메라의 

눈(렌즈)에는 잡히지 않을 정도의 가랑비는 계속되고, 행여

비를 맞아서 몸살이 날까봐 걱정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별 방법이 없다.

비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572m봉(11:05)

572m봉인 무명봉을 내려서는데 등로 가운데의 낙엽속에

튼실한 묵은 영지버섯 5개가 얼굴을 내민다...범여가

버섯중에 가장 좋아하는 버섯인데...에공 아까운 거

안부(11:07)

이정표를 세워준건 고맙지만 거리를 표기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쉽다...이런걸 두고 2% 부족하다고 하는건가...

안부를 지나면서 까칠한 능선으로 맥길이 이어지는줄 알고 

능선으로 오르려고 준비를 하면서 트랙을 확인하니...

이게 웬 떡인가?

트랙은 좌측 능선윗쪽으로가 아닌 사면길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랄까...편안한 사면길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안그래도 가랑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범여의

기분은 영 안좋은데, 이런데라서도 위안을 삼아야제...

사면길로 이어지는 곳에는 안전말뚝이 설치되어 있고...

직각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막길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미끄려지지 않으려고

스틱에다 잔뜩 힘을주고, 내려가는데, 다리 근육이 뭉쳐졌는지

쥐가 나려고 한다...조금을 내려와서 예방적 차원에서 근육이완제

한 알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라이더족들이 다녔는지

등로가 홈처럼 퍼져 있는곳에 앙상한 몰골을 한

枯死木이 민낯을 드러내놓고 있구나...세상 사는거

참 아무것도 아닌데 나무나 사람이나 왜 아둥바둥거리다가

生을 마감하는지...

급경사 구간을 거의 다 내려오니 안부가 나오는구나

안부(492m:11:17)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 무시덤(무리점)마을로 넘나드는

안부로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화왕산성에서 진을 치고 이곳에서

무쇠를 파서 화살을 제조하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펑퍼짐한 안부에 창녕소방서에서 설치한 국가지점번호 라마 9814 2626

안내판이 서 있는데 우측으로 내려가면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노단이

마을이 나오고, 좌측은 조천리로 내려가는 길이나, 산행 시작부터 산을

뒤덮은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모든게 아쉽구나

가늘게 내리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이나 옷이 젖어서

그런지 조금 춥기는 하지만 아쉬운대로 걸을만하다

511.0m봉 갈림길(11:27)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서 걷다가 등로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511.0m봉으로 향한다

돌담이 있는 511.0m봉 정상으로 올라서니 납작한 봉분인

무명묘지 1기가 잡목속에 묻혀있고,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 4등삼각점이 나온다

511.0m봉(11:28)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의 경계에 있는 511.0m봉의

좌측으로는 槽川里가 있고, 우측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노단이 저수지가 있다

 

짙은 안개로 인해 조천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이다

밀양시 청도면에 속해있는 조천리는 열왕산 밑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산촌마을로

주변의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하천이 흐르고 있다.자연마을로는 조천리, 무시덤,

음지호음동 마을이 있다... 조천리 마을은 무시덤에서 내려오는 하천에 소구 유(소죽통)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소구유'조(槽)'자와 '내(川)' 자를 써서 이름 붙여졌다.

무시덤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화왕산성에서 진을 치고, 이곳에서 무쇠를 파서

화살을 제조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호음동은 음지쪽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특산물로는 풋고추가 있다.  

511.0m봉 정상 삼각점 (청도 474 / 1982 재설)

511.0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마루금에서 쉼터의자가 2개가 쉼터가 있는 곳으로 복귀한다

쉼터(11:31)

쉼터를 지나자마자 직진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빽빽한 잡목으로 인해서

한 발자국도 발을 디딜틈이 보이지 않는다...그런데 이게 뭐람...

좌측으로 이어지는 잡목의 정글에 사면길이 이어지고, 누런 쇠말뚝에

안전로프에다,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곳으로 맥길을 안내한다

트랙을 확인하니 지독한 잡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좌측으로는 열왕산

사면에서 발원한 조천천(槽川川)이 잠시 쉬어가는 조천 저수지가 있는데

비가 온 이후라서 그런지 온 산을 뒤덮은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구나...눈(肉眼)이 아닌 마음(慧眼)으로 보아야 할 듯 싶은데

범여는 道人이 아닌 세속 衆生이라 그럴 경지가 안되니 저수지가 보이질 않구나.

 

조천천(槽川川)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 열왕산(烈旺山)의

남서쪽 기슭에서 시작해 남동쪽으로 조천리 일대를 흐르다가 조천지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인산리와 구기리의 경계를 따라 흐른 뒤 청도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낙동강의 제2지류이며 청도천의 제1지류로

지방하천인 근기천을

지류로 포함하며, 하천연장은 6.5㎞, 유로연장 8.44㎞, 유역면적 14.97㎢이고,

상류부에 저수지인 조천지가 있고, 하류부의 왼쪽으로 청도면사무소와 우체국,

보건지소 등이 있다.

국가지점번호 라마 9812 2593 안내판이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는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1:36)

갈림길(11:37)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노단이저수지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낙엽으로 인해 등로가 잘 안보이는 좌측으로 향한다

낙엽에 묻힌 통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1:41)

좌측으로는 잣나무가 조림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갈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闊葉樹:잎이 넓은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전에 맞은 가랑비로 인해 옷이 젖은 탓인가...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데도 寒氣가 느껴지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한하여 편안한 길을 따라서 부지런히 걷는다

무명봉(11:45)

무명봉을 지나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마루금을 이어가는데

능선 좌측 아래로 시멘트 임도가 보이는데,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인 듯 하다

497m봉(11:48)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명봉인 497m봉에 도착하니 시멘트

의자 4개가 서로 마주보며, 반상회를 하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니네들이 인간들보다 

훨씬 났구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바세계의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 하는데 말이다.

인간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는 물질만능 시대라서 그런가...다정한 니네들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수가 없구나...

휴식(11:48~55)

안부를 지나면서 546.1m봉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높은 습도 탓인지, 숨이 막힐듯 하고, 몸뚱아리의

칼을 댄 자국에서 심한 고통이 시작되는데 참기가 힘이드는구나.

 

나무 계단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아스피린 한알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창녕군에서 설치하는 부곡온천가는길의

팻말이 보이는데, 창녕사람들은 산길을 따라서 온천욕을 하러가나?

분기점부터 이곳까지 참으로 많은 안내판을 만나는데, 이런걸 두고

씨잘데 없는 過猶不及이라는 건 아닐까...

잠시후에 벤취 4개가 일렬로 앉아있는 546.1m봉 정상에 도착한다

546.1m봉(12:03)

길에서 길을 발견하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도 없습니다.
맡고 싶은 냄새만 
선택해 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에 따라
좋은 말만 할 수 있고 
손과 발을 이용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過去)'는 
해석(解釋)에 따라 바뀝니다.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에 따라 바뀝니다. 
 
'현재(現在)'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뀝니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목표(目標)'를 잃는 것 보다
기준(基準)'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아프지 않고 80년 산다면,
26년 잠자고, 
21년 일하고, 
9년 먹고 마시지만,

웃는 시간은 
겨우 20일 뿐이라고 합니다. 
 
또한 화내는데 5년,
기다림에 3년을 소비합니다. 

기쁨의 시간이 곧,
웃는 시간이라고 본다면, 
  
팔십 평생에
겨우 20일 정도만 기뻐하는 건,
삶이 너무 딱딱한거 같지 않나요? 
 
화내는 시간을 반쯤 뚝 
잘라 웃을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좋을까요.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
"幸福은 누가 만들어 주는게 아닙니다." 
 
바로 자신만이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이랍니다. 
 
"인생이란...
문틈으로 백마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것 
같이 삽시간에 지나간다."
라고 합니다. 

<길에서 길을 발견하다> 중에서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길을 걷다가 보니 넓은 임도 삼거리가 있는 심명고개에 도착한다

심명고개에 서있는 영취산~구룡산 등산로 안내판

심명고개(12:10)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심명골에서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있는 고개로 영취산~구룡산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를

비롯한 여러개의 표지판이 있어서 약간은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노단이 저수지가 있는 1080번 지방도인데

창녕군 옥천리쪽은 포장도로이나 노단이 저수지에서 심명고개를 넘어서

밀양의 고라리로 이어지는 도로(도로명 주소: 사명대사 생가로)는 비포장

도로이다.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심명마을에서 차용한 듯 하나, 심명골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

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나 편안함을 추구하는 임도파들은

535.7m봉을 띵가묵고 맥길을 이어가려면 1분이며 가능할 듯 싶다

좌측 아래로 표기된 밀양 5.5km라는 표식은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를 말하는 듯 하다.

 

밀양시 무안면의 서북쪽에 위치한 고라리(古羅里)는 북쪽으로 화봉리,

동쪽으로 중산리, 남쪽으로 웅동리, 서쪽으로 가례리와 창녕읍 옥천리와

접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 중촌, 마곡, 장재터 등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하천가에 느티나무[괴목]가 있어서 ‘괴나루’, ‘괴진(槐津)’, ‘괴나리’, 

‘귀나리’, ‘괴나동’, ‘고라리’로 불렸다고 한다

 

고라리의 북쪽과 서쪽에 영취산이 위치하며, 동쪽으로 황산 줄기가 이어져

남쪽으로 열린 형태의 분지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발원한 고라천이 고라리의

중앙부를 흐르다가 남부 지역을 흐르는 무안천에 합류하는데, 남쪽의 무안천

본류 주변과 고라천 합류점 주변으로 저평지가 넓게 발달하여 있고, 주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며, 마을 중앙부로 지방도 제1080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간다.

 

주요 문화재로 사명대사가 13세에 출가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사명대사

생가지[경상남도 기념물], 1893년 제작된 탱화인 「밀양 어울암 칠성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등이 있고, 사명대사 생가지 부근에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데,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되어 있다

심명고개를 가로질러 535.7m봉으로 향하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동반자도 없이 늘 외롭게 걷는 산꾼은 이제 이런 호젓함이

習에 익숙해졌는지 참으로 편하다...옅은 안개속을 헤치며

서서히 고도를 높힌다

갈림길(12:14)

오늘은 창녕군에서 설치한 부곡온천가는길이란 

팻말이 맥길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535.7m봉(12:17)

535.7m봉 정상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가니 키작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2:19)

반갑구먼...빛바랜 산으로 방장님의 흔적

임도 끝(12:20)

조금전 심명고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임도의 끄트머리에 도착한다

임도끝에 있는 낡은 의자 옆으로 이어지는까칠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빡세게 올라야 할 영취산으로 향하는 워밍업을

준비한다

능선 아래에서 올라오는 짙은 안개가 주변의 멋진 조망을

삼켜버리고, 오늘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봉사 문고리잡는

기분으로 산길을 걸어간다

낙엽속에 살짝 묻힌 나무 계단을 따라서 한없이 내려간다

안부(12:27)

좌측으로는 사명대사 생가지(四溟大師 生家址: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가 있는

무안면 고라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이곳부터는 고도를

높히면서 영취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는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에 복원된 주택이다.

생가터로 구전되는 곳을 발굴하여 건축 유구를 발견하였으므로, 대구 수령을 지낸

증조부와 교생인 부친의 주거에 기반하고 대사의 직위인 가선동지중추부사

(架善同知中樞府事)의 격에 맞도록 반가의 격식을 갖추어 생가를 복원하였다.

생가는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 옆으로 재실인 숙청사(肅淸祠)가

건립되었으며, 1992년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는 본명 유정(惟政)으로, 1544년 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으며, 13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가 불교에 입문하여 승려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휴정(休靜:1520~1604) 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청허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4년(선조 37) 국서(國書)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성(伏見城)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등을 하사받았다... 그때는 스승이신 청허(淸虛:서산대사의 호)

입적한 이듬해로 묘향산에 들어가서 스승의 영탑에 애하고 치악산으로 들어갔다.

선조의 부보를 듣고 한양으로 달려와 배곡한 후 광해군의 서변을 지키게 하려

하였으나 병을 얻어 응하지 못하고 가야산에 들어가 사망했다.

 

무안에 있는 홍제사에는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표충비(表忠碑)가 

있는데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는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유명 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有明朝鮮國密陽表忠祠松雲大師影堂碑銘幷序)’를 새기고,

뒷면과 옆면에는 ‘서산대사 비명’과 ‘표충사 사적기’를 음각했다.

비문에는 표충사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승병활동을 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의 담판 내용,

선조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어놓고 있으며, 표충비는 비석 3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일명 삼비(三碑)라고도 불린다

표충비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석 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구슬땀처럼 흘러내린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라고

불리기도 한다...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이슬처럼 몇 시간씩 계속해서

흐르다가 그치는데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고 전하는데, 밀양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는데, 편하게 걸어라고 통나무 계단을 만들어 놨지만,

높은 습도에다 잔뜩 흐린 날씨에는 범여의 몸뚱아리는 참으로 힘이든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오르긴 하지만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숨이차기 시작한다

그래도 비가 그친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황소걸음으로 천천히 걷는다

우측의 심명골에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는 범여의 慧眼을 시험한다.

아이쿠 시험할 것 없소이다...중생에게 혜안을 기대하다니요.

무명봉(12:50)

안부(12:51)

안부를 지나서 낙엽속에 묻힌 나무계단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범여의 눈이 휙 돌아간다.

낙엽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복수초 2송이가 범여를 격하게 환영한다

복수초(:福壽草:꽃말: 동양-영원한 행복, 서양 - 슬픈 추억)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아시아가 원산지로

산지나 숲 속에 분포하며, 뿌리줄기는 짧고 굵으며 흑갈색의

잔뿌리가 많아 수염뿌리처럼 보이며. 잎은 어긋나고 깃털처럼 갈라지며,

잎자루 밑에 녹색 턱잎이 있다.

 

이른 봄에 노란색 꽃이 피며 지름은 3~4cm 정도이고,  뿌리나 줄기 등에

아도니톡신이 들어 있어 한방에서 강심제 및 이뇨제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는 세복수초, 개복수초, 복수초 세 종류가 자생하고 있다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워 '행복'과 '장수'를 가져다 준다는 뜻을

지닌 복수초(福壽草)는 꽃이 황금색 잔 같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측금잔화(側金盞花)

라고도 하고, 설날에 핀다고 원일초(元日草)나 원단화(元旦花)라고도 한다.

원일과 원단은 설날, 설날 아침을 뜻하죠. 요즘엔 순우리말로 얼음새꽃이나

눈새기꽃이라고도 하며, 눈 덮인 숲속에서 눈을 녹이며 복수초가 노랗게 피어 나는

모습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복수초 전설 

오랜 옛날 일본에 안개의 성에 아름다운 여신 구노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구노를 토룡의 신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토룡의 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구노는 결혼식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버지와 토룡의 신은 사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며칠 만에 구노를

발견했는데, 화가난 아버지는 구노를 한 포기 풀로 만들어 버렸다

 

이듬해 이 풀에서는 구노와 같이 아름답고 가녀린 노란 꽃이

피어났는데, 이 꽃이 바로 복수초였다고 한다

간간히 비를 뿌리는 습한 날씨 때문에 힘은 들지만

올해 처음으로 복수초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으니

이것만으로도 오늘 산행길에 본전은 뽑았으니 후회는 없다.

 

안 그래도 오늘 이곳을 안 왔더라면 동해의 냉천공원으로

복수초 촬영이나 갈까 생각하다가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에

귀경길이 겁이나서 포기했는데, 이곳에서 복수초를 알현하니

기분이 무쟈게 좋다

암봉(12:57)

복수초를 보고나니 이곳까지 오면서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처럼

기분이 좋다...암봉위로 올라서니 의자가 쉬어가라고 붙잡지만 이렇게

좋은 기분을 오래토록 유지하고 싶어서 그냥 길을 떠난다

안부에서 빡세게 올라왔다고 맥길이 범여를 배려하는지

쩗은 구간이지만 잠시동안 평평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1분도 안되어 무명묘지를 만난다.

무명묘지(13:00)

나무계단 좌측으로는 산악오토바이가 다녔는지 길이 패여 있지만

나로서는 할 말이 없구나...내가 두발로 산을 걷는게 취미라면

재네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다니는게 취미라는데, 하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을 것이다...나는 산을 보호하고, 재네들은

산을 홰손하는 차이라는 걸...

무명봉(13:03)

안부(13:04)

안부에서 올라서니 멋진 데크목 조망 쉼터가 있는 610.5m봉에 도착한다

610.5m봉(13:05)

멋진 전망 쉼터에 갇혀버린 소나무 2그루가 애처롭다.

준.희쌤의 산패와 스텐리스 이정표, 추락주의 안내판이 있다

 

전망대 바로 아래의 무안면 고라리(古羅里)에는 사명대사의 생가지와

유적지, 기념관이 보이는 곳이건만, 산행 시작부터 계속되는 고약한(?)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앞도 안 보이니, 아쉽기만 하다.

조망테크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안부를 통과하고...

암봉을 넘어선다.

심명고개를 지나면서 소강상태를 보였던 가는비가 다시

조금씩 내리는데, 우의를 입을까 생각하다가 거추장스러워

그냥 나무 계단을  따라서 천천히 내려간다

안부(13:09)

낙엽속에 묻혀버린 맥길이긴 하지만 길을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다.

살짝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묘비는 있는데 봉분을 보면, 후손들이

묘지를 移葬한 듯한 해주오씨 할매묘를 만난다.

유인해주오분년지묘(人海州吳分年之墓:13:14)

 

* 유인(人)이란 조 시대에구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외명부() 품계로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의 신주나 명정() 쓰던 존칭이기도 하다

가랑비를 맞으면서 영취산으로 향하는 길...

안전로프가 처져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좌측으로는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 방향이나 아무것도 안보이니

확인할 방법도 없다

안부(13:17)

가랑비와 함께 짙은 안개는 점점 심해지고...

영취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봉(13:32)

그림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까풀막으로 오르는데 힘이든다.

오후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체력이 방전되는지 발걸음은

점점 느려만 간다

가다 서다를 번복하면서...

안개속을 뚫고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영취산 갈림길이 나온다

영취산 갈림길(13:45)

갈림길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맥길에서

0.2km 떨어진 곳에 있는 영취산으로 향한다 

영취산(鷲山:738.8m:13:50)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멋진 정상석, 창녕군에서 설치한 말뚝형 표시목도 있다

전형적인 토산(土山)으로 지맥 마루금에서는 200여m정도 떨어져 있으며, 정상석

앞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능선이 보이는데, 창녕읍 옥천리 극락암이라는 절집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조금을 더 내려가면 옥천리 담안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창녕군에는 영취산이라는 지명이 2개나 있어서 조금은 헷갈린다.

또 다른 영취산(鷲山:681.3m)은 이곳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창녕군 계성면

사리와 영산면 구계리의 경계에 있는데, 영산면에 있는 영취산에 대한 유래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높이도 높고 형남뻘인 이곳 영취산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영취산은 깃대봉이나 국사봉만큼은 아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꽤많이 있는 산으로

그중에서 가장 높고 유명한 산은 영축산(1082.2m)이라 불리우며 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를 품고있는 양산의 영취산이며, 2번째 높은 영취산은 백두대간 능선에서

금.호남정맥이 분기되는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있는 영취산(1075.6m)이다

 

대부분의 영취산은 영축산과 똑같은 의미로 불리는데, 이같은 현상은 한자의 취(鷲)

또는 축(鷲)에 대한 한글 표기에서 문제가 발생되었으며,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鷲)’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鷲)’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영취산 이름의 혼돈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鷲)’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불보종찰(佛寶宗刹)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가리킨다.

  불보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석가모니를 말하고, 법보는 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명한 교법, 승보는 부처의 교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제자 집단, 즉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중생에게는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벗이다.

 

 삼귀의(三歸依)가 모든 사부대중에게 삶의 지침이 되는 것처럼, 이 세 가지는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의 대상으로 한국에서는 통도사(通度寺)·해인사(海印寺)·송광사(松廣寺)가 삼보사찰에

  속하며, 이들 세 사찰을 일컬어 3대사찰이라고 부른다.

 양산 통도사는 부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이라고 한다.

 7세기 중엽 신라의 고승이신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께서 당나라에서 문수보살

 계시를 받고 불사리와 부처의 가사 한 벌을 가져와, 사리는 3분하여 황룡사와 울산 태화사

  (泰和寺)에 두고 나머지는 통도사를 창건하여 금강계단(金剛戒壇:국보 290)에 가사와

  함께 안치하였다... 이로써 통도사는 불보 종찰(宗刹)이 되었으며, 본당인 대웅전에는

  따로 불상이 없고 불단만 있는데, 법당 안에서 정면을 향하면 바로 사리를 모신 보궁이

 보이게 되어 있다.

인도에 왕사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축산은 영취산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8대 성지중의 하나이며 고타마 붓다와 빔비사라왕과의 만남의 장소이며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후에 최초로 법화경을 설법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영취산 정상 3등 삼각점(청도336)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영취산 분기점(13:56)

영취산에서 분기점으로 되돌아오니 비에젖은 베낭이

얌전하게 앉아 쥔장을 기다리고 있다.

 

좌측으로는 밀양시 무안면 삼태리에 있는 하서산(375.6m)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는데, 창녕군에서 제작한 이정표에는 밀양시의 지명 표시는

전혀 보이지 않아 아쉽다...지역 이기주의 탓(?)인가

영취산 분기봉에 되돌아와서 물 한모금을 마신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나는데 짙은 안개가 자욱하기는 하지만

여느 지맥길의 등로와는 달리 길이 너무 좋아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느 쪽을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길이다

무명봉(14:02)

짙은 안개속 사이로 가랑비는 계속 내린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우의를 입지 않고

길을 걸었더니만 옷이 다 젖어 버렸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아서 그리 추운줄은 모르겠다

쉼터(14:15)

쉼터를 지나서 고도차가 별로없는 무명봉을 넘는다.

언제쯤 짙은 안개터널을 벗어날 수 있으려나?

비에젖은 미끄러운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나무의자 3개가 가족회의를 하는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645.4m봉 정상에 도착한다

645.4m봉(14:23)

645.4m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 좌측으로는 서산사라는 절집과

서가못(저수지)이 있는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로 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이지만, 창녕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밀양시의

지명은 전혀 기록되어 않아 아쉽기만 하다.

 

가례리(佳禮里)는 밀양시 무안면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으로

화봉리, 남쪽으로는 중산리와 웅동리, 북서쪽으로는 창녕군과 접하여 있다.

행정리동 명칭은 다례동리와 서가정리로 나누어지고, 자연부락으로는 서가정,

못안, 새터, 아치실로 나누어지는데, 서가정과 오작골은 서가정에, 못안, 새터,

아치실은 다례동에 각각 속하여 있다.

 

『밀주승람(密州勝覽)』에 의하면 서가정과 다례동을 합하여 ‘가례리’라 하였는데,

옛날 삼현이 나왔다고 하여 ‘서가정(西哥亭西佳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이웃 마을 서가정에서 삼현이 나왔다고 하여 ‘다례동(多禮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가례리 안쪽의 여러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손인갑(孫仁甲), 충효사(忠孝士)

손약해(孫若海), 정열부(貞烈婦)인 교수(敎授) 노개방(盧蓋邦)의 처 여주 이씨, 의승대장

(義僧大將) 사명당(泗溟堂) 임유정(任惟政), 지극한 효자로 표창된 매죽당(梅竹堂) 신동현

(申東顯) 등의 소거지(所居地)로 ‘삼강동(三綱洞)’이란 별칭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마침표를 향해 가는 삶의 유한성은 인간의 숙명이라 하지 않았던가.

​안달복달해도 우리는 결국 죽게 되는 운명 공동체인데,

그러니 끝을 알고 살아가는 우리 서로에게 惻隱之心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쉼터(14:28)

아무도 찾지않은 벤취에는 낙엽만 수북하다.

나라도 한번 앉아주고 싶지만 옷이 젖은 상태라

너무 찝찝하여 미안함을 느끼면서 그냥 지나친다

쉼터를 지나 미끄러운 나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니...

안부(14:32)

이정표( →영취산 1.4km, 옥천마을 4.8km, 구계마을 7.7km)가 서 있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노단이 마을이 창녕읍 옥천리였는데, 한참을

왔는데도 옥천리라...마을이 엄청 큰 모양이다

무명봉(14:34)

안부(14:35)

안부에서 2분정도 올라서니 643.8m라고

쓰여있는 산패가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643.8m봉(14:37)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법정스님

 

채우려고만 하는 생각을

일단 놓아 버리고

 

텅 비울 때

새로운 눈이 뜨이고

       밝은 귀가 열릴 수 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영역은

 

전체에서 볼 때

​존재의 실상을 인식하려면

눈에 보이는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육지를 바로 보려면

바다도 함께 보아야 하고

밝은 것을 보려면

어두운 것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643.8m봉을 지나 안전로프가 쳐있는 내리막으로 향한다

내리막을 내려오니 범여가 지루할까봐 옹기종기 모여앉은

바위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늘 산길은 정말 재미없는 산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다 그런거 아닌거 아니냐고 하면서...

네!...맞습니다.

천연돌 쉼터(14:50)

밋밋한 바위덩어리에다 멋진 이름표를 달아줬구나

천연돌 쉼터를 지나면서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난 일요일에 전화를 잘받지 않는 편인데 내가 모르는

전화라서 전화를 받으니, 지금 집에 불편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 평일에 집에 잘 없어서 전화를 했노라 하면서 좀

도와 달라고하는데, 서울에서 천리 먼 길에 왔는 내가 해줄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길을 걷다보니

등로 우측의 능선에 족보있는 625.5m봉을 놓치는 愚를 범한다.

 

다시 갔다가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아서 좀 찝찝하지만

625.5m봉을 띵가묵고 가는 길에 그리 맘이 편치는 않구나

옥천. 구계임도 갈림길(14:57)

트랙을 확인하니 우측 아래에 자동차가 다닐정도의

넓은 임도가 있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암봉(15:02)

암봉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사면길로

이어지는 편안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 정상에 있는

족보있는 632.5m봉 정상으로 향한다.

632.5m봉(15:10)

632.5m봉 정상을 찍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조금전에 헤어진 편안한 길을 다시 만나서 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오고...

안부(15:21)

안부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살짝 우측으로 이어지는 족보있는 642.2m봉으로 향한다

642.2m봉(15:23)

인생이란 즐거움은 잠깐이요,

괴로움이 더 많은 법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사실을 잘 안다.

승리는 원한을 가져오고, 패한 사람은

슬픔에 빠져 괴로워한다.

이기고 지는 일이 인생의 본질임을 아는

사람은 다툼 없이 마음을 평안히 한다.

 

건강은 가장 큰 은혜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신뢰는 가장 큰 벗이며, 열반은 가장 큰 기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숫타니파타 중에서

*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 경전(불경)인 숫타니파타.

숫타(Sutta)는 ’경전: 말의 묶음(經)',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을 말하므로,

숫타니파타는 팔리어로 '경전들의 모음'을 뜻하며, 상좌부의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도, 숫타니파타는 당당히 '경전들의 모음'이라고 이름이 붙어져 있다.

숫타니파타는 1장 사품(蛇品), 2장 소품(小品), 3장 대품(大品),

4장 의품(義品), 5장 피안도품(彼岸道品)의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헬기장(15:26)

올해 들어 내 주위의 지인들이 하나.둘씩 生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낀다.

누구나 한번왔다 한번 가는건 萬古不變의 법칙이긴 하나

그걸 지켜보는 범여의 맘은 그리 편치많은 않구나

임도(15:31)

안내도를 보니 오전에 지나온 심명고개에서 만난 임도와 연결되는 모양이다

임도에 내려서자마자 맥길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데, 내가 체력이 떨어진 걸

귀신같이 알아챈 산지킴이님의 격려문구가 힘을 실어준다

병봉(屏峰)갈림길(15:38)

우측으로 1.8km 떨어진 지점에 병봉이 있는데, 창녕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변봉(꼬깔봉)이라고 적혀 있다...이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지명인 듯 하나

지도에는 병봉이라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와 계성면 사리의 경계에 있는 병봉(屏峰:673.7m)은

영산의 앞산인 남산 가운데에 있는 절벽이다. 지명에서도 드러나듯 영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라는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지리지에서는 '병풍암(屏風巖)'으로

수록하고 있는데, "현의 남쪽 1리에 있으며, 작약산에서 이어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동지도』에서도 '병풍암'으로 수록하고 있어 있으며, 『여지도서』(영산)에서 작약산이

영취산의 줄기라고 하였는데, 지도에서 지명이 작약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에서

영취산~작약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임을 알 수 있다.

이정표가 있는 병봉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은

북쪽으로 향하는데, 늦은 오후가 되면서 산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이 올라오고, 옷이 비에 다 젖은 탓인지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무명봉(15:43)

고도차가 없는 능선을 가급적 빠르게 걷는다.

바람 탓이련가?...산 아래에서 차량소리가 심하게

들리기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도상에도 표기되지 않은

함양~울산간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굉음소리이다

 

이 고속도로는 함양을 기점으로 거창, 합천, 의령, 창녕, 밀양을

거친 다음에 울산으로 향하는데, 창녕에서 울산까지는 개통되어

차량들이 통행을 하고 있고, 함양에서 창녕까지는 미개통 구간이다.

 

이 고속도로는 시골의 우리집 뒷쪽의 터널로 통과하는 바람에 고향의

임야와 토지가 수용되었는데 그 바람에 고향의 주거환경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502m봉(15:56)

등산객을 기다리는 벤취 2개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지리원의 지도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무명봉이다

보름고개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구계임도 갈림길(15:58)

우측으로 등로는 전혀 보이지도 않는데 구계임도로

가는 길이라고 이정표는 되어있고, 맥길은 부곡온천

방향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비에젖은 낙엽으로 인해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엄청 미끄럽다.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스틱에 잔뜩 힘을 주었는데 갑자기 스틱의

잠금장치가 풀어지면서 쑥 들어가는 바람에 앞으로 된통 꼬꾸라지면서

보기 좋게 낙엽속에 쳐박힌다...늘 내려갈 때 조심하라 했거늘.

잠시 忘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된통 꼬부라졌다가 일어서니 맥길이 미안했던지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마루금상에 있는 봉우리중에

대장노릇을 하고 있는 종암산(宗岩山:546.6m)이

미안해 하는 모습을 한다...괜찮소이다...내가 잘못했는데... 

종암산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니 이정표가 서 있는 보름고개에 도착한다

보름고개(寶林峙:16:10)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와 밀양시 무안면 웅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옴팍패인 고개 정상에는 창녕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구계리로 내려가는

데크목 계단과 어느 맥꾼이 붙여논 보름고개라는 코팅지가 보인다

고개 우측으로는 옥천.구계 임도가 보인다.

 

영산면 구계리의 지명유래가 된 보름고개

창녕군 영산면에 위치한 구계리(九溪里)는 (구계, 보름, 寶林(보림)) 9개의 내(川)와

골짜기(谷)가 있어 구계리라 하였으며 이 골짜기에 보림사 등 9개의 절과 8개의

암자가 있어 보림이라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구계리로 개칭되었으며, 三災九難

(삼재구난)이 없는 곳이라 전해와 6.25 동란 때도 피난지였다고 한다

지금이 16시 10분이라 이곳에서 3km정도 떨어진 큰고개까지

산행을 해야하나 여기서 산행을 접어야 하나라고 많은 고민을 한다

아무리 느림보라고는 하나, 큰고개까지는 일몰 직전에 산행을

끝낼수가 있으나, 문제는 귀경하는 교통이 발목을 잡는다.

 

18시 30분에 창녕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여기서 산행을 접어야 맞고, 큰고개까지 산행을 종료하고

창녕터미널로 가서 대구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동대구로 간 다음에

고속버스나, 열차를 타게되면 너무 늦어서 내일 사무실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될 것 같다.

 

다음구간을 감안하며 내 체력으로는 당일날 내려와서 이곳에서 합수점까지

가려면 조금 벅차기는 하지만, 그건 차후 문제일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보름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구계임도로

이어지는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구계리 마을까지는 3.1km이나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 큰 걱정없이 부지런히 내려가야 할 듯 싶다

구계리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길 옆에는 고로쇠 나무들이 보인다

고로쇠 수액 채취에 한창이다

임도를 따라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九溪里)의 모습

구계리(九溪里)는 영취산 골짜기 안쪽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농촌 마을로

산지가 마을 삼면을 감싸고 있으며, 남쪽에는 구계저수지가 있다.

 

송사이들, 두둘들, 안두둘들, 안터들이 마을 남쪽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구계, 달바우 마을 등이 있다. 구계 마을은 개울이 9개가 있어

구계 마을이라 불리며, 달바우 마을은 달바우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가유산으로 시도유형문화유산 제327호 창녕보림사지부도(昌寧寶林寺址浮屠),

시도유형문화유산 제9호 영산구계리석조여래좌상(靈山九溪里石造如來座像),

시도유형문화유산 제69호 영산법화암다층석탑(靈山法華庵多層石塔)이 있다.

임도를 따라서 10분 정도 걷다가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는데, 이곳이 오지라 그런지는 몰라도 통화가 잘 되지

않는다...한참을 내려온 다음에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구계리로

좀 오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구계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덕암산(德岩山:545.3m)이 까칠한 모습을 하면서 산꾼을

겁박한다...청도(열왕)지맥은 등로는 아주 좋긴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게 만만하게 볼 지맥길은 아닌 듯 싶다.

봄이오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보림고개에서 거의 다 내려오니 처음으로 민가가 보인다(16:40)

택시기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연락이 없다.

한참을 더 내려와서 내촌마을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겨우 택시기사에 연락이 닿아

택시를 타고 창녕터미널로 향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17:35)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대합실 의자에 앉아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가방에 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창녕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창녕을 출발해 구마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현풍터미널에 들려서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는데 고속도로에는 생각보다

차량이 없어서 예정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