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4년 7월 6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 오후에 맑고 무척 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7km + 어프로치 약1km / 9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고래산부터 쑥 영감 만나 동행)
☞ 산행코스: 수리넘어 고개-339m봉-월문리갈림길-NO25송전탑-해비치C.C입구-폐헬기장
고래산 갈림길-고래산 (왕복)-송전탑-먹치고개-헬기장-갑산-조조봉 갈림길
헬기장-새재고개-도곡리갈림길-새우젓고개-NO25송전탑-482m봉
미덕고개-적갑산-돌탑봉-철쭉군락지-활공장-철문봉-억새밭(H)
예봉산-율리봉-율리고개-예빈산(직녀봉)-견우봉-승원봉-조망바위
공터안부-273.3m봉-능내천주교 공원묘지-능내리-6번국도-팔당댐
☞ 소 재 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화도읍, 조안면
이번주도 영산기맥길을 포기하고 추석전날 가기로 한 천마지맥 마지막 구간을 나선다
원래 이 코스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아껴두고 영산기맥을 가려고 했는데
남부지방에 장마 주의보가 내리는 바람에 담번으로 미루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꾸리는데 요즘 내가 왜이러는지 모르겠다... 장비를 정리하고 똑닥이 카메라를
챙기는데 어제밤에 배터리를 충전시켜 놓은것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네
베낭을 두번이나 뒤집어도 나오질 않고 10분이상을 헤매고 나니 출발도 안했는데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지막으로 거실 바닥을 헤매는데 소파 밑에 굴러 다니네...
집에서 나와 서둘러 버스를 타고 선릉역에 도착하여 플렛폼으로 내려서는데 지하철을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또다시 10분 이상을 허비한 다음에 잠실역에 도착하여 1번 출구에 나오는데
또다시 덕소로 향하는 1670번 버스는 저만치 가는데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 가지만
버스는 야속하게도 휭~하니 떠나가고 소득도 없는 일에 땀만 흘리고 죽을 맛이다
이래저래 황금같은 시간을 50여분을 허비한 다음에 덕소가는 1670번 버스에 오른다
1570년(선조3) 4월 10일 전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숙민공(肅敏公) 유강(兪絳)이
오르자마자 넓은 임도가 나오고 좌측 능선에 NO66 송전탑 방향으로 오른 다음에
해주 최공가는 묘지길에서 직진으로 간다
까치수염(학명: Lysimachia barystachys)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살이 풀로서 까치수영, 꽃꼬리풀, 개꼬리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며 낮은 지대의 약간 습한 풀밭에서 주로 잘 자란다
크기는 50~100cm이며 땅속에서 줄기가 퍼지고 풀 전체에 잔털이 난다
줄기는 붉은빛이 도는 원기둥 모양이고 가지를 치며 잎은 어긋나고 줄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길이 6~10cm, 너비 8~15mm, 톱니가 없고 차츰 좁아져 밑쪽이
잎자루처럼 되나 잎자루는 없으며겉에는 털이 난다.
꽃은 6~8월에 흰색 꽃이피며 꽃잎 5장,수술 6개, 암술 1개이고 흰색 꽃이 줄기 끝에서
산행 꽃차례로 피는데 꽃차례는 꼬리 모양이고 꽃지름은 7~12mm이다
작은 꽃자루는 4~7mm이고 포는 줄모양이며 꽃받침잎은 달걀모양의 타원형잎이고 씨방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로 둥근모양이고 9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관상용으로 많이 심으며 어린 순은 먹는다
한국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꽃말은 ‘동심’이라고 한다
등로 좌측에는 해주최공과 부인 박씨의 묘가 있고...
등로 가운데에 海州崔氏 大寧君派 先祖之家 상석이 있다
편한 등로에서 조금 빡세게 치고 오르니 지도상 339m봉이 나온다
339m봉 이정목(←정상(백봉산)4.46km, 하산길(수리넘어고개) 0.76km, →정상(고래산) 2.40km)
339m봉 삼각점(△ 양수 449 / 1988 재설)
339m봉(08:25)339m봉에서 직진으로 하여 고래산으로 향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사격장 경고판이 보인다
월문리 갈림길(08:30)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와부읍 월문리(月文里)는 조선시대 부터 한말까지 이 지역 대부분은 양주군 와공면으로
1914년 월곡리의 '월(月)'자와 문곡리의 '문(文)'자 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월문리의 이름이 된
'문곡리'라는 마을은 예전에 이 마을에 글선생이 있었기 때문에, 또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마을에서 유래하였는데, 처음에 '글계울' '글개울' 등으로 불렸다고 하고, '문곡'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조선 말기에 '문곡'이라는 호를 가진 선비가 살았었기 때문이라 한다.
월문리의 또다른 이름인 '월곡'은 '다리골 중광'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원래 이곳은 동쪽으로는 갑산과 운길산이 솟아 있고, 서북쪽으로 천마군봉이 벌려 서 있으며,
중앙으로는 내가 흐러 한강으로 유입되는, 아늑한 마을인데, 이러한 마을에 이씨가 많이
들어와 살게 되니, 이씨가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해서 '많을 다(多)' 자를 써서 '다리골',
'달골', '월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정표(↖정상(고래산) 2.20km, ↓정상(백봉산)4.70km, 하산길(수리넘어고개) 1.00km)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안부로 내려선 다음 다시 올라서니 송전탑이 나온다.
이곳은 송전탑이 열 十자로 있어 마치 송전탑 인터체인지 같이 보인다
NO 25 송전탑(08:35)
송전탑을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또다른 송전탑
저 멀리 2구간에 걸었던 백봉산도 보이고...
능선에서 바라본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의 모습
남양주시(南楊州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중동부에 있는 시이다.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시 통합되어 도농복합시가 되었다.넘어진 잡목구간을 지나니 ㅜ자의 갈림길이 나온다
T자 갈림길(08:45)
좌측으로는 화도읍 차산리로 가는 길인데 등로는 뚜렸하고 우측 지맥길은 희미하다
이제 끝물 인듯한 농익은 산딸기들이 많이 보이는데 상당히 달다.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여 걸어가면서 산딸기를 따서 연신 입에다 넣는다
다소곳이 피어있는 하늘나리의 모습
이정목(08:55)
이정표(←정상(고래산) 1.40km, →정상(백봉산) 5.50km
이정목에 걸려있는 다산 선생의 詩
아마 해남의 유배지에서 쓴 모양이다. 부인에 대한 애뜻한 情이 엿보인다
잠시후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해비치 골프장 주차장이 나온다.
해비치골프장 주차장(09:00)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으로 명문 골프장이다.
이곳에서 라운딩을 해본적은 없지만 같은 계열인 제주도 해비치 골프장은
서너번 가본 기억이 있고 골프장 아래에 집안동생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골프장 동물이동통로에서 바라본 골프장 오는 길의 모습
고래산 오름길에서 만난 루드베키아
골프장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코가 땅에 닫을 정도로 급경사를 오르는데 바람한 점 없고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리는데 배는 고프고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는지 내 자신도 이해가 안된다
20분정도를 빡세게 치고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안부능선이 나온다
아휴~~~ 넘 힘들어! 바람이라도 좀 불어줬으면 좋으련만...
잡풀이 무성한 폐헬기장을 만나고...
고래산 갈림길(09:25)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0.44km 떨어진 고래산을 향하는데 베낭하나가 있다.
아마도 쑥영감탱이 것인 모양이다... 부지런히 고래산을 향하는데 고래산을 같다오는
쑥 영감을 만나는데 반갑기도하고 얄밉기도 하다
고래산 가는 길에서 만난 간버섯
간버섯(Pycnoporus coccineus)
간버섯은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는 버섯으로 활엽수나 침엽수의 고목에서 자란다.
갓의 지름은 2~15cm, 두께는 0.2~0.5cm 정도이고 반원형의 부채모양으로 편평하다.
갓 표면은 매끄럽고, 희미한 환문이 있으며 선홍색 또는 주홍색을 띤다. 조직은 코르크질 또는 가죽처럼 질기다.
관공은 0.1~0.2cm 정도이며 붉은색이고 관공구는 원형이며 1mm 사이에 6~8개가 있다.
대는 없고 기주에 부착되어 있다. 포자문은 백색이고 포자모양은 긴 타원형이다.
1년 내내 침엽수와 활엽수의 죽은 줄기나 가지에 무리지어 발생하며, 부생생활을 하여 목재를 썩힌다.
간버섯은 항균성분이 있어 화상염증에 유용하며 항종양성이 있는 약용버섯으로 이용된다.
고래산 오르는 길에서 만난 멋진 소나무
고래산 정상 이정목
고래산(529m:09:30)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와 와부읍 월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바다에 사는 고래와는 관련이 없는 지명으로 보인다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보건데, ‘고래산’이라는 이름은 ‘골(谷)의 산’이
변해서 된 것으로 보이며, 즉 골짜기의 산이라는 의미의 ‘골의 산’ 이
변화하여 ‘고래산’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해(1986)의 연구에 의하면 ‘골의 산’이란 뜻이 ‘골뫼’로 재구성되어
고래뫼→고래산→경산(鯨山)으로 변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지자료」에 처음으로 ‘경산(鯨山)’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문으로 옮기면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에서 인용
고래산 정상 삼각점(△양수 314)
고래산 주위를 처삼촌 벌초하듯 한바퀴 휘~익 둘러보고 부지런히 베낭을 벗어둔송전탑(10:00)
Y자 갈림길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와 와부읍 월문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고래산과 큰명산 사이에
임진왜란 때에는 백봉산 묘적사에서 훈련한 승군들이 이곳 시우리 고개를 넘어
운길산 수종사에 진을 치고 용진 전투에 임하였다고 한다.
버스정류장 표지판에는 머치고개라 기록이 되어 있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메이크박스라는 공장건물이 나오고 5m 정도 지난 다음 밭고랑 사이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도착하니 남양주 진건읍의 산악회에서 왔다는 왕숙(천마)지맥 산꾼들이 산행을 준비한다
마을로 통하는 소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밭 가운데 임도를 따라 갑산으로 향한다
임도를 올라서니 좌우로 싸리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가야할 갑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부(10:40)
안부를 지나니 좌측으로 시우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우리(時雨里)는 산이 높고 물이 깊어서 비가 갑자기 내리면 '시위(큰물)'가
자주 일어나게 되어 '시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시우터라 불렸고 일제중엽 화도면에서 조안면으로 편입되면서 시우리(時雨里)가 되었으며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너무나 깊어 날이 저물게 되어 쉬어간 곳이라 하여 시우터로
불렸고 조선시대 궁내의 내시를 많이.키워 궁에 바쳤다하여 내시라 부르다가 내치가 되었다고 한다
무명묘지를 지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싸리나무를 비롯한
잡목과 잡풀이 많은걸로 보아 일반 등산객은 거의 다니지 않은걸로 보인다
잠시후에 급경사가 나오니 뒤따라 오는 쑥영감이 계속 처진다.
같이 어울려 가던 모 산악회도 중간에 퍼지는 바람에 홀로 능선을 치고 오른다.
바람 한 점이 없으니 산행이 참으로 힘이든다
T자 능선에 올라서니 일반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바람이 조금씩 불어온다.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는 안부 능선을 조금 지나니 바람이 잘 통하는 바람골이
나오길래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웃통을 벗어 스틱에 끼어
말리고 양말까지 벗었놓고 휴식을 취하니 신선이 따로없다.
20분을 넘게 쉬고나니 쑥 영감이 힘겨운 모습으로 오는데 4년전 낙동정맥길의
그 기백은 어딜가고 초췌한 논네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는데 거기다가
어젯밤에 백봉산에서 비박까지 했으니 당연히 힘드시겠지
이곳에서 션한 아사히 캔맥주에다가 쐬주를 말아서 마신 다음에 갑산으로 향한다
T자 안부가 나오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갑산으로 향한다
소나무가 있는 공터가 나오고 나무벤취 2개가 있다
폐헬기장(11:40)
갑산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표
고도차가 거의 없는 안부 능선을 타고 갑산으로 향한다
갑산(甲山:546m:11:45)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와 조안면 시우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고 무인 감시 카메라가 산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수도권 근교산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표시석 하나없고 어느 산꾼이 하얀 종이에다
갑산이라 써놓은 바람에 이곳이 갑산(甲山)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갑산의 지명유래는 주변에 절터가 있었다 하여 '절골산' '절곡산' 이라 불려오다가
일제에 의해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는 과정에 '갑산(甲山)'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라 한다.
갑산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또다른 사연이 전해온다
이곳 갑산은 조선왕조 때 한양성과 가깝고 산과 구릉지대가 많아 왕실의 강무장(講武場)으로
자주 이용하였다고 하며, '강무(講武)'란 임금이 친히 참관하는 군사훈련이나 수렵대회로
이때 군인들이 갑옷을 입고 훈련에 임했다 하여 '갑산' '갑옷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갑산 능선에는 왕실의 講武 행사 시에 제단을 쌓고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던 '제바위'란 곳이 남아 있으며
갑산 아래 어룡마을에는 講武시 임금이 기거하였던 '외상릉(外常陵)' 이 자리하였다고 한다.
뒤돌아 본 갑산의 모습
갑산은 도공과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그 옛날 도골마을에 살던 한 도공이 여인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체 혜어지게 되자
도공은 그 슬픔을 잊지 못하고 산으로 들어가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이 여인의 조각상이 지금의 갑산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인의 모습을 닮은 갑산은 도공이 사랑하였던 여인의 누워있는 형상이라 한다.
안골마을 갈림길(11:48)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조조봉과 안골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와부읍 도곡리 안골마을은 중종반종의 일등공신인 박원종의
생가와 수많은 명문대가의 유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원종의 생가 터에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 정자를 지어 하사하였으며
이 정자에서 갑산을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나고 주변 산수가 수려하여
조정 대소 신료들과 많은 유생들이 찾아와 시문을 나누며 즐겼다고 하여
이곳을 일명 '문우골(文友谷)'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안골마을 갈림길 이정표
갑산 능선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미사리쪽으로 쭉 뻗은 산이 금대산(金垈山)이다
금대산 산 줄기는 덕소와 도곡리, 월문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금대산 동쪽과 갑산 산자락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 안골마을이다
도선국사는 <도선비기>에서 '금대(金垈-금토)'는 조선 최고의 명당 터라 하였다
곳곳에 쉬기 좋은 공터가 많이 보인다
오늘은 서울 근교이기도 하지만 등로가 좋아도 너무 좋아 모처럼 여유있는 산행을 한다
헬기장(12:00)
헬기장에 들어서니 우측으로 조조봉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조조봉(332m)
와부읍 도곡리에 있는 봉우리로 매봉제 남쪽에 있다.
높은 봉우리라서 ‘조조봉’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어룡마을 갈림길(12:05)
이곳에서 도곡리로 내려가는 계곡마을을 '어룡마을' 이라 부르는데
도선국사의 도선비기에 의하면 한강에는 사해의 어룡이 모여들어
이 중 어룡 한마리가 몰래 궁촌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 하늘로 승천하려다
빨래하던 여인에게 천기가 누설되어 마을 폭포에 떨어져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 한다.
이때 어룡이 거슬러 오른 궁촌천 주변의 마을을 '어룡마을' 이라고 하였으며
이무기가 되버린 폭포가 있던 마을을 '폭포마을' 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후 어룡이 머물던 어룡마을에는 여인들의 바람 기운이 드세어 가정불화가 잦아
한강에서 궁촌천으로 흘러드는(도심역 한강 우성아파트 자리) 곳에 음기를 막아
마을은 다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어룡마을 한가운데에는 어룡이 승천하기 위해 머물렀다는 '어룡못'이 남아 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넘어진 나무가 나오고 이윽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아마도 새재고개에 도착하는 모양이다
새재고개(12:10)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서 조안면 시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넓은 공터에 이정표와 예봉산과 운길산 등산 안내도에
다산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재난 방송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새재’는 아마 ‘새고개(鳥嶺)’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새재고개’보다는 ‘새재’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고개는 ‘새재골’이라고도 불리며, 옛날 새우젓 장수가 어렵게 어렵게 넘던 고개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아마 이 이야기는 ‘새재’와 ‘새우젓’과의 발음 유사성 때문에 생긴 이야기인 듯하다.
남양주 사료관에서 인용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 예봉산으로
향하는데 운길산을 가려면 좌측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오르면 된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목책 계단이 나오고 조금 오르니 기이한 나무가 있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숨이 콱콱 막힐정도로 힘이든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경사도는 점점 가팔라지고...
송전선 너머로 보이는 시우리의 모습
뒤따라 오는 쑥영감님도 몸이 안 따라주는지 계속해서 쉬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저 나이에 맥길을 탄다는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닌지?
힘들게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오늘 아침을 안 먹고 막걸리와 우유, 그리고 맥주만
마셨으니 배가 고플만도 하다.
할 수 없어 등로옆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웃옷을 벗어 말리고
점심 밥상을 펴고 있으니 쑥 영감님이 도착을 한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오이냉국에다 말아 한 그릇 뚝딱 해치우니
비로소 주위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즐거운 점심밥상에
酒님이 빠져서야 되겠는가...얼려서 가져온 션한 삿포로 맥주에다
쐬주를 말아서 영감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상사를 논한다
오늘은 나홀로 산행과는 달리 둘이서 걸으니 술을 참으로 많이 마신다
그것도
주종불문(酒種不問: 술의 종류 안 가리고)
도수불문(度數不問: 술의 도수를 안 따지고)
청탁불문(淸濁不問: 술의 맑고 탁함을 안 따지고)
막걸리, 소주, 맥주를 따지지 않고 계속 마시면서 醉中山行을 하건만
정신만 말짱하고 기분이 너무 좋으니 神仙이 따로 없구나... ㅋㅋㅋ
멋진 점심 만찬을 끝내고 말린 옷을 입으니 옷이 바짝 말라서 그런지 기분이 쿨하다
다시 베낭을 메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예봉산으로 향한다
♬♩♪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좋은 나인데 ♪♩♬
새우젓고개(13:10)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와 조안면 진중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좌측으로 가면 운길산이 나오고 우측으론 적갑산, 예봉산이 나온다
남양주시 지명유래에는 "새우젓고개가 조곡 북서쪽에 있는 고개이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까지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젓을 이 고개를 통하여 내륙지방으로 운송
하였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새우젓고개 이정목
이정표(←세정사 1.70km/↑예봉산 3.70km/↓운길산 3.5km, 하산길 3.20km)
세정사 갈림길(13:15)
이 길을 10번도 더 걸어었지만 대부분 가을, 겨울에 걸었고 여름 산행은 처음이다
적갑산 가는 길은 너무도 좋았고, 거기다가 오랫만에 편안한 길을 걸으니 내 두다리에게
오늘은 쬐금 덜 미안한 느낌이다... 쥔장 잘못만나 고생하는 내 다리(足)이여
NO 25 송전탑(13:20)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 가운데 멋진 소나무가 나오고...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운길산이 아쉬운듯 산꾼을 바라본다
482m봉(13:30)
482m봉에서 바라본 운길산의 모습
운길산((雲吉山:606m)은‘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에 나온‘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운길산(雲吉山)’의 산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면서 흘러가던 구름들이강원도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춘천을 거쳐 약 371km를 흘러내린 북한강 물과, 강원도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영월, 충주를 거쳐 흘러내려온 남한강 물이 서로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팔당호반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덕고개(13:40)
미덕고개 이정표(↑예봉산(적갑산) 2.12km/↓하산길(도곡리) 4.12km
미덕고개에서 급하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적갑산의 앙증맞은 표시석이 산꾼을 반긴다.
적갑산(561m:13:48)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와 조안면 진중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 골짜기에 절터가 있었다 하여‘절골산’이라 불리어 왔으며
일제 강점기에 절골의 유래를 모르고 적갑산으로 기록한 것이 지명이 되었다
골산→적골산→적갑산으로 변음이 되었다고 한다
적갑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와부읍 도곡리로 가는 길이다
적갑산 정상 이정표(↑예봉산 1.9km/↓하산길(새재고개) 1,9km/→하산길(도곡리) 1,9km)
도곡리 일원에는 임진왜란 때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여 이곳에 들어와
터전을 잡았다고 하며 도공들은 곳곳에 가마를 설치하고 갑산 자락의 질 좋은 황토 흙으로
도기와 자기를 빚으며 살아와 이곳을 '도골' 이라 불렀다
곳곳에 당시 가마 터들이 남아 있어 60년 대 까지 생활자기를 구워냈다고 한다.
쑥맥 영감과 함께 인증샷
작년 10월에 1무1박 3일 코스로 영남알프스 종주이후 10여개월만에 만났다.
돌탑봉(13:55)
돌탑봉 이정표(↑예봉산(정상) 1.31km/↓적갑산(도곡리) 0.5km
물뿌레 나무 군락지
돌탑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물뿌레 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니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오른다
급경사의 밧줄구간의 오르막으로 오른다
밧줄구간을 올라서니 활공장이 나오는데 예전에 있었던 가건물은 철거되었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갑산과 운길산의 모습
갑산과 운길산을 잇는 능선의 형세는 ‘인형혈’, 곧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인형혈의 어깨선을 따라가다 보면 산줄기가 평지로 이어지는 부분이 불룩하게 솟아 뭉친 곳을 볼 수 있다.
인형혈의 허리선을 좌청룡(左靑龍)으로 하고 어깨선을 우백호(右白虎)로 하면 그 가운데가
불룩 솟아 있는데 이것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이라고 한다.
풍수에 관한한 무지한 범여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인다.
흔히들 예봉산에서 시작하여 적갑산, 운길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경기도의 지리능선이라고도 한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하남시와 구리시의 전경활공장(14:10)
활공장에 올라서 한강 건너로 하남시와 미사리, 바로 아래에는 덕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약간의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게 보이는게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이곳에 있던 활공장의 시설은 철거되어 있고 행글라이더들은 보이질 않는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와부읍 덕소와 도곡리의 모습
활공장을 지나 넓은 공터에서 또다시 커다란 대접에 소주 한잔씩을 마신 다음
휴식을 취하는데 쑥 영감님의 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철문봉으로 향한다
다시 편안한 능선을 따라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억새밭으로 향하는
옆사면길을 버리고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니 철문봉이 나온다
철문봉(喆文峰):630m:14:38)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와 조안면 진중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적갑산과 예봉산 사이에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로 정상에는
안내표지판과 이정표, 휴게용 벤치 2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산 정약용, 약전, 약종 형제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이들 다산 형제들이 이 봉우리에 오르내리며‘학문(文)의 도를 밝혔다(喆)’하여 ‘喆文峰’이라 이름
정화성 선사의 속명은 신성(申成)인데 다산의 학문과 도를 따라 스스로호를 철문(喆文)이라 지었다고 하며
산꾼들은 예봉산에서 철문봉, 적갑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다산능선’이라 부르기도 하며 예봉산, 철문봉
철문봉 안내 표지판
철문봉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억새군락지
억새 군락지(14:40)
억새 군락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 명성산으로 향한다
예봉산(禮峰山:683m:14:50)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와 도곡리, 조안면 진중리, 능애리, 조안리에 걸려있는 산으로 적갑산, 철문봉,옛날에 산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 해서 예봉산이란 이름이 붙었고 산신령을 모시던 산이라 해서
‘영산(靈山)’이라고 했고, 이 지역 주민들은‘사랑산’ 이라고 불렀는데 철마산과 구분하기 위하여 ‘큰사랑산’이라고 한다
‘작은 사랑산’은 예봉산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아마 운길산을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해동여지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에는 예봉산이 예빈산(禮賓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예봉산과 예빈산 전체를 예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조선시대 외국사신에게 연향(燕享)을 베풀어 주고 종실과 재신(宰臣)들의 음식물 공급을 관장하던
또한 배를 타고 한강을 오르내리던 길손들이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임금에게 예를
갖췄다고해서 예빈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청구도’와 ‘대동지지’에는 예봉산(禮峯山),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지형도’에는예봉산((禮蜂山)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는 일제 강점기인 1911년 조선총독부가
‘동국여지승람’을 본 따 조선의 지명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지명은 ‘조선지지자료’에 예봉산(禮峯山)으로 기록하면서 굳어졌다고 한다
예봉산 정상 삼각점(△양수26 / 1988재설)
예봉산 정상에 오르니 일반 등산객들이 더운 날씨임에도 많이 보인다.
맞은편에 운길산이 유난히 높아 보이고 뒤돌아보니 검단산도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양수리가 보이고 끝자락엔 남한강과 북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가 뚜렸한데... 지난 12월 한강기맥 졸업식의 추억이 떠오른다.
예봉산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핀 다음에 산 아래에 있는 막걸리집에서
둘이 감로주 한사발로 목을 축인 다음에 율리봉으로 향한다
팔당역을 내려가는 ㅏ자 안부가 나온다.
이정표((↑율리봉 0.215km/↓정상 0.469km/→팔당역 1.30km)가 서 있다
예봉산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는 등산객 대부분은 이곳에서 팔당역으로 내려가고
왕숙(천마)지맥 산꾼들만 직진을 하여 등로를 이어간다.
ㅏ자 안부 갈림길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옆사면길은 운길산역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율리봉이다
Y자 갈림길에 서있는 이정표 안내판
율리봉(栗里峰:597m:15:25)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와 조안면 조안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율리봉은 정화성 선사께서 지은 "강역산유기"에 밤이 많은 산마을에 있는 산이라하여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율리봉에 붙어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율리봉에서 예빈산(직녀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예전에 산불이 난 흔적들이 보인다
조금전에 지나온 예봉산의 모습
전망바위(15:30)
이곳에서 서니 두물머리가 한 눈에 들어오고 한강기맥길의 용문산과 유명산이 보이고
맞은편 강 건너에는 내년 봄쯤 걸어볼 계획인 경안(앵자)지맥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조망바위에서의 쑥영감
조망바위를 지나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ㅏ갈림길 안부(15:40)
이정표(↑예빈산 1.41km,하산길(팔당역) 3.04km/↓율리봉(예봉산) 0.40km
벤치가 있는 공터를 지나고...
죽고 못사는 소나무를 지나니 율리고개가 나온다
율리고개(栗里峙:15:45)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와부읍 팔당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예빈산과 예봉산을 오르는 주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옛날 이곳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율리고개 이정표(←조안리입구 3.60km/↑예빈산 0.70km/↓예봉산 1.60km/→하산길 2.60km)
율리고개를 지나면서 다시 예빈산(직녀봉)으로 오르는 급경사가 시작되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예빈산 오름길에서 만난 철쭉 군락지
철쭉 군락지를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는데 알콜 기운이 빠진 탓인지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넘 힘들어 베낭을 내린채 꿩 대신 닭이라고 물한모금을 마신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보호수인지 주변에 철조망을 쳐놨다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오르니 넓은 안부가 나타난다.
쑥 영감님을 기다릴 겸 이곳에서 신발까지 벗어 버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20분 정도 지난 다음에야 쑥 영감님이 도착하여 다시 예빈산으로 향한다
예빈산 오름길에는 암릉구간이 나오고 로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예빈산(직녀봉) 정상 이정표
예빈산 정상에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정표가 서 있으며 남서쪽 암릉 위에
앙증맞은 정상석에 ‘예빈산 390m’라고 표시 해 놨는데 그 너머로 팔당대교가 보인다
직녀봉(織女峰:590m:16:25)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조안리와 와부읍 팔당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전설에 따르면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이 봉우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직녀봉 바로옆에 견우봉(584m)이 자리를 잡고있다.
다른 기록으로는 이곳을 예빈산이라고 정상석에도 예빈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예빈산은 검단산(동악 숭산)과 함께 한성백제의 강역을 수비하던
외오성 산이었고 조선조엔 나라굿 기우제를 봉행하던 명산이다.
산이름은 대동여지도,청구도,해동지도 경기38관도 등에 보이고
유협등의 묵객들이 예빈산을 소재로 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형제가 유년시절 산책하며 웅혼한 기상을 키운 곳이며
화성 선사는 항일의병을 도모하다 한때 견우봉 아래 도정암에서 피신하기도 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 또한 봉안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으며 견우봉 아래 천연암굴에서
피신했던 역사의 향기가 서린곳이다. - 직녀봉 안내판에서-
예빈산(직녀봉)에서 바라본 검단산의 모습
예빈산(직녀봉)에서 바라본 팔당대교와 한강
오늘도 한강은 유구한 세월을 안고 도도히 흐르고 있다.
삼국시대에 최대 격전지의 한강은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 쟁탈전이 일어났던 곳으로 이 한강을 차지한 세력이
한반도를 지배할 수 있었기에... 그 옆으로 팔당대교가 보인다
팔당(八堂)의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예봉산과 검단산의 산세가 험하고 수려하여 선녀가 한강변에 내려와
놀던 곳이 여덟곳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당집을 여덟개 지었다고 해서
‘팔당(八堂)’이라 불렀다고 하며 또 팔선녀를 낳았기 때문에 팔당이라했다고도 한다.
큰 고목이 ‘八’자처럼 쓰러져 있어서 팔당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문헌을 통한 팔당의 지명 변천을 보면 다산(多山) 정약용(丁若用:1762~1836)선생은
이 마을을 파당(巴塘), 다산 선생의 장남인 정학연(丁學淵:1783~1859)은 팔당(八塘),
조선 순조때의 인물인 한진호(韓鎭戶 1792~미상)는 팔당(八堂)으로 기록하고 있는
걸로 보아 적어도 순조때 이미 팔당이란 지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팔당마을의 강변은 원래 바다처럼 드넓은 나루터였던 까닭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바다나루’ ‘바당이’ ‘바다이’ ‘바댕이’ ‘바대이’ 등으로 불렸다.
‘바당’은 ‘바다’의 경상도, 제주도, 함경도의 방언이며
또, ‘바당’은 ‘바닥’의 평안도, 강원도 방언이기도 하다
바당→파당→팔당으로 변음되지 안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직녀봉(예빈산)을 떠나 견우봉 가는 길에 양수리 일대와 두물머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태백시 금대봉 아래의 검룡소에서 시작한 골지천, 정선과 평창, 영월을 거쳐 동쪽으로 흐르는 동강,
서쪽으로 흐르는 서강이 만나 충주, 보은, 원주, 여주, 양평으로 흐러 내려오는 남한강을 이루고,
북한땅인 강원도 금강군 옥발봉에서 발원한 금강천에서 시작하여 남한땅 철원, 화천, 양구를 지나
파로호를 이루고, 다시 춘천에서 의암호와 합류하여 홍천과 가평을 거쳐 북한강을 이루어 저 곳
두물머리에서 합하여 한강이 되어 수도 서울의 젖줄이 되어 도도히 흘러간다.
힘들게 직녀봉을 오른다음 다음 봉인 견우봉으로 향하는데 직녀봉에 너무나
힘들게 올라왔던 학습효과 때문에 견우봉 오르는 길은 양넘 지갑줏는 기분이다
견우봉(584m:16:35)
지나온 직녀봉(예빈산)과 마주보고 있는 견우봉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과 이정표가 있다
견우봉 정상 이정표(↑능내리 1.57m, 승원봉 0.54km /↓예빈산 0.24km)
견우봉에서 조금 내려서니 가슴이 확 트일정도로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바위가 나오고 그 아래로는 가야할 왕숙(천마)지맥 합수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망바위(16:37)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다산선생의 고향 능내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1403~1456)의 묘가 있어서능내리에는 마현(馬縣)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에 다산초당을 짓고 유교 경전을 연구하면서 성리학의 사상체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유배지에서 돌아오던 해에 완성한 “목민심서”는 목민관인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인데 그 당시 수령을 등에 업은 아전들의 횡포가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관대작들의 각종 이권과 뇌물사건 등등...
왕숙(천마)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승원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망바위에서의 인증샷
다시한번 두물머리를 바라보고...
운길산 아래있는 수종사는 보이지도 않는다
운길산 수종사(雲吉山 水鐘寺)
세조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따라 이곳 산사에 까지 올라와 보니 뜻밖에도 그 종소리는 산사 바위
굴속에 떨어지는 물소리였으며 바위굴 속에서 18명의 나한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신비한 체험을 한 세조는 이곳에 5층 돌계단을 만들게 하였으며 한편 팔도방백에게 명하여
이 절을 중창하도록 하고 절 이름을 ‘물종(水鐘)소리’에서 유래한‘수종사(水鐘寺)라 부르게 하였다 한다.
이곳에서 바라본 산 아래 아름다운 경치는 천하제일경이라 할만하다. 다산 정약용은 수종사를
소나무가 멋진 안부 능선을 지나고...
다시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승원봉(474m:17:00)
정상에는 특이한 형태의 삼각점(+ NO 16)이라 써여 있는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다.
승원봉의 이정표
승원봉 아래로 내려선 다음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선다
승원봉에서 바라본 검단산과 용마봉의 모습
승원봉에서 천주교공원묘지로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편안한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쑥 영감님은 그냥 날라서 내려간다
체육시설(17:10)
체육시설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 계속 내려간다
273.3m봉(17:15)
정상에는 삼각점(△양수 453)이 등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능내리 천주교공원묘지가 나온다.
능내리 천주교공원묘지가 나오고 묘지 안부능선을 따라 지맥길을 이어간다
천주교 공원묘지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능내리 천주교 공원묘지(17:20)
이곳의 천주교 묘지는 관리상태가 엉망이고 마치 주인없는 묘지같은 느낌이다
묘지 우측 나무 계단을 따라 지맥길을 계속 이어간다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바라본 6번도로 봉안대교의 모습
저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저 다리위에서 영화 쉬리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도로 가운데 기준점 표시판이 있고...
묘지를 지나 상수리나무 군락지를 헤치며 내려간다
갈림길(17:25)
원래는 우측 숲속길로 해서 팔당댐으로 내려서는 길이 왕숙(천마)지맥 입수점이나
공원묘지 측에서 철조망으로 막아 놓기도 하였거니와 대다수 선답자들이
공원묘지 도로를 따라 내려 왔기에 우리도 편한 길을 택한다
능내리 천주교 공원묘지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6번 구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서 한강가로 가지만 길이없다
시골밥상을 지나 계속해서 한강변으로 걸어 나간다
상당히 무더운 날씨라 더워서 미칠건만 같다.
데크목 계단을 지나니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온다
한강변 자전거 전용도로
더 이상 물가로 갈 수가 없다... 팔당댐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바라만 본 천마지맥 합수점(17:35)
물가에 가서 손발을 씻는 의식으로 천마지맥을 마치려했지만 팔당댐의
철조망과 잔디구장이 산꾼 범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쑥 영감은 이 상황을 미리 알았는지 데크목 계단도 안올라 오고 되돌아 가버린다
아쉬운 맘을 접고 다시 6번 구도로로 되돌아와서 한 잔 마실곳을 찾는데 마땅한데가 없다
도로로 되돌아와서 팔당역쪽으로 오니 도토리 묵밥집이 있어서 일단 들어가서
화장실부터 먼저 찾아가 머리를 감고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딲고나니 조금은 낫다.
그런 다음에 식당으로 와서 쑥 영감님과 함께 도토리묵에다가 동동주 한~~~잔 캬~아
정말 꿀맛이다... 정말 힘들게 지맥 한곳을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간단하게 뒷풀이를 끝내고 도로를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천주교 공원묘지 입구 버스 정류장(18:40)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0분만에 덕소역까지 간다.
천주교 공원묘지 앞 버스노선표
버스를 기다리면서 즐거워하는 쑥영감
덕소역에 내려서 잠시 기다리니 잠실역까지 가는 1670번 버스가 오기에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정신없이 자다보니 다시 버스는 덕소를 가려고 하는데 얼른내려
쑥 영감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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