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내가 만들어서 간다.

☞ 산행일시: 2026년 06월 21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비가 온 뒤 습하고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2km / 5시간 3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솔고개- 물탱크봉- 농가- 155.9m봉- 물탱크- 142.5m봉- 무명묘지
창녕성씨 정절공파 묘- 밀고고개- 물탱크봉- 무명봉- 농로삼거리
165.6m봉- 옥천마을 갈림길- 안부- 무명봉- 파묘- 큰매당산- 묘지
석리임도- 무명봉- 안부- 임도- 194.7m봉- 듬밑산갈림길- 의자
묘지(안부)-듬밑산-다시 의자- 안부- 165.3m봉- 상리임도 삼거리
갈림길- 208.0m봉- 창녕성공묘- 안부- 173.5m봉- 무명봉
창녕조씨 가족묘- 묵은임도- 146.1m봉- 116.2m봉- 창녕성씨 가족묘
무명봉- 묘지- 임도- 73.6m봉-유어교(토평천/낙동강 합수점)
☞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 유어면
기후온난화 탓인지 6월 하순인데도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와 체력 저하로
당분간 지맥길을 쉴까도 고민을 한다...매주마다 가는 지맥길을 안 그래도
5월과 6월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산행을 못했더니만 몸도 마음도 무겁다.
지난주에 초딩이 동창들과 2박 3일간 남도여행을 갔다온 후에 힘이 들었지만
다시 몸을 추스리고, 비교적 산행거리 얼마 남지않은 토평지맥을 마무리 하기
위해이른 새벽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향한다

서울역(04:57)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05시가 안된 시간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 기분이지만
비가 오질않길 바라면서 미리 예매한 열차표를 창구에서 받아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발 → 동대구행 열차표

동대구역(07:00)
정시에 동대구역에 도착하고, 역을 빠져 나오니 이른 아침인데도
습한 날씨에다 아침부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날씨가 덥다.
왜 대구를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각하의 흉상만 보고 禮를 올리고 갔는데
맞은편에 각하의 광장이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동대구역 지하철(07:05)

대구서부주차장(07:30)
대구 서부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고민을 한다...오늘 산행들머리가 있는
솔고개로 가려면 창녕군 이방으로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이방면으로
가는 버스는 09시 넘어야 있고, 직행버스가 아닌 완행버스라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고, 창녕으로 가는 버스는 08시에 출발하며, 고속도로로
가기 이방보다 거리가 멀지만 30분 남짓밖에 안 걸리기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창녕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김밥과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한다

대구 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창녕시외버스터미널(08:34)
대구를 출발한 지 30분 조금 지나서 창녕터미널에 도착하고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20분만에 솔고개에 도착한다.

솔고개(08:55)
경남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와 옥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7번 도로
(도로명 주소:이방로)가 지나가는 고개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노거수 2그루와
쉼터, 옥천버스정류장이 있고 옥천마을 표시석이 있으나 솔고개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솔고개에 도착하니 내 고향으로 가는 이방로가 시원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1년에 몇번씩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지금은 한번정도
갈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길이 되어 버렸구나.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옥천리는 이방면 동남부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거대한 호수인 우포(牛浦:소벌), 나무갯벌(木浦) 서편에 쪽지벌 이란 작은 늪이
있는데 이 늪을 쪽지벌이라 부르며, 쪽지벌의 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 옥천리이다
이 주변의 사람들은 예전에 漁業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어 내륙의 어촌으로
불리웠던 마을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토사(土沙)가 많이 유입되어 면적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옥천, 잠어실, 토평, 노동 등의 마을이 있으며, 옥천(玉川)의 지명유래는
옛날에 물이 좋은 샘이 마을에 있어 불려진 지명으로, 나무갯벌 서쪽
산너머에 있는 쪽지벌 북쪽 안에 있는 마을로,옥새미, 옥샘으로 불린다.

산행을 시작하다(09:05)
지맥길은 옥천 버스정류장 뒷쪽의 단감나무
밭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초반부터 내리쬐는 뙤악볕이
장난이 아니다...옥천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오늘 길은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심정으로
트랙도 없이 未知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지맥길은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에서 갈라져 나와서 창녕군 성산면과
대합면 경계에 있는 태백산(泰白山:284.6m)에서 신산경표상에서 부르는
왕령지맥길은 대니산(408m), 석문산(242m), 진등산(283.8m)을 지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개포나루터로 향하는데 대부분의
지맥 산꾼들은 그쪽으로 향하며 내가 지금 걷고있는 토평천으로
향하는 산꾼은 1%도 안되기에 당연히 등로도 없고 지도와 track도
없는 고난의 길이다...그래도 가야지

3구간을 지난 2월에 끝내고 4개월 넘어서 오니
겨울철과 여름철의 맥길이 대조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로를 따르니 석리소류지가 나오고 옥천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너머로 네가 잠시후에 걸어야 할 토평지맥길인 142.5m봉이
얼굴을 내민다....소류지 끄트머리에는 옥천리 골담(후동:後洞)마을이
살짝 보인다.
옥천리에 속해있는 골담마을은 이곳에서 본동(本洞)인 옥천마을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 안에 있는 뜸(마을)'이라 골담이라
부르며 옥천마을 뒷쪽이라는 뜻으로 뒷골, 후동(後洞)이라고도 한다.

석리소류지와 작별을 하고 좌측의 감나무 단지로 향한다

단감나무 밭을 치고 올라서니 물탱크가 나오고 마루금에 복귀한다

물탱크봉(09:10)

이곳 이방면은 창녕군에서 단감농장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경남지방에는 김해시에 속해있는 진영단감이 전국적으로
유명했지만 그곳은 도시화로 인해 단감농장이 많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창녕과 의령쪽이 단감농장이 많이 보인다.

농가(09:12)

농가를 지나 가야할 155.9m봉(이동통신탑)을 바라보면서
잠깐이지만 단감농장에 있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만나는 족보있는 155.9m봉으로 향한다

산행한 지 1km도 안되었는데 얼마나 더운지 옷이 땀으로 범벅이다
뒤돌아 보니 지난구간에 걸었던 코장산(228.3m)이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고, 산토끼 마을로 유명한 동산마을 앞 들녁 논에는
모내기를 준비중이다.

단감농장을 지나 벌목지와 소나무 숲사이의 경계를 따라
오르는데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토평지맥에
속해있는 오룩스맵상의 155.9m봉 정상에 도착한다.

155.9m봉(09:22)


155.9m봉 정상 아래에 있는 kt 이동통신탑

동남쪽으로 향하는데 맥길은 좋으나 트랙이 없으니 갑갑하다.
다행히 내가 예전에 가끔 따라 다녔던 송백산악회에서 이 길을
걸었기에 송백산악회 황대장님의 산행기를 보면서 맥길을 걸어간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니 여러개의 물탱크가 나오고 다래농장이 보인다

물탱크(09:24)

물탱크를 지나니 농로가 나오고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농장 너머로는 창녕의 진산이라는 화왕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농로에서 바라본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의 모습
동산리(東山里)는 본래 옥야면의 동산촌이었다... 안리의 남쪽에
동산서원(東山書院)이 있어 동산리로 불리었으며, 노씨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와 6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동요 산토끼가 탄생한 곳이다.
동요 산토끼는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이방공립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이일래 선생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선생이 뒷산(토끼산)에 올라갔다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산토끼를 보고는 '우리 백성도 저 산토끼처럼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 현장에서 바로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였다고 한다...학교로 돌아온 선생은 풍금으로
이 노래를 연주하며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었고,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국민 동요가 되었다고 한다.
동산리가 있는 일대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지(名地)라
불리며, 예로부터 만석꾼이 나고 벼슬을 하는 이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며, 행정리로는
동산, 부곡 2개로 나뉜다.
* 회룡고조(回龍顧祖)란
풍수에서 용(龍:산줄기)이 몸을 돌려 자신을 낳아준 조산(祖山:조종산)을 되돌아보는
형국을 회룡고조 또는 회룡입수라고 한다.

농로를 내려서니 튼실하게 열린 다래밭이 나오고 전기 철조망이 있다.
행여 전기가 통하나 싶어서 스틱으로 확인하니 전기가 통하지 않아
다래밭을 빠져나와 숲으로 들어간다.

다래밭을 빠져 나오면서 뒤돌아 본 155.9m봉의 모습

건강한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나 등로는 보이지 않고, 트랙이 아닌
송백산악회 황대장님의 산행기를 등불삼아 맥길을 이어간다.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 법정 큰스님의 글 中에서 -

조금전 다래밭에서 불어대던 바람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길도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잡초에 묻혀버린 묵묘를 지나
오룩스맵상에 있는 족보있는 142.5m봉에 도착한다

142.5m봉(09:43)

무명묘지(09:45)

묘지에서 내려가는 길은 잡초에 묻혀버렸지만 참으로 좋다

묘지로 내려서는 길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니 토평천이
잠시 머무는 우포늪이 아련히 보인다.
우포늪(牛浦)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에 걸쳐있는 총면적 2.31㎢의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습지로 우포늪 권역은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4호
'창녕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 일원에 걸쳐 있는 우포늪(1.28㎢)과 이방면 안리 일원의 목포늪(0.53㎢),
대합면 주매리 일원의 사지포(0.36㎢), 이방면 옥천리 일원의 쪽지벌(0.14㎢)로
나뉘는데 우포늪은 남한 최대의 자연 호수이다
형성시기는 암반 형성시기는 백악기 중기인 1억 4000만년전이지만 늪이 형성되는 것은
오래잡아도 신생대 마지막 빙하기 시절 때 홍수가 나면 낙동강 물이 우포로 역류하고
평상시에도 배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이 일대는 물이 고여있는 늪이 됐다.
480여종의 식물, 62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55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람사르 협약에
의해 보호받는 대표적인 습지이며, 각종 야생동물과 식물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생태학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어서 생태박물관을 보는것 같으며 호소성 배후습지인 우포늪은 우기나 홍수 때의
과다한 수분을 습지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지속적으로 주변에 공급하여 지형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수문학적 가치를 지니는 자연환경 보전지역이며, 생태자원, 관광자원으로서도
탁월한 경제성을 지닌 지역으로 평가된다.
* 람사르협약의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이다.
이는 1971년 2월 2일에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람사르협약이라
부르며 일명 습지협약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는 101번째로 이 협약에 가입을 했고, 협약 가입 때
1곳 이상의 습지를 람사르습지 목록에 등재하도록 하고 있는데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이
첫 번째로 등록되었고, 두 번째 등록 습지로 경남 창녕군 우포늪이 등재되어있다.

창녕성씨 정절공파 묘(09:49)

묘지로 이어지는 길이 갑자기 사라지고...

급하게 내려서니 대머리 묘지가 보이고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밀고고개(09:47)
창녕군 이방면 옥천리와 석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황대장의 산행기에 밀고고개로 기록되어 있어 인용한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옥천 버스정류장에서 석리소류지를 지나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임도파들은 봉우리 2개만 띵가 묵으면
이곳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겠다.

옥천마을을 넘어가는 고개를 바라보면서
우측의 단감농장으로 시멘트 도로로 향한다.

단감농장으로 들어서자마자 헐!...시멘트 도로는 칡넝쿨과
산딸기 나무로 발디딜 틈조차 안 보이니 눈앞이 캄캄하다.
거기다가 몸뚱아리의 땀냄새를 맡고, 산모기가 물어대는
바람에 가려워서 미칠것만 같다

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린 후 몸뚱아리가 만신창이가
된 농장 도로를 빠져 나오니 농장 물탱크가 나온다

물탱크봉(09:52)

단감농장 쥔장은 농사를 포기했는지 관리조차 안된 물탱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단감밭으로 올라서지만 감나무보다는 잡목이
더 많이 우거져 있다...지난 겨울에 끝냈어야 했는데, 참으로
개고생이다.

무명봉(09:54)

무명봉에 올라서니 이곳부터는 단감농장 쥔장이 다른지
관리되는 감나무밭과 뚜렸한 농로가 보이고 저 끝에는
잠시후에 오를 165.6m봉이 얼굴을 내민다

농로삼거리(10:02)

안부를 지나자마자 직진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버리고 좌측의 감나무밭으로 향한다.

산모기의 괴롭힘(?)에 미칠것만 같다.
그저 모기한테 보시하는거라 생각하며
감나무밭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속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고 걸을만 하다

165.6m봉(10:15)
오늘 산행후 처음으로 산꾼들의 흔적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가운 지...
시그널에는 삼각점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으나 삼각점은 없고,
오룩스맵의 지도에 삼각점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罪도 내가 만들고 福도 내가 만든다
내가 지은 죄 값으로
지옥으로 가는 길도
내가 만들고
복을 지어 극락에
가는 길도 내가 만든다.
법구경 中에서

옥천마을 갈림길(10:17)
165.6m봉에서 같이해 온 뚜렸한 등로는 직진의 옥천
마을로 향하고, 맥길은 반원을 그리며 우측으로 향한다.

아!...습도도 높고 바람한 점 불어주지 않으니,
한 여름도 아닌데 산은 범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가?...

안부(10:20)

인적이 드문지 사람들의 지나간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트랙이 표기되지 않은 지도를 보면서 조심스레 길을 걷는다.

무명봉(10:17)

큰매당산을 향해 조금씩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파묘(10:26)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서낭당의 흔적같은 돌무더기도 보이고...

잡풀에 묻혀버린 묘지를 지나 큰매당산에 도착한다

큰매당산(194.3m:10:28)
경남 창녕군 이방면 옥천리와 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무명묘지 1기가 있고, 맥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이나 지도상 족보있는 산이건만, 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참으로 초라한(?)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산의 지세가 매가 날아가는 형국' 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옥천마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큰매당산 정상에서 직진이 아닌 2시방향으로 내려가는데
트랙이 없으니 상당히 조심스럽다...지도와 황대장의 산행기를
확인, 또 확인하면서 내려간다.

중간 중간 묘지들이 보이고 등로는 아주좋다.

묘지(10:33)

진짜 산악인은
이 산도 가보고 저 산도 가보고
많은 산을 가봤을때
비로소 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 곽정은 -

초반에 개고생 한 것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은 내가걷고 있는 토평지맥의 중요한 分水嶺이다...이곳에서 떨어진
빗물이 우측으로 떨어지면 현창천(玄倉川)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으로 향하고,
좌측으로 떨어지면 모곡리를 지나 쪽지벌로 흘러들어 토평천(土坪川)으로 향한다

석리임도(10:53~11:05)
창녕군 이방면 석리 월산마을에서 모곡리 모리실 마을을
연결하는 임도로 좌측의 모곡리 방향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지만 우측의 석리방향은 비포장 도로이다.
임도로 내려서자 산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옷을 벗어 스틱에 매달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며 10분 넘게 휴식을 취한다

좌측의 모곡리(牟谷里) 방향의 모습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모곡리는 모리실, 모오실이라 불리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골짜기 앞을 지나가면서 골짜기 안에 인가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하며, 그래서 난리를 모르고 무사히 난을 피하였다고 모르고 지난 동리,
부지곡(不知谷)이란 뜻의 ‘모르실-모리실’로 변하여 불리었고 모곡(牟谷)은
모리실의 음훈차라고 한다.

좌측의 석리(石里) 방향의 모습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석리는 동산리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 있는 글방(文房)은 500여년 전부터 노씨들이 살아온 마을로
서재가 있어 글을 가르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글방이라 하였는데
만석꾼 부자가 살았다 한다. 그래서 이방면 이름을 지을 때 성산리의
배말리 마을의 ‘배 이(梨)’와 글방의 ‘방(房)’을 따 모아 이방면이라
하였다고 한다.

션한 불어주는 임도에서 휴식겸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길을 떠난다

임도에서 오르자마자 다시 잡목들의 강한 저항을
받지만 내 앞에 닥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길을 걷는다

무명봉(11:10)

안부(11:12)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석리 월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월산(月山)마을은 '마을 뒷쪽의 산이 둥글어서
달처럼 보인다' 붙혀진 이름이며, 모곡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
골짜기를 월치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등로가 숨어 버렸다.
어차피 이곳은 트랙도 없어 내가 길을 만들어 가야기에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이방면 석리 용배마을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11:23)

비포장 임도를 지나면서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편백나무의
사열(査閱)을 받으면서 아주 편하게 길을 걷는데 오늘 산행은
극락과 지옥을 오가는 산행이다.

숲 / 나태주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가슴을 후벼내는
비의 살내음
숲의 샅내음
천 갈래 만 갈래 산새들은
비단 색실을 푸오
햇빛보다 더 밝고 정겨운 그늘에
시냇물은 찌글찌글 벌레인 양 소색이오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아, 눈물 비린내 눈물 비린내
나를 찾아오다가 어디만큼 너는
다리 아파 주저앉아 울고 있는가.

194.7m봉(11:35)

다시 임도로 내려서는데 또다시 바람은 멈춰버린다

듬밑산갈림길(11:42)
시멘트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水路를 넘어 토평지맥길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듬밑산이 궁굼하여 가보기로 하고 등로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지고 듬밑산으로 향한다

의자(11:44)
시멘트 도로에 올라서자마자 아무도 찾지않은 낡은의자가
산꾼을 애타게 기다린다...이 의자도 나와같이 무척이나
외로운가 보다.

길고가는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듬밑산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좋다...베낭이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묘지(안부:11:51)
안부에는 풀섶에 묻혀있는 곡부공씨와 부인밀양박씨 합장묘가 있다.

바람한 점 불어주지 않으니 베낭을 안 메었는데도
땀을 비오듯 흐르고 산모기와 날파리의 태클이
엄청나게 심하다...임도에서 10여분만에 듬밑산에 도착한다

듬밑산(180.8m:11:57)
창녕군 이방면 상리와 모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족보있는 산이건만 마치 庶者 취급을 받는 산으로
정상에는 낡아빠진 4등 삼각점(창녕470)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이곳 경상도에서는 마을을
'듬' 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위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듬밑산이라 부른건 아닌지...
- 범여의 생각 中에서 -

되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

다시 의자(12:05)

안부(12:07)

165.3m봉(12:09)

족보있는 165.3m봉 정상에서 임도로 내려선다

정오가 되는 싯점이라 그런지 시멘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熱氣가 장난이 아니다

2006년도에 임도를 개설했다는 안내판이 있는 상리 삼거리에 도착한다

상리임도 삼거리(12:12)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상리(上里)는 이방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 남쪽으로는 토평천이 흐르고 유어면 가항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치실 골짜기의 위쪽이되므로 상리라 하였다고 한다

상리임도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면서
도로는 비포장 도로로 바뀌지만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이다

아!...더워서 미칠지경이다. 아직 7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 예전의 8월만큼이나 더운 듯 하다...좌측의 편백나무
그늘을 따라서 걸어가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의미가 없다.
오늘따라 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는구나.

갈림길(12:30)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맥길로 오른다

초이라 그런지 입구의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등로...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올라서니 '산으로님' 과
'대구 산이조치요' 라는 시그널이 걸려있는
208.0m봉 정상에 도착한다

208.0m봉(12:43)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보이고 잡목만 어지럽게 널려 있구나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하는 지맥길

오늘의 최고봉(?)인 208.0m봉의 숲길을 벗어나자마자
묘지들이 나오는데 잡풀과 잡목들이 엄청나게 괴롭히고
거기다가 산모기와 벌레들이 범여의 몸뚱아리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빨아대는지 가려워서 미칠것만 같구나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벌레들한테 헌혈한 셈 치고
布施를 하고 묘지를 빠져나와 숲길로 들어선다

잠깐동안 숲길을 걷다가...

묘지로 내려선다

창녕성공묘(12:57)

묘지를 빠져나와서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산으로 아우님의 흔적이 반갑게 범여를 반기는구나.
다들 우째 사는지 궁금하구나...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랬지...

안부(13:10)

안부에서 迷路처럼 이어지는 흐릿한 길을 따라서 올라서니
무명묘지가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오룩스맵을 확인하니
족보있는 173.5m봉이다

173.5m봉(13:13)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멈춰라.
왜냐하면 당신의 길이 다른 사람들의 길과 같지 않는 이유는
같을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되고 같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무명봉(13:17)

무명봉에서 길고가는 소나무들의 도열을 받으면서 내려선다.
도로가 가까워졌는지 간간히 들리는 차량소리를 들어면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로 내려서니 잠시후에 오를 토평지맥상에 있는
146.1m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悠悠自適거리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흰구름의 마음 / 이 생진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
땅에서 가고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간다
그래서 내가
구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작은 몸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갈 때에도
큰 몸이 되어
산을 덮었을 때에도
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간다

창녕조씨 가족묘(13:21)

묵은임도(13:22)

묵은임도에서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146.1m봉을 오른다
이곳으로 지맥꾼들은 거의 오지 않는데도 등로가 보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146.1m봉(13:27)

146.1m봉에서 맥길은 4시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正攻法으로는
도저히 맥길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잡목의 저항을 피해서
우회하여 트랙도 없는 맥길을 이어나간다

잡풀지대를 벗어나는데 여기는 도둑넘 씨앗을 비롯한
끈적거리는 씨앗들이 옷에 새카맣게 붙어서 산꾼을
괴롭히는데 내가 선택한 이 길...운명으로 생각하며 걷는다

116.2m봉(13:38)

116.2m봉을 내려서니 풀섶에 묻힌 묘지가 나온다

묘지로 내려오니 낙동강으로 입수하려는 토평천의 끄트머리가
살짝 보이고, 낙동강변에 펼쳐지는 창녕군 유어면의 비닐하우스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암면 감리 열왕산 북사면에서 발원한 토평천(土坪川)은
창녕군 대지면, 이방면, 유어면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내륙 습지에서 가장 큰
우포(牛浦)늪에 들려서 휴식을 취했다가 낙동강에 입수를 하면서 生을 마감한다.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우포늪의 옛 지명은 누포(漏浦)이다.

창녕성씨 가족묘(13:51)

창녕성씨 가족묘에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길지않은 산행길이지만 은근히 지루하고 힘이든다

무명봉(14:00)

묘지(14:02)

상석에 기록된 亡者의 이력이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묘지에서 내려서니 정오경에 상리삼거리에서 헤어진 임도를
2시간만에 다시 조우를 한다

임도(14:12)

임도에 내려서니 농업용 물탱크가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가로질러 묵밭으로 향한다

묵밭을 가로 지르는데 이곳에서도 잡풀들의 씨앗이
새카맣게 붙어서 범여를 괴롭힌다...그래도 참아야 하느니라...

묵밭의 끝을 지나...

희미한 등로로 올라서니 오룩스맵상의 73.6m봉이다.

73.6m봉(14:26)
토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고
누구하나 찾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울까.
너무 서러워 마소...중생들도 다 그렇게 사요.

73.6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뚜렸한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살짝 알바를 하면서 유어교로 이어지는 우포3로(도로명 주소)로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오고 성산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려는데
칡넝쿨과 억새풀등이 너무 우거져 함수점으로 향하는게
불가능하다...토평천 맞은편에는 내고향에서 내려오는
신반천도 보고 싶은데 아쉽지만 이곳에서 맥길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土坪川은 창녕군 고암면.대지면.이방면,유어면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고암면 감리
열왕산 북서쪽 산록에서 발원해 감동댐을 이루고 대지면·유어면 일대를
사행(蛇行:하천이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흐름 )하면서 흐르다가 유어면 가항리와
이방면 성산리 사이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며 하천 하류에 우포늪이 있고 토평천
곳곳의 하천 연변에 대나무숲이 들어서 있으며 하류부는 사행이 심하여 하상 물질은
이토(泥土:빛깔이 붉고 차진 흙)로 구성되어 있다.

유어교에서 바라본 토평천의 모습

유어교(14:40)
창녕군 이방면 상산리와 유어면 가항리 사이로 흐르는 토평천 위의
유어교가 있는 이곳은 대동여지도에는 이지포(梨旨浦)라 기록되어 있다.
합수점으로 향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정류장에 가서 베낭을
정리하고 시간을 보니, 14시 45분...창녕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향하는
15시 버스는 시간이 늦어 버렸고, 16시 10분 적교에서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 시간은 여유롭다...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앵벌이 하려다가 내 몸에서
나는 땀냄새가 마치 송장 썩는 냄새만큼 독하다...하는 수 없이 적교 택시를
불러 10분만에 적포에 도착한다

적포삼거리(14:55)
적포마을은 합천군 청덕면 앙진리(仰津里)에 속해있는데 예전에는 초계군
청원면 지역으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물이 소리를 내면서 흐르므로
'우러러' 또는 '앙진(우러를 앙(仰), 나루 진(津)'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으며,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적포(赤浦)가 아닌 적교(赤橋)라고 불렀는데, 적표교의 약칭으로 적포삼거리에
상가지대를 말한다
합천, 창녕, 의령 3개군의 접경지대로서 낙동강이 마을앞으로 흘러내리고 적포교가
있으며 적포교 주변은 상가 지대로 횟집이 많아 장어구이, 잉어.향어회가 유명하다.

택시에서 내려 저 앞에 보이는 안내판 뒷쪽에 공동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도 깨끗하고 수도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문을 잠그고 알몸으로
샤워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버스정류장의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켠과 빵 하나로 점심을 해결하고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이곳에서 내 고향집과는 차량으로 15분정도 거리지만
長兄이 돌아가시고 고향집이 텅비어 있으니 갈 일도 없다.
先山에 들려 산소에 가려고 해도 차 시간도 맞지않고 다음
달에 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한 내려올 계획을 잡고 있어서
오늘은 그냥 서울로 향한다.

예나 지금이나 낙동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시 의병활동지, 한국전쟁시 격전지였는데, 특히 6.25당시
북괴군과 한국군의 치열한 격전지로 그 당시에는 낮에는 한국군이, 밤에는
북괴군이 점령하여 民草들이 엄청나게 어려움을 격은 지역으로 내가 어렸을 때
산에 가면 그 당시의 수류탄 파편들이 있어서 그것을 줏어와 엿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가끔 불발탄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있었다.
북쪽으로 보이는 맨 끄트머리 산줄기가 2013년 6월에 걸었던
황강(신산경표상:수도)지맥 능선이 변함없이 늠름한 모습으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율지나루로 향하는 중이다

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 좌측으로는 내가 조금전에 걸었던
토평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끄트머리에는 잡풀로 인해 발도
들여놓지 못했던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손바닥만한 동네 주위에 다방과 단란주점이 왜 이리 많은지?
잠깐동안 시야에 들어오는 다방 간판만 대여섯개가 넘는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다들 먹고 사는가 보다...

50분간의 긴 기다림속에 주변을 산책하는데 16시 10분경에
동서울터미널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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