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 낙남정맥의 끝은 구지봉이다.
어느 산행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 살펴본다.
낙남정맥 1구간
.............동북으로는 낙동강, 남서로는 섬진강과 남해를 가르며 남부해안을 따르는 분수령이다. 산경표의 `낙남정맥`은 `영운리고개`에서 3.2km 떨어진 324m의 `분성산`에서 끝난다. 그러나 지도 어디에도 `분성산`은 없으니 옛 지명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걷는 마루금은 낙동강에 가장 근접한 매리에서 시작한다.
출처 http://www.okmountain.com/travel_kboard/board.html?m=view&mode=&num=30842&code=1&pg=3&col=&sw=
산경표의 낙남정맥은 불모산-구지산-분산으로 끝난다.지금의 산이름으로 보면 용지봉-구봉산-분산성이 있는 분성산이다(국토지리정보원 지형지명서비스 2005.8.8 지도에 의함---분성산은 김해천문대가 있는 곳과 분산성이 있는 두 곳에 각 각 표기되어 있다)
즉 대암산. 용지봉. 황새봉. 나밭고개를 지나 영운리고개 0.5km전에 남쪽으로 내려간 산줄기는 김해천문대가 있는 분성산 정상 부근에서 남서쪽 능선을 따라내려가 김수로왕비릉에 이르고 여기서 도로위의 육교를 건너가면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구지봉(지형도 표기명: 구봉산)에 이르게 된다. 이곳의 지석묘 상석 위에는 한석봉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는 [구지봉석(龜旨峯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김해천문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분산성에 이르게 되고 이곳이 산경표나 산천총설의 盆山(분산)이다.
○ 이 산줄기를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 산천총설1에서 보면
낙남정맥의 본줄기에 해당하는 산줄기를
智異山- 鷲嶺.................... 佛母- 龜旨峯 南對 沒雲臺로 기재한 다음
지리산- 취령.....................불모- 구지봉 남대 몰운대
그 가지줄기를 나열하면서 龜旨峯 南至 盆山 有 金海府治 라고 기재하였으며
구지봉 남지 분산 유 김해부치
○ 산경표는 智異山-鷲嶺..........佛母山-龜旨山-盆山이라고 기재하고
지리산- 취령..........불모산-구지산-분산
난외에 龜旨峰 南對 沒雲臺라고 기재하였다.
구지봉 남대 몰운대
문헌비고는 영운리고개에서 김해천문대를 지나 구지봉에 이르러 낙남정맥의 산줄기가 끝이나고 김해천문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가지줄기가 분산성에 이른다고 하였고
산경표는 표의 구성상 구지산(구지봉의 오기로 보임)-분산이라고 하여 낙남정맥이 분산에서 끝나고 있는 것 처럼되어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구지봉을 별도 표기하고 문헌비고와 똑 같이 남쪽으로 몰운대를 마주본다라고 부기하였다.
(산경표는 가지줄기를 낼 때는 가지줄기가 하나 일 때는 分二기로 표시하고 다음칸 바로 아래에 본줄기 지명을 그리고 그 왼쪽에 가지줄기 지명을 표기하고 있으나 이 경우는 본 줄기인 구지봉 바로 아래에 기재할 지명이 없어 가지줄기의 분산이 본 줄기 아래에 기재된 것이다).
즉 낙남정맥의 끝은 남으로 낙동정맥의 끝 몰운대와 마주하는 구지봉이다. 표대로 분산성으로 가야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신어산으로 가는 것은 산경표의 의도와는 달리 산세를 따라가는 것이니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곳은 신라 유리왕 19년(42년)에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담긴 금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알 속에서 김수로왕을 비롯한 6가야의 시조 왕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으로 가야문화의 출발지 이자 고대 국문학상 중요한 서사시인 '구지가'가 남아 있는 곳이다.
2001년 3월 7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원래는 거북이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구수봉이라 불리었는데 현 수로왕비릉이 있는 평탄한 위치가 거북의 몸체이고 서편으로 쪽 내민 것이 거북의 머리모양이다. 1908년 참봉 허선이 세운「대가락국 태조왕 탄강지지」란 석비가 있으며 석비의 남동쪽에 있는 지석묘의 상석위에 「구지봉석」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
출처: http://tour.gimhae.go.kr/program/asserts/list.jsp?m=M20202
신 산경표의 박성태님의 글 입니다
낙남정맥, 신어산으로 가야 하는가?
산경표가 원전으로 삼았다고 보는 문헌비고 여지고 산천총설1은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를 불모산(佛母山·지금의 용지봉까지 불모산으로 보고 있다)을 지나 구지봉에서 끝을 맺고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몰운대를 마주보고, 몰운대 북쪽에 세 갈래진 강이 있다(龜旨之峯南對沒雲之臺於三叉之北)’라고 산줄기의 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 산줄기에서 가지 친 산줄기 들을 차례로 기재하면서 맨 끝 부분에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분산(盆山·지금의 분산성)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龜旨峯南至盆山有金海府治)’고 했다.
산경표는 낙남정맥을 불모산-구지산-분산으로 끝을 내어 산줄기의 흐름은 그 끝이 낙동강에 닿도록하고 따로 龜旨峯(구지봉)이란 독립된 난을 만들어 산천총설1과 똑 같이 ‘南對沒雲之臺於三叉之北’이라고 덧붙여 낙남정맥의 끝이 구지봉임을 밝히고 있다.
중간에 龜旨山을 넣은 것은 산천총설1 처럼 불모산 다음에 구지봉을 기재하면 이미 산줄기의 끝에 이르렀으므로 산경표 체계상 그 다음에 盆山을 기재할 수 없다. 그래서 산경표는 구지봉으로 내려서기 전에 龜旨山이란 분기점을 나타내는 임시 명칭을 사용하여 盆山으로 이어준 다음 되돌아 구지봉을 별도로 기재하여 낙남정맥을 마무리한 것이다.
龜旨山이 임시명칭이라는 것은 표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경표에 나타난 거리를 보면 龜旨山은 김해 북쪽 5 리에 있고, 龜旨山 남쪽에 있는 盆山에서 남쪽으로 3 리를 가면 김해 관아가 있다고 했으니 龜旨山에서 분산까지의 거리는 2 리다. 10 리를 5.4km로 본다는 견해에 따르면 盆山은 김해도호부관아(현 김해 동상시장 일원)로부터 1.6km이고 盆山에서 龜旨山은 1.1km이니 이를 현 지도에서 보면 盆山은 분산성이고 龜旨山은 김해천문대가 있는 분성산 정상이다.
분성산 정상에서는 구지봉과 분산성으로 가는 산줄기가 나뉘고 있다. 그러니 龜旨山이 임시명칭이 아니고 실존하는 산 이름이라면 본줄기를 龜旨山에서 둘로 나뉜다하고 그 아래에 龜旨峯을, 그리고 가지줄기인 盆山을 龜旨峯 옆에 나란히 기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낙남정맥의 끝은 구지봉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종주자 들은 신어산으로 가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나전현(현 나밭고개)을 지난 산줄기가 신어산을 지나고 있고, 현지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 산줄기가 끝나는 곳까지 바다였다고 하여 낙남정맥의 끝이 신어산을 거쳐 김해시 상동면 매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나왔고, 지금도 낙남정맥 종주자들은 거의가 이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이 주장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는 산줄기 구분 방법이 다르다. 대동여지도는 산세에 따라 그 굵기를 달리하여 산줄기를 그린 것이지 주요 산줄기라고 해서 굵게 그리지 않았다. 산의 세력이 강한 백두대간의 대부분은 굵게 표현되고 대간이나 정맥이라도 산의 세력이 약한 구간을 보면 다른 지맥들과 다름이 없다.
대동여지도는 산세를 따라 생긴 대로 그린 지도다. 산이 높으면 산줄기를 넓게, 그리고 산이 낮으면 산줄기를 좁게 그렸다. 그래서 수치표고자료와 위성영상을 이용하여 산의 세력만을 감안한 산맥체계를 연구한 사람은 그 결과물이 대동여지도의 산줄기체계와 매우 흡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동여지도는 산줄기를 특정한 기준을 정해서 구분하여 그린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그린 지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첨단장비와 자료를 사용하였다 하여도 산세만을 위주로 만든 산맥체계는 이와 크게 다를 수가 없다. 그러나 산경표는 10대강의 울타리를 기본으로 하여 생활권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주요 산줄기로 하는 구분 기준이 있기 때문에 대동여지도에 굵게 표시된 산줄기도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이름 없는 가지 줄기로 기재되었다.
이 부근을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황산강. 동원진. 삼차하. 취량이 차례로 보이고 취량 서쪽에 금단곶(金丹串)이 있고 서낙동강은 태야강(台也江)으로 기재되어 있다. 낙동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2번국도가 지나는 성고개 부근에서 금단곶보(金丹串堡)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낙동강의 끝을 현재 하천법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녹산수문에서 낙동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의 종점과 비슷하게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신어산을 거쳐 동신어산에서 내려선 산줄기나, 분산성에서 남쪽으로 내려선 산줄기 모두가 바다에 이르기 전의 낙동강으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산경표의 정맥은 반드시 바다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바다 또는 강, 즉 물을 만나 끝난다. 물을 만나지 않고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을 독립된 산줄기로 보는 것은 산경표를 잘 못 본 것이다. 한강권의 경계인 한남정맥은 속리산에서 문수산으로 이어지고 금강권의 경계인 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안흥진으로 이어진다. 한남금북정맥은 표의 구성상 이 두 산줄기가 중복되는 구간을 따로 떼어서 기재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과 사실로 볼 때 산경표를 따라 낙남정맥을 간다면 구지봉으로 가야할 것이고, 산경표의 끝을 무시하고 산세를 따라 더 이어 간다면 무척산으로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낙동강이 끝나는 바다로 간다면, 용지봉에서 불모산을 거쳐 봉화산에서 녹산교로 내려서거나, 봉화산자락에서 입바위로 가야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녹산교에서 이어지는 낙동강하구둑이 강과 바다의 경계가 되고 있지만 위성사진에서 보면 강의 세력은 그 아래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입바위로 간다면 그 이남의 산업단지는 강이나 바다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매운 곳이므로 여름철 파라솔이 빽빽한 백사장 정도로 보고 도로를 따라 물가에 이르면 될 것이다.
<장고개에서 입바위 가는 길>
주 능선은 이 수레길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건너 묘 들을 따라 이어지고 수레길은 마루금
장고개 출발
교통량이 많지 않아 차가 없는 틈을 타 길을 건넌다. 중앙분리대 틈새로 겨우 한사람 빠져 나갈만 하다.
지금이사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부담없이 뛰어 건너면 되지만, 지사공단이 완공이 되어 교통량이
많아지게 되면, 정맥잇는데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이고 저 아래쪽 구량마을 앞까지 우회하는 수 밖에
없겠는데 현 낙남의 낙원고개와 비슷하겠다. 육교나 지하통로 아무것도 없다.
건너편 방벽위로 오르니 시멘트길이 나오고 다시 절개지 자장자리를 따라 기다시피 오른다.
이슬에 바지가랭이가 금새 젖어든다. 역시 건너편과 마찬가지로 몇구간의 계단형태로 절개지를 이룬다.
다 오르고 건너편을 보니 차가 한대 멎더니 사람 다섯이 내리는데 등산할 폼이다.
보개산쪽으로 오른다. 여기서 보이는 건너편은 절개지까지 나올게 아니라 시멘트 방벽으로
보강된 묘터에서 좌측(북쪽)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내려앉는 능선을 끝까지 타면 고개마루로 자연스럽게
떨어지겠다.
절개지 맨 상단 쳐진 로프를 들치고 숲으로 든다. 길 같은건 없다. 10분가량 대충 치고 나가니
수레길을 잠깐 따르면서 좌측 능선을 염두에 두고 방향을 잡아보지만 만만찮다.
두어번 마루금으로 붙었다가 엄두가 안나 다시 내려와서 수레길을 따른다.
학생경주이공, 유인파평윤공, 처사진양강공 계속 이어진다. 거의 공동묘지수준이다
1시방향으로 잠깐 틀어지다 우측으로 약간 꺾이고, 아직은 남향으로 이어진다.
왼쪽에서 올라온 수레길을 만나 따라간다. 동쪽으로 90도 꺾이고, 갈림길에서 좌측을 택하고,
수레길이라도 웃자란 수풀 속이라 아래쪽은 이슬 머금은 풀, 위쪽은 거미줄이라 한손에는
나뭇가지를 꺾어 거미줄을 털고 스틱으로는 아래쪽 풀잎을 털며 나가는데 그게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좌우 Y자로 갈리는데 왼쪽이 맞지 않겠냐, 혹시나 하며 올라서니 금새 다시 만났다가 다시 벌어진다.
역시 왼쪽을 택한다.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2-3m 능선 아래로 난 수레길을 다른다.
말이 수레길이지 풀이 덮여 이리저리 피하고 헤쳐 나간다. 마루금 위로 올라설 엄두가 안난다
계속 따르면 결국엔 능선으로 올라서게 되고, 숲이 트이며 능선너머 송정마을, 녹산공단까지 보인다.
아직까지 리본은 못봤다
구치봉 산불이 난 후 조림을 한 흔적이 있는 비탈을 오르니 큰바위 몇 개가 기댄 봉. 성고개 갈림길이다.
망부석 두개 사이로 성고개가 보인다. 성고개로부터는 길이 뚜렷하고 리본도 있다.
성고개에서는 많이 올라다니고 장고개쪽은 거의 인적이 없다 (25분 휴식)
국제신문, 산악회 리본이 걸려있고, 제대로 된 길 모양이 나온다. 봉화산 등산로다.
봉화고개 (봉오지고개)
우측에서 올라온 수레길과 만나는데 우측은 산양마을 좌측으로 넘어가면 구량마을이 된다.
역시 봉화산안내도에 봉오지고개라 적혀있다.
3분 후 체육시설이 나온다. ‘좌선대’란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철봉, 벤치 등이 놓여있다.
이어지는 길가에 ‘봉화산 안내도’가 있다. 지형도에는 표시 안된 봉과 고갯길 여러개가
적혀있어 봉화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길은 더 잘나있다.
통나무로 보강한 계단길을 다라 오르니 특이하게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나오면 헬기장이고 바로 머리위로 봉수대 돌탑이 보인다.
안내문이 있다.
성화예산봉수대 (省火禮山烽燧臺 소재지 : 강서구 생곡동 산 61번지)
...... 세종7년(1425) 설치 추정... 남쪽의 가덕도 봉수를 받아 북쪽의 분산(盆山)봉수에 연계한 연변(沿邊)봉수대였다...
봉화산 (烽火山 277.8m △김해435) 향토모산 봉화산이라 새겨진 정상석 뒷면에는 ‘옛 이름 省火禮山이요...’
공동묘지봉.
안부. 봉화산 '봉화산안내도'가 있다. 이정표 [←약수터 ↑체력단련장] 여기가 소불등고개다.
삼각점 위에 깃대하나 꽂혀있고, 사방으로 잡풀이 둘러쳤다. 더 이상 진행할 길이 없다. 뚫을 엄두도 생각도 안난다. 물병과 캔이 버려져 있는걸 보니 여기까지 더러 오기는 왔는가 보다. 체육시설에서 여기까지는
길도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다. 억지로 뚫어봐야 도로 절개지이고 공사중인 절벽이다.
봉화산안내도가 있는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우측 성산마을로 내려간다. 옷만 버렸다.
버스가 다니는 도로다.
성산마을 도로 바로 우측 20m에 [성산삼거리] 도로 이정표가 있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녹산배수문 우안으로부터 국도노선을 따라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을 연결한 선"
낙남정맥 - 낙동강의 끝으로 가는 길
낙동강의 종점은 ㉮ 하천법시행령에서는 녹산교에서 낙동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로 규정 ㉯ 위성사진으로 보면 입바위-진우도-장자도-다대동으로 이어지는 선으로 본다. 낙남정맥의 끝이 강의 종점으로 가야한다면 백두 대간에서 분기하여 용지봉에 이른 산줄기는 불모산-화산-굴암산-보배산-장고개로 이어지고 장고개에서 ㉮를 따른다면 봉화산 정상을 지나서 녹산교에 이르고 ㉯를 따른다면 봉화산 정상에 이르기전에 성고개로 내려서서 입바위에 이른다. 용지봉-장고개-녹산교까지 조은산님의 답사기와 신 산경표를 따른 홈지기의 장고개-입바위 가는 길을 덧붙인다. |
용지봉 정상석엔 용제봉이라 적혀있다.
표지석에 龍蹄峯이라 새겨놨다. 용의 발굽 용지봉이라는 표기는 또 뭔고 여기에 오르면 사방으로
트이는 조망을 기대했지만 오늘은 영 아니다.
비는 계속 내리다 잠깐씩 끊기고, 온천지는 안개로 덮혀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왼쪽으로 잠깐 뚫린 구름사이로 통신시설이 있는 불모산정상이 보였다가 이내 덮혀 버린다.
[공군 제8991부대 / KBS불모산송신소] 간판이 있다. 좌측 내리막길은 상점령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화산(군부대)으로 간다. 도로 입구에 군사시설보호구역이므로 관할부대장의 허가를 받으란다.
여기부터 마루금은 의미가 없다. 마루금 고집해봤자 군부대의 철망에 막혀 정상은 오를 수가 없다.
도로를 계속 따른다. (손목고도 665 / 무심코 가다가 부대정문까지 갔다가 돌아섰는데, 우측 내려가는헬기장 가장자리 중간부분 공터가 있어 들어가보니 오토바이 한대가 자빠져 있고 숲이 헐렁해서 뚫을 만하다.
지도정치를 하고, 진행 방위각(134도)을 맞추고 숲으로 들어선다. 5분정도 진행하니 원형 철조망이 나온다.철조망 따라 아래쪽으로 밟은 흔적이 있다. 철조망 넘어 갈수는 없으니 아래로 따라 내려가니
임도로 떨어진다. 이 임도따라 내려오면 되는 일이다.경운기도 겨우 다닐만하다.
구멍난 철판 여러개가 흩어져 있고, 왼쪽 숲으로 리본이 달렸다.
굴암산 가서 점심먹자해보는데 결과는 30분이 조금 더걸렸다. 명찰 단사람은 나보다 더 빠른사람이다.
우측으로 좀 쏠리는 기분이 든다만 방향은 맞다.
도중에 봉긋이 솟은 바위에 올라서면 웅동만과 두동마을의 푸른논, 저수지가 있는 포근한 그림이 펼쳐진다.
전망바위는 서너개 더 나타난다.
고만고만한 암봉의 연속이다. 직등과 우회길이 다 있는데 아기자기하니 정맥길 답다.좁다란 소로길이 고개를 넘는다. 지도상 왼쪽 아래 너더리마을이 있는데, 이름이 그리된거 아닌가 싶다.
손목고도 280이다.
한두명이 앉을만한 터가 있어 잠시 배낭을 내리고 한숨 돌리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너더리고개를 지나 잡목속의 급경사는 거의 사람 돌아가시게 한다. 발목을 휘감는 칡넝쿨은 얼마나 억센지 내 힘으로는 끊기지도 않는다.
튕겨져 나오는 나뭇가지는 눈을 찌르고 그냥 풀숲 가운데 갈림길일 뿐이다.
이제 제법 길같은 뚜렷한 길을 만나니 살것 같다. 능선도 편편해 해방된 민족이 된듯하다.
우측 소나무 사이로 두동마을의 파란 들판과 그 너머로 2번국도가 보인다.
두동고개 흙을 갖다 부어놨는데, 공사를 할려고 하는지, 공사한 흙을 갖다 버려 논건지
이 봉우리 오르면 보개산 인줄 알았다. 손목고도가 400이니 아직도 멀었다. 저만치 앞에서 기다리는 보개산이다.
일단은 바위에 앉아 아래위로 다 까고 바람을 쐰다.
50여m 떨어졌다가 다시 감아 올린다. 경사는 많이 죽었다. 완만하게 올린다.
보개산 (478.9m) 지형도에는 보배산, 강서구청에서는 "강서구의 主山 보개산(寶蓋山)"으로 소개
철 앵글로 카메라 삼각대 모양으로 큰 구조물이 있다.
그 아래에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정상석. 한면에는 '낙남정맥 남단', 옆면에는 寶蓋山이라 적혔던것
같은데 역시 윗부분은 떨어져 나가 蓋山 두글자만 남았다. 삼각점은 지형번호도 없이 사각 기둥만 박혀있다.
봉화산이 아스라하고, 그 너머 구름아래 엄궁동 아파트단지와 승학산도 희미하다.마루금 직전까지 깎아먹었다. 지형도에도 '가덕광산'이라 표기되 있다.
바로 앞 봉긋한 봉우리가 마지막봉(보개산 능선상) 같은데, 방위각은 우측이라야 하는데 길이 없다. 길은 고사하고 절개지라 가만 살펴보니 땅이 둥글게 푹 꺼진 곳이다. 백두대간 자병산 근처의 함몰된 돌리네지형 처럼 지름 50여m 정도로 내려 앉았다. 가에는 접근 못하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다. 방향은 우측이나 암만 살펴봐도 길은 좌측길 밖에 없다. 도리없이 길을 따라 내려간다. 방향은 북동이 된다. (남서로 가야하는데) 우측을 염두에 두고 좌측길따라 내려서니 '이 지역은 재해발생 우려가 있으므로 출입을 엄금한다' 경고판이 달려있다. 함몰된 지형이 맞는 모양이구나. 왼쪽 아래 절개지와 채석장 건물이 보이더니 길은 우측으로 90도 꺾인다. 이제 제 방향을 찾아 가는 모양이다. 사면을 휘돌아서 마지막봉에서 바로 떨어지는곳까지 이어지는 형태다.'山經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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