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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禪詩 ·茶詩·漢詩

산처럼 뜻을 세우다 / 懶翁和尙

by 범여(梵如) 2014. 8. 11.

산처럼 뜻을 세우다 /

懶翁和尙 覺性無迷亦無悟 [각성무미역무오]
不離當處豁然開 [불리당처활연개]
於斯更欲求玄妙 [어사갱욕구현묘]
劫劫無能振法雷 [겁겁무능진법뢰]

깨달음의 본성에 미(迷)도 없고 오(悟)도 없으니 당처를 놓치지 않으면 활연히 열린다 이에 다시 현묘함 찾으려 하면 무한 시간에 법의 우뢰 울리지 못하랴

이 시는 나옹화상(懶翁和尙)이 게송을 요구하는 제자 뇌선(雷禪)에게 준 시이다.
깨달음의 본성에 원래 어리석음이나 깨우침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에 더욱 매달려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기에 끝내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깨달음도 홀연한 깨달음이 있겠지만 그 또한 지혜로움으로 구하는 수련의 과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점점 수련의 과정을 거쳐 가야 한다는 점수(漸修)가 필요하다.
그러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바로 당해의 핵심적 당체를 알지 못하면
그 또한 어리석음의 헤매임이니, 이 당처인 그 곳을 제대로 찾고, 찾았으면
거기에서 벗어남이 없는 정진이 있어야 깨달음의 길로 들것이고, 이 정진의
결실이 활연한 열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의 수련이요, 이 수련은 항시
정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홀연한 깨우침 뒤에도 점점 수련해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강조된다.

활연한 깨달음이 열린 뒤에 다시 더 현묘한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한의 겁 속에 항시 법의 우뢰 소리가 울릴 것이 틀림 없는 것이다.
선사의 이 시는 참선의 묘체에 대한 일반성을 음미한 것이기는 하나 이 시를
요구한 제자의 이름이 뇌선(雷禪)이기에 이 이름에 걸맞는 우뢰(雷)의 법음에다
맞추어 지은 시이다. 나옹선사의 시에는 이렇듯 시를 짓게되는 그 대상자의
처지를 고려하여 거기에 어울리도록 한 시가 많다. 이것 또한 선사들의 병에
따른 약처방으로서의 한 방편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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