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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옛집

[함성호의 옛집 읽기]<17>‘나누는 자본주의’ 운조루

by 범여(梵如) 2012. 3. 16.

운조루(雲鳥樓:국가민속문화재 제8호)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있으며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집터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환낙지(金環落地)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사랑채는 4칸의 몸채에 뒤쪽으로 꺾여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려 있다. 몸채 왼쪽 끝의 1칸은

내루형(內樓形)으로 기둥 밖으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이 사랑채의 구성은 궁전 침전에서와 같이 완전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여기에 일반 대청이 연립하여 있다.

또, 사랑채에는 보통 큰 부엌이 없는 법인데,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더구나 본 사랑채와 직교한 누마루가 또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어 특이하다.

 

사랑채의 오른쪽은 안채로 평면이 트인 □형인데, 중행랑채를┍ 형으로 만들어서 전체 윤곽이 몸채

뒤쪽의 날개부분까지 합쳐 □형이 되어 아주 독특한 평면이다. 중행랑채는 一자형 곳간채의 왼쪽 끝에서

2칸이 앞쪽으로 돌출하여 있다. 이 2칸은 내루형으로 처리되어 1칸은 방이 되고 1칸은 판상(板床)을

높이 설치한 다락이 되었다.

 

머름을 드리고 문짝을 달았으며, 서벽 밖으로는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누하주(樓下柱) 서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는데, 죽담에 오르는 것을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또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안채의 중심부분은 대청으로 주간(柱間)이 개방되어 있다.

대청 좌우로는 안방과 건넌방들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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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 섬진강을 따라 꽃놀이를 가다가 우연히 행랑채가 학의 날개처럼 좌우로 좍 펼쳐진 집을 만났다.

당연히 궁금하여 들어가 물었더니 그 집이 바로 그 유명한 운조루(雲鳥樓)였다.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에서 앞의 두 자를 따온 당호다.

집이 하도 커서 전체적으로 좀 허망해 보였다는 게 솔직한 인상이었다. 대부분 종가들은 좀 허망하다.

미학적인 구성보다는 종가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또 상당 부분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 앞에 놓인 네모꼴 연지(蓮池)도 어딘지 집과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운조루가 자리하고 있는 전남 구례의 오미리는 지리산의 남쪽 능선을 배경으로 마을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너른 들이 펼쳐진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이다. 반지를 떨어뜨린 곳이라는 의미인데, 여인에게 있어

반지는 출산할 때 외에는 잘 빼놓지 않는 소중한 것인 만큼 생산물이 풍부한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례가 어떤 곳인가? 지리산 아래 있다는 것이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부로 명당 운운할 것이 못 된다. 경주 교동의 최준 고택이 그렇듯이 구례의 운조루가 질곡의

현대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문화 류씨 가문에 내려오는 나눔의 정신 때문이었다.

 

풍수상의 명당이 부를 가져다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분명 항상 남들과 함께하는

길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가문의 정신 때문이었다. 동학과 빨치산, 6·25전쟁을 겪으며 많은 부자가

피해를 보았지만 이 집만은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집에는 굴뚝이 없다. 굶는 집들이 많았던 당시, 그렇다고 같이 굶을 순 없고, 연기라도 감추기 위해 굴뚝을 없앴던 것이다.

소심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문 앞에 있는 뒤주를 보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대문 앞에 뒤주가 나와 있는 건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한 것이고,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다.

뒤주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난한 이들과 같이 나누려는 운조루 사람들의 마음에, 가난한 이들의 자존심을 위한 배려에 숙연해졌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