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2년 12월 16일
☞산행날씨: 맑고 포근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18.6km(어프로치 포함) / 6시간소요
☞참석인원: 좋은사람들 산악회 30여명과 함께
☞산행코스: 소사재-890봉-삼도봉(초점산)-수도지맥분기점-임도-877봉(삼각점)
861.6봉-감주재-임도-국사봉 갈림길-국사봉-신기마을-하성-백학마을
배티고개(3번국도)-목림이 고개-거말산(봉산)-몽님이고개-우두령
☞소 재 지: 전북 무주군 무풍면 / 경북 김천시 대덕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웅양면
지난주 산행때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얻은 감기로 1주일내내 고생을 한다.
그리고 한 주에 송년회가 4개나 몰려 있어서 무척이나 고생을 하고 최악의
컨디션인 상태에서 황강(수도)지맥 첫구간을 출정하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베낭을 챙기서 탑승지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지난주와는 달리 날씨는 상당히 포근하다.
길바닥은 이틀전에 내린 비로 인하여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양재역에 도착하여 곧이어 산악회 버스에 오르는데 잦은 기침으로 곤욕을 치른다.
오늘 버스기사분은 지리를 잘 모르는지 상당히 헤매는 바람에 목적지인 소사재에 1시간이상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동료산꾼들은 내리자마자 줄행랑을 친다.
황강(수도)지맥의 개념과 지도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군과 경남 거창군 등 삼도가 만나는
대덕산(大德山 1,290.9m) 남쪽의 삼도봉(일명 초점산.1,250m)에서
남쪽으로 300여m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간다.
황강(수도)지맥은 도상거리 105.8km로 행정구역은
경북 김천시, 성주군, 고령군과 경남 거창군, 합천군을 지난다.
경상남,북 도계를 따라 봉산(902m), 수도산(1,317m), 단지봉(1,326.7m), 좌일곡령(1,257.6m)을 지나
가야산을 목전에 두고 두리봉(1,133m)에서 도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거창군과 합천군경계를 따라
남산(1,113m), 마령(1,006.5m), 우두산(의상봉.1,046.2m), 비계산(1,130m), 88고속도로,
두무산(1,038.4m),오도산(1,120m)등 1,000m이상의 장쾌한 능선이 60여km 이어진다.
오도산에서 거창군과는 작별을하고 온전한 합천땅으로 들어서며 고도를 낮춰 토곡산(644m)를 지나면
다시 경상남,북도계를 만나 고령군과 합천군계를 따라 만대산(688m), 시리봉(408m)을 지나
솜등산(271m)에 올라선 도계능선과는 작별을 하고
마지막 여력으로 필봉(330m), 부수봉(317m),성산(205.7m)을 내려서며 맥을 다한다.
황강(수도)지맥 동북쪽으로 흐르는 감천(甘川)은 길이 69km, 유역면적 10만 ㎢로 수도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김천시의 지명을 낳게 하고 김천시일대를 지나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황강(수도)지맥 동쪽내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회천(會川)은 길이 78km, 유역면적 78000㎢로
수도산 동쪽기슭에서 발원하여 대가천(大伽川)을 이루어 성주호에 들었다가
다시 동으로 흘러 고령읍에서 소가천(小伽川), 안림천(安林川과 합류하고
고령군 덕곡면 율지나루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황강(수도)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황강(黃江)은 길이 111km,유역면적 13만 ㎢로
남덕유산(1507m)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합천호(陜川湖)에 들었다가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들며 맥을 다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황강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와 구글어스
12월 14일 포교사 전진대회및 불우이웃돕기 행사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탓에 평일 송년회에 참석한다.
산에 미친탓에 내 몫까지 동료 포교사들이 봉사해야 하는 짐을 맡긴 탓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데 오랫만에 동료 포교사들을 만나니 반갑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달 한번씩 만나는 모임에 나오시는 지원 큰스님도 포교원장 소임을
맡은 이후로 모임을 나오지 못해 자주 뵙지 못했는데 오늘 오랫만에 만난다.
찿아가서 인사를 올리니 무척이나 반가워하신다. 70 가까운 연세에도 건강해 보여 좋다
소사재(少沙峙:11:05)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 있는 고개로서 모래가 날리는 모래재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전북 무주군 무풍면을 있는 고개로 그아래 있는 소사마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細)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縣)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북 무주군과 경남 거창군을 잇는 고개라지만 경남 거창땅이며 고갯마루에서 10여분을 내려가야
도계마을 경계지점으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이 고개를 도마재(都麻峙)라고 부른다.
고개너머에 있는 소사마을을 지나면 전북과 경남의 경계에 있다하여 명명된 지경(地境)마을이고
무풍면과 접경을 이루는 생초령을 넘어면 반딧불로 유명한 덕지리가 있다.
덕동마을의 ‘德’자와 도계마을의 지경리의 ‘地’자를 따서 만든 덕지리는 매년6~8월에 반딧불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부흥, 북수, 도마의 세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보존되어 있어 이 지역의 천연기념물이 지정될 정도로공해나 각종 오염에 민감한 반딧불이가
남아있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백두대간 등로에서 바라본 소사마을
오늘 버스기사는 끝까지 알바를 한다.
들머리가 소사재인데 소사재 가기전에 무주 무풍면 지경마을에서 헤매더니만
다시 올라가다가 소사마을을 지나쳐서 거창군 고제면 탑선마을에서야 세워준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소사재까지 올라와 우측 백두대간 능선으로 들어선다.
4년전 백두대간 길에서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생각난다.
오랫만에 만난 동료산꾼 광교산님이 사진을 한장 찍어준다.
소사재에서 지맥 갈림길까지 약 3km를 걸어서 올라간다.
이 길은 백두대간 길이라서 어차피 어프로치 구간이다.
4년전에 만났던 왕둥굴레차 광고판도 그대로 있고...
지난주와는 확연히 다르게 날씨가 포근하여 산행하기는 좋으나
눈이 녹아서 자꾸만 등산화 아래에 붙는 흙 때문에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밭두렁을 따라서 등로를 이어가는데 좌측에 대덕산과 삼도봉이 보인다.
삼도봉 가는길에서 뒤돌아 본 삼봉산과 우측에 십승지 중의 하나인 무주군 무풍면 모습
전북 무주군 무풍면(茂豊面)은 무릉도원십승지지(茂陵挑原十勝之地)중의 하나로 조선후기에
참위설(讒緯說)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신봉하던 술가(術家)들이 복지(卜地)로
선망하던 곳인데 임진왜란때는 난리를 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들어 온 곳이도 하다.
천재로 인해 변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으로의 열군데인 십승지는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영주의 춘양면, 보은, 상주의 속리산아래 우복동
남원 운봉의 두류산, 예천의 금당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상류
무주의 무풍면, 부안의 변산과 성주의 만수동을 일컫는다.
북한의 삼수갑산과 남한의 무주구천동은 오지의 대명사라 세상일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무주구천동에서 왔느냐고 할 정도로 속세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지만
정감록 등 비결서는 무주에서 가장 오지인 구천동을 제처두고 무풍면을 십승지로
꼽았는데 이는 무풍이 단순히 피란지로서 십승지가 아니라 예로부터 삼풍에서
인재를 구하라고 했듯이, 연풍, 현풍과 함께 삼풍에 속하기 때문이다.
4년전에는 없었던 콘크리트 포장도로 농로도 나오고...
포장도로인 농로를 따라선 올라가는데 삼도봉이 빨리오라 손짓하는 느낌이다.
여기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은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 같다.
이렇게 우회길을 만들어서 등산로와 이정표를 만들어 주시고
자기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도 광고하고...
지난주에 금남기맥길에서 자기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개지랄
떠는 놈과는 질적으로 수준이 다르구나... 암튼 고맙고요. 대박나십시요.
본격적인 오름길이 계속된다. 양지라서 눈도 많이 녹았고 쌓인 눈에도 선답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니 큰 무리는 따르지 않는다. 더운 날씨라 땀이 엄청 흐른다.
삼도봉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모습
거창에는 금원산, 기백산, 단지봉 등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가 10개 이상이나 된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 사이로 냇물이 흐르는데 조선 중기 석루 이경전(李慶全) 선생은 거창을 보고
“푸른 산봉우리들 사방에 모였는데, 한 가닥 냇물이 동쪽으로 비스듬히 흐르도다”라고 했다.
그 옛날 거창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지금이야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있어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이전에는 덕유산과 가야산에서 뻗은 산들을 넘어야만 거창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거창에선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양 중앙관리가 거창으로 발령 받으면 교통이 불편해 ‘내가 이 불편한 곳에서 어떻게 살까’
하고 울었다가 막상 임기가 끝나 거창을 떠날 때는 물자가 풍부하고
산수 경치가 좋아 떠나기 싫어 또 울었다는 것이다.
거창은 예부터 거열(居列), 거타(居陀), 한들, 거창(居昌), 아림(娥林), 제창(濟唱) 등으로 불렸다.
이것을 종합하면 ‘크고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거창분지가 내륙산악지대에서 보기 드문 평야이므로 생긴 이름이다.
지금도 거창평야의 일부를 한들이라 부르고 있는데 한들은 한밭(大田),
한길(大路)과 마찬가지로 큰 들판이라는 뜻이다.
이 땅에서는 사과, 딸기, 포도, 쌀, 수박, 버섯, 오미자, 밤, 양파, 배추, 무 등이 특산물로 생산된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도 “거창은 땅이 기름지다”고 했다.
삼도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거창의 진산인 삼봉산의 모습
삼봉산(1,254m)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거창의 진산으로 덕유산의 들머리에 해당하며
금강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하다 하여 영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또한 3개의 봉우리가 연꽃 모양의 형상으로 되어 있어 삼봉산(三峰山)이라 하기도 하고
세봉우리가 봉황의 모습이라 하여 삼봉산(三鳳山)이라고 부른다는 설도있다.
삼봉산 뒷쪽으로는 덕유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보인다.
갈천 임훈이 쓴 향적봉기에 「초점산에서 서쪽을 일으켜 세워 거창의 삼봉산이 되는즉
이 산이 덕유산의 첫머리봉이다」고 덕유산의 뿌리를 밝혔으며 신경준의 산경표에도
「삼봉산에서 백운산까지가 모두 덕유이다」라고 했다. 곧 삼봉산은 덕유산맥이 시작되는 산이다.
조선조 태종 때 직강벼슬을 지낸 효자 허광은 척간루기에「거창은 경상남도 서쪽 끝에 있으며
북쪽으로 삼봉산이 바라보이고 남쪽에 감악산이 눈에 든다」하였다. 이는 삼봉산이 거창과
서부경남의 진산으로 옛날 가뭄이 들면 삼봉산 금봉암에 있는 용머리 바위에서 기우제를 올리었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부를 만큼 산 경치가 빼어났다. 산 기슭 좋은 터에 금봉암(金鳳庵)이라는 절이 있다.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羅漢道場)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다.
이 산은 불심(佛心), 산심(産心), 무심(無心)의 삼심이 깃들고 금봉암을 둘러리한
바위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러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칼바위, 장군바위, 석불바위, 부부봉, 문바위, 투구봉, 용바위, 노적봉, 칠성봉 들이 모두 셋씩 나란히 짝을 짓는다.
세 개의 영험스런 바위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만한 데 모두 신령스럽고 영험스런 샘물이라고
하며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덕유산으로 달리는 큰 줄기에서 동쪽으로 내린 가지에는 시루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는 금(金)이 난다.
정상의 줄기에는 밑둥이 큰 떡갈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며 특히 겨울의 눈꽃이 볼 만하다.
금봉암(金鳳庵)은 뒷산인 삼봉산의 별칭인 소금강에서 금자를 따오고 암자를 애워싼 산세가
마치 봉황이 알을 품고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봉자를 따서 금봉암 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수도지맥 갈림길 오르기 직전에는 묘지같은 넓은 공터가 있고 전망은 정말좋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오늘 가야할 거말산과 다음구간인 양각산이 보인다.
수도지맥 분기점(12:00)
수도지맥 분기점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좌측으로 400m 떨어진 삼도봉으로 향한다.
초점산(草岾山:1249m:12:10)
경북 김천시 대덕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3개도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원래 이름은 초점산(草岾山)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이곳 능선에 억새가 뒤덮혀서 그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초점산보다는 삼도봉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정상에는 거창군에서 새로 설치한 깨끗한 표시석이 있고 바로 아래에는 예전 표시석도 있다.
오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이다. 남쪽으로는 가야산과 수도산이 멋진 모습으로
보이고 북쪽으로는 대덕산, 서쪽으로는 삼봉산과 덕유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지난 겨울에 지나온 진양기맥길의 금원산과 기백산도 아련히 보인다.
초점산이라 불리는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 삼도봉(경남,북, 전북)이 있으며,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또 삼도봉(경북 김천, 전북 무주, 충북 영동)이 있다.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갈라지는 삼도봉은 조선시대 8도를 분할했던 조선초기에
삼남의 분기점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역할을 했던 곳이다.
삼도봉을 중심으로 음식, 문화, 말씨 등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초점산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맨끝부분의 뾰족하게 보이는 가야산의 모습
초점산에서 바라본 김천쪽의 산그리메
김천(金泉)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린다.
'삼산'은 황악산(1,111m)`대덕산(1,290m)`금오산(977m )을 가리키고
'이수'는 감천(甘川)과 직지천(直指川)을 일컫는다.
원래 '삼산이수'란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314년 중국 동진(東晋)이 나라를 세우고
지금의 남경(南京) 지역을 도읍으로 정하고 '금릉'이라 이름이 붙였다. 그 뒤 여러 번 나라가
바뀌면서도 금릉은 도읍지로 살아남았으며(?) 그 덕에 많은 유적을 간직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할 수 있었다.
금릉에는 산으로 세 봉우리가 있고 두 줄기로 갈라진 진천(秦川)과 회천(淮川)이 있어
'삼산이수'라 불렸다. 특히 많은 시인묵객들이 금릉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는데 당나라의
대표적인 문객인 이태백(李太白)의 '금릉 봉황대에 올라'(登金陵鳳凰臺)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최호(崔顥)의 '등황악루'(登黃鶴樓)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천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금릉'이다.
예전 김천 사대부들이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사상이 높을 때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이태백과 최호를 흠모해 지명을 빌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김천에는 금릉 이외에도 삼산이수. 봉황대, 황학산 등의 지명이 있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특히 김천 선비들은 지역에 있는 자산(紫山`성내동)`황산(凰山`지좌동)`응봉산(鷹峰山`신음동)을
김천의 '삼산'으로, '직지천'과 '감천'을 '이수'로 명했다. 세월이 흘러 김천의 시세가 확장되면서
'황악산`고성산`금오산을 김천의 '삼산'으로 했다가 최근에는 황악산`금오산에다 대덕산을 넣어
'삼산이수'로 부르고 있다.
가야할 수도지맥의 능선들이 아련히 보이고...
고제면 너머로 금원산, 기백산도 보이고...
초점산 정상 이정목
초점산 정상에서 바라본 김천시 대덕면 내감리의 모습
대덕산(1290m)과 국사봉(875m)의 사이 골짜기의 윗쪽 산간 오지에 위치한
벽촌으로 면소재지에서 6km 떨어져 있으며 덕산천의 지류인 감주천의 발원지이다.
연화1리 앞 30 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지방도로의 종점으로 남과 서는 준령으로
경남 거창군과 경계하고, 북은 덕산 2리와 외감리, 동은 문의리와 접경하고 있다.
십승지 중의 하나인 삼봉산 아래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모습
〈무주 진안 장수를 일컫는 ‘무진장’ 고을의 맏형인 전북 무주에는 품이 넉넉한 산이 많다.
지리산과 견줄만한 높이와 품을 가진 덕유산이 대표적이고, 무풍의 대덕산(大德山ㆍ1천291m)이 그렇다.
예로부터 덕이 많은 산으로 알려진 대덕산은 거대한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덕산의 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대덕산이 자리한 무풍은
‘무성하고 넉넉하고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다’는 뜻으로 난세에 몸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로 유명하다.
과거 신라의 땅이었으나 현재는 전북에 속한다. 하지만 언어와 풍습생활은 김천과 거창에 가깝다.
마을 앞으로는 금강 상류가 흐르고 뒤로 대덕산이 우뚝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다.
전란의 시대, 나제통문을 지나 무풍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어머니의 품처럼 후덕한 대덕산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지 않았을까. 대덕산은 예나 지금이나 찾아오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다시 수도지맥 분기점(12:18)
드디어 수도지맥의 첫 발자욱을 내딛는다.
내 작은 발로 약 116km(접속구간 포함)의 걸어 합천군 청덕면 청덕교까지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눈녹은 안부 능선을 따라서 걷기 시작한다.
눈덮인 안부 능선을 걷다가 조금 내려서니 묘지 한기가 있고
이곳에서 약간 꺽어져서 우측의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고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스틱을 이용하여 내리막길을 걷는데 2번이나 넘어진다.
들머리에서 늦게 산행을 시작하는 바람에 괜스레 마음만 급해진다.
정상에서 15분정도를 내려오니 포장된 농로가 나온다.
농로(12:35)
농로에 내려서 산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점심이래야 떡 2개와 두유 한개. 막걸리 한병이 전부이다.
농로에서 바라본 수도지맥 갈림봉의 모습
15분정도의 식사시간을 마치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좌측의 파란색 물탱크를 지나니 y자의 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수도지맥의 표지판도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이지만 10분도 가지 않아서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지맥길은 밭으로 개간이 되어있고 비포장 농로가 나온다.
뻘같은 밭 가장자리를 가로질러서 다시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다시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나고...
능선에는 눈이 녹아서 등로는 상당히 질척거린다.
뒤돌아보니 초점산(삼도봉)과 대덕산이 보이고...
대덕산(大德山)은 부드럽게 생겼으면서도 우직한 남성다운 덕기가 서린 산이며,
이곳으로 살러오는 사람들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서 큰덕을 입었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옛부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대덕산이 자맂바고 있는 무풍동(茂豊洞)은 남사고(南師古)의
십승지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고향으로 유명하다.
대덕산은 옛적에 다락산(多樂山), 다악산(多惡山)으로 불리웠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한다.
전북 무주군 동쪽에 위치한 대덕산은 가야산으로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사이에 두고 삼도봉의 분기점인 초점산(일명:삼도봉)을 옆에 거느리고 있는 산이다.
대덕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으로는 또다른 삼도봉, 민주지산, 석기봉, 각호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거칠봉, 백운산, 남으로는 삼봉산, 덕유산, 남덕유산이 조망되는 곳이다.
별 특징이 없는 밋밋한 안부 능선을 따라 걷는데 눈이 녹아 걷기가 힘이든다.
조금을 더가니 멋진 암릉이 나타난다. 다시 조금을 치고 오르니 877봉이 나타난다.
877봉(삼면봉:13:50)
877봉은 경북 김천시 대덕면과 거창군 고제면, 웅양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서래야 박건석’이 붙인 삼면봉과 대선배 준희님의 표지판이 있고
정상에는 4등 삼각점(△무풍 430)이 있고 등로아래로 대덕면 내감리가
보이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국사봉으로 향한다.
877봉 이정목
877봉 삼각점
삼도봉과 국사봉 사이에 있는 김천시 대덕면 감주 골짜기의 4개의 부락 (내감 · 외감 · 중감 · 절골) 모습
추풍령 아래 첫 고을인 김천은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감천(甘川)과 직지천이 만들어 놓은 차진 땅이 많은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5대장인 김천장이 서기도 해서 수많은 상인들이 오가던 곳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김천은 산 좋고 물 좋은 삼산이수의 고장이다. 또한 삼한시대부터 불교의
기운이 감돌아 영남에서 가장 오랜 불교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감천(甘川)의 ‘감(검)’이란 원래 모든 만물을 있게 한 존재자로서 신(神)을 의미한다.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변하면서 ‘감’이라는 말의 신이란 뜻은 없어지고
‘중심’이라는 뜻으로만 쓰이게 된 것이다. 감천(甘川)이란 김천 고을의 중앙천이란 뜻이다.
실제로 우두령과 대덕면 내감리에서 발원하는 냇물이 모여들어 감문면 태촌리(배시내)를
지나 선산의 낙동강에 이르기까지 76㎞에 달하는 흐름을 통하여 김천의 온갖 삶터를 이루어낸 것이다.
결국 김천이 감천이요, 감천이 낳은 삶의 터전이 김천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할 국사봉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877봉에서 내려서니 음지라 그런지 눈이 꽤나 쌓여있고 진달래의 군락지인지
진달래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머리를 숙여가면서 걷지만 자꾸만 베낭이 걸린다.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도 한번 뒤돌아보고...
안부에서 멋진 소나무를 지나고 이윽고 좌측으로 꺽어지니...
우측은 약초재배단지인지 철제 휀스가 설치되어 있다.
휀스를 따라서 치고 오르니 아무런 표식도 없는 861.6봉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다가 내리막길로 향한다.
지나온 삼도봉과 수도지맥 분기봉이 아직도 뭔 미련이 남는지
갈길 바쁜 산꾼을 놓아 주지를 않는다.
철제 휀스를 따라서 급경사로 내려온다.
지맥 등로 가운데 용궁 전씨와 경주김씨 부부 합장묘를 지나고...
편안한 임도를 만나서 10여분을 내려가니 도로가 나온다.
감주재 임도
임도를 내려서니 2001 임도시설 표지석이 보이는데 거창군 웅양면 한기마을로 이어지는
구간은 시멘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김천시 대덕면 내감리 구간은 비포장도로이다.
감주재(甘州峙:14:30)
경북 김천시 대덕면 내감리와 경남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를 잇는 고개이다.
감주의 유래는 삼도봉 아래 외감리와 내감리의 골짜기가 깊은 계곡이어서 감계(嵌溪)라 하였고,
군진(軍陣)이 주둔했던 병영에서 계곡으로 쌀뜨물을 흘려보내 물맛이 달았으므로 감주(泔州)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맥길은 도로를 건너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국사봉으로 향한다.
울님의 볼만큼이나 빨간 가시열매도 보이고...
철없는 버들강아지
국사봉 갈림길
국사봉(國師峰:875.1m)
경북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와 경남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의 경계지역에 있는
봉우리로 옛날 국사를 통신하기 위해서 봉화를 올리던 봉우리로 삼국시대에
백제가 처음 쌓았다가 임진왜란때 길이 1.5km, 높이 2m로 다시 고쳐쌓은 석축인
국사봉여산성지(國士峰女山城址)가 있으며. 정상에는 삼각점(△무풍308)이 있다.
국사봉에서 분기점으로 되돌아와서 능선을 타고 내려온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와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를
잇는 마을 소로가 나오고 다시 직진하여 밭 가운데로 지나간다.
문의리 입구(15:00)
문의 마을은 동에 월매산(1,023m), 서에 국사봉(875m) 등 높은 산이 많은 고지대로 들판이 적다.
대 1, 2리에서 발원된 화전천이 북류하고, 화전천 이 들판을 이루어 논밭이 되고 있다.
3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면소재지와는 4.5km 거리이다.
동은 화전 2리, 서는 경남 거창군, 남은 대 1리, 북은 화전 1, 2리와 접경 한다.
고랭지 채소 · 포도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마을 소로에서 밭 가운데를 지나가면 새로지은 주택이 보인다.
수확을 포기한 무우가 밭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지맥길에는 새로지은 주택과 과수원이 있다.
지맥길을 이어가기 위해서 주택 마당으로 들어서니 초록
그물망으로 막혀있어 다시 되돌아 나와서 우측으로 돌아간다.
주택을 우회해서 밭 가운데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뒤로
올라서니 가시밭길이라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기 그지없다.
가시밭이 너무 심해서 안부 능선을 포기하고 밭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뒤돌아 본 국사봉과 문의마을 (김천시 대덕면 소재)
안부를 지나니 조릿대 대나무숲으로 된 지맥길을 이어간다.
얼굴이 할키고 베낭이 걸리면서 겨우 조릿대 숲을 빠져 나온다.
조릿대숲을 빠져나와 조금을 걸으니 관리가 안된 하성(霞城)이 나타난다.
하성(霞城 :15:40)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에 있는 성곽으로 성벽은 계곡을 포함한 산 정상부를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1983년12월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됐다.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길이는 1500m, 높이는 2m 정도이며 현재 성안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언제 성을 쌓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백제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이일(李鎰) 장군이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사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 성은 남매가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누이동생이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다하여,
여성(女城) 또는 치마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의 주변 곳곳에는 돌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성을 쌓다 남은 돌이라고 전해진다.
문화재 지정을 하지 말든지, 지정을 했으면 제대로 관리를 하던지...
경남도의 문화재 관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정말 한심스럽다.
하성 성곽 능선을 걸으면서 수도지맥길을 이어간다.
하성에서 내려서는 진산재(배티고개)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빽빽히 조성되어있다.
하성 이정목과 안내판
등로에서 바라본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 예서마을의 모습
배티고개에 있는 백학동(白鶴洞)과 오산(吾山)마을
대덕면으로 통하는 “배터고개”에 자리하고 학모양으로 생긴터라 하여 불린 이름이며
그 옆에 있는 오산마을은 옛날 큰 오동나무가 있었으므로 오동 ‘오’자
오산(吾山)이라고 썼다고 한다. 원오산이라고도 부른다.
배티고개에서 바라본 거창군 웅양면
배티고개(15:50)
경북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와 경남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를
잇는 고개로 3번국도가 지나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있다.
진산재라고 부르는 배티고개는 경남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곳이다.
백학마을이 있고 경로당이 있으며 이 조그만 동네에 다방도 보이고
길 건너에는 비닐하우스 단지가 즐비하다.
백학마을 도로를 건너서 좌측 농로를 따라 올라간다.
3번국도를 건너니 이정표(←국사봉 ↑거말산 정상 3km) 나오고 거말산을 향해서 걸어간다.
3번 국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서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면에 이르는 일반국도로 길이는 555.2㎞이다.
왕복2차선은 302㎞, 왕복4차선은 205.9㎞, 왕복6차선은 42.6㎞이다.
거창군 마리면에서 37번, 김천시 대덕면에서 30번과 교차하고, 김천시내에서
우측에 비닐하우스를 두고 포장 농로를 따라 2분정도를 올라 가니...
Y자형의 도로가 나오고 지맥길은 절개지로 올라서나 구태여 지맥길을
고집하지 말고 우측 농로로 올라 가야겠다. 지맥길을 고집하여 올라가니
잡목과 말라 비틀어진 돼지풀과 가시넝쿨로 인하여 길을 이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3분 이내에 밭 가운데를 통과하여 조금전에 갈라진 우측 농로가 만난다.
절개지로 올라선 지 3분만에 밭 가운데를 통과하여...
3분전에 헤어졌던 농로를 만나고 다시 Y자의 길에서 우측 길로 올라선다.
오늘 내가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우측의 국사봉과 좌측의 861.6봉 사이의
옴팍 파인 부분이 감주재이고 그 너머로 초점산과 수도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바로 앞에는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웅양면 한기리(汗基里) 경상북도와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875미터의 국사봉(國師峰)
남쪽 기슭에 자리하며, “큰재”라는 뜻에서 대현리 (大峴里)라 하다가 원한기(元汗基)라 부른다.
눈이 녹은 길을 올라간다. 국사봉 아래 원문의 마을도로에서 부터 여기까지
나홀로 걸어간다. 참으로 호젓하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걷는데 갑자기
허기가 지면서 체력이 급속하게 저하되는 느낌이다. 동료 산꾼은 앞,뒤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두유 하나와
곶감 3개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다시 지맥길을 이어간다.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길은 끊겨지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올라간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의 가파른 절개지 위에는 安東權氏의 묘지가 있고
이곳에서 10분정도를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니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10분정도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고 이내 편안한 안부능선이 나온다.
건너편에는 다음 구간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멋진 능선들이 보인다.
소나무 숲사이로 걷는데 넘어진 소나무로 인하여 힘이들긴 하지만 큰 지장은 없다.
다시 약간 우측으로 능선이 꺽어지니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거말산이
보이고 좌측 아래에는 새로 조성한 묘지들이 보이고 임도도 있다.
목림이 고개(16:20)
경남 거창군 웅양면 신촌리와 경북 김천시 대덕면 대리를 잇는 고개로
이정목(←배티고개 2km 거말산 정상 1km →)이 서있고 사람들이 다니는지 길은 뚜렸이 보인다.
고개에서 다시 급경사의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목림이 고개를 올라서니 오늘 산행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넘어진 나무와 간벌을 하고 정리가 안된채 방치되어 있는 소나무와
진달래 나무등이 등로를 막아서 걷기가 불편하고 시간은 지체된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제 서서히 체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는데 넘어진 나무들이 테클을 건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안부로 올라서니 이곳은 눈이 꽤나 많다.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칼날같은 암릉 능선이 나오고 이곳에서
네발로 기다시피 거말산으로 향하는데 해는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거말산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거창군 웅양면(熊陽面)의 모습
경상남도 거창군 중북부에 있는 면으로 산이 곰이 누워있는 모양 같아 와웅산(臥熊山)
또는 곰내뫼, 웅남(熊南)이라고도 썼다가 양지바른 따뜻한 곳이라 하여 웅양이라 한다고 한다.
면소재지는 노현리이며 면 전체가 800m 내외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에는 흰대미산(1,018m)이 솟아 있다.
계수천이 면 중앙부를 남쪽으로 흘러 황강에 합류하며, 하천연안에 평야가 발달했다.
쌀·보리 이외에 사과가 많이 생산된다. 노현리에 표충사, 한기리에 하성지(霞城地) 등의 유적이 있다.
김천-진주를 잇는 국도가 면내를 남북방향으로 지난다
거창의 명산인 양각산과 흰대미산도 보이고...
암릉을 치고 올라오니 ←배티고개 2.6km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거말산 갈림길(16:35)
이곳에 베낭을 벗어놓고 지맥길에서 70m 벗어난 거말산으로 향한다.
거말산 정상에는 산꾼 대선배인 준.희님께서 봉산이란 이름을 붙여놨다.
이곳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우산, 봉수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진양기맥과 팔공기맥을 같이한 억새 아우님의 시그널을 만나니 반갑다.
거말산(巨末山:901.6m:16:37)
경남 거창군 웅양면 군암리와 경북 김천시 대덕면 대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거말산의 옛 이름은 거말흘산(巨末訖山)이다.
경상남, 북을 경계하는 산으로 옛날 군사적 요충지였던 우두령재를 동쪽에 두고
서쪽의 거창군 웅양면 하성리에서 경북 김천시 대덕면 태리를 넘는 배티재를 두고 있다.
엣날에는 거말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우산, 봉수산이라 불렀고 봉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거말흘산 봉수대는 남쪽 금귀봉 봉수대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 구성산 봉수대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거말흘산 봉수대 축법은 돌과 흙으로 쌓았으며 규모는 둘레 20m, 높이 4m, 폭이 3~4m가 된다.
내지 봉수로 봉수군은 오장 2명, 군사6명이 배치되었다고 하며
19세기에 편찬된「거창읍지」에 따르면 봉수군은 별장 1명, 군사5명이 있었다고 한다.
거말산 삼각점(△무풍 308)
다시 거말산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베낭을 메고 우두령으로 향한다.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낙엽아래 살짝 얼어있는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다행히 거창군에서 설치한 로프를 잡고 내려온다.
급경사를 치고 내려오니 무명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임도(16:55)
일부 지도에는 몽님이고개라고 표시되기도 했지만 근거는 확실히 알 수없다.
임도를 건너니 이정표(←거말산 정상 740m 우두령 660m→)가 나오고 이곳부터는
굉장히 편안 길을 따라서 편안하게 우두령으로 향한다.
등로 주위에는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우두령의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건너편에는 산허리를 잘라서 아마도 천년주택(공원묘지) 단지를 조성하는 모양이다.
황톳 능선의 절개지 아래로 내려오니 Y자의 길이 나오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감천(甘川) 발원지 가는 길
감천은 김천을 대표하는 하천으로 대덕면 우두령 봉화산[901.6m], 내감리 국사봉[875.1m],
덕산리 대덕산[1,290.9m]에서 발원하고 삼도봉에서 흐르기 시작한 부항천과 지례에서 합류하여
북동 방향으로 흐르다가 김천시를 관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의 총 길이는 약 74.27㎞로
발원지인 대덕면 우두령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최하류부까지의 거리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말은 있으나 글이 없어 소리 또는 의미를 한자어로 표현하던 한자차용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 감천(甘川, 甘泉)의 표기는 우리말 ‘감’의 소리를 한자어에 대응시켰으며, ‘천’은 ‘내’의
뜻을 빌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감천은 우리말로 감내가 된다. 기원적으로 우리말 ‘감’은
신(神)을 이르는 것으로, 단군왕검에서 보듯 ‘검’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즉 ‘검’의 모음이 바뀌어 ‘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은 신뿐만 아니라 ‘중심’의 의미도 함께 있었으므로, 감천은 ‘신’이란 뜻이 없어지고
‘중심’이라는 뜻만 남아 김천 지역의 중심을 흐르는 하천인 ‘중앙천’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 밖에 김천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감천의 물맛이 다른 지역보다 달고 맛이 있어
감천(甘川)이라고 명명하였다고도 한다.
우두령으로 내려서니 임도 준공 표시석이 보이고 산행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우두령(牛頭嶺:1580m:17:05)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와 김천시 대덕면 문의리를 넘나드는 반은 포장 반은
비포장인 1099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좌우측에 지맥 들날머리가 있다.
고개가 마치 소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령이라 한다.
이 고개는 대덕산(大德山, 1,290m)에서 동쪽으로 가야산(伽倻山, 1,430m) 방면으로 뻗는
지맥(支脈) 중의 국사봉(國士峰, 875m)과 수도산(修道山, 1,317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우두령 동쪽 수도산의 북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감천이 김천시를 흐르고, 행정 구역상
거창군에 속하는 우두령 남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웅양면을
관통하는 계수천(溪水川)으로 흘러들며, 계수천은 다시 황강(黃江)으로 흘러든다.
고개 서쪽으로는 남해∼초산간의 3번국도가 지나는데, 이 도로는 북쪽으로 지례(知禮)를
거쳐 김천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웅양(熊陽)을 거쳐 거창에 이른다.
따라서, 우두령은 경상북도의 남서부지역과 경상남도의 북부산간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옛날에는 남해안의 삼천포(지금의 사천)에서 진주·산청·함양을 거쳐 우두령을 넘고,
다시 북쪽으로 김천·상주·점촌을 거쳐 문경새재(聞慶鳥嶺)에 이르는
남한의 중앙을 남북으로 직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우두령에 도착하여 조금 내려오니 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고 소공원이 있다.
이곳 뒤에는 조그만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등목을 하고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동료 산꾼들과 함께 소주 한잔을 마신 다음에 후미가 도착한 18시 40분경에
이곳을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21시 40분이 된다.
집에 도착하여 오랫만에 아들과 딸의 얼굴을 본다.
치킨 한마리를 시켜서 애들과 함께 맥주 한잔을 마시면 산행의 피로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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