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대신 닭을 택했다가 개고생을 한 하루...?
☞ 산행일시: 2025년 07월 20일
☞ 산행날씨: 장마후의 무덥고 후덥지근한 흐린 날씨에 숨이 멈출듯한 높은 습도
☞ 산행거리: 도상거리 8.3km / 4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넓문이재- 안부- 갈림길- 구도현 봉수터- 순흥안공 묘- 갈림길- 안부삼거리
갈림길- 후곡고개- 기독교인 묘지?- 봉화산- 청주한공 묘- 성동고개- 안부
벽진이씨 공원묘- 갈림길- 농장?- 안부- 묘지- 214.2m봉 갈림길- 214.2m봉
다시 214.2m봉 갈림길- y자 갈림길- 무명묘지- 대왕산 길림길- 안부
무명봉- 십자 안부사거리- 무명봉- 안부- 무명묘지- 안부- 무명봉- 안부- 대왕산
안부- 무명봉- 월부령
☞ 소 재 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청통면
1주일 내내 내린 비로 인해서 남부지방은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로 인해 阿鼻叫喚이라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심란해진다...원래 계획은 강원도 삼척과 봉화, 울진에 걸쳐있는
지맥길을 하려고 했던 계획인데...어찌할까 고민을 한다...이곳에 걸쳐있는 지맥길은
워낙 오지라서 접근하기도 불편하지만, 탈출로만 보통 10여km나 되기에 해가 긴
요즘이 딱 제철인데, 이곳도 비가 계속 내린다고 하니, 나홀로 하는 산행인데다
이곳은 이곳은 G.P.S 작동이 안되는 곳이 많아서 아무래도 날씨가 좋을때 가기로
하고 다른 곳을 검색해보는데, 지난주까지 걸었던 광주지역도 엄청난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로 마음이 심란하다...난 구라청의 엉터리 예보로 인한 일기예보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한번 속아보는 셈치고 검색을 하니 그나마 대구쪽이 비도 좀 덜오고, 산행을
할 일요일에는 비는 오지않고 흐린 날씨라고 나온다.
그리하여 선택한 곳이 신녕 서(신산경표상:유봉)지맥이이다...이곳은 대구의 진산이라는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이 분기점으로 대구시내에서 접근성도 뛰어나고 여차하면 중탈지멱이
많기에 큰 무리가 없을듯 하고, 안되면 일요일이 백중기도 입재일이라 갓바위부처님이라도
알현할까 하고, 저녁에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새벽에 일어나 서울역가는 첫 버스를 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계속해서 비는 쉴새없이 내리니 마음이 심란하다...버스에서
대구지역의 날씨를 검색하는데 비는 오지않고 흐림이란다.
오늘은 일기예보가 틀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서울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예매한다

서울발 → 동대구행 열차표
비가와서 그런지 동대구로 향하는 열차는 텅텅 비어있는 상태이다.
열차는 광명역과 대전역만 정차하고 곧바로 동대구역으로 가는데
잠깐 조는 사이에 열차는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동대구역(07:00~30)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역 구내에 있는 식당에서 알밥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수태골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으로
향한다...30여분 걸려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나말고도 여러명이 차를 가지고
왔는데 팔공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입산통제라고 하면서 다들 되돌아 갈
준비를 하는데 난 서울서 왔는데 참으로 난감하네...통제 이유는 수태골에서
올라가는 길은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비가 온 뒤라 계곡물이 너무 많고, 급류에다
물살이 너무세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팔공산 케이블카(08:05)
하는 수 없이 타고왔던 택시를 타고 내려오는데, 좌측으로 케이블카
탑승장이 보이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될까 싶어서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탑승장으로 올라가보니 문은 굳게 잠겨있고, 언제부터
운행을 하는지, 안내조차 없으니 답답하다...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다시 터미널로 되돌아 간다

동대구 버스터미널(08:50)
새벽에 집을 나와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쑤셔야지, 칼집에
도로 집어 넣을수는 없잖은가...그래 2구간부터 먼저하자
생각하고 터미널로 들어가서 영천으로 가기로 한다

동대구발 → 영천행 버스표

09시 30분에 동대구에서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약간 흐린 날씨에 구름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이 장난이 아니구나.
하기사 대구란 곳이 더운 곳으로 소문난 곳이 아니던가...45분이
지난 시간에 버스는 영천터미널에 도착한다

영천터미널(10:15)

영천터미널 버스 시간표
초반부터 산행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김이 세긴 했지만 짧은 구간이라도
지맥길을 줄여놔야 다음에 좀 편할 것 같아서 서울가는 막차표를 예매해
놓고, 해우소에 들려 느긋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한 후에 택시 승차장으로
향한다

919번 도로에서 바라본 계지마을
택시를 타고 넓문이재로 가자고 하니까, 자기는 거기를 모른다고 한다.
또 난관에 부딪힌다...갑갑하구나...그래서 일단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로
가자고 하니까...부지런히 가더니만, 어느 마을 가운데에 도착하여
이곳이라고 하면서 내리라고 하는게 하는가...산행기에는 분명히 4차선
도로인데 시골마을 주택가에 내리라니...그래서 내려오면서 주마간산격으로
읽은 산행기에 금강조각원이란 걸 본 생각이 나서 이야기하니, 자기는 영천시내는
잘 아는데 면소재지는 잘 모른다면서 東問西答을 하는데 날씨는 더운데 미치겠더라...
20분 이상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넓문이 고개에 도착하는데, 아침부터 일정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꼬임의 현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계지마을(11:20)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에 속해있는 계지리(桂芝里)는 평지에 자리한 곳으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 상계동과 지동을 병합하면서 두 마을의
이름을 따 계지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널문이, 망지동, 계림, 평지마마을 등이 있다.
널문이마을은 계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신령군이 있을 때, 이곳이 하양현으로 통한 큰 길이어서
크고 넓은 관문을 달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망지동마을은 계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계림마을은 망지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 냇가에 숲이 많았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평지마을은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계지마을의 모습
계지마을은 영천시 신녕면과 청통면소재지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북쪽으로는 대구의 진산이라는 팔공산이 비가온 뒤라서 그런지
구름모자를 쓰고있는 탓에 흐릿하게 보이고 비는 그쳤지만 어제까지
내린 비의 영향으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地熱이 산행을 시작도 안한
산꾼의 氣를 꺽어버리는 느낌이다.

신호를 기다렸다가 도로를 건너서 산행을 준비한다

넓문이 고개(11:25)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고개였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청통면소재지에서 신녕면으로 이어지는 919번의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어서 고개라는 느낌은 전혀없고, 도롯가에는
아담한 카페 하나와 금강조각원이라는 석재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청통면 계지리에 있는 자연마을중에 한 곳이 넓문이 마을
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불렀으며, 넓문이 마을은 계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이곳이 예전에 신령군에 속해 있을 때, 이곳이 하양현으로 통하는 큰 길이어서
크고 넓은 관문을 달았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지맥길 가운데에 버티고 있는 금강조각원 석재공장

산행을 시작하다(11:30)

금강조각원 석재공장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곳이 공동묘지인 모양이다...망자들의 명패들이
붙어있는 묘지들이 보이는데, 오늘 대구지방은
폭염경보가 발효중이라는데 한창 더울때라서 그런지
亡者들도 힘이드는 모양이다

공동묘지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데 트랙상으로는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꾸준히 트랙을 확인하면서 고도를 높힌다

공동묘지 끄트머리에서 마루금에 복귀하고 바람한 점 없는 날씨에
울매나 더운지 산행을 시작한 지 10분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옷은
벌써 다 젖어버린듯 하고, 고도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몸뚱아리에서
나는 땀냄새를 맡고, 달라드는 깔다구와 산모기의 공격에 벌써부터
苦行이 시작된다... 그래!...내 肉身을 뜯어먹어 니네들에게 德이
되면 내가 힘이 들더라도 기어코 布施하마.

묘지를 벗어나자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지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안면있는 시그널들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숲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는 지맥길치고는 아주 양호한
범생(모범생)이 스타일이다...습도가 아주 많은 날씨이건만
그래도 숲속으로 들어서니 숨쉬기가 조금은 나은듯 하다

십수년째 주말마다 도지는 산에 대한 범여의 짝사랑?
늘 힘들어 하면서도 휴일에 베낭을 메고 나서니...
이 정도면 짝사람이 아니라 스토커 수준이겠지.
자꾸만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니 지맥을 마무리
하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이랄까...힘이 들지만 그래도
산에만 들어서면 난 이렇게 좋을걸 어쩌나...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안부(11:42)

등로에서 만난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의 흔적.
내가 아는 산꾼중에서 최상급에 해당되니 나로서는
감히 범접조차 하기 힘든 친구이다...산에대한 해박한
지식...이론과 체력을 겸비한 방장님이 너무도 부럽소이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만나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옷은 벌써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고, 시커먼 산모기들의
등쌀에 도저히 베겨낼 재간이 없어서 베낭속의 해충기피제를
옷과 베낭에 뿌려보지만, 이 넘들의 공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구나

갈림길(11:45)

뚜렸한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우측을 가리키지만 난 좌측의 능선으로 향한다

등로는 보이 않고...

지맥길이 이 정도면 양반이제...

무대포로 능선을 치고 올라서니 반바지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푹꺼진 곳에
검은 오석으로 된 구도현 봉수터(仇吐峴烽燧址)라는 표시석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사면길로 갔더라면 귀중한 이곳을 놓칠뻔 했다

구도현 봉수터(仇吐峴烽燧址:195m:11:49)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북쪽 산봉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인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으로 봉수제는 고대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이후 조선 세종 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인 운영을 하였고,
조선 시대 봉수제는 노선 상으로 기간 봉수인 직봉(直烽)과 보조 봉수인
간봉(間烽)으로 구별하거나, 봉수대의 설치 지역과 기능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연변봉수(沿邊烽燧)로 나눈다.
경봉수는 조선 시대 전국의 봉수가 집결하였던 봉수로 서울 남산의 목멱산봉수를 이르며,
연변봉수는 지방의 해안 및 변경지역의 최 일선에 설치되었던 봉수였으며, 내지봉수는
내륙 각지에 설치되어 서울의 경봉수와 변경의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던
중간봉수로 조선 시대에는 주로 복리봉수(腹裏烽燧)로 불렀으며, 구토현 봉수(仇吐峴烽燧)는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북편의 해발 195m인 야산 정상에 있는데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지형상 신녕천에 면하여 절벽으로 형성된 북쪽을 제외한 3면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고
있으며, 구토현 봉수가 처음 축조된 시기는 조선 후기이며, 봉수노선과 성격상 부산 다대포진
응봉 봉수(鷹峰烽燧)에서 초기(初起)하여 서울 목멱산(木覓山:지금의 남산] 봉수로 전달되던
제2로 직봉노선의 내지봉수로 조선 후기에 신설된 후 대응봉수와 노선의 변동 없이 일관성을
유지했는데, 남쪽 청통면 신덕리 소재의 성산 봉수(城烽山燧)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북쪽
신녕면 부산리의 여음현 봉수(餘音峴烽燧)로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구토현 봉수가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조선 후기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이며, 이후의 각종 지지서(地誌書)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고 따라서 조선 후기 새롭게 신설되었고, 1894년(고종 31) 전국
봉수제도가 철폐되면서 폐지되었으나 봉수 명칭은 대다수 지지서에 구토현 봉수
(仇吐峴烽燧)로 기록되어 있으나 1895년에 발간된 『영남읍지(嶺南邑誌)』에
구도현 봉수(九道峴烽燧)라는 명칭도 보인다.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에는 통상적으로 연조(煙竈)·방호벽·봉수군 주거·고사(庫舍) 등
봉수군이 주어진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시설이 갖추어졌으며,
야산 정상부에 있는 구토현 봉수는 영천 지역의 봉수 중 유지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방호벽을 통해 본 봉수대의 평면 형태는 장축이 동서방향이고 단벽과 장벽이 이어지는
부분은 모를 죽여 둥글게 마감한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이며 전체 둘레는 75m 정도이며,
출입구는 개방식 형태로 서쪽 방호벽을 폭 3.7m가량 절개하여 1개소에 시설하였으며,
방호벽은 남쪽을 제외한 3면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남쪽은 대부분 망실되었으나 봉수대
운영 당시에는 4면을 모두 토석혼축으로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방호벽의 잔존 높이는 약 1.5~2.5m이며 잔존 폭은 0.8~1.2m 정도이며, 방호벽의 구조는
작은 할석과 흙을 섞어 협축으로 축조하였으며 봉수 내부는 북고남저형(北高南低型)의
경사지를 이루며 거화시설인 연조는 북동쪽 방호벽에 붙여 설치하였으나 대부분 붕괴되어
정확한 구조는 파악할 수 없다.

구토현봉수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에 반바지님이 길을 안내하고...

시그널로 봐서는 반바지님의 동료인 듯한 산본리님의
시그늘을 만나 조금전에 헤어진 우측 등로에 합류한 다음에...

숲을 벗어나니 아카시아와 개망초에 묻혀버린 순흥안공
묘지가 나오는데 내리쪼는 햇볕이 장난이 아니고, 땅에서
올라오는 습도로 인해 숨이 멎을것만 같은 느낌이다

순흥안공 묘(11:52)

다시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좌측 윗쪽이 마루금인듯 한데 오룩스맵에서는 사면길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로 안내를 하니 그저 고마울뿐이다.
속된말로 말하면 울고 싶은데 빰맞은 꼴이랄까...

갈림길(12:00)
더운 날씨에다 여름이라 등로 주위는 綠陰으로 뒤덮혀 있고,
야생화도 없으니 산행기 쓸 끈덕지가 없고 등로도 고도차가
거의 없으니 편안하게 길을 걷지만, 산모기와 깔다구의 무자비한
공격과 땅에서 올라오는 습도가 숨이 멎을것만 같아 정말 힘이든다
내가 언제 산행을 하면서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편하게 걸어본 맥길이
과연 몇번이나 되었던가...보왕삼매론의 명구절을 되새기며 맥길을 이어간다

處世不求無難(처세불구무난)
世無難則驕奢必起(세무난즉교사필기)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중 2번째 구절에서
*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은 불교에서 수행 중
나타나는 10가지 장애를 이기는 수행법으로
1,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2, 세상살이에 곤란없기를 바라지 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의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4,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10, 억울함을 당에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등로에서 간간히 만나는 개복숭아...

안부삼거리(12:02)

좌측의 희미한 등로로 들어서니 무영객님께서
길을 안내한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갈림길(12:04)
등로는 생각보다 좋은 편이나 갈림길이 너무 자주
튀어 나와서 트랙에서 눈을 뗄수가 없구나...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legend의 흔적
이곳이 나와바리 구역이신데, 너무 잘아는 길이라서
시그널을 많이 걸지 않으셨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벌통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니...

우림농장이라는 꽤나 규모가 큰 축사가 나오고...

행여 쥔장이 있을까봐 조심스레 축사를 빠져 나오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후곡고개이다

후곡고개(後谷峴:12:08)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의 자연마을중에 하나인 후곡(後谷)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혀진 지명으로 뒷골 또는 後谷, 혹은 城里이라고 하는 마을은
望芝里 뒤쪽에 있다 해서 붙인 이름이며 예로부터 人類가 정착했던
곳이라는 마을이다.

고개 앞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개를 사육하는지
이방인을 보고는 개쉬키들이 쥔장에게 밥값을
하느라고 난리부스다.

시끄러운 개쉬끼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백두사랑 산악회의 흔적을 보면서 후곡고개에서 올라서니...

등로는 사라지고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오름길의 우측으로 향한다.

우측 아래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를 만나고...

잠깐 사이에 편안한 길을 만난다

기독교인 묘지?(12:22)

기독교인들의 묘지인가?...묘비마다 십자가가 있다.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면서
서서히 지맥길의 본색을 드러내지만 지맥길이 이정도면 양반이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길을 찾아 내려서는데, 나하고 뭔 악감정이
있는지 몸뚱아리를 물어대는 산모기의 등쌀에 참으로 고역이다

묘지를 내려서면서 갑자기 나타나는 멋진 주택과 물탱크가
등로 좌측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깜짝 놀랬잖아...

등로는 사라지고 트랙을 확인하니 전원주택의
녹슨 철조망 옆으로 맥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철조망 사이로 비집고 내려서는 일도 고역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지...말타면 종부리고
싶다고 했다고 했던가...오늘 산행길이 수월하다고
우습게 생각했다가 이런 길쯤 만났다고 투덜되니...

힘들게 철조망을 헤치고 내려서니 전원주택 입구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서서 청통면 계지리 무연골 마을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무연골(舞燕谷)마을은 양무생(楊武生)이라는 선비가
약 300여년전에 이 마을을 개척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의 자연부락중에 하나인 망지리(望芝里)는 약 500년전에
이현중(李玄重)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 하며 그후 이현필(李玄弼)이라는
선비가 ‘ 봉화산(峰火山)을 바라본다 ’ 는 뜻에서 망지리(望芝里)라 했다고 한다.

우측에 망지리 마을을 두고 좌측으로 꺽어져 넓은 공터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공터 우측에 조그만 과수원과 텃밭이 있고 능선을 치고 오른다

비온뒤의 높은 습도는 기저환자인 범여를 엄청나게
괴롭히지만 산에 대한 열정마저 멈추지는 못한다

無病最利(무병최리)
세상에 병 없는 것이 가장 큰 은혜요
知足最富(지족최부)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네
厚爲最友(후위최우)
친구 중에 제일은 믿음이란 벗이요
泥源最樂(이원최락)
즐거움의 제일은 고요한 열반이네
법구경중에서

반갑습니다.

빗물을 머금고 있는 가늘고 못생긴 소나무에서
뿜어대는 솔향의 상쾌한 기운을 느끼며 올라서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봉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봉화산(峰火山:163.7m:12:45)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성동(城里)마을과 무연골(舞燕谷) 사이에 있는
산으로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때 봉화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주변을
둘러봐도 봉화에 관련된 그 어느것도 보이지 않는다

봉화산 정상에 뭉태기로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봉화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잡초에 묻혀버린 묘지가 나오고, 등로는 사라졌다.

이리저리 들쑤셔봐도 등로가 보이지 않는데
우연찮게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길을 안내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의 흔적 아래로
내려서니 청주한공의 묘지가 보이는구나

청주한공 묘(12:47)

청주한공 묘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잡풀들의 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망자들의 천년주택 조경은 잡풀인가?
개망초를 비롯한 잡풀들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내려서는데...

갑자기 나타난 산딸기의 군락지...앞이 캄캄하다.
산행 일정이 바뀌면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지도
못하고, 오직 오룩스맵의 트랙하나만 믿고 왔는데
이곳을 어케 빠져나가야 한단 말인가...

이리가도 저리가도 빠져나갈 틈은 안보이고 점점 산딸기 군락지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몸뚱아리가 산딸기 가시로 인해
생채기를 내면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길은 안보인다

마루금 트랙을 한참 벗어나 농장의 울타리를 따라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이곳을 빠져나가는데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구먼...

이곳에서도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개구멍(?)을 발견하고 천신만고끝에 탈출을 한다

꽤나 큰 규모의 농장마당을 통과하는데
다행이 인적은 보이지 않아 무사히 농장 정문으로 향한다

우측의 파란 양철 울타리가 지맥 마루금이다.
1~2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20여분의 사투끝에
빠져 나온 셈이다...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좌측 담벼락을 넘어 농장을 빠져 나온다

농장 정문을 통과하는데 갑자기 경고방송이 나온다
이곳은 전염병의 우려로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니
출입을 하지 말라는...마치 군부대 철조망을 통과할 때 처럼...
다행히 정문 입구에 있는 주택에는 사람이 없어 무사히
통과했다.

성동고개(城東峴:13:05)
영천군 청통면 계지리 성동마을에서 용천리로 향하는 능선에
있는 고개로 조금전에 탈출한 농장옆에는 건설기계를 야적한
곳이 보인다...성동마을이란 지명은 뒷골(후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성동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성동고개 서쪽으로 향하는 길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보이기에
거기다가 머리를 쳐박고 샤워하듯 물줄기로 옷을 적신 다음에
좌측의 시멘트 농로로 올라간다.

휴식(13:10~40)
농장을 빠져 나오는라 워낙 힘이 들었던 탓일까.
다리가 풀려 버렸는지 걸아갈 자신이 없다.
이곳에 베낭을 내려놓고, 베낭을 베개삼아 3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가지고 온 식혜 한병을 원샷한 후에
약간의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시멘트 농로를 올라서니 텃밭의 쉼터가 보이고...

텃밭의 우측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향한다

안부(13:46)

벽진이씨 공원묘(13:47)

갈림길(13:49)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자꾸만 다리가 풀리면서
산행을 포기하고픈 생각이 간절하지만 마땅한 탈출로가
보이지 않는구나.

U자형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직진으로 향하는데...

도로옆의 옹벽, 그리고 녹슨 철조망...예전에
농장이었는데 타산이 맞지않아 사업을 접었는지
마치 廢家처럼 흉물스럽기만 하다

농장?(13:53)
그래도 아직까지 도로명 주소는 유효한 모양이다

지맥길은 농장 안으로 들어가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쪽이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이곳에서 우회를 한다

선답자들의 흔적을 보면서 잡목을 헤치고 남동쪽으로 향한다

금새 뚜렸한 맥길을 만나서 남쪽으로 향한다

안부(13:58)

묘지(14:01)

하기사 오늘이 초복이고 이틀후면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가 아닌가..
묘지에서 우측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가장 덥다는
오후 2시대라서 그런지 습하고 더운 날씨가 몸뚱아리가
성치못한 범여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하다...참기 힘든
고통이 계속된다

그래도 가는데 까지 가봐야지...

214.2m봉 갈림길(14:10)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두고 100여m좌측에
삼각점이 있는 214.2m봉으로 향한다

오르막길에 또다시 산모기의 이지매가
시작되는지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다

214.2m봉(14:14)

지도상에는 분명히 삼각점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스틱으로
이곳저곳을 들쑤셔도 삼각점은 보이지 않고, 결국
삼각점 수색에 실패하고 왔던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214.2m봉 갈림길(14:18)

호젓하게 홀로 걸으면 斷想에 빠진다.
고독이라는 것도 꼭꼭 씹으면서...
홀로 산에 다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인간이란 존재는 엄니 뱃속을 나오면서 부터
위험한 사바세계에 노출되어 있으니 그건 당연한
이치이고,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 왔으니 혼자
산길을 걷는게 지극히 당연한 거 아닌가...

y자 갈림길(14:23)
좌측으로 청통면 보성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통나무로
만든 쉼터의자들이 보이는데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바람은 뭔 꼬라지가 놨는지 꼼짝도 안하니
무더운 날씨에 높은 습도, 산행이 아니라, 사우나탕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무명묘지(14:27)
亡者도 무더위에 지쳤나보다...힘들어 보이는게 역력하다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대왕산 길림길(14:31)
오늘 지맥길에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다.
이 지맥길에는 봉화산이란 지명을 가진 산이 3개나 있고,
대왕산이란 지명을 가진 산도 2개나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꽤나 벗어나 있는 대왕산(174.8m)이 있지만
거기까지 갔다오고 싶은 마음은 없다...지맥길에 충실하자.

맥길은 직진 능선으로 올라가야 맞을듯 싶은데
지쳐서 힘들어하는 범여를 배려함인가?

오룩스맵의 트랙을 보니 직진이 아니라
우측의 편안한 사면길로 인도한다

안부(14:35)

오늘 산길은 참으로 공평한 듯 하다
고도도 낮고 길이 좋아서 지맥길 한 구간을
그냥 양넘 지갑줏던 털도 안뽑고 먹을줄 알았는데,
산꾼의 숨길조차 멈추게 할것 같은(?) 습도에다
폭염경보가 발효된 살인적인 무더위...거기다가
불청객인 산모기와 깔다구, 진드기의 융단 폭격에
밸런스를 맞추니 참으로 공평하지 아니한가...

무명봉(14:40)

십자 안부사거리(14:44)

십자 안부사거리에서 올라선 다음에 맥길은 다시 좌측으로 이어진다

시들은 꽃은 또 피지만
한번 꺽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
병없이 사는 것이 제일가는 이익이요
만족할 줄 아는것이 제일가는 부자이며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무명봉(14:47)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후손들의 발길이 닿지않은 듯한
유인남양홍씨의 천년주택이 풀섶에 묻혀있다.

안부로 내려서는 길...영천의 햇볕한번 참으로 따갑다

안부(14:48)
우측의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묘지(14:55)

무명묘지에서 맥길은 90도 좌측으로 꺽어지고
또다른 무명묘지를 지난 다음에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4:58)

안부를 지나면서 맥길은 완만한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을
나침판 삼아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한다

무명봉(15:07)

무명봉 아래로 내려서니 생전에 부부인듯한 무명묘지가 쌍봉이
나오고 살짝 우측으로 갔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안부로 향한다

안부(15:10)
아!...덥다

안부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임도 윗쪽으로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외벽에 (주)킹센터 한국지사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데 육안으로는
뚜렸이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인식이 안되는구나

안부를 지나 살짝 우측으로 향했다가 올라서니 대왕산 정상이 나온다

대왕산(大王山:166.1m:15:17)
영천시 청통면 신학리와 보성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잡목이
무성하고 주위 조망도 없는 대왕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산 좌측에 있는 보성리(甫城里)의 유래에서
대왕산의 기록이 살짝 보인다...그 기록을 보면 보성리는 봉화산과 삼모산 아래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농촌마을로 대왕산(大王山)의 동남쪽으로는
구릉 야산이 형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거적제(巨積堤)에서 발원한 소하천과
합류되어 목성 앞을 흐르며, 마을 주위는 구릉 야산과 밭이 많다는 내용이다.

대왕산 정상에서 맥길은 4시 방향으로 이어진다

뫳돼지의 목간통이 나오는데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물은 만땅이다

안부(15:20)

안부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반가운 부뜰이님의 흔적을 만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기고
조건이 갖춰지면 일은 자연히 성사된다.
때가 아닌데 억지로 하려 든다면
이길수도 없고, 인생은 덩달아 피곤해진다.
세상을 보고 싶은대로 보는 사람은
세상이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무명봉(15:27)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월부령이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월부령으로 내려서는 길에, 헐!~~~ 이게 누구신가?
김해의 홍길동 아우의 반가운 흔적을 만난다.
14~5년전에 계룡산에서 금남정맥을 하면서 만났으니
나를 기억 못할수도 있을 것 같구나...저 산꾼도 나처럼
독립군인 멋진 산꾼이었는데, 몇년전에 김해에 사는
잘 아는 산꾼들에게 소식을 들었는데, 창녕으로 이사를 하고
산행을 안한다는 소식이 들리던데...어디서 살면 어떠리,
부디 건강만 하이소...

水路로 내려선 후에 옹벽 아래의 월부령으로 내려선다

월부령(月浮嶺:15:30)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와 신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909번 2차선 도로가
지나가 정상에는 월부령(月浮嶺)이란 팻말이 보이고, 고개 좌측으로는
(주)유제이테크라는 공장이 보인다.
달부내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월부령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한문을 직역하면 ‘ 달이 뜨는 고개 ’ 라는 뜻이 정확할 듯 싶다

월부령이 통과하는 영천시 청통면(淸通面)은 영천시의 서북쪽과
팔공산의 동부 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팔공산 동쪽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인 신학천과 청통천의 맑은 물줄기가 합류하여 면(面)의 중심지를
관통한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달이 뜨는 고개라는 월부령이 있다면 구름이 떠다닌다는 운부령(雲浮靈)도 있다
청통면에는 유명한 절집이 참으로 많은데, 운부령 자락에는 불도량(佛道場)
고시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운부암이 있고,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도 이곳 청통면에 소재하고 있다.
은해사는 수미단(須彌壇)을 모신 백흥암,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거조암,
청동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운부암, 김유신 장군이 무예를 연마했다는
중앙암(속칭:돌구무절) 등 국보급 보물과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절집이고,
은해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갓바위부처로 유명한 선본사도 있다.

지금 시간이 15시 30분...예매해둔 버스표가 18시 50분이니 마음먹고
산행을 한다면 3시간 정도 더 할수가 있을것 갔지만, 오늘같은 무더위에
산행을 더 이어간다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일것 같아, 이곳의 도로옆에
누워버린다...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차후의 일정은 모르겠고, 공장옆
도롯가에서 드러누어 20분이상 휴식을 취하니 좀 살것만 같다.
정신을 차리고 2시간정도 산행을 더할까 생각을 하다가 산행을 종료하고
지나간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시작한다...이곳은 생각보다
교통량이 상당히 많고 특이한 점은 트럭이 많이 다니는 편이다.
앵벌이를 시작한 지 5분만에 트럭 한대가 서더니 타라고 한다.
영천을 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니 군말없이 태워준다.
가는 길에 혹시 목욕탕이 있으면 씻을 수 있게 세워달라고 하니
자기가 가는길에 괜찮은 사우나가 있다고 하면서 사우나 입구에
세워주고는 그냥 가는데, 행여 미안하여 기름값이라도 주려고 하니
자기도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서 조심해서 가라고 하면서 휭하니 가버린다
감사합니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광천온천랜드(16:10~17:40)
목욕탕에 들려서 샤워를 마친후에 냉탕에 들어가서 1시간 이상을
앉아 있는데도 몸뚱아리의 熱을 내려갈 기미조차 안보인다.
그렇다고 무작정 목욕탕에 있을수만 없어서 목욕탕을 나와서
영천 1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한다

영천터미널(18:00)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도 서울가는 버스 시간이 50분이나
남아 있기에 터미널 옆에있는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는데, 헐~~~밥값이 장난이 아니구먼...메뉴 자체가
대부분 2인분 이상이라야 주문이 가능하고, 1인분 짜리는
육회비빔밥 밖에 없는데, 가격이 19,000이란다...돈이 없어
걸어다니는 산꾼의 호주머니로는 부답스럽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영천발 → 서울행 버스표

18시 50분에 영천을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평소처럼 잠을 청하는데
몸뚱이에서 나오는 熱 때문인지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다.
버스는 문경을 벗어나, 충주, 이천으로 향하는데 수도권에 들어서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더니만 서울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참으로
힘들게 짧은 한 구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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