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등산의 의미와 역사, 자연문화사적 가치 ▣
광주를 품고 있는 무등산은 지역의 지난한 역사를 함께 하며 광주·전남의 정신적 지주가 돼 왔다. 도심 가까운 곳에 위치해 시민들에게 봄에는 각종 꽃을 보는 즐거움을, 여름이면 계곡의 아름다움, 가을이면 억새의 물결, 겨울에는 눈꽃의 신비로움을 제공한다.
무등산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같은 무등산의 의미와 역사, 자연문화적 가치 등에 대해 알아본다.
◈ 어원
무등산의 "무등"은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들"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고,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뜻도 있겠으나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 때는 무진악, 고려 때 서석산이라고 했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 자연적 위치
무등산은 광주시와 담양군, 화순군에 걸쳐 약 3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으 차지하고 있다. 남도의 진산인 무등산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높이는 1,187m다. 북쪽은 나주평야, 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으며 산세가 웅대하다. 북부는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이 분포하고 남부는 퇴적암지대이다, 대부분 완만한 흙산이며 중턱에는 커다란 조약돌들이 약 2km에 걸쳐 깔려 있는데 이것을 지공너덜이라고 한다.
◈ 기후
무등산 정상부는 광주 시가지보다 보통 5℃쯤 기온이 낮다. 광주의 연평균 기온이 12.8℃이므로 무등산의 평균기온은 8℃보다 낮을 것이며, 이것을 평지와 비교하면 북한의 신의주 8.7℃에 해당한다. 서풍과 북서풍이 많은 광주의 바람이 무등산에 부딪쳐 공기가 상승하면서 일으킨 이른바 지형성 강우를 만들기 때문에 무등산의 강수량은 시가지보다 연간 100~200mm쯤 많다. 광주의 연평균 강수량이 1,377.8mm(1981~1990년 연간 평균치)이므로 무등산의 강수량은 1,500mm안팎으로 볼 수 있다.
◈ 역사적 의미와 문화유산
무등산은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구국의 거점이 되었다. 그 증거로 고려말 왜구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운 정지장군의 사당이 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장군과 김덕령장군이, 한말 위기 때는 고광순장군이 활약했다. 또 무등산의 정기는 일제하의 광주학생독립운동과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원동력이 되는 등 무등산은 민주화의 성지로서 의향 광주를 상징하는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게 됐다.
또 무등산에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마한, 백제의 고분을 비롯한 300건이 넘는 문화유산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산성과 증심사를 비롯한 사찰 속에 있는 불탑과 불상, 범종 등이 있다. 고려시대는 국가의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고 조선시대는 전국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의 무대였기에 광주를 예향의 도시라고 부르게 됐다.
◈ 입석대, 서석대 등 주상절리대
문회재청은 광주시 동구 용연동과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 있는 서석대와 입석대 등 무등산 주상절리대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했다.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중생대 백악기에 발생한 화산 활동의 산물로서 용암이 냉각·수축하면서 굳어져 만들어졌다.
특히 오랜 세월동안의 물리적 풍화에 의해 기둥이나 병풍 모양 등으로 분포해 무등산 정상부의 억새풀과 어우러져 매우 수려한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또 산사면 곳곳에 분포하는 많은 애추(풍화된 돌이 중력의 작용으로 급사면에서 떨어져 내려가 쌓인 반원추형의 지형)들은 암석의 풍화와 침식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지질학적 학술가치도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입석대와 서석대의 주상절리는 돌기둥 하나의 크기가 지금까지 남한에서 보고된 것 중 최대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주변의 수목 및 무등산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생태계
현재 무등산에는 약 153과 897종의 한국은 대남부식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6종은 약료작물이다. 무등산에서는 멧돼지, 노루, 고라니를 비롯 조류 등 상당히 많은 동물들이 서식했지만 근래 들어서는 대부분이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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