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산
/ 법정 스님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면,
속 모르는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승들은 누구보다도 산으로 내닫는 진한 향수를 지닌다.
이 산에 살면서 지나온 저 산을 그리거나
말만 듣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산을 생각한다.
사전에서는 산을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이라고 풀이한다.
이러한 산의 개념을 보고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형식논리학의 답안지에나 씀직한
표정이 없는 추상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높이 솟은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이며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
그리고 퇴락해 가는 고사(古寺),
이밖에도 무수한 것들이 우리들의 상념과 한데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는 말이 있지만
그건 거짓이 아니다.
산이 싫어지면 산에서 살 수가 없다.
그러니 한번 산에 들어 살게 되면
그 산을 선뜻 떠나올 수 없는 애착이 생긴다.
산은 사철을 두고 늘 새롭다.
그 중에도 여름이 지나간 가을철 산은
영원한 머시마인 우리들을 설레게 한다.
물든 잎이, 머루와 다래와 으름이 숲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과가 끝나는 가을날 오후에는
선원(禪院)이고 강원(講院)이고 절 안이 텅 빈다.
다들 숲에 들어가 산짐승처럼 덩굴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수수 꿀밤이 떨어진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뭐라 지껄이는 소리들이
귀에 익은 음성처럼 그토록 정답게 들려올 수가 없다.
이런 일로 해서 산에서 사는 사람들한테서는
풋풋한 산 냄새가 난다.
예전 수도승들은 살던 산이 단조로워지면
도반들 곁을 떠나 더욱 깊은 산을 찾아 홀로 나섰다.
벼랑 아래 삼간 초막을 짓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자연을 벗삼아 도심(道心)을 닦았다.
흰 구름 무더기 속에 삼간 초막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저절로 한가롭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般若)를 노래하고
맑은 바람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다.
이런 경지는 고려 말 나옹 선사 뿐 아니라
산을 알고 도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출세간(出世間)의 풍류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사람 그림자 끊이고
홀로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어 버린 것이다.
서너 자 높이의 사립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고단하면 자고 주리면 먹으면서 시름없이 지내는 것은
단순한 은둔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절 인연이 오면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기 위한 침묵의 수업이다.
숲과 새들이 있고
감로천(甘露泉)이며 연못이 있는 우리 다래헌(茶來憲)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이면 문득문득 산 생각이 난다.
그때마다 시냇물 소리를 그리워하며 속으로 앓는다.
훌쩍 찾아갈 산이 없어 날개가 접히고 만다.
요즘의 산사에서는 그 풋풋한 산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관광 한국의 깃발 아래 그 그윽한 분위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이래서 뜻있는 수도승들은
명산대찰(名山大刹)을 등지고 이름 없는 산야에 묻힌다.
도시의 공해로 인해 새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가듯이.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법정 스님의 에세이 무소유 中에서(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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