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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양진당(安東河回養眞堂:보물 제306호)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조선후기 풍천유씨 관련 주택으로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배치된 이 집은
풍천 유씨의 큰 종가로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연속되어 건축되어 있으며, 사당만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
행랑채에 우뚝 솟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에 이른다.
행랑채의 솟을대문 서쪽에는 온돌방과 함실부엌을 두고 동쪽으로는 마구간과 온돌방을 두어 口자형의
안채 전면에 놓인 중문간 행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서쪽에 침방과 사랑방이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크기 안에 자리잡고
그 옆쪽에 사랑대청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로 건축되어 있다.
사랑방과 대청의 전후면과 측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계자난간을 둘렀다.
안채는 口자형 평면으로 서북쪽에 정면 1칸, 측면 4칸의 부엌이 있다. ㄱ자로 꺾여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안방과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안대청이 있다.
안대청은 사랑채와 연속되어 있다. 또 ㄱ자로 꺾여서 건넌방, 마루, 방의 순으로 사랑마당과 안마당을
연결하는 중문과 연속되어 있다. 부엌 앞쪽으로는 광과 온돌방이 붙어 있고, ㄱ자로 꺾여서 마루ㆍ헛간ㆍ
중문ㆍ온돌방으로 중문간 행랑채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얹었다.
끝이 초각(草刻)된 부재를 놓아 쇠서가 없는 몰익공계의 구조로 만들었다. 가구(架構)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첨차와 소로를 짜 얹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와 중도리를 받치고 있다.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세우고 첨차와 소로를 짜 넣어 종도리와 장여를 받치고 있다. 대청 전면에는 계자난간을
세운 툇마루를 두었고 측면과 뒷면에는 난간 없이 툇마루만 둘렀다.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사랑채 뒤편 동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속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은 단층 맞배집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워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 소로수장집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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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북 상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청도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동래와 통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가 편리한 까닭이다.”
그래서 상주는 예부터 번성한 도시였다. 물류의 집합지였고 정보의 교환처였다.
그러나 살기에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다. 여름은 덥고 비도 많이 오고, 낙동강의 범람도 있다.
반면에 겨울은 눈도 많고 심하게 춥다.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것이 꼭 살기에 좋은 법은 아니다.
그래서 상주와 안동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건축을 보여준다.
상주지역의 건축적 특색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북방식 평면과 여름을 나기 위한 남방식 구조가 섞여 있다.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이 그 대표적인 집이다.
양진당은 검간 조정(黔澗 趙靖·1555∼1636)이 1626년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해체해 낙동강에
뗏목을 띄워 상주 승곡리에 옮겨 지은 집이다. 남녀 차별 없이 상속이 똑같이 나누어지던 시대에 하필
집을 뜯어 왔다는 게 좀 의아하지만 어쨌든 조정은 처가의 집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그 집이 상주에 안착할 때는 상주의 자연조건에 따라 많은 변형이 이뤄졌다.
양진당의 안채는 방들이 ‘田’자 형태의 겹집이다.
겹집이란 방-마루-방으로 이어지는 홑집과 달리 ‘밭전’ 자의 네모 칸이 모두 방으로 이어져 있는 집을 말한다.
이는 한겨울의 추위에 견디기 위한 형태로 주로 강원도 이북의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런데 입면구조를 보면 조선집에서는 드물게 양진당은 기단이 사람 키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
이는 분명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남방식 주거의 형태다.
더구나 안채 좌측의 날개채는 이층으로 일층은 부엌과 헛간이 있고 이층에는 방과 긴 마루가 있다.
상주지역은 한겨울의 추위도 추위지만 한여름의 더위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태양열로 뜨거워진 땅의 열기를 피해 입면구조가 고상식 주거로 정착된 것이다.
그 결과 양진당을 비롯한 상주의 고상식 겹집형 주거들은 한여름의 더위와 낙동강의 범람,
한겨울의 추위와 눈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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