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禪詩 ·茶詩·漢詩

어느 것인들 禪 아닌가 / 묵암(默庵)대사

by 범여(梵如) 2014. 10. 4.
어느 것인들 禪 아닌가 / 묵암(默庵)대사
地鑿皆生水 [지착개생수]
雲收盡碧天 [운수진벽천]
江山雲水地 [강산운수지]
何物不渠禪 [하물불거선]

땅 파면 모두 물 솟고
구름 걷히면 다 푸른 하늘 강과 산,
구름 물 있는 곳 어느 것인들
선 아닌 것 있는가.

묵암(默庵·1717~1790)대사의 시이다.
대사의 이름은 최눌이고, 자는 이식(耳食)이고 묵암은 호이다.
대여섯살 때부터 글씨가 써 있는 종이가 땅에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벽에다 붙여 놓고는 내 장차 배워서 알리라 하였다 하니, 숙세에서부터의
인습된 영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겠다. 14세에 징광사(澄光寺)
출가하였다가 18세에 만리(萬里)대사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풍암(楓巖)대사에게서
경전의 가르침을 받고, 이어서 여러 대덕에게 두루 참여하여 내외의 경전이나
격외의 선지를 두루 깨우쳤다. 27세에 다시 풍암대사에게로 돌아왔을 때에는
선과 교의 두 문을 모두 통하여 앞 사람들이 미처 펴내지 못했던 것을
발명함이 많으니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한다.

대사의 시는 선기를 노출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선기가 함축되어 있다. 앞의 시는 선객에게 주는(贈禪客) 시이다.
여기서도 천하 만물 어느 것인들 선이 아니겠느냐는 대 진리를 말하면서도 있는
자연 사물의 실상이 그대로 선이라는 담담한 논리에 불과하도록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구조란 우선 하늘과 땅을 떠나서는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다. 여기서도 이 하늘과 땅을 서두에서 전제하고 시작한다. 그럴 때 땅에는 무엇이 있는가.

땅을 파면 어디에나 물이 솟는 것이 일반적 진리이다.
무한 공간의 절대적 상충은 하늘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하늘보다는
구름을 흔하게 본다. 그러기에 구름이 바로 하늘인 것으로 오인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세속적 삶의 일상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구름이 걷혀야 하늘임을 안다.

우리 속인들은 가려져 있고 감춰져 있는 물이나 하늘을 이해하려면,
그 가리워짐이나 감추어져 있는 구름이나 땅을 파헤치지 아니하고서는 볼 수가 없다. 선의 깨우침이란 어쩌면 이 가리워짐을 걷어내는 수련이 아닌가. 어느 때는
이러한 진리의 당체인 물이나 하늘을 찾고서도 너무나 평범하기에 진리인 줄을
모르고 가벼이 여겨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의 당체이다. 이 어리석음을 걷어내는 작업이 수선의
작업이고, 걷어낸 결과가 바로 선이다. 이 시는 이러한 선의 실상을 주변
사물에서 쉽게 이해시키려 한 스님의 담담한 자세를 보게 된다.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