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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불교 공부

계율수행

by 범여(梵如) 2013. 11. 11.

 

계율수행

 1. 계율수행의 의미

 

1) 계율의 정의
계(戒)는 범어로 sila(시라;尸羅)인데 어원 sil(명상하다 봉사하다 실행하다)에서 온 습관성, 경향,

성격 등의 의미로 선한 행위를 뜻한다. 율(律)은 범어로 vinaya(비나야;毘奈耶)인데 이끌어 간다,

없앤다, 규칙, 훈련 등의 의미로 단체의 규칙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가 계율이라고 말할 때는 한 단어로 쓰이지만 엄밀히 보면 계와 율은 어원과 의미가 다르다.

계는 부처님이 재자들에게 가르친 도덕규범으로 불자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며, 불자가 되겠다고

할 때는 이미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다짐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차츰 제자들이 많아지고 집단생활을 함에 따라 여러 가지 규칙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초기에는 계를 어기는 사람이 없었으나 차츰 문제가 되는 사건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

래서 생긴 것이 율이다.


이러한 계와 율은 서로 현실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계는 개인적, 주관적이며 자발성에 기초하며,

율은 집단적, 형식적이다. 따라서 계는 참회에 의해 깨끗해지며 여러 번 거듭 받을 수 있으나

율은 어겼을 때 처벌 규정이 있어 심한 경우에는 집단에서 쫓겨나며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계는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현실과 타협하기 쉽고 잘 지켜지기

어려운 반면, 율은 강제적이고 획일적으로 적용되므로 계와 율은 상호 보완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지 한역되는 과정에서는 시라와 비나야 또는 바라제목차가 모두 계 또는 계율로 번역되곤

하였으며 지금 우리에게 계율은 한 단어로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것은 재가자의 계율 수행은 출가자의 계율 수행과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스님들에게는 보살계를 제외한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 비구, 비구니계가 모두 율장에 근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5계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율이 계를 포함한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계율에 대한 사항은 지금까지는 율장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재가자의 계인 5계 8계 10계 보살계가 모두 주로 경장이나 논장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계와 율에 대한 의미를 아는 것이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즉, 재가자가 지켜야할 계율은 엄밀히 말하면 계에 한정되는 것이며 계는 강제적 금지가 아닌

선에 대한 자발적 의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를 불편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여기고 계 받기를 피한다면 이는 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해 불자로써의 입문이 근본적으로

어려워지고 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시라는 자연스런 흐름을 바탕으로 하므로 타율적

강제가 아니라 다만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부처님당시부터 삼귀의와 오계는 재가불자가 되기 위한 중요한 절차였다.

따라서 재가불자로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하는 일은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삼보에 대한 믿음이 견실하지 못하고 오계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없으며 계를 어기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불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불자에게 있어 가장 먼저 信心과 戒心이 있어야 한다.

 

2) 계율의 기능
불교 수행의 요체는 계정혜 삼학이다.

수행자는 이 세가지를 배워 익혀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계가 바탕이 된다.

이 계를 통해 선정을 얻고 지혜를 얻는다. 왜냐하면 계율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생활이 청정해지고 안정됨으로써 선정과 지혜수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율의 첫 번째 기능은 '해탈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계율의 기능은 '걱정과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다.

계율수행을 하면 후회할 일이 없고 눈치볼 일이 없으며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

그러므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을 여읠 수 있다. 계율의 세번째 기능은 '수행의 동반자 역할'이다.

계율은 바른 생활로 이끌 안내자와 같다. 즉, 계율은 수행의 길에 나침반과 같아서 바른 수행의

길을 어긋나지 않게 도와준다.

 

① 해탈의 근본
戒는 해탈을 바르게 따르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파라제목차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 戒를 의지하면 모든 禪定을 얻고 苦를 滅하는 지혜를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청정한 계를 가져서 범하여 무너뜨리지 말라.

만약 사람이 淨戒를 가지면 능히 좋은 법을 가질 수 있거니와 만약 淨戒가 없으면 모든 善功德이 생길 수 없다.

그러므로 戒는 가장 安穩한 功德이 머무는 곳임을 알아야 한다.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

 

계율에 기반하지 않고는 어떠한 수행도 궁극적인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왜냐하면 삿됨이 끼어들면 수행은 오히려 마군의 무리가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의 관건이 된다. 이러한 청정함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계율이며

이러한 계율의 힘에 의해 해탈은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계율의 첫번째 기능은 해탈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② 걱정과 불안을 제거함
계율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받들어 지니면 근심이 없지만
계율을 지님이 견고치 못해
범하는 이 언제나 근심이 쌓이리.

 

계율을 지니되 빠뜨림이 많아서
나쁜 짓 하는 이는 근심하지만
계율을 범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기쁘게 되리.

 

그러므로 계율 닦기 염원하는 이
온갖 나쁜 행동을 잘 피하고
매듭과 부림들의 근심을 없애
편안히 열반에 들어가리라. <사분율 1권>

 

만일 계율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은 산만하고 흐트러지며 번뇌망상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생활은 불안정하고 고통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렇게되면 다른 수행을 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계율수행이 필요하다. 하나의 계율이 지켜지면 후회할 일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고,

두 개의 계율이 지켜지면 또 그만큼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후회가 없고 근심과 걱

정이 없다면 그 마음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밝고 안정된 마음에서 수행은 시작된다.

 

③ 수행의 동반자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
계율은 그들의 길 동무이니
험하고 악독한 나쁜 길에서
그들을 위하여 의지가 되리.

만일에 청정한 계를 따르면
마치 큰 배를 탄 것 같나니
능히 나와 남을 실어다가
삼계의 바다를 건너 주느니라. <제법집요경 제23 지계품>

 

계율은 수행의 길에서 동무가 되고 안내자가 되어 가야할 길과 가지말아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잘못된 길로 들었을 때 그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따라서 계율 수행은 집착을 보게하고

잘못된 습관을 치유한다. 또한 일단 기본적으로 계율생활이 이루어지면 혹 하나의 계율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참회를 통해 다시 계심을 유지할 수 있고 다른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다른 수행의

힘에 의해 계율은 다시 지켜진다. 따라서 계율이 기초가 되어 수행이 출발되고, 계율이 함께

함으로써 열반의 언덕에 다다를 수 있으므로 계율은 수행의 동반자가 된다.

 

이와같이 계율은 수행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요소이자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삿됨을 여의어 바른 수행이 가능해지고 생활에서는 불안과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모든 근심과, 불안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후회하고 누가 알까 두려워하며 이로 인해 온갖 번뇌가 일어난다.

그러나 계율을 지키면 이러한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차츰 마음이 안정되어 생활에 활력과 기쁨이 넘친다.

이러한 계율의 힘을 바탕으로 수행력이 견고해지며 마침내 해탈·열반에 이른다.

부처님은 범망경 보살계서품에서 “계를 여러분의 스승인 줄로 알지니 만약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신다 하여도 이와 다를 것이 없느니라”하였다. 따라서 계율은 수행의 동반자일 뿐만아니라 우리의 스승이다.

계율은 익숙한 안내자, 숙련된 뱃사공과 같이 우리를 해탈이라고 하는 목적지에 잘 인도에 줄 것이다.

 

계는 위대한 뱃사공이니 생사의 바다를 건네 준다. 계는 시원한 못이니 온갖 번뇌를 씻어낸다.

계는 두려움을 없애는 술법이니 사해의 독을 제거한다.

계는 무상의 반려니 험악한 길을 통과하게 한다.

계는 감로의 문이니 성자들의 근거처다. <마하승지율>

 

3) 지도점검과 자기점검
점검은 스스로 하는 자기점검과 타인에게 받는 지도점검이 있다.

자기점검은 앞에서 말한 기준들을 나름대로 정해서 스스로 비추어 보는 것이다.

자기점검의 좋은 예가 보조스님의 <진심직설>에 있다.

 

그 진심을 얻은 뒤에는 먼저 평상시에 미워했거나 사랑하던 대상을 가져다 때때로 면전에 있다고

생각해 보아 만일 여전히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도의 마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요,

만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도의 마음이 성숙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숙하였더라도 그것은 아직도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못된다.
또다시 마음을 징험하되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특히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대상을 취하게 하여도 그래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걸림이 없어 마치 한데

놓아 둔 흰 소가 곡식을 해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기 마음 속에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든 사람을 대함에

마음이 평등한 것이 도의 첩경이 된다. 연세드신 분들은 어버이처럼 대하고, 어린 사람은 자식이나

동생처럼 대하여 한결같은 마음이 되면 어느 정도 도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점검뿐만 아니라 스승이나 공동체를 통한 지도점검이 필요하다.

이때에는 자기가 몰랐던 잘못을 발견할 수도 있고 또는 자기 혼자 점검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미치는 각인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좋은 예가 포살과 자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으니, 사찰별로 또는 신행단체별로 지켜나가야 할 기준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함께 점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지도점검의 중요성은 수행중에 특별한 경험을 했거나

어떤 장애에 부딫쳤을 때 혼자서는 점검이 잘 안된다. 이럴 때는 반드시 지도점검을 받아야 한다.

앞에서 수행을 하는데는 반드시 선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선지식이 없으면 이럴 때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 재가계율의 변천 및 종류
재가자가 받아 지녀야 할 계는 5계, 8재계, 10선계 그리고 보살계이다.

그리고 이들 계를 받기 전에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이 있으니 삼귀의이다.

삼귀의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으로, 삼보에 의지하여 불자로써 진실하게 살 것을 서원하는 것이다.

삼귀의는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져 온 것으로 처음 불자가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삼귀만으로 하던 것이 차츰 오계를 수지하는 것도 불자 입문의 중요한 가름이 되었다.

오계는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재가신자들이 지니는 가장 근본적인 계로써 살도음망주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그리고 5계를 지키는 일 외에 매월 8, 14, 15, 23, 29, 30일은 6재일이라하여 재가자들도 출가수행자들처럼

살도록 권하고 있으니 이때 받는 계가 8재계이다.


또한 원시불교에서는 천상의 과보를 받는 것으로써 재가신자들에게 권해졌던 10선이

대승불교에서는 신선업도 또는 십선계라하여 대승보살이 지녀야할 계로 새롭게 탄생했다.

대승불교가 더욱 발달하면서 삼취정계라하여 섭율의계, 섭선법계, 요익중생계라는 개념으로

계율의 영역이 확대되어 소승의 계율을 수용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보살행으로 계의 의미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특히 이러한 대승계율정신에 입각하여 대승불교도에게 알맞는 좀더 구체적인 계율(바라제목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등장한 것이 보살계이다. 이 보살계는 출가와 재가가 함께 지니는 계로써 대승계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1) 삼귀의
삼귀의란 삼보에 의지한다는 의미로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보배라는 것을 믿고 삼보 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불법승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진리의 길에 들겠다는 서원이다.


6바라밀경에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구해 줄 이가 없음이 명백하니, 그러므로 응당 불법승에 귀의해야 하겠다.

실로 그러하다. 불법승을 제처 놓고는 능히 자기를 구해 줄 이가 다시 없으니 온갖 유정 중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반주삼매경에서는 우바새 우바이가

이 삼매를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5계를 지니고 삼보에 귀의하라고 하면서 “다른 도를 섬기지 말라”하였으니

삼귀의란 삼보에 귀의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삼귀의의 내용을 보다

분명히 알게 해주는 경전의 내용이 있다.

 

우바새계는 아주 심히 어려우니라.

그대가 만약 부처님께 귀의하면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끝까지 자재천 따위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고, 법에 귀의하면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끝까지 외도의 전적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승가에 의지하면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외도의 삿된 무리에 의지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대는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할 수 있겠느냐? <우바새계경>

이 경에 따르면 이렇게 삼귀의를 하고 나서야 오계를 받을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모든 수계에 있어 먼저 삼귀의를 서원하여야 한다.

우리는 불자의 시작은 삼귀의에 있음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모든 의식에서 맨 먼저 삼귀의례를 한다.

그러나 진정 삼귀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진실하게 삼보에 귀의한 불자가 얼마나 될까?

불교의 진리관이 포용적이라 하여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포용이란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 옳은지 그러나 그것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다 알면서 인정하는 것이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삼보 외에는 의지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고

세속의 가치나, 외도의 전적이나 미신 등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꽤 공부를 했다는

불자들조차도 사주팔자를 보고 절에서도 공공연히 이러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 범망경에 다른

법으로 교화하지 말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니, 교화의 방편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허용될 수 있는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야할 문제이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믿음의 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나무가 어떻게 잘 자랄 수 있으며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믿음은 뿌리이니 믿음을 굳건히 하지 않으면 불도수행의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이러한 굳은 믿음을 맹세하는 것이 삼귀의이다.

 

2) 오계
오계는 살생하지 않고(不殺生), 도둑질하지 않고(不偸盜) 사음하지 않고(不邪淫), 거짓말하지 않으며(不妄語),

술마시지 않는 것(不飮酒)을 말한다. 오계는 모든 계의 근본이다. 오계 중에서 살생, 투도, 음행, 망어는

특히 중요하여 출가자에게는 4바라이죄가 되는데 바라이죄는 출가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상가에서

쫒겨나는 것으로 참회할 수 없는 대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음주는 그것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음주로 인해 앞의 모든 계를 어길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오계의 하나가 되었다. 5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끊어 칼이나 작대기를 버리고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고

   자비심이 있어서 일체 내지 곤충까지를 요익하게 하나니 그는 살생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었다.
2. 불여취를 떠나고 불여취를 끊어 주어진 뒤에 받고 주어진 것 받기를 즐기며 항상 보시를 좋아하고

   기뻐하여 아낌이 없고 그 갚음을 바라지 않으며, 도둑질 마음에 덮히지 않고 항상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나니 그는 불여취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었다.
3. 사음을 떠나고 사음을 끊었다. 그는 혹은 아버지의 보호가 있거나 어머니의 보호, 혹은 어머니

   아버지의 보호가 있거나, 혹은 형제의 보호, 자매의 보호, 친족의 보호, 同姓의 보호가 있거나

   남의 아내는 범하지 않나니 그는 사음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었다.
4. 거짓말을 떠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즐기며 진실에 머물러 이동하지 않으며

    일체를 믿을 만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나니 그는 거짓말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었다.
5. 술을 떠나고 술을 끊었으니 그는 술을 마시는 데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었다.

   <중아함경 제30권 128 우바새경>

 

5계란 잘 아시다시피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고, 사음 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술마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계를 지킬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여기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적극적인 실천행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살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비심이 있어 중생을 요익하게 하며, 투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끼는 마음이 없어 보시를 즐겨하는 것

등이 살생을 떠나고 투도를 떠나는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3) 8재계

① 재일의 유래
“지금 이 성에 있는 범지들이 매월 세 차례 8일, 14일, 15일에 모이는데 두루 왕래하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 음식을 대접하나이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어 비구들에게 분부하시어 달마다 세 차례 모이게

하시고 여러 사람이 두루두루 왕래하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 음식을 대접하게 하옵소서.

나와 여러 신하들도 와서 모이겠나이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잠자코 빔비사라왕의 말을 받아들이시니 왕은 부처님께서 자기의 말을 승낙하시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세 번 돌은 뒤에 물러갔다.<사분율 제35권>

 

빔비사라왕이 외도들이 포살하는 것을 보고는 부러워하며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청하자 부처님께서 허락하였다.

이것이 재일의 유래이다. 이때 8, 14, 15일은 인도의 달력법 상에 한 달을 둘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으므로

실제로는 8,14,15,23,29,30이 된다. 이것이 6재일의 기원이다.

 

그리고 이 재일에는 재가자들도 출가수행자와 함께 수행하도록 권한다.

그 가운데서 14일과 15일, 29일과 30일이 잇달아 있는 것은 보름단위로 계목(戒目)을

읽으면서 자기가 받은 계를 잘 지켜가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포살일(布薩日)이기 때문이다.

포살은 보름마다 동일한 지역 내에 거주하는 출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난 보름간의 자기

행위를 반성하고 죄가 있으면 참회하는 의식이다. 이 날에 동참하는 재가자는 8가지 계를

받아야 하는데, 그 8가지 계를 8관재계(八關齋戒)라 말한다. 8관재계는 5계에다 3가지를 더한 것이다.


그 세가지는 높고 넓은 침상을 쓰지 않고(不坐廣大床), 노래하고 춤추지 않고 일부러 그것을

구경하지도 않으며 향수 등을 바르지 않고(不作唱伎樂 故住觀聽 不着香勳衣), 정오가 지나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不過中食)을 말한다. 이 육재일을 살펴보면 부처님 당시에 재가불자들의

신행생활이 얼마나 철저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목숨은 번개같이 없어지나니 재하는 날에 마음을 꾸짖고 몸을 삼가고 입을 다물지어다.

齋하는 날에는 제천에서 사람의 선과 악을 살피느니라......


만일 한 계율을 지닌 이는 다섯 선신으로 호위케 하고 다섯 계율을 지닌 이는 스물 다섯 선신으로

문호를 호위케 하여 흉역과 사마와 음모를 소멸하고 밤에는 나쁜 꿈을 없애며 관재와 도적과

물불의 재변도 끝내 해롭히지 못하게 한다. 재앙을 물리치고 괴변을 소멸하기는 오직

이 사무량심과 5계와 6재뿐이니 마치 많은 물로 적은 불을 끄는 것과 같다. 어찌 소멸치

못할 것이 있겠느냐? <잡아함경 불설사천왕경>

 

재일에는 천신이 내려와 그 선악을 살핀다고 하였으니 특히 재일에는 가히 파계하지 못하였으라 짐작이 된다.

이러한 육재일에 대한 불교의 전통이 차차 변하여 10재일로 바뀌었다. 10재일은 6재일에다

1일,18일,24일,28일을 더한 것이며, 각 재일에 특정한 불보살을 배대(配對)하여 의미를 두었다.

각재일에 배대된 불보살을 보면 1일은 정광불(定光佛), 8일은 약사여래(藥師如來), 14일은 보현보살(普賢菩薩),

15일은 아미타불, 18일은 지장보살(地藏菩薩), 23일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24일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28일은 비로자나불, 29일은 약왕보살(藥王菩薩), 30일은 석가모니불이다. 이것을 십재일불(十齋日佛)이라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도 10재일을 지킨 흔적이 남아 있어 현재에는 지장재일과 관음재일이 가장 보편적으로 지켜지고 있

으나 8재계와 포살의 의미는 퇴색한 채 기도하는 날로만 여겨지게 된 것이 아쉽다.

 

②재일의 의미
출가수행자는 엄격한 집단생활 속에서 수행하기 때문에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지만 재가자는

세속의 잡다한 일과 얽힌 인간관계로 인해 수행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비록 재가자라

할지라도 불교교단의 구성원이며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수행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부처님 제자로써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출가자들과 같은 수행생활을

통해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출가수행자의 포살일에 재가자를 참석토록

했으며 이때 8재계를 주어서 출가수행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재가불자들의 윤리의식을 고양시키고, 출가자들에 대한 공경심과 신뢰감을확충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재(齋)는 「삼가하다」또는 「부정(不淨)」을 피한다는 의미를 가진 우포사다(Uposadha)를 번역한 말이다.

즉 재가불자들의 신심(身心)을 단련하기 위하여 매월 일정한 날에 사원에 모여 출가자의 생활를 경험하는 제도다.

재가자에게도 24시간동안 출가수행자와 똑같이 생활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고 열심히 수행하시는

스님들께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교단이 화합하며 불법을 더욱 널리 퍼지게 하였으니

이것이 재일의 의미이다.


이와 같은 재일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 8재계와 포살을 제도화시키는 일은 재가자의 수행에 있어

매우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일일출가 또는 단기출가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 수련회

동안에 수계의식을 겸하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며, 더불어 각 사찰별로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 월 2회 내지 1회, 5계, 8재계, 10선계, 보살계 중에서 아니면 사찰 독자적으로

계목을 만들어서 포살을 실시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수행력을 증진시키고, 사찰이나 교단차원에서는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③ 8재계
재일이라 함은 매월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이며 하룻동안 계율을 받게 하셨는데 이미

복덕을 얻으면 여러 하늘들이 내려와서 세간을 자세히 살펴보고 기뻐하면서 보호하게 된다.

집에 있는 보살은 여러 작은 일에도 오히려 더욱더 하거든 하물며 먼저 이 재가 있는데 따르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하룻동안의 재법을 행하여야 하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얻으면 남도 이롭게 할 수 있다.


1.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살생을 여의고 칼과 몽둥이를 버리며 항상 성냄이 없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으며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에 살생을 멀리 여의고 칼과

   몽둥이를 버려서 성냄이 없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으며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2.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주지 않으면 가지지 않고 몸의 행은 깨끗이 하며 받되 만족할 줄 아시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겁탈하거나 주지 않는데도 갖는 것을 멀리 여의고 깨끗하게

  스스로의 삶을 구하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3.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음행을 끊고 세상의 쾌락을 멀리 여의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음행을 끊고 세상의 즐거움을 멀리 여의는 맑은 행을 깨끗이 닦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4.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거짓말을 여의고 진실한 말과 정직한 말을 하시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진실한 말과 정직한 말을 하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5.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술을 멀리 여의시는 것처럼 술이란 방일한 것이니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술을 멀리 여의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6.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며 풍류 잡히고 꽃과 향과 영락 등의 몸 꾸미개를 멀리 여의시는

   것처럼 나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노래하고 춤을 추며 풍류 잡히고 꽃과 향과 영락 등의

   몸꾸미개를 멀리 여의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7.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높고 녋은 큰 평상을 멀리 여의고 작은 걸상에 계시며 풀깔개로 자리를

   삼으시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동안 높고 큰 평상을 멀리 여의고 작은 걸상을 쓰며

   풀깔개로 자리를 삼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8. 모든 성인께서 언제나 한낮이 지나면 잡숫지 않고 때 아닐 적의 행동과 때 아닐 적의 음식을 멀리

  여의는 것처럼, 저는 이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한 낮이 지나면 먹지 않겠고 때 아닐 적의 행동과 때

  아닐 때의 음식을 멀리 여의는 이와 같은 법으로써 성인을 따라 배우겠나이다.

  <십주비바사론 제8권 입사품>

 

이와 같이 8재계는 5계에 출가 수행자의 생활상을 담은 세 가지를 합쳐 8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

하루만이라도 세속의 생활을 버리고 출가 수행자의 삶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5계의 불사음이 불음행으로 바뀐 것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8재계를 통해 재가자는

불자로써의 바른 생활을 더욱 주의 깊게 해나갈 수 있게 된다.

 

④ 재일의 수행법
<재경>에 보면 재계를 받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 지니느냐에 따라 세가지로 구분하여

 바른 재계의 실천법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소를 기르는 재(牧牛齋)요.

둘째는 니건타의 재(尼健齋)요.

셋째는 불교의 재(佛法齋)이니라.

 

소를 기르는 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목동이 좋은 물과 풀을 찾아 소를 기르고, 저녁에 돌아갈 때는

그곳이 어딘가를 잘 기억해 둔다. 그리고 이튿날이 되면 다시 그 곳으로 소를 몰고 간다.

양가(良家)의 아들, 딸이 재계를 받았지만, 마음은 어떻게 하면 재산을 더 모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호의호식할까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목동이 항상 좋은 풀밭을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몸은 재계를 받았지만 마음은 집에 와있는 것을 소를 기르는 재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재계를 받았지만 공덕이나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니건타의 재란 어떤 것인가? 매월 보름 재(齋)를 올리는 날이 되면 엎드려 재계를 받는다.

그들은 재계를 받을 때에 10요자나 안에 있는 여러 신(神)들에게 절하면서, "나는 오늘 재계하였으니

감히 악행하지 않고, 집이 있다고 교만하지 않을 것이며, 남들을 나처럼 생각하고, 처자식이나

노비들도 내 소유가 아니요, 나도 그들의 주인이 아닙니다." 라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말처럼 실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계를 받은 다음날만 되면 전과 다름없이 행동한다. 이런 것을 니건타의 재라 말한다.

그런 재계를 받는 사람들은 공덕도 얻지 못하고 지혜를 얻지도 못한다.
불재계란 나의 제자로서 매월 여섯 재일(六齋日)이 되면 여덟가지 계를 받고 스물 네 시간 동안

이 계를 받아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재일 하루 밤낮을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재계를 받는 날에는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생각을 익혀야 한다.

재계를 받는 날에는 다섯 가지 생각을 익혀야 한다.

 

첫째로 부처를 생각해야 한다. ‘일심으로 염불하되, 부처는 진리로 오셨고(如來), 진리에 이르셨고(至眞),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고(等正覺), 지혜와 행을 갖추었으며(明行足), 열반에 드셨으며(善逝), 세상에

아버지이며(世間父), 최고의 스승이시며(無上士), 법으로 다스리며(經法), 신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다.

그래서 부처라 한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부처를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음과 악의와 성내는 버릇이 모두 없어지고 착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 부처의 업을 좋아한다. 마치 좋은 비누나 세제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의 때가 말끔히 없어지는

것처럼 재계를 받고 부처를 생각하는 사람도 그와 같이 청정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그를 좋아하고 신뢰하느니라.


둘째로 법을 생각(念法)해야 한다. 부처가 말한 서른 일곱 가지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길

(三十七助道品)을 완벽하게 수련하여 결코 소홀히 하거나 잊지 않고 명심한다.

이러한 법은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임을 알아야 한다.

법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음과 악의(惡意)와 성내는 버릇이 모두 없어지고 착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 법의 업(法業)을 좋아한다. 마치 좋은 비누나 세제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의 때가

말끔히 없어지는 것처럼 재계를 받고 법을 생각하는 사람도 그와 같이 청정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그를 좋아하고 신뢰하느니라.


셋째로 교단을 생각(念衆)해야 한다. ‘공경하고, 가까이 하여 믿고 의지하며, 지혜의 가르침을 받자.

부처의 제자들 가운데는 수다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이미 수다원을 증득한 이도 있으며,

사다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이미 사다함을 증득한 이도 있으며, 아나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이미 아나함을 증득한 이도 있으며, 아라한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이미

아라한을 증득한 이도 있다. 이들은 네 쌍의 여덟 부류의 장부라 한다. 이들은 모두 계율을 성취하였고,

선정을 성취하였으며, 지혜를 성취하고, 해탈을 성취하였으며, 해탈지견을 성취하여 성스러운 덕과

행위를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천상과 천하에서 가장 거룩한 이들이니 그 복전(福田)에 합장해야 한다.

’ 이와같이 교단을 생각하라. 출가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음과 악의(惡意)와 성내는 버릇이 모두 없어지고

기쁜 마음이 저절로 생겨 출가자 업(僧業)을 좋아한다. 마치 양재물로 옷을 세탁하면 더러운 때가 말끔히

빠지는 것처럼, 재계를 받고 출가자를 생각하는 사람도 그 공덕이 그와 같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그를 좋아하고 신뢰하느니라.


넷째로 계율을 생각(念戒)해야 한다. 일심으로 계율을 생각하기를 ‘몸으로 부처의 계를 받고 마음으로 받들어 지키자.

계를 어기지 않고 망각하지 않아 계율을 바로 세우고 보호하여 지혜로운 이들로 부터 칭찬을 듣자. 계를 지켜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가르치자.’고 하라. 계율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음과

악의(惡意)와 성내는 버릇이 모두 없어지고 기쁜 마음이 저절로 생겨 계율의 업(戒業)을 좋아한다.

마치 거울을 닦으면 때가 없어지고 밝아지는 것처럼, 재계를 받고 계율을 생각하는 사람의 청정함도 그와 같다.

그래서 그를 보는 사람들 마다 좋아하고 신뢰하느니라.


다섯번째로 하늘을 생각(念天)해야 한다. 첫번째는 사왕천(四王天)이요, 두번째는 도리천이요,

나아가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믿음, 계율, 법을 들음,

남에게 베품, 지혜를 가짐으로 몸이 죽음에 이르면 정신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도 역시 믿음, 계율,

법을 들음, 남에게 베품, 지혜를 잃지 않으리라.’고 하라. 이렇게 하늘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음과

악의(惡意)와 성내는 버릇이 없어지고 기쁜 마음이 저절로 생겨 하늘나라의 업(天業)을 좋아한다.

마치 보배구슬을 항상 갈고 닦으면 맑고 밝아지는 것처럼, 재계를 받고 하늘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의 청정함도 그와 같다.

 

4) 십선계
십선계란 살생, 도둑질, 사음, 망어, 양설, 악구, 기어, 탐욕, 분노, 사견을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원시불교 때부터 재가자의 실천덕목으로 설하여졌던 것이다.

이 때에는 계목은 아니였고 단지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가 있다고 하여 이것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와서는 십선을 행하는 것이 대승불교도가 행할 시라바라밀의 내용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었다.

10선은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체계적인 계율로써 이것을 닦으면 모든 악업을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에 대해 세부적으로 구분한 것은 대인관계를 함에 있어 말로 인한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타행을 강조하는 대승불교 정신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의업을 특히 강조하여 탐욕과 분노와

사견을 여읠 것을 강조한다. 조계종 <통일법요집>에서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통일법요집 P.P 329~332 대한불교조계종, 1998.5.30.

 

1. 산 목숨을 해치지 말라.(생명을 존중하라)

2. 주지 않는 것은 훔치지 말라.(아낌없이 베풀라)

3. 사음하지 말라.(청정을 행하라)

4. 거짓말 하지 말라.(실다운 말을 하라)

5. 꾸며서 말하지 말라.(요익한 말을 하라)
보살은 성품이 가식으로 꾸며서 말하지 않으며, 항상 잘 생각하고 하는 말, 시기에 맞는 말,

이치에 맞는 말, 법다운 말, 도리에 합당한 말, 잘 조복하는 말, 때에 맞추어 결정한 뜻있는

말을 해야 하나니 보살은 한낱 웃음거리에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하거늘, 하물며

겉만 번드르한 말을 하겠는가. 이것은 바른 지견의 종자를 끊는 것이니라.

6. 두 가지 말을 하지 말라.(화합을 도모하라)
보살은 성품이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이간하는 마음이 없고 해치려는 마음도 없어야 하나니,

이간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기뻐하지 않으며 이간하는 말은 아예 입 밖에 내지도 말아야 하며 오직

대중을 화합시키는 말로 대중을 수순케 할지니라.

7. 악한 말을 하지 말라.(부드러운 말을 하라)
보살은 성품이 악한 말을 하지 않으므로 남을 해롭게 하는 말, 거친 말, 남을 괴롭히는 말,

남을 화나게 하는 말, 불손한 말, 분노에 찬 말, 속을 태우는 말, 원한을 맺는 말 등 나와 남을

해롭게 하는 말을 모두 버려야 하며 윤택한 말, 부두러운 말, 뜻에 맞는 말, 품위 있는 말,

여러 사람이 기뻐하는 말로 늘 모두의 몸과 마음에 기쁜 말을 해야 하나니라.

8. 일체의 탐욕을 버려라.(늘 나누는 마음을 가져라)
보살은 성품이 탐내지 않으므로 남의 재물이나 물건을 욕심내거나 원하거나 구하지 않나니,

모든 사물에 대해 부정관을 닦아 일체의 탐욕심과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함께 공유하는

마음으로 늘 나누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하나니라.

9. 성내는 마음을 내지 말라.(자비심으로 대하라)
보살은 성품이 성내지 않으므로 모든 중생에게 항상 자비스런 마음, 이익되게 하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쁜 마음, 화평한 마음, 포용하는 마음을 내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해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참고 인자하고 도와주며 덕되는 일을 생각하여 행해야 하나니라.

10.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지혜로운 마음을 써라)
보살은 성품이 삿되지 않으므로 언제나 바른 도리에 머물러 점을 치거나 삿된 견해에 빠지지 않고

마음과 소견이 정직하여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고 인연의 도리를 잘 알아 순응하며 불법승 삼보에

굳은 신심을 내어 생활해야 하나니라.

십선계는 5계를 바탕으로 이것을 보다 체계화하여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실천행이다.

살생 투도 사음은 신업, 망어 양설 악구 기어는 구업, 탐욕 분노 사견은 의업에 해당한다.

이 삼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업이며, 의업 중에서도 특히 사견이 모든 번뇌의 근본이되므로

정견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몸과 입으로 짓는 잘못이라는 것도 사실은 마음에서

탐욕이나, 성냄 등이 먼저 일어나서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며, 정견을 세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판단하여 행동하고 말한다면 잘못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0선계는 신구의 삼업을 맑히는 가장 체계적인 계율로서 재가불자가 일상생활에서

받아 지닐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계율이다. 물론 더욱 발전된 형태로 보살계가 있으나 보살계는

계목이 다양하고 뜻이 방대해서 초보자가 항상 지니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먼저 10선계를

바탕으로 계율 수행을 해나가는 것이 좋다.

 

5) 보살계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독자적인 계율 체계를 정립하였다.

'삼취정계'와 '보살계'가 그것이다. '삼취정계'란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로서 이전의

조문에 얽메어 있던 계율수행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실천적인 보살행으로 나아가도록 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삼취정계'의 사상을 담아 독자적인 계목을 성립시켜 놓은 것을 일러 '보살계'라 한다.

 

'보살계'는 보살지지경의 4바라이 41경계, 유가사지론의 4바라이 42경계, 보살영락본업경의

10무진계, 우바새계경의 6중 28실의계, 보살내계경의 47계 등이 있으나 범망경 10중 48경계가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는 '범망경 보살계본'에 의한 '보살계 수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범망경 보살계본'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범망경'은 중국찬술설이 유력한 가운데 계목이 가장 체계적이고 '삼취정계사상'이

잘 담겨있다고 평가되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때'부터 '범망경 보살계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십중대계>

1. 살생하지 말라
2. 주지 않은 것을 훔치지 말라
3. 음행을 하지 말라
4. 거짓말을 하지 말라
5. 술을 팔지 말라
6. 4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7.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8. 자기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9. 성내지 말고 참회하면 잘 받아 주어라
10.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사십팔경계>

1. 스승과 벗을 공경하라
2. 술을 마시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나니, 술이란 것은 허물을 짓게 하느니라.

  자기 손으로 술잔을 들어 다른 이에게 주어 마시게 한 탓으로 5백생동안 손이 없는

  과보를 받았거든 하물며 스스로 마셔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여러 중생들도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스스로 마시겠는가. 여러 가지 술을 마시지 말지니 만일 짐짓 마시거나 남으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3. 고기를 먹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고기를 먹지 말지니, 어떠한 중생의 고기도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고기를 먹으면 자비의 종자가 끊기므로 중생들이 보고 도망가나니 그러므로 보살들은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느니라. 고기를 먹으면 한량없는 죄를 짓나니 짐짓 먹으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4. 오신채를 먹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다섯가지 맵고 나쁜 채소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마늘, 부추, 파. 달래, 홍거의

  이 다섯가지는 어떠한 음식에도 넣어 먹지 말라. 만약 짐짓 넣어서 먹으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5. 계를 범한 이는 참회하게 하라
   불자들아 너희는 중생들이 8계를 범하거나 5계와 10계를 범하거나 3보를 헐뜯거나 일곱가지

  역적의 죄를 짓거나 8난에 태어날 죄를 짓거나 온갖 계를 범한 사람을 보면 마땅히 참회하도록

  해야 할지니 보살이 이같은 사람을 참회시키지 아니하고 함께 이양을 받으면 안되느니라.

  또 함께 포살하여 대중가운데서 계를 말하여 주어 그 죄를 지적해서 참회하도록 하지 않으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6. 법사에게 공양 올리고 법을 청하라
7. 법문하는 곳에 가서 들으라
   불자들아 너희는 경법과 계율을 강하는 곳이 있거나 큰 집에서 불법을 강하거든 가서 들어야 하느니라.

   갓 배우기 시작한 보살은 마땅히 경이나 율의 책을 가지고 법사에게 가서 듣고 물어야 하느니라.

   만약 숲과 나무 아래와 절 등 불법을 설하는 모든 곳을 찾아가 듣고 묻지 않으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8. 대승의 경율을 어기고 삿된 것에 물들지 말라
9. 병든 사람을 잘 간호하라
10. 죽이는 기구를 준비해 두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칼과 몽둥이와 활과 창과 도끼 등 싸움에 필요한 온갖 기구를 준비해 두지 말며,

   그물, 올가미와 덫 등 산 것을 잡거나 죽이는 기구는 무엇이나 준비해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설사 부모를 죽인 사람에게도 원수를 갚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중생을 죽이겠는가.

   그러므로 중생을 죽이는 기구를 준비해 두지 말며, 만약 짐짓 준비해 두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11. 군사사절이 되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이양을 구하는 나쁜 마음으로 나라의 사신이 되어 싸움터에서 회의를 하거나

   전쟁을 일으켜 많은 중생을 죽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군중에 들어가지도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나라를 해롭게 하는 일을 하겠는가. 만약 짐짓 그러한 일을 하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12. 나쁜 마음으로 장사하지 말라
13. 근거없이 남을 비방하지 말라
14. 방화하지 말라
    불자들아, 너희는 나쁜 생각으로 불을 놓아 산과 들을 태우거나 4월부터 9월 사이에 불을 놓거나

    남의 집과 도시와 절과 전답과 숲과 그리고 귀신의 물건과 공용의 재물을 불사루지 말라.

    만약 짐짓 불사루면 가벼운 죄가 되느니라.
15. 대승 경율이 아닌 삿된 법으로 교화하지 말라
16. 이양을 위해 잘못 가르치지 말라
17. 권력을 믿고서 달라고 하지 말라
18. 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말라
19. 나쁜 생각으로 이간하여 착한이들을 비방하고 업신여기지 말라
20. 산 것은 놓아 주고 죽게 된 것은 구제하라
21. 자비심 없이 원한으로 원수를 갚지 말라
22. 교만을 버리고 먼저 수학한 이에게 묻고 배우라
23. 새로 처음 배우는 이를 경멸하지 말라
24. 항상 대승을 배우고 이승과 외도의 경전을 배우지 말라
25. 삼보의 물건을 잘 지키고 자기 소유물같이 사용하지 말라.

     마땅히 자비심으로 지켜 대중에게 다툼을 불러 일으키지 말라
26. 객승에게도 마땅히 공양과 대접을 하라.
27. 스님네는 따로 청하는 초청을 받지 말라
28. 스님네를 따로 초청하지 말라
29. 나쁜 직업을 갖지 말라
30. 삼보를 비방하고 6재일을 파하지 말라
31. 불상이나 경전을 매매해 이익을 구하려 하거든 사서 돌려 받아라
32. 세력으로 타인의 재물을 빼앗지 말라
33. 방일한 마음으로 타인의 싸움이나 방탕한 놀이를 구경하지 말라
34. 대승계를 굳게 지켜라
35. 큰 서원을 세워라
36. 열가지 원을 세워라
37. 위험한 곳으로 유행하지 말라
38. 계를 받은 차례대로 앉으라
39. 재난을 받은 중생에게는 마땅히 대승경율을 말해주라
40. 7역죄인을 제외하고는 가리지 말고 계를 주라
41. 덕없이 이양을 위해 스승이 되지 말라
42. 이양을 위해여 보살계를 받지 않은 자, 외도, 악인, 사견인 등 앞에서는 칠불교계를 설하지 말라
43. 정계를 어기지 말고, 파계한 몸으로 시주의 공양을 받지 말라
44. 경율을 항상 사경하고 염송하며 공경하라
45. 중생을 항상 교화하라
46. 설법하는데 위의를 지켜라
47. 계를 받은 국왕이나 관리는 삼보를 제재하는 비법을 세우지 말라
48. 세력에 아첨하여 불법을 깨거나 승단을 파괴하지 말라

보살계는 계율이 갖는 율의적 의미로서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 뿐만아니라,

선을 권하는 ‘무엇을 하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즉, 법을 청하라, 법문하는 곳에 가서 들어라,

병든 사람을 잘 간호하라 등이 그것이다. 또한 경계 5번째에 ‘계를 범한 이를 참회하게 하라’에 보면

5계, 8계, 10계를 범하거나 삼보를 헐뜯거나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는 보살계는 이들 계보다 나중에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살선계경>에서는 5계, 10계, 구족계 등을 먼저 받아 지닌 연후에 보살계를 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이는 계단을 만들 때 건너 뛰어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현재 종단에서는 재가자는 5계를 받은 연후에, 출가자는 사미10계를 받은 연후에

구족계 받을 때 받게 되어 있다.

 

<삼취정계>
삼취정계는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살행을 계율에서도 그대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계율수행에는 세가지 측면이 있으니 첫째는 '섭율의계'로 자신의 내면을 살펴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섭선법계'로 모든 착한 일과 지관을 딲고,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을 배우는 것이다.

마지막 '섭중생계'는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중생교화를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유가사지론>을 인용한다.

 

1) 섭율의계
모든 보살은 비록 뒤섞인 대중에 처한다 하더라도 즐거이 조금이나마 바르지 않은 언론은

하지 아니하며, 멀리 떨어진데 있으면서도 나쁜 생각을 조금도 일으키지 아니한다.

때로 잊고서 잠시라도 흩트러지면 곧 날카로운 뉘우침과 부끄러움을 일으켜 깊이 그의 허물을 보나니

자주자주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면서 깊이 그의 허물을 보기 때문에 비록 다시 바르지 않은 언론과

나쁜 머트러운 생각이 일어난다 손치더라도 빨리 바른 생각에 편안히 머물며 그에 대해서는

다시 마음씀이 없음을 획득하게 된다......


율의계에 머물러서 언제나 자기의 허물을 살피는 것이요 남의 잘못은 살피지 않으며 널리

온갖 흉포하게 계율을 범한 유정에게는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고 성내는 마음이 없이

그에 대하여 가엾이 여김을 품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앞에서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이롭게 하려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율의계에 머무르면서 비록 다시 다른 이의 손발과 흙덩이, 돌, 칼 따위가 닿아서 해를 입는다

손치더라도 그에 대하여 오히려 조금도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조차 없거든 하물며 그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하려하거나 해를 입히려 하겠으며 헐뜯거나 꾸짖으면서 조그마한 괴로운 접촉으로써

이익되지 않은 것을 짓겠는가. 또 모든 보살은 율의계에 머무르면서 다섯 갈래의 방일하지 않는

행을 갖추어 성취하나니,

 

첫째는 과거에 이미 지었거나 범했던 것에 있어서는 법답게 뉘우치며 없앰이요,

둘째는 미래에 장차 어기거나 범할 것을 법답게 뉘우치며 없앰이며,

셋째는 현재에 어기거나 범한 것을 바르게 법대로 뉘우쳐 없앰)이요,

넷째는 뒷날에 장차 범하거나 어길 것에 대해 맹렬하게 자기 맹세를 일으켜 “나는 반드시

         장차 여여하게 행하여야 할 바와 여여하게 머물러야할 바는 그와 같이 행하고 그와 같이

        머무르면서 범하는 바가 없게 하리라”고 함이며, 다섯째는 먼저 시기에 지은 바 방일하지

       않은 행으로써 의지할 바로 삼고 여여하게 행하여야 할 바와 여여하게 머물러야할 바,

     그와 같이 행하고 그와 같이 머무르면서 범하지 않는 것이다.

율의계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펴 허물이 없게 하는 것으로 앞에서 본 5계, 10계 등의 계목들을

어기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대승의 율의계를 별도로 상정하기도 하며, 범망경보살계처럼

삼취정계를 하나의 계목으로 체계화한 것도 있다.

 

2) 섭선법계
섭선법계는 모든 선법을 껴안는 것으로 수행자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다.
율의계를 받은 뒤에 큰 보리를 위하여 몸과 말과 뜻으로 모든 착함을 쌓아 모으는 것을 이름하여 섭선법계라 한다.

계율에 의하여 계율에 머무르고 들음에서 생각함에서 지관을 닦음에서 혼자 있는 곳을 좋아함에서 부지런히

힘써 닦고 배우는 것이다.


때때로 존장에 대하여 합장하고 일어나 맞이하고 문안드리고 예배하고 공경하는 일을 부지런히

힘쓰며 닦아 익히는 것이니 곧 존장에 대하여 공경하는 일을 부지런히 닦으며 병든 이에게는

가엾이 여겨서 정성스럽고 정중하게 보살피고 공양하며 모든 미묘한 말에 대해서는 장합니다라고

하는 것으로써 베풀며, 공덕이 있는 중생에 대해서는 참되고 정성스럽게 찬탄하며 시방세계의

온갖 유정들의 온갖 복된 일에 대해서는 훌륭하게 하려는 뜻으로 깨끗하게 믿는 마음을 일으켜

말하고 따라 기뻐한다.

 

다른 이가 짓는 바의 온갖 어김과 범함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가리어 편안히 참으면서 몸과

말과 뜻의 이미 지었거나 아직 짓지 아니한 온갖 유정들의 온갖 착한 뿌리로써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에 회향하고 때때로 갖가지 바른 서원을 세워서 온갖 종류의 훌륭한 공양거리로써

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에 공양하며, 모든 착한 품류에 대해서는 방일하지 않는 데에 머무른다.
모든 배울 곳에 대해서는 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알며 음식에 대해서는 양을 알고 초저녁이나

새벽에 깨어 있으며, 착한 선비에게 친근하고 착한 벗에 의지하며 자기가 범한 허물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살펴서 분명이 알아서 깊이 허물을 본 뒤에는 그가 아직 범하지 않은 것은 뜻을 오로지하여

보호하며 지키고 그가 이미 범했던 것은 부처님과 보살과 법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들추어 내어 법대로 뉘우치며 없애는 것이니 이와 같은 종류의 온갖 착한 법을 끌어 껴잡아 보호하며

지니고 더욱 자라게 하는 계율을 바로 보살의 섭선법계라 한다.

 

3) 섭중생계
섭중생계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섭중생계를 '요익중생계'라고도 한다.

1. 모든 보살은 모든 유정들에게 옳음과 이익을 이끌며 저 여러 사업에 대하여는 돕는 벗이

   되어주고 모든 유정에게 생기는 바 질병 등의 괴로움에 따라서는 병을 보살피며 역시 돕는 벗이 된다.
2. 세간과 세간의 갖가지 옳음과 이익에 의하여 유정들에게 모든 법요를 말하고 먼저

    이치대로 말한 뒤에 저 여러 가지 옳음과 이익을 억게 한다
3. 먼저 은혜있는 유정에게는 은혜를 알며 그에 알맞게 그 앞에서 갚는다.
4. 갖가지 사자와 범과 이리와 귀신과 도깨비며, 왕과 도둑과 물과 불 따위의 두려움에

   떨어지는 모든 유정들을 모두 구호하여 이와 같은 모든 두려운 곳을 여의게 한다.
5. 모든 재보와 친속을 잃게 되는 모든 유정들에게 그를 위해 깨우쳐 알리면서 근심걱정을 여의게 한다.
6. 살림돕는 뭇 도구들이 모자라는 모든 유정들에게는 온갖 살림돕는 뭇 도구들을 베풀어 준다.
7. 도리에 따라 바르게 의지가 되어 주면서 법대로 대중을 다스린다.
8. 세간에 따르면서 일하고 말하고 부르고 가고 오고 의논하고 경하하며, 때에 따라 나아가서

   다른 이로부터 음식 등의 일을 받아 가지나니 요약하여 말하면 온갖 이치 없는 것을 이끌거나

   뜻을 어기는 현행을 멀리 여의고 그밖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 마음을 쏟는다.
9. 숨기거나 들어나거나 간에 있는 바 진실한 공덕을 나타내 보여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기뻐하면서 나아가 배우게 한다.
10. 허물있는 이에게는 안으로 친하고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려는 왕성한 뜻을 품고서 조복하고

    꾸짓고 벌을 다스리고 내쫒는 것이니 그로 하여금 착한 곳에 편안히 두려고 하기 위해서이다.
11. 신통력으로 방편을 써서 지옥 등의 모양을 나타내 보이어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착하지 않은 것을

     싫증내어 여의게 하며, 방편으로 이끌어서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에 들어와 기뻐하고 믿고

     즐기며 있기 드믄 마음을 내어 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게 한다.

삼취정계의 중요한 의미는 계율수행이라는 것이 단지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무엇을 하는 것이 또한 계율 수행의 중요한 측면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계율 수행임을 자각하고 양심에

비추어 추호라도 부족함이 있다면 곧 참회하고 다시 발원하여야 할 것이다.


원효스님은 <보살계본사기>에서 계율수행자는 삼취정계의 세문을 모두 갖추어야 함을 설하고 있다.
해는 더운 것으로써 성품을 삼고 달은 찬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만일 해만 있고 달이 없다면 모든 식물의 싹은 마르고 타버릴 것이니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일 달만 있고 해가 없다면 모든 식물의 싹은 곧 썩을 것이니 그러므로 싹이 날 수 없을 것이다.

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설사 율의계와 섭선법계만을 지킨다 해도 섭중생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오직 자리행만을 닦을 뿐, 남을 도와 주는 이타행 곧 보살행이 없으므로 소승네의

2승과 같아서 위 없는 보리의 풍부한 열매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또 비록 섭중생계만을 가지고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를 가지지 않는 자는 오직 이타의

행만을 하고 자아의 본성을 깨달아 체득하는 자리의 수행이 결여된 수행이므로 도리어 범부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이사람은 보리의 싹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천지에는 해와 달이 있고 더운 기운과 찬 수분이 있어서 만물이 싹이 나서 자랄 수 있고

썩지 않으며 동시에 뜨거웁기만 하여 타죽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계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삼취계를

능히 구족해야만 범부나 소승의 2승네와 같지 않아서 위없는 보리의 세가지 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삼취정계를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자리 이타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계율수행에 있어서 왜 자리와

이타가 함께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모든 보살행이 그러하듯이 계율수행에 있어서도

자리와 이타를 함께 할 때만 그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계율수행하면

자신만 어기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점은 깊이 반성하여야 할 부분이다.

 

계율수행이란 하나 하나의 계율 조목을 어기지 않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자신의 내덕을 닦는 것 뿐만아니라 밖으로 중생의 고통을 함께 하고 그들과 더불어 교화하며 갖가지

선법을 닦는 것을 함께 익혀야 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실천을 하는 것을

계율수행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뒤에서 5계와 연관지어 살펴보도록 하자.

 

4.계율수행의 실제

1) 수계
계율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계율수행에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계를 받고 받지 않고 보다도 스스로의 행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계를 받아 지니겠다는

마음 속의 굳은 결의가 우선되어야 지속적인 실천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계를 받을 때 모든 악을 막고 모든 선을 실천하고자 하는 계의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깊이 받아 들임으써 이를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계란 바로 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마음 속에 힘을 실어 준다.

따라서 처음 발심하였을 때 뿐만아니라 계율을 어겼거나 계심이 약해졌을 때는 다시 계를 받아

계체가 마음 속에 자리잡도록 하여야 한다. 수계할 때 계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는 보리의 마음과

중생교화의 서원이 바르게 세워져 있어야 하고 계를 주는 사람은 또한 계를 몸과 마음으로

잘 수지하는 사람이여야 하며 계의 조문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절차는 부처님

앞에서 위의있게 치뤄져야 한다.

 

① 수계의 의미

불자여, 만약 일체 중생이 처음으로 삼보의 바다로 들어감에 믿음으로써 근본을 삼고, 부처님

가문에 머물러 사는 데 있어서는 계로써 근본을 삼느니라. 불자여,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혹은

믿음이 있는 남자나 혹은 믿음이 있는 여자 가운데 모든 근이 갖추어지지 않은 황문, 음남, 음녀,

노비, 변화의 사람이라도 계를 받게 해야 하나니 모두 마음이 있어서 진리의 길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처음으로 발심 출가하여 보살의 위 잇기를 원하는 이는 마땅히 먼저 정법계를 받을지니라.

계는 일체행의 공덕장의 근본이며, 바로 불과의 길을 행하는 일체행의 근본이니라.

<보살영락본업경 대중수학품>

계를 받는다는 것은 삼보에 대한 믿음을 내었고 불법을 배우고자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범망경 보살계서에서는 이 계를 지니면 어두운 곳에서 불빛을 만난 듯하고,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하고, 병난 이가 쾌차함과 같고 갇혔던 죄수가 풀려남과 같고 멀리 집 떠난 이가 돌아온

듯하리라 하였으니 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기쁘고 환희로운 것인가? 계에 대하여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는 바로 삶을 이끌어 줄 바른 지표로써 믿고 받아들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 판단은 다른 누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를 받는 의미는 이것만이 나를 피안으로 인도하는 바른 길임을 확실히 알고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두운 곳에서 빛을 만난 듯,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구명선를 만난 듯 그렇게

반갑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를 오히려

두려워하고 멀리하니 안따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다.


밤길을 갈 때에는 등불에 의지하는 것과 같이 아직 지혜가 밝지 않은 초심자는 계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일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이는 누구나 계를 받을 수 있으며 받아야 한다.

‘나는 근기가 안됐어, 다음에 받지‘하고 물러설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상락아정의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고 또 그 길에 함께 하고 싶다면 먼저

수계하고, 주의의 사람에게도 수계를 권해야 한다

 

② 수계의 중요성

수계에 의해 방비지악의 힘이 생기고 수계를 바탕으로 계율 수행이 시작되고 계율 수행에 의해

범부에서 성인으로 삶이 전환될 수 있으므로 수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불자여, 만약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중생 가운데 이 보살계를 받지 않는 이는 지각이 있는 이라고 하지

않으며 축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으며 항상 삼보의 바다를 여의게 되나니 보살이 아니니라.

이름하여 축생이라고 하고 사견이라고 하고 외도라고 하나니 인정에 가깝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보살계는 受法은 있으나 捨法은 없느니라. 그러니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잃어버리지는 말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받아야 하나니, 있으면서 범하는 것은 없으면서

범하지 않는 것보다 수승하나니, 범하는 일이 있어도 계를 받은 이는 보살이라고 이름하고 범하는

일이 없어도 계를 받지 않은 이는 외도라 하느니라. <보살영락본업경 대중수학품>

보살계를 받지 않으면 인간이라 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서까지 수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계를 받지 않으면 삼보의 바다를 여의게 되니 계를 받을 것이며 만일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계를 마음 속으로

버리지만 않으면 잃지 않는다 하였으니 계를 다 지키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받지 않는 어리석음을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③ 수계를 받지 않는 어리석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를 받지 않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불자들이 있다.

그들은 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받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계는 결과보다는 동기, 즉 의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듯이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한 번도 지킬 마음을 내지 않는 쪽과 계를 어길 때 어기더라도 받는 순간만은 정말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어느 쪽이 부처님 제자다운 모습인가.

옛날에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몹시 목이 말랐으므로 물을 찾아 헤맨 끝에 큰 강물에

이르렀는데 멍청하니 물을 대하고 선 채 정작 마시려고는 안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다.
“그대는 목이 마르다 해서 물을 찾더니 이제 물 있는 곳에 왔는데도 안 마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사람이 대답했다.
“그대가 이 물을 다 마실 수 있다면 나도 마시겠다. 이 물이 너무 많아 그대나 나나 다 마실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마시지 않는다.”
그때 이 말을 들은 여러 사람들은 다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비유컨대 외도가 그 그릇된 이론을

편벽되게 취해 지닌 다음, 자기네로는 불계(佛戒)를 다 지켜 낼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 받기를

외면함으로써, 미래에 득도하리라는 결정이 없는 채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저 어리석은

사람이 물을 보고도 마시지 않아서 일시의 웃음거리가 된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백유경>

우리 주변에 이와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누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가.

물이 갈증을 씻어주리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마시면 그만이다. 누가 그에게 그 물을 다 마시지 않았다고 탓하겠는가. 아예 제멋대로 살겠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계를 받아야 할 것이다.

 

④ 수계의 방법

수계의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자기 스스로 받는 것과 스승을 모시고 받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받는 계를 자서수계라 하는데 부처님 앞에서 자기 스스로 목욕제계하여 청정한 몸으로

참회하고 맹세하여 받는 것을 말한다. 스승으로부터 받는 경우 계의 종류에 따라 별수계와 통수계가 있다.

별수계는 5계나, 사미10계, 구족계 등 재가, 사미, 비구 등의 처지에 따라 정해진 계를 받는 것이고,

통수계란 재가나 출가가 같이 통해서 받는 계라는 뜻으로 보살계와 삼취정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보살영락본업경 대중수학품>에서는 계를 받는 방법을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각각의 받는

방법을 간략하게 설하고 있다.

불자여, 계를 받는 것(受戒)에 세가지가 있나니, 첫째 모든 불보살이 현재 하시는 앞에서 받으면

진실상품의 계를 얻으며, 둘째는 모든 불보살이 멸도한 후 천리 안에 먼저 계를 받은 보살이 있으면

법사로 삼아 계를 받으면 정법계를 얻나니 중품의 계이니라. 셋째는 부처님 멸도후 천리안에 법사가

없을 때에는 마땅히 불보살의 형상 앞에서 두 무릎을 땅에 대고 두 다리를 세워 합장하며 스스로

서원하여 계를 받을지니 이것이 하품의 계이니라.

수계의 순서는 대략 예경, 사귀의(불·법·승·계), 참회(삼업청정), 수계 순이다.

이 외에도 수계작법의 구체적인 예는 유가사지론, 우바새계경 등에 있다. 이들 경전을 통해 살펴보면

수계를 받기 전에는 먼저 삼귀의와 발보리심이 우선되어야 하고,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참회와 앞으로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원이 있어야 한다.


<우바새계경 수계품>에서는 먼저 선생이 우바새계를 받고자 하는 재가보살은 어떻게 계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묻자 부처님께서 먼저 육방에 공양할 것을 설하는데 육방이란 부모, 스승,

처자, 선지식, 노비, 사문·바라문이다.

 

여기서는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서로의 역할에 대한 말씀으로 재가자들이 먼저 세속에서의 생활을 잘 해야함을 말한다. 이는 아함경의 <선생경> 또는 <육방예경>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또 삼보에 귀의할 수 있겠는지, 모든 중생에게 무포외를 베풀겠는지를 물은 연후에 그러겠다고 하면

5계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과보를 설한다. 그리고 나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만 6개월 동안 출가한

지자를 받들어 섬기게 하고, 지자는 또 지극한 마음으로 그의 몸의 4위의(앉고 눕고 서고 움직이는

모습으로 일상의 모든 행동을 의미함)를 살펴 만약 이 사람이 능히 가르치는 대로 하는 것을 알았거든

6개월이 지나서 여러 승려와 화합하여 만 20인으로 백갈마를 짓는다.


이와같이 재가자라 할지라도 수계의 과정이 엄격함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수계의식 가운데 삼귀의와 참회 등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그러한 서원을 분명히 세웠는지, 참회는 깊이 했는지, 계를 받을 자세가 되어있는지 등 수계의 자격을

묻는 절차는 생략되어 있다. 현재 수계 전에 교육과정을 두고 이것을 마치고 나면 수계의식을 갖는

사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수계는 스스로 계를 받겠다는 의지가 있고

그 사람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자타가 인정할 때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수계의 공덕
계를 바르게 받음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내게 되고 받은 바 시라를 잘 막아 보호하며 계를 잘 막아

보호함으로 모든 나쁜 것을 여의게 된다고 하였으니 계를 바르게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수계를 계생(戒生) 또는 계력(戒力)이라 한다. 계생이란 계를 생한다는 말로 계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계율수행이 시작됨을 의미하고, 계력이란 계를 받음으로써 계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불설계소재경>에는 계의 수지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남자가 삼자귀와 오계와 십선을 받아 일심으로 정진하여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는 부처님을 뵈러 가는데 역말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해가 저물었으므로 하룻밤 머물고자 하였다. 거기에 한 여인이 단정하게 있었는데 그 여인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의 부인이었다. 여인은 머물지 말라고 하였으나 남자는 삼자귀와 5계 십선을

받고 해태하지 않았으므로 두려워하지 않고 머물렀다. 사람을 잡아 먹는 귀신은 계의 위엄을 호위하는

신이 그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사십리 떨어진 곳에서 묵고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남자가 길을 가는데 해골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는 털이 곤두서고 마음이 두려워 후회하며 물러나 생각했다.

‘내가 본국에 있는 집에 있으면 의식이 매우 쾌적하고 풍부했을텐데 공연히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시다는 말에

감회되어, 아직 기묘한 것은 보지도 못했는데 도리어 해골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저 여인을 본토로 데리고 돌아가 함께 살면 어떨까, 또한 즐겁지 않을까?


그리고는 즉시 길을 돌려 다시 역말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마음이 다시 미혹되어 음욕이 생기고 부처님의 삼자귀의 덕과 오계 십선의 마음을 다시 믿지 않으니

천신이 곧 가버리고 다시는 보호하지 않았다. 귀신이 돌아오자 여인은 남자를 항아리 안에 숨겨 주었다.

귀신이 사람의 냄새를 맡고 아내에게 고기를 달라고 했다. 여인은 어젯밤에 왜 오지 않았냐고 묻자,

귀신은 부처님의 제자가 있어 천신이 나를 쫓아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인은 부처님 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귀신은 내가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여인이 계를 설하여 주면 고기를 주겠다고 하며 재촉하자,

먹고 싶은 욕망을 그칠 수 없어 삼자귀와 오중계를 설했다. 귀신이 처음 하나의 계를 설할 때 아내가

문득 받았으니, 다섯가지 계를 마음에 간직하고 입으로 외웠다. 남자도 항아리 안에서 따라서 받았다.

하늘의 제석이 이 두 사람이 마음으로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한 것을 알고, 곧 선신 50명을 뽑아

두 사람을 옹호하니 귀신이 마침내 달아나 버렸다.

계를 받아 지니면 선신이 지켜준다는 이야기로 수계의 공덕을 일깨워준다.

선신이 와서 귀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계를 받는 즉시 우리 마음 속에

악을 물리치는 힘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 현대 사회에서 계율의 실천
앞에서 보았듯이 계율 수행은 단순히 계목 하나를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삼취정계의

총체적인 견지에서 모든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보살계에서 언급되고 있는 환자를

간호하고 장애인을 돌보고 하는 것 등은 오늘날 사회복지의 측면과 많이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활동이나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계율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수행의 구체적 범위를 말할려면 끝이 없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도 계율 수행의 일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며, 5계를 통해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① 불살생와 관련하여
불살생계는 생명존중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불교 계율의 대표적인 계문이다.

그 중에서도 살인은 가장 중한 죄이며 세간법에서도 가장 큰 죄가 된다.

율장에서는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죽인 경우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으로 직 간접적으로

살인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계하였다. 이러한 일은 현대사회에도

남은 과제로 낙태, 자살, 사형제도, 안락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낙태
가장 심각한 생명유린의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의 태아가 생명을 빼앗기고 있다.

유엔인구기금의 97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서는 매년 최소한 7천 5백만명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있고, 이들 중 4천 5백만명의 산모가 낙태시술을 받고 있으며 또 이들 중 6만 7천명이 숨진다고 한다.

또한 성차별이 심한 아시아에서만 지금까지 성감별을 통해 낙태된 여아와 출생 뒤 살해당한 여아가

6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낙태반대운동엽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백 50만여명이나 되는 생명체가

‘임신중절’로 ‘제거’된다는 것이다. 20초당 한 명 꼴에 해당된다. 이 수치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우리사회에서 임신중절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닌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일은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소극적인(방임적인)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많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일까?

타종교에서는 조직적인 낙태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으나 불교 쪽에서는 아직까지 이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


불교에서는 임신을 부모들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태에 들 때 능동적으로 입태하는 주체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중지 또는 중음이라하여 사람이 죽으면 업의 종자가 남게 되는데 그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죽은지 7일 내지 49일 동안에 지은 업력에 따라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아는

나의 소유가 아니며 이미 독립된 생명체인 것이다. 감히 다른 사람의 생명을 누가 마음대로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에 보면 다섯가지 참회하기 어려운 죄가 있다.

 

첫째, 아버지를 죽이는 것,

둘째 어머니를 죽이는 것,

셋째 태아를 죽이는 것,

넷째 부처님 몸에 피내는 것,

다섯째 화합승을 파함이다.

낙태가 이렇게 중한 죄이므로 과보 또한 크다.
살생죄를 비롯하여 갖가지 죄로 인해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아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아귀보응경>에 낙태죄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아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아귀가 와서 물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나 손발이 없으므로 마치 한 덩어리 고기와 같습니다.

넓은 들에 있으면 범, 이리, 여우, 표범, 새, 매, 독수리, 뭇 개와 짐승이 다투어 와서

쪼아 먹으니 고통을 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죄 때문이옵니까.”
“너는 사람이었을 때 나쁜 방편을 부려 스스로 남이 임신한 때에 약을 주어 태가 녹아지게 하였느니라.

이 까닭에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이니 이제는 꽃피는 갚음을 받거니와 열매는 지옥에 있느니라.”

경전에서는 스스로 낙태했거나 다른 사람을 낙태시킨 과보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고

율장에서도 낙태, 자살 등을 살인에 해당된다고 보고 중한 죄로 취급했다. 현재 교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작된 일이 낙태아 천도에 관련된 일이다.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일은 이 일을 예방하는 것이다. 심각한 낙태의 현실을 방관한 채 낙태아의

천도에 매달린다면 오히려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불살생계를 받아

지닌 불교인들의 보다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자살
생명을 지키는 계율과 관련하여 또하나 관심을 갖아야 할 문제가 자살에 대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높은 자살률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은 자살 증후군, 기력쇠진 징후군이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중고년층 자살이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하고, 프랑스는 「자살 방지의 날」을 정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자살방지의 날을 제정했을까 싶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하루 25.4명 꼴로 자살하여 교통사고사망자수를 앞질렀다고 하니,

이제 자살은 개인적인 판단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불교적 관점에서 말하면 자살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며 또 하나의 무거운 업을 쌓는 결과가 될 뿐이다.

현재의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자신의 업이니 자신이 감당하지 않으면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의연하게 해쳐나갈 수 있는 것이 불교인의 자세일 것이다.

 

피하면 두려움이 더욱 커져서 실제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다.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은 최소화된다.

아무리 큰 고통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그 고통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그칠 때가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상적인 캠패인과 더불어 실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들을 함께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인권
불살생이란 궁극적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생명은 존귀한 것이며 평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한 인권 보장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백인과 흑인 사이의 불평등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또한 일본은

제일교포를 비롯 제일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차별관행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인권하면 양심수나 정치범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외에도 성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 장애인차별,

외국인 차별, 동성애 차별 등 각종 불합리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 이런 차별들이 얼마나 각자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사회를 거칠게 하는지 모른다. 일상생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차별부터 없애고 타인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권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

이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하에서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안보를 우선시하게 되었고

이것을 악용한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더욱 사회 깊숙히 뿌리 내렸다.

또한 근본적 인권의 상실은 산업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에만 국한된 사랑이 아닌 모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절실한 때이다. 앞에서 자비는 수행의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깨달음을 향해 한발작도 옮지지 못한 것이니 자비의 마음을 크게 갖고

그 에너지로 이 사회를 불평등과 인권유린이 없는 맑고 깨끗한 땅(정토)으로 만들기 위해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형제도
사형제도에 대한 각국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에 천주교 측에서는 즉각적인 반대성명과 시위가 있었다.

그러나 불교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죄는 죄 자체일 뿐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이 부당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사형을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물론 이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죄를 지었다면 스스로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참회한 후에 그 죄업을 갚기 위해 더욱 헌신하며 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라는

것으로 그의 죄가 소멸될 수 있을까?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더구나 23명의 사형수 중 5명은 시신과 안구를 기증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

(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죄의 자성 본래없어 마음따라 일어나니

마음 만약 없어지면 죄도 또한 사라지네, 죄와 마음 모두 없애 두 가지다 공해지면 이를 일러

진실한 참회라 하네”라고 하였다. 마음으로 진정 참회하였으면 그 죄는 사라진다 하였으니

몸이 없어진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어떤 극악무도한 죄인도 스스로 참회하면 그 죄는 사라지는 것이며 그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죄를 사할 수 없음이 분명하니 불살생계를 지키는 불자로써 사형제도를

용납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만약 임금이 죽일 것을 명령할 제 모시는 신하가 잘 한다고 칭송하면 이 왕과 신하는

죄가 다를 것이 없느니라. <우바새계경>

*뇌사와 장기기증
만약 임종에 이르러서 그 목숨이 남은 것이 한 생각만큼이라도 있는데 칼을

대어서 죽인다면 이것도 죽인 죄를 얻느니라. 만약 목숨이 이미 다했으면 칼을

내려도 죽인 죄를 얻지 않느니라. <우바새계경>


사형제도와 더불어 뇌사에 대한 죽음 인정 여부와 안락사 문제가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97년 6월 26일 미 연방대법원은 안락사를 금지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는 안락사

옹호론자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으므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락사란 있을 수 없다.

생명에 대해 인위적인 해를 가하는 것은 모두 불살생의 계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그의 업에 달려 있는 것, 그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면 그 또한 그가

받아야할 고통인 것이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다.
안락사의 문제보다 한층 복잡한 문제가 뇌사의 인정 문제이다.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의학계는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뇌사의 죽음 인정 여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현재 뇌사시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에

따라 장기기증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97년 현재 장기기증

희망자는 1만 4천 65명으로 91년 설립당시 3천 6백 92명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전국민에 대한 사후 각막기증을 제도화하였는데 거부한 사람은 15%뿐이라고 한다.

즉, 국민의 85%가 사후 각막기증을 하는 샘이다.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는 각막기증률이

높아 이웃나라에까지 기증할 정도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시신을 보존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화장이 전통적으로 행해져 왔으므로 사후 각막기증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각막은 안구에서 각막만 제거하는 것이므로 외형적으로도 전혀 손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사후 시신기증이 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사후 시신기증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끔찍한 일로 생각될 수도 있으므로 각별한

결단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교계의 생명나눔실천회에 장기기증의사를 밝힌 사람은 1천 5백여명으로

3천건 정도 된다. 건별로는 사후각막기증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뇌사시 장기기증서약, 사후 시신기증

순이고 신장기증도 102명이 신청했으며 이중 21건이 이루어졌다. 신장기증과 골수 기증은 현재

상태로 하는 것이어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할 터인데 이런 마음을 내주신 분들께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뇌사에 대한 죽음 판정여부는 아직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 논란을 거듭할 문제이겠으나

수행자들 중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낭떨어지에서 떨어져 독수리 밥이 되었다거나, 배고픈

맹수의 밥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던져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거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뇌사를 어떻게 보느냐를 떠나 뇌사시 장기기증이라는 본인의

결의는 훌륭한 일이다. 불상생계를 받아지닌 계율수행자라면 사후 각막이식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생각된다.

*환경
또하나 심각한 생명파괴 현실은 환경문제이다.

지금도 도처에서 땅과 물과 공기가 총체적으로 오염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파괴는 조만간에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지구의 존립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불살생과 관련된 또 하나 해야 할 일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장기적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보다 직접적인 영향으로만

현재 수백만명이 죽어가고 있다. 유엔 환경 계획(UNEP)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수백만명이 환경요인 탓으로 숨지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후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들력을 갖는다.

즉, 자연에 대하여 인간은 지배자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 유기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개발과 발전이라는 물질적 풍요 대신에

소욕지족과 정신적 만족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운동이 실질적인 환경운동과 결합되어야만 전지구적인 환경파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에 불교가 가장 적합한 사상과 전통을 가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교인의 새로운 자각과 관심과 실천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방생
우리는 생존 자체가 다른 생명체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완전한 불살생이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채식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식물을 죽이는 것이며, 물 한모금을 마셔도 그 안에 무수한 미생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 한 모금 마시고, 걸음 한 발자욱 내닫는 데서도 생명의 경외감을 가질 수 있다면 불살생계를 지키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원천적으로 저질러지는 불살생계에 대한 대치법으로 방생이 있다. 방생이란 잡히어 죽을 목숨을

살려주는 것으로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이야기는 경전에 무수히 나온다.

그리고 그 공덕에 대해 설한 경도 무수히 많다. 모든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방생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② 불투도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나라는 각종부정부패가 사회전반에 걸쳐 펴져있으면서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불교인이 앞장서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회적 기류에 영합하여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참회할 것이요,

다른 사람도 참회하게 할 것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이 처해져 있는

조건에 맞게 노력할 것이다.


보살계에는 가축이나 노비나 생명있는 것을 사고 팔지 않으며 눈금을 속혀 이득을 보지 않는 것 등

불투도와 관련된 계목들이 있다. 이것은 건전한 기업행위에 관한 계율로 볼 수 있는데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건전한 기업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나의 부가

축적된다면 이는 불투도를 어긴 것임과 동시에 불상생의 계를 어긴 것이다. 그의 소중한 생명을

뺏은 것이기 때문이다. 불투도의 실천법은 마음이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보시를 베푸는 것이다. 보시의 공덕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며, 보시란 재보시뿐만아니라

법보시와 무외시가 있으니 무엇으로나 자신이 가진 것은 널리 베풀어야 한다.

 

③ 불사음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 청소년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 아동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도 있듯이 부모들이 건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리라 생각된다. 한 가정이 바로 서면 이 사회가 바로 선다.

가정에서의 화합은 사랑과 이해가 근본이며 부부간의 정절이 필수적이다.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틱낱한 스님은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에서 다음과 같이 현대사회에서

불사음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어린아이들, 부부들, 가족들이 성적 비행 때문에 파멸되고 있습니까?

이 셋째 계율을 실행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우리사회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고독감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성관계를 맺으면 덜 고독하게 되리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정신이 통하는 차원에서 맺어지지 않는 성관계는 서로 간의 사이를 더욱 넓혀 주고 양자에게

모두 해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계율을 어기는 데서 오는 심각한 문제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심각하게 실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부가 정절을 지키지 않으면, 질투와 분노와

절망이 어쩔 수 없이 뒤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자녀들이 자라면 그들도 이런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 계율을 범하는 것이 신문, 잡지, 텔레비전 쇼, 영화, 책 등에서 계속 권장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쉴새없이 성욕을 촉발하는 것들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 폭력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의 집단적 의식이 이렇게 폭력적인 성의 씨앗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어찌 어린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 강간, 기타 포악한 행동이 생기는 것을 놀라워할 수 있겠습니까.

음란물이 범람하고 각종 성범죄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불사음은 자기만의 순결을 의미할 수 없다.

우리는 음란물의 홍수 속에서 간간히 눈요깃거리를 제공받을지 모르나 진실로 자기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특히 적극적인 노력과 실천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경전에서는 모든 여인은 어머니같이 누이같이 본다고 하였다. 생명을 존중하고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 사음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신매매, 미성년자 윤락행위, 매매춘, 불법

음란물의 범람, 각종 성범죄 등을 감시하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가정의 행복과 건전한 사회, 그리고 청소년을 보호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이 계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이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활동이 필요한 때이다.

④ 불망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풍조를 해결하는 방법은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이다.

남을 속이지 않는 것,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지켜진다면 우리사회의 많은 문제들 중

상당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율은 개인과 개인간에 집단과 집단간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또한 과장하지 않고 두 말하지 않고 더러운 말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계율이다.

특히 언론의 힘이 유래 없이 강해진 지금, 공정보도는 진실을 향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우리는 거리에서 사소한 시비로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것을 종종 본다.

사랑스런 말,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불교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며 친절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친절한 말 한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섭법 중에 애어가 있는 것이다.

친절한 말, 사랑을 담은 말, 안온한 말은 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불빛이 되고 갈증을

식혀주는 청정수가 될 것이다.


한편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이 계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대충 자기 판단대로 짤라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수다떠는 것는 것도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대화가 상호 이해와 화합을 증진시켜주는 것임에

반해 수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의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소중한 매개이다.

이 매개가 진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말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을 이해와 사랑의 매개체로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가. 그저 공허한 메아리를 울리고 있지는 않은가.

혹 상대방에게 독을 먹이고 있지는 않은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깊이 생각하여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계율이 지켜진다면 이 사회는 다툼이 없고 오해가 없고 비방이 없고 루머가 없고 화합과 사랑과

이해가 있는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⑤ 불음주와 관련하여
불음주계는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모든 것들을 배격하고 중독과 의존성에서

탈피하여 건강하고 자유로운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유지하며 그런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틱낱한 스님은 우리 몸은 단지 나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으므로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조상과 부모님, 그리고 후손을 위한 예의이자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기들의 몸이 자기들의 것이고, 그래서 자기들의 몸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법률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이것이 개인주의 현상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공의 이론이라든가, 무아의 교설이라든가,

어울려 있음(interbeing)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 몸은 우리만의 것일 수 없다.

우리 몸은 조상들, 부모님들, 후손들,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의 것이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나무나 구름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어울려 우리의 몸이라는 것을 이루어 낸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온 우주에, 우리들의 조상들에게 우리의 고마음을 표시하고,

우리 후손들을 배신하지 않는 최선의 길이다. 우리가 이 계율을 지키는 것은 이처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면 모두가 거기에서 유익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조그만 자아의 조개껍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세상 도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물에 상호 연관되어 있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온 인류와 우주에 관계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음주
음주의 폐해에 관해서는 경전에서도 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음주로 인한

범죄 및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력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 음주인 것으로 미법무부 통계국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6년 미국에서 일어난 7백 70만 건의 폭력범죄 가운데 37%가 술에 취하거나

술과 마약에 같이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음주폭력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많아 배우자나

이혼한 배우자, 여자친구, 남자친구에 대한 폭력의 40%가 술을 마신 상대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배우자 폭력의 경우는 75%가 음주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음주폭력으로 부상당한 경우 의료비가 평균 1천 5백달러에 달했고 연간 50만명이

음주폭력으로 4억달러이상의 금전적인 손실을 보았다고 밝혔다. 한편 96년 미국에서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운전자는 1백 46만 7천 3백명에 달했다.동아일보 98년 4월 6일

미국의 폭력범죄의 가장 큰 원인이 음주라는 것이다. 불음주계가 왜 중요하며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주는 내용이다.

또 다른 신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음주 교통사고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 6천 6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한겨레신문 98년 2월 20일자

이러한 통계에 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음주로 인한 가정 내에서의 폭력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만취하여 길에서 잠을 자거나 온갖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나라 성인

남녀의 알콜 의존도는 37%, 외국의 10배 정도이다. 이는 광범위한 알콜중독자 예비군이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알콜중독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처음부터 알콜중독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처럼 술 권하는 문화 자체가 다수의 알콜중독자를 만든다.

 

그래서 범망경에서는 술한잔 권한 죄로 5백세 동안 손 없는 과보를 받았다고 하였으니 한치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남성이 술을 안하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술을 끊은 사람도 도처에서 한잔의 유혹을 받게 된다.

그래서 알콜중독증은 영원히 고칠 수 없으며 오직 한잔도 마시지 않는 길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술 한잔이 주는 넉넉함과 부드러움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로 인해 이사회가 많은 알콜중독자를

양산하고 가정파괴를 부추긴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이다. 이제 불교계에서는 “술 한잔 대신에

차 한잔”운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마약
불음주계는 음주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헤치며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들

즉, 중독성 물질과 문화 등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지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만취상태나 히로퐁·마약 등 환각상태에서 저질러진 끔찍한 사건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곤 한다.

또한 노름으로 인한 가정파괴와 각종 범죄에 대해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1997년 경찰청은 마약류사범

2,525명을 검거하여 1,729명을 구속조치하였고, 본드·부탄가스 등 유해환각물질 흡입사범은 5,426명을

검거하여 2546명을 구속조치하였다.

 

과거와 달리 이제 이러한 문제는 특수한 몇몇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 그 유혹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만연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마약사범에 대한 치료실적도

미미한 수준.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 6천9백47명 중에서 전문치료기관에서 보호치료를

받은 사람은 고작 43명에 지나지 않았다.중앙일보 98년 5월 19일


그 이유는 처벌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속과 처벌 보다는 예방과 홍보를 위한 노력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며, 매매에 관여하지 않은 단순중독자에 대해서는 처벌보다는 치료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담배
담배는 그동안 기호식품으로 취급되었으나 그것이 개인의 건강에 치명적이고, 중독성이 매우

강하며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므로, 미국·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마약류로 분류하였으며,

대대적인 금연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흡연인구는 갈수록 늘어 한 사람이

연간 4천 1백 53개비의 담배를 피워 세계에서 가장 담배를 많이 피우는 나라가 되었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들의 흡연이 늘어나고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몸은 우리 개인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모든 존재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따라서 불음주계를 받아 지닐 것이며, 마약퇴치운동과 금주금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나가 우리사회의

건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술, 마약, 담배 등 물질적 중독뿐만아니라 도박도 매우 심각한 중독증이다.

이외에도 특별히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TV중독은 가족간의 대화의 장을 차단하고 건전한 의식활동의

장애하는 요소이다. 이와 비숫한 문화적 중독현상으로 성중독, 스포츠중독, 컴퓨터중독 등도 건강한

인간관계를 해치는 것들이다. 특히, 수행자에게는 자유롭고 걸림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중독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음주계를 지키는 것이다.

 

3) 참회
참회의 의미는 총설편에서 간략히 다루었으나 계율수행과의 관계에서 따로 다루고자 한다.


모든 보살은 다른 이로부터 바르게 받음으로 말미암아 배울 바 계율에 대하여 만약 어기거나 범함이

있으면 곧 바깥으로 다른 이를 자세히 살피면서 깊이 부끄러움을 낸다. 착하고 계끗하게 하려는

뜻으로 배울 바 계율에 대하여 만약 어기거나 범함이 있으면 곧 안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깊이

부끄러움을 낸다. 모든 보살은 모든 배운 것에 대하여 범한 뒤에 도로 깨끗이 함과 깊이 공경하고

생각을 오로지하여 처음부터 어기거나 범함이 없는 이 두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이 모든 나쁜 것을 여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다른 이로부터 바르게 받음과 착하고 깨끗하게 하려는 뜻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을 내며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받은 바 시라를 잘 막아 보호한다.

받은 바의 계율을 잘 막아 보호함으로 모든 나쁜 짓을 여의게 된다.<유가사지론>

계율수행에서 참회가 빠지면 계율수행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계를 받기 전에 반드시 먼저 참회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잘못의 뿌리를 끊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태어나야 계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계율을 받은 후에 조금이라도 어긴 것이 있다면 바로 참회하고 다시금 계심을 유지해야 한다.

만일 참회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을 다시 고쳐지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계를 받은 의미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뿐만아니라 어긴 계는 진정한 참회를 통해서만 사라질 수 있는데 참회하지 않는다면 죄는 더욱 불어나

결국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기약이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참회는 계율수행의 전 과정에서 항상

함께 해야 할 파트너이다. 그러면 계율수행을 하면서 참회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살펴보자.

선남자여, 이 인연으로 만일 죄를 짓더라도 한 찰라 가운데도 덮어 감추지 못하거든 하물며

한낮 하룻밤이며 많은 시일일까보냐. 만일 범하였다가 깨끗함을 구하려거든 마음에 부끄러운

생각을 품고 오는 세상에 반드시 나쁜 과보 있음을 믿고 큰 무서운 생각을 내어서 마땅히 이

렇게 참회하여라. 마치 사람에게 불이 붙어 머리가 타고 옷이 탈 적에 빨리 끄려고 서두르듯이,

불을 끄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니라. 사람이 범죄했을 때 또한 이렇게 해야 하며, 즉시

꼭 참회하여 빨리 죄를 멸해 없애버려라.<금광명최승왕경 멸업장품>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어 뿌리를 뽑는 행위이다.

그런데 가능하면 잘못을 안 즉시 그 자리에서 참회해야 한다. 감추려하면 그 동안에 더욱 죄가 증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율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살피는 힘이다.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한 언행이나, 순간적인 화(짜증) 등은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런 경우 자신도 모르게 계율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투철하게 관찰하여 한 순간이라도 계를 파했을 때는 곧 스스로 참회하고,

상대방을 향해 잘못을 고백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자기 귀에

들릴 정도의 말로 잘못을 참회한다.


어떤 수행이건 뜻이 바르지 않으면 삿된 길로 빠지기 쉽다. 이것을 지켜주는 것이 계율이다.

그리고 참회에 의해 계심이 유지된다. 따라서 계율을 받은 후에 추호라도 파계한 것이 있으면

곧 참회하여 계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회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은 기도에서 살펴보자.

 

4) 포살과 자자
참회는 개인적인 형태에서 국한되지 않고 집단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참회가 포살과 자자이다.

'포살'은 월 2회 바라제목차를 강설하는 의식이고, '자자'는 1년에 한 번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묻고 다른 사람이 지적해 주는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함으로써

화합과 청정의 승가공동체를 굳건히 유지하는 뛰어난 제도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총림에서만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으니 아름다운 이 전통을 현대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① 포살

앞에서 재일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포살에 관하여 함께 언급했었다.

포살은 보름마다 이루어졌으며 이때에는 현전 승가에 속한 모든 출가인이 다 모인다.

포살은 먼저 함께 계법을 외우고 한 계목을 외울 때 마다 어긴 적이 있는 이는 스스로

대중 앞에서 참회하는 의식이다. 세 번을 거듭 물었을 때 모두 가만히 있으면 모인 대중이

그 계에 대하여 청청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살의 목적은 정기적으로 계목을 낭송함으로써 계를 잊지 않고 계에 의지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포살은 너무 길지 않은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살이 재대로 되려면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며 타인의 잘못을 약점으로 삼지 않고 받아주는 사랑과 관용이 있어야 한다.

 

② 자자(自恣)

자자는 안거가 끝나는 날 자신의 허물을 대중에게 묻고 대중은 그를 위하여 그것을 말해주는

참회법으로 1년에 1번 있었던 제도이다. 그러나 자자는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제도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해 줄 때 분노나 서운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공격이나 비난이 아닌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허물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지적해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지적하는 사람 또한 나와 너의 대립감없이

바로 자신에게 말하듯이 자비의 마음으로 잘못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는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제도이다.

 

장로께서는 억념하소서. 오늘은 스님들이 자자하시는 날이니, 저 아무개 비구가 장로 및 스님들께

자자하여 말씀드리오니, 만약 저에게 허물이 있어 스님들께서 목격하셨거나, 이를 들으셨거나,

의심품은 죄가 있다면 저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만약 스님들께서

목격하신 죄가 저에게 있다면 반드시 법답게 이를 다스려 주십시오......
이같은 순서대로 모든 스님들이 자자를 하여 마침내 모든 스님들이 자자를 마치고, 또 스님들을

대신하여 자자인의 소임을 맡은 비구도 함께 자자를 작지하여 드디어 자자를 마쳤다면, 반드시

상좌비구의 앞에가서 ‘스님들이 일심으로 자자를 작지하여 마쳤습니다’라고 창어하여라.<십송률>

포살과 자자는 상호신뢰와 공동체생활이라는 기반위에서 이루어진 제도이므로 출가수행자들만

하던 참회법으로 포살일에는 재가자도 승원에서 함께 수행할 수 있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가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수행이 출가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으므로 제적사찰 신도회를 바탕으로 재가자들의 수행공동체를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공동체의 바탕 위에서 포살과 자자를 수행방편으로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5)계율수행시 유의할 점

 

① 타협하지 말라

계율은 적당히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죄의 허물은 큰 것이니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삿된 것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사소한 것이라 가벼히 여긴다면 그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심을 잃게 되어 결국은 수행을 파하게 된다.

계율은 나침반과 같고 안내자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이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구명부대를 몸에 달고 바다를 건너려할 때 바닷속에 있던 나찰이

이 사람에게 구명부대를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듣고 생각하기를 ‘이것을 주면 나는

반드시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차라리 나를 죽일 지언정 구명부대는

줄 수 없다”하였더니 나찰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전부를 줄 수 없거든 반이라도 갈라 달라”한다.

 

그 사람이 그래도 주지 않으려 하였다.

나찰은 또 “그대가 반도 줄 수 없거든 3분의 1이라도 달라”하였으나 그래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또 “그것도 할 수 없으면 손바닥만큼 달라”하나 그것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다시 말한다.

“그대가 만일 손바닥 만큼도 줄 수 없으면 내가 배가 고프고 고통이 심하니 티끌만큼이라도 달라”하였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네가 달라는 것은 얼마 되니는 않는다마는 내가 지금 바다를

건너가려 하는데 앞길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터에 조금이라도 네게 준다면 거기에서 기운이 점점

새어나올 것이니 드넓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가며 물에 뻐져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느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수호하고 지니는 것도 그와 같아서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이

구명부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느느라. <대열반경 11권 성행품>

열반경의 비유는 계율수행자가 가져야할 태도를 잘 표현해 준다.

바다에서 배에 물이 샌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그 배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계율도 이와같다. 계율을 어기고도 자기 편리할 때로 합리화시키며

이것은 사소한 것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이는 계의 뿌리를 파괴하는 것이요,

결국은 전부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코 계율수행에 있어서 적당한 타협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② 지범개차를 배우라

계를 지킬 때는 열반경의 구명부대의 비유처럼 목숨같이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키는 것만 알고 파하는 것을 모르면 또한 계에 얽메임을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어떤 것에 의하여 계를 파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잘 알아서 열고 막는 법을 행하는 것이 지범개차이다.

쉬운 예로 도망 온 사슴을 감춰 주고 사냥군에게 어디로 갔는지 못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그 나무꾼은 복을 받는 것처럼 계율수행에서도 지켜야할 때와 어겨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에 있다. 어느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면 불교 수행이 아니다.

계율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문자에 치우쳐 근본 뜻을 잃는다면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계율 수행에서 지범개차라고 하는 불교 특유의 실천법이 나오는 것이다.

즉 문자에 얽메이지 말고 계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자의적으로 빠질 때에는 자칫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한데 <보살선계경>에서는 보리심이 기준이 됨을 밝히고 있다.

두가지 인연이 있으면 보살계를 잃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둘째는 상악심을 갖는 것이다.

계율수행은 삿된 것을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재대로 분별하여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첫째는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나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계율수행자가 항상 나쁜 마음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리심에서 물러나지만 않으면 보살계를 잃지 않는다. 마음이 잘 따르고

(행동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나되어 행함) 지혜로써 분별해야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됨을 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이타인지 등을

잘 알아서 계를 지킴) 계율수행을 바르게 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계를 열고

막음에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언제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근본 뜻에

비추어 현실의 상황에 즉해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계율 수행의 바른 태도이다.

 

③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계율수행을 하면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나는 계를 지킨다는 상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의 화합을

깨치며 자비심을 없앰으로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의 상이 본래 없으며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계를 지켰다거나 어겼다고 할 만한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니 겉모양을

가지고 시비를 논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계율 수행을 할 때에는 오직 자신을 관찰하고 한치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데 힘쓸 것이지 다른 사람을 보고 시비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집에 있는 보살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를 보면 성을 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되고 가엾이

여기며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애닯구나, 사람 몸은 얻기 어려워서 큰 바다 가운데서 어느 애꾸눈인 거북의 머리가 판자

구멍으로 들어간 것과 같으며, 인간 안에 살고 있음은 이보다 갑절이나 더 어렵다.

이미 부처님의 법을 들었는지라 모든 악을 없앨 수 있고 모든 괴로움을 건지며 바른 지혜에

이르게 되어 살림의 온갖 크고 작은 것들을 버리고 영원히 친척을 끊어 사모한 바가 없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믿은 까닭에 집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언제나 계율 깨뜨린 죄를 듣는데

스스로를 천하게 하고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받으며 악한 이름이 널리 퍼져서 항상 의심과

뉘우침을 품게 되고 죽으면 나쁜 길에 떨러지리라. 이런 일을 듣게 되면서도 오히려 계율을 깨뜨리는구나.

열가지 선한 도를 행해야 비로소 사람 몸을 얻는 것인데 법답게 잘 쓰고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으니 애닯구나’


만약 도무지 성내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여읠 수 없다면 스스로 생각하라. 경전 중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다른 이를 헤아리면 곧 자신의 몸을 상하는 것이요,

오직 자기만은 헤아릴 수가 있고 중생이 나와 평등하면 역시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십주비바사론 입사품>

지혜가 부처님의 지혜와 같지 않고 중생에 대해 동체대비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시비를 논한다면

그것은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했거나 자신의 편견이 개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해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거든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 자신이 만들어낸

인상이 아닌지 잘 봐야 할 것이다.

5.계율수행의 공덕
끝으로 계율수행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계를

어긴 과보와 공덕을 나누어 경전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1) 계를 어긴 과보

 

① 살생의 과보

사람이 세간에서 살생을 기뻐하고 자비한 마음이 없으면, 이 때문에 다섯가지 나쁜 과보를 받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수명이 짧고,

둘째 두려움이 많고,

셋째 원수지는 이가 많고,

넷째 죽은 뒤에 혼백이 태산지옥에 들어가나니, 태산지옥에서 매우 아프게 고문당하되

      태우고 지지고 쪼개고 깍고 창자를 끊고 뼈를 깨뜨리어 살고자 하여도 되지 않느니라.

      살생하는 죄는 이렇게 커서 오래오래 지나야 나오느니라.

다섯째는 지옥에서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나면 항상 단명하니, 혹 태에서 죽으며, 혹 땅에 떨어지자

           죽으며, 혹 수십일이나 수백일을 살다 죽으며, 혹 10세를 겨우 지나서 죽느니라.

           이는 모두가 옛 세상 지난 생에 푸줏간에서 죽이고, 사냥으로 죽이고,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거나 잔인하게 모기·깔다귀·거북이·자라·벼룩·이 같은 것을 죽이어서 이룬 것이니라.

          이렇게 분명하니 삼가 살생을 말지니라.

 

② 도둑질의 과보

사람이 세간에서 도둑질로 남의 것을 겁탈하고 이익을 구하되 도리로써 하지 않고 속이어 재물을 취하며,

가벼운 저울과 큰 말과 짧은 자로써 사람을 속이거나, 무거운 저울과 큰 말과 긴 자로써 남의 것을

침노하며, 길에 흐른 것을 주어 그릇된 재물을 취하고, 빌린 것을 갚지 않아 빚지고, 길가는 사람을

저촉하면 이런 까닭에 다섯 가지 나쁜 것을 받느리라.

 

첫째 재물이 날마다 줄어지고,

둘째 국왕의 법에 미움을 받아 형벌을 당할 줄 깨달으나 벗어날 수가 없고,

셋째 몸이 아직 죽기 전에 항상 두려움을 품고,

넷째 죽은 뒤에 혼이 태산지옥에 들어가 몇 천만가지 방법으로 지은 바에 따라 죄를 받고,

다섯째 지옥에서 벗어나서도 지은 빚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서 빚을 갚되, 혹은 노비가 되어 갚고,

         혹은 소, 말, 나귀, 노새, 낙타가 되어 갚으며, 혹은 돼지·염소·거위·오리·기러기·닭·개가 되어 갚나니라.

         모든 경에 말하기를 빚은 썩지 않는다 한 것이 이것이니, 지금에 보이는 낮은 무리와 축생의 붙이는

        모두가 지난 세상과 여생에서 이익을 탐내어 억지로 사람의 재물을 취한 때문이니라.

        축생들의 수고로움이 이와 같은 것은 현재에 분명하니, 삼가 남의 재물을 취하지 말지니라.

 

③ 사음의 과보

음탕하게 남의 부녀들을 침범하면 이 까닭에

다섯가지 나쁜 과보를 받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가지인가.

 

첫째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여 부부가 자주 싸우고, 자주 돈과 재물이 흩어지며,

둘째 고을의 관리들을 두려워하며, 항상 매 때리는 일에 종사하되 죽는 수가 많고,

셋째 스스로가 몸을 속이어 남이 알까 두려워하고,

넷째 태산지옥에 들어가나니 무쇠기둥이 불에 달아 대단이 붉은 것을 항상 몸으로 안고 있게 되느니라.

      앉아서 남의 부녀들을 침범하였으므로 이런 재앙을 받나니, 이렇게 몇 천년을 지나서야 형받기가 끝나느니라.

다섯째 지옥에서 나오면 닭·오리·새·기러기로 태어나거나 사람의 혼백으로서 형상없는 것에 붙어 이름을 얻으리라.

        지금에 오리와 새와 기러기들이 음란하여 모자를 피하지 않고 또한 절제가 없음을 보지만 개와 말과

        강아지는 정조가 있으며 다른 축생들도 모두 믿음과 만족함이 있거늘 닭·오리만이 음란하여 끝이

        없음은 모두가 옛 세상 지난 생에서 음탕하게 남의 남녀를 침노한 까닭에 닭이나 오리 같은 몸을

        받아 사람에게 먹히느니라. 이러한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느니라. 이렇듯 분명하니 삼가

        남의 부녀를 침노하지 말지니라.

④ 거짓말의 과보

사람이 세간에서 두말로 사람을 모함하기 좋아하며 나쁜 말과 거짓말과 꾸미는 말을 좋아하며,

스스로가 높은 채하여 성스러운 도를 비방하며, 어린이를 질투하고 능숙한 이를 시기하며,

높은 재주를 헐뜯으면 이 까닭에

다섯 가지 나쁜 것을 얻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원망과 미워함이 많고,

둘째 스스로가 몸을 속이며 그 까닭에 사람들이 믿지 않으며,

셋째 자주 뜻밖의 화재를 만나고,

넷째 태산지옥에 들어가나니 태산지옥에서는 귀신들이 목에서 혀를 빼내거나 혹은 뜨거운 쇠갈구리로

      혀를 끊거나 혹은 뜨거운 쇠꼬치로 목구멍을 찌르니 죽으려 하여되 안되고, 살고자 하여도

     안되어 말할 수 없으며, 이렇듯 몇 천만년을 지나느니라.

다섯째는 지옥에서 나오면 입과 치아가 나쁘거나 혹은 모자라고 더하고, 말더듬고 군소리하거나

            혹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느니라. 이렇듯이 분명하니, 또한 나쁜 말을 삼가할 것이니라.

⑤ 음주의 과보

술마시고 취하면 서른 여섯가지 허물을 얻나니 어떤 것이 서른 여섯 가지인가.

1.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하면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게 되고 신하는 어진 임금을

    공경하지 못하게 되어 군신과 부자에 위아래가 없다.
2. 말하는데 잘못이 많다.
3. 취하면 두말과 잔소리가 많다.
4. 감추고 숨기었던 사사로운 일을 깜빡 말한다.
5. 하늘을 꾸짓거나 사당에 오줌을 싸되 기탄이 없다.
6. 길 가운데 누워서 돌아가지 못하고 혹은 가졌던 물건을 잃는다.
7. 스스로 몸을 바르게 가누지 못한다.
8. 수그리거나 우러르고 걷다가 구덩이에 떨어진다.
9. 절룩하고 넘어지고 겨우 일어나서는 얼굴이 깨진다.
10. 사고 파는 것이 잘못되고 공연히 남에게 덤빈다.
11. 생업을 잃고도 생활할 것을 근심치 않는다.
12. 가진 재물이 줄어든다.
13. 처자의 배고프고 추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14. 주정하고 시끄럽게 욕하며 국법을 겁내지 않는다.
15.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된다.
16. 망령되어 남의 집에 들어가 남의 부녀를 잡아끌고 어지러운 말을 하니 그 허물이 말이 아니다.
17. 사람들이 그 곁을 지나면 공연히 다투고자 한다.
18. 발을 구르며 소리소리 외쳐대어 이웃을 놀라게 한다.
19. 벌레와 짐승을 함부로 죽인다.
20. 집안의 세간을 두드리어 부순다.
21. 집안 사람들을 죄인과 같이 보고 폭언을 한다.
22. 나쁜 사람들과 패가 된다.
23. 어진이를 멀리한다.
24. 취했다가 깨어나면 몸이 질병에 걸린 것 같이 아프다.
25. 취하면 토해내어 더러운 것이 드러나 처자까지도 그 모양을 미워한다.
26. 의욕이 들끓어서 코끼리와 이리도 피하지 않는다.
27. 경에 밝은 이와 도사와 사문을 공경치 않는다.
28. 음란하여져서 꺼림이 없게 된다.
29. 미친 사람과 같이 되어 보는 사람이 모두 달아난다.
30. 죽은 사람과 같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다.
31. 얼굴이 부풀거나 술병을 얻거나 얼굴이 시들어 누렇게 된다.
32. 하늘 용 귀신들이 모두 술때문에 미워한다.
33. 친분이 투터운 벗님네가 날마다 멀어진다.
34. 웃어른 앞에 거만히 걸터앉아 굽어보다가 혹 매를 맞거나 두 눈이 멀게 된다.
35. 죽은 뒤에는 태산 지옥에 들어가서 구리 쇠 녹인 물이 입으로 들어가 뱃속을

    태우면서 아래로 내리나니 그리하여 살고자 하여도 안되고 죽고자 하여도 안되기를 천만세를 지낸다.
36. 지옥에서 나와 사람으로 태어나면 항상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으리라. 지금도 우치하여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다 옛 세상 지난 생에서 즐겨 술 먹은 탓이니라.

이렇게 각각 계율을 어긴 과보가 분명하니 감히 어기겠는가.

사후에 받는 과보는 계율을 어겼을 때 참회할 때, 게을러질 때 명상의 소재로 삼아 그 상황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현재 단명하다거나 질병이 많다거나 장애인인 경우를 여기의 과보와 연결시켜 보려는

시각은 절대 금물이다. 앞에서 계율수행의 주의할 점에서도 밝혔듯이 여기서 배운 것은 모두 자신의 행을

바로 하기 위하여만 배울 것이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오직 자비의 마음으로 볼뿐이며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기를 거듭 당부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니, 현재 바로 나타나는 과보만으로도 인생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원수지는 이가 많고 미움을 받으며 이름이 더러워지고,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고, 자주 싸우고,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고, 후회하고 부끄러운 일이 많으니 실로 괴롭지 않겠는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계를 파하듯이 이러한 괴로움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고 있는 고통들이다.


앞에서 계율의 기능에서도 말했듯이 계율을 어기면 후회하고 부끄러운 일이 많아 괴롭고, 계율을

지키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당당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다. 또한 사람들도 솔직한 그를

좋아하고 좋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그러므로 계를 어기면 괴로움을

쌓는 것이고 계를 지키면 행복을 저축하는 것임과 동시에 계를 어기면 현재에 바로 괴롭고, 계를

지키면 현재가 바로 안온하고 즐겁다. 이제 지계의 공덕을 보면서 게율생활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며 그 공덕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자.

 

2) 지계의 공덕

① 살생을 여의면 곧 10가지 번뇌 여의는 법을 성취할 것이다.

1. 모든 중생에게 널리 무외를 베풀어 주는 것
2. 항상 중생에게 큰 자심을 일으키는 것
3. 일체 진에의 습기를 영구히 끊는 것
4. 항상 몸에 병이 없는 것
5. 수명이 장원한 것
6. 비인들의 수호하는 바가 되는 것
7. 항상 악한 꿈이 없고 잠을 깨면 쾌락한 것
8. 원적의 결박을 멸제하여 원적이 저절로 풀리는 것
9. 악도에 떨어지는 공포가 없는 것
10. 목숨을 마친 뒤 하늘에 태어나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마음대로 따라 부처됨을 얻을 것이다

② 투도를 여의면 곧 10가지 신(信)을 보존하는 법을 얻을 것이다.

1. 자재(資財)를 가득히 쌓아 왕난과 적난과 물과 불 및 사랑스럽지 않은 자식에게 능히 흩어 없애지 않는 것
2. 많은 사람들이 애념하는 것
3. 사람들이 속이거나 저버리지 않는 것
4. 시방에서 찬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
5. 손해될까 두려워하지 않는 것
6. 좋은 이름이 유포되는 것
7. 대중에 처하여 두려움이 없는 것
8. 재명(財命)과 색력(色力)이 안락하며 변재가 구족하여 결함이 없는 것
9. 보시할 뜻을 품는 것
10. 목숨을 마친 뒤 하늘에 태어나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청정하고 큰 보리지를 증득할 것이다

③ 사행을 여의면 네가지 지혜의 찬탄하는 법을 얻을 것이다.

1. 모든 근(根)이 조순한 것
2. 지꺼림을 영구히 여의는 것
3. 세상에서 칭찬하는 것
4. 아내가 능히 침범치 못하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은밀장상(隱密莊相)을 얻을 것이다.

④ 망어를 여의면 곧 여덟가지 하늘의 찬탄하는 법을 얻을 것이다.

1. 입이 항상 청정하여 우담발화의 향기와 같은 것
2. 모든 세간의 신복하는 바가 되는 것
3. 말을 발함에 증을 이루어 인 천이 애경하는 것
4. 항상 사랑스러운 말로 중생을 안위하는 것
5. 승의락을 얻어 3업이 청정한 것
6. 말은 실착이 없고 마음은 항상 환희하는 것
7. 말을 발함이 존중하므로 인 천이 받들어 행하는 것
8. 지혜가 수승하여 능히 제복할 이가 없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곧 여래의 진실한 말을 얻을 것이다.

⑤ 양설을 여의면 곧 다섯가지 파괴하지 못하는 법을 얻을 것이다.
1. 상하지 않는 몸을 얻어 능히 행할 이 없는 까닭이며

2. 상하지 않는 권속을 얻어 능히 상할 이 없는 까닭이며
3. 파괴하지 못할 信을 얻어 본업에 순하는 까닭이며
4. 파괴하지 못할 범행을 얻어 닦는 바가 견고한 까닭이며
5. 피괴하지 못할 선지식을 얻어 광혹(誑惑)하지 않는 까닭이다.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바른 권속을 얻어

모든 마군이와 외도가 능히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

⑥ 악구를 여의면 곧 여덟가지 정업(淨業)을 성취할 것이다.

1. 말이 도에 어긋나지 않는 것
2. 말이 모두 이익되는 것
3. 말이 반드시 이치에 부합되는 것
4. 말이 묘하고 아름다운 것
5. 말이 가히 받아들일 만한 것
6. 말이 곧 신용할 만한 것
7. 말이 가히 비방할 수 없는 것
8. 말이 모두 좋아하고 사랑한 만한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여래의 범음성상을 구족할 것이다.

⑦ 기어를 여의면 곧 세가지 정(定)에 결단함을 성취할 것이다.
1. 결정코 지혜 있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바가 되는 것

2. 결정코 능히 지혜로써 여실히 묻고 대답하는 것
3. 결정코 인천에 위덕이 최승하여 허망함이 있지 않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여래의 수기하시는 바를 얻어 모두 허황치 않을 것이다.

⑧ 탐욕을 여의면 다섯가지 자재를 성취한다.
1. 3업의 자재니 일체 원적이 능히 구족한 까닭이며

2. 재물의 자재니 일체 원적이 능히 빼앗아 가지 못하는 까닭이며
3. 복덕의 자재이 마음에 하고 싶은 바를 따라 물건이 모두 구비한 까닭이며
4. 왕위의 자재니 진귀하고 기묘한 물건을 모두 바치는 까닭이며
5. 숙세에 간질(慳嫉)치 않았으므로 얻은 물건이 본래 구하던 것보다 백배나 수승한 까닭이다.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삼계에서 특별히 높아

모두 함께 공경하고 공양할 것이다.

⑨ 진에를 여의면 곧 여덟가지 즐거운 심법을 얻을 것이다.

1. 손해시키려는 마음이 없는 것
2. 진에하는 마음이 없는 것
3. 다투는 마음이 없는 것
4. 유화하고 솔직한 마음이 있는 것
5. 성자의 인자한 마음을 얻는 것
6. 항상 이익됨을 지어 중생을 편안케 하는 마음이 있는 것
7. 신상이 단엄하여 대중이 함께 존경하는 것
8. 인(忍)에 화(和)한 까닭에 재빨리 범세(梵世)에 나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무애심을 얻어 보는이가 싫어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⑩ 사견을 여의면 곧 10가지 공덕법을 얻을 것이다.

1. 진선한 뜻을 얻고 진선한 반려를 좋아하는 것
2. 인과를 깊이 믿어 차라리 목숨이 떨어질지라도 끝내 악을 짓지 않는 것
3. 오직 부처님께 귀의하고 제천을 위하지 않는 것
4. 직심과 정견으로 일체 길하고 흉한 의망(疑網)을 영구히 여의는 것
5. 항상 인천에 나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것
6. 한량없는 복혜가 전전히 중장하고 수승한 것
7. 사도를 영구히 여의고 성도를 행하는 것
8. 신견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악업을 버리는 것
9. 무애견에 머무는 것
10. 모든 고난에 떨어지지 않는 것
만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는 다음 성불할 때 재빨리

일체 불법을 증득하여 자재한 신통을 성취할 것이다.

십선계를 지키면 모든 번뇌를 여의고 믿음을 보존하며, 지혜를 얻고 하늘이 찬탄하며,

파괴되지 않고 정업을 성취하며 수기를 얻고 자재를 성취하며 즐거운 심법을 얻고 갖가지 공덕을 얻는다.

이와 같이 지계의 공덕이 위대하거니와 이것을 가지고 현재 자신의 수행정도를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홉 번째 성냄을 여의면 부드럽고 솔직하며 인자하고 중생을 편안케 하는 마음 등을 얻는다고

했으니, 자신이 그러한 마음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면 이 계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계율수행은 곧 행복의 기반을 닦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좋은 이름이 널리 알려지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또한 사람이 자신을 톨이켜 양심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이도한 기쁘지 않겠는가.

이것만으로도 계율수행의 공덕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려니와, 이를 통해 부처가 될 수 있으니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계를 어기면 수많은 번뇌와 고통이 따를 것이고 계를 지키면

현실에서 여러 가지 안온함을 얻으며 궁극적으로는 무상정등정각을 이룬다. 이제 계율 수행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기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좀더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보다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원한다면, 이 세상이 고통없고 다툼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 계율에 의지하여 살 것이며, 삼보와 계율 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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