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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신녕 서(유봉)지맥(진행중)

신녕 서(유봉)지맥 제1구간 - 팔공산(비로봉)에서 무명봉까지

by 범여(梵如) 2025. 8. 4.

極樂淨土와 無間地獄은 종이한장 차이더라

 

☞ 산행일시: 2025년 07월 27일

☞ 산행날씨: 맑고 청명한 날씨..오전에는 산행하기 좋았으나 오후에는 개죽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2km+들머리 1.5km / 9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주차장-하늘정원- TBC(대구방송) 후문- 장군메기 -팔공산 비로봉(분기점)

                    다시 장군메기- 서봉 갈림길- 안부- 수도사 갈림길-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팔공산 동봉- 안부- 1,120.4m봉- 조망바위- 안부- 1,190m봉- 암봉

                    데크목 광장- 조망바위- 염불암 갈림길- 안부- 염불봉- 조망바위- 2층 팔각정

                    안부- 동화사 갈림길- 암봉- 도마재- 신령봉- 안부- 안부- 990.3m봉- 안부

                    무명봉- 984.6m봉- 무명봉- 갈림길- 안부- 무명봉- 안부- 갈림길- 무명봉

                    암봉- 무명봉- 부귀사 갈림길- 561.4m봉- 갈림길- 483m봉- 안부

                    신원리캠핑장 갈림길- 339.2m봉- 농장 도로- 무명봉- 용란마을

☞ 소  재 지: 대구 광역시 동구. 군위군 부계면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청통면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한반도 전체가 커다란 사우나로 변한 느낌이랄까.

이런때는 산행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할까도 생각을 하지만, 주말마다

나를 가만두지 않는  그 넘의 역마살...어떡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대중교통이

아닌 차를 가지고가서 들머리에 세워놓고 이른 시간부터 산행을 한 다음에

오후가 되기전에 산행을 끝내면 날씨도 좀 덜 더울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지난주에 1구간에 들어섰다가 입산금지로 인해서 2구간부터 산행을

시작한 신녕 서(신산경표상:유봉)지맥 1구간의 계획을 잡는다

 

신녕 서 지맥의 분기점인 팔공산 비로봉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一長一短이 너무 뚜렸하다.

 

1, 대구쪽인 동화사나 수태골로 오르면 산행후에 영천에서 대구로 와서 차량회수가

   용이하나, 접근하는 거리가 길어서 내 걸음으로는 최소한 2시간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단점이다.

2, 의성군 부계면쪽에 새로 생긴 팔공산 하늘정원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는데

   하늘정원 주차장에서 비로봉까지는 거리도 1.5km정도 밖에 되지않고, 데크목

  계단으로 되어있어 접근하기는 용이하나 산행이 끝나고 차량을 회수하려면

  영천에서 이곳까지 40km이상의 거리라 상당히 고민스럽다.

 

그러던 중에 15여년전에 백두대간을 같이했던 후배중의 한 친구가 대구에 있는데

이 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니 일언지하에 OK한다.

당연히 영천에서 하늘정원까지 모시겠단다...이 친구는 요즘도 내 블로그에

열심히 들락날락 거리지만, 지금은 산행의 거의하지 않고, 골프에 미쳐있다

신녕 서(유봉)지맥 개념도

 

신녕 서(유봉)지맥은

팔공지맥의 팔공산 비로봉(△1192.9m) 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하여 동봉(x1167m),

염불봉(x1042m), 신녕봉(x997m), 봉화산(x163.7m), 성동고개, 대왕산(x166.1m),

월부령, 봉화산(△291.1m), 우천고개, 봉화산(△276.8m), 고수고개, 유봉산(x245.2m)을

지나 영천시 오수동 신녕천/금호강 합수점에서 신녕(신산경표상:기룡)지맥을 마주보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3.7km 되는 산줄기로 신녕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신녕 서지맥이라 부른다.

 

 

◆ 구간거리

팔공산 비로봉~3.1~관봉갈림길~8.2~구디티고개~4.5~봉화산~2.0~대왕산~1.7~

월부령~4.1~우천고개~3.1~사일온천~3.7~봉화산~1.6~땅고개~0.7~유봉산~1.0~

신녕천/금호강하수점 / 33.7km

 

◆ 종주에 필요한 지도

1/50000 : 영천. 화북. 군위 (3매)

신녕 서(유봉)지맥 고도표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팔공산 하늘정원 주차장(02:40)

밤 11시간 정도에 집을 나와서 팔공산 하늘정원 주차장으로 향한다.

야심한 밤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한가하고, 평소에 골프장 라운딩을

갈 때 자주 이용했던 길을 따라서 집에서 서여주I.C까지는 국도로

가다가 서여주I.C에서 고속도로에 들어선 다음에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가다가 낙동J,C에서 상주~영천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동군위I.C를

빠져나와 한참을 달린끝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새벽 2시 40분...집에서

출발하여 한번도 안쉬고 논스톱으로 왔는데 3시30분정도 걸렸다.

 

아직까지 날이 밝으려면 2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4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휴식을 취한다...저 아래 동네는 더워서 죽겠다고 야단법석인데

이곳은 바람도 꽤불고,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약간의 추위를 느낄정도이고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3시간 30분간의 논스톱 운전을 한 탓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금방 잠에  빠지고, 알람소리에 깨어 났으니 꼴맛같은 쪽잠을 잔 셈이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는데 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寒氣를

느낄 정도의 추위다

산행을 시작하다(05:00)

2013년 7월 8일에 팔공기맥 4구간을 하면서 이곳을 지나갔으니 12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거늘...와 이리 세월이 빠른지...

예전에는 이곳이 아닌 공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돌고 돌면서 참으로 개고생을

한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아직까지 완전한 어둠이 걷히지 않아서

오랫만에 헤드렌턴을 장착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르던 길을 뒤돌아 본다...군위읍내가 보이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꺼지고 大地는 기지개를 켜면서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한다

주차장 좌측의 공군부대가 아닌 우측의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완만한 능선으로 오르는데 서서히 여명이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하늘정원까지 0.5km의 거리.

완만한 코스에다 데크목 계단으로 되어있어 참으로 편하게

올라오는데, 초반에 버벅거리는 나로서는 오늘 이 코스를

선택한게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고...그야말로 신의 한수이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10분만에 하늘정원에 올라서니 가장 먼저 범여를

반겨주는 건 멋진 2층 팔각정인데, 특이한 점은 동쪽으로는 한옥 문짝을

달았는데 아마도 맞은편에 있는 공군부대의 보안을 고려한 듯 하다

팔공산 하늘정원(05:10)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의 팔공산 정상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늘정원은 6,000㎡의 넓은 공간에 다양한 쉼터를 조성해,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주변에 오도암, 비로봉, 동봉, 서봉 등 팔공산 봉우리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팔공산 정상 순례길의 출발지와 종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가을에는 순환도로를 따라 단풍길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이

넘쳐나며, 다양한 등산로를 따라 사계절 산행을 즐기기도 하는 곳이다

하늘공원에 조성된 삼국유사 조형물

삼국유사(事)를 저술한 일연선사(一然禪師:1206~1289)께서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 주석하고 계셨기에 군위의 상징으로 이 조형물을 설치한 모양이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산(華山)에 있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인각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의흥현」조에는 인각사지의 유래를 “인각사는 화산에 있으며,

동구에 바위 벼랑이 우뚝한데, 옛말에 기린이 이 벼랑에 뿔을 걸었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연선사께서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인각사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던 절집이다.

* 삼국유사(事)란

  고려 시대의 역사서중엔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저술한 《삼국사기: 三國史記 》

  에는 유교적 역사관이 나타나 있고, 일연선사(一然禪師 가 저술한《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 인종 때 김부식 등이 기전체(紀傳體:역사 기술과 편찬 체제의 하나로

 역사적 인물의 전기(傳記) 이어 감으로써  시대의 역사를 구성하는 기술 방법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기준으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로 1145년 왕명에

 의해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하기 시작함. 본기, 열전, 제도, 연표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로

 서술하였으며 김부식과 여러 사관이 함께 편찬하여 정사(正史)라고 하며, 주관적 입장에서

 신라 위주의 역사 서술을 하여 비판받고 있으며, 유교적 역사관에 입각해서 서술하였다.

 

 반면에 일연선사가 저술한 삼국유사는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로 총 5권 2책이며, 권의 구분과는 별도로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

 감통·피은·효선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분류한 자유롭고 독특한 형식의 역사서이다.

 

 유교적 역사인식과 서술태도와는 다르게 신이한 역사 이야기와 그 전거(典據: 말이나 글

 따위의 근거가 되는 문헌상의 출처)를 밝히고 고대  사료의 원형을 전달함으로써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며, 한국 고대어 연구와

불교미술 연구를 위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하늘공원과 공군부대가 공존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정상 비로봉의 모습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 보인다.

하늘공원을 전세(?)내어 走馬看山격으로 둘러본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군부대 철조망 옆으로 조성된 데크목 둘레길...군부대 철조망을

통과하면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늘 공포감을 느꼈는데 오늘은

참으로 편하게 지나간다

공군부대 후문을 지나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

오늘 일출시간이 05시 25분으로 나오는데 지금이 05시 32분...

지금 일출이 시작된 것 같은데 이곳이 옴팍한 안부라 햇빛은 볼 수 없다

TBC(대구방송) 후문(05:35)

난 요즘 방송이란 걸 잘 보지 않은 편이라 관심 자체가 없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公器여야 할 방송국들이 공공성이라곤

엿바꿔 먹었는지 찾을수도 없고, 자기 입맛에 맞는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꼴이 싫어도 너무 싫다...왜 이 나라는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처럼 권력의 눈치 안보고

방송을 할 수 없을까...방송국 중계탑을 지나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이 글은 TBC에 관련된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셔...

서울사는 넘이라 TBC방송을 한번도 보지 못했고, 볼일도 없으니...

가던 길을 뒤돌아 보니 방송국 중계탑 너머로 해는 벌써

많이 올라와 버렸지만, 얼마만에 보는 일출이냐?

장군메기(1128m:05:38)

헬기장과 kt 중계소가 있고, 좌측으로는 비박장소 최적인 데크목

광장에 비박꾼의 텐트 한동이 범여를 한없이 부럽게 만드는구나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서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이 지역 사람들은 장군메기재라고 부른다

 

또한 근처 북사면의 백학마을 사람들은 '생부처메기'라 불렀지만, 남사면 사람들은

'장군메기'라 불렀고 생부처메기는 그곳에 높다랗게 서 있는 석불상에 인연한

이름이고 장군메기라는 호칭에는 이곳 봉우리를 '장군봉'이라 부르던 지역민들의

기억이 깔려 있는 듯 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0.3km 정도 떨어져 있는 비로봉으로

향한다

비로봉 가는길에...

팔공산 제천단(八公山 祭天壇)을 만난다

팔공산 제천단은 나지막하게 자연석을 원형으로 쌓아올린 형태로 선돌 모양의

신위석 2개와 남근공물(男根供物)을 함께 갖춰 치성을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제천단은 산천에 제사를 지내던 모습을 알 수 있는 장소이나, 그렇지만 최근 동봉

표지조사에서 제사관련 유물과 유적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팔공산 비로봉

제천단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던 장소였는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3개 산에 큰 제사(대사:大祀)를 올리고 5악(五岳)에는 중간급

제사(중사:中祀)를 지냈는데, 중사가 올려진 산은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태백산, 중앙에 있는 팔공산이다. 팔공산에서 지낸 제사가

천신(天神)에 올리던 것인지 산신(山神)에 드리던 제사인지 불명확하고, 팔공산

어디에서 제사가 행해진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팔공산 밑에서 산신제

형태로 지냈거나 산 정상부에서 천신제로 지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드디어 팔공산의 최정상이자 신녕 서(유봉)의 분기점인 비로봉에 도달한다.

5번째 오른 비로봉...2018년에 4번째 올랐으니 7년만에 다시와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팔공산 비로봉(毘盧峰:05:42)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예전에 경상북도였다가

최근에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kt 중계소를 비롯하여 KBS,MBC, BBS,대구방송(TBC) 등의 중계탑들이 있다.

 

팔공산의 주봉으로 또다른 지명으로는 제왕봉이라도 부르며 우측 봉우리가

동봉(1,155m)이고 송신탑이 있는 좌측으로 서봉(삼성봉:1,147m)이 있으며,

1980년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산이다,

 

비로봉(毘盧峰)의 '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며, '비로자나(毘盧遮那)'는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님 몸의 빛을 뜻하며, 또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은 법신불을

뜻하는데, 즉 산봉우리에 붙은 비로봉이란 이름에는 그 산에서 최고 높은 봉우리라는

뜻과 불교적 의미가 함께 내포돼 있다.

 

비로봉과 서봉, 동봉 등으로 명명돼 있는 팔공산 주요 봉우리들은 예전에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비로봉은 제왕봉, 동봉은 미타봉, 서봉은 삼성봉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명산중에 정상을 비로봉(毘盧峰)으로 부르는 곳이 참으로 많은데,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북녘땅에 있어서 내 생전에 갈수가 없는 금강산(金剛山:1,638m)과,

묘향산(妙香山:1,909m) 정상도 바로봉이며, 남쪽에는 이곳 팔공산을 비롯하여, 오대산

(五臺山:1,565.4m), 소백산(小白山:1,440m), 치악산(雉嶽山:1,282m), 속리산(俗離山:

1,058.4m)도 정상의 지명이 비로봉인데,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따온 지명이다

 

*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범어(梵語)로는 "바이로차나(Vairocana)"라고 부르며

  온 세상에 존재하는 불법(부처님 법)의 진리를 ‘광명(밝은 빛)’또는 ‘태양’으로 형상화한

  부처님으로 석가모니불의 몸 자체를 색신(色身)이라고 하고,석가모니불 이 말씀하신

  불교의 진리(불법)를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처를 신(身)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色身)이나 생신(生身)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죽음)에 들면서, '법(불법)과 스스로에게 의지하지 석가모니

부처 자신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모든 중생들 각자가 깨달음의

주체임을 말한 것으로 경전에는 부처의 몸은 법 자체로 되어 있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서 온 것이라고 한다.

 

부처와 불법은 하나이므로,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후에 사람들은 부처가 남긴 불법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부처가 비로자나불이고, 법신이라고 한다

비로봉 정상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생각보다 초라한데

특히 눈에 거슬리는 건 방송국 중계탑의 철조망이다

인증샷

비로봉 정상 1등 삼각점(△군위11 / 79.10 재설)

팔공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봉과 가마바위봉, 파계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은 팔공기맥과 팔공산 환종주 때 2번이나 걸어본 길이라 안면이 많다.

10년전만 해도 무박으로 25~30km 정도는 식은죽 먹듯이 걸었는데...

이제는 그 시절이 一場春夢이 되어 버렸으니 가는 세월을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방송국 중계탑 사이로 올라온 해를 보면서 신녕 서(신산경표상:유봉)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데, 대구의 진산이라는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는 공군부대,

kt 중계소를 비롯하여 KBS,MBC, BBS, 대구방송(TBS) 등 우리나라 산 중에서

중계탑이 아마 가장 많은 곳 같다.

신녕 서(신산경표상:유봉)지맥을 향하는 첫발걸음

아직은 이른 아침인데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줘서

큰 무리는 없으나 오후의 날씨가 어찌될지 몰라서

긴장을 하면서 내려간다

내리막길 돌담 사이로 긴산꼬리풀이 얼굴을 내밀면서 반가움을

표하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반가운 눈맞춤을 하고 내려간다

큰뱀무(꽃말:나눔)

긴산꼬리풀 영에 있는 큰뱀무는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는지

꽃이지고 씨방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내 어이 너를 외면하랴...

 

큰뱀무는 키나 잎이 뱀무보다 약간 크며, 또 작은꽃자루에 퍼진

털이 있는 것이 뱀무와 다른 점이며, 여기에서 ‘뱀’은 뱀과 관련이 있거나,

기준을 삼는 식물에 비해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르다는 뜻이다.

또 줄기 밑에 달리는 잎의 생김새가 무 잎처럼 생겨 뱀무라고 한다.

 

장미과에 속하며, 큰배암무라고도 하며, 또 꽃이 사람 귀에 들어가면 들리지

않게 된다고 해서 귀머거리풀이라고도 하는데,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약초로 유명해 앞으로

대량 재배를 연구할 만한 식물로 여겨진다.

다시 장군메기(09:47)

장군메기에서 바라본 수태골(水台滑)의 모습

지난주에 이곳으로 올라오려다 되돌아 간 기억이 아련하다.

수태골(水台滑) 계곡은 대구쪽에서 팔공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로

인기가 높은 곳이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별빛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水台滑)이라 유래된 지명이다

 

또다른 유래로는 아이를 밴다는 수태(受胎)와 음이 똑같아서‘백일기도를

했더니 아이를 수태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게 되면서, 이제는‘수태골(受胎滑)’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광장에서 비박을 하는 저 텐트족이 한없이 부럽구나.

옛날 옛적에는 나 역시 홀로 저짓거리를 참으로 많이

했었는데...

광장에서 내려서는데...

데크목 계단으로 깔끔하게 등로를 정비해놔서 편안하게 내려간다

서봉 갈림길(05:52)

이곳에서 서봉으로 향하는 길은 팔공기맥으로 가는 길이고

동봉방향으로는 신령 서(유봉)지맥으로 이어지는 길...

오늘도 무사히 가야할텐데...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등로에는 시그널을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곳에서 옥희씨(그랜드산악회)의 흔적을 만나는데 지나지가

얼마되지 않았는지 시그널이 따끈따끈하다...정밀 대단한

수퍼우먼이신 옥희의 흔적인가 아니면 회장님의 흔적인가?

누구 것인지는 몰라도 아뭏던 반갑습니다

동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산수국을 만나는데

요즘 정치하는 인간들을 닮아가는지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구나.

배울걸 배워야지...

 

가장자리에서 진짜 꽃처럼 보이는 것은 가운데에 있는 진짜꽃을

보호하고 꿀벌을 유인하기 위한 헛꽃이고, 가운데에 촘촘히 있는게

진짜 꽃이며, 서식하는 토양의 산성도(酸性度) 따라서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으로도 바뀌며 꽃말은 ' 변덕스러운 마음 ' 이다

안부(05:55)

수도사 갈림길(05:57)

안부에서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수도사로 내려가는 길이

뚜렸하고, 동봉 아래에 자리잡은 석조여래입상이 부드러운 미소로 반긴다

이른 새벽과는 달리 해가 뜬 이후부터는 더운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0호)

 해발 1,155m의 고지(高地)에 위치하고 있는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높은 돋을새김)로 조각되어 있으며, 불상이 새겨진

바위 자체가 거대한 광배(光背)의 역할을 하며 머리 주위로는 두광(頭光: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의 흔적이 남아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넓고 편평한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를 가졌으며 반쯤 뜬 눈은 가늘고 길게 표현되었는데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두 볼은 살이 찐 편이고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하고 자비스러운

불심을 느낄 수 있고 신체에 비해 얼굴은 좀 크게 표현되었으며,  거대한 불상을 올려다보며

예불을 드리는 예배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며, 목은 너무 짧아서 삼도(三道)의 표현이 뚜렷치 않다.

이 불상은 양손과 발이 모두 신체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크게 표현되었으며, 오른팔은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지만 조각 수법은 고르지 못하다.

왼팔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외장(外掌: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했으며, 엄지와 장지를

맞대어 지물(持物)을 가진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법의(法衣: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어깨에 걸침)이고 옷자락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뜨렸으며, 단순한 호선(弧線: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형 옷주름만이 표현되었다.

법의 밑으로는 군의(裙衣)의 표현이 희미하고 직립한 두 발끝과 발가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좌 · 우측 옷자락도 양팔에 걸쳐 넓게 늘어뜨려졌는데 마치 도포 자락을 연상케 한다.

 

이 불상은 손과 발에서 기형적 조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거대한 입상에 잘 조화되어 있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경산시의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제431호)과 양식적으로

유사함을 알 수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약사여래(藥師如來)란 동방의 정유리세계(東方淨瑠璃世界:약사여래가 다스리는

동방에 있는 정토(淨土)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부처님으로 그는 과거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의 공덕에 의해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약사여래에 대한 민간신앙에 따르면 어떤 병은 그의 상을 만지거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기만 해도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전해지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이 성행해 탑의 기단이나 1층 탑신에 약사여래의 권속을 조각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거듭되는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기원법회가

자주 열렸으며, 오늘날에도 약사여래는 한국에서 석가모니불·아미타불·미륵불과 함께 가장

널리 신봉되는 부처의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요즘도 천태종·진언종·선종 계통 종파들이

약사여래를 각별히 숭배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는 흔히 약이 담긴 그릇을 한 손에 들고 있는

푸른 피부의 부처로 묘사된다. 티베트에서는 약용 과일인 미로발란 열매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약사여래부처님께 선 채로 低頭三拜의 예를 올리고 동봉으로 향한다

예전의 길과는 달리 데크목의 계단을 따라서 편하게 오르긴 한다마는

자꾸만 편리함의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등로는 野性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동봉(東峰:1,167.0m) 정상에 도착하는데 대구에서

일출 촬영을 위해서 오셨다는 진사님 2분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셋팅

해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도착하니 반갑게 맞이한다.

 

올해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出寫를 몇번 못했지만 카메라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말 통한다... 나홀로 산행을 할때는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명산이나 트레킹을 할 때는

무거운 대포(캐논 오막포 EOS 5D Mark 4 DSLR)를 가지고 다니는데,

내 전공(?)은 불상이나 야생화 촬영이 전문이다

팔공산 동봉(東峰:1,167.0m:06:05~06:20)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멋진 정상석과 예전에는 없었던 데크목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온 사방이 거침없이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봉우리 아래의 옆 사면은 멋진 암릉으로 되어 있고 바로 아래에는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자리를 잡고 있고, 팔공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군부대와

통신사의 송신소와 방송국들의 중계소가 점령(?)한바람에 동봉이 팔공산의

실질적인 주봉 노릇을 하고 있다.

 

팔공산의 지세를 보면 비로봉을 본존불을 하고 동봉과 서봉의 좌우 협시불로

두고 있는 형상이며 동봉의 원래 이름은 미타봉(彌陀峰)이라고도 한다

 

* 미타(彌陀)란 아미타불(阿彌陀佛), 무량광불(無量光佛) 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이름으로 불리며 서방 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에 머물며 설법을 한다는 부처로,

  주로 정토교(淨土敎)에서 숭앙하는 구제불이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부악(父岳), 중악(中岳)이라고 하여 신라 오악(五岳)

중에 하나로 오악이란 토함산(동악),계룡산(서악),지리산(남악),태백산(북악), 팔공산(중악)으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다...신라 말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가

5,000의 군사를 거느리고 견훤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오히려 팔공산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 당하고 말았는데, 그 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 하며 이 때 신숭겸·김락(金樂)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하는데 이는 곧 팔공산이 통일신라의 중심지적 위치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렇듯 팔공산은 신라 호국성신인 오악의 하나로서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되어 온 영산 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신령스러운 땅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자연히 신라불교의 성지로서 자리매김 되었으며,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원찰지로서 원찰 조성과 원탑조성 등 융성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이 흐름은 고려시대에서도 계속되어 고려의 초조대장경이 부인사에 봉안되고, 

유가종의 거봉인 홍진국사 혜영, 자정국사 자안은 동화사 주지로서 전국의

불교를 관장하는 오교도승통이 되어 이 땅의 불교를 호령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은해사가 인종태실수보사찰로, 파계사가 영조의 

장수(長壽)를 비는 원찰로서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는 등 팔공산의 법등은 계속

밝혀져 왔으며, 이같은 전통으로 이곳에는 현재도 수십개소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팔공산의 불국(佛國)은 영산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방 세력의

거점지였기 때문에 신라.고려. 조선 등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왕실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각 왕조의 중심적 불교문화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지방 호족적이면서도 중앙왕실적 불국으로서의 팔공산의 불교사는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 동화사,은해사 등 도처에 남겨진 불적과 현존하는 사찰들에서

그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맥을 이어온 불교의 역사와 함께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 이같은 불적들을 보노라면, 마치 이 곳에 불교의 모든 사상 형태들이

포함된 듯이 보인다.

 

아미타신앙, 미륵신앙, 밀교신앙 등이 시대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었으며, 

그러한 사상에 따른 불교예술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그래서 시간성을 배제하고

본다면 팔공산은 모든 불교신앙이 집약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동봉과 함께 비로봉을 중앙에 두고 좌우 협시불(夾侍佛) 형태를 띠고 있는

삼성봉이라고도 부르는 서봉(西峰:1,150.2m)에서 파계봉(994.0m)을

지나 한티재 너머로 가산(架山:901.8m)까지 보이는게 정말 환상 그 자체다.

최근 몇년동안 매주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멋진 仙景을 감상하긴 처음이다

폭염보다 뭐다 하면서 산행을 포기하려다가 오늘 산행을 나선건 신의 한수이다

옛부터 팔공산의 멋진 풍광에 반하여 시를 읊은 시인들이 많았는데

대구 출신의 서거정(徐居正)은 '대구 10경'의 하나로

'公嶺積雪'(팔공산 능선에 쌓인 눈)을 들었다.

 

公山千丈倚峻層(공산천장의준층)

첩첩 산줄기 공산이 천 길인데

 

積雪漫空沆瀣澄(적설만공항해징)

하늘 가득 쌓인 눈이 이슬까지 맑게 하네


知有神祠靈應在(지유신사영응재)

신령이 무심찮음 이로써 알겠으니

 

年年三白瑞豊登(연년삼백서풍등)

매년 정월 원삼일에 풍년을 여는 구나

매월당 김시습은 '팔공산을 바라보며'(望公山)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험준한 공산이 우뚝 솟아서 公山峻聳嶸
동남으로 막혔으니 몇 날을 가야할꼬 却東南幾日程
이 많은 풍경을 다 읊을 수 없는 것은 多少風光吟不得
초췌하게 병들어 살아가기 때문일세 只緣憔悴病中生

팔공산의 지명 유래를 보면...

공산(公山)은 우리 말로 곰뫼 즉 웅산(熊山)이란

뜻으로 고대에 곰은 신(神), 신성(神性)의 뜻을 가졌다.

 

 

이 공산이 팔공산이라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설이 있다.

① 8장군이 순절했다고 하여 ② 8고을에 걸친 산이라 해서 ③8간자를 봉안했다고 해서

④ 8성인이 득도해서 나온 산이라 하여 팔공산이라 했다 한다.

그러나 여덟 장군의 순절설을 보면 고려의 통일전쟁시에 태조 왕건과 후백제 왕 견훤이

동수대전에서 격돌했을 때 신숭겸, 김낙 두 장군 외에 다른 장군의 순절사실은 없었다.

 

8성인이 득도했다던 설은 원효의 제자 8인이 천성산에서 공산에 들어와 세 스님은 삼성암에서,

다섯 스님은 오도암에서 득도했다는 불교계의 전설이다. 또 하나는 신라 헌덕왕자인 심지대사가

속리산에 가서 진표율사가 미륵보살로부터 받은 팔간자를 받아와서 공산 동사에 봉안한

사실에서 생겨난 불교계의 전설이다.


여덟 고을에 걸쳐 있었다는 설은 조선초기에 생긴 팔공산의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조선초기 이후 공산은 해안, 하양, 신녕, 팔거, 부계 등 다섯고을 즉 현에 걸쳐

있었지만 여덟 고을에 걸쳐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 팔공산 명칭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이것은 사대주의 모화 사상가들이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중국 안휘성 봉대현 동남비수의 북, 회수의 남에 위치한 팔공산에서 북조 전진왕 부견과

남조 동진 효무제 사이에 팔공산 비수에서 대전이 전개되어 부견왕이 참패한 고사와 유사성이

있어 그 고사에서 따다가 공산을 팔공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보겠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공산을 혹 팔공산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삼국사기>에 공산을

일명 부악(父岳)이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악이란 공(公)자가 부자와 닮은 자로

붓으로 베낄 때 혼동된 것이라고 보겠다. 2천년간 공산이라 써오던 이름에 팔공산이란

이름이 후세에 생기게 된 것은 중국문화를 숭모해온 사대주의 모화사상에 젖은 우리의

유학자들이 중국 역사사실의 유사성에서 붙인 명칭이었다

인증샷

좌측의 서봉과 kt송신소와 비로봉...

이제 서서히 작별을 고해야 할 듯 싶다

남쪽으로는 가지산, 신불산, 영축산, 제약산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영남알프스 능선이 뚜렸하고, 그 앞으로는

운문산도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구나

동남쪽으로는 대구의 아파트 단지 너머로 지난해 봄에 걸었던 비슬산

스카이라인이 뚜렸하고 그 뒷쪽에 있는 내 고향 의령땅의  산길을 만나는 건

역부족인 듯 하다

서북쪽으로는 가야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뒷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肉眼으로는 어렴풋이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

멋진 그림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 참으로 많이 아쉽구나

내려서는 길에 오늘 내가 걸어야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덥다고 산행을 안했다면 어쩔뻔 했겠나...

 

염불봉과 신령봉까지는 지맥길과 맥길을 벗어나 우측으로 펼쳐지는 삿갓봉과

은해봉, 노적봉 너머로 갓바위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관산도 뚜렸이 보인다

동봉을 떠나면서 내려다 본 염불암 계곡의 모습

동봉에서 바라본 공군부대와 수도사 계곡으로 비치는 빛내림이

오늘도 폭염이 예사롭지 않을 모양이라 부지런히 가야할 듯 

싶은데 동봉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허비한 듯 하지만, 그 대신에

오랫만에 멋진 仙京을 감상했으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듯 싶다

동봉 정상의 이정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고 했던가.

동봉 정상에서 주변의 멋진 선경에 취해서 놀다보니

15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구나....대구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진사님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온은 빠르게 상승하고, 일출전에 약간의

추위를 느낄만한 바람도 폭염에 겁먹은듯 멈춰버린 느낌이다

안부(06:33)

안부에서 계단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암릉구간으로

오르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삼각점이 있다는

1,120.4m봉으로 향한다

1,120.4m봉(06:36)

암릉으로 된 1,120.4m봉으로 올라서는데 삼각점은

보이지 않고 아찔한 암봉이라 아무도 오지 않는지

그 흔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삼각점

수색했지만, 삼각점 수색에 실패한다.

1,120.4m봉에서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와서 

편안한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가야하는데

무식하게 맥길을 고집하면서 내려가는데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조망이 뛰어난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6:41)

주위의 멋진 조망이 보이나 동봉에서 너무 시간을

허비한 탓에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염불암과 동화사(桐華寺)계곡의 모습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桐華寺)는 통일신라시대의 절로 금산사 ,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로, 고려 문종 때에는 이 절에서 원천 법천사의

지선국사가 배출되었고 그 문하에서 속리산 승통 석규를 비롯하여 1,000여 명의

승려들을 배출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동화사 전체가 불타버린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내에는 조선 영조 때 중건된 대웅전과 극락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보물 제254호)·금당암3층석탑(보물 제248호)·

비로암3층석탑(보물 제247호)·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석조부도군 등이 있다.

염불암의 모습(2011년 9월 25일 산행때의 사진)

팔공산의 6부능선에 자리한 즈음에 자리한 염불암은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경순왕 2년(928년) 영조대사가 창건하여 1962년에 개축하였다고 한다.

그 옛날에 바위 뒤에서 염불소리가 나서 이곳에 암자를 지어 ‘염불암’ 이라

지었다고 하며, 염불암에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9호인 청석탑이 있다.

청석탑은 벼루를 만들던 흑색 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현재는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 채로 남아있다.

조금전에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온 1,120.4m봉을 뒤돌아 본다.

산이란 참으로 묘한 곳인지...힘들다고 하면서 편안한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저곳에 왜 올라갔는지 나도 모르겠다

동쪽으로 아침에 지나온 비로봉과 공군부대가 있는 공산성이

요새처럼 보이는데 저길 어떻게 성터를 잡을았을까...우리

선조들의 慧眼에 그저 감복할 뿐이다,

 

팔공산은 우리나라 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와 후백제의 다툼, 몽고군의 침입,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히데요시

(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여 부산을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대구쪽으로 몰려올 때

조국을 침략하여 강토를 유린하고 살인, 방화, 약탈, 강간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일삼는

왜적을 섬멸하고 조국과 겨레를 지키고자 주변 고을의 선비 사대부들이 팔공산에 모여 들어

구국 의병을 일으키기로 맹세한 것이 바로 공산회맹이다.

 

이때 회맹한 의병장은 대구, 상주, 밀양, 영천, 하양, 흥해, 청송, 청도, 영일, 울산의 수십명이

임진년 7월, 신녕의 권응수 장군은 각 고을 의병장들을 거느리고 군사교통의 요충인 영천성

수복작전을 전개하여 3천 5백의 창의정용군이라 이름한 구국충절에 불타는 군대로 영천성을

공격하여 화공작전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으로부터 팔도의 승려들이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을 받고 영규, 처영, 사명당 유정 등이 승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용감히 싸웠다.

동화사에는 영남 승군 사령부를 두어 사명당 유정선사가 승군 총섭(사령관)이 되어 승군을 훈련하고

이들을 지휘하여 공산성을 수축하고 이 지역을 수호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재침략했을

때도 이곳 팔공산성은 민초들을 지켜준 곳이다.

 

팔공산 전쟁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2대 전투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 하나는 신라말 후삼국을 통일하는 통일전쟁시에 신라 수도 경주를 전광석화처럼 함락시키고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세운 후 국보, 인재를 약탈하여 개선길에 오른 후 백제 견훤군을 맞아

신라 구원군으로 달려온 고려태조 왕건의 5천 기병부대가 팔공산에서 싸운 동수대전이다.

여기서 왕건군은 전멸하고 왕건은 겨우 탈출했다. 이로 인하여 팔공산이 역사적인 전적지로 삼아

파군치, 왕산, 살내, 일인석, 지묘사 등 이 대전과 연관된 많은 지명을 남긴 것은 유명하다.

 

또 하나는 6·25 때에 북한 공산군의 결정적인 패전이 된 다부동 전투는 전쟁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공산군은 엄청난 전사자를 내어 시산혈해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유명한 팔공산 다부동 전투였다.

지금 그곳에는 참혹한 동족상잔의 자취는 없어지고 전적기념비가 서 있어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다

등로 좌측의 폭포골을 바라보면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더위가

시작되는지 슬슬 땀으로 인해 옷이 젖어들기 시작한다

안부(06:44)

안부에서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암봉으로 올라간다

1,190m봉(06:47)

암봉 정상에다 데크목 조망대를 만들어 놨는데

마치 덕유산 중봉인듯 착각을 들게하는 곳이다

올망졸망한 신녕서 지맥길의 능선...

보기에는 까칠해 보이지만 팔공산국립공원에서

등로의 대부분을 사면길로 돌려놔서 봉우리를

오를 일도 없다...그래도 명색이 맥산꾼인데

오를 수 있는데까지는 올라 가봐야제...

제도권의 사면길을 버리고...

힘들게 암봉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올라왔는지 안전로프가 있어서 조금은 편하다

암봉(06:58)

암봉에서 바라본 대구시의 모습

대구(大邱)라는 지명은 신라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달구벌(達句伐)인데,

달구(達句)는 '불 또는 크다'를 의미하고, 벌(伐)은 '넓은 평야' 를 의미하니

'크고 넓은 들판'이란 뜻으로 이는 대구의 분지 지형을 반영하며, '달구화(達句火)'와

유사한 의미로 해석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신라초기부터 달구벌국이라 했으며, 신라의 행정구역

정비 이후에는 대목군(大木郡), 고려시대에는 대구현, 조선시대에 대구도호부로

했다가 근세에 들어서 대구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다

내려가는 길도 상당히 까칠하고 조심스레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제도권 등로인 사면길을 만난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편하게 내려서니...

비박장소로 최적인듯한 데크목 광장이 나온다

데크목 광장(07:02)

꽤나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비로봉을 지나온 지가

1.0km밖에 안됐다네... 트랭글 맵과 거리차이가 조금

나는듯 하다

조망바위(07:03)

베낭을 메면 몸이 가벼워진다 / 김 택근

 

길을 가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하늘을 밟고 가리라.

 

기다림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다.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찾아가는 것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산이거든 들이거던 바다거던

 

길이란 낯선길을 만나

낯설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가는 앎다운 과정이다

 

나는 오늘도 그 아름다운 길을 만나야겠다.

항상 베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깃처럼 가벼워진다

능선 아래로는 동화사가 뚜렸하게 보이고...

좌측으로는 팔공C.C의 필드가 시원스레 보이고 이어지는

은해봉과 노적봉...그리고 갓바위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선본사를 품고있는 관산도 시원스레 보인다

대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교했을 때 비슬산과 팔공산에

둘러싸여 움푹 들어간 아늑하고 따뜻한 자궁자리인데, 옛날부터 인물이 많이

탄생 했었고, 많은 대통령(박정희,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을 배출했으며, 내란,

외환, 우환이 적었으며 6.25 때도 마지노선을 지켰고 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국채보상운동이라든지 각종 학생운동, IMF 때도 금 모으기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곳도 대구이다

한민족이 아플 때 마다 어루만져 주다보니 옛날부터 약령도시가
발달하였고, 섬유산업의 수도라고 할만큼 섬유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정치적으로 보수색채가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놀랍게도 1960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인 2.28 학생운동으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한

고등학생의 자발적 시위가 3.15 마산시위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도 대구이다.

조망바위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라 조심스레 걷는다

발한번 삐끗하면 황천가는 지름길이 될 듯 싶다

생각보다 등로는 잘되어 있지만 왠지

모르게 산행 속도는 나지 않는구나

올망졸망 걷다보니 염불암 갈림길에 도착한다

염불암 갈림길(07:08)

우측으로는 염불봉으로 향하는 등로인데 예전에

동화사에 참배왔다가 염불봉을 거쳐 동봉, 비로봉을

지나 서봉에서 하산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누군가가 이곳에 염불봉이라 적어 놨는데 염불봉은 더 가야 한다

염불봉으로 향하는 길에 토사 유출을 방지함인가.

등로에 야자매트를 깔아놔서 편하게 길을 걷는다

편안한 등로이긴 하지만 암릉구간이라

산행속도가 나지않고, 그나마 다행인건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폭염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왜이리 산행거리가 줄지 않는겨...

안부(07:12)

안부에서 염불봉을 오르기 위해 우측으로 향한다  

염불봉(念佛峰:1,042.0m:07:16)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멋진 立石 하나가 범여를 반기는데 지맥

능선에 있는 족보있는 산이건만 사면길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어

접근하기가 불편해서 그런지 선답자의 흔적들은 없으나, 입석 아래의

나뭇가지에 반바지님께서 걸어둔 코팅지가 이곳이 염불봉임을 알려준다.

 

지명은 남쪽에 있는 염불암이 있어서 유래된 지명인 듯 한데, 염불(念佛)이란

부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소리 내어 외우는 것을 말한다

염불봉 정상의 모습

염불봉에서 바라본 팔공산 정상의 모습

팔공산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그 정상에 서면 온 세상이 일망무제 그 자체이다

더 올려다 볼 것이라고는 오직 하늘뿐...하늘과 만날 수 있는 통로, 하늘의 뜻을

물으려면 찾지 않을 수 없는 자리... 그곳이 바로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우리가 수천년을 기대며 살아온 산,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산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산, 영원히 함께 할 우리의 산으로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김유신장군은 팔공산에서 핍박받던 나라 지킬 힘을 빌었고, 원효성사는

10년을 이곳에서 구도했고 신라는 국가적인 대제(大祭)를 하늘에 올렸던

그 산이 팔공산이었다

 

그리고 많은 유학자들은 수행처로 삼았고, 적잖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팔공산 품안을 찾아 들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스님들이

산 아래에 둥지삼아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용맹정진 중이다... 그리고 우리

중생들의 마음들도 쉼없이 팔공산을 향하고 있다.

팔공산은 그 뭇 생명들을 그 오랜 세월 보듬어 왔으며, 그들의 뜻과 고난을 지켜봤다. 

몽고군이 처절히 유린할 때는 민초들과 함께 아파했고 왜군이 짓밟을 때는 의병을

감싸 안았으며, 한국전쟁 때는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나라를 지켰고, 공비들로 인해

동네가 화염에 휩싸이고 숱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처절함, 홍수와 산사태로 마을이 매몰돼

수십호가 같은 날 제사를 모셔야 하게 됐던 참혹함에도 팔공산은 말없이 그 아픔을 함께 했다.

염불봉에서 내려서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조금전 안부에서 헤어진 등로를 만난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을 멀리하면 멀리 할수록 정신병등의

문명의 질환에 시달리며, 현대인은 문명에 지쳐간다.

우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산의 정기"를 마셔야 한다.

산의 정기와 침묵에 안길때 우리는 삶의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올망졸망 좁은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동봉에서 진사님들과

조우한 이후로 이곳까지 오면서 만난 인적은 없다.

무심코 걷다가 만난 며느리밥풀꽃(꽃말:헌신, 순수)
시어머니의 구박에 生을 마감한 恨많은 며느리 밥풀꽃도 피어있다.

그 당시에 시절을 잘못만나 고생했구나...지금은 며느리에게 구박받고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시어머니가 울매나 많은데...

강렬이 내리쬐는 태양이 자꾸만 겁박하는 느낌이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멋진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7:28)

조망바위 아랫쪽으로 동화사가 보이고 좌측으로 팔공C.C 필드가

시원스레 보이는구나...30대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 한창 골프에

미쳐 있을 때 대구에 있는 지인들의 초청을 받아서 두세번 라운딩을

한 적이 있어서 안면이 있는 골프장이다... 그 당시에는 1년에 몇십번씩

라운딩 하면서 겁없이 골프를 쳤는데, 지금이야 가끔씩 필드를 나가면

내 지갑 먼저보는 넘이 임자가 되는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일월비비추(꽃말:신비한 사랑)

비비추는 언뜻 들으면 외래어 같지만 순우리말로,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데

잎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손으로 비벼서 먹는다고 해서 ‘비비추’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잎이 옥잠화와 비슷하지만 옥잠화는 약간 크면서도 하얀 꽃이 피고,

비비추는 그보다는 좀 작은 보라색 꽃이 피는데, 비비추 종류 중 일월비비추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토양에 부엽질이 풍부하여 비옥도가

높은 곳의 반그늘에서 자라며, 특히 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라며, 키가 50~60㎝쯤 된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길이가 10~16㎝, 폭이 5~8㎝ 정도로 넓은 난형을 이루며,

잎의 끝부분은 물결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잎자루는 길고 밑부분에 자주색

점이 있으며, 잎의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심장 모양이거나 일(一)자 모양이다.

 

6~7월에 자주색 꽃이 피며, 길이는 4.5~5㎝로, 옆을 향해 빽빽하게 달리며, 잎 중앙에서

꽃자루가 자라 끝에 꽃이 달리고, 작은꽃자루의 길이는 약 0.5㎝이며, 열매는 9~10월경에

달리고 털이 없으며 길이는 2.5~2.7㎝이다... 편평하고 긴 타원형의 종자는 검은색 날개가

있고 길이는 약 0.9㎝ 정도이다.

일월비비추 옆에있는 원추리(꽃말:기다리는 마음)도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염한 자태로 범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래 내 어이 너를 외면할 수 있으랴...눈맞춤을 하고 길을 떠난다

오밀조밀한 암릉구간을 걷다보니 소원길 팔공산

생태 탐방로와 멋진 2층팔각정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2층 팔각정(07:31~50)

팔각정에서 바라본 병풍바위

저곳을 지나온 지도 모르고 통과하였다.

내가 사용하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병풍바위 자체가

표기되지 않아서 몰랐는데, 집에와서 옛날 산행기를

보니 저곳이 병풍바위더라...

오늘 내가 지나온 길을 복기해본다.

맨 우측의 공군부대와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 동봉, 삼각점 수색에 

실패한 1,120.4m봉, 염불봉이 반원형을 그리면서 차례로 보인다

이곳에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아침만찬을 벌인다

아침이라봐야, 밥에다 미역냉국, 거기다가 후식으로

천도봉숭아 2개이다...맛있게 아침을 먹고 물을 먹으려는데

헐!~~~이게 뭐여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베낭 옆 주머니에 넣어둔 1L짜리 수통의 뚜껑을 덜 닫았는지

물이 다 흘러버려 물이 하나도 없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제 산행 초반인데다가 본격적인 더위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물 대용으로 마실것은 파워에이드 700ML짜리 한병 뿐이다.

 

그런데다 식수를 구할려면 날머리 가까이까지 가야 하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야 있겠지...일단 부딪혀

보기로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갖가지 이정표와 안내판은 많이 보이나 지맥길을

걷는 산꾼들에게는 아무 씨잘데 없는 것들이다

안부(07:54)

고도를 낮추면서 신령봉으로 향하는데

암릉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하다

갓바위에서 동봉사이에 설치된 구조이정목

100m 간격으로 설치되는 있는데 참으로 한심하다

이런걸 두고 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동화사 갈림길(08:02)

동화사 길림길 이정표

이곳으로 내려가면 부도암을 거쳐 동화사로 가는 길이고

예전에 걸어봤던 길이긴 하지만 등로는 많이 변해버렸구나

다시 오르막길

식수에 대한 고민에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등로 윗쪽에

서있는 老松 한그루가 한마디 툭 내볕는다...사바세계사는

중생들은 기본적으로 苦라는 삶에서 시작되는 거 아닌가.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나...해결할 방법이 있을걸세...

몇발자국만 옮기면 만나는 이정목...팔공산공원 관리소는

재정이 든든한가 보다...어차피 민초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니 허투러 쓰지 마시게...

더운데 집에 있지 어디로 가시나요?

진달래 군락지라는 팻말을 지나면서 등로는 완만하고...

산의 언어는 바로 침묵 그것이다.

침묵의 언어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풍성한 것을 이야기 한다...우리는 산의 언어를 듣고, 

새기고, 읽을 줄 알아야 하며, 자연(Nature)은 신(조물주)이

만든 위대한 책(冊)이다.

암봉(08:18)

갑자기 서남쪽으로 시야가 빵 터지면서 팔공C.C가 보이고

그 너머의 경산시의 아파트도 흐릿하게 보인다...맨 뒷쪽으로는

몇년전 겨울에 개고생하면서 걸었던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

능선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그때의 힘듬이 다시 생각나는구나

 

경상북도 경산을 3명의 성인을 배출했다고 하여 삼성현(三聖賢)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삼성현이라 함은 삼국시대에 종교사상의 통합과 대중화

(和諍思想: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에 앞장섰던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와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간언했던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薛聰:655~?), 삼국유사

(三國遺事)를 저술한 일연선사(一然禪師:1206~1289)를 말한다

맥길의 트랙은 암릉으로 이어지나 오를수가 없어서

그냥 편안한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흐릿한 등로로 내려서니 도마재이다

도마재(955m:08:28)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과 경북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를 잇는 고개로

신령봉 서쪽에 있는 고개라하여 지도에는 신령재로 표기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도마재로 불리었다고 하는데 이는  ‘도마를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 이라고 하여 도마재로 불리었다고 하며, 펑퍼짐한 고개에는 이정표와

소원길 안내판과 대리석으로 만든 동봉과 공산폭포 안내 표시가 서 있다 

 

예전에 영천 신령면 치산리 등의 민초들이 치산계곡의 공산폭포에서 지나

폭포골로 연결되어 이 재를 넘으면 동화사가 있어 대구로 다니던 애환이

서린 고개이도 하다

정상에는 팔공산 소원길 생태탐방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있다

치산계곡으로 향하는 공산폭포 표시판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의 팔공산의 영천쪽 자락에 위치한 수도사에서

계곡을 따라 약 1.5㎞ 지점에 있는 공산폭포는 총 연장 60m, 높이

30m 정도의 삼단폭포로 팔공산에 산재하고 있는 폭포 가운데 가장

낙차가 크고 유량도 가장 풍부하며, 1980년 팔공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팔공산에서 가장 큰 폭포라는 상징성 때문에 공산폭포로 기록되었다.

 

이 폭포가 팔공산에 있다고 하여 대구에서는 팔공폭포라고 칭하며,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에 있다고 하여 치산폭포로 불리며, 조선시대에는 수도사 인근에

위치한 폭포이므로 수도폭포로 불렀으며, 향토지에 의하면 조선시대 때 신녕현의

유림들이 고승대덕과 시인묵객을 공산폭포로 초청, 폭포시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때 남긴 한시(漢詩)에는 이 폭포가 수도폭포로 기록되어 있다.

고도가 1,000m 아래로 떨어지고, 그에 비례하여

태양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하는구나

산다는 자테가 苦이구나...괴로움은 뭐란 말인가?

佛家에서는 나타났다가 무수히 사라지는게 괴로움이라 했다

 

대념처경(大念處經)에서는 오취온(五取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자아를 

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모인 덩어리가 괴로움으로,  태어나서 늙고, 죽음등의 각종 부정적인

느낌과 감각들이 괴로움이라 했다.

 

* 대념처경(大念處經)이란 석가모니가 수행자들에게 사념처(四念處)의 수행법을

  가르친 마음 챙김 수행의 핵심 경전으로, 1, 몸에 대한 관찰, 2, 느낌에 대한 관찰,

  3, 마음에 대한 관찰, 4, 법에 대한 관찰을 말한다

고통을 겪고있는 소나무 몸뚱아리에 귀한 한잎버섯들이

보이지만 양이 너무 적어서 수확(?)을 포기한다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水路처럼 보이는 곳으로 올라서니 신령봉 정상이 나온다

신령봉(新寧峰:996.5m:08:40)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청통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신녕면에서 유래된 듯 하다

 

신령봉의 남동쪽에는 계속해서 삿갓봉[931m], 인봉[886.9m] 등의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점차 고도가 낮아지며 신령봉의 북서쪽은 신녕천, 남동쪽은

동화천의 유역권에 해당한다... 북쪽으로 이어진 골짜기로는 팔공산 국립공원내

천이점에 공산[치산] 폭포가 있는 신녕천이 발원하며 기반암은 팔공산의 산체를

이루는 중생대 백악기 경상누층군 불국사층군의 흑운모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령봉에서 관봉으로 이어지는 직진 등로는 팔공산 종주길로 등로가

뚜렸하게 보이는데 이곳 신령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제도권 등로에서 벗어난다...속된말로 행복끝 고생길이 시작된다

정상에서 살짝 되돌아와서...

아주 까칠한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안부(08:43)

좌측의 도마령 방향에서 내려오는 사면길 임도와 합류한 다음에 지맥길은

직진 방향으로 오르고, 우측으로는 신원리 방향으로 향하는 등로가 있다

빡센 오르막길

힘들게 올라서니 공산폭포가 있다는 치산리 계곡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사토 지역에서 바라본 팔공산 정상의 모습

마사토 지역에서 바라본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계곡의 모습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치산리(稚山里)는 마을 주위의

지형이 마치 꿩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치산’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 하며, 치산리의 서쪽은 팔공산(八公山:1192.3m과

시루봉[726m]의 급사면이며,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합류하여

치산 계곡으로 흐르면서 형성한 공산 폭포[치산 폭포]는 팔공산의 여러폭포 중

가장 웅장하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적인 장소로는 치산성지[공산성]와 구천 서원, 어사영각(御賜影閣)이 있으며

공산 폭포에서 약 1.6㎞ 하류부에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고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한 천년 고찰 수도사(修道寺)에는 보물

제1271호인 수도사 노사나불 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이 있으며, 폭포에서

약 2㎞ 상류부에는 문종 때 혼수대사(混修大師)가 창건한 진불암(眞佛庵)이 있다

등로는 희미하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흔적이 고맙기만 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지나온 신령봉을 한번 뒤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안부에서 빡세게 치고 오르는 바람에

갈증이 너무 심하다...파워에이드 한병으로 버텨야  하기에

최대한 갈증을 참으면서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올라간다

안부(08:55)

안부를 지나자마자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서남쪽으로 조망이 열리는데

신령봉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한 삿갓봉과 갓바위지구의 관봉 지나

저 멀리 관산이 아련히 보이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환성산도 조망된다

고도는 높이면서 암릉구간을 통과하는데, 

등로는 서서히 지맥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암릉 사이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요즘 갑질이 심한듯 하다.

그러나 어쩌랴...숙명이라 생각을 하고 뚜버기처럼 맥길을 이어간다

좁은 등로로 올라서니 멋진 거북이 바위가 나오는데...

급하게 카메라 셧터를 누르다보니 멋진 거북이 얼굴은

꼭대기가 날아가버리고 몸똥은 나뭇가지에 묻혀버려

그림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거북아!...미안하구나.

거북바위에서 바라본 공산성 남사면의 모습

예전에 팔공기맥이라 타이틀로 저 능선을 올라갔었지...

990.3m봉(09:05)

내가 다운을 받아서 간 오룩스맵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인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체크하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구나...내가

못본걸까?

코끼리 바위...정말 잘 생겼다

공자는 오십세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과 예순살부터는

생각 하는것이 원만하여 어떤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논어 위정편에 칠십이 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 일흔이

되어서는 죽기전 까지 무엇이든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여 70세를 종심, 고희, 칠순이라 한다는데...

 

나도 어느듯 70이라는 숫자의 나이를 넘기다보니 자꾸만 왔던길을

뒤돌아 보게된다...내가 행여 잘못 살지나 하는 생각에...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길을 가는데...

암릉위로 오르지 않고  않고...

토끼벼리 길을 걸어가듯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간다

우회하면서 오르지 못한 암릉을 올려다 본다

우회해서 길을 가는데 암릉에서 내려오는 로프가

처져있는 길을 만나서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향한다

급경사를 내려다보면서 바라본 영천시 청통면지역의 산그리메

지나가신지가 얼마되지 않으셨나...시그널이 따끈따끈하네요

안부(09:18)

무명봉(09:20)

암릉구간은 완전히 벗어난 듯 하고 등로는 아주 좋다

등로는 좌측의 사면으로 편하게 이어지고 트랙상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간다 

984.6m봉(09:28)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주변에 시그널 몇개만

보이는데, 이곳 역시 오룩스맵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G.P.S 월드의 오지리님께서는 959m라고 표기를 해놨다

대구의산님의 흔적과 영천의 아리솔이란

분의 코팅지에는 소혀바위봉이라 적혀있다 

트랙을 확인하니 맥길은 남쪽의 내리막길로 향하고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걸려있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려간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암릉이 길을 막고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라

도저히 갈 수가 없다...아무래도 지맥길이 아닌듯 싶어서

984.6m봉으로 되돌아 가는데 10여분의 시간을 허비한다

무명봉(09:40)

무명봉에서 2시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맥산꾼의

代父이자 전설인 준.희쌤의 시그널을 만나는데

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은 자꾸만 경로를 이탈했다고

난리부르스다.

트랙을 확인하니 트랙은 많이 벗어나고 있지만

실전에서 강한 高手들의 흔적을 굳게 믿으면서

내려가지만 조금은 찝집하다...요즘 세상에 여인들

말을 잘 들어야 편하다고 하는데, 여인의 말보다는

고수님들의 시그널을 더 신뢰하며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에서 내려와 984.6m봉을 오르면서 헤어진

뚜렸한 등로로 내려선다...오룩스맵에서는 경로를

이탈했다는 앙칼진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경고 멘트를 날린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와서 트랙을 확인하는데

근데 갑자기 앞이 하나도 안보이는게 아닌가
숲을 내려오면서 안경이 벗겨져 없어진 줄도 모르고

걷다가 수건으로 땀을 딲으려다 안경이 벗겨진 줄 알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그런데  갑자기 산비탈에서 사람이

한명 툭튀어 나왔으니 또한번 크게 놀라고...

그 분은 산꾼이 아니고, 약초꾼이었다...나한테 약초꾼인줄

알고 말을 걸어오는데, 내 사정을 얘기하니 나하고 같이

20여분동안 풀섶을 헤치며 안경찾기에 동참하다가 그냥 가신다

대충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지점의 200여m를 이 잡듯이

뒤진끝에 풀섶에 떨어져 있는 안경을 찾았는데 1시간 넘게

시간이 흘렸고,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빠져 버린다

그냥 등로에 주저 앉아 버렸는데 목이 바짝 마른다.

그런데 마실거란곤 파워에이드 2/3병과, 두유2팩, 500ml짜리

식혜 하나가 전부이다...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서

파워에이드를 모기 눈물만큼만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다행히 암릉구간을 지나 陸山의 완만히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룩스맵에서 여인이 하는말...마루금에 복귀했단다

실제 등산로와 트랙상 지맥 마루금과의 차이가 많았다

고도를 많이 낮춘 탓일까 날씨도 덥고 아침에 없었던

산모기와 깔다구 등이 몸뚱아리를 물어 뜯기 시작하고

바람한 점이 없으니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한다

갈림길(11:10)

급경사의 내리막길

저항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갈구했지만,

식수없이 걷고있는 범여의 타는 목마름은 폭염 경보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친다.

내리막길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리 위험구간은 아닌듯 하다

안부(11:20)

안부로 내려서고 직진의 능선의 봉우리가 아닌...

선답자의 흔적들은 사면길로 이어지지만

고집스럽게 무명봉으로 올라가 본다

무명봉(11:23)

우측으로 내려서니...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의 흔적을 만난다.

아우님!...이러다가 선배는 죽을것만 같네...

갑자기 나타나는 편안한 길이지만

안경을 찾느라고 진이 빠진 탓인지

산행속도가 나질 않는구나

안부(11:28)

맥길은 좌측 아래로 이어지고...

갈림길(11:34)

대궐의 수문장처럼 바위 2개가 버티고 산꾼을 검열한다.

이보시게!...맥산꾼치고 악한 사람 봤던가. 산꾼들은

산의 心性을 닮아서 악한 사람은 없네그려...

무명봉(11:38)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야트막한 골짜기에 낙엽은 푹신하고...

莎草가 있는 편안한 등로를 걸으면서 힘들었던 몸뚱아리를 추스린다

암봉(11:44)

좌측으로는 마사토로 된 비탈길이 보이면서 북쪽으로 시야가 확트인다

綠陰으로 치장한 북쪽 능선으로 시루봉(726m: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소재)이

얼굴을 내민다...오늘 내가 걷고있는 맥길 주위에는 시루봉이란 지명을 가진

봉우리들이 참으로 많다...보이는 저 시루봉의 전해 내려오는유래는 알 길은

없다마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시루봉은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붙혀진 지명인데, 저 시루봉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오늘 날씨하나는 정말 청명하다...산에오길 진짜 잘했는다는 생각이 든다

고도가 낮춰질수록 바람의 협조는 전혀없고, 땀냄새에 달려드는

벌레들의 공격도 심해지고...또하나 나타나는 복병...거미줄도

범여를 괴롭힌다...스틱으로 거미줄을 헤치면서 걷는다

시루봉 동북쪽으로 보이는 능선은 보현지맥의 석심산이나

어봉산쯤 되는거 같은데 워낙 遠景이라 확신이 서질 않는구나

마사토 지역을 벗어나니 우측으로 약초재배지인지

아니면 송이버섯이 나는 곳인지 청색 그물망이 처져

있는 곳이 나온다

무명봉(11:52)

그물망은 우측으로 향하고...

맥길은 좌측 내리막길이다

잠시후에 오를 561.4m봉을

바라보면서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서니 부귀사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부귀사 갈림길(12:02)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에 있는 부귀사(富貴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591년(신라 진평왕 13) 혜림법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1873년(고종 10) 담운(曇雲)이 중창한 바 있고,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지만, 591년(진평왕 13년)에 혜림법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주석으로 있었다고 전하며,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절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도중에 폐사되지 않

고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보이며, 1873년(고종 10)에 담운(曇雲)이 중창한 바 있고,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보화루(寶華樓)에 있는 「종각중수기(鐘閣重修記)」[1764년],

「부귀사게판기(富貴寺揭板記)」[1804년(가경 9년)]와 「부귀암중수기(富貴庵重修記)」[1873년(동치 12)]

등의 기문을 살펴보면 당시의 사찰 규모의 단편을 알 수 있다. 2000년에 아미타 도량을 세우기 위하여 중창

불사 발원 기도를 올린 뒤 불사를 하였다.

부귀사 내 당우(堂宇)로는 극락전·보화루·신검당·산신각과 요사채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1754년(乾隆 19년) 조성된 「부귀사 미타회탱(富貴寺 彌陀會幀)」이 있다.

부귀사 갈림길 안부에서 신원리 캠핑장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르다보니 준.희쌤의 격려문구를

만난다.

늘 고맙습니다

짧은 구간의 곧추선 등로를 오르는데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든 구간이다...서다가다를 반복하면서 능선에

오른 다음에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561.4m봉으로

향한다

561.4m봉(12:16)

 561.4m봉을 찍고 되돌아 내려와서 완만한 좌측으로 내려간다

 561.4m봉을 힘들게 오름길을 보상받는 느낌으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하는 길에 키는 크지만 가는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이 소나무한테서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힘든 범여를 위로한다

갈림길(12:24)

세상을 살아가면 소중하지 않았던게 있었던가

뭐가 그리 급해서 늘 긴장하며 허둥지둥 살았을까...

 

호젓하게 산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길들을 뒤돌아 보게 되는구나...

부귀사 갈림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신원리 캠핑장 이정표

483m봉(12:30)

끝도 없는 길, 그러나 가야할 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고

산길을 걷고 있다...시간이 흘러야

산행이 끝내겠지 하면서 무긴장 속에서

걷고 또 걷는 홀로가는 이 길...참으로 좋다

안부(12:40)

안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는데...

20m 간격으로 똑같은 이정표가 3개를 만난다

이런걸 젊잖게 말하면 과유불급이라 하고,

속된말로 말하면 돈지랄 한다고나 할까...

등로는 뚜렸하나 맥산꾼 이외는 다니지 않는듯 하다

조금전 60m 간격으로 3개나 만났던 이정표...

200m를 지나니 또 만나네요...이번에는...

50m 간격으로 2개나 있는데. 이건 공해 수준이야...

신원리캠핑장 갈림길(12:47)

신원리 캠핑장은 우측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은근히 더운 날씨에

목이 타들아 가는 느낌이다...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반쯤 남은 파워에이드를 한번에 다 마셔 버리고, 등로에

주저앉아 베낭을 베개삼아 드러누어 휴식을 취한다 

1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서는데

뚜렸하게 이어지는 등로는 우측으로 향하고 맥길은

직진으로 향한다...2분정도 지나니 삼각점이 있는

339.2m봉 정상에 도착한다

339.2m봉(13:10)

339.2m봉 정상 삼각점(△화북 457 / 2004재설)

339.2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좌측으로는 농장인지 철조망이 처져있다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철조망 아래를 살짝 밀어보니 틈새가 보이길래...

틈새 아래의 개구멍을 통과하여 철조망 안쪽의 편안한 길로 내려간다

농장 도로(13:04)

숲속을 벗어나니 한증막에 들어온 듯,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사거리 도로에 좌측으로는 청통면 신원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은해사의 부족암자로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거조암(居祖庵)

방향이다...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이 모셔져 있는저 거조암에 가본지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구나.

 

* 오백나한상(五百羅漢이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이룬 불교 수행자 500인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나한은 일반적으로 십육나한, 십팔나한, 그리고

  오백나한으로 무리를 이루어 신앙화되는데, 그 중 오백나한은 나한의 위력을 가장 극대화

  시킨 것으로 주로 사찰 내 나한전, 응진전, 혹은 영산전 등에 봉안되어 있다

  불교 경전 중 『증일아함경』, 『십송률』, 『불설흥기행경』, 그리고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

  등에 오백나한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 오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송대에 가장

  성행하였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외침으로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가뭄이 심할 때 국가의 주도로

  오백나한재가 개설되고 오백나한상의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현재 남송(南宋)시대인 1178-1188년에 제작된 100폭짜리 오백나한도가 가장 대표적이며

 그 외에 오백나한 조각상이 다수 전해지며, 한국은 고려 1235-6년에 제작된 오백나한도와 고려 14세기

후반의 오백나한도, 그리고 영천 은해사 거조암의 오백나한 조각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농장 도로에 내려서니 휀스안에 갇혀있는 개 한마리가

밥값을 하느라고, 나를 보더니 지랄발광하면서 짖어대고,

쥔장이라는 자는 코빼기도 안보인다...아무리 말못하는

짐승이라도 그렇지 저 퇴악볕에 노동을 시키다니...

이제됐다...힘들텐데 그만 짖어라...

산판도로로 가로질러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얼굴이 익는 느낌이다...분기점인 비로봉에서

해발 고도를 1,000m 이상을 낮췄더니만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목이 타는 갈증이 한계점에 온 것

같으나, 베낭에 마실거라곤 두유한팩 밖에 없다

무명봉(13:06)

이곳에 서서 내가 가야할 넓문이 고개까지 3.5km 정도

남았고, 고도도 낮고 등로는 완만하여 식수만 있다면

귀경 교통편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몸뚱아리에 수분이 보충되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이러다가 죽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드는구나...여기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산행을 포기하기로...

좌측으로 내려가는 마루금을 벗어나 철조망을 넘어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곡으로 내려서면 흐르는 물이 있을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15분정도 무작정 계곡을 치고 내려서니

돌틈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다...아!...살았구나

빈 음료수병으로 연거푸 3통을 마시고나니 살것만 같다.

물을 마시고 물한통을 채운 다음에 등산화와 양말를 벗고

발을 물에 담근채 3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좌측의 윗쪽 능선이 마루금이나 더 이상 산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지맥길보다 우선 살고봐야 한다는 생각에...

계곡을 빠져 나오니...

 산 윗쪽의 마루금과 나란히 하는 임도가 나오는데

청통면 신원리 용란(龍卵)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햇볕이 장난이 아니다...스마트폰에서 날씨를 검색해 보니

오늘 영천지방의 기온이 38.8도로 폭염경보가 발효중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행을 종료했다는 판단은 잘한듯 하다

오늘  산행은 아침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고, 최근 몇년 사이에 가장

멋진 산그리메를 감상했지만, 식수로 애를 먹었고, 안경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개고생을 하였다...한마디로 극락과 지옥을

두루 경험한 지맥길이었다.

 

고로 極樂淨土(극락정토)와 無間地獄(무간지옥)은 종이한장 차이더라는

것을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 하루였다.

용란(龍卵)마을(14:05)

임도를 따라서 계속 내려오니 신녕터미널에서 거조암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이티존이란 공장의 정문앞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그저께 약속한 대구의 후배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추한 몰골을 보이기 싫어서 그냥

신녕택시를 호출한다.

 

유룡 또는 용란이라고 부르는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20여년 전에 이곳에서

용이 알을 낳았다고 해 주민들은 이 마을을 용란(龍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0분정도 지나자 택시가 도착하고 팔공산 하늘정원으로 향하는데

이곳에서 거리가 무려 44km나 된다...신녕면소재지를 지나 상주~영천간

고속도로와 나란히 가는 2차선 도로(도로명주소:치산효령로)를 따라서

가다가 부계면소재지에 대구와 동명으로 향하는 79번 도로로 들어선

다음에 대율리라는 곳에서 동산계곡으로 향하는 도로로 가는데 이곳이

유원지인지 더워를 피해서 계곡으로 몰린 차량들 때문에 좁은 도로가

상당히 지체된다...한참을 걸린 다음에 하늘정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팔공산 하늘정원(15:25)

용란마을에서 거리도 거리지만 시간도 꽤많이 걸려 주차장에 도착하니

폭염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범여의 愛馬는 얌전히 쥔장을 기다리고 있다.

쥔 잘못만나 고생이 많구나...미안하다...근데 택시비가 자그만치 62,000원다.

그래도 기사양반에게 고생했다고 70,000원을 주고 귀경길에 오르면서

후배에게 전화를 하니 선배님 전화만 기다렸는데 하면서 담번에

내려오시면 전화를 하라고 하면서 조심해서 귀경하시란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귀경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