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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禪詩 ·茶詩·漢詩

헛된 이름 그것은 나그네 / 설암선사

by 범여(梵如) 2014. 9. 1.

헛된 이름 그것은 나그네 / 설암선사
枯木閑雲伴此身 [고목한운반차신]
夢寒靑紫畵麒麟 [몽한청자화기린]
淸貧易得牛衣暖 [청빈이득우의난]
豪宕難忘蟻甕春 [호탕난망의옹춘]
庭曠籬疎狐試客 [정광리소호시객]
殿空첨短鳥窺人 [전공첨단조규인]
可憐世上求名者 [가련세상구명자]
不識浮雲是實賓 [부식부운시실빈]
마른나무 한가로운 구름은 이 몸의 짝 꿈에도
멀리한 기린각에 오른 벼슬 가난에는 쉽게 얻을
쇠덕석의 따뜻함 호탕하면 잊기 어려운 술통 속의
봄 뜰 비고 움 성글어 여우는 손님 시험하고
법당 비고 처마 짧아 새는 사람 엿보다 가련타
세상의 이름 찾는 이 헛된 이름 뜬 구름의 나그네임을 모르네


설암선사가 성호(性晧)스님에게 준 시이다.
스님이기에 저절로 어울려지는 자연과 하나됨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 시는 세속의 명리를 구하는 헛된 이들과 대비해서 스님의 처지를
이해했기 때문에 더더욱 실감나는 시가 되었다.

산사를 중심으로 자라는 나무가 굳이 고목일 리가 없지마는 이 시에서
마른 나무로 첫 구절을 삼은 것은 어쩌면 스님의 고고한 그 자세를 우선
대비적으로 거론해서 앞으로의 시 구성에 자연스러움을 예비하는 작자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스님과 동반되어 있는 고목이요 한가로운 구름이다.
스님과 짝이 되었기에 한가로운 것일 것이다. 그러니 청자(靑紫)로 상징되는
벼슬의 인끈이나, 전한의 선제(宣帝)때 기린각에 공신 11명을 새겼다는
이 영달이 꿈에서도 오히려 춥게 느껴지는 것이 스님의 삶이다.

비록 이불도 없는 가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의 덕석은 쉽게 얻을 수 있고
이 덕석의 따뜻함이 오히려 근심없는 편안한 삶이고, 술동이에 떠있는 술지거미의
개미밥이 호탕을 사랑할 수 있는 산 속의 봄이다.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으니 뜰도
비었고 도적을 방비해야 할 일이 없으니 울타리가 성글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낮에도 산짐승이 내려와 나그네를 시험하고, 빈 집의 짧은 처마이니
새가 날아와 사람의 있고 없음을 엿본다. 산사의 한적함을 여실하게 묘사한 시이다.
이런 정경과 대조되는 이 산문 밖의 속세는 어떠한가. 사람 사람이 모두 명리를
찾기 위하여 분주하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사람이라는 실제의
허상에 불과하다. 내가 주인이라면 이름은 나그네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 나그네를 그렇듯 좇고 있다 함은 나라는 실체가 부실하기에 이름인
객체로 도장하려는 어리석은 보상심리인지도 모른다. 명리를 여의고
티없는 자연과 이웃한 성호스님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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