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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황강(수도)지맥(終)

황강(수도)지맥 제2구간 - 우두령재에서 목통령까지

by 범여(梵如) 2013. 1. 21.

☞산행일자:  2013년 1월 20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옅은 박무

산행거리: 도상거리 17.3km(어프로치 포함) / 7시간소요

☞참석인원: 좋은사람들 산악회 40여명과 함께

☞산행코스: 우두령재-헬기장-861봉-1008봉-마당바위 전망대-시코봉(양각지맥 분기점)

                 신선봉(금오지맥 분기점)-수도산-동봉 전망대-불석재-구곡령-송곡령(고비재)

                 단지봉-좌일곡령-1118.3봉-용두암봉-999.8봉-목통령-상개금 마을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덕면, 증산면 / 경남 거창군 웅양면,가북면

 

1년중에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지만  날씨는 영상에 가까울 정도로 포근하다

그리고 올해는 워낙 춥고 눈이와서 추운 날씨에 견디는 학습효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만한 추위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맞은 癸蛇年

1월도 중순을 넘어 하순으로 접어들건만 뚜렸한 실적도 없이 왜그리 세월이 빠른지...

 

지난 한주는 전 주에 2박3일간 제주도가서 놀고오는 바람에 사무실과 현장이 정신없이 바빠서

산행자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베낭을 메고 승차장인 양재역으로 향한다.

양재역에서 동료산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르는데 또 차량과 기사가 바뀐 모양이다.

근데 버스가 예감이 이상하다. 지난번 도솔지맥 2구간 때도 차량의자가 고장이 나서

고쳐 달라고 산행대장에게 요구를 몇번이나 요구를 했는데 고쳐주지 않더니만

새로 바뀐 버스도 또 고물의자를 만나 고생을 한다... 범여의 福이 이것밖에 안되나?

거기다가 나이드신 기사분이 산악회는 처음인지 죽전 정류장에서 동료 산꾼을

태워야 하는데 그냥 지나는 바람에 대장이 소리를 지르니 이 양반이 고속도로 1차선에서

4차선으로 차선변경을 하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아찔함과 함께 20분정도 시간이 지체가 된다

 

버스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드는데 차가 이상이 있는지 금방이라도

차가 멈춰 버릴것만 불안한 예감속에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내려 비빔밥 한그릇으로

아침을 떼우고 다시 출발을 하여 무주I.C를 빠져나와 적상삼거리에서 직진을

해야하는데 무주구천동 쪽으로 죄회전하여 빼재를 지나 거창군 고제면을 거쳐서

웅양면으로 넘어가는데 오르막에는 치고 오르지도 못하고 내리막길에는

금방이라도 계곡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불안하기만 하다.

 

웅양면에서 3번국도로 접어들어 우측으로 한참을 간 다음에 예상시간보다

1시간 가량이 늦은 10시 55분에 들머리인 우두령고개 아래에 도착한다.

산에 미쳐있긴 하지만 버스에다가 목숨을 담보로 한 산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낀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우두령재(10:55)

에상보다 1시간 늦게 들머리에 도착하는 바람에 서둘러 등로로 접어든다. 

우두령 고개 옆에있는 거창군 웅양면 산포면 어인(於仁)마을의 모습
어진 사람이 많이 날 것이다 하여 이름되었고, 경상북도와 경계이 있다.

우두령에 자리하므로 우두령(牛頭嶺) 마을이라고도 한다.  

 

어인마을 입구에서 우두령 고개를 향해서 서둘러 올라간다.

지난 1구간에도 버스기사가 헤매는 바람에 늦게 출발했는데

오늘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괜스렌 산꾼들의 마음만 급해진다.

우두령(牛頭嶺:575m:11:00)

경북 김천시 대덕면 대리와 경남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산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행정 구역상 거창군에 속하는 우두령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우두령마을이 있다.

우두령은 과거에 김천시 대덕면과 거창군 웅양면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고갯길이었다.

1978에 3번국도가 확장 포장할 때 이 부분에 노선이 변경되었다.

현재는 김천시거창군을 잇는 3번 국도가 우두령 북쪽 문의리 골담마을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배티재지나 거창군 웅양면 한기리로 이어지고 있어, 우두령을 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포장된 농로가 우두령을 지나 대덕면 대리웅양면 산포리를 연결하고 있다.

이 일대는 상대적으로 비탈과 하곡의 경사가 완만하여 골짜기 일대의

토지 대부분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1592년 7월 17일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김면이 의병 2,000명을

매복시켜 왜군을 물리친 우두령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居昌郡史에는 우척현(牛脊縣) 싸움으로 기록하고 있다.

본격적인 수도지맥 등로로 접어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이 일대에는 소(牛)에 관련된 지명들이 유난히 많다.

우두령은 소머리고개이요 시코봉으로 소의 코이고
양각산은 소의 양쪽 뿔이고 구수재는 소의 여물통(밥통)등의 지명들이 있다.

흰대미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은 쇠불알을 뜻하는 우량동(牛郞洞)이다.

1시간 늦게 산행을 시작한 관계로 다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등로에 오르자마자 산악마라톤 하듯이 산행을 시작하는데

범여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산이란 유유작작 즐기면서

산행을 해야하는데... 나 역시 덩달아 맘이 급해진다.

헬기장(11:08)

10분정도 걸으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된다.

우두령이 575m이니 일단 1008봉까지 고도를 440까지 높혀야 한다.

초반부터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20분정도 걸으니 몸이 예열되고

다시 정상적인 산행모드로 접어드니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헬기장을 지나니 철조망이 쳐진 약초재배 단지가 나오고...

철조망을 우측에 끼고 5분 정도를 치고 오르니 땀이 쏟아진다.

그리고 싸락눈이 바닥에 깔려서 자꾸만 미끄러져 아이젠을 착용할까말까 고민이다.

861봉(11:30)

이곳에서 웃옷하나를 벗어 베낭에 넣고 철조망을 끼고 90도가량 꺽어져

급하게 우측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너무나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한다.

본격적인 오르막 안부 능선을 걷기 시작한다.

안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약간 차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걸을만하다.

이곳은 상당히 큰 소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암릉구간이라

상당히 조심스럽다. 거기다가 눈이 녹아 얼음으로 바뀌어 결빙되어

있기에 한순간 방심하면 그냥 사고로 이어지기에 바짝 긴장을 한다.

멋진 소나무에 미끄러운 암릉을 지나니 1008봉이 나오고...

1008봉(11:57)

대부분의 동료산꾼들은 위험한 1008봉을 오르지 않고 그냥 우회길로 가버린다.

그래도  명색이 정통산꾼(?)을 자처하는 범여가 위험하다가 안 오를수 있으랴.

간을 집에 빼놓고 다니는 범여가 요런것에 우회하랴... ㅋㅋㅋ

이곳을 밟고 다시 암릉길로 내려가는데 기어가다시피하여 산행을 이어간다.

요소요소 멋진 암릉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게 지난해 금원산과

기백산을 지나는 진양기맥 구간에서 만난 누룩데미와 비슷한 느낌이다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을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해발 1,000고지가 넘다보니 쌓인 눈이 등산화가 잠긴다.

거기다가 싸락눈이다 보니 계속해서 발목까지 빠지고 미끄러워

시간이 지체되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마당바위 전망대(12:05)

산악회 총무님이 시코봉을 배경으로 한장 박아준다. 감쏴감쏴

가야할 시코봉과 수도지맥 능선들

마당바위 전망대에서 멋진 설경을 감상하고 암릉으로 내려선다.

암릉이 넘 미끄러운 데 젊은 여성 산꾼이 특전사 출신인지(?)

겁도없이 가는 로프에 매달려 남자 산꾼들보다도 더 잘 내려간다

조심스럽게 암릉을 곡예사가 줄타기하듯이 걸어야 한다.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이곳은 음지라 그런지 눈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등로 바로 아래에는 아찔할 정도로 낭터러지이다.

산죽길이 나오면서 자꾸만 지치기 시작한다.

눈길에 자꾸만 뒤로 미끄러지니 시간은 지체되고 배는 고파오지

1200고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체력은 고갈되고...

 

아랫쪽으로는 웅양면의 산그리메가 그림처럼 보인다

웅양면은 거창군의 중앙부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말까지 동부와 남부 일대를

 웅양방 또는 웅양면이라 하여 동변리, 성북리(동호리), 신창리, 화동리(노현리),

죽림리 등 5개 리가 있었고, 북서부 일대를 적하현방 또는 적하면이라 하여

아주리(신촌리), 대현리(한기리), 송정리(군암리) 등 3개리를 두었는데,

 지금은 이 일대를 적하 또는 하성이라고 부르며 1914년대 웅양면과 적하면을

합하여 웅양면이라 하였다. 남쪽으로 주상면 성기리와의 경계인 계수천 동쪽에

곰이 누워 있는 모양의 와웅산을 곰내미라 하여 웅남이라 썼다가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므로 웅양이라 고쳤다고 한다.

우측으로는 양각지맥으로 이어지는 양각산과 흰대미산도 보이고...

오늘 산행중에 정말 힘들게 치고 오르니 시코봉이 나타난다.

양각지맥이란?

수도지맥 우두령에서 3.9km 지점 ‘시코봉’으로 불리는 1,237봉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면서 동으로 가천천, 서로 계수천을 가르며 황강으로 빠지는 산줄기다.

88고속도로를 건너 일산봉을 지난 다음 산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신산경표에서는 남서쪽 감토산으로 지맥을 이었으나,

남동쪽 가천천이 황강에 합류하는 가천교로 향하는 발길도 있다.

 

산경표는 牛頭峙-修道山-伽倻山으로 지나가고, 대동여지도에는 修道山 남쪽으로 金貴山,

朴儒山 이름이 보이는데, 둘 다 신산경표 양각지맥 마루금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1,000m급 봉우리가 스물다섯개가 된다는 거창의 산세는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산꾼의 발길을 유혹하게 만든다. 경북 김천시와 경계에 있는 수도산에서 남으로

뻗는 양각지맥은 동으로 가야산을 넘보며 단지봉, 의상봉, 비계산, 오두산으로 가는 수도지맥,

서로는 대덕산에서 남덕유산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과, 금우ㅏㄴ, 기백, 황매산으로 가는

진양기맥으로 둘러 쌓여있어 사방팔방 누길가는데로 높고 큰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분기봉(시코봉1237)~1.8~양각산~1.7~흰대미산~4.4~회남령~5.2~보해산~2.7~금귀산(-0.8)

~3.4~살피재~2.7~박유산(-0.6)~3.8~일산봉~3.7~감토산~1.6~황강 / 31.0km

 

(높이)

양각산1,151 흰대미산1,018 보해산911.5 금귀산837 박유산712 일산봉625.4 감토산517.6

시코봉(1,237m:12:45)

경남 거창군 웅양면과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소의 코처럼 보인다고 해서 시코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양각지맥으로 이어지는  분기봉이기도 하다.

내가 가야할 수도지맥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 능선안부를 걷는다.

낙동을 정맥을 같이한 방초님을 만났다.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의 안부 능선을 걷는다.

이곳은 경북과 경남의 도계 능선이기도 하다.

심한 허기가 지기에 조금 가다가 도시락을 먹고 방초님이

가지고 오신 막걸리에다가 커피한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우측에 보이는 양각산과 흰대미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고...

양각산(兩角山:1150m)산 정상의 두개의 봉우리가 소의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이 지역 주변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 같다.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우두령(牛頭嶺)은

소머리고개이고, 흰대미산 남쪽끝자락에 있는 마을은 쇠불알을 뜻하는 우량동(牛郞洞)이다.

흰대미산(白石山:1018m)경남 거창군 웅양면과 가북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정상부가

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모양으로 인하여 흰대미산, 흰돌더미산으로불리고 있으며 정상석에는

흰덤이산(白石山)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능선 아래에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 거창군 가북면의 모습

심방(尋芳) 내려가는 길

고려말 신방(申肪)이라는 사람이 은거하던 곳이라 마을 이름이 되였다.

뒷산에 땔 나무가 많아 신방(新方), 경치가 좋아서 심방 (尋芳)이라 쓰기도 했다.

방초님과 식사를 마친 다음에 지난해 11월에 금남기맥 첫구간에

둘이서 기억을 되새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이어간다.

2년전에 10개월동안 낙동정맥길에서 서로의 속내를 가장 많이

보인 분으로 늘 반갑고 그리운 분이다.

안부 능선의 적설량은 바람의 영향 탓인지 무릎까지 파묻힌다.

안부 능선에 오르니 날카로운 암릉구간이 계속 나오고 전망이 멋진 구간이지만

눈길이라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수도산이 가까워 그런지

일반 등산객을 만난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오시는 분들인데 경상도에

오신 등산객인지 늘상 그렇듯이 왁자지껄한 모습이다

눈을 좌측으로 돌리니 김천시 대덕면의 산그리메가 한 눈에 들어오고 월매산(1,023m)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경북과 경남의 도계인 이곳은 산이 높은만큼 골도 엄청나게 깊다. 

내가 가야할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고...

안부의 칼날같은 암릉을  곡예하듯이 지맥길을 이어간다.

금오지맥(감천지맥) 갈림길

수도산 서봉(신선봉)에서 갈라지는 금오기맥 갈림길에 올라선다.

부산 “같이하는 산악회”가 설치한 스텐레스 이정표에는 금오지맥을 감천지맥으로

수도지맥을 황강기맥으로 표기를 하여 혼란 스럽다.

금오지맥은 수도산(1317.1m) 삼방산(864.2) 염속산(870) 염속봉산(680) 글씨산(454)

빌무산(783.6) 고당산(783.6) 백마산(715.5) 금오산(968.9m) 효자봉(512.2) 국사봉(322)

꺼먼재산(400.5) 백마산(180)을 거쳐 구미시 고아읍의 낙동강과 감천 합수지점까지 약81km의 산줄기다.

수도산 서봉(1313m:13:43)

수도산 가기전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서봉(신선봉)이 나타난다.

동료산꾼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이곳을 오르지 않고 그냥 가버리니

신선봉이라고 부르는 이곳 서봉은 완전히 庶子 취급을 받는 봉우리가

되어버린 곳처럼 보이지만 실은 금오지맥과 황강지맥이 갈라지는 중요한 곳이다.

오랫만에 동행한 芳草님과 둘이서 인증샷을 남기고 수도산으로 향한다

서봉에서 수도산 내려오는 길에는 성터의 흔적같은 곳이 보이고...

수도산 갈림길

수도산 가는길에는 무릎까지 오는 눈이 쌓였고 갈참나무 노거목들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멋진 암릉구간을 가르면 수도산을 향하는데

한 눈에 봐서도 예사롭지 않은 산임을 말해준다.

수도산 가는 길에 우측을 바라보니 양각산과 흰대미산이

눈보라에 휩싸여 멋진 자태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다.

수도산(修道山:1317m:13:50)

경북 김천시 증산과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 걸쳐 경,남북 도계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의 명칭은 참선수도장으로 유명했던 신라말의

 수도암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하며, 불령산·선령산이라고도 한다.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신라말 때의 수도암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이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며, 남쪽 사면에서는 좌가천이 발원하고,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감천에 흘러든다. 기반암은 화강암·편마암이다.

 

북쪽 산록의 청암사 일대는 불령동천·용담폭포·추산령낙조·담계옥류 등이 청암사 8경으로 유명하며,

해마다 곡우날이면 주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의 수액을 먹고, 위장병·신경통 등을 고치기도 한다.

또한 청암사의 부속암자인 수도암 경내에는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

(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 : 보물 제296호)·청암사수도암3층석탑(보물 제297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 : 보물 제307호) 등이 있다.

주변에 가야산국립공원·덕유산국립공원 등의 명소가 있으며, 북쪽 산록으로 상주-산청을 잇는 국도가 지나간다

 

산의 높이로 치면 우리나라 30위권 안에 들지만, 산림청의 100대 명산에서도 빠질 만큼 지명도가 낮다.

그 산중에 있는 수도사나 청암사(靑巖寺)도 영남의 지역 불자들이 아니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오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수도산은 이름을 여럿 갖고 있다.

수도사 암벽에 조성된 산왕대신 감실에 '불령산(佛靈山)'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수도산'이라는 이름은

그 후에 등장한 이름인 듯 하다. 같은 산중에 있는 청암사도 ‘불령산’으로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산은 ‘선령산(仙靈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수도지맥중 제일 높은산은 단지봉(1,326.7m)이지만 지맥의 이름을

수도지맥으로 한 것은 아마도 수도산(修道山 1,317m)의 유명세가 아닐듯 싶다.

정상에서 방초님이 사진을 한장 찍어주어 인증샷을 남긴다

수도산 정상에서 오늘 내가 지나온 시코봉을 비롯한 능선을 바라보면 희열을 느낀다.

 

 김천을 일컬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한다.

 삼산(三山)은 황악산 ·금오산·대덕산이며, 이수(二水)는 감천과 직지천가리킨다.

김천에 수도산은 별로 중요한 산으로 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천은 삼국 시대부터 교통의 중심,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문화가

교류되어 시장과 내륙장이 발달하면서 술과 음식도 발달하게 되었다.

 

 김천을 대표하는 술은 과하주가 유명하며 물이 좋아 맛도 좋다고 명성이 높다.

 과하주란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조선 중기부터 양반가에서 많이 마시게 된 술인데 경북 김천과 전북 전주의 과하주가 유명하다.

소주는 독하고 약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만들어진 술이지만 

김천의 과하주는 전주의 과하주와는 달리 소주를 넣지 않고 금천 샘물만을 넣어서 만든다고 한다.

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도암이 있는 증산면 수도리의 모습

수도리(修道里). 마을 뒷산인 수도산 중턱에 수도암이 있는데 이 암자는 신라의 도선국사가, 절터가 수도장으로

적합하다 하여 창건한 것이다. 그리고 뒷산도 본 이름은 선유봉이라 하였는데 국왕께 상주하여 수도산이라 고쳤다.

이곳은 첩첩산중으로 옛날부터 나라에 죄를 지었거나 또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 투쟁 의사들이 피신차 와서 전답을

이루고 살아 왔는데 수도사라는 절 이름을 따서 수도리라 하게 되었다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내 성격상 수도암을 꼭 들려서 참배를 하면 좋으련만거리도 멀고 시간도

맞지않아  수도암을 향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어제(1월19일: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아래 깨달음을 얻으신 날인 성도재일(成道齋日)이라 더욱 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수도암 편액

수도산의 상부에 위치한 도량으로, 옛날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백여년 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이적이 많다하여

사람들이 불영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수도암은 통일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도선국사는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경내에 있는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지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33세의 도선국사의 눈에 비친 수도산은 자신이 기거하며

수도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해발 1천244m에 위치한  설악산 봉정암과 880m에 위치한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이름난 수행처가 되었으니

수도암을 창건한 뒤 "무수한 수행자가 여기서 나올 것"이

라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수도암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광부 3년(1899)에 포응선사이 재건했다.

그 뒤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소실되어 1960년대까지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 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4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1969년부터 15년여 동안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크게 중수하여 지금의 가람으로 변모하게 된 곳이다.

 대적광전에 보물 제307호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있고 그 앞마당엔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약사전엔 보물 제296호인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

(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이 있다.

수도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물과 관련된 것이라 착각하기 쉬우나,

修道山이라는 한자를 씀으로 승려로써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는 산,

 혹은 도리를 깨우치는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이 이름의 유래가 되는 수도암(修道庵)에 대해서도 설명을 안 할 수 없다.

 수도산 중순에 위치한 수도암은 고지대에 위치함에도 풍부한

 물을 공급받고, 여름철에는 모기 등의 해충이 적어 천혜의 수도지로

 인정받아 수도[修道] 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오늘 걸어야 할 능선의 모습

수도산 정상에는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 안내판이

있긴 하지만 정작 삼각점은 그 어디에도 찾을수가 없다.

눈 속에 파묻혀 버렸나? 아쉬움을 남기고 동료 산꾼들이

먼저 도망가버린 단지봉을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간다.

수도산 동봉 전망대 아래 이정표

이정표에서 꺽어져 동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눈이 상당히 미끄럽다.

수도산 동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수도산 정상의 모습

수도산 정상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동료산꾼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뛰는데 그래도 동료 산꾼들은 보이지 않고 경상도에서 온 등산객만

보이는데 이 양반들이 도무지 길을 양보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고

牛步걸음으로 걸으면서 어디가냐고 묻길래 목통령까지 간다고 하니까

“아이고 무서바라 김신조도 아이고 지금 이 시간에 그까지 우째 갑니까”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아재 고양이 쥐생각 하지말고  길이나 비켜주이소

하니까 그때서야 길을 비켜준다. 20분을 내달린 끝에 동료산꾼과 합류를 하는데

방초님이 보이지 않는다. 나보다도 한참 먼저 간줄 알았는데 조금후에 뒤에서 오신다.

멋진 암릉을 만나기도 하고...

이곳은 다행히 눈이 눌려 있어서 러셀하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양지에는 잔설이 녹아있고 호젓한 산죽길도 나온다.

구곡령(九谷嶺:14:20)

경남 거창군 웅양면과 김천시 증산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아홉사리 고개라고도 부르면  우측으로는 웅양면 심방마을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무흘계곡으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무흘구곡(武屹九曲)이란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암 계곡과 청암사 계곡 그리고 황점리의 옥류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성주댐을 지나 성주군 수륜면으로 이어지며 대가천을 어우르는데

대가천의 맑은 물과 주변 계곡의 기암괴석, 수목이 절경을 이루어 경관이 아주 빼어나 행락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 곳을 무흘구곡이라 하고,


이 이름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님(1543∼1620)이 중국 남송(南宋)시대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7언 절구의 시를 지어 노래한 시 속의 장소를 말한다.

무흘 9곡중 성주군에는 1~5곡이 있고 김천시에 6~9곡이 있으며 본래 무흘(武屹)이란 마을은

증산면 평촌리 장뜰(장평)에서 수도암(修道庵)으로 가는 길옆에 있던 작은 마을인데

지금은 폐동 되었으며, 이제는 그저 한강 선생님이 머물렀던 무흘재(武屹齋)만이 외롭게

남아있을 뿐, 이 곳은 이미 호젓한 가족피서지로서 정평이 나있을 뿐이다

 

심방마을의 유래는

산 아래 수재(秀才)는 천재가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하며

심방소(尋芳所)는 고려 말 신방이란 사람이 은거한 곳이라는 뜻과 또는 땔나무가 많다는

 뜻에서 신방(薪方)으로 하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의

 심방(尋訪)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구곡령을 치고 오르니 대선배 산꾼인 준.희님의 격려문구를 만나고...

다시 눈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단지봉으로 향한다

가야할 단지봉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중촌마을 갈림길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中村里)는 불석동ㆍ 수재동ㆍ 심방소ㆍ 다전ㆍ 동촌ㆍ 산수동ㆍ 고비등 7개마을이 있다.

잡목이 우거진 등로에는 눈과 잡목이 합세하여 산꾼을 괴롭힌다

나무사이로 단지봉이 점점 가까워지고...

오늘따라 차량문제로 골이 아픈 산행대장의 걸음이 점점 무거워 보인다.

나무사이로 수도암이 있는 수도리가 보인다.

고비재(高飛峙:15:20)

송곡령이라고 부르는 고비재는  거창군 가북면 고비에서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넘어가는 고개에 단지봉 오르기 전에 있다.

학이 높이 날면서 놀았다 하여 이름 되었다 하고, 고사리와 같은

고비 나물이 많이 나므로 고비라 한다는 말도 있다.

 

또 한차례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주위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고

마지막 능선에 오르니 넓은 공터같은 곳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 몇개를 합친만큼 넓은 공터이다.

내촌마을 ←4.0km라는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터에는

거창군에서 세운‘산으로 비행’이라는 이정석이 서있다.

내촌(內村)마을의 이름의 연원은 소학(小學) 내칙편(內則篇)의 예의범절을

배우는 것이 사람되는 근본이라는 뜻에서 지은 마을 이름이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을 지나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니 단지봉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소로를 지나니 또다른 넓은 공터에 단지봉 이정석이 있다.

단지봉(丹芝峰1327m:15:40)

경북 김천시 증산면과 경남 거창군 가북면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수도지맥의 지명이 된 수도산보다도 더 높은 봉우리이다

 멀리서 보면 음식물등을 저장하기 위한 용구로서 항아리보다

약간 작은 그릇인 단지 모습에서 단지봉이 유래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은 이 산에서 약재로 쓰이는 붉은 지초(芝草)가 많이

난다해서 단지봉 또는 단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이름으로는 민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정상에는 거창군에서 새로 설치한듯한 이정석과   무심님이 세운

정상석이 있고 4등 삼각점(△ 가야 447  1981. 5 재설)이 있다.

단지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단지봉 정상의 삼각점

단지봉 정상에서 캔맥주 하나 밀감 2개로 원기를 보충하고 가야할 지맥길을

나서는데 후미에 있는 동료산꾼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헤드렌턴을 켜기전에 목통령을 통과해야 하기에 여기서부터

베낭을 꼭 조이고 산악 마라톤 하듯이 달리기 시작한다

가야할 좌일곡령과 용두암봉에는 눈보라와 함께 근방이라도

눈이 쏟아질것 같아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단지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북면 용암리의 모습

 거창은 옛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넗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으로 불리어 오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거창(居昌)으로

처음 불리운 후 주변영역과 분할, 합병되면서 여러 지명으로 부르다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야시대: 선사시대부터 일찍이 삶의 터를 잡은 거창은 초기가야시대에는 자타국(他國),

거타(居陀)라고 불리다가 후기가야에는 대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다.

신라시대: 신라초기에는 거타(居他), 거열(居列)이라 칭했고 경덕왕 16년 (757년)에

 거창군으로 칭하고 염례(稔禮)를 함음현(咸陰縣)으로 남내(南內)를

여선현(餘善縣)으로 개명하여 거창군의 편입 시켰다.

고려시대 : 고려시대 태조 23년 (940년)에 餘善縣(여선현)을 感陰縣(감음현)으로 咸陰縣(감음현)을

 加召縣(가조현)으로 개칭 하였고 현종 9년(1018년)에 陜川을 陜州로 승격시키고

居昌, 加召, 感陰, 三嘉, 利安 등 12縣을 陜州에 속하게 했다.

 

조선시대 : 조선시대 태종 14년 (1414년) 加召지방에 이주한 巨濟와 거창을 병합하여

 濟昌縣(제창현)으로 칭하고 연산초(1296년)에 연산비 신씨의 貫鄕(관향)으로 거창군으로

 승격하였으나 중종초(1506년) 단경왕후 신씨의 폐위로 다시 거창현으로 격하되었으나

영조 15년(1739년) 단경왕후 복위로 居昌府로 승격하고, 고종 32년(1895년) 거창부를 거창군으로

 개칭하고 1914년 安義郡 馬利, 胃川, 北上과 三嘉郡의 神院面을 편입시켜 거창군을 이루었다.

 

근대: 근대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57년 월천면이 거창읍에 편입되었고

1972년 함양군 安義面 眞木里, 春田里가 남상면으로 편입되었다. 현재는 거창읍, 주상, 웅양, 고제 ,

 북상, 위천, 마리, 남상, 남하, 신원, 가조, 가북면 등 1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건만 단지봉 내려서는 길은 눈이 허리까지

찰 정도로 깊이 쌓여있어 자꾸만 시간이 지체되기만 하다.

러셀을 하면서 시간은 지체되고...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어 간다.

능선 안부는 바람으로 몰려던 눈이 점령하는 바람에 우회길로 등로를 이어간다.

홍감마을 갈림길(16:10)

홍감(弘甘)마을 앞에 가마솥같이 생긴 큰 바위가 있어서 “홍가마”라고 부르던 것이 홍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야할 좌일곡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릿대가 있는 능선 안부를 걸어간다

거창의 산들은 1,000고지 이상의 산들이 많은만큼 골들도 상당히 깊다.

멋진 암릉구간도 계속 나오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좌일곡령(座壹谷嶺 .1,257.6m:16:25)

경북 김천시 증산면과 경남 거창군 가북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산 정상에는 멋진 암릉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좌일곡령 (座壹谷嶺 .1,257.6m)은 일부지도가 좌대곡령( 座臺谷嶺)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壹(한일)자와 臺(돈대대)가 비슷하여 생긴 것으로 생각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25000지도는

"좌일곡령(座壹谷嶺)"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곳이 암봉이긴 하지만 대(臺)라 할만한 너럭바위는 없다.

 

령(嶺)은 봉(峯)의 잘못아니냐(좌일곡봉左壹谷峯이 옳다)는 지적도 있지만

 산이나 봉이 령으로 표기된 곳도 많다. 령(嶺)은 통상 재(고개)를 의미하여 재(고개pass)의

 사전적 의미가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령(嶺 고개 령,고개 영)이 ①고개, 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②산맥 이름

 ③산봉우리 ④연속한 산 ⑤산마루의 고개 ⑥잇닿아 뻗어 있는 산줄기 ⑦오령의 약칭(略稱)

⑧산이 깊다 ⑨산이 깊숙하다 ⑩산이 으슥하다” 의미도 갖고 있다.

 

령(嶺)이면서 고개나 재가 아닌 산이나 봉의 의미로 쓰고 있는 곳이 대충 다음과 같다.

①지리산의 “영원령” ②설악의“마등령”③설악의“대승령” ④청옥산근처 성마지맥의“성마령”

⑤수도지맥의“좌일곡령” ⑥백두대간의“선자령”⑦“마령”⑧치술령” 그리고 ⑨주문진읍의 진산“철갑령”등이 있다.

 

그리고 좌월곡령(左月谷嶺)이라고 표시된 지도도 있다.

“月”은 곧 “山”을 의미함으로 좌월곡령(左月谷嶺)도 의미있는 명칭일 듯 싶다.

좌일곡령 정상에서 바라본 가북면 용암리의 모습

용암(龍岩)마을 뒷산에 용의 머리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좌일곡령에서 등로 아래로 내려서는데 암릉에 눈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더군더나 숏다리인 범여에게는 이런곳이 상당히 힘이든다.

바위사이에 꼭 끼여있는 나무를 보니 마치 요즘 내가 살고있는 만큼이나 힘이들어 보인다.

 이보시게! 너무 슬퍼하지 마시게나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삶 자체가

苦가 아니란 말인가...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자구나.

안부 능선의 양지에는 눈이 많이 녹아있다.

전망대 바위(16:40)

저 능선 너머에 다음구간에 가야할 두리봉이 짙은 박무에 휩싸여 있다 

가야할 용두암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또다시 멋진 암릉을 맞이하면서 우회로로 돌아간다.

이정표(16:53)

목통령이 2.8km라 아마도 이정표가 잘못된 모양이다

이곳에는 1,000고지 이상 산이라 그런지 겨우사리가 많이 보인다.

1,118.3봉(17:05)

김천시 증산리 황점마을 보이고...

증산면의 남쪽끝인 산간오지의 작은 마을로 면소재지에서 7.5km 거리이다.

 동은 형제봉 (1022m), 서는 단지봉(1321m), 북은 새목양지(984m)가 둘러싸고,

북동쪽으로 골짜기가 트여 목통천의 상류가 흐르고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동은 장전리, 서는 수도리, 북은 금곡리, 남은 거창군과 접경하고 있다.

거시기처럼 생긴 바위도 만나고...ㅋㅋㅋ

멋진 용두암봉이 나타나는데 정상은 눈이 쌓여있고 암릉이라 부득히 우회를 한다

용두암봉(龍頭岩峰:1125m:17:15)
김천시 증산면과 거창군 가북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멀리서 보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는데산아래 용암리에서 유래한듯 하다.용암바위라고도 불리운다.

용두암봉을 지나니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조금전에 만난 목통령 2.8km라는 이정표가 자꾸만 머릿속에 각인이

되니 마음이 급해진다. 내리막길을 꺽어져 우측으로 내려오니

좌측에 눈 속에 묻힌 무명묘지가 나온다.

개금마을 2.1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개금마을이면 이곳이 목통령이란 이야기인데  40분전의 이정표에

목통령 2.8km라고 써놓은 이정표에 잔뜩 쫄았는데 어떻게 된거야?

오늘같은 날씨에 2.8km이면 2시간은 더 걸리는 시간인데

다시한번 지도를 펴고 확인을 하니 이곳이 목통령이 분명히 맞다.

목통령(木桶嶺:17:25)

경북 김천시 증산면 황점리경남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목통령(木桶嶺)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통과 관련된 이름이다.  한편, 으름덩굴이 많이 서식하는 곳에서는
으름덩굴의 한자 표기인 목통(木通)이라는 지명이 쓰이기도 하므로 목통령의 목통은 으름덩굴을
의미하는 목통에서 한자가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목통령에서 발원하여 황점리를 흐르는
하천을 목통천(木桶川)이라 한다.

목통령이 있는 원황점은 원래 황(璜)을 구운 황점이 있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김해 김씨 중시조가

유황을 구워 상납한 것이 마을 조성의 단초이다. 원래 마을은 골짜기 상류에 있었는데

1936년 수해 때 유실되어 아래쪽으로 옮겼다

 목통령은 경북 김천시·성주군, 경남 거창군·합천군 경계를 이루는 단지봉(丹芝峰:1,327m)과

가야산(伽倻山:1,430m)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로, 백두대간 대덕산 부근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동남동쪽 가야산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수도산(修道山:1,317m), 단지봉 등 높고

경사가 가파른 봉우리와 산지를 이룬다. 목통령은 높이 약 1,010m로 김천시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자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목통령 부근에는 석항령, 분계령, 좌대곡령 등 높이 1,000m

내외의 준령이 있다.

목통령 북쪽 비탈면에서 성주군과 고령군을 흐르는 대가천(大伽川) 최상류인 목통천이 발원하여

김천시 증산면을 지나 성주군으로 흘러들고, 목통령 남쪽 비탈면에서 거창군과 합천군을 지나는

황강(黃江)의 지류 하천인 석가천(石加川)이 발원하여 흐른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편백나무 숲사이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방초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내려오니

임도가 나오고 편안하게 조금을 더 내려오니 농장이 나온다.

한불꽃 영농조합법인이란 팻말이 나온다.

오늘의 날머리인 상개금 마을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상개금(上開金)은 거창군 가북면 큰골의 가장 북쪽끝에 있는 마을이다.

북동 2km에 경상북도 성주군과 맞닿아 있다. 옛날에는 앞뒤 산과 골짜기에서

 금이 많이 나왔고, 지금도 금광 흔적이 남아있다. 금동 불상이 나왔으므로

“개금불(開金佛)”이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다.

이곳은 오미자가 많이 나오는지 오미자가 많이보이고 저 아래에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가 보인다. 논밭을 가로질러 버스쪽으로 향한다.

상개금 마을(17:55)

참으로 다행이다. 헤드렌턴을 켜지않고 산행을 마쳤으니...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가지곤 온 오뎅과 떡국을 끓여서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에 저녁 7시에 이곳을 떠나 서울을 출발하는데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 들렸던 버스가 방전되는 바람에 지체되고 하여

서울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되어 버렸다. 아~~~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