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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조선 유랑 예인의 전설, 바우덕이

by 범여(梵如) 2012. 4. 13.

 

조선 유랑 예인의 전설, 바우덕이

 

 

인류무형유산, 줄타기

제 6 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새로운 인류무형유산을 발표했다.
6건의 무형유산을 등재 신청한 한국은 택견과 한산 모시짜기, 줄타기가 등재되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줄타기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줄을 타는 재주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한국의 줄타기는 관객을 즐겁게 하는 전통음악과 동작, 상징적인 표현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성격의 전통 공연예술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3M 높이에 걸린 외줄에 아무 안전 장치 없이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다가 반동으로 새처럼 솟구쳐 오르고, 여기에 재담까지 걸쭉하게 곁들이는 고난도의 줄타기를 보고 있노라면 팽팽한 긴장감 속에도 흥이 솟구쳐 오르는데, 하늘을 지붕 삼아 신명의 춤사위를 풀어내는 어름산이.
줄을 숙명삼아 수많은 끼를 풀어냈던 예인들 중 가장 으뜸은 바우덕이다.

유일무이한 남사당의 여자 꼭두쇠

김암덕(金岩德)이라는 이름으로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바우덕이는 5살 때,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한양의 길목으로 삼남 지방의 물건들이 모두 모이는 안성은 조선 최대의 장터로 팔도에서 구름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국을 돌며 곡예와 춤, 노래를 선보이는 기예집단, 남사당(男寺黨)이
자주 머무는 곳이었는데, 그 곳에 가난하고 병든 아비가 어린 딸을 맡긴 것이다.

슬픔 속에 소고춤과 풍물, 줄타기 등 남사당의 기예를 익힌 바우덕이는 이내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황혼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모습은 노을보다 곱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산들바람에 휘날리는 줄타기 재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이 쏟아 진다’는 노래까지 만들어냈다.

그 같은 인기와 재능에 힘입어 바우덕이는 15살이 되던 해,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인 윤치덕이 연로해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만장일치로 뽑혀 여성으로는 최초로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꼭두쇠)가 됐는데, 최초의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이는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예인집단으로 성장시켰다.

옥관자를 하사받다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어 100여명의 무리를 이끈 지 3년째가 된 1865년, 바우덕이는 특별한 무대에 초대받았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중건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공사비와 부역에 대한 부담으로 진전을 거두지 못 했다.

이에 사기가 떨어진 공역자들에게 신명을 불어넣기 위해 바우덕이를 불러들인 것인데,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고 경복궁 중건 현장에 도착한 바우덕이는 최고의 기예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날의 공연이 얼마나 신이 났던지 공역자들은 등에 짐을 진 채로 분주히 뛰어다니며 ‘얼쑤 얼쑤’ 흥을 어울렀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바우덕이에게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나 쓸 수 있었던 옥관자(옥으로 만든 관자)를 내려 주었다.
※ 관자: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망건(網巾)에 달아 당줄을 꿰어 거는 작은 고리. 그 재료(材料)에 따라 관품(官品) 내지 계급(階級)을 표시(表示)했음

유랑 천민집단으로서는 유일무일한 사례로 이 때부터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옥관자를 단 사당패 깃발을 앞세우고 공연을 다녔고, 전국 어디에서든 안성 남사당패의 옥관자가 보이면 전국의 모든 사당패가 만장기를 숙여 예의를 표시했다.
또한 바우덕이가 이끌던 안성남사당패는 ‘바우덕이패’라는 인물 명칭으로 불리게 됐는데, 전국 최고의 스타가 된 바우덕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불꽃처럼 살다간 예인

예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전국을 도는 힘든 유랑 생활 속 폐병을 얻은 바우덕이는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애달픈 죽음이 안타까워서인지 ‘바우덕이는 원래 선녀였는데 죄를 입어 인간 세상에 다녀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시로서는 질곡일 수밖에 없는 천민이자 여자의 몸임에도 탁월한 기예로 백성을 위로하고 신명을 불러일으켰던 바우덕이.
흥과 판이 있는 곳이면 바람처럼, 구름처럼 전국을 떠돌며 줄을 탔던 그녀는 지금 어떤 하늘에서 신묘한 재주를 선보이며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