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제2 (2)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縟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應云何住며 云何降伏基心하리잇고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마땅히 어떻게 안주하며,
어떻게 안주하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anuttara-Samyak-Sambodhi心)은
범어로서 우리말로 나타내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즉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 되겠는데
흔히 간단하게 줄여서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합니다.
즉,깨달음의 마음이며, 도(道)의 마음이며 진리의 마음입니다.또 불심(佛心)도 됩니다.
"불심을 낸 사람으로서,불교를 공부하고저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리석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하고 수보리가 여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의식주(衣食住)는 유례없이 풍요로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기술과 기계를 가지고서 다양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는 그것이 지나쳐 생각지도 못하였던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존엄한 개인 개인이 빛을 잃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조그만 부속품으로만 취급되는
현실,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발달로 인한 무차별한 생활 환경의 파괴 등,
지금 우리들의 역사는 행복과 편안함으로 가고 있다기보다는 불행과 불안의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안주(安住)할 곳에 제대로 안주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번민과 고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갖가지 유혹과 잡되고 망녕된 생각을
항복(降伏)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교'를 통해서 "어떻게 제대로 안주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실은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입니다.왜냐하면,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청정(淸淨)하고,
본래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모든 지혜(智慧)와 복덕(福德)을 구족했으며,
본래로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창조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佛言하사대 善哉善哉라 須菩提야 如汝所設하야 如來가 善護念諸菩薩하며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善付囑諸菩薩하나니 汝今諦請하라 當爲汝說하리라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한 일이다.
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생각하고
보호해 주며 모든 보살들을 잘 축복해 준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수보리는 부처님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수보리의 통찰력에 부처님께서는 흔연히 "훌륭하고 훌륭하다."라는 칭찬을 하시고,
"너는 잘 알고 있구나. 나는 여러 보살들을 잘 잘 보살표주고 염려해 준다.
역시 당부하고 지시하기도 하는 사람이다.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말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는 부처님께서 걸식하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에 앉으신 그 자리에서
부처님이 나타내어 보이신 소식을 다 알아차렸지만 우리들 중생을 위하여 여쭙고, 또 부처님께서도
흔쾌히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설법해 주시는 것입니다.『지도론(智度論)』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설법을 듣는 사람은 자세를 단정히 해야 한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저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일심(一心)으로 말의 의미 속에 들어가라. 그런 뒤에 기쁜 마음으로 법을 듣고 감격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가히 그를 위해서 법을 설할 수 있으리라."경전을 읽는 마음과 법문을 듣는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善男子善女人이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하니는 應如是住하며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如是降伏其心이니라 唯然世尊하 願樂欲聞하노이다
여시항복기심 유연세존 원요욕문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여,원컨데 듣고저 하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답답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좀 시원하게 알았으면, 환하게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바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입니다.우리 인생은 바로 깨달음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게는 일상을 살아가는 슬기에서 크게는 부처님과 같은 인류사에 길이 남는 정각(正覺)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이 깨달음의 연속인것입니다.
그동안 '지혜롭게 잘 살았다'라고 생각하였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안목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안목이 넓어지는 것은 다름 아니라 관심의 차이에서 옵니다.
꼭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사를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깨달음이 계속오게 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마음, 즉 불교를 공부해 보고저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주(安住)하는 일과
마음을 항복(降伏)받는 일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불교 공부란 바로 마음 닦는 일이며 마음 다스리는 일입니다.마음은 온 우주의 주인이 되므로 마음을 잘 이해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앞으로 이야기되어질 『금강경』의 내용이 바로 안주(安住)하는 일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는 『금강경』의 내용이 되기도 합니다.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법(法)을 청하여 설법하실 것을 약속받고, 자신도 이 귀중한 가르침을
듣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모름지기 법은 청해야 말할 수 있으며, 듣고저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가슴에 젖어들 것입니다.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말을 말을 잃게 되고,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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