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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신라 문무왕의 해중왕릉(海中王陵)인 대왕암

by 범여(梵如) 2012. 11. 2.

문무왕(文武王, 626~681)은 신라 제30대 왕(재위: 661~681).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서현의

 딸 문명왕후의 맏아들로서 휘는 법민(法敏)이다.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계림도독부를 설치하려는 당나라군을 격퇴하여 676년 삼국을 최초로 통일한 군주이며

 왕비는 파진찬(波珍飡) 김선품(金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문무왕은 자신이 죽은 뒤 자신의 시신을 동해에 안치하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이는 죽어서 용이 되어 동해에서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리라라고 했다는데

 

이런 내용은 삼국유사에서 잘 살펴볼 수가 있다.

“대왕은 나라를 21년 동안 다스리다가 영륭 2년 신사에 죽었는데, 동해 가운데 큰 바위 위에 장사지내라고 유조하였다.

왕은 평상시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서 불법을 승봉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법사가 말하기를, "용은 축보인데 어찌시렵니까?"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나는 세상의 영화에 싫증을 느낀지 오래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축생이 되면 짐의 평소 뜻과 합치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게되고 이곳이 지금의 대왕암이라고

전해지며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감사한 그의 아들 신문왕은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

다고 한다

 

여튼 경상북도 경주시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신라 문무왕의 무덤이 있다

문무왕릉(文武王陵)은 사적 제158호로 지정된 신라 문무왕의 해중왕릉(海中王陵)이 있다.

이 바위를 대왕암(大王巖) 또는 대왕바위라 하며, 해중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하며

왕릉 주변은 수로를 만들어 바다로 물이 통하게 하였다고 한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되며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가 만들어져 있다

 

혹자는 이 곳이 석굴암, 감은사지에서 비밀 통로가 있지만 확인이 불가능하다고도 하고

아직도 내부의 정체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학자들로 인해 대왕암의 존재가치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문무대왕의 충정만은

기억되어야 할 곳으로 대왕암을 바라볼때 마다 숙연해짐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