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풍류를 찾아서

집나간 며느리도 들어온다는 전어

by 범여(梵如) 2013. 9. 12.

 

전어 ‘뼈꼬시’에는 깨가 서말 들어 있다
 

전어는 가을철에 살이 오르고, 맛이 있기 때문에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이라는 뜻으로 ‘가을 전어’라는 말을 한다.

가을 전어는 회는 물론 구이 또한 일품이어서 예로부터 ‘가을 전어 대가리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전어 성분을 분석한 결과, 전어의 다른 영양분은 계절에 따라 별 차이가 없으나,

 가을이면 유독 지방성분이 최고 3배 가량 높아진다고 밝혀 ‘깨가 서말’이라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 지방질 때문에 구울 때 고소한 냄새가 나서 생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다시 돌아온다’라는

말은 이제 보편화되었다.


여수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가을이 아닌 한여름부터 전어 시즌이 시작된다

 8월이 되면 소호동 바닷가에 즐비한 횟집 유리문에 “하모 유비끼 개시”와 함께 “전어회, 전어구이, 전어무침 합니다”가

 형형색색의 광고문으로 나붙는다.

 

사실, 전어는 십수년 전만 해도 어촌 마을 선창에 가면 배에서 한 ‘바께스’에 5000원 주면 2000원 거슬러 줄 정도로 싼 생선이었다.

 그러나 그건 다른 고급 어종이 많이 어획되었던 때의 인심이고, TV 방송 매체 등에서 먹거리 기행에 전어가 소개된 이후로 일반인들은 정식 횟감이 아닌 잡어를 싼 맛에, 특별한 맛에 먹기 시작했으니 이젠 한 철의 대표적인 횟감 생선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였다.

 

심지어는 바다와 한참 떨어진 도회지에서도 수족관에서 재빠르게 헤엄치는 활어를 바로 잡아 회를 쳐서 맛볼 수 있으니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가을철에 잡힌 전어는 회칠 때 다른 큰 생선과 달리 대가리와 지느러미만 떼고, 통채로 ‘엇쓸기’를 한다

. 이를 이른바 “세꼬시” 또는 “뼈꼬시”라고 부르는데, 그 어원을 살펴보자.

 

일본말 중에 ‘작은 물고기를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3~5㎜ 정도의 두께로 뼈를 바르지 않고 자르는 방법’을 뜻하는

 “세고시(せごし, 背越し)”란 말이 있다. 이 말이 경상도 지방으로 건너와 “세꼬시”란 된발음으로 변해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혹자는 뼈채 먹어 보니 고소하다 해서 “뼈꼬시”란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말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일본말이 합성되어 더 잘 알아먹을 수 있다면, 이는 조어 생명력의 경이가 아니겠는가?

 

전어는 10월 이후 가을이 지나면 뼈가 억세지기 때문에 그전에 잡은 놈들은 비늘만 벗기고 뼈채 두툼하게 썰어낸다.

 이 가을 전어를 마늘과 기름을 두른 막장에 찍어 먹는 그 맛!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뒷맛은 깨소금보다도 고소하다.

활어의 쫄깃쫄깃한 살맛을 강조한 일반 회와 확실히 구분되는 뼈가 약하게 씹히는 거친 맛이 바로 전어 ‘뼈꼬시’의 맛이 아닐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어에 돈 '전'자를 쓴 까닭
 

전어는 옛부터 일반인들과 친숙했던 물고기로 이름에 관한 유래가 여럿 있다.

그중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는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이 모두 좋아하였으며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쓰여 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전어를 단순히 잡어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해야겠다.  

또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전어 이름의 유래로 그럴듯한 바다 건너 일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옛날 어떤 부자에게 첩으로 딸을 주게 된 아버지가 관(棺)에 전어를 넣어 화장(火葬)을 하고 딸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어려움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 대신이란 말이 일본어로 ‘고노시로(子の代→コノシロ)’인데,

일본에서는 이 말을 그대로 전어의 이름으로 쓰며, 특히 12㎝ 이상의 다 큰 전어를 칭한다.

 

 

 

학명인 Konosirus punctatus에서 속명(屬名)인 Konosirus는 일본명인 ‘Konoshiro(コノシロ)’에서 발음을 그대로 딴 것이고,

 종명(種名)인 Punctatus는 전어 몸에 반점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전어 이름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일본의 어느 성에 성주가 하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연회를 열었다. 가을이라 전어가 맛있을 철이니 당연히 전어 소금구이가 나왔다.

 하인들은 전어를 맛있게 먹으면서 “コノシロは ウマイ(전어가 맛있다)”를 연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성주는 “이 성(城)이 먹혀서는 큰일이다”라고 한 걱정을 하였다고 한다.

일본어로 성(城)은 ‘シロ’로서 ‘コノシロは ウマイ’는 “이 城은 맛있다”라고 들렸으리라.

 

이 이후로 6~12㎝ 정도의 전어 중치를 ‘고하다(コハダ)’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다는데, 이 용어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를

 일본어 꽤 한다는 아내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었으니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야 할 모양이다.

영어로 전어를 ‘Dotted gizzard shad’라고 부르는데, 전어의 위(胃)가 새의 모래주머니(gizzard)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