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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불화. 불상.주련

보물로 지정된 목각탱

by 범여(梵如) 2014. 2. 21.

서울 정릉 경국사 목각탱(慶國寺木刻幀) 보물  제748호

서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목각탱으로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모두 13구의 불상과 보살이 있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커다란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대좌(臺座) 위에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 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하고,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서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아래위의 너비가 같은 조선시대 특유의 형식이다.

불꽃무늬가 위로 솟아서 뻗쳐있고 그 안에 작은 부처들이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 아미타 8대보살이 있고, 그 밑 좌우에 사천왕 중 증장천과 지국천이 있다.

8대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두꺼운 옷을 입고 연꽃을 든 채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다.

본존과 같은 높이에 보살이 서 있고 바깥 좌우에는 나한상이 1구씩 서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양감이 결여되어, 형식화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 가운데 하나로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각의 불상 뒷편에 그린 그림을 후불탱화라고 합니다. 각 부처님의 간단한 특징 만을 나타낸

불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도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라고 하는데
이는 영취산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대중들을 상대로
법화경을 설하시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아미타불의 뒷편 탱화는 극락회상도라고 하며,
약사여래불 뒷편의 탱화는 약사회상도 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아주 특별한 탱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후불탱화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목각탱화로 모시는 것이지요. 
지금도 목각으로 해서 모시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생각한다면
조선시대에 감히 목각탱화를 모실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웠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목각탱화는 7점에 이르고 있는데요.
그 중 6점에 대한 사진만을 확보하고 있으며
완주 미륵사에 모셔져 있다는 목각탱은 본 적이 없네요.
특징이라면 상주 남장사 보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을 중심한 목각탱 외에는
모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하는 목각탱이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불좌상및목각탱(醴泉龍門寺大藏殿木佛坐像및木刻幀) 보물  제989호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본존불은 넓적한 얼굴, 날카로운 눈, 작은 입 등에서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꺼운 편이며,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신체와 옷을 구분하여 주름이 없다면

신체의 근육으로 여길 정도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구씩 일렬로 서 있다.

가운데줄과 윗줄에는 각기 좌우 2보살씩 8대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대 제자를 배치하여 구도의 미를 살리고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했다.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탱(南長寺普光殿木刻幀) 보물  제922호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인데,

이 탱화는 종이나 비단이 아닌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목각탱이다.
이 목각탱은 가로 236㎝, 세로 226㎝, 두께 10∼12㎝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보광전의 후불탱화로 사용되고 있다.

 

길쭉한 나무판 8장을 연결하여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씩 3열로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꽃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으며

관음과 대세지 보살은 연꽃 위에 앉았고 다른 인물들은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각 인물들 사이에는 연꽃과 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있는 본존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솟아올라 2줄기로 갈라져 있다. 몸에 비해 큰 사각형의 각진 얼굴과 가는 눈,

작은 코, 넓은 귀 등은 오려 부친 듯 묘사되었고 앞으로 숙인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회화적이면서도 조각적인 매력을 간직한 귀한 작품이다.

 

상주 노악산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탱(南長寺觀音禪院木刻幀)  보물  제923호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으로,대개 사찰 전각 안의

본존불 뒤에 위치하는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상

뒷편에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가로 184㎝, 세로 165㎝이다.


사각형의 판목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보살이 배치되었고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가섭과 사천왕을 배열한 구도이다. 하단의 연꽃 줄기에서 나온 연꽃이 대좌를 이루어 본존불과

두 보살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본존불은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고

시보살들은 손에 연꽃가지를 잡거나 합장한 모습이다. 불상들의 얼굴과 신체 등이 모두 네모난 형태로

비사실적 인체 표현이 드러나 있으며 이와 함께 두꺼운 옷에 간략화된 주름은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목각후불탱은 목각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17세기 작품을 대표하는 수준작으로 뛰어난 목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불단으로 해서 앞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뒷면 탱화로 모셔서 모습이 좀 달라보이더군요. (보물 923호)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實相寺藥水庵木彫幀畵)  보물  제421호

나무에 불상을 조각해서 만든 탱화인데, 탱화는 대개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을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불화를 말하지만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크기는 가로 183㎝, 세로 181㎝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현재 전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탱화 가운데 가장 간략한 배치구도를 가지고 있다.

화면은 크게 상하로 나누었는데, 하단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보현보살과 세지보살을, 왼쪽으로는 문수보살과 관음보살을 배치하였다.

 

상단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월광보살과 지장보살을,

왼쪽으로는 일광보살과 미륵보살을 배치하였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타원형의 광배를 가지고 있고 사자가 새겨진 대좌에 앉아 있다.

불상들은 모두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에 근엄하면서도 친근감이 넘친다.

좁은 어깨가 목 위로 올라붙어 마치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길게 연꽃의 대좌 밑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정조 6년(1782) 제작된 것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원만한 불상들의 모습과 배치구조,

 정교한 세부조각 등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경 사불산 대승사 대웅전 목각탱부관계문서(大乘寺木刻幀附關係文書) 보물  제575호  

 

이것은 원래 부석사에 모셔져 있던 것을 대승사로 옮겨 놓은 것으로, 후불탱화를 나무로 깎아 돋을새김,

또는 뚫을새김으로 표현한 것이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서

거는 불화의 일종으로, 대개 법당 본존불의 뒤에 후불탱화로 걸린다. 조선 후기에는 이런 목각탱이

꽤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그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미타후불탱화를 조각한 것으로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긴 대좌를 새기고,
 여기에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상을 안치하고 있다. 이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들을 안치하고 있다.
또한 이 목각탱 이외에도 대승사로 옮기기 전에 부석사와의 분쟁관계를 적은 문서들이 남아 있다.

그것은 「상주대승사외사사승도등장」, 「상주사불산대승사승도등장」, 「도내상주사불산대승사제승등장」, 「완의」등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 불교조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승사에는 몇 가지 문화재가 있으나 제일 유명한 것이 후불목각탱(後佛木刻幀)이다.

후불목각탱은 부처님 뒤에 걸리는 탱화를 그림대신에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것이다. 후불목각탱은 7점 있다.

이곳 대승사와 예천의 용문사(보물 989호/1684년)에 1점,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보물 923호/1692년)과

보광전(보물 922호)에 각 1점, 서울 경국사 극락전(보물 748호)에 1점, 남원 실상사 약수암(보물 421호/1782년)에

1점 그리고 완주 미륵사에 1점이 있다.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대략 1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있다.

(조선후기 후불목각탱 연구/이종문/미술사학연구209호/1996.03)

* 후불목각태의 이름은 목각탱, 목각불탱, 목각탱화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이종문씨의 견해에 따라 후불목각탱으로 부르기로 한다.

후불목각탱를 볼 때마다 늘 그 화려함에 놀란다.
일반 탱화가 색상으로 화려함을 보여준다면 는 

황금색의 찬란함으로 대웅전을 밝고 화려하게 만든다. 후불목각탱를 보는 또 다른 맛은 정치한

조각솜씨를 감상하는 것이다. 목재는 석재나 금속과 달라 정밀한 조각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른 불상과는 달리 화려하면서도 정치한 맛을 만끽할 수 있다.이 대승사의 후불목각탱도 마찬가지이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한 후 후불목각탱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목각탱의 크기는 높이가 256cm,

넓이가 280cm, 두께가 30cm이다. 후불목각탱의 구성은 가운데 있는 아미타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12구씩 모두 24구의 보살 및 신중상이 배치되어있다.아래로부터 여섯구씩 4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보물 922호로 지정된 남장사 보광전의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남장사와 것과

시대의 전후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나 남장사의 보살 신중상의 자세가 다양하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으나 이곳의 대승사의 보살상의 모습이 매우 다양하고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승사의 것이

시대가 앞선 것으로 본다. 또한 이 후불목각탱의 소유권에 관한 문서(1869년)의 내용에는 부석사의 향화가

끊어진지 40년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후불목각탱은 최소한 19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불 수 있을 것이다. (상기서 59쪽)

대승사의 후불탱화의 보살 및 신중상 옆에는 각각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4단으로 배치된 보살상과 신중상중

맨 아랫단은 4천왕상과 문수, 보현보살이 배치되어있다. 배치의 순서는 아미타보살을 중심으로 좌측에

북다문천(비파), 동지국천(칼), 문수보살, 보현보살, 남증장천(용과 보주)서광목천의 순서로 배치되어있다.

사천왕상의 지물은 북다문천이 비파를 동지국천이 칼, 남증장천이 용과 보주, 서광목천이 당과 보주를 들고 있다.

이러한 지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천왕상의 지물과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천왕상의 지물은

동지국천이 비파, 서광목천이 용과 보주, 남증창천이 칼, 북다문천이 탑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노명신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불화에 표현되는 사천왕상의 지물과 조각으로 표현되는

사천왕상의 지물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에 대한 고찰/노명신/미술사학연구202호/1994.06)

한참을 들어다보아도 2단 이상에 있는 보살과 신중상의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맨 상단의 경우는 제석천 또는

시왕상으로 여겨지는데 그 정도만을 구분할 수 있었을 뿐이다. 후에 주지스님께 여쭈어보니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6분이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비구의 모습을 한 신중이 10대 제자일 것이다.

* 이종문의 논문에 기록된 신중상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 명칭은 보는 방향으로 좌측부터 )
跋難陀龍王, 月光天子, 須菩提尊者, 富累那尊者, 日光天子, 難陀龍王
帝釋天人, 目健蓮尊者. 地藏菩薩, 彌勒菩薩, 舍利佛尊者. 大梵天王
阿닌尊者, 除障碍菩薩, 大勢至菩薩, 觀音菩薩, 金剛藏菩薩, 迦葉尊者
西方廣目天王, 南方增長天王, 普賢菩薩, 文殊菩薩, 東方持國天王, 北方多聞天王,
이 기록으로 보면 8대보살, 6대제자. 4천왕, 6신중을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후불탱화는 원래 부석사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소유권에 관한 문서가 복장유물로 발견되어

현재 보물 575호로 지정되었다. * 앞서 소개한 이종문 논문에 복장문서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대승사에서 화재를 당하여 1862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나
불상을 새로이 조성하기가 힘들어서 당시

쇠퇴한 부석사의 부처님을 신법당으로 모시길 원하여 이러한 바램을 1869년 2월 경상우도 각 절에 보냈다.

결국 부석사가 250냥의 조사전 보수비를 받기로 하고 후불목각탱을 대승사에게 넘기기로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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