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로 1519년(중종 14)에 형조좌랑 이명(李洺)이
건립한 양반주택의 별당형 정자이다.
정자의 평면은 丁자 모양이며, 서쪽으로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두 개 연이어 있다.
다음 1칸 크기의 마루방을 두고 그 북쪽으로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일렬로 늘어선 방과 마루에 연이어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큰 대청을 두었다.
방과 대청 주위로 툇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얹었다. 주두 위에는 밑면이 초각(草刻)된 첨차를 놓고 소로들을 얹어 굴도리
밑의 장여를 받쳤다. 보방향으로는 쇠서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화반을 두고 소로를 얹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게 되어 있다.
가구는 오량(五樑)으로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의 동자기둥에 첨차와 소로를
짜넣어 종보와 중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종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대청바닥은 우물마루로 마루 밑이 사방으로 터진 누마루식이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나
합각머리 아래만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대청 서쪽의 온돌방과 마루 쪽에는 방주(方柱)를 세운
굴도리집으로 간결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처마도 대청 쪽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서 팔작지붕을 이루나 서쪽 방 쪽에는 홑처마로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정자의 동쪽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의 둥글게 다듬은 돌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세 개 뚫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자의 몸채는 정자 서쪽에 있는데 정승이 세 사람이나 탄생하였다는 영실(靈室)이 있고,
그 평면은 양택론에서 길형으로 말하는 用자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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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대부들은 결국 왕조를 망쳤다.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경북 안동은 영남 유림으로 대표되는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왕조를 망친 것도 그들이었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고자 무장독립투쟁을 벌인 것도 역시 그들이었다.
임청각(臨淸閣)은 안동에 있다. 초대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의 집이다.
임청각의 주인들은 벼슬하기보다는 학문에 힘썼던 사람들이다. 벼슬한 이는 500년 동안 한 사람뿐이지만 이들은
대대로 영남 유림의 학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때문에 안동에서 임청각은 학문하는 집안의 집으로 명성이 높았다.
토착 양반들로 구성된 자치기구로 향리의 악폐를 막고 지방의 풍기를 단속하던 유향좌수와 도산서원의 원장 격인
도산서원 전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이 바로 임청각이다.
지금 임청각은 1942년에 개통된 집 앞을 지나가는 철도 때문에 50채나 되는 행랑채를 잃어버렸지만 남은 규모만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반가다. 집의 구조도 독특해서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가구식 구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 경사지에 배치한 탓에 행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마당이 비좁고 폐쇄적이며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누정인
군자정이 횡으로 펼쳐져 그 웅장한 규모가 더 강조되어 보인다. 서까래도 위 서까래와 아래 서까래가 주먹장이음으로
결구(結構)되어, 엇갈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철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대문이 낙동강가에
닿아 있었고, 대문을 2층 누각으로 지어 거기서 낙동강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집이었고
어마어마한 권세를 누리던 가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던 가문이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같이 기울기 시작했다. 가문의 모든 것을 팔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상룡은 1896년 가야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나라가 망하자 과감하게 사당에 모셔 놓았던 조상의 위패를 땅에 파묻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너희들은 이제 독립군이다”라고 선언하며 노비를 해방하고 가산을 정리해 서간도로
식솔을 이끌고 떠났다. 당대에 대한 책임을 가장 통렬히 인식하고 삼정승이 나온다는 길지를 풍찬노숙의 가시밭길로 만든
사람, 그 사람이 살았던 집이 임청각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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