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삼기 팔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다른 어떠한 지역에서보다도 역사적 또는 설화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오고 있다.
그 중 경주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세가지 기이한 물건과 여덟가지 괴상한 현상’을 나타내는
삼기팔괴(三奇八怪)이야기가 있다.
세 가지 기이한 물건은 신라의
1. 시조 박혁거세가 천신(天神)으로부터 얻었다는 금척리 고분설화의 금자[金尺],
“신라가 건국되고 박혁거세 거서간이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첫 임금이 되었는데,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려고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느 날 어린 임금이 대궐 뜰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웬 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한 뒤 사라졌다.
"저는 <천제(天帝)>의 사자입니다. 천제께서 지금 '<지상의 동쪽>에 신라라는 나라가 이루어졌는데
<새 나라를 축복하기 위해> 이 금척(金尺. 황금 자)을 선물로 갖다 드려라.'고 하셔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금자는 앓는 사람을 재면 병이 낫고 죽은 사람을 재면 다시 살아나는 보물입니다.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금자로 인해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기에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한(漢)나라 왕이 신라에 금자라는
보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 "금자를 잠깐 보고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하자
왕은 고민을 하다가 신하들의 건의를 받고 땅속에 묻어 버리기로 하는데..
"그 금자를 땅 속에 묻어버리는 편이 좋을 듯 하옵니다. 사람의 목숨이란 한도가 있는데
죽어야 할 사람을 그러한 보물로써 자꾸만 살려 놓는다면 마지막에는 나라 안에 사람이
차고 넘쳐 새로 세상에 태어날 자손들이 크게 위협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보물을 가져 공연히 힘센 나라의 욕심을 자극해 침략받을 염려도 없지 않으니
땅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여 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한 적이 있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유물은 금귀고리와 굽은 옥 등이 수습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경주시내의 평지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아 신라의 낮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신비로운 것은 금척의 존재에 대해 오직 박혁거세의 9세손으로 파사왕의 5세손인 삽량태수
박제상의 집안만이 알고 대를 이어가며 「징심록」과「금척지」를 지켜왔다는 것이다.
2. 문무왕과 김유신이 신문왕에게 보냈다는 동해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어느 날, 동해 바다 한 섬에 있는 대나무가 낮에는
둘이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치는 일이 있어 이 일을 신기하게 여긴 왕이 그 섬으로 찾아갔더니
오색구름 속에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왕에게 말하길
"이 대나무는 합쳐지면 소리가 납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를 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돌아가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께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내린 보물입니다."
왕은 곧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 후 일어난 신기한 일들은 적이 쳐들어왔을때 피리를 부니
적들이 물러가고, 병든 사람 앞에서 피리를 부니 병이 싹 낳았고, 가뭄이 왔는데 피리를 부니까
비가 내리는 일이 생겼는데 이 피리 이름이 바로 만파식적이다
3. 분황사 석탑에서 출토된 돋보기 화주(火珠).
선덕여왕이 태양으로부터 불씨를 얻는 수정 돋보기로 그 빛깔이 수정과 같았고 태양열에 비추면
솜에 불이 달렸으니 이 보물은 후에 백율사에 간직해 두었다는데 지금은 그 있는곳을 모른다.
8가지의 세 가지 괴이한 현상은
첫째, 남산부석(南山浮石)으로
경주남산 국사골에 큰 바윗덩이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모습이다.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여서 버선바위라고도 한다.
둘째, 문천도사(蚊川倒沙)로
문천은 반월성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인데 물이 맑아서 마치 모래가 거꾸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셋째, 계림황엽(鷄林黃葉)은
계림 숲은 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래진다는 것인데, 이는 최치원이 신라의 국운(國運)이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갔다는 뜻으로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올린 상서(上書) 중
‘곡령청송(鵠嶺靑松) 계림황엽(鷄林黃葉)’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송악의 고려는 푸른 소나무와 같이 성하고, 계림의 신라는 이미 황엽으로 시들었다는 뜻이다.
넷째, 금장낙안(金丈落雁)은
금장리 앞을 흘러가는 형산강 가에 임금이 놀던 금장대가 있었다 전하는 곳이다.
이곳은 서천과 북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암벽들이 높게 솟아 있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도
이곳에서 쉬어갈 만큼 빼어난 경관이었다는 것이다.
다섯째, 백율송순(栢栗松筍)은
재래종 소나무는 가지를 친 뒤 순
(筍)이 생기지 않는데 백율사의 소나무는 가지를
친 뒤에 솔 순이 생긴다고 한다.
이차돈의 목이 베어졌을 때 그의 머리가 이곳 백율사에 떨어졌고,
따라서 솔 순이 생기는 것은 불교에서 소생을 의미하는 것에서
만들어졌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여섯째, 압지부평(鴨池浮萍)은
연못과 논 등에 나는 마름이라는 여러해살이풀이 있다.
마름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데 안압지에 있는 마름만은 뿌리를 땅에 내리지 않고
물속에 떠 있다는 것이다.
일곱째, 불국영지(佛國影池)는
불국사의 다보탑은 영지에 비치고 석가탑은 비치지 않았다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을 이야기 한 것이다.
여덟째, 나원백탑(羅原白塔)은
나원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은 지금까지도 순백(純白)의 빛깔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원백탑 대신에
선도산의 아침경관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선도효색(仙桃曉色)과
금오산(남산)의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금오만하(金鰲晩霞)를
꼽는 사람도 있다.
삼기팔괴의 이야기는 조금씩은 달랐겠지만 오래전부터 경주인들이
외부사람들에게 즐겨 했던 이야기이다.
현재에도 경주인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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